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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서 정말로 별을 보게 된다면

더 이상 별이란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마천루의 불빛들과 산정상의 송전탑등의 불빛과 유일한 자연물인 달뿐이었다. 분명 내가 어릴 적에는 공해가 있다고 해도 밤하늘에서 별을 찾아볼 수 있기는 했는데, 이제는 빛들에 가려져 별은 없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작은 텃밭이 있어서 거기를 들락거리면서 놀기도 했었는데,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텃밭이 헐리고 그 자리에 대신 빌라가 들어선 이후부터 별들이 하나 둘씩 빛을 잃어 갔을 거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나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내 어린 시절에도 별은 볼 수 없었을 것이었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밤하늘에서 작은 빛 같은 게 보이면 그게 별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뇌의 착각으로 그 때 에는 별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정수 녀석이 조례가 끝나고 내게 와서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어제 학원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나별을 봤어. 한 참이나 밤하늘에서 몇 십 개나 되는 별들이 반짝이더라고. 그것도 어제 밤 내내 말이야.”

나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요즘 도시에서는 별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볼 수 있냐고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 혹시 시골이라도 갔다 왔냐고 트집을 잡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내게 거짓말이 아니라고 화를 내며 따졌다. 그래, 나도 후에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정수가 본 건 정말로 별이었다. 다만, 조금은 특이한 별. 이 도시에서 정상적인 별들이라면 그렇게 빛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 별은 도시의 별들과는 다른 별이었다.
나는 책상에 턱을 괴이고 앉아서 창문 너머의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서는 바람이 불어 모래들이 날려 흙먼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제 곧 여름인데 흙먼지 때문에 더운 날씨가 더 덥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지금은 지구과학시간이었다. 화산은 어떠하고 별들은 어떠하고, 지구는 어떠하다고 말하는 그 과목 말이다. 나하고 내 주위의 애들은 모두 그 수업을 들으면서 꿈나라로 가려고 하는데 정수만은 교실 맨 앞자리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런 정수를 보며 저 녀석은 이 수업이 졸리지도 않느냐며 수업시간이라서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지만 속으로 한바탕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그러하리라 마음먹었다.
정수는 혼자서 정신이 멀쩡한 채로 선생님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했다. 지구의 반은 뭐로 되어 있지? 목성의 구성은 뭐지? 토성의 고리는 무엇으로 되어있지? 화산암의 종류는? 그러한 질문들에 물로 되어있고, 목성은 수소와 헬륨으로 되어 있어요. 토성의 고리는 물과 어름, 그 외의 먼지들로 되어 있어요, 화산암은 심성암과 화성암으로 나뉘어요. 나는 그런 정수의 말을 들으며 그걸 어떻게 다 외우는지가 신기했다. 하긴, 녀석의 꿈은 천문학자였으니 지구과학을 잘하는 것이겠지만.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이 시간이 빨리 끝났으면 했다. 이 시간이 끝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이었으니까.
그런데 수업 종이 치기 5분을 남기고 지구과학선생님이 수업을 중단하고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우고 반 전체에게 말했다.

“다음 달에 전국 물로켓 발명대회가 있다. 혹시 물 로켓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라면 교무실 내 자리로 와서 말해줬으면 한단다. 보아하니 이 반에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좀 있을 것 같던데. 어쨌든 모두 자거나 딴 짓하느라 수고 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여전히 창문만 바라보았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수 녀석이라면 아마 신나하면서 참가하려고 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정수는 눈을 반짝이면서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누가 본다면 지구과학선생님을 무지 사모하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종이 울리면서 점심시간이 도래했다. 점심시간의 도래와 함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리 빼 둔 수저를 들고 교실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때. 날 붙잡는 손이 있었다. 언제 내 곁에 왔는지 정수가 지구과학선생님의 말을 들으면서 하고 있던 눈을 그대로 한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부담스럽게 시리.”
“왜긴? 친구한테 부탁할 게 있으니까.”

