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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학교의 살인자(9)

2014.06.28 14:2706.28

9

교문이 뱉어낸 붉은 벽돌길 끝에 다다른 순간 빛나는 검정색 밴이 멈춰서더니 옆문이 활짝 열렸다. 경화는 멈춰섰다. 검정색 야구 모자를 쓴 남자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차를 바꾸셨네요.”

“SUV. 멋지지?”

저도 알아요. 어딜 다니려고 이런 걸 산거예요?”

교장이 사 줬어. 이걸 갖고 어디든 가 버리라구.”

경화는 올라탔다.

밴은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앞유리창에 조그만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직선으로 뻗은 편도 2차선 도로를 빠져나가자 시들시들한 가로수들이 성의없이 포즈를 취하는 큰 길이 나왔다. 그 길을 달려나가자 옆줄기로 강이 흘렀다.

와이퍼를 움직이자 빗방울들이 쓸려 나갔다.

선거 준비는 잘 되고 있어?”

.”

찬조 연설자도?”

졸업 예정자 하나가 해주기로 했어요. 전교에서 그 바보를 위해 연설을 해 줄 사람이 있을거라고 생각도 못 했지만.”

그 바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 전체를 위해서야. 아마 이번 선거가 끝나면 저 학교에선 아무도 학생회장을 하겠다고 나서는 애들이 없을걸.”

경화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차창을 내다보려고 했지만 빗방울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회색 강물과 누르스름한 이파리들과 지나는 자동차들의 광택 나는 색채가 뒤섞여 우울증자의 그림 같았다. 그런 풍경을 계속 보고 있자니 이쪽 머릿속까지 덩달아 우울해질 지경이었다.

아저씨.”

.”

이 차를 교장이 사 줬다구요?”

사 줬다기보다는 뜯어냈다고 할 수 있지.”

어떻게요?”

룸밀러 속에서 전화 받는 남자의 눈이 웃었다. 아마도 차를 선물받아서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일요일날 모두 교장만 남겨두고 외출을 한 모양이더군. 그래서 집에 가보니까 혼자 양복걸치고 밥을 먹고 있는거야. 그래서 잠깐 앉아서 몇 마디 나누더니 수표 몇 장을 선물해주더라구. 그래서 차를 사겠다고 말하고 빠져나왔지.”

복학하겠다고 떼라도 쓴 건가요?”

아냐. 선물받은 거야. 진짜야.”

비구름이 끼어 창밖이 점점 칙칙해지더니 공기까지 누런색으로 바뀌었다.

교장은 혼자 밥을 먹고 있었어.”

전화 받는 남자, 아니 전 학생회장, 또는 김윤수가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외로워 보이더군. 수저가 있는 위치도 찾지 못했으니까. 숟가락이 없는데 어떻게 밥을 떠먹겠어. 일요일 아침 집에서 혼자 양복 입고, 보석 박힌 넥타이까지 맨 채 주방에서 열심히 숟가락을 찾고 있었어. 아마 부엌에 들어가 제 손목아지를 놀려 숟가락을 찾아본 게 난생 처음이어을 거야. 태어나서는 제 엄마가 알아서 쥐어줬을 거고, 좀 크고 나서는 제 누나들이, 결혼하고 나서는 부인과 딸과 며느리들이 알아서 챙겨줬을테지.

아무튼 교장은 숟가락을 찾고 있었어. 밥을 챙겨 먹든 말든 하루종일 퍼질러 자든 일단 밥을 먹어야 삶이 진행될 게 아니겠어? 교장이 열심히 주방을 뒤지는 동안 잘 정리되어 있던 컵이며 그릇, 조미료통 등이 어질러져 주방 바닥에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어. 사방이 유리조각과 후추, 소금 따위로 범벅이 됐지만 그래도 교장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숟가락을 찾았어. 불쌍해서 대신 찾아주고 싶을 정도였어. 난 그 정도는 챙겨먹는단 말이야.

결국 교장은 빈손으로 식탁 앞에 앉아서 맨손으로 식기 뚜껑을 열었어. 하얀 사기 식기에서는 모락모락 나는 김이 아니라 서늘한 기운만 올라왔지만, 그래도 밥인데. 맨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밥을 떠먹으려는 순간 교장은 식탁에 놓인 수저통을 발견했어. 발견! 그런데 교장의 팔꿈치가 먼저 수저통을 발견해버린 게 문제였어. 수저통도 사기로 만들었더군. 바닥에 박살난 사기 수저통. 꽤 비싸 보였는데, 안타깝더군.

