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타차라와 늙은 개

2020.04.18 23:3204.18

루, 당신도 물론 알고 있겠지만 이 세상의 순리는 우리같은 신들의 이해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처럼 강한 신은 강한 결정권을 가지고 나처럼 하급 신들이 그것을 따르며 순리는 흐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의 어머니 마고께서 만드신 규율과 규칙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여 우리는 그것을 가장 중요하게 따르는 거랍니다. 이 규칙들, 그러니까 순리를 인간들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읽어내기도 하고 종교라는 탑을 세워 이해하기도 해요. 인간이 그런 걸 알아 무엇하냐고요? 그건 그들이 이유를 쫓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지요.

 

한편 모든 존재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욕망에 시달린답니다. 이는 마고께서 만든 순리이기에 우리도 그원인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요. 인간들도 그렇구요. 다만 인간들은 우리와 달리 그 원인을 알기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 많은 노력을 통해 욕망의 원인을 들여다볼 몇가지의 돋보기를 찾았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유전자에요. 모든 생명은 유전자의 탈 것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인간들이 찾아낸 바에 의하면 생명이 하는 모든 행동들, 스스로도 왜 그런 것을 원하는 지 알 지 못하고 움직이는 모든 동작들의 원인이 바로 유전자라는 것 때문이래요. 예를 들어보죠. 벌이 자신의 아이를 낳지 않고 여왕의 알만 돌보는 까닭은 그들 안의 유전자가 시키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으면 유전자의 절반만 공유되지만, 자신의 자매인 여왕벌의 알은 4분의 3이나 공유되니까요.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인 것이죠. 생명에는 한계가 있기에 생명체의 유전자는 다음 생명체를 원합니다. 그들의 세대를 하나 하나 거쳐 영원히 살기 위해서 말이에요. 그래서 인간들은 말해요. 잔인한 얘기지만 생명들에겐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에요. 그저 유전자가 시키는대로 살아갈 뿐이라고, 말그대로 유전자의 탈 것일 뿐이라고요.

 

정말 그러하냐고요? 오, 그 답을 저는 감히 드릴 수 없어요. 마고께서 만드신 순리를 제가 어찌 해석 하겠어요. 말씀 드렸듯이 저와 같은 하급신들은 순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신들이 만든 규칙을 따르며 순리를 지켜야 한답니다.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제가 당신을 돌보는 동안은 그대가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거든요. 좋아요. 대신 당신을 위해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이게 당신이 원하는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루, 이야기들의 신인 당신이 부디 이 이것을 마음에 들어 하길 바라며. 개의 신 타차라, 이야기를 올립니다.

 

 

*

 

 

어느 날 저는 늙어 죽은 개를 만났습니다. 그 개는 죽은 지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지요. 저는 개를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늙은 개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떠나는 것이 너무나 슬프다며 말이죠. 저는 그 ‘가족들’이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인간과 개의 수명은 다르죠. 대부분 개들이 인간보다 일찍 죽고, 순리에 따라 늙은 개는 지금 떠나야만 했습니다. 저는 개를 설득했고, 결국 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저를 따라왔습니다.

 

저승으로 가는 길은 그 개의 산책로와 거의 같았습니다. 모든 생명에게는 그 생명이 가진 영혼, 그러니까 에너지가 원래 가야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이 멈추는 종착지는 모두 다릅니다. 자신이 머물던 곳 근처에서 자신의 죽음이 끝날 수 도 있고, 우주 반대편까지 가야만 끝나는 영혼도 있죠.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걷는 길이 산책로와 비슷했다는 점은 그 늙은 개에겐 어쩌면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개가 평소 걷던 산책로는 네모난 주택들을 지나 작은 공원을 가로지르고 두 갈림길에서 왼쪽 꺾으면 끝이 나는 조금 짧은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를 오른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죠. 하얀 수련이 고요히 떠있는 아름다운 연못이습니다.

 

“자, 네 저승의 문은 이곳이구나. 저 연못 사이로 빛나는 틈이 보이지? 저기로 들어가면 너의 혼은 본질로 돌아갈 거란다.”