나는 그 말을 듣는 즉시 정수가 이후 내게 무슨 말을 할지 알아차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말이 아닐 때에는 벌줌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그의 말을 끊는 게 상책이었다.

“싫어! 지금 네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거든?”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너 공부는 안 하고 독심술이라도 배운 거야?”
“그럼 혹시?”

내가 그렇게 묻자 정수는 실실 입가의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나는 그의 웃음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적중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내 예감은 적중했고, 기어코 나는 듣고 싶지 않던 말을 듣게 되었다.

“우리 함께 전국 물 로켓 발명대회에 나가자!”
“싫은데. 왜 내가 너하고 그런 데 나가야 하는 건데?”
“친구고. 난 그런 대회에서 우승할 자신이 있으니까. 게다가 나 그 얘기 인터넷에서 일주일 전에 알아가지고 획기적인 물 로켓을 만들 거거든? 그러니까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여기서 우승하잖아? 그럼 너 대학 갈 때 엄청 유리할 건데 그래도 안 나갈 거야?”

내게 대학이라는 엄청난 고지를 넘어야한다는 사실을 일러주는 그의 협박 아닌 협박에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응. 그래도 안 나갈 거야. 애초에 나하고 상관없는 분야잖아. 그냥 관심사 있는 애들하고 나가. 왜 있잖아. 반장 같은 애 말야.”
“하지만 난 걔랑 하나도 안 친한데? 그냥 네가 같이 나가주면 안 될까?”

나는 재차 묻는 정수에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자 정수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자리로 돌아가 책상에 엎드렸다. 그런 정수를 보자 솔직히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냥 같이 나가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내가 거긴 나가긴 왜 나가?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나가면 예선에서 탈락할 게 번한 데 말이다. 그래도 역시나 미안해서 점심을 먹으러 교실 문을 열기 직전에 정수의 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정수는 내게 거절당하고 자리로 돌아가서 책상에 엎드린 그 자세 그대로였다. 뭐, 저 녀석은 매사에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녀석이니 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내가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왔을 때 지구과학 선생님이 교실에 와계셨다. 선생님은 나를 보고는 손짓으로 가까이 와보라고 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의아했다. 지구과학과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내게 선생님과 대화를 할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공부는 못하지만, 적어도 모범적인 학생이었던지라 나는 선생님의 부름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에게 오늘 4교시 때의 전국 물로켓 발명대회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거기에 나와 정수와 내가 나가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내가 평소에 과학에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면서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다. 선생님은 내 되물음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그게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께 절대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정말이지, 자기 멋대로 일을 벌인다니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정수를 찾았다. 하지만 그 녀석은 교실에 없었다. 이미 자리를 뜬 것이 분명했다. 이 자식 잡히기만 해봐!
그렇게 속으로 정수에게 한 바탕 욕을 해주고 싶을 때 그 녀석이 나타났다. 이 상황을 만든 그 녀석이. 그 녀석은 나와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나는 그런 정수의 목에 팔을 감고 목을 조르면서 말했다.
“야 이정수 네 마음대로 내 이름을 가져다 쓰냐?”
“내가 언제? 너도 동의했었잖아. 선생님 얘가 거짓말 하는 거예요.”

정수는 내게 목을 팔에 조이면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우리 둘을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선생님의 그런 표정을 보고는 곧바로 정수의 목에 감아서 조으던 팔을 풀었다. 선생님은 내가 팔을 풀자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그래서 지금 누구 말이 맞는 거니? 정수는 거짓말이라고 하고 넌 맞다하고 말야.”
“당연히 제 말이 맞죠. 이 녀석이 얼마나 교활한지 얼굴은 착하게 생겼어도 뒤에서는 온갖 음모를 꾸민다고요.”

내가 선생님의 물음에 먼저 답했고 그 뒤로 정수가 내 말을 반박했다.

