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추락

2014.07.15 23:5507.15


추락





13층.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렸다. 흔한 일이었다. 기계가 정지하고, 일상이 정지하고, 심장이 잠시 정지하고, 어떤 무서운 예감이 머리 속을 사로잡는 순간.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번쯤 찾아오는, 그런 흔한 순간이었다. 침착해야 한다.

"여보세요?"

그녀는 비상 호출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하지만 작은 떨림이 섞여 있었다. 여보세요? 호흡을 가다듬은 후,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 뿐이었다.

"......"

그녀는 침묵했다. 엘리베이터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녀는 고립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금속 벽들이 휴대폰의 전파를 차단하고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껐다. 별일 없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네, 하고 대답했다.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네요. 조금만 기다려보죠. 그가 말했다.

"네."

그녀는 엘리베이터의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13이라는 붉은 숫자가 멈춰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죠. 그가 말했다. 전원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건, 안전장치가 작동된다는 뜻이고요. 그가 미소를 지었다. 네,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는 불안했다.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170 후반의 마른 남자였다. 창백한 동안이었고, 눈밑이 어두웠고, 손목이 가늘었다.

"......"

손목시계가 초조하게 째깍거리고 있었다. 이 남자가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하고,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침착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지쳐 보였다. 그리고 약해 보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뭘 두려워 하는 걸까?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불현듯 그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럴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그리고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리고 그들은 말없이 서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예감했다. 그것은 무서운 붕괴의 예감이었다. 그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네 개의 금속 벽들이, 벽면에 붙은 두 개의 거울이, 그리고 천장의 둥근 조명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불규칙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거울을 돌아보았다. 거울 속의 그녀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지금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13에서 12로 바뀐 순간, 그녀는 조용한 절망을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엘리베이터가 하강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다시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면 그와 몇 마디 정도는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흔하지 않은 기회였다. 눈부신 섬광처럼 첫눈에 반해버린 한 남자가 바로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이름을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1층. 어쩌면 서로 전화번호를 교환할 수도 있을 것이다. 10층. 그녀는 망설였다. 9층.

8층.

아직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7층. 엘리베이터는 지나치게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점점 더 빠르게 낙하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계속해서 놓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기적적으로 1층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그녀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다. 모든 것이, 이 세계가, 고요하고 신속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전광판에서 미친듯이 깜빡이며 줄어드는 붉은 숫자가 한 마리의 뱀처럼 몸부림치며 지옥을 향해서 추락하고 있었다. 6층. 그러나 아직은 시간이 있었다. 그에게 고백할 시간이, 첫눈에 반했다고 말할 시간이, 그리고 기적을 일으킬 시간이, 그녀의 심장이 엘리베이터를 파괴할 것처럼 박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돌아보았다. 5층. 그녀의 머리 속에선 스무 살 남짓한 인생의 페이지들이 산산이 펼쳐지고 있었다. 4층. 그것은 너무나 짧은 인생이었다. 3층. 그리고 너무나 짧은 첫사랑이었다. 2층.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13층.

그것은 금지된 층이었다. 그들은 건물의 어떤 층이라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만은 예외였다. 계단은 12층에서 끊어져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층버튼엔 13이라는 숫자가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 호기심. 작은 실수.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13층을 눌러버린 것이다. 그녀는 1층과 3층을 동시에 눌렀고, 조금 기다리자, 엘리베이터는 그 육중한 상승을 시작했다. 그녀는 궁금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를. 그 금지된 상승 속에서, 그녀는 유쾌했고, 두려웠고, 두근거렸고, 그리고 두근거렸고, 그리고 두근거렸고, 그리고 두근거렸고, 그리고 두근거렸고, 그리고 두근거렸다. 13층. 그곳에 한 미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지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이 피로했고, 무거워진 두 눈은 잠이 필요했고, 양손엔 서류뭉치를 가득 안고 있었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자신이 왜 그곳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그에게 고백했다. 사랑해!

1층.

문이 열렸다. 조용한 복도가 있었다. 그리고 현관 밖엔 햇살 가득한 황혼의 저녁이 펼쳐져 있었다. 머리 위에선 엘리베이터의 조명이 명멸하고 있었다. 그리고 침묵이 있었다. 고백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생각했다. 날 미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서류 뭉치들이 산산이 흩어져버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거죠? 그가 물었다. 사랑... 그녀는 좀더 쉬운 말로 설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해! 아니, 그는 당황했다. 아니, 지금 뭘 한 거냐고요? 그는 그녀가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이 그녀의 미친 짓 어떤 정신나간 고백방법이거나, 반사회적인 파괴공작이거나, 아니면 사회초년생 특유의 아무렇지도 않게 규칙을 초월하는 실수이거나, 그는 그녀가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금지된 층에 올라갔던 거죠? 그곳에서 뭘 하신 거죠?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 그녀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는 도망쳤다.

"......"

그는 침묵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의 손목시계가 멈춰 있었다. 벽에 부딪힌 것처럼 그의 시계가, 사고 체계가, 그리고 그의 세계의 체계가 부서져 있었다. 그는 그녀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상관없었다. 그녀가 그의 품에 안겨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기억했다. 전에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 가끔씩 그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여자였다. 여기저기 길을 잃고 돌아다니는 여자였다. 멋대로 당황하여 그에게 반말을 하던 여자였다. 그의 혈관 속에서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을 동시에 솟구치게 만드는 아가씨였다. 그는 기억했다. 사내연애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기억해냈다. 자신이 외롭다는 것을.

"......"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엘리베이터의 비상 스피커에서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지금은 전력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현재 시각부터 모든 엘리베이터의 이용을 금지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비상사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명멸하는 불빛 속에서, 흔들리는 두 개의 거울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숨결 속에서, 따뜻한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는 그 어설프고 어색한 포옹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키스했다. 두 개의 거울에 비친 무한의 그와, 그리고 무한의 그녀가 키스했다. 그러나 그들의 입맞춤은 서툴렀다. 그것은 그들의 첫키스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첫사랑이었다.

"......"


첫키스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첫사랑은 계속되었다. 그가 있었다. 그녀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무한의 거울에 비친 그와, 그리고 무한의 그녀가 있었다. 그들은 마치 모든 남자와 여자를 대표하는 것처럼,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그 무한의 첫키스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모든 인류의 첫사랑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서로의 입술을 맞춘 채 침묵했다. 그것은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은 침묵이었다. 2층. 엘리베이터가 다시 상승하고 있었다. 3층. 흩어진 서류 뭉치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4층. 그들의 두 발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5층. 그들은 하늘을 향해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6층. 아니, 그들은 하늘을 향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지하 7층. 그들의 머리가 엘리베이터의 천장에 충돌했고, 천장의 둥근 조명이 후광처럼 잠시 번쩍였고, 그들은 마치 예수와 마리아가 된 것처럼 서로를 성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고, 무서운 중력의 가속과 함께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하 8층. 엘리베이터의 빛이 꺼졌다. 그리고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아담과 이브는 마침내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폭발을 쾌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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