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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안식일

2013.06.15 01:5306.15


  가로등 불이 꺼졌다. 일주일은 내리 깜박이던 등이었다. 제때 갈아주었더라면 좋았겠지만 아무도 민원을 넣지 않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눈살을 찌푸리며 휴대전화를 꺼내 길을 비췄다. 점멸하던 등불보다 못한 빛이었다. 계단은 어둡고 가팔랐다. 힘을 주어 층계를 디디며 남자는 오늘 걸려온 전화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내 피로가 몰려들었다.

  현아는 상담전화를 걸 때마다 남자를 연결해 달라 부탁했다. 그가 특별히 누군가를 어르는 데 재능이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남자가 현아의 전화를 처음 받은 것은 두 달 전이었다. 죽고 싶어요. 간결하고 단도직입적인 그 말은 어울리지 않게도 아주 차분한 목소리에 담겨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남자는 매뉴얼을 상기하며 답을 이어나갔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절을 더듬더듬 이어나가는 말투는 스스로가 듣기에도 썩 설득력이 없었다. 그냥, 그냥 너무 힘들어요. 먹는 것도 힘들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요. 무미건조하게 이어지는 문장들에 남자는 답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사전교육 때 배운 말들을 언제 건네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현아는 남자의 말을 특별히 기다리지 않았다. 친구가 죽었어요. 그 애는 나보다 훨씬 안 힘들었어요. 돈도 더 많았고, 성적도 더 좋았고, 더 예쁘고, 친구도 더 많았어요. 그런데 죽었어요. 옥상에서 뛰어내린 걸 반 애들 전부가 봤어요. 그게 지난주 목요일인데, 방금 전 같기도 하고 일 년 전 같기도 해요. 잘 모르겠어요. 왜 죽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정말 죽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애는 나보다 훨씬 예뻤어요. 현아는 제 말만 잔뜩 쏟아내다가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 너머 삑삑대는 기계음을 들으며 남자는 자살전염을 떠올렸다. 이후 현아는 거의 매 주 전화를 걸어왔다. 내용은 평범한 여고생의 수다였지만 감정기복 없는 음성 사이로 죽고 싶다는 말이 양념처럼 들어갈 때면 한숨이 나왔다. 오늘 현아는 자살을 예고했다. ‘죽고 싶다’가 아닌 ‘죽을 것이다’는 다가오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곧이어 연결된 통화의 첫마디가 “죽어가고 있어요.”였기 때문에 남자는 급히 숨을 삼켰다. 다행히 그건 현아가 아니었다. 낯선 여자는 죽고 싶지 않다고, 죽으려 손목을 그었지만 사실은 죽고 싶지 않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따금 이런 전화가 걸려오곤 했다. 상담을 받다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후회가 될 때 119가 아닌 자살예방센터의 번호를 눌렀다. 남자는 차분하게 여자의 주소를 묻고 구급대원이 그녀를 찾아갈 때까지 묵묵히 비명을 들어주었다.

  돌아온 집은 남자가 출근할 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낑낑대는 개를 형식적으로 쓰다듬으며 남자는 옷을 벗었다. 의식적으로 크게 들이쉰 숨이 폐를 감돌다 나갔다. 남자는 눈을 감았다. 개의 건조하고 뜨거운 혓바닥이 손목의 흉터를 핥았다.


  고기를 굽던 선배 하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고정내담자가 한 달째 전화를 안 걸어.”

  이따금 있는 일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불안해했다. 이제 괜찮아져서 그렇겠죠. 괜찮을 거예요. 다들 형식적으로 위로를 건네며 소주를 들이켰다. 상담을 중단한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자살을 행동에 옮긴다. 남자는 현아를 떠올렸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선배 중 하나가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중에 목요일 자살률이 제일 높은 거 알아?”

  “월요일 아니었어요?”

  “어, 원래는 전 세계적으로 늘 월요일이 압도적이었는데, 어제 센터장님 사무실 들어갔다가 서울 자살률 통계표 봤거든. 그거 보니까 목요일 자살률이 확 늘었더라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주말이 끝나고 업무가 시작되는 월요일은 그 특성상 자살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목요일은 너무 어중간했다. 하루만 견디면 금요일이고, 거기서 하루만 더 견디면 주말인데. 무언가가 시작되는 날도, 끝나는 날도 아닌 목요일이라니.

