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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인자 지망생

2014.02.04 09:3802.04

살인자 지망생





어릴 적엔 난 악인의 내면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좀 머리가 큰 뒤엔 나도 상황에 따라 언제든 악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상황이야 다양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곧 악인임을 느낀다. 누구나 복합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다.

표창원은 그의 저서에서 한국의 연쇄 살인마의 특징을 다음과 같다 했다.


1. 일정한 직업이 없거나, 있어도 우수한 실적을 나타내지 못한다.
2. 연령대는 20대 후반~40대 후반일 가능성이 높다.
3. 대개 남성이다.
4. 미혼이거나 결혼에 실패한 독신일 가능성이 높다.
5. 평소 속을 잘 드러내지 않고 조용한 편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6. 간혹 아무것도 아닌 일로 자신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거나 싸늘하게 돌변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7. 사는 곳이나 개인 물건 등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등 사생활을 철저히 감춘다.
8. 진지하게 대화하거나 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다.
9. 때로 공상에 잠기거나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진다.
10. 과묵하고 반항적인 모습이 때로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11. 이성 관계에 서투르면서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집착이 심하고 지나칠 정도로 잘해준다.
12. 이성 관계에서 마음을 나누려 하지 않고 일방적인 애정 표현으로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
13. 헤어지려고 하면 폭력을 휘두르거나 섬뜩할 정도로 차가워진다.
14. 좋아하는 일이나 취미, 대상에는 대단한 집중력과 인내심을 보인다.
15. 폭력이나 절도, 성범죄 등의 전과가 있거나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16. 거짓말을 아주 능숙하게 한다.


난 35세 남성 실업자다. 내 나이는 결혼하지 않았다면 도덕관념을 잃어가는 시기라고 누군가가 말했고 아마도 사실인 듯도 싶었다. 난 누군가를 사귄 적조차 없고 소심했다. 내가 대낮에 혼자 다니는 걸 보고 이에 관해 말을 건 동네 구멍가게에 발을 끊은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없진 않았으나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사귄 친구 하나 없었고, 사회 나가니 그나마 있던 친구도 끊겼다. 글을 쓰거나 낙서를 하는 걸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 날 매력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성은 사귀지 않아서 내 행동양식이 어떨지 나도 가늠할 수 없다. 컴퓨터를 좋아하고 자격증도 몇 개 있지만 쓸모 있는 것은 없다. 아니 내가 그것들을 쓸모 있게 만들 수 없었다가 더 정확한 서술일 수 있다. 전과는 없다. 거짓말이 능숙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은 거짓말이니까 그런 쪽으로 생각한다면 맞는 듯싶다.

이것이 내 프로파일이다. 자서전도 못 쓰는 인생이다.

가끔 길거리에 다니는 미취학 어린아이를 마구 패고 과도로 난도질해 죽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일상이 답답하고 부모에게 짜증부리는 일이 생길 때면, 내가 손쉽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미취학 어린아이를 그렇게 취급하고 싶다는 욕망이 인다. 물론 실제로 해본 적은 없다. 이는 현재 국민 정서상 언론에 얼굴이 공개되고 치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던가 말이다. 물론 교도소에도 가서 최악의 대접을 죄수들에게서 받는 건 덤이고.

어쩔 때엔 상인에게 진상을 부리고 싶어진다. 특히 대기업에서 말단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악덕 소비자로서 시비를 걸고 싶다. 이마트나 롯데마트와 같은 대기업에서는 악덕 소비자일 지라도 거의 모든 문의 사항을 들어주고 물건도 교환해 주라고 말단에게 교육을 한다는데 이를 빌미로 괴롭히고 싶다. 아직 실제론 해본 적은 없다. 난 그 정도로 뻔뻔하지 못 했고, 마음속에서 이 같은 일을 하면 말단이 안타까울 터였다.

한때 사회적 유대 관계, 동정심, 교육 등이 죄를 억제할 수 있을 거라고 망상하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고 때는 아마도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랬던 것 같다. 인간은 언제든 악당이 될 준비가 되어 있다. 인간은 모두 식인종의 후손이고, 오늘날의 친절한 상인들은 자신이 유리할 때엔 도적질을 벌인 무리로부터 유래했다. 거래란 건 양쪽이 어느 정도 대등할 때에야 발생하는 것이고, 삼성과 내가 때로는 거래할 수 있는 건 세계 체제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허무하다. 살아 있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이란 권력 현상에 불과하다. 죄를 인간 사회 안에서만 벌어지는 것으로 한정하는 현대 법체계 속에서조차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매일 같이 마시는 핫 초코는 코코아 농장을 착취해서 원료의 일부가 나온다.