어쨌든 교장은 수저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어. 달가닥 달가닥. 바닥에는 깨진 그릇 조각이며 유리 가루가 설탕이랑 소금이랑 뒤섞여서 멀리서 보면 눈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았어. 내가 있던 병원의 정원처럼. 한여름에도 스티로폼과 소금 가루를 땅바닥에 뿌려서 겨울 풍경처럼 만들었거든. 여름에는 환자들 기가 상승해서 병이 더 심해지기 쉽다나.

나는 식탁으로 다가가서 말했어.

교장. 나야.’

교장은 들고 있던 밥그릇에서 눈도 떼지 않더니 말했어.

언제 왔냐.’

어젯밤에 왔어. 당신 손녀딸 있잖아? 걔가 맨날 들고 다니는 구치 신발주머니에 숨어서 들어왔어. 잠은 그 여자애 침대 곁에서 잤구. 걔는 내가 애완동물인 줄 알아.’

교장은 여전히 날 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어.

밥 먹어라.’

나는 교장과 정면으로 마주본 채 앉았지. 수저가 없었지만 바닥에 흩어진 젓가락 한 벌을 주워서 식탁보에 닦은 다음 먹기 시작했어. 밥이 한 그릇밖에 없어서 반찬만 주워먹긴 했지만, 맛은 나쁘지 않더군. 묵은 김치, 묵은 멸치, 묵은 고추 조림, 묵은 꼴뚜기...모두 밑반찬들뿐이었지만 일단 배고팠거든.

교장.’

뭐야.’

병원에서 주던 밥 생각이 나는데.’

교장이 숟가락 너머로 날 째려보았어.

하루 두 번씩, 고춧가루 두세 개 묻은 깍두기랑 레몬색 단무지랑 투명한 된장 국물에 흰 밥이 나와. 그런 밥을 먹고 나면 운동부족을 막기 위해 개처럼 한 줄로 서서 중정을 백 바퀴쯤 돈 다음 약을 줘. 그 약을 먹고 나면 금방 졸음이 와서 다시 배고프지는 않았지. 하지만 요샌 배가 너무 고파. 많이 움직이니까.’

내 말이 끝나자 교장이 밥그릇 뚜껑을 들고 일어서 주방으로 가더니 하얀 보온 밥솥을 열고 먹던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가져왔어. 난 젓가락으로 밥을 퍼서 먹기 시작했어. 괜찮더군. 밥만큼은 그날 바로 지은 것 같았어.

내가 그걸 퍼먹기 시작하자 교장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어. 내가 먼저 말했지.

잠깐만. 할 말이 있어도 밥 다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줘. 이틀 동안 과자만 사 먹으면서 지냈단 말이야.’

나는 밥그릇 뚜껑에 밥을 두 번 더 채우고 다 먹어치웠어. 교장은 컵에 수돗물을 틀어 마시면서 그대로 앉아 있었어. 보라색 넥타이에 밥알이 묻어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았어. 일요일 아침에 혼자 일어나 양복을 입고 보라색 넥타이를 매고 식탁에서 밥알을 묻히며 식사하는 인간.

이번엔 또 뭐냐.’

교장, 나 차가 갖고 싶어.’

교장이 숟가락을 집어 던졌지만 난 용케 피했지. 나는 계속 밥을 먹어댔어. 지금 먹지 않으면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엉뚱한 소리 하지 말어.’

교장이 말했지만 목소리는 젖은 낙엽만큼이나 힘이 없었어.

그래? 그럼 병원에서 먹은 밥 얘길 계속 해줄게.’

나는 이 말을 하고 나서 교장을 힐끗 봤지만 미이라처럼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어.

어느 날 돈까스가 나왔어. 엄지손가락만한 돈까스 두 조각이었지만 애들은 난리가 났지. 먼저 배식을 받으러 간 녀석들에게서 얘기가 들렸어. 오늘 저녁엔 돈까스가 나온다고. 나도 기뻤어. 약기운 때문에 배가 크게 고프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고기맛을 잊은 건 아니니까.

나는 조용히 저녁 시간을 기다렸어. 몽롱한 기분이었지만 오랜만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지. 용돈을 아껴서 친구들과 닭튀김에 콜라를 사먹던 기억이 났지. 학교 근처에 닭집이 있었거든. 알을 낳다 지쳐서 맛이 간 폐닭이었지만 닭집 아저씨가 다리 몇 개를 더 얹어주고는 했는데.‘

학교 근처에 그런 데도 있었나. 망할. 찾아가봐야겠군. 당연히 맥주도 한 잔 했겠지?’