 

제 말에 개는 여전히 슬픈 얼굴로 자신이 떠나온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제 사랑하는 개들이 그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저는 마음이 미어진답니다. 하지만 일은 일이니 저는 그 개를 본질로 인도해야만 했죠. 제가 재촉하자 개는 작은 목소리로 제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떠나야 하나요? 저곳으로 들어가면 저는 어떻게 되죠? 다시는 지나를 볼 수 없게 되나요?”

 

“지나라면 네가 살던 집의 아이를 말하는 거니?”

 

“네. 저는 그 애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어요. 언제나 그 애를 돌봤죠. 저는 지나를 두고 갈 수가 없어요.”

 

“걱정하지 마렴. 시간은 늘 그랬던 것처럼 흐르고, 그 아이는 자라 다른 이를 돌볼 거란다. 너처럼 말이지. 그리고 너는...”

 

저는 다정히 늙은 개의 이마를 쓸어 주었습니다. 개가 안도할 수 있도록요.

 

“너는 본질로 돌아갈 거란다. 모든 혼들의 고향으로. 하나의 거대한 에너지가 되고 비로소 자유를 얻는 거지.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네가 살아온 만큼의 네가 되는 거야. 넌 착하게 살았으니 분명 행복할 거란다.”

 

“그게 뭐에요? 신이여. 제발요. 나는 저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아요. 나는 내가 되는 것이 싫어요. 나는 내 가족의 가족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제 행복이니까요.”

 

늙은 개의 슬픈 눈을 보니 저는 마음이 타는 듯이 아팠습니다. 그 개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쥐어주고 싶었죠. 그래서 개에게 빠른 기일 안에 원하는 동물로 환생을 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개가 원하는 동물이라면 무엇이라도 괜찮다고 덧붙였죠. 그제서야 그 개의 눈빛에 안심이 깃들었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자, 사자로 태어나게 해주마. 강한 동물이잖아. 그들도 가족을 이뤄 살아가니 외롭지 않을 거야.”

 

“싫어요. 저는 그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저의 제안을 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저는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럼 매로 태어나면 어떠니? 높은 하늘을 마음껏 날다보면 네 마음도 나아질 거야.”

 

그러나 이번에도 개는 거절했습니다. 제 예상대로였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저는 개가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부터요. 하지만 그것만은 이뤄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가 거절하기 힘든 존재로 태어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죠.

 

“인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주마. 지나의 부모님은 곧 아기를 갖게 될 거야. 거기에 할당된 혼이 아직 없으니 그 아기로 태어나게 해줄게.”

 

개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그래. 이거면 될 거야. 이거라면 절대로 거절 할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죠. 이 조건이라면 그 늙은 개는 다시 지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신이여.”

 

늙은 개가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은 알고 계시잖아요. 저는 세상의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지나의 동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겠죠. 하지만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에요. 저는...”

 

“안 돼.”

 

저는 개의 말을 막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개가 하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어요. 이 제안까지 거절한 이상 그가 할 말은 단 하나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개는 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타차라여. 저는 개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앞으로 지나가 다시 기르게 될 개가 있다면 그 개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래서 그 애와 다시 만나고 싶어요. 개는 인간보다 빨리 자라잖아요? 저는 그 애보다 빨리 어른이 될 거에요. 그렇게 되면 돌봐지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애를 돌보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예전 처럼요.”

 

끝이었습니다. 그 개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입 밖으로 뱉었습니다. 저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는 개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이 설명이 쓸모가 없을 것을 알았지만 저는 그렇게라도 해야 했어요. 혹시라도 그 늙은 개가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힘없는 기대를 걸고서요.

 

“모든 소원에는 함정이 있단다. 구체적인 소원일수록 그렇지. 네가 빈 소원이 네가 상상하는 것을 반드시 이뤄주는 것은 아니란다.”

 

제 권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늙은 개를 그가 원하는 존재로 태어나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에 따르는 제약에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제약은 저보다 더 높은 신들께서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저는 그걸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순리를 만들고 동시에 그것이 순리니까요. 저는 눈물이 나려는 것을 꾸욱 참으며 개의 이마를 쓸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인간들은 그것을 상처로 인식하고 외면하기도 한단다. 너는 그들의 사랑이지만 그렇기에 상처지. 그들은 너를 잃은 슬픔에 당분간은 개를 키우지 않을 거야. 그리고 그게 언제까지일지 나는 모른단다. 게다가 나는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어. 만약 그들이 죽을 때까지 개를 키우지 않는다면 너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너는 영원히 다른 존재로 태어날 수 없게 될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널 더 이상 도와 줄 수도 없어. 내 권능은 거기까지 닿지 않으니까. 이게 바로 ‘소원의 함정’이란다. 그러니 그 소원을 거둬주렴.”