“이 녀석 수업시간에 수업 잘 안 들어요. 그런 애가 맞는 말 하겠어요?”
“뭐? 수업 안 듣는다고 나쁜 애는 아니잖아!”
“공부 안 하는 애들은 다 그렇던데?”
“뭐?!”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말을 받아치고 다시 맞받아치며 설전을 계속했다. 그런 우리 모습을 바라보던 과학 선생님의 얼굴이 찡그리며 눈을 감더니 잠시 후, 우리의 설전에 불쑥 끼어들어 나와 정수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구나. 그냥 너희 둘 다 참가하는 거지. 정수는 태영이 너랑 같이 나가고 싶어 하는데, 네가 좀 양보해줬으면 한단다. 하지만 네게도 그냥 부탁하는 게 아냐 같이 참가한다면 나중에 생활기록부 적을 때 너만 특별히 좋게 적어줄 게. 우리학교 과학영재를 위해서 말이야.”
“그거 편애 아니에요?”
“편애도 학교 위상을 높이는 거라면 교장선생님도 눈감아주실지 누가 알아?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사줄 게 비싸고 맛있는 걸로.”

나는 그 말에 눈이 돌아가 버렸다. 생활기록부 좋게 적어준다는 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비싼 아이스크림이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 나는 정수와 같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내가 졸업할 때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때 선생님께서는 참가하는 학생들 모두에게 비싼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고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듣고는 속았다는 기분이 들면서 선생님께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그일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특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야자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도 선생님 때문이었으니 화는 금방 가라앉았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나와 정수는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나는 일주일에 야자를 세 번씩 빠지면서 피시방이나 정수의 집에서 물로켓을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찾아 알거나 재료를 사서 몇 번 만들어서 쏘아보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정말로 물로켓을 만드는 걸 하기 싫어서 그냥 이름만 빌려주는 거니까 혼자서 해라고 정수에게 말했다가, 그 녀석이 하는 것을 계속 보고 있자니 몸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옆에서 보고 있다가 정수가 도와달라는 말에 몇 번 도와주다가 나도 모르게 같이 물로켓을 만드는 일을 계속 돕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와의 작업이 재미있고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런 일들을 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몇이나 있었을까 꼽아보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 말 다한 것이었다. 정수도 그런 나에게 하기 싫다고 했으면서 라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런 그에게 시끄럽다며 그냥 작업이나 계속하자면서 그의 말을 도중에서 잘라버렸다. 그러자 정수는 조금 기가 죽은 표정을 짓다가 하던 작업을 계속했다.
그렇게 시행착오와 우열곡절 끝에 우리는 대회에서 당일 회장에서 만들어서 발사할 물로켓의 시험모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별이 없는 밤하늘 아래를 같이 거닐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밤이 올 줄이야. 난 고등학교 와서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니까.”
“그래? 그럼 나한테 고마워해야겠다. 내가 이거 같이 하자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밤은 오지 않았을 거잖아.”
“왜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데? 그리고 이번만 같이 하는 거야. 선생님한테 얻는 것도 있고 해서 얻은 것 값만큼은 해야 하니까. 그래서 하는 거니까 꿈 깨.”
“치-잇.”

입을 삐죽 내밀면서 얼굴을 찡그리고는 정수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정수를 바라보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고, 정수도 그런 나를 따라 웃었다.

“이제 일주일만 있으면 대회네. 아직 대회가 남았으니 도와주는데 앞으론 나한테 부탁 같은 거 하지 마.”
“왜 그러는데?”
“네가 부탁하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해야 하잖아. 난 그런 거 싫거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가 정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정수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보고는 한 숨을 한 번 내쉬고 고개를 들어 정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또 뭐 보냐?”

그러자 정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별 찾아. 기분이 좋아서 별이 보일 것 같거든.”
“그 몇 십 개나 되는 별 말야?”

내가 그 말을 듣고 되묻자 정수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끄덕임을 보고는 그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떡하랴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이었는걸. 나도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는 아무것도 없는 검은 캔버스 같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무엇인가 반짝 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리고 정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야, 그럼 이제 배웅은 여기까지 했으면 됐어. 별 잘 보고 주말 푹 쉬라고. 그럼 학교에서 보자.”

