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상처는 깊고 선명한데 잊어지지는 않고

바다 바람을 맞으며 그는 엉엉 울었다. 바람에 날리는 어느 젊은이를 구성하던 재를 뿌리며, 그리고 그 재가 날리는 모습을 보며 울었다. 혹시 돌이킬 수 있을까? 그가 했던 말처럼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는 그 무슨 일이든 할 것이었다.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일은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는 법. 절대로, 그것은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좀비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그들은 그저 좀비일 뿐이겠지. 끔직한 일이지만.
재를 바다에 모두 뿌린 그는 발걸음을 옮겨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그가 떠나기 직전에 했던 말을 되새겼다.

“왜 돌아온 거야! 도망쳐 라고 했잖아. 너는 모든 것을 놓고, 모든 것을 놓아두고, 너는 그저 나를 떠나면 되는 거야. 날 떠나면 되는 거야. 너 혼자 이 일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넌 왜 날 떠나려고 하지 않는 거야.”

하지만 곧 그는 목에서 침을 모아 바닥에 뱉어버렸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바보 같은 놈. 그걸 몰라서 그러는 거야? 당, 당연한 거잖아. 이 바보 자식아…”

그는 그와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혼자 장을 봐서 오래된 연립주택으로 돌아오던 그는 딱 연립주택 앞에 도착했을 무렵 배에 칼로 찔려 큰 상처를 입은 듯 보이는 40대의 허름한 옷차림에 말라서 그런지도 모르는 날카로운 턱을 한 남자와 마주쳤는데, 그가 바로 그였다.
옛 기억을 회상하며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 올라탄 그는 계속 그때를 더듬었다.
그는 그를 보자 상처 입은 배를 왼손으로 누르며 정신을 잃었고, 그런 그를 그가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그는 그를 신고해야 할까 했지만, 얼굴을 보니, 그렇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신고를 하지 않고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만일 깨어나지 않는다면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는 자동적으로 경찰에 들키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부디 정신이 들지 않아 구급차를 부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히 그는 정신을 차렸고 그를 발견하고 놀라 외쳤다.

“당신 누구야! 대체 나를 어디로 데려 온 거…헉.”

그러나 그의 상처는 낫지 않아 외치는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는 힘들어 하는 그를 눕히며 말했다.

“저는 이 집 주인인데요. 제가 장보고 돌아오는 길에 당신과 마주쳤는데, 그때 쓰러지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제 집으로 당신을 데려왔어요. 그리고 제 이름은 민원이라고 해요. 박민원이요.”

그러자 누워 쓰러진 그는 민원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퉁명스럽게 말했다.

‘범죄자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집에 들이다니, 정말 대책 없는 녀석이군.’

그 소리를 들은 민원이 눈을 크게 뜨고 그를 향해 말했다.

‘당신이 어째서 범죄자예요? 당신 얼굴을 보면 당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네요. 그런데 당신 이름이 뭐예요? 계속 이름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저보다 연상인 것 같은데,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형? 이 자식이 누구보고 형이라는 거야? 그리고 난 너한테 가르쳐 줄 이름 같은 건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이불을 덮어써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버스는 시내에 접어들었고, 정신이 들자 그와 그가 살았던 오래된 연립주택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민원은 벌떡 일어나서 버스에서 내려 연립주택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연립주택은 낡고 오래된 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립주택의 벽에 공고문 하나가 붙어져 있었다. 민원이 뭔가 하고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철거할 것이라는 구청 산하의 공고문이었다. 그는 공고문을 한번 보고 다시 연립주택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이곳도 없어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자 씁쓸해졌다. 그는 다시 그때를 떠올렸다. 그와 동거를 계속하는 동안 묵언시위를 하던 그와 그런 그에게 말을 붙이려던 자신을.

‘계속 그렇게 있을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주는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니까. 앞으로 계속 그러면 저도 이제 밥 안 줄 거예요.’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말을 안 하자, 민원은 정말로 그에게 밥을 주지 않았고, 계속 밥을 주지 않는 그가 이상해 스스로가 행하던 묵언시위를 깨버리고는 민원에게 말했다.