 

하지만 개는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약해진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 번 개에게 애원했습니다.

 

“나는 나의 개들이 누군가의 상처가 되어 외면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 제발 다음 생에는...”

 

“저는 그것이 아니라면 영원히 태어나지 않아도 좋아요.”

 

개가 단호히 말했습니다. 다시 내려다 본 늙은 그 개의 눈빛은 어린 강아지처럼 단단하게 빛나고 있었죠. 결국 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답했습니다. 개는 그제서야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곧 빛나는 틈으로 사라졌습니다.

 

 

*

 

 

루, 어떤가요? 이야기는 마음에 드세요? 슬프다고요? 슬퍼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이것은 아주 흔한 일이랍니다. 인간들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개들은 그 늙은 개와 같은 소원을 빌고는 하거든요. 개들은 무리동물이고, 그들은 무리 안에 있을 때 행복하니까요. 강한 개체에게 보호를 받고, 약한 개체를 돌보며, 위협에 처하면 모든 개체가 합심해 싸우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에요. 자신의 무리. 개들에겐 그것이 온 세상이랍니다. 일벌이 여왕의 알을 돌보는 것처럼 개들은 무리를 지키는 거죠. 그들의 유전자가 시키는대로 충실 하게요. 말했듯이 유전자는 생명체를 통해 영원을 살아갑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을 나누게 만들고, 새로운 생명 안에 자신을 실어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답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에게 다정하고 상냥합니다. 그것이 그들을 함정에 빠지게 만들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테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개들을 사랑하는 저 역시 유전자의 겉껍질에 불과하겠죠. 신의 유전자는 제가 신으로써 영원하길 바랄겁니다. 신은 소원을 들어주며 믿음을 얻어 살아가고요.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 번의 개가 같은 소원을 빌어도 저는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울지마세요. 네, 이렇게만 보자면 우리 역시 유전자의 탈것일 뿐이지만 한없이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이 진실이 된답니다. 하지만 다른쪽의 돋보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어떤 인간들은 과학만을 도구로 욕망을 해석하지요. 그러나 세계는 절대로 한쪽의 얼굴만을 하지 않는답니다. 우리의 어머니 마고가 그러하듯이요. 유전자라는 돋보기로 세계를 보았을 때 그렇게 차갑고 잔인하다면 다른 돋보기로는 분명 따뜻하고 인자한 세계가 보일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으니, 한없이 그렇게 믿고 있으니… 제 그늘아래 머무는  작은 개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다정한 존재들일 것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길 바라며… 개의 신 타차라, 이야기를 마칩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0
2722 단편 면도 여름 2021.01.15 6
2721 단편 사랑의 의미 진정현 2018.10.24 6
2720 단편 실종 진정현 2018.12.05 6
2719 단편 조라는 밤바다에 있지 히로 2020.07.04 6
2718 단편 피는 물보다 진하다 미음 2020.10.31 5
2717 중편 혼자서 고무보트를 타고 떠난다 해도 조성제 2020.01.03 5
2716 단편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2 소울샘플 2020.12.30 5
2715 단편 샌드위치 맨1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9.29 5
2714 단편 아웃백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4.29 4
2713 단편 시아의 다정 양윤영 2020.03.29 4
2712 단편 당신은 나의 애정 캐릭터니까 두영 2019.12.31 4
2711 단편 연희 진정현 2018.10.24 4
2710 단편 채유정 진정현 2019.02.20 4
2709 단편 갇히거나, 뺏기거나 샤프위의포뇨 2020.09.28 4
2708 단편 문초 진정현 2019.08.26 4
2707 단편 주아 니오사 거우리 2020.02.06 3
2706 단편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해수 2020.02.02 3
단편 타차라와 늙은 개 양윤영 2020.04.18 3
2704 단편 면담기록 xxxx 양윤영 2020.06.30 3
2703 장편 포츈 팰리스: 더블린 기적의 밤 1화 세레나 2020.05.25 3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