그 말에 정수도 시선을 밤하늘에서 내게로 옮기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래도 저 앞까지는…”
“아냐. 그냥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갈 테니까 넌 밤하늘 구경이나 더 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수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돌아서서 걸어갔다.



  월요일이 되고 힘겨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런 아침을 이겨내며 하품을 찍찍해대면서 교실로 들어섰다. 교실로 들어서자 몇 몇 친구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었고 같이 매점에 가자고 했지만,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그 제안을 거절하고 가방을 책상 옆에 걸고 책상에 엎드렸다. 그렇게 책상에 엎드리고 몇 십 분이 지났을까 잠에 빠져있던 내 귀로 아침 자습시간을 끝내는 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눈을 비비며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주위의 자리는 모두 꽉 차 있었다. 교실 문이 열리면서 담임선생님이 들어왔다. 담임선생님은 교탁 앞에 서고는 우리가 모두 제자리에 앉기를 기다리며 교실을 둘러보았다.

“정수는 아직 안 온 건가?”
“네! 아직 안 왔어요.”

담임선생님의 물음과 그 물음에 답한 녀석의 말에 나는 정신이 확 들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녀석이 학교를 나오지 않다니. 나는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정수가 앉는 자리를 확인했다. 정말이었다. 정수는 오늘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애였는데 이상했다. 게다가 토요일이었던 어저께는 학교에 나오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담임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혹시 토요일에 정수한테서 무슨 얘기 들은 적 없니?”

나는 선생님의 그런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토요일 저녁에 본 게 마지막이에요.”
“그래... 알겠다. 혹시 정수한테 무슨 연락이라도 있으면 바로 선생님한테 얘기하고. 이상 오늘 아침조례는 여기까지 모두 수업 잘 준비하고. 반장 인사!”

반장의 우렁찬 월요일 1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반전체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내 귀에는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대회까지 이제 5일 남았는데 학교를 나오지 않는 다는 게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정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 날 하루 동안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물론 오늘이 아니라고 해서 수업에 집중해서 듣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유독 그게 심한 날이었다. 점심을 먹을 때도, 저녁을 먹을 때도 온통 그 녀석이 왜 학교에 안 나왔냐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나는 학교가 끝나고 그 녀석의 집 앞까지 오게 되었다. 개인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그냥 돌아가자고 몇 번을 생각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정수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하지만 몇 번을 눌러도 집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옆집에서 문이 열리더니 남자가 나와서 초인종 좀 그만 누르라며 신경질을 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는 정수 집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정수의 부모님이 여행을 가서 정수 혼자 있는데, 어제는 정수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정수가 부모님이 여행을 가서 한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날 정수 집에 갔었던 거였다. 그런데 그 녀석은 그 날 저녁 대체 집에 안 들어가고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혼자서 별을 보러 간 건가? 하긴 그 녀석은 충분히 그럴만한 녀석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녀석이 학교를 빠질 정도의 그런 위인은 못 되었다. 누구보다도 학교에 충실한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니 누군가에게는 어디 간다고 말하고 갔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씻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녀석이 누구에게 말하고 갔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생각한 끝에 나는 몇 사람을 간추려낼 수 있었는데, 그 간추려낸 사람은 세 명이었다. 한 명은 나와도 친한 원준이라는 애였고, 또 한 명은 정수와 친한 형이었다(그 형은 나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서 얼굴은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정수가 잘 놀아주는 정수 아랫집 꼬마 애였다. 하지만 일단 무턱대고 어디 갔냐고 물을 순 없었다. 내일 돌아온다면 지금 물었다가는 나만 벌줌 해 질 게 분명했다. 그러니 내일도 정수가 학교 나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그 녀석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께서도 집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걱정을 했다. 나는 정수의 부모님께서 여행을 가셨다는 사실을 선생님께 전했다. 선생님은 그 얘길 듣고 더 걱정을 하시면서 내게 조금 더 정수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안 그래도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기 전에 오늘 그 간추린 사람들에게 물어보려던 참이어서 오늘 야자를 빠질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나는 야자를 빠지고 어제 간추린 세 사람을 찾아갔다. 처음 내가 찾아간 사람은 원준이었다. 원준이는 원래 야자를 빠지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따로 원준이를 불러서 같이 집에 가자고 말해야 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정수가 요 이틀 사이 학교에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얘기했다. 원준이가 정수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일요일 저녁이라고 했다. 그때 원준이는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정수가 가로등 아래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가가서 뭐하냐고 묻자 잠시 어디를 가는 중이었다고 했고, 그 후 원준은 정수에게 인사를 한 뒤 가던 발걸음을 마저 갔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정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가려는 순간 원준이 나를 불러 세웠다.