‘너 왜 나한테 밥 안 주는 거야?’
‘제가 왜 당신한테 밥을 줘야 하는 건데요? 뭐, 이전에는 밥을 줬지만 이제는 밥을 안 줄 거예요. 저는 당신한테 주면서 당신은 저한테 아무것도 안 주잖아요?’
‘그럼 내가 너한테 뭘 해줘야 하는 건데?’
‘말동무.’
‘말동무?’

민원에게 되묻는 그의 말에 민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민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계속 의아해 했다. 민원은 그가 계속 의아해 하자 좀 더 덧붙였다.

‘이름을 알려주고 계속 말동무를 해주세요. 전 외롭거든요. 그리고 당신도 계속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서 말이죠.’

그 말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정말로 밥 주는 거지?’
‘네, 정말로요.’

그렇게 옛 생각을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자, 자신은 연립주택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전에 살 때는 이렇게까지 심하지는 않았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전에 살았던 집 문 앞에 서자 왠지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저 옛 집에 방문한 것뿐이었는데.
그는 침을 꿀꺽 하고 목구멍 너머로 넘기며 손잡이를 잡았다. 아마도 문은 잠겨 있으리라.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그 예상은 빗나갔고, 문은 예상외로 쉽게 열렸다. 그는 조심스레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자신들이 집을 비웠을 때 그대로였다. 그때는 그가 민원에게 이름을 알려주고 마음을 많이 열었을 때였다. 그리고 둘은 커피숍을 열었고, 거기서 번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했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그때 구한 아파트였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기뻤던지. 말로 그 기분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사하는 날 그가 기뻐하던 날이 떠올랐다. 자신이 연립주택 집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이봐, 정말로 우리가 아파트를 구했다고. 아파트를!’

그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천천히 창문으로 가 밖을 쳐다보며 홀로 중얼거렸다.

“왜 이곳은 변함이 없는 건지…”

그리고 민원의 눈에서 눈물이 났다. 그의 부재가, 민원의 마음에 구멍을 만들어 그를 울게 했다. 그런데 그 때 전봇대 뒤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보고 있는 수상한 사람이 보였다. 민원은 눈물을 닦고 그곳을 바라보았는데, 그 수상한 사람은 민원이 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급히 몸을 자동차 뒤로 숨겼다. 대체 누구기에 이쪽을 보고 있는 걸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수상한 사람이 몸을 숨긴 자동차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민원은 그가 누구인지는 대충 어림짐작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가 살아있었던 어느 날. 커피숍의 카운터에 있던 민원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초조해하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말한 말이 배에 상처를 입고 민원의 집 앞에 쓰러진 것에 대한 이유를.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건데, 너라서 말해. 사실 그때 난 뭔가를 운반하고 있었어. 마약 같은 거라 생각할지도 몰라서 그러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하지만 아주 중요한 거였어. 그러나 그걸 노리는 녀석들이 나타났고. 나하고 있던 친구 녀석이 그걸 뺏으려는 녀석과 싸웠지. 녀석은 나보고 그걸 가지고 도망쳐 라고 했어. 자기도 뒤따라가겠다면서.
하지만 녀석은 끝내 뒤따라오지 못했고, 나는 녀석을 없앤 녀석들과 같은 일당과 마주하게 되었지. 그리고 나 역시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는데, 그만 복부에 녀석들의 칼에 찔리고 겨우 겨우 도망쳤지.’

  민원은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어쩌면 그 일 때문에 저 사람도 이 집을 어슬렁거리는 것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르더니,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이미 끝난 일인걸….”

그러면서 시간이 모르게 가도록 창가에서 오래된 기억속의 풍경을 지켜보았다.


