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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세계대전:바퀴

2013.08.13 02:4308.13

 

숨을 죽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는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딘가 녀석들은 숨어서 우리를 비웃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 주위의 어둠은 녀석들 편이었다. 내게 승산이란 없었다. 애석하게도 방법이라곤 하나 남은 섬광탄으로 녀석들이 제 발로 어둠 속에서 뛰쳐나오게 해 최후의 일전을 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내 주머니 속의 섬광탄을 만지며 침을 삼켰다.

간간히 녀석들의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숨어있는 곳을 찾았다. 나는 재빨리 섬광탄을 꺼내 녀석들이 숨어있을 어둠속으로 던졌다. 그러자 작은 빛이 나타나 주위를 하얗게 삼켜버렸다. 그 순간 무수히 많은 녀석들이 빛 속에서 나를 향해 쏟아져 나왔다.

대체 몇 마리일까?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어쩌면 녀석들의 수는 인간들의 수를 넘어설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표정을 구기면서 녀석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특제 살충제를 뿌려댔다. 녀석들은 특제 살충제에 몸을 떨며 고꾸라져버렸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렇게 한 마리씩 죽어갔다.

하지만 녀석들은 끝도 없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되어 먹은 것들인지 번식력 하나는 끝내줬다. 그러나 내겐 그건 지옥을 세상에 강림하게 하는 능력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점점 빛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 내게는 희망이란 없었다. 지금 이 구역에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이 빛이 사라진다면 이 구역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또 기다려야 했다. ,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거기에 내가 없을 거라는 게 안타깝다. 톡톡히 공이라도 세워 보너스를 받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나 좀 살자고!

 

젠장, 제발 좀 죽어라고!!!”

 

악을 다해 소리쳤다. 여기 저기 살충제가 흩날렸다. 마치 뿌옇게 내려앉는 안개처럼. 탈칵탈칵 더 이상 살충제도 남지 않았다. 이제 끝인 것 같았다. 아니, 끝이 분명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오래된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참 그리울 것 같은 기억이었다. 살고 싶었다. 살아서 돈 많이 벌고 싶다.

 

돈 벌라면 살아있어야지!”

 

환청이 들렸다. 내가 속한 부대의 대장님이 자주하는 말이었다. 사실 난 그 대장이란 사람으로부터 돈독이 옮았다. 어찌나 돈 돈 돈 노래를 부르던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 넌 이 와중에도 그 돈 소리를 듣고 싶었냐?”

 

난 그런 내 스스로가 한심해 혀를 차며 혼잣말로 날 꾸짖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최상의 조건을 만드는 거다. 그러니 살아서 돈 벌어라. 내가  널 구하러 왔는데!”

 

정말이지, 대장의 돈 타령하는 헛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이 죽어가는 기척들이 느껴졌다. 촉각도 환각 같은 게 있었나 싶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날 세게 복부를 걷어찼다. 무척이나 아팠다.

 

정신 못 차리는 건가? 살아서 돈 벌라고!”

 

나는 배를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녀석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서 부스러졌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난 내게 손을 내민 그를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내가,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이곳에서 싸움을 펼치게 된 것도 한 달이 다 되 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무수히 많은 녀석들이 쏟아져 나와 도시를 덮고 한 지역을 장악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절망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때 녀석들이 그동안 우리에게 이를 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정부가 군대를 긴급히 파견해서 사태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녀석들의 잔당들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녀석들의 잔당들은 계속 번식하고 있었다. 세가 처음보다 많이 기울이고 열세인 와중에도 말이다. 그런 녀석들의 이름은 바퀴벌레였다. 그동안 우리가 무시하고 밟아버렸던 것들. 건건히 이길 수 있었다.

눈을 뜨자 하얀 천장이 보였다. 나는 여기가 어딘가 하며 주위를 살폈다. 낯이 익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신을 잃기 전까지만 해도 속으로 엄청 욕했던 얼굴도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말리며 침대에 그냥 누워 있으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나보다 선임들이 다 서 있는데 어떻게 누워 있을 수 있느냐면서 그들의 호의를 거부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대장님이었다.

 

인석아, 역시 내 말 듣고 일어난 거지? 이 자식들이 다 그걸 안 믿는다니까. 내가 너 구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기나 아냐? 한 구역 청소 다 했는데, 무전으로 내 부하 한 명이 내 바로 옆 구역에서 포위당했다고 그러는 거야. 정말이지, 내가 이 급 되가지고 네 녀석 구조까지 해야겠냐? 그것도 바퀴벌레 자식들한테서 말야. 으이구,”

 

물론 말은 부드럽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축복이었다. 살아있다는 축복, 안 그랬으면 그 녀석들에게서 죽고 난 이곳에서 장례를 치려야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소탕작전에 나갔다가 전사한 부대 내의 동료들도 꽤 된다는 소리를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장님은 안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여전히 까칠한 어투로 말했다.