닥쳐. 다리 몇 개 더 주는 것만으로도 그 아저씬 우리한테 큰형님 대접을 받았으니까.’

나는 말을 이었어.

같이 병실을 쓰는 녀석들 - 나같은 환자 말이지 - 이 돈까스 몇 조각에 약기운이 달아날 정도로 환성을 올리며 주변 10킬로미터 반경을 모조리 뒤흔들어놓는 동안 난 두껍게 씌운 튀김옷맛과 김빠진 콜라맛을 기억해내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 바삭거리는 튀김옷과 안쪽에 달라붙은 닭가죽을 씹어먹고 나면 몇입 안되는 푸석푸석한 살코기가 입 안에 씹혔어. 평생 계란을 낳느라 혹사당한 폐닭 맛과 치킨집의 샛노란 벽 색깔, 다들 열심히 먹는 동안 치킨집 안에 흘렀던 평화 같은 거. 아저씬 애들 비위를 맞추느라 좋아하지도 않는 후진 댄스 음악을 틀어놓는 짓은 하지 않았지. 난 그게 좋았어. 하지만 약에 그동안 너무 절어 있어서 그 맛과 분위기를 기억해내는 데 15분이나 걸렸지.

먼저 식사를 한 녀석들이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 식당이 워낙 조그마해서 환자들을 두세 그룹으로 나눠 차례로 식당에 들여야 했거든. 녀석들은 튀어나갔고, 나는 슬리퍼를 끌고 뒤따라나갔어. 설렁설렁 뒤따라간다고 해도 돈까스를 못 먹을 걱정은 없었어. 원장은 적어도 그런 면에선 공평했거든. 함께 먹거나, 함께 굶거나.

운동을 하러 중정을 돌거나 잠을 자러 들어갈 때처럼 식당 앞에 한 줄로 섰지. 병원에선 무얼 하든 줄을 서야 했어. 얼굴을 씻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화장실을 쓸 때도 줄을 섰어. 줄을 서지 않아도 괜찮은 때는 약을 받을 때뿐이야.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뒤 커다란 거실에서 열대어들이 노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앉아 있으면 남자간호사들이 돌아다니면서 약과 물을 나눠주거든.

내 생각대로, 나만한 녀석 네댓 명은 넉넉히 들어갈 만한 스텐레스 배식통에는 아직 돈까스 조각이 3분의 1 정도 채워져 있었어. 내 앞에 앉은 녀석들은 열광하면서 - 열광할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궁금했는데 - 돈까스 조각들을 받아갔지. 엄지만한 돈까스 두 조각, 또는 새끼손가락만한 돈까스 세 조각들이 배식판 앞에 차례로 떨어졌어. , . 나도 돈까스 조각이 담긴 식판을 들고 녀석들이 바글거리는 테이블 사이를 뚫고 자리를 찾아 앉았어. 식판을 내려다보니 돈까스 두 조각, 김치 다섯 쪽, 밥 반 공기와 된장국 한 그릇이 전부였고 그나마 반찬을 넣는 세 칸 중 한 칸은 텅 비어 있었지.

배식하다 남은 단무지라도 주면 좋을텐데, 식당 아줌마들이 돈까스 튀기느라 영 바빴던 모양이군. 난 생각하면서 젓가락을 들었어.

옆자리에 앉은 녀석은 다른 건 다 먹어치우고 돈까스 조각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모양이지.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녀석이었는데 언제나 머리털을 박박 깎은 채 깡말랐었지. 어깨는 소녀처럼 작았어. 기다란 얼굴에 입술은 입술이 아니라 피부에 낸 생채기 같았지만 눈빛은 송아지처럼 착했어.

왜 안 먹고 있어? 어서 먹어. 먹지 않으면 뺏길 거야.’

된장국에 밥을 말면서 내가 물었지. 녀석은 우물거렸어. 아닌게 아니라 몇몇 주먹 좀 쓰는 녀석들이 어디서 났는지 빈 국그릇 하나를 들고 돈까스 조각들을 빼앗고 있었어. 간호사나 영양사, 식당 아줌마들은 그 녀석들이 거의 반 년 만에 환자들 앞에 등장한 단백질을 갈취하고 있는데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잡담을 주고받고 있더군. 그 인간들의 손가락을 잘라서 돈까스로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딜레마야.’

뭐라구?’