해가 지고 저녁놀이 들 무렵이 되자, 민원은 몸을 창가에서 떨어뜨리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이제는 오지 않을 집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그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연립주택을 떠나 이제 살고 있는 아파트로 향했다.
그런데 아파트로 향하는 동안에 자꾸만 그를 미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민원은 혹시 연립주택에서 보았던 그 수상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발을 빨리해 아파트로 향했다.
연립주택에서 떠난 민원과 그는 연립주택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파트 3층에 집을 구했다. 운영하는 커피숍과 아파트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독이 된 것 같다고 민원은 생각했다. 그와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이 지금 민원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숨 가쁘게 아파트로 돌아온 민원은 엘리베이터에 재빨리 올라타고는 집이 위치한 3층 버튼을 누르고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달려온다고 뒤를 돌아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워낙 빠르기에 그 수상한 사람도 자신을 뒤따라오지 못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는 거실 의자에 몸을 걸쳤다. 그런데 전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크게 느껴졌다. 민원은 그것이 그가 없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랬다. 그리고 둘이서 살 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아파트는 꽤 넓은 편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이 없는 아파트는 민원에게는 그때보다 더 넓었다.
민원은 그가 없는 집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의 흔적을 기억했다.

‘정말 굉장하지? 그렇지? 여기가 내 방이고 저기가 네 방이야.’
‘그리고 여긴 그 연립주택에는 없었던 샤워실이고 따뜻한 물도 잘 나온다니까.’
‘이제는 열심히 일해서 가구들만 좋은 걸로 바꾸면 되겠어.’

샤워를 하며 그는 그의 말을 대내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초인종이 울리면서 인터폰의 화면에 누군가의 인영이 비쳤다. 민원은 인터폰에 비친 인영은 연립주택에서 봤던 그 수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를 보자 금세 얼굴이 찡그려졌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체 누구기에 자신의 주위에서 얼쩡대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그는 가운을 걸치고 현관문을 열어 재끼고는 오래전 배워둔 유도로 초인종을 누른 수상한 사람을 넘어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목과 몸을 눌렀다. 그러자 그 수상한 사람은 숨을 못 쉬겠는지 양팔로 콘크리트 바닥을 세게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원은 그를 쉽게 놓아줄 수 없었다. 대체 누구기에 자신의 주위를 얼쩡거리는 이유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높여 그에게 말했다.

“대체 누군데 내 주위에 얼쩡거리는 겁니까? 혹시 그 자식을 노리는 녀석입니까? 그렇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 녀석은 이제 없어요. 그러니까 그만 좋은 말 할 때 돌아가는 게 좋을 겁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뭡니까?!”
“이, 이것 좀 놓아, 주…주세요. 숨, 숨을 못 쉬잖아요!”

민원은 그 소리에 놀라 그의 몸에서 비켜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옷을 털고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 수상한 사람은 자신이 입고 있던 정장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두 손으로 공손히 민원에게 내밀었다. 민원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가 건네는 뭔가를 받아보았다. 그것은 명함이었다. 민원은 명함을 보고 수상한 사람을 보았다. 수상한 사람은 다시 옷매를 다듬고는 민원에게 말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분과 함께 일했던 정부기관 소속의 차운제 요원이라고 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분을 헤치려던 사람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자신을 차운제 요원이라 말한 수상한 사람의 말에 민원은 눈이 동그래졌고, 차운제는 자신의 오해가 풀렸다는 것이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한동안 얼굴에서 지우지 않았다.

“그럼 일단 안에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여기서 손님을 접대하는 건 아니잖아요. 커피숍을 운영하는 사장님께서 말이죠.”

그 말에 민원은 정신을 차리고 차운제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차운제는 집 안을 살짝 살피고는 탁자가 놓은 쇼파에 앉았고, 민원은 그런 그를 위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내와 차운제 앞 탁자에 놓았다.
차운제는 민원이 내온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사실 제가 찾아온 것은 그때, 그분. 그러니까 제 선배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 선배는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려고만 했죠. 그래서 선배한테 배당된 임무 역시 선배혼자 처리하려고 했지만, 그 선배와 친하던 선배가 이번 일은 위험하다며 극구 말류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당신이 선배를 발견한 날 당일에 선배의 친구인 선배의 시체만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의 시신만은 찾을 수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수색을 포기하고 그 선배를 사망처리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선배가 죽었다는 사실은 당신이 경찰에 신고한 그날이었습니다. 대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그렇게 묻는 차운제의 말에 민원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그때,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 날의 일들이. 민원은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그때 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일이 있기 전부터 그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습니다. 일을 할 때도 뭔가 불안해 보였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기억 속 저편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가 민원에게 말했다.

