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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용석아!

2014.09.14 13:5509.14

용석아!

 

<1> 좌우지 장지지지(佐友之 腸止止遲)

 

... 용석아?”

 

피투성이가 된 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남자가 있다.

 

용석아... 정신 차려! 용석아

 

어깨를 흔들고, 볼때기를 연신 쳐대도 남자는 반응이 없다.

 

용석아 어떻게 된 거야... 왜 말이 없어!”

 

플란넬 셔츠의 사내가 남자의 상반신을 끌어안고 흐느끼자, 둘을 중심으로 주위에 무리가 하나둘 몰리기 시작한다.

 

...”

용석아!”

 

플란넬이 기뻐하며 남자를 반긴다.

 

용석아!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

 

남자는 머리를 이리저리 괴롭게 흔들다가, 결국 역류하는 핏덩이를 플란넬의 품에 그대로 쏟아냈다.

 

이건... 십이지장이잖아! 제발 정신 좀 차려 용석아!”

용석아!”

 

플란넬이 토해낸 덩어리를 손으로 집을 틈도 없이, 남자는 계속해서 덩어리를 뿜어냈다.

 

... 이건 아무래도 위장인 거 같아! 용석아 내 말 들려?”

십이지장이 하나 더 나왔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용석아!”

 

도대체 남자는 멈출 줄을 몰랐다.

 

이건 쓸개야!”

이건 맹장이잖아!”

간장!”

된장.”

물엿.”

다진 마늘.”

후추 약간에...”

“...

노르웨이 고등어까지! 이로써 고등어조림의 구색을 완벽히 갖췄어!”

 

남자는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장을 헤치며 십이지장의 탄력을 확인하는 일 따위에 몰두하고 있는 플란넬.

 

...”

, 용석아! 정신차...”

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플란넬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입에서 창자가 만국기 튀어나오듯 끊임없이 나오고 있잖아! 덩달아 쓸려 나온 수십여 개의 십이지장과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머지 내장들이 마치 덤처럼 느껴질 정도야! 제발 정신 차려 용석아!”

 

남자는 초연한 미소를 지으며 최후의 한 덩이를 괴로이 쥐어짰다.

 

용석아...”

 

플란넬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어제 먹었던 선지해장이야...”

 

이에 남자도 덩달아 시무룩해졌다.

 

 

 

<2>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영화가 지루하다는 게 아니라

단지 지금이 몇 시인지 알고 싶다는 소리야. 740? 그럼 20분 남았네.

 

... 우우...”

용석아! 말할 수 있겠어?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우우우...... ... 우미... ... ...”

 

플란넬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건 내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의 생활기록부 성적이잖아! 용석아 정신이 돌아왔구나!”

... ......”

뭐라고?”

 

남자는 한 차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는, 힘겹게 고개를 들며 흐느꼈다.

 

... 해물과... 백두... 산이

... 용석아...”

마르고... 닳도록...”

용석아!”

 

구경꾼들도 하나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아랑곳 않고 불안하게 떨리는 음정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우리나라... 만세...!”

용석아!”

 

결국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 궁화...”

...”

... 천리...”

...”

화려... ... ...”

!”

 

대한... 사람... 대한으로...”

용석아!”

길이...”

용석아...”

... ...”

... 용석아?”

 

모두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용석의 입술에 시선을 모았다.

 

... ......”

용석아!”

 

중년의 여성이 혼절하며 무너져 내렸다.

 

“...보전하세.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플란넬이 소리쳤다.

 

평소에는 2절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이후부터 막히곤 하더니 어쩐 일인지 4절까지 완벽하게 완주했잖아! 지루했는지 3절 후렴구 부근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슬쩍슬쩍 빠져나가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은 무리의 2/3 정도가 다 가버리고 없어! 왠지 쓰러진 사람도 하나 있고. 어떻게 된 거야 용석아!”

 

용석은 짜증나는 얼굴로 코평수를 넓히며 어깨를 씰룩거렸다. 그건 수화에서도 자주 쓰이는 난들 아나?’의 모사였다.

 

 

 

<3> 위기는 곧 기회다

 

바람을 가르는 뾰족한 쇳소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용석의 목덜미였다.

 

용석아!”

 

만지작거리던 십이지장을 휙 던지며 플란넬이 다급하게 말했다.

