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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빈 심장

2023.06.30 19:1106.30

아내가 사라졌다.

그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실상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슬픔? 글쎄, 그에 앞서 우선 믿기지가 않았다. 이 글을 적는 지금도. 신에 관한 설교보다도 더 아득하기만 하다. 아내의 실종에 대해서 나는 명확한 의식을 가질 수가 없다.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정신적 무질서, 그것은 슬픔보다 더 솔직한 나의 마음이다. 여느 때처럼 집에 돌아오니 모든 물건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낯선 것들로 뒤바뀌어 있지만, 그 위화감을 나밖에 느끼지 못한다. 요컨대 그런 심정이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뒤틀렸고, 오로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점 하나뿐이다. 아내는 실종되었고, 그런 지가 오래되었다.

 

*

 

친척과 회사 사람들이 위로를 건네 왔다. 그러나 그들이 대관절 무얼 알기에 상심 따위를 운운하여 나를 위안하려 든단 말인가? '무슨 말로 위로를 전하면 좋을지. 충격이 크시겠습니다. 상담이라도 받아보는 게 어때?' 그들은 수군거릴 뿐이다. 위로로 둔갑한 호기심, 내 일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 그게 전부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타인에 대해 무지하다

 

*

 

이제 사실만 정확하게 기술해 보자.

아내는 실종되었다. 그뿐인가?

생각하고 있자면 진이 빠진다.

 

*

 

수사관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오래간 내연의 관계 맺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상대 남성은 아내보다 다섯 살 어린 직장 동료였다. 나는 한동안 그 남자의 뒤를 밟았다. 은행원. 특별히 미남은 아니다. 직업 때문인지 말끝마다 사과의 습관이 배어있다. 사람을 죽일 만한 부류로 보이진 않지만, 보이는 것이 실재를 배반하는 일은 왕왕 있다. 그러나 수사관은 내연 관계보다는 내 쪽에 심증을 더 두는 눈치이다.

 

*

 

실종된 지 한 해가 지나 수색대에 의해 호수 밑에서 아내가 건져졌다. 부검의 결과, 아내의 사체엔 심장이 없다. 경찰은 나를 집요하게 신문했다. 아내의 불륜과 살인 사건, 적출된 심장이라면 표면상으로 시나리오가 제법 들어 맞는다 판단한 모양이다.

 

'아내의 외도에 앙심을 품은 남편이 그녀를, 내연남을 향해 뛰던 심장을, 매우 잔혹한 방식으로 난도질했다'

솔직히, 내가 듣기에도 그럴싸하다.

이런 식의 현저한 합리성을 도출해 내는 것이 바로 형사의 의무이자 바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위해 오직 나 혼자만 보는 이 기록에조차 거짓을 적겠는가? 진실에 눈가림할 것이라면 기록이라는 게 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이미 혀로도 충분하다. 아니, 거짓에 한해서 혀가 기록에 우위 한다. 아무튼 아내의 몸에는 특별한 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심장은 아내의 가슴속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마치 문어 따위의 연체동물처럼. 고대의 이집트인들이 미라를 만들기 위해 콧구멍으로 바늘을 넣어 뇌를 빼냈던 것처럼. 말끔하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화를 위해서, 나는 나 자신을 상대로 가설을 세워본다.

 

① 나는 사실 아내의 불륜을 이미 알고 있었다.

② 그 충격에 대한 방어기제로써, 모든 기억을 잠재의식 아래로 가라앉혔다.

③ 나는 정신분열 계의 질환을 겪고 있다.

④ 살의를 잔뜩 흡수한 잠재의식의 한 덩어리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아내를 살해·유기한다.

 

그럴듯하다. 형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를 긴급 체포하고, 그 사실이 내일 당장 매스컴에 보도된대도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찰 법하다. 하지만 역시 사라진 심장에서 다시 벽에 부딪힌다. 그것은 얼음처럼 녹아버렸을까, 몸속에 기생하는 촌충들이 달콤한 사과처럼 그것을 깨끗이 갉아먹었을까. 아니면 고도의 장기밀매 수법 같은 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아아, 계속 이런 식이면 아내의 죽음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결국 아내의 죽음은 그저 그런 수많은 미제 사건들 중 하나로 캐비닛 어딘가에 처박히게 될까?

