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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발

2021.11.11 13:5111.11

눈을 떴다.

“휴…….”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한숨부터 쉬었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곤히 자고 있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휴…….”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가서 환자용 소변 통을 들고 나왔다. 아직 밖은 어두웠다. 나는 주황빛 화장실 조명에 의지해 아버지의 기저귀를 벗겨내고 소변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쪼르르…… 쪼르르…….

밤새 모인 소변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긴 하품을 토해냈다. 5분 남짓 지나고서야 소변 소리가 멈추었다. 나는 소변 통을 옆으로 치웠다.

그때였다. 아버지의 다리가 경직으로 인해 발차기를 하는 꼴이 되자 미처 피하지 못한 나는 갈비뼈를 가격 당했다.

“으윽.”

아릿한 고통이 밀려온다. 생각보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갈비뼈를 싸고 있는 살들이 고통을 금세 완화시켜준다.

20여 년 동안 전신마비인 아버지를 수발하다보니 살이 40kg나 붙어버렸다. 원래 50kg였던 나는 힘든 환자수발을 하면 살이 빠지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이 힘드니 에너지 보충을 위해 더 먹게 되고 운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게 되니 어이없게도 90kg 뚱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연아.”

아버지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하마같이 생긴 애한테 지연이라니.

“더 주무세요.”

“물 좀 줘.”

나는 머리맡에 있는 물통을 손에 들었다. 미지근하다. 어젯밤 분명히 얼음물을 떠놨는데 날씨가 밤에도 30도를 오르내리니 당연한 일이겠지.

“덥다. 차가운 걸로 떠 와.”

아버지는 내 표정을 보고는 메마른 목소리로 명령한다. 다시 시작되었다. 울컥 무언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른다.

‘그냥 먹으면 안 돼? 새벽부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내가 이 집 종이야? 노비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나는 순순히 부엌으로 가 얼음을 가득 채워 빨대를 꽂아서는 아버지의 입에 대주었다. 벌컥벌컥 많이도 마시는 아버지를 보며 나는 소변이 금방 찰까봐 짜증이 밀려왔다.

“오늘은 신문배달 안 나가지?”

“네. 일요일이잖아요.”

“그럼 오늘 목욕 좀 하자. 여름이라 그런지 불편하구나.”

나는 불과 이틀 전에 목욕했던 일을 떠올렸다.

“아빠. 그저께 했잖아요.”

“뭐? 그저께 했으면 언제 할 건데? 한 달 후에? 1년 후에?”

아버지는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당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18살 때부터 아버지의 병 수발을 도맡아 했다. 다른 형제라도 하나 둘 쯤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아버지가 엄마와 나를 내팽개치고 그 여자와 여행만 가지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알았어요.”

나는 다시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살이 찌고 난 후부터 이랬다. 잠들기도 어렵고 깨기도 힘들었다. 겨우 육중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쌀을 씻고 김치국을 끊이기 위해 묵은 김치를 꺼냈다.

“지연아.”

언제부턴가 나는 아버지의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나는 한번도 10분 이상을 누워 본 적이 없었다.

“지연아.”

좀 쉴 만 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 가져와라, 귀 좀 파라, 텔레비전 켜라, 꺼라, 옆으로 눕혀라, 바로 눕혀라, 목덜미가 근질거린다, 긁어라, 세게, 약하게, 거기다가 네 시간마다 소변을 받아내야 하고 매일 한번씩 대변도 받아내야 한다.

“네.”

나는 울컥 올라오는 짜증을 간신히 억누르며 대답했다.

“아침에는 쇠고기 국 좀 끓여라.”

“고기 없는데요.”

“없으면 사오면 되지 또 말대꾸냐?”

짜증스러운 아버지의 말투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이, 곧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싱크대를 붙잡고 선 나는 냉동실에 넣어놨던 주먹 크기의 고기를 꺼냈다. 그것은 이제 곧 생리일이 되면 따뜻한 고기죽을 끓여 먹으려고 숨겨둔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생리를 시작하면 생리통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어느 날 엄마가 쇠고기 죽을 끓여주셨는데 뜨거운 죽을 먹고 나니 생리통이 가라앉았다. 그 후부터 나는 한달에 3, 4일 동안은 이 쇠고기 죽으로 버티곤 했다.