 

어쨌거나 무사해서 다행이다. 하마터먼 너 장례 치를 뻔 했으니까. 몸조리 잘해라. 너 회복되면 곧장 소탕 작전을 받아서 다시 바퀴 녀석들한테 장악당한 집에 들어가야 할 것 같으니까. 설마, 트라우마 걸린 건 아니겠지? 그것도 웬만하면 이때 치료하고 와라. 알았냐?”

 

그 말에 나는 살짝 입가를 올리며 알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그리고 나는 대장님의 당부처럼 일주일 동안 푹 쉬었다. 게다가 종종 상담도 받으면서 임무 중에 받는 스트레스도 풀었다.

복귀 후 나는 곧장 다시 임무에 투입되게 되었다. 이미 몇 몇의 소대원들이 임무지로 먼저 출발하고 대장님이 남아 나를 반겨주었고, 대장님은 먼저 내 안부를 묻고는 임무지로 향하는 동안 이번에 투입되는 임무지와 세부적인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번 임무지는 작은 주택 하나다. 작은 주택이라고 생각하면 큰일 난다. 아래로 지하 2층이나 있어. 집구조도 복잡해서 어디에 뭐가 있는 지 알 길이 없는 곳이지. 집 주인장은 무슨 영문으로 그런 집을 지은 건진 모르겠지만, 바퀴 녀석들 피하려고 지은 것 같더군. 문제는 처음 하달 받은 임무가 조금 변경 됐다는 거다. 이틀 전에 한 소대가 먼저 여기에 침투했다가 얼빵한 한 녀석이 지하에 갇히고 바퀴 녀석을 마주한 모양이야. 그래서 지원을 하려던 우리가 그 녀석을 구조하는 것까지 맡았다.”


대장님의 그 얘기를 듣고는 굉장히 쉬운 임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갇힌 요원 한 명을 구조해 오면서 거기 있는 바퀴 녀석들을 죄다 섬멸해버리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 어찌 보면 쉬울 일이겠지만, 문제가 하나 있어. 웬만한 바퀴들은 먼저 간 소대가 처리했는데, 일병과 마주친 바퀴는 돌연변이라는 거야. 덩치도 일반적인 녀석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말이지.”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며 대장님을 쳐다보았다.

 

물론 특수한 무기 같은 건 지급은 됐나요?”

그런 게 있다면 특수부대 애들이 직접 했겠지. 없으니까 우리가 하는 거다.”

 

일반적이지 않은 바퀴. 그런 녀석을 일반소대인 우리가 처리하다니, 그것도 특수무기도 없이 마이다. 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 미래가 어두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임무지로 도착할 때까지 차는 덜컹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임무지에 도착하자 맨 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임무지 근처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쉴 틈 없이 무전을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관리하고 있었다. 나는 대장님을 따라 임시작전통제실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앞에 투입된 소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로 가 무어라 말하자, 그 사람은 부하를 시켜 내게 투입 시 내 목숨을 보장할 장비들을 들고 나타났는데, 받아든 장비들은 딱히 임무지 속에서 내 목숨을 지켜주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건네받은 장비는 등에 매는 해충제통과 방독면, 위생 옷이 전부였다. 나는 그 물품들을 받아들고는 대장님을 바라보았다.

 

대장님, 진심으로 이걸 들고 저기로 들어가라는 것입니까?”

물론이지, 보기보다는 좋은 걸세, 얼마나 바퀴 녀석들한테 효과가 좋은데, 또 저 방독면은 저 주택 내에서 반드시 필요할 거고,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 어찌되었든 간에 돈 벌려면 살아야 되지 않겠나? 그러니 그거 매고 들어가서 돈 벌고 와. 당장.”

 

나는 하는 수 없이 그것들을 가지고 임무를 수행하러 향했다.