  “잘못 본 거 아니에요?”

  “야 내가 암만 그래도 그런 걸 잘못 보겠냐.”

  “통계 그래프 같은 건 복잡하니까 잘못 볼 수도 있죠.”

  그런가, 하며 선배는 말꼬리를 흐렸다. 딱히 분위기가 밝아질 법한 화제도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곧 다른 이야기들을 안주삼기 시작했다. 모임은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고도 세 시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남자는 택시 뒷좌석에 몸을 묻었다. 취기에 졸음이 밀려왔다. 운전기사의 말을 건성건성 들어 넘기며 바라본 야경은 높고 반짝였다. 이따금 저 빛들 중 한군데서 사람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남자는 알았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한강대교의 난간에 닿아 스러졌다. 난간에 도달하기 전에 끊긴 빛들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남자는 그런 그림자들 중 하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끝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급히 기사에게 차를 세워 달라 청했다. 거스름돈도 마다하며 요금을 던지다시피 내고 나온 남자는 곧장 난간의 사람을 붙들었다. 가느다란 팔이 한 손에 잡혔다. 낯선 이는 노인인지 처녀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만큼 피부가 거칠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라며 여자를 설득하려던 남자는 곧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자신이 익히 아는 자살시도자들과는 달랐다. 남자가 여태 보아온 사람들은 굳이 자해하지 않아도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힘들다 죽겠다 입버릇처럼 내뱉다 더 이상 힘들다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된 사람들의 얼굴은 그랬다. 여자의 얼굴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과도 달랐다. 그런 이들은 울부짖으며 전화를 걸어 화를 내거나 한탄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상상하는 건 언제나 어렵지 않았다. 눈앞의 여자는 더없이 평온해보였다. 이곳이 한강대교만 아니었다면 관심도 두지 않았을 터였다. 남자는 여자의 팔을 놓고 택시를 생각했다. 요금을 지불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할 걸, 아니 그냥 내리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가 꼬리를 물 무렵 남자의 귀에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잡아도 소용없어요.”

  네? 남자의 얼빠진 반문에 여자는 말을 이었다.

  “나는 아주 행복해질 거거든요.”

  여자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곧이어 남자에게 어떤 주소를 속삭이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당신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 표정 그대로 여자는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여자의 얼굴이 시야 밖으로 벗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그곳엔 긴 머리칼이 자리했고 곧 그마저도 사라졌다. 여자의 눈은 마지막까지 남자를 향해 웃고 있었다. 여자의 몸뚱이가 한강의 수면에 부딪치듯 빠져드는 소리를 듣고서야 남자는 정신을 차렸다. 강물은 그저 조용히 흘렀다. 팔다리를 허우적대는 여자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멍하니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구조대원이 올 때까지 남자는 그 자리에서 강을 바라보았다. 여자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목요일 오전 02시 43분, 구조대는 공식적으로 여자의 사망을 확인했다. 시체는 몹시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곳은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조립식 물류창고 같았다. 판넬사이딩으로 감싸인 건물은 5층 정도 되어 보였다. 잘못 온 게 아닐까 남자는 잠시 고민했다. 여자의 속삭임은 숨결 같았기에 몇몇 음절을 잘못 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남자는 걸음을 떼었다. 실내는 생각보다 높고 밝았다. 가운데를 비우고 통유리로 짜 맞춘 천장은 태양 볕을 그대로 들여보냈다. 바닥은 자연 그대로의 흙이 깔린 채였다. 일부러 흙을 쏟아 부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바닥을 만들지 않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실내에 우뚝 선 거목이 그 증거였다. 몇 명이 나무를 끌어안아도 손을 맞잡기 힘들 정도의 둥치에 남자는 위압감을 느꼈다. 건물의 높은 천장에 닿을 만큼 나무는 거대했다. 넋을 놓고 나무를 바라보던 남자는 한참 후에야 건물 안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알아차렸다. 어떤 이는 남자를 보며 속닥였고 어떤 이는 나무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잡고 묵념을 했다. 차림새가 말끔한 이가 있는가 하면 근처에만 가도 술 냄새가 풍겨오는 이도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나무를 바라보았다. 서낭당의 나무처럼 색색의 천을 두른 것도 아니고 그저 거대하기만 한 나무가 행복의 정체라면 조금 싱거울 것 같았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잔잔하게 깔린 것도 마음이 불편했다. 대면한 풍경을 신비롭다 평해야 할지 미심쩍다 표현해야할지 남자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더 들어왔을 때쯤 나무그늘에서 젊은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신주님!”