“아침 드세요.”

나는 아버지를 들어 벽에 기대어 앉히고는 밥상을 차렸다. 차린 거라고 해봐야 아버지의 밥과 국, 그리고 밑반찬 몇 가지뿐이었다. 나는 아버지 옆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 천천히 입에 넣어주었다.

“텔레비전 틀어라.”

아버지의 유일한 낙은 바로 텔레비전이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고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다였다.

나는 아버지의 밥을 다 떠먹여주고 나서야 아침을 먹는다. 하지만 그것도 빨리 먹어야 한다. 이내 아버지의 양치질을 해줘야 하고 세수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약을 먹고 누우면 그제야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한다.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꾹 참는다. 어쩌다 아버지 앞에서 조금이라도 한숨을 쉬면 집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른다. 낳고 길러줬더니 수발 좀 드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하는 것이다. 늘 똑같은 말이다.

‘낳아준 거 하나도 안 고맙고 길러준 건 당신이 아니라 엄마야. 생활비 한 푼 안주고 여자들이랑 놀러 다니던 당신 대신 공장 다니며 힘들게 산 엄마가 날 키운 거라고. 아직도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는지 몰라?’

가슴 속에서 오열하는 내 말도 늘 똑같다.

집안일을 모두 마친 후 나는 밥상을 다시 폈다. 이제부터 돈을 벌어야 한다. 아버지 때문에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는 나는 집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봉투 붙이는 거랑 인형에 솜 넣고 꿰매는 일, 그리고 포장지를 원통처럼 말아서 비닐에 넣는 일을 한다. 밤늦도록 해야 하루에 2, 3만원 정도 벌 수 있다. 워낙 단가가 적은 일이라 20여 년 동안 숙달된 일인데도 100만원을 벌지 못한다. 하지만 이거라도 안 하면 두 사람이 굶어죽을 판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지연아.”

한참 텔레비전을 보며 낄낄거리던 아버지가 또 나를 불렀다.

“왜요?”

“음료수 좀 가져와라. 목이 마르구나.”

말없이 얼음을 띄운 복분자 주스를 갖다 바친다. 귀 옆에 놓아주면 빨대로 잘도 빨아 먹는다. 몸에 좋은 것만 찾으니 다른 전신마비 환자처럼 살과 근육이 많이 빠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힘든 건 당연히 나다.

다시 밥상 앞에 앉았다. 땀이 줄줄 흐른다. 온몸에서 역한 냄새가 난다.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지하방이니 그렀겠지만 사람의 대소변을 방에서 다 받아내니 냄새가 배여 쉬이 빠지지 않는 것이리라.

“지연아.”

“…….”

꼭 한번씩은 이런다. 대답하기 싫어 입을 꼭 다문다.

“지연아.”

“…… 네.”

“얼굴 좀 닦아라.”

“금방 세수하셨잖아요.”

쨍그랑. 쿨쿨쿨.

아버지는 얼굴로 음료수 잔을 쏟아버리고는 나를 노려본다. 복분자의 진하고 붉은 빛이 쿨매트 위에 깔아놓은 여름패드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점점 색이 옅어졌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나는 이상하게 그 색깔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못된 년. 부모 고마운 줄 알면 보답하면서 살아야지, 어디서 대들어 대들긴.”

아버지가 호통을 친다. 아니, 그런 것 같다. 이리저리 침을 튀며 벌어지는 입만 보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생각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참, 아버지. 목욕하신다고 했죠?”

나는 곰팡이 냄새가 나는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물을 채웠다. 그리고 아버지를 가뿐하게 들어올려 욕조에 넣었다. 욕조에서는 하얀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감각이 없는 아버지는 목까지 잠기고서야 그것이 뜨거운 물인지 알아챘다.

“헉, 이년아. 너무 뜨겁잖아. 지금이 한겨울인지 아냐? 빨리 찬 물 틀어. 으악. 뜨겁단 말이다.”