‘나 오늘 잠시 나갔다 와봐야겠어. 그러니까 오늘은 먼저 정리하고 들어가.’

그러고는 그는 옷을 챙겨 가게를 나갔다. 민원은 그의 말대로 가게를 닫을 시간이 되자, 그를 기다리지 않고 가게를 닫았다. 보통은 그와 함께 문을 열고 닫았는데 혼자서 문을 닫으려니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가게를 나가고 자정이 다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민원은 새벽 2시까지 그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가니 그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민원은 그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언제 들어왔어?’
‘네가 방에 들어가고 나서 바로.’

그러면서 민원은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얼굴 눈 밑에 다크서클 짙게 깔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민원은 놀랐다. 대체 그는 어젯밤동안 무엇을 하고 다녔을까. 하지만 쉽게 물어볼 수 없었다. 그때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민원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민원에게 말했다.

‘저, 미안하지만 묻고 싶어도 묻지 말아줘.’

그의 목소리는 피곤에 젖어 힘이 없었다. 민원은 그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어, 어 알았어…’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그가 민원에게 다시 일이 있다며 먼저 돌아가라고 말했다. 민원은 그런 그에게 이번에는 일찍 올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민원을 돌아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가게를 나가 밤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아침에는 초췌한 모습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서 아침 햇살을 맞았다.
그렇게 그의 그런 외박은 날이 갈수록 빈번해졌다. 민원은 그런 그가 걱정되었고, 어느 날 아침 민원이 일어났을 때, 그가 심하게 다쳐서 돌아왔다.
민원은 잠이 덜 깬 눈을 크게 뜨고 그의 곁으로 달려가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냐고!’

하지만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민원은 주먹을 꽉 쥐고 그에게 말했다.

‘정말이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야!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자주 가게 일찍 나가고 밤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잖아. 거기다 오늘은 다쳐서 돌아오기까지 했어. 너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어?!’

온 악을 받쳐서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꽤 오랫동안 정적이 흘러 그 정적은 뻐꾸기가 정각을 알리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날 저녁 민원은 더 이상 그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없다고 마음먹고는, 그가 일이 있다고 먼저 들어가라는 그때 자신도 그의 뒤를 밟기로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그가 다시 일이 있다며 가게를 비우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말에다 한 가지를 덧붙였다.

‘이번에는 마지막이니까 그만 걱정해도 돼.’

민원은 그런 그의 뒷모습이 어쩐지 마지막을 고하는 사람의 모습 같았다. 그가 나가자 민원은 곧바로 가게를 접고 그의 뒤를 밟았다.
그의 뒤를 밟아 따라간 곳은 이사하기 전의 연립주택이었다. 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지? 민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연립주택의 근처에 몸을 숨기고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천에 감싸져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러고는 그는 큰길이 있는 곳으로 가 택시를 잡아탔다.
민원도 그의 뒤를 따라 택시를 잡아타 기사에게 앞 택시를 따라가자고 말했다. 민원은 택시를 타고 그의 뒤를 쫓으며 잠시 창밖을 보았다. 밖은 어느 샌가 먹구름들로 가득해 있었다. 그러자 순간 그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고, 뭔가 안 좋을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민원은 그것이 순전히 어두운 날씨 때문에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 택시는 어느새 시 외곽 항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자신의 택시와 앞에 그가 먼저 타고 가고 있는 택시뿐이었다. 민원이 탄 택시는 멀리서 그가 탄 택시를 쫓고 있었다. 그렇게 택시가 항구 앞에서 멈춰 서자, 민원의 택시는 그에게 들키지 않을 곳을 찾아 정차해 그의 동향을 살폈다. 그러고는 그가 택시에서 내리자 민원도 그를 따라 내렸다.
그는 택시에서 내려 항구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민원은 그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 역시 뒤를 밟았다.
항구 창고는 수십 개의 컨테이너들과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 중 문에 3번이라고 크게 그려진 문 앞에서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민원은 재빨리 2번 건물 옆으로 돌아가 숨을 죽이고 숨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지? 한참 기다렸잖아. 약속대로 물건은 들고 왔겠지?’
‘그래, 하지만 그 약속은 지키는 거겠지?’
‘글쎄다,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지. 우리 애들이 워낙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말야.’