집으로 들어서자 쾌쾌한 냄새와 먼지들이 코를 찌르고 막았고, 주위로 죽어있는 바퀴벌레들의 사체가 여기저기 너부러져 있거나 쌓여 있었다. 대체 얼마나 이 집에 서식하고 있었는지 상상만 해도 끔직했다. 내가 이전에 소탕하러 갔던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무전은 베이스캠프에 있는 대장님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대장님은 임무에 대해 다시 설명하면서 구조해야 하는 요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대장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요원의 위치는 이 집의 맨 지하에 있어 구조하기 꽤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아직 지하로 가는 길 중간 중간에 바퀴벌레 녀석들이 여전히 소탕되지 않은 곳도 있어서 조심해라는 당부의 말도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다가 또 내가 구조당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 그래도 일인 것을 어찌하리. 만약 싫다는 말을 꺼낸다면 대장님으로부터 돈 안 벌거냐는 말을 실컷 들어야 할 것이었다. 차라리 바퀴벌레 소굴로 들어가겠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건 나는 둘 다 싫었다.

나는 속으로 꿍하게 불평을 늘어놓으며 지하로 천천히 발걸음을 땠다. 한 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밑에서 아스러지는 건조한 바퀴벌레의 사체들이 느껴졌다. 하나 하나 밟을 때마다 온 몸에 징그러운 녀석들의 사체가 내 몸에 닿는 것 같았다. 게다가 자꾸만 바스락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만일 바퀴벌레 한 마리라도 내 눈에 띄게 된다면 재도 남김없이 태워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으며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계단은 어두컴컴했다. 현재 이 집에는 수도, 전기 같은 것들이 모두 끊겨 있어서 당연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두려움을 삼키고 망설임 없이 허리에서 손전등을 꺼내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벽들에 눈길이 갔다. 벽에는 단란했을 이 집 가족들의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아들 둘에 딸 하나, 그리고 아내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 이 가족들한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궁금했다. 이들은 살아있을까 걱정도 됐다. 어쩌면 안타깝게도 바퀴벌레 녀석들한테 당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들 가족에게 이런 일이 닥칠지 그 가족들도 몰랐을 거라는 거다. 그냥 그들은 하루가 어제처럼 즐겁거나 조금 피곤한 하루일 거라고만 생각했을 거였다.

계단을 다 내려오자 정체 모를 긴 복도가 나타났다. 방이 대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이미 앞서 같은 대원들이 다녀간 것인지 방들 중 일부가 열려있었고, 바닥에는 쓰린 먼지들과 아직 남아있던 바퀴벌레를 죽이고 치우지 않은 녀석들의 사체들이 굴러다녔다. 나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긴 복도를 따라 쭉 걸었다. 그러자 복도 끝에서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 더 다가가니 내가 속한 부대의 소속 선배 요원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 내려가고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내 목소리인지 알았는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아래에 엄청 많은 바퀴들이 있어서 말야. 저 바퀴 녀석들 처리하지 않으면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해서 이러고 있어.”

그럼 지급된 해충제로 없애면 되잖아요.”

 

내 말에 그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 해충제로는 안 되니까 문제지. 녀석들 우리 해충제에 면역력이 생긴 것 같아. 베이스캠프에 연락해보니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더군. 이러다가 다시 녀석들한테 여기 내주고 다시 지상으로 밀려나게 생겼으니 나 원.”


그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랬다. 그들은 지하 2층까지 내려갔다가 언제 불어난 것인지 알 수 없는 바퀴벌레 무리들에 의해서 다시 이곳으로 밀려났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밀리지 않기 위해 해충제를 분사하니 그 녀석들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는 것이다.