딜레마라구.’

녀석은 돈까스 위로 몸을 숙였어.

이건 극심한 딜레마야. 만약 이게 맛이 있으면, 난 다음 번에 또 돈까스가 나올 때까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밤새 잠 못 이룰거야. 아아, 돈까스. , 돈까스 하면서. 맛이 없다면 난 너무나 실망해서 돈까스가 맛이 없다면 도대체 세상에 무슨 음식이 맛이 있을 수 있을까 싶어 삶의 희망까지 몽땅 잃어버릴 거야. 이 돈까스, 맛이 있을까? 넌 어때? 입원하기 전에 돈까스를 먹어봤겠지?’

.’

나는 밥을 씹으면서 끄덕였어.

맛없을거야. 병원에서 주는 돈까스는 적어도 1년은 냉동됐을 게 뻔하니까. 하지만 먹어두는 게 좋을텐데.’

맛이 없겠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냉동실에 넣어둔 고기라면.’

녀석은 고아였어. 그래서 돈까스 따윈 먹어본 적이 없었던 거야.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혼자 키우면서 매일 뒷동산에서 잡풀이나 뜯어 된장에 발라 먹였던 모양이었어. 기름기가 들어간 걸 먹으면 설사를 했었어. 할아버지가 죽고 나선 한동안 시골집에서 혼자 살았었는데, 하루는 배가 고파 읍내로 나가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제법 인권의식을 가진 사회복지사를 만나 정신감정을 받았대. 우울증에 경계성 인격 장애에, 지능 미발달, 재깍 병원으로 보내졌지. 정신병은 얼어죽을, 내가 보기엔 잘만 먹이면 금방 나을 병 같았는데 말이야.

이거 네가 먹도록 해.’

녀석이 제 식판에 놓인 돈까스 조각을 내 식판에 살며시 떨어뜨렸어. 난 깜짝 놀랐지.

, ? 이러면 안 돼.’

녀석은 슬픈 듯이 말했어.

네가 먹는 게 좋아. 먹고 나서 내게 말해줘. 넌 나보다 열 배는 똑똑하니까 말해줄 수 있을거야. 설령 이 돈까스가 지구에서 공룡들이 뛰놀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채 냉동보관 되었다가 바로 오늘 튀겨졌다 하더라도, 넌 이걸 먹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돈까스의 맛과 질감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거야.’

난 김치를 집어먹으며 대답했어.

글쎄, 네가 먹고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

난 이게 맛이 없을까봐 두려워. 내 머릿속엔 세상 온갖 고기의 이데아가 들어있거든. 그런데 이 만년설같은 돈까스가 그걸 망쳐버릴까봐 무서운 것뿐이야. 아무리 상상력이 강해도 만년설을 이길 순 없을테니까. 이 맛없는 돈까스를 한 입 먹는 순간 난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게 될 거야. 내가 상상한 모든 고기의 황홀한 맛을 이 돈까스 한 조각이 깡그리 짓밟아버릴거라구. 그러니 네가 부디 먹어 줘. 내가 정말 맛있는 돈까스를 계속 상상할 수 있게.’

역시 정신병원은 아무나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고 난 생각했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녀석은 친절하게도 물까지 떠다주면서 덧붙였어.

꼭 먹어줘.’

난 식판에 놓인 네 조각의 돈까스를 보면서 혀에 돋은 돌기들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미각이 흥분하는 걸 느꼈어. 태어나서 이제까지 이 정도로 음식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받은 적이 처음이었거든. 녀석은 언젠가 병원 밖에서 맛볼 정말이지 맛있고 환상적인 음식들을 꿈꾸고 있었던거야. 그래, 그 꿈에 이런 조그만 돈까스들이 기스를 내선 안 되지.

내가 잠시 그 녀석의 이데아에 젖어있는 동안 국그릇에 돈까스를 빼앗고 다니던 놈들이 다가왔어.

, 네 개나 되네. 아줌마한테 몸이라도 팔았냐?’

식판은 순식간에 비어버렸어. 난 올려다봤지. 하나, , . 어깨들 세 놈이 질겅질겅 내 돈까스와, 녀석이 내게 선물한 돈까스를 씹고 있었다. 항상 세 놈이 어울려 다니면서 환자들을 괴롭히고 다녔었지. , 왜 양아치들은 꼭 몰려다니면서 자기네들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라는 사실을 광고하고 다니는걸까? 나는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어. 녀석은 슬프게 미소짓더니 빈 식판을 들고 사라졌어.