민원은 그 소리에 살짝 얼굴을 내밀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그와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체구 좋은 사내가 마주보고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지금 뭐라고 했지? 글쎄 라고? 지금 말 다 한 거야? 난 너희와 약속을 지켰어. 이제 너희가 나와 약속을 지킬 차례야!’

그가 목청껏 소리쳐 사내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내는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사내의 뒤에서 숨어있던 검은 정장의 건장한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내는 실실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어때? 그냥 순순히 넘기고 돌아가는 게 어때?’

하지만 그가 사내를 향해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이미 그렇게 말 할 줄 알았어. 내가 이 일을 맡을 때부터 너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서 말야. 넌 약속 안 지키기로는 아주 유명하다며? 그리고 난 이걸 넘겨줄 수가 없어. 너희 같은 범죄자들에게는 말야.’
‘그렇다면 할 수 없군.’
‘그래, 할 수 없지.’

둘은 그렇게 말하고는 누구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어 엉켜 주먹과 발이 오갔다. 민원은 그것을 보고 놀라 그를 돕기 위해 뛰쳐나가 그를 도왔다. 그렇게 검은 정장들과 싸우던 그들은 눕혀도 다시 일어나는 검은 정장들 때문에 중간으로 몰렸다. 민원과 그는 어느 순간 등을 맞대고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안 그가 고개를 뒤로 돌아보고는 놀랐다.

  ‘너, 대체 언제 날 따라온 거야?’
  ‘네가 나갔을 때부터.’

민원은 놀란 그를 향해 무덤덤하게 말하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때려눕혀도 다시 일어나는 검은 정장들을 노려보면서 말이다. 그런데 뒤에 있던 사내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그가 사내를 향해 물었다.

‘대체 뭐가 웃기지?’

사내는 그의 그런 물음이 하찮다는 듯 말했다.

‘하긴 넌 아무것도 모르겠지. 지금 너희가 싸우는 그것들이 인간처럼 보이나?’

그 말에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지면서 시선은 검은 정장들을 향했다. 민원은 눈동자를 굴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원은 그런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민원에게 말했다.

‘도망쳐. 최대한 멀리, 항구에서 벗어나야 돼.’

그의 그런 목소리에 민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에게 되물었다. 그는 민원의 되물음에 신경질 적으로 답했다.

‘잔말 말고 도망치라니까!’

그의 외침을 들은 사내가 다시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원이 고개를 사내 쪽으로 돌렸다. 사내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이제야 눈치 챈 건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는 사내를 보며 한 팔로 민원을 막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민원에게 말했다.

‘도망쳐. 어서, 넌 이 일에 끼어들면 안 돼. 먼저 돌아가면 나도 곧바로 뒤따라 갈 테니까. 그러니 부탁이야. 제발.’

민원은 간절하게 말하는 그의 말에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원은 그런 다음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간간히 그와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주 초조해 했고, 사내는 여유가 넘치는 듯 웃고 있었다.
그런데 민원이 항구를 막 벗어났을 때쯤, 항구에서 뭔가가 번쩍하고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민원은 그 순간 몸을 틀어 항구 쪽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가 아직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구를 나가던 발걸음을 급히 돌려 그에게로 내달렸다.
그리고 민원이 그가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검은 정장과 사내는 온데 간 데 없고, 이상한 검은 덩어리들이 그의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민원은 놀라 달려가 그를 안고는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대체 무슨 일인데?’