  술 냄새를 풍기던 사람이 몸을 접듯이 숙이며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허리를 굽히며 여자를 맞이했다. 신주라 불린 여자는 우아한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목례했다. 여자의 움직임에 따라 얇고 흰 옷이 흔들렸다. 여자는 고개 숙이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설교를 시작했다.

  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동안 남자는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의 이야기는 주로 예의범절과 행복을 중시하는 평범한 훈시였으나 이따금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기도 했다. 반박할 말이 있는 헛소리가 아니라 당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부터 알기가 어려운 말이었다. 여자는 거대한 나무를 세계수라 불렀다. 신성한 세계수가 인간을 보살피고 구원한다니, 남자는 듣던 말을 그대로 흘려버렸다. 흙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은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책을 펴들고, 여자의 말이 끝날 때마다 주문 같은 것을 웅얼거렸다. 한참을 듣고서야 그것이 무광태지인목신지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백오십 명가량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의미 모를 말을 외는 모습에 남자는 기가 질렸다. 여자의 나직한 음성이 공간을 틀어쥐고 있었다.

  “태초에 빛이 있어 거대한 세상이 움트고, 땅이 솟아 인간이 발 딛고 살다 명을 다하니 그 속에서 나무가 자라 신명함에 도달해 비로소 세계가 완성되리라. 인간은 현세에서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것은 완전한 행복이 아닌 미완의 고난입니다. 목요일은 신령한 세계수의 기운이 가장 강한 날임을 잊지 마세요. 오늘은 우리가 구원받는 안식일입니다.”

  출구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바닥에 대중없이 앉은 사람 오륙십 명을 헤치고서도 십여 미터를 뛰어야했다. 여자를 제외한 모두가 앉아있는 이곳에서는 일어서기만 해도 시선이 몰릴게 뻔했다. 남자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여자와 나무를 바라보았다.

  “안식일에 물이나 땅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만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현세의 삶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 진정한 생을 살 수 있는 것처럼, 현세를 깨부숴야만 행복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 품은 것들을 버리는 데에 두려움을 갖지 마세요.”

  흰 천을 여러 겹 감싸듯 걸친 여자는 남자에게 무척 이질적이었다. 거목의 이파리 사이로 새어드는 태양빛은 마치 별 같았다. 통유리를 거친 직사광선 대신 그 별 같은 빛 오라기를 받으며 여자는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이 끝날 때마다 괴이한 말을 읊조리는 사람들을 보며 남자는 자신이 기르는 개와 현아를 생각했다. 죽고 싶어 하는 누군가를 달래고 있을 직장동료들도 떠올랐다. 설교를 끝낸 여자가 좌중을 돌아보다 말했다.

  “기도합시다.”

  “무광태지인목신지완”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사람들이 합창했다. 그리고 여자가 걸어 나왔다.

  여자는 양 팔로 어깨를 감싸 안은 채 한 발짝씩 걸음을 옮겼다. 한 호흡에 한 걸음씩, 아주 느린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나 띄엄띄엄 넓게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레 여자의 앞으로 길이 생겨났다. 엉거주춤 일어난 남자를 향해 여자는 곧게 걸어왔다. 선이 고운 얼굴이었다. 남자가 두어 걸음 물러서는 동안 사람들은 일종의 대열을 만들었다. 여자가 멈추어 선 곳은 그 대열의 정 중앙이었다. 설교와 함께 한 귀로 흘려듣던 음악이 조금 커졌다. 여자는 그 자리에서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어깨를 감싼 손이 옆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을 향했다. 여자가 입은 여러 겹의 치마가 넓게 퍼져 펄럭였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넓게 서 준 덕분에 출입구까지는 금방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에 달려 나가려던 남자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중앙의 여자처럼 제자리에 서서 팔을 둥글게 치켜들고 빙글빙글 돌았다. 여자의 반대방향으로 일제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남자에게 몹시 혼란스러웠다. 남자가 다시금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흰 옷을 입은 예의 그 여자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남자는 그 표정을 알았다. 나는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던 그 여자. 망설임 없이 한강으로 뛰어들었던 그 여자와 같은 표정이었다. 남자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여자가 춤추던 자리에 섰다. 남자는 묻고 싶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세요. 그 의문이 말이 되어 나오기 전에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그가 빙글빙글 돌 수 있게 끌어 주었다. 여자는 곧 아까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정쩡한 자세로 같은 자리를 맴돌며 남자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그들은 모두 한강에 뛰어내렸던 여자와 흡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보다는 덜했으나 분명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한참을 제자리서 돌고 있으니 당연했다. 어지러운 머리를 떨어뜨린 뒤에야 남자는 흰 옷의 여자가 맨발임을 알아차렸다. 흙이 곱게 깔린 땅 위에서 여자의 맨발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남자는 계속 지켜보았다. 반복적인 멜로디와 무척 잘 어울렸다.