그놈들에게 돈까스를 뺏긴 뒤 이제까지 먹어본 제일 맛있는 고기맛을 떠올리려 애쓰는 동안 녀석들은 낄낄거리며 사라졌어. 고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 그게 소시지였는지 베이컨이었는지, 삼겹살이었는지 돼지갈비였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입안에 떠오르는 건 마르고 푸석푸석한 닭고기뿐이었지. 혀를 돌리는 동안 그 맛마저 사라져가고 있었어. 그 자리에서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맛을 떠올렸다면, 식판으로 그놈들 머리를 부수지 않아도 됐을텐데.‘

나는 말을 멈추고 교장을 바라봤어. 교장은 눈을 감고 자는 척 하고 있었지.

여기까지가 돈까스 얘기고, 그해 겨울엔 식사에 짜장면이 나왔어. 짜장면은...’

젠장, 그만! 그만하라구.’

그만하라구? 짜장면 얘긴 시작도 안 했는데 아쉽군. 베이컨이랑 같이 구운 떡꼬치 얘기도 있고, 순대볶음이랑, 우동국물이랑...’

알았다.’

교장은 식탁에서 일어서더니 이글이글 타는 눈으로 날 내려다봤어.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이 처음이겠죠.’

망할 녀석. 평생 병원에서 썩게 해줄테다.’

교장은 다시 주저앉더니 와이셔츠 포켓에서 담배를 꺼냈어.

내가 네놈한테 잘못한 건 사실이다.’

청소년 앞에서 담배는 실례예요.’

청소년? 미친 놈.’

교장은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어.

평생 병원에서 딸딸이나 칠 녀석이 무슨 수를 써서 빠져나왔는지 모르지만...’

원장이 동성애자였거든요.’

먹던 밥그릇이 날아오려다 그냥 식탁 위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주저앉았지. 교장이 담배를 피우자 깨끗한 거실에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어. 내가 보기에도 별로 안 좋더군. 그렇지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일부러 아무 말 안 하고 있었어.

교장은 담배를 밥그릇에 신경질적으로 비벼 끄더니 말했어.

이번이 마지막이다.’

난 웃으면서 밥 한 그릇을 더 먹을 준비를 했어.”

전화 받는 남자는 씩 웃었다.

돈까스 얘기에서 내가 안 한 얘기가 있어.”

밴은 계속 달렸다. 하지만 무척 느린 속도였다. 뒤에서 버스와 승용차들이 욕설과 경적을 울리며 추월해 달아났다.

뭔데요?”

돈까스. 돈까스...난 일어섰어. 하지만 그놈들은 이미 등을 돌린 채 다른 녀석들의 단백질을 거둬들이고 있었어. 일단 나는 밥그릇을 들어 식탁 위에 놓고, 또 국그릇을 식탁 위에 놓고, 그리고 수저를 내려놓은 다음...음식 말고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식판으로 그중 한 놈 머리를 쳤어. 사람 머리통이 그렇게 부드러울 줄이야. 그놈 머리통에 식판 절반이 푸욱 꽂히던데. 그런데 몇 분 동안이나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어. 아무도. 병원 멍청이들, 그만큼 군기가 빠졌던 거지. 그런데 문득 옆창문을 보니 여자 병동이 보였어. 평소에는 열심히 들여다보려고 온갖 애를 써도 보이지 않던 여자 병동이 보였던 거지. 옆병동에는, 여자애들과 처녀애들이며 아주머니들 몇몇이 식판을 가운데 놓고 둥글게 앉아서 메추리알이 서로 부딪치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며 밥을 먹고 있었어. 아마도 여자 병동에도 돈까스가 나온 모양이지. 하하 호호, 무척 즐거운 웃음소리에 즐거운 표정이었어. 그런데 여기는, 남자 병동은, 돈까스 네 조각에 플라스틱 판을 사람 머리에 세로로 꽂는 장소란 말이지. 천당과 지옥이 맞붙어 있는 셈이었지. 그녀들이 무척 부러웠어. 아름다운 존재들이었던 거지. 너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

돈까스 네 조각에 행복한 존재요?”

넌 여자잖아. 돈까스 네 조각에 행복한 존재. 남자는 최소한 차 한 대는 손에 쥐어줘야 즐거워하거든.”

경화는 돈까스따윈 싫다고 항의하려다가 관두었다. 어느새 경화의 집 앞이었다. 남자가 차를 끽 세우자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경화는 하마터면 조수석 보닛에 코를 박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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