민원은 그러면서 그가 다친 데는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의 손에 뭔가가 쥐어진 것이 보였다. 민원은 그의 팔을 잡고는 들어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려 했다. 하지만 그가 있는 힘껏 팔을 민원의 손에서 빼내며 말했다.

‘왜 돌아온 거야! 도망쳐 라고 했잖아. 너는 모든 것을 놓고, 모든 것을 놓아두고, 너는 그저 나를 떠나면 되는 거야. 날 떠나면 되는 거야. 너 혼자 이 일을 감당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넌 왜 날 떠나려고 하지 않는 거야.’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어찌 혼자 도망칠 수가 있을까. 아무리 도망쳐라 해서 도망쳤다고 해도, 이렇게 다친 사람을 두고 어떻게 도망칠 수가 있단 말인가. 민원은 눈물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솟아 오른 빛기둥을 보고 경찰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친 그는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기력이 너무 쇠해 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차운제가 알고 싶은 민원과 그의 전말이었다.


민원은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삼켰다. 차운제는 그런 그를 위로를 하기라도 하는 듯 정장 안 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민원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선배가 그날 있기 전에 저희 사무실에 갑자기 찾아와서 주고 간 거였습니다. 어디 있다가 나타난냐고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그저 만일 자신이 이번일 때문에 자신에게 뭔가 잘못이라도 생긴다면, 이걸 누구에게 전해달라면서 주소와 함께 주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선배가 간 날, 비로서 선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하지만 의외였습니다. 선배가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있을 줄은 말이죠.”

그러고는 차운제는 민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이윽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쾅하고 문이 닫혔다. 민원은 차운제가 내려놓고 간 물건을 집어 들었다. 그가 내려놓고 간 것은 편지와 통장이었다.
민원은 통장집에서 통장을 꺼내보고,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커피숍에서 자신에게 온 몫을 전부 예금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본 민원은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누가 이런 거 원했어? 정말이지, 바보 같아.”

그러고는 민원은 통장을 찢어버려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고는 소파에 앉아 몸을 웅크렸다.

----------------------------------------------------------------
이 글은 그냥 다른 거 쓰다가, 잘 안써지길래 그냥 한글 띄워서 아무거나 적다보니 나온 소설입니다. 그리고 제목은 전에 쓰다가 말은 걸로 했습니다.
근데 쓰면서 약간 bl물 느낌이 나는 건 대체 뭐일까요?
댓글 1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477 단편 얼굴 알레프 2011.02.04 0
476 단편 머피스트1 알레프 2011.02.04 0
475 단편 상장 1/256 김형철 2011.02.07 0
474 단편 종의 기원9 앤윈 2011.02.10 0
473 단편 멸망할지도 김진영 2011.02.10 0
472 단편 [번역]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 마이크 레스닉1 이형진 2011.02.16 0
471 단편 두세 계 징이 2011.02.14 0
470 단편 J라는 사람이 방아쇠를 당겼다는 이야기. 장우석 2011.02.13 0
469 단편 마녀의 밤. 브리그리 2011.02.17 0
468 단편 오늘 밤의 여인들1 이니 군 2011.02.18 0
467 단편 한밤, 광대와의 술자리1 이니 군 2011.02.18 0
466 단편 기억의 숲에 머물다. 브리그리 2011.02.20 0
465 단편 산 자에게는 산 자의 일이 있다. DOSKHARAAS 2011.02.21 0
464 단편 식물의 집 장피엘 2011.02.26 0
463 단편 잠자리 인간 목이긴기린그림 2011.03.01 0
단편 상처는 깊고 선명한데 잊어지지는 않고1 김진영 2011.02.27 0
461 단편 J라는 사람이 활을 든 자와 싸웠다는 이야기1 장우석 2011.03.07 0
460 단편 온기 고래 2011.03.18 0
459 단편 일탈 sylvir 2011.03.15 0
458 단편 그림자 너머2 호워프 2011.03.1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