참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바퀴벌레 녀석들을 없애는 걸로만 알았다가, 갇힌 요원을 구출하는데 돌연변이 바퀴벌레를 잡아야 한다고 들었다가 이제는 해충제가 효과가 없는 녀석들이 지하2층에 득실대다니, 정말 단단히 잘못 꼬였다. 대장님은 돈을 벌어 와라고 들어가기 직전까지 돈 얘기를 했지만, 이거 돈 벌 상황은 분명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베이스캠프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은 앞으로 전진 해 구조 활동도, 퇴치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말없이 모두 심각한 표정을 취하며 무거운 침묵을 쏟아냈다. 항상 돈을 외치는 대장님이 그런 상황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고 해서 뭐 뾰족한 방법이라도 생긴답니까? 화염방사기라도 들고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대장님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대장님의 제안이 터무니없다는 듯 고개를 젓거나 손사래를 쳤다. 애초에 그러다가 집을 태우면 누가 그걸 보상해줄 거냐는 이유에서였다. 하긴 국가의 녹을 먹고 사는 이들로선 일을 만드는 걸 가장 싫어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녀석들과의 대치를 끝내기 위한 방법은 대장님 말처럼 화염방사기로 녀석들을 쓸어버리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는데, 개인적으론 대장님의 그런 방법을 사용했으면 싶었다. 정말로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럼 일단 다시 대원들을 이끌고 진입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대장님이 잠시 생각을 하다 말했다. 그 말에 그 자리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특별한 대책이라도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무슨 대책이 있을까? 대장님은 그저 구출과 함께 녀석들의 박멸을 목표로 전진할 뿐이겠지. 대장님의 그 거친 성격으로 보아 분명 그렇게 나올 것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대답은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집 안 지하로 돌아왔다. 이제 다시 나갈 수도 없었다. 높은 사람들은 우리의 진입 이후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다. 우리가 이 집에 남겨진 요원의 구출과 거대한 바퀴벌레를 퇴치하지 못했을 경우 이 집 자체를 불태우겠다는 심산이었다. 절대 확산되지 못하도록. 국가의 녹을 먹는 이로서 과격하지만 옳은 선택이었다. 저런 녀석들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겨우 역전된 싸움이 다시 힘들어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밖에서 기다리는 작전본부로부터 무전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대장님도 함께 우리와 들어왔기 때문에 무전에서는 대장님의 목소리 대신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먼저 무운을 빈다. 당신들의 어깨에 이번 전투의 승패가 걸려있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그나저나 역시 어떤 묘수 같은 것은 없나?”

 

무전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대장님이 답했다.

 

당연히 답 같은 것은 없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습니까?”

 

대장님의 답에 무전기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리고 대장님은 이곳에 들어온 모든 요원들에게 단단히 마음을 먹게 하며 녀석들을 없애기 전까지는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명심시켰다. 하지만 대장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녀석들을 없애지 못한다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설령 이곳에 남겨진 요원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 괴물이 살아있다면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장님의 전진이라는 외침과 함께 녀석이 기다리고 있을 건물 맨 아래층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내려갔다.

건물의 마지막 아래층에 가까워질수록 한 번도 맡은 적 없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손으로 코를 막아도 보았지만 냄새를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드디어 건물의 맨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본 광경은 참혹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녀석의 그 거대한 광경 앞에 떨며 공포에 질렀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다. 정말 끔찍했다. 게다가 녀석의 덩치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엄청났다. 모두가 녀석의 덩치에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녀석은 움직임이 없었다. 자고 있는 것인 걸까 싶었다. 하지만 녀석의 주위를 기어 다니는 수많은 잔챙이들을 본다면 녀석은 자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다만, 우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이리라. 녀석들은 낌새 같은 것은 잘 차리지만 눈은 나쁘니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대장님이 작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였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우리에겐 좋은 무기도 없고 녀석들을 압도할 인원들도 없다. 여기 있는 전원이 녀석을 없앨 전부다. 그러니 녀석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거라 생각되는 거라면 전부 꺼내 녀석에게 사용해라, 알겠나?”

 

그러면서 대장님은 날 쳐다보며 움직임 없는 녀석 뒤를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겨진 요원을 구출하라. 대장님이 내게 맡긴 임무였다. 나와 그리고 내 선배 동료 요원들은 대장님의 지시에 라는 답 대신 가벼운 끄덕임으로 답을 대신했고, 일제히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의 시작은 요란했다. 요란하지 않으면 녀석들의 주위를 끌 수 없을 테니 당연히 그러한 것이겠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니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선배 동료들은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대장님의 지시대로 쓸 수 있는, 들고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 녀석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한 마리 한 마리씩 잔챙이들이 쓰러져 갔다. 그리고 이 구역의 몹인 녀석이 우리 앞에 섰다.

그 순간 나는 이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곧장 나는 녀석의 뒤에 있는 문으로 달렸다. 녀석은 그런 나를 가만히 놔두고 내 동료와 선배들을 향해 다가가 징그러운 더듬이와 발들로 공격하기 시작했고, 내 뒤로 격렬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녀석한테 라이터로 불 맛 좀 보여줘!!!”

에이씨~ 라이터 다 떨어졌습니다.”

 

덕분에 나는 목표였던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며 문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이 문 뒤에는 내가 구조해야 하는 그 요원이 있다. 나는 눈을 한 번 질금 감았다가 뜨며 문을 열었다. 순간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쏟아졌다.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의 냄새였다. 힘겹게 눈을 떠 방 안을 살폈는데, 역시나 생존자는 없었다. 그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시체 한 구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여기서 구조의 신호를 기다렸을 그를 위해 묵념하고는 뒤로 돌아섰다.