 

*

 

검찰 측으로부터 아내의 페이스북의 계정과 비밀번호를 받았다. 변사자의 배우자는 그 통신 기록과 개인정보 일체를 열람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그렇지만 그다지 유의미해 보이는 계정은 아니다. 공들여 관리한 기색도 없고, 특별히 교류하는 유저도 없으며, 개설 후 여섯 해가 지나는 동안 네댓 개의 시시한 쇼핑 할인 정보와 몇 개의 일기 글이 게시되어 있다.

"이건 일종의 유서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의 변호사는 그렇게 말했다.

볼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아내의 비공개 처리된 글을 정독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나의 머리 위에 드리워져있다. 그것은 회사에서 차분히 업무를 처리해나갈 때도, 친구들과 스타벅스에서 만나 환하게 웃을 때도, 남편과 지극히 일상적인 저녁 식사를 나누는 중에도, 심지어 그와 성생활 중에도(여기에서 ‘그'는 내연 관계를 말하는 것 같다). 그가 충분히 젖은 내 안으로 들어오고 그의 허벅지와 나의 엉덩이가 과격하게 부딪혀 내 안에 사정할 적에도 이 올가미의 푸르스름한 그림자는 굶주린 돼지처럼 엎드려 있는 내 목덜미에 드리운다.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이 죽음으로부터의 부름은 나의 태생과 쌍둥이였을지도 모른다. 죽음, 죽음, 죽음. 죽음은 나의 욕망과 의지에 상관없이 주어진다. 나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신에게 내려앉은 이 싸늘한 올가미에 대해 무신경하게 살아왔다. 죽음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행복하도록 무지하고 그래서 더 사랑스럽겠지. 하지만 나의 경우는 어째서일까? 왜 하필 나이냐는 말이다. 간담 서늘한 올가미는 왜 이토록 선명한 형태로 내 목에 드리우게 된 것일까? 갑작스럽다. 말기 암 환자의 경우에도 나와 비슷할까? 아니다. 이것은 다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순수한 종류의 호기심이다. 암 선고를 받는다면 호기심 따위 생길 틈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망상의 이쯤에서 오르가슴에 이른다.

아아, 하고 괴성을 내는 어느 여자를 비밀스러운 유리창 뒤에 숨어 관찰하는 기분이 되어버린다. 저 음란하고 반항적인 눈빛을 띤 여자는 전혀 나답지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다. 이 순간 가장 나답지 않다고 느끼는 모습이 가장 나다운 것과 맞닿아있다. 이 더러운 광경을 본다면 남편은 나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겠지.

이제 올가미가 팽팽히 조여지고 나는 허공 속에 매달린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이 밀도 높은 정적, 백탁의 공백. 구름은 흘러가지 않고 풀들조차 단 한 번 살아본 적 없단 듯 숨죽인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며 공포에 질리거나 환호하지도 않는다. 단지 닭의 그것처럼 부러진 나의 목뼈는 기분 나쁘게 삐걱대며 흔들린다. 경직된 고깃덩어리. 억울하지도 떳떳하지도 않은. 그저 사라지고 잊히는 게 다인. 아무도 모르게. 새삼스러운, 너무나 새삼스러운 자신이 무색투명해지길 바라면서. 나는 강어귀에 젖은 새벽안개처럼 홀연히 사라지는. 밖에서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일까? 그의 목소리가 꿈속 저편의 벽면을 공명하는 것처럼 아득하다. 나는 시험 삼듯 대답한다.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세상 아래 던져졌다. 왜 이걸 몰랐을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지만 짚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비어있는 상자 속에 손을 넣고 휘젓는 기분이다. 나는 무얼 찾고 있는 걸까. 어쩌면 심장이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없었던 것 아닐까? 그런데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해하려 할수록 내가 깡통을 머리라고 달고 사는 인간이 된 것만 같다. 세상이란 게 모두 사기극 같기만 하다.