“지금 정수 찾아다니는 거지? 그 자식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야. 어쨌든 그 녀석 찾으면 꼭 뭐하는 지 물어보고 나한테 전해줘. 내가 단단히 정신 좀 박아 놔야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는 원준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면서 알겠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준이 녀석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담인지 농담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기야 원준이가 정수를 어떻게 하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와 헤어지고 다음 사람을 찾아갔다.
내가 찾아간 다음 사람은 정수와 친한 형이었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딱 한 번 그 형 집에 정수와 놀러간 적이 있어서 그 형 집이 어디인지는 잘 알고 있어서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 형 집에 도착해서 형에게 정수의 마지막을 본 날이 언제인지 묻자, 그 형도 정수를 본지 꽤 오래되었다고 내게 답했고, 왜 그러냐는 물음에 정수가 학교를 며칠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형은 별 걱정하지 말라며 나를 위로했다.
결국 나는 헛걸음을 한 꼴이 되었다. 이제 남은 곳은 정수의 아랫집에 사는 꼬마 애 뿐이었다.
내가 정수의 집이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또 다시 원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닫힌 정수의 집 현관문을 한 번 쳐다보고는 그의 집 아래층에 있는 꼬마 애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 애의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가다듬고서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을 누르고 꼬마 애의 엄마가 나올 때까지 나는 발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나는 왜에선지 항상 처음 가는 집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릴 때면 심장박동 수가 빨라졌다.
그러고 보니, 정수의 집에 처음 갔을 때도 그랬다. 정수와 함께 같이 갔었지만 현관문이 열리기까지 심장이 쿵쾅 뛰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정수의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놀랐다. 그 녀석 집 안에는 우주에 관련된 물건들이 많았고, 그 녀석 방은 흡사 우주 그 자체로 보였다. 그 녀석 방 천장에는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이 배열에 맞게 달려있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문 너머에서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 들려오면서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꼬마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보고는 놀랐다.

“누구세요?”

나는 그 물음에 윗집의 정수 친구라고 물으며 꼬마 애에게 물어볼 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 한 아이를 데려왔다. 그녀는 아이에게 나를 정수 친구라 소개했다. 나는 그런 소개를 받으며 허리를 조금 숙여 그 아이와 비슷한 눈높이를 맞추어 물었다.

“혹시 정수 형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해?”
“음… 어제, 어제 와가지고 우주에 간다 했어. 나도 형한테 같이 가면 안 되냐고 하니까. 다음에 라고 말했어. 친구가 우주로 초대를 하겠다고 그러던 걸.”
“우주? 친구?”
“응, 우주하고 친구.”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대체 정수 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친구가 우주로 초대를 했다고?

“그럼 어디로 간다는 말은 안 했고?”
“응, 안 했어. 그냥 우주로만 간 데.”
“그래, 고마워.”