  그날 밤 현아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상시 녹음기가 돌아가는 상담전화에 대고, 남자는 왜 죽지 않았냐고 묻는 대신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했다. 현아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배어있었지만 울음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죽으려고 했어요. 약까지 잔뜩 모아뒀는데…….”

  “무슨 약을 모았는데요?”

  “그냥 약이요. 해열제도 있고 감기약도 있고 진통제도 있고.”

  수면제가 아니더라도 다량의 약물을 섞어 섭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남자는 짐짓 태연을 가장하며 현아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이걸 다 삼키고 나서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어요.”

  “자살기도가 실패할까봐 무서웠다는 뜻인가요?”

  “아뇨,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다음이 무서웠어요.”

  그 뒤를 떠올려본다는 건 좋은 징조였다. 많은 사람들은 자살이라는 화제를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반대였다. 자살을 하고 나면 어떻게 될 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은 오히려 충동 억제에 도움이 됐다.

  “죽고 나면 어떨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막연히 지금보단 나을 것 같은데. 그냥 아무 것도 없이 끝나는 거였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하는데, 역시 죽어본 사람 말을 들을 순 없으니 잘 모르겠네요. 그럼 현아 양이 죽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지도 생각해봤어요?”

  “그건 그냥 평범하지 않을까요. 우리 학교는 제 친구가 뛰어내린 뒤에도 별로 다를 게 없어요. 그냥 옥상 문이 잠기고 장의차가 운동장을 한 바퀴 돈 게 전부예요.”

  “현아 양은 그 일로 힘들어하고 있잖아요?”

  “전 그것 때문에 힘든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 애는 나 같은 건 별로 신경 안 썼을 거예요. 홀가분하게 뛰어내렸겠죠?”

  현아는 잠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게다가 그 애는 나보다 머리도 좋았고 얼굴도 더 예뻤어요. 친구도 많았고. 그냥 나는 그 애가 왜 죽었는지 이해가 안 될 뿐이에요. 내가 죽어도 지금 저처럼 혼란스러워하는 애는 없을 거예요. 난 다른 애들보다 잘난 게 없어요. 친구도 그 애 하나뿐이었고.”

  현아는 그 말을 끝으로 또 전화를 끊어버렸다. 현아는 늘 그랬다. 어느 순간 말을 맺고는 곧바로 통화를 중단했다. 남자가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현아는 늘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남자는 현아의 자살가능성을 점쳐보았다. 얼핏 생각하면 그렇게 높지 않아보였지만 청소년의 자살은 대개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편이었다. 늘 죽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있는 현아라면 미약한 계기라도 기폭제가 될 만 했다.


  어둑하고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며 남자는 연신 마른세수를 했다. 오늘은 유달리 피곤했다. 24시간을 기준으로 하루를 따진다면 우선 어처구니없을 만큼 행복한 표정으로 자살하는 여자를 보았고, 기이한 신흥종교집단에서 예배랍시고 춤을 췄다. 현아의 생사를 확인했으나 이것이 그저 유예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았다. 뻑뻑한 현관문을 열며 남자는 오늘 일을 상기했다. 종교단체에서 들은 멜로디가 자꾸만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오늘은 곧바로 잠이나 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집안의 불을 켠 남자는 허전함을 느꼈다. 늘 현관까지 마중을 나오던 개가 보이질 않았다. 방 안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개는 그 곳에서 피 섞인 토사물을 뱉어 내는 중이었다. 개는 남자를 보고도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자정을 삼 분 남긴 시각이었다. 남자는 몸을 뉜 채 개를 쓰다듬었다. 더 게워낼 것도 없는 개는 이제 위액을 토했다. 쪽잠을 자며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남자는 아침이 되자마자 상자에 개를 넣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무언가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의사 앞에서 남자는 통장의 잔고를 떠올렸다. 난생 처음 와본 동물병원의 진료비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검사 결과를 앞에 두고 의사는 대뜸 질문을 던졌다.