집에 있는 과도도 식칼도 잘 썰리지 않았다. 날이 무뎌진 이들 칼로 인간의 고기를 찌르면 어떻게 될지 정육점 주인이나 깡패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죄를 짓고 싶어졌다. 그러면 무언가를 공격했다는 뿌듯함이 나를 채울 것이다. 나를 유지해온 유전자는 무수한 살생을 저지르면서 31억 년 동안 이어져 왔다. 이제 내 대에서 내 유전자는 끝나겠지만, 지금껏 살아온 업보는 거대할 것이 확실했다. 내 뇌의 적잖은 부분은 공격성을 위해서 바쳐져 있다.

나는 공격당하고 싶지 않았고, 여러 가지 문명의 이기를 다루면서 살고 싶었다.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죽이지 않고 부린 데서 노동력이 커지는 방식이 태어났고, 공격당하지 않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자유주의를 낳았다. 죄란 결국 법에 의해 억제되는 것일 뿐이고,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일 뿐이고, 어느 사형수의 말처럼 법이 없으면 죄도 없는 것인가. 소심하게 쓰레기를 길거리에 버리면서도 눈치를 살피는 난 쉽사리 법에 도전할 수 없을 터였다.

결국 인간은 짐승일 뿐이다. 그것도 먹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재미로 죽일 수도 있는 그런 잔인한 존재. 그토록 지능이 높기에 누구도 죄 짓지 않는 유토피아 또한 꿈꿀 수 있는 존재. 하지만 사회는 부조리하고 인생은 허무하고 우주는 비정하기에 그 무엇도 꿈꾸지 않으면서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인간을 최상위 계층으로 올려놓는 존재. 내가 지금껏 관찰해 온 바로는 이 세상은 가끔 관계를 짓기도 하는 고독한 개인들이 있을 뿐이었다.

살인조차 죄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무엇이 죄가 되겠나. 결국 세상은 악으로 물들어 나에게도 비수처럼 다가올 터였다. 난 사이코패스에게 열광하고, 소시오패스를 부러워하는 현대인의 전형이 되어 악당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협소설을 썼다. 무는 폭력을 제어하는 것이고, 협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것이기에, 악당이 주인공인 무협소설은 무도 아니고 협도 아니고 그저 텍스트 덩어리일 뿐이었다.

잠깐. 어째서 우주가 비정하고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인지 생각했다. 결국 이것은 사후세계가 있다는 증거가 과학을 통해 발견되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일 뿐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무신론이 진실이라는 증거도 없다. 우주는 물론 냉엄한 물리 법칙을 따른다. 그러나 우주마다 각기 다른 소립자들의 속성 값과 4대력의 힘 값을 갖는다는데, 이는 양자역학적 방식을 따른다고 현대 물리학은 밝혔다. 우주는 수학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이 대우주에 존재하는 무수한 우주들이 각기 다른 법칙들에 지배되고, 이는 우주들이 모든 수학적 값만큼 많은 수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허수나 무리수로만 설명될 수밖에 없는 형태의 우주도 있을 터였다. 이 모든 것을 물리학은 그냥 원래부터 그렇다고 밖에 설명을 못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이상했다. 왜 우주는 지금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상대성 이론은 핵무기의 기본 원리가 된 것일까. 이토록 실증되는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적 사실을 의심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확실히 제 정신들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각설하고, 이 같은 과학적 사실들을 단지 그냥 그렇다고 설명하는 물리학은 올바른 것일까. 내가 느끼는 허무 너머에 인간에게 한없이 우호적인 섭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불가지론 쪽이 좀 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논리에 맞는 것은 아닐까. 어째서 우주가 이런 상태로 존재하는지 물리학은 해답이 아직 되어 주지 못 했다.

물론 플랑크 시공간이 한없이 켜켜이 쌓여서 이루어진 현 우주가, 플랑크 시공간들의 상호작용으로는 그냥 이 형태로 나올 수밖에 없는 기계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너머에 섭리가 없다고 우길 증거는 없었다.

이는 어떤 종교도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종교란 결국 당대의 과학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으니 쾌속으로 이런 생각에 기반 한 종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각각의 인간이 상당한 특징들을 공유하고 있고 이에는 도덕적 공감도 있는 것처럼 보편적인 신도 우주 너머에 섭리로서 자리메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불편할 수도 있는 이 상상에, 난 죄 짓는 것에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되도록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내 평소의 모습을 고수하기로 했다. 죄를 지었는데 저승이 있고 선의의 응보가 있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물론 기성의 종교가 이를 표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에 종교 조직에 얼굴을 디밀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 즐거운 상상을 했다.


[201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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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쓸 당시엔 분명 애를 죽이고 싶다던가 진상을 부리고 싶다던가 하는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또 읽어보니 그런 욕구가 스멀스멀 치미네요...;;

수필에 더욱 가까워져 버리는가...;;

그래도 본인과 다른 점들을 곳곳에 끼워 놓았으니 자전적 소설로 우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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