나는 그렇게 꼬마 애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허리를 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엄마가 걱정스런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정수 학생은 왜 찾는 거니?”
“정수한테 급하게 해야 할 말이 있어서 말이죠. 그 녀석 휴대전화도 없어서 이렇게 고생중이에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 녀석이 그렇게만 말하고 그냥 잠시 어디 갔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된다. 그러면 내가 그 녀석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정수는 학교에서도 모범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까지 모범적이어서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중학교부터 사겨오고 있다는 게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녀석이 싫지는 않았다. 조금 귀찮을 뿐.
어찌되었든 이제부터가 큰일이었다. 더 이상 정수의 행방을 물어볼 사람들이 없었다. 행방을 물어본 사람들에게서 얻은 정보는 고작 별을 보고 있었다는 거와 친구의 초대로 우주에 간다는 것뿐. 그 외에 어디로 갔다는 정보 같은 건 하나도 얻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주 한산하고 조용했고 주위에는 주택가라서 그런지 밥을 지으려는 불빛이 하나 둘 켜졌다. 이윽고 점점 거리가 어두워지자 가로등에 차례로 불이 들어왔다. 나는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없는 밋밋한 남색의 하늘. 아래의 빛에 의해 조금은 밝은 하늘. 그런 하늘에 별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밤하늘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그냥 그 녀석처럼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가만히 별이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정말로 별이 보일 것 같았다. 하나 둘 밤하늘에서 사라진 별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렇게 한다고 별일리가  없을 텐데. 나는 고개를 내려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때, 밤하늘에서 빛이 하나 번쩍하며 밤하늘에 나타났다. 그 빛은 내 머리 위에서 환하게 빛났다. 나는 내 머리 위가 너무 밝은 것 같아서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그만, 나는 놀라운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하늘에, 하늘에 정말로 별이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빼도 박도 못할 별이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살면서 본 별들 중에 가장 밝은 별이었다. 그 별은 하나가 아니라 5개였다. 4개의 별이 사각형을 만들고 그 중심에 남은 하나가 빛나는 형태로 내 머리 위에서 빛났다.
입을 떡 벌리고는 나는 별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런 형태로 하고 별이 있는 게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그 별들은 회전까지 했다. 세상에 회전까지 하는 별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내 눈 앞에서 벌어졌다. 그런데 그 별이 움직이더니 내가 있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놀라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이내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 순간 내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망 안 쳐도 돼. 이 건 별이 아니니까. 그리고 별은 빛을 받아 반사해서 빛 나는 거라서 떨어져도 녹아 죽지는 않아.”

순간 달리려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뒤를 돌아보자 사방이 온통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빛 속에서 한 인영이 천천히 내게로 걸어왔다. 나는 그 인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인영은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면서 낯익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정말 오랜만이다. 한 오만 광년이라도 되었나?”

낯익은 목소리는 분명 내가 찾고 있던 정수의 목소리였다. 나는 내가 환청과 환영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볼을 꼬집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보았다. 그러자 통증이 느껴졌다. 꿈은 아닌 것이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지금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런지.
그때, 인영이 점점 빛 속에서 걸어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인영은 정수였다. 정수를 본 나는 두 눈을 크게만 뜨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수는 그런 나를 보며 키득거리며 웃었다.

“왜 그런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뭐 못 볼 것도 봤다는 듯이 말야.”

지금 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네가 못 볼 것이잖아!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런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일단 꾹 참기로 하고 나중에 확실히 퍼붓기로 다짐 했다. 뭐, 내가 그 말을 했다고 해도 녀석은 능청스럽게 ‘아, 내가 못 볼 거였구나.’ 라고 말하며 넘기겠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너, 너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던 거야?”

내가 그렇게 묻자 정수는 다짜고짜 내 팔을 붙잡고는 빛 속으로 돌아 뛰어들었다. 처음 순간은 눈이 부셨지만 눈부심은 점점 자자들자 앞을 볼 수 있었다. 앞을 볼 수 있게 되고 처음 본 것은 정말 놀라운 것들이었다. 주위가 온통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나는 입을 떡벌린 채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정수가 그런 내게 말했다.

“어때 굉장하지? 여기 내 친구 우주선이다?”
“우주선?”
“그래, 우주선 말야.”