 

가장 앞줄에서 닌자 복장을 하고 있던 복면의 사나이가 웬 속이 빈 기다란 대나무 같은 걸 꺼내더니 그대로 용석의 목에 뾰족한 촉을 훅 불고는 달아나버렸잖아! 성대가 완전히 찢어졌으니 이대로라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될 거야! 용석아 정신 차려!”

 

용석은 입을 벙긋거리며 몸을 뒤집어 이리저리 뒤척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자신의 목덜미에 가져다가 떨었다.

 

... ...”

... 용석아!”

 

드러머가 가볍게 심벌을 두드리기 시작하자, 플란넬이 쩔쩔 매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건 음성합성기(Speech Synthesizer)잖아! 사용자가 리시버를 성대에 문지르며 직접 공명 현상을 일으켜 스피커를 통해 기계음을 출력하는 장치야! 그런 게 호주머니에서 튀어나오다니, 마침 운이 좋았어!”

 

그러자 복면의 사나이가 단도를 빼들고 둘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능숙한 손놀림으로 노련하게 용석의 성대를 모조리 도려내고는, 다시 유유히 무리 사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 용석아! 빌어먹을! 놈이 아예 성대 자체를 적출해갔으니 이젠 정말이지 방법이 없어. 말을 하는 건 고사하고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을지 그게 더 걱정이야! 용석아... 이제 슬슬 포기할..."

ㅁㄴㅇㄹ... ㅋㅌㅊㅍ......”

... 용석아!”

 

용석은 수동식 휠체어 위에서 터치 패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는 표정의 흑인 피아니스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플란넬이 아연하며 소리쳤다.

 

... 스티븐 호킹이야! 스티븐 호킹 스타일이 아직 남아 있었어! 눈알과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패턴화한 후 이를 원하는 단어로 조합해 보이스웨어로 출력하는 방식이야!”

 

첼로 주자가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악기 고정대를 늘이며 높이를 맞췄다. 활을 집어 들어 심호흡을 짧게 가진 뒤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에게 신호를 보내자, 드럼 소리에 맞춰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석은, 여차저차해서, 폭발한 휠체어 파편 더미에 묻혀있다.

 

용석아...”

 

수북하게 쌓인 휠체어 잔해 속에서 용석의 멀건 팔뚝이 수직으로 튀어나왔다.

 

용석아!”

 

용석은 두 손으로 더미를 헤집으며 파편을 모았다.

 

... 그건...”

 

속이 빈 기다란 대나무에 휠체어의 알루미늄 조각. 용석은 꺼져가는 숨결을 가까스로 붙들어 매며 대나무에 구멍을 뚫거나 조각을 쑤셔 넣거나 했다. 무리 속에 섞여 있던 닌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이제야 의도를 알겠다는 듯 소리쳤다.

 

색소폰... 저건 색소폰이야! 하지만 저걸 어떻게...”

 

이윽고 용석의 색소폰이 잼에 뛰어들자, 연주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아직 항문이 남아있었어...”

 

용석은 주자들과 치열하게 눈빛을 교환하다가 드럼이 계기를 마련해주자 미끄러지듯 자신의 솔로 파트를 이어갔다.

 

 

 

*

 

90여 분간의 열정적인 색소폰 솔로를 마치고 온 몸이 혈흔과 땀으로 범벅이 된 용석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플란넬의 손을 잡았다.

 

용석아...”

 

플란넬은 용석의 손이 점점 헐거워짐을 느꼈고, 결국 용석은 완전히 눈을 감았다.

 

... 용석아! 정신 차려!”

 

다시 떴다.

 

용석아!”

 

벙긋거리며 입술을 부들부들 떠는 용석.

 

"뭐라고 하는 거야?"

 

마침내 쏟아지듯 왼편으로 목이 돌아갔다.

 

안 돼! 용석아!"

 

다시 시원하게 우드득 소리를 내며 반대편으로도 목을 돌리는 용석.

 

어느 쪽인지 확실히 해 용석아!”

 

... 아으...”

 

뭉쳐 있던 어깨의 피로가 풀린 탓인지, 용석의 옹알이가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용석아!”

 

우아아아아아 (중략) 아아아아아아!

 

기적적으로 살아난 용석.

 

 

... 용석아!”

 

나는 용석이가 아니라 민석이야.”

 

아 맞다. 미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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