그래봐야 아버지는 목밖에는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그런 아버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의 피부가 점점 발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인다. 내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아, 보인다. 저 색깔. 하하하. 아버지 몸이 온통 빨간 색이야. 크크크.”

나는 웃음 참기 위해 입을 막고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빨간 물 한 줄기가 졸졸 흐르고 있다. 나는 잠시 웃음을 멈춘다.

“응? 이게 뭐지?”

나는 목에 붙은 두툼한 살 때문에 잘 접혀지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숙여 내 사타구니를 보았다. 팬티가 온통 붉은 색이었다.

“아, 여기도 빨간 색이네.”

나는 팬티를 벗어 옆에 던져두고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힘이 다 빠진 아버지의 몸이 점점 욕조 속으로 잠기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버지의 몸을 꺼냈다.

“푸하, 이 미친년이 결국 날 죽이려고 하는구나. 내 그럴 줄 알았다. 망할 년. 그래. 죽여라. 내가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쌍년. 죽여라. 죽여.”

나는 아버지의 몸을 바닥에 눕히고는 일어섰다. 더욱 짙은 색이 보고 싶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보다가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서랍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날이 바짝 선 칼을 보자 그제야 아버지는 하얗게 질린다. 그 모습이 참 우스웠다. 죽이라며?

“어, 어 너, 도대체 무슨 짓을, 아악. 사람 살려.”

나는 칼끝으로 아버지의 발가락 사이를 꾹 찔렀다. 예상대로 아름다운 빛을 지닌 피가 흘러내렸다. 얼굴에서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너무 행복하다.

“아버지. 이렇게 예쁜 색깔이 아버지 몸 안에 얼마나 많이 있을까?”

이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몸을 찔러나갔다.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사실 아버지는 감각이 없기 때문에 고통도 없다. 그저 겁에 질려 저렇게 고함을 지를 뿐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멈췄다. 아마 기절한 것 같았다.

주위가 조용해지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나는 다시 칼을 들어 아버지의 몸을 발라 나갔다. 붉은 색의 살과 허연 뼈가 분리되어 나간다. 너무나도 아름답다.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피가 많아질수록 나도 점점 흥분하며 손놀림이 빨라진다.

“휴, 힘들어.”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는 감상하듯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졸리지? 이제 좀 자.”

나는 희번덕거리는 아버지의 눈을 억지로 감겨주고는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힘들었다. 하지만 힘든 만큼 홀가분했다. 행복했다.

나는 점점 잠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고는 칼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하얗게 발라진 아버지의 손뼈를 살포시 잡았다.

“나도 잠이 오네. 아버지. 점심은 좀 자고 나서 먹자. 내가 맛있는 거 많이 해줄게. 알았지?”

내 눈이 감긴다. 곰팡이 가득한 욕실 천정이 점차 흐릿해져 간다. 그리고 이내 암흑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순이 엄마도 들었어?”

“뭐? 아, 그 소리?”

“아우, 말도 마. 얼마나 끔찍한 일이야? 날마다 들린다며?”

“그러게. 꼭 낮 12시만 되면 그 칼 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니까.”

“벌써 몇 달째야? 그 부녀 시체 치운 지가 언젠데 아직 그래?”

“시체 치운 다음 날부터 만날 들리잖아.”

“그래도 동네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나마 좀 나은 거야. 마을 한가운데 있었어봐. 여기 땅값, 똥값 되는 거야.”

“굿을 한 번 하든지 해야지 원, 꼭 귀신이 사는 것 같잖아.”

“그래도 그 딸이 참 효녀였어. 그렇게 아버지 병 수발을 잘 들더니, 불쌍하게 됐지 뭐.”

“어쩌다가 욕실에서 미끄러져서는…….”

“그랬대?”

“못 들었어? 그 자리에서 바로 갔다지 아마. 그러니 그 집 아저씨는 굶어 죽은 거 아니야? 쯧쯧.”

“그런데 살벌하게 칼 가는 소리는 왜 들리는 거야?”

“글쎄……”

 

 

 

눈을 떴다.

“휴…….”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한숨부터 쉬었다. 습관적으로 시계를 본다.

새벽 4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곤히 자고 있는 아버지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를 이렇게 시작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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