그러고 보니, 우주선 같아 보이기도 하다. 처음 보는 기계들과 천장에는 밤하늘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창, 큰 화면과 조종석 같아 보이는 테이블의 많은 버튼들까지. 정말 우주선 같았다. 혹시 이 녀석이 말하는 친구가 설마 외계인은 아니겠지? 나는 그런 생각으로 정수를 돌아보았다.

“혹시 네 친구가 외계인이 아니냐는 질문을 할 것 같은데, 맞아.”
“외계인이 친구라고? 어, 어떻게?”
“그때 별 봤다고 했잖아? 사실 그때 본 거 별은 맞는데 이 우주선이었고, 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별을 봤는데, 엄청 멋있더라고. 온갖 형형색색의 빛깔을 지닌 별들이 우주에 널리 퍼져 있었거든. 그래서 내 손으로 로켓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너한테 물 로켓 발명대회에 나가자고 한 거야. 그리고 그때 내 친구한테 다음에 또 우주에 데려가 달라고 말했는데, 글쎄 너하고 헤어진 그 날 밤에 찾아온 거 있지.”
“그럼 원준이 하고 만났던 때가 나하고 헤어진 바로 직후였어?”
“음... 아마 그럴 걸? 원준이 만났을 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거든. 그때 내 친구가 신호를 보냈으니까.”
“신호? 그게 뭔데.”
“음 나도 잘 모르지만 그냥 별처럼 반짝여. 처음 우주에 가고 날 집에 데려다 줬을 때 그 친구가 내 눈에 아주 희미한 빛까지 볼 수 있는 렌즈를 선물했거든. 그거 엄청 편하더라고. 그래서 매일 학교하고 집에서 끼고 있었지.”

정수가 실 양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그러고는 내게 증거라는 듯 왼쪽 눈을 크게 뜨며 내게 들이댔다.

“자, 봐봐. 눈 색깔이 조금 틀리잖아. 약간 에메랄드빛이 도는 것 같지 않아?”

정수가 내게 눈을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알겠다면서 정수의 상체를 뒤로 물려서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에 희미하지만 분명 에메랄드빛이 눈동자 위에 띠고 있었다. 갈색과 섞여서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제 돌아 안 갈 거야?”
“돌아가다니? 어딜?”
“어디긴 집이지. 너 대회 안 나갈 거야? 애써 물로켓 만들었는데 그냥 썩힐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에 힘을 줬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이 우주선 엄청 빨라서 만 광년 떨어진 곳에 갔다가 와도 3,4일 정도 걸려.”
“그럼 학교는?”
“학교? 학교는 내 친구가 기억을 조작해서 우주에 나와 있는 동안에는 내가 학교에 나왔거나, 처음부터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걸로 처리해주고 지구로 돌아왔을 때 원래대로 해준다고 하더라. 그러니 걱정 없어.”

어이가 없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기억조작이라니 외계인이 무슨 신이라도 되나?
그때, 쿵 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동시에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무슨 일인가 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정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아주 태연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왜 바라보냐고 물었다.

“야, 그렇게 안 놀라도 돼. 우주선이잖아. 우주선이니까. 지금 우주선에 시동이 켜진 거야. 친구가 네게 우주를 보여주고 싶어 하나봐. 내가 그렇게 너하고 같이 우주에 가고 싶다고 말해도 안 들어주더니, 변덕도 심해.”

그러면서 정수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우주라니! 우주, 거기는 산소라고는 없는 곳이지 않은가. 내 머리가 급속도로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 하지만 이건 우주선이니까 상관없지 않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정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굴을 구기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배를 잡고 배꼽이 빠지라 웃고 있었다.

