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대부호였다.
그는 인공지능과 뇌 데이터를 디지털 데이터화시키는 것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순수인간이었다. 순수인간이란 신체적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사이보그가 아니란 것이다. 이것은 선택 받은 소수이자 동시에 그가 과거의 사람임을 의미했다. 세계를 변화시킨 전쟁 속에서 자신의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으며 순수인간의 수도 극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순수인간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력과 정치적, 물리적 힘을 갖추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대부호의 어린 복제였다.
아버지는 자기의 유전자가 반 밖에 없는 존재보다 자신의 온전한 유전자가 모두 있는 존재가 자신의 후계자로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라 부르는 대부호가 가진 나에 대한 기대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지는 기대와 미묘하게 다르며 더 강화된 것이었다.
내가 15살 때 대부호보다 키가 5cm 더 커졌을 때, 대부호는 기쁨과 아쉬움을 보였다.
‘어릴 시절 가난하지 않았다면 키가 더 컸을 텐데. 너는 이 만큼이나 자랐구나!’
그리고 내가 8살 때 대부호가 이미 완성한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자 실망과 분노를 보였다.
‘내가 6살 때 생각하고 8살 때 완성해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을 너는 아직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래서 나는 대부호의 명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의 '공부'는 관리자란 안드로이드가 최신식 기계로 가르쳤다
나는 ‘공부’가 하기 싫었다. 지루하고 귀찮은 시간이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이 싫었다. 그러자 대부호는 대부호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 그리고 웅장하게 돌아가고 있는 공장과 끝없이 펼쳐진 평원 위에 있는 농장. 내가 대부호의 뒤를 이으면 가지게 될 것들 이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순수인간은 전쟁으로 거의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는 로봇들이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