내 선배 동료들은 여전히 녀석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녀석과의 싸움 주변에는 해충제 냄새와 함께 수류탄 파편과, 다 쓴 라이터 조각들 등의 녀석한테 쓴 소지품들이 널려있었다. 나는 선배 동료들, 그리고 대장님께 내 임무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큰 소리로 외쳤다.

 

대장님 제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대장님은 근처의 선배 동료들에게 후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 명령에 따라 계단이 있는 곳을 향해 열심히 뛰었다. 내가 계단을 향해 뛰는 동안 대장님은 수류탄을 꺼내 돌연변이 괴물 바퀴벌레를 향해 투척하고는 대장님 역시도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저런 녀석에게서 한 명의 팀원이 희생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인 일이었다.

 

그래, 자네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지?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애초부터 이런 상황에서 요원이 살아남았을 리는 만무하지. 문제는 저 아래층의 괴물이야. 녀석을 처치할 방법은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어. 이 건물에 파묻히게 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야. 그러니 우리도 이 건물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그 결정에 따라 우리는 철수를 시작했다. 왔던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처참한 광경들이 우리 옆을 스쳐지나갔다. 다시 봐도 끔찍했다. 아직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도 드문드문 눈에 띠었다.

아래에서는 계속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건물 전체가 내려앉아버릴 것이었다. 괴물한테 희생당하지 않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여유가 없었다. 녀석의 둥지가 되어버린 이곳에 묻히는 것 역시 녀석에게 희생당하는 것과 같을 테니까.

우리는 헐떡이며 입구에 당도해 호흡을 내쉬었다. 하지만 힘겹게 당도한 입구는 밖에서 막아 나갈 수 없었다. 큰일이었다. 잠시의 안도가 위급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천장에서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떨어졌다.

 

본부 들리면 대답하라.”

 

그 순간 대장님이 무전기를 꺼내 밖과 무전을 시도했다.

 

들린다, 대답하라. 괴물은 처리했나?”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에 터트린 수류탄이 낡은 지하에 충격을 줘 조만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러자 밖에서 무전이 들어왔다.

 

분명 녀석을 없애지 못하면 밖으로 나오지 못할 거라고 하지 않았나?”

, 하지만 녀석들을 없앤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차피 녀석들은 이곳에 파묻혀서 활동을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 말이 끝난 뒤, 무전기에서는 침묵이 잠시 흘러나왔는데, 그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좋다, 건물 자체를 지금 당장 무너뜨릴 수 있도록 폭발물팀을 준비하도록 하지.”

 

무전기의 무전이 끝나자, 곧장 막혔던 입구가 열리더니 환한 빛이 우리를 맞이했다.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벌써 어둠에 잠겨가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주변으로 안전복을 착용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바삐 움직였고, 이내 건물 주위로 폭발물이 설치되었다. 폭발물은 카운트 신호에 맞춰 일제히 터졌다.


퍼버펑 퍼버버버펑

 

건물이 산산조각나면서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한 희열을 느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녀석과의 싸움과도 잠시 안녕이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장님도, 내 선배동료들의 표정에서도 나와 비슷한 무언가를 읽을 수 있었다.

그 날 우리는 팀 회식을 가졌다. 대장님이 자신의 자비로 수고했다면서, 팀원들 몸 보양 좀 시켜야 겠다며 한 턱 냈다. 그렇지만 그 회식의 의미를 우리 팀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건 수고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더욱이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어서 녀석들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언제 상황이 역전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팀장님이 베푼 회식은 그때 이거 먹은 값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대장님은 에어컨이 고장 나 작동되지 않는 중국집으로 데려가 우리 앞에 더운 날에 잘 선택하지도 않는 짬뽕을 모두에게 시킨 게 증거였다.

그러나 당장 대장님의 메뉴와 회식장소 선택에 토를 달았다간 곧장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르니 나는, 그리고 내 선배와 동료들은 아무 말 없이 앞에 놓인 짬뽕을 맛있는 척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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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지독한 바퀴와 싸운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바퀴가 집안 곳곳에서 출몰하고, 심지어 밖에서 두 세마리씩 현관문을 향해 달려오는 녀석들이 마치 좀비를 연상시키더군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서 바퀴벌레들에 대한 욱하는 마음을 담아 적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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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13.08.13 19:03 댓글 수정 삭제

    캐릭터들이 현실성이 없어요..

    풍자소설이면 아예 우스꽝스럽게 연출했다면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을텐데 어중간하게 중간 쯤에 걸친 느낌이라 어색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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