“뭐가 웃겨!”
“웃기잖아. 얼굴이 하얘져가지고 말야. 어쨌든 이쪽으로 와봐. 아주 좋은 거 보여줄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정수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올 때도 그랬듯이 내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정수에게 팔을 놓으라고 말해보았지만 역시 녀석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신나게 자기가 할 말만 떠들 댔는데, 정수는 그런 내게 우주선 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조용히 하고 이거나 봐라 말했다. 나는 잠자코 정수가 시키는 대로 창문 너머를 보았다. 순간 눈이 커졌다. 내가 처음 본 이 우주선보다도 더 놀라운 세상이었다.
이게, 우주라는 거야?
나는 우주 이곳저곳을 눈을 돌리며 보았다. 달이 보였고 달 뒤로 빛이 세어져 나왔다. 태양의 빛이었다. 이 은하를 비추는 단 하나의 발광체이자 항성. 그리고 그 아래로 푸르른 지구가 보였다. 한없이 원색에 가까운 파란 바다와 대륙들이 평면으로 보였다.

“굉장하지?”
“응, 굉장해.”

정말로 굉장했다. 아마도 나는 정수가 아니었다면 이 광경을 평생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말야. 조금 더 우주를 보고 싶거든. 그러니 이해해 주라. 응?”
“뭐, 우주를 더 보는 것도 나쁘진 않긴 하겠지만 대회는 어떻게 할 건데?”
  
정수는 그 말에 잠시 뜸을 들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입을 땠다.

“그럼 그때까지만 가면 되잖아. 이 광활한 우주를 조금 더 보면 천문학을 공부할 때 도움이 될지 누가 알겠어? 안 그래? 그리고 지구에서 발사하는 인공위성이나 로켓도 이 우주에서 보면 멋있고 말이야.”

정수는 창문 너머를 계속 바라보며 말했다. 창문 너머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지구에서 뭔가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어 빠른 속도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불을 내뿜으면서 하얀 연기를 뱉어내며. 어느 순간 로켓은 궤도에 도달하자 머리가 열리면서 안에서 위성이 나와 날개를 천천히 활짝 펼치고 다시 불을 내뿜어 조금 더 위로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마치 환상을 본 것처럼. 저 로켓에는 위성이 있었지만, 내가 본 환상에는 나와 몇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로켓이 발사되고 안정 궤도에 들었을 때, 나는 교신을 하고 있고 수신자는 내 옆에 있는 녀석이었다.
나와 정수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정수는 고갯짓으로 다시 창문 밖을 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다시 창문을 보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지구와 달이 아닌 목성이었고, 점차 목성에서 토성에서 천왕성으로 풍경이 바뀌었고, 그 근처로 좀 전에 보았던 인공위성이 보였다.

“저 인공위성은 지구 위성 궤도를 돌다가 과학과 항공기술이 발달하게 되자 수리하고 개조해서 먼 우주까지 나갈 수 있게 된 녀석인데 나중에 내가 저거 만들어.”

정수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이야? 그럼 지금 보는 게 미래란 말야?”
“음. 미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글쎄?”

그렇게 말하며 정수가 어깨를 올렸다 내리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웃음을 지었다.

“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소리야. 하지만 이건 비밀.”

정수는 그러면서 오른손 검지를 펴 자기 입술에 가져다 댔고, 어느 샌가 정수의 옆에 하얀 인영과 검은 눈을 가진 형체가 서 있었는데, 둘이 갑자기 웃으면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주위의 모든 것들이 일그러졌고 그들에게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그곳에서 홀로 멈춰서 빨려 들어가는 공간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이내 빛이 번쩍하며 내 시야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밤중이었다. 주위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정수가 우주선을 타고 내려온 밤하늘 그대로였다. 나는 휴대전화를 열어 날짜와 시간을 보았다. 시간은 9시 날짜는 그대로였다. 꿈을 꾼 것 같았다. 정말로 정수가 찾아왔었나 싶었다. 하지만 지금 시각이 9시라는 것을 볼 때, 분명 나는 여기에 없었을 거였다. 그렇다면 사실이었을 것인데, 지금의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장자의 호접몽이라는 것일까. 뭐, 내 경우에는 그거와는 좀 다르겠지만.
나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시의 빛에 가려져 별 하나 없는 밤이었지만, 잘 찾아보면 별 한 두 개 쯤은 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금성은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볼 수 있었는데, 설마 그것도 우주선은 아니겠지?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라면 나도 정수처럼 우주에나 데려가 달라고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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