  “몇 년이나 키우셨습니까.”

  “아마 십오 년…… 아니 십삼 년쯤 키운 것 같습니다.”

  “치료는 해 보겠지만 체력도 약하고 나이도 상당히 든 편이라 대비를 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는 축 늘어진 개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부턴가 기운이 없어 보이긴 했으나 늙었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며칠 간 나아지기는커녕 증세가 악화되는 개를 보며 의사는 남자에게 안락사를 권했다. 개는 그 순간에도 피 섞인 액체를 게워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더 해줄 것이 없었다. 의사는 마취제를 투여하고, 이어 약물을 주사했다. 개의 심장은 빠르게 멎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게워내지도, 숨을 쉬지도 않는 개의 몸뚱이는 한동안 따뜻했다. 남자는 의사에게 사체 처리를 맡겼다. 그날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집에서 남자는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나무 앞에 선 여자는 여전히 상투적인 얘기와 이해하기 힘든 소리를 번갈아 했다. 생이 힘드니 스스로 숨을 끊겠다는 말은 질리도록 들어왔는데도 여자가 하는 주장은 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이곳에서 자살은 도피가 아닌 도전이었다. 남자가 봄볕의 나른함에 취해있을 무렵, 여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난주에도 그랬듯 사람들은 넓게 섰고 남자도 그들을 따라 엉거주춤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자가 춤을 추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지난주에 새로 오신 신도님이시네요.”

  남자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오게 되셨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여자의 미소는 한없이 상냥했다. 남자는 더듬더듬 지난주에 본 광경에 대해 털어놓았다. 여자의 웃음이 더욱 깊어지는가 싶더니 그녀는 곧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한 신도님께서 구원받는 모습을 지켜보신 분이 여기 계십니다!”

  간격을 두고 서 있던 사람들이 웅성대며 다시 몰려들었다. 당황한 남자에게 여자는 청을 건넸다.

  “그 때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어림잡아도 백오십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일제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기대에 찬 그 눈빛이 무서웠다.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갑갑한 상황에서 아, 저, 그 만을 더듬거리는 남자를 여자가 부드럽게 달랬다.

  “편안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정말로 평온했다. 남자는 심호흡을 한 뒤에 더듬더듬 그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자살자가 자신은 행복해질 거라고 말했다는 대목에서 사람들은 또 한 번 주문 같은 그 말을 합창했다. 여자는 벅찬 목소리로 외쳤다

  “지난주 한 분의 신도님께서 구원받으셨습니다. 영생을 얻으신 신도님을 기리며 기도합시다!”

  남자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환희에 잠식된 그들의 얼굴은 지난주 보았던 자살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의 괴이한 기도가 끝난 직후, 여자는 흔들림 없이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남자는 조심스레 여자를 불러 세웠다.

  “신주님?”

  십여 분을 제자리서 돌았던 탓인지 현기증이 일어 몸을 가누기가 힘겨웠다. 여자는 웃으며 남자를 부축했다.

  “무슨 일이세요 신도님?”

  남자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자신이 왜 이 여자를 붙들었는지 조차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질문도 아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여자는 머뭇거리는 남자를 차분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곳의 신도님들은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 분들입니다. 삶이 너무 힘드니 구해 달라 비는 사람들이지요. 새로이 오신 신도님께서는 지치고 불운했던 신도님이 구원받는 모습을 목격한 겁니다. 참으로 뜻 깊은 광경 아니었나요?”

  확실히 뇌리에 깊이 박힐 만큼 인상적이긴 했으나 남자는 선뜻 동조할 수 없었다.

  “행복은 사는 동안 누리는 것 아닌가요. 그 사람이 행복했던 건 그 때가 마지막이었을 겁니다. 그게 무슨 구원입니까.”

  “그 신도님은 새로운 세상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고 계십니다. 어떻게 그 날이 그 신도님의 마지막 생이라 자신하시는지요.”