나의 오한에 가까운 만큼 몸이 싸늘한데도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목덜미,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사이 할 것 없이 점액처럼 미끈한 땀이 배어나는 것을 느낀다. 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천장을 치켜 본다. 원래 벽지가 이런 재질과 무늬를 지녔던가. 형광등의 덮개는 사각이 아니라 원형이지 않았나. 게다가 저런 턴테이블 같은 건 사들인 적도 없다. 어째서 한 방에 똑같은 벽시계가 두 개씩이나 붙어있단 말인가? 게다가 거꾸로 매달린 모습이라니. 양수에 젖은 망아지가 황야에 내던져질 때 느낄 위화감. 현기증이 가시질 않는다.

 

*

 

아내의 글을 읽고 부터, 벌써 나흘째 제대로 된 잠에 들지 못했다. 베개를 베고 긴 시간 눈을 감고 있었으니 긴 휴식이긴 해도, 수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불면증과도 다르다. 현실과 수면의 경계가 무너져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진득하게 반죽되어 있는 것이다. 이곳은 잠도 현실도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둘 모두이기도 하다.

 

몹시 갈증이 난다. 아스피린과 함께 차갑고 독한 술이 필요하다. 단순히 독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아슬아슬한 독주를. 지금의 나에겐 그런 다소 야만적이며 폭력적이기까지 한 술이 필요하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므로 무엇도 불가능이라 속단할 수 없을 테다. 이를테면 사악한 살모사가 마치 실험 표본처럼 두 눈을 뜬 채로 알코올 속에 잠겨있는 술병이 이 집 선반 어딘가에 놓여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서서히 해가 밝아오는 것을 이국의 낯선 문자처럼 드문드문 읽어 나가면서, 나중에 조금은 개인 정신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고 다짐한다. 그런데 무엇에 대해? 그만, 그만. 지금은 너무나 피곤하다. 아내가 죽었든, 심장이 아니라 맹장까지 남김없이 사라졌든,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외동딸이 참수형에 처하든지 간에, 그 어느 비극적인 사건도 이 육체의 사소한 작동 하나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삶 안에 갇혀있다. 이 고깃덩어리의 감옥 안에서 몹시 지쳐 있다. 그뿐이다. 좋다, 이제 방문을 열고 이곳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지극히 익숙한 장소로. 새벽 한 시, 방 안의 새벽은 짙은 포도주 빛깔로 메워져 있다. 문고리를 돌린다. 여전히 낯설다. 좀체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아내와 나의 보금자리에는 이런 형식의 문고리가 달려있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거칠고 차가우며 뱀처럼 말려 있지 않았는데.

이윽고 기묘한 문을 열어젖힌다. 그러자 곧 아내가 익사한 저수지의 난간이다. 나는 생각한다. 추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무언갈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비현실은 마땅히 비현실로 감응하자. 나는 시커먼 저수지로 첨벙 뛰어든다. 차가운 물살이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밀어낸다. 나는 그 폭압적인 물살을 거슬러 더 깊은 지점까지 발버둥쳐 들어간다. 숨이 막혀온다. 질식과도 같은 구속감이 몸을 죄어오는 것을 느낀다. 죽음을 느낀다. 마침내 한계점에 다다랐을 때 나는 손을 내뻗는다. 이 암흑의 세계에서 둔탁한 무언가가 손바닥에 와닿는다. 나는 달아나듯 수면 위로 헤엄친다. 몇 초만 늦어져도 위험할 것이다.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려는 찰나에 나는 물 위에 떠오른다. 그리고 녹슨 철제 사다리를 겨우 부여잡아 몸을 고정시킨다. 할딱거리며 페부까지 들어온 죽음의 냄새를 맡는다. 휘감긴 공포에 전신을 떤다. 그제야 손으로 건져 올린 것을 바라본다. 내 젖은 손바닥 위에 심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것은 아내다.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 우리는 마침내 재회한 것이다. 이때, 형사들이 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서 허리를 무릎으로 짓누르며 두 팔을 수갑으로 묶는다. 자기들끼리 무어라 소리쳐댄다. 그 소란 탓에 나의 아내가, 나의 사랑이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아아, 이처럼 따뜻하고 끈적한 생명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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