  “애초에 불확실한 사후세계를 확정짓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요. 저는 매일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요. 그들은 그저 현실에 휩쓸리고 지쳐서 도망갈 곳을 찾다 못해 죽음으로까지 떠밀려나가는 겁니다. 자살자들은 결국 대부분 그래요. 도피하고 도피하다 삶 자체에서 도망치는 거예요. 그 분도 결국은 사는 게 힘겨워 달아난 것 아닌가요?”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웠으나 남자는 여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매뉴얼도 배려도 없이 속엣 말을 쏟아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건물 안에서 남자를 노려보지 않는 사람은 오직 신주뿐이었다. 여자의 눈빛은 상냥했다.

  “그래서 그 분은 불행해 보이던가요? 지쳐 보이던가요?”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 때 본 사람은 자신이 보아온 다양한 얼굴들 중에서도 가장 평온하고 환희에 넘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자가 속삭이듯 말을 덧붙였다.

  “저는 그저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랄 뿐입니다.”

  “굳이 죽어서 행복해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 분은 자살시도로 사망한 거고요, 사람은 언제든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신도님께서는 행복하신가요?”

  남자의 표정이 잠깐 일그러졌다. 자신의 행복 유무는 지금 대화와는 별개라고 말하고 싶었다. 내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자신도 내담자가 삶에 의욕을 갖고 감사 인사를 하러 올 때면 뿌듯하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곳의 사람들처럼 웃어본 일이 까마득했다. 아니, 그런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는지 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전화 너머의 얼굴 모를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저주했다.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듯 세계수의 영께서는 언제나 신도님을 어여삐 여기시지요.”

  “제 곁엔 부모가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종교에 의지해본 적도 없고요.”

  “그럼 제가 대신 곁에 있어 드리지요.”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우리 함께 춤출까요?”

  여자의 몸이 가까워지자 남자는 다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자에게서는 짙은 삼나무향이 났다. 남자는 여자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여자의 맨발이 남자의 운동화에 자꾸만 스쳤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남자는 말없이 몸을 빼내어 그대로 뒤를 돌아 걸었다. 삼나무 향에 현기증이 일었다. 신도들의 시선이 쏠리는 게 느껴졌으나 남자는 어디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 한참을 걸어 택시에 오르면서도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느지막한 오후에 출근해 업무를 이어받은 남자는 평소보다 상담에 집중했다. 지쳤다는 말만 반복하는 노인에게도, 아무도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는다며 우는 소년에게도 남자는 끊임없이 삶을 설득했다. 상담치료는 환자의 의지만 있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었다.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건다는 것부터가 치료의지가 있다는 의미였기에 남자에게는 전화 한 통 한 통이 소중했다. 밤이 깊어갈 무렵 남자는 십 수 번째로 수화기를 들었다. 현아였다.

  “선생님. 저 아직도 살아있어요.”

  “다행이에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전 안 고마운데. 얼른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선생님이 말해준 건 하나도 하고 싶지 않아요. 친구를 사귀는 것도 동물을 키우는 것도 다 귀찮아요.”

  “하지만 현아 양. 전에 현아 양이 말한 대로 죽은 다음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우선은 주어진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지 않아요?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가요?”

  남자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흠칫 놀랐다. 오전의 기억이 떠올라, 해선 안 될 말을 입에 담은 기분이었다.

  “행복해서 뭐가 좋아져요 선생님? 네, 행복해지고 싶어요. 행복한 거 다 좋은데 여기서 행복해지고 싶진 않아요. 그럴 수가 없어요. 그냥 죽어서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현아의 언성이 높아졌다. 남자는 습관적으로 현아가 전화를 끊었으리라 여겼다. 삑삑대는 기계음을 기다렸지만 수화기에서는 현아의 숨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왔다. 현아가 목소리를 높이고도 전화를 끊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기에 남자는 고맙다고 말할 뻔 했다. 혀끝까지 나오려던 말을 누른 남자는 현아의 이야기를 되새겨보았다. 수화기 저편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여기서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네, 그냥……. 그냥 저는 안락사 당하고 싶어요. 더 이상 괴롭고 싶지 않아요. 울고 화내기도 지쳤어요.”

  남자는 한참 말이 없었다. 흐느끼는 소리를 듣던 남자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럼 편안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게요.”

  삼나무향이 코끝에서 맴돌았다. 오늘은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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