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추모+집착=

2014.01.14 21:5201.14

구슬픈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라운드 제로에 모인 모든 사람이 눈을 감고 묵념했다.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흔적은 없었지만, 추모객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었다. 비행기가 충돌하고 빌딩이 무너진 시각들을 의미하는 네 차례의 묵념이 끝난 뒤 희생 유가족들의 눈가는 벌써부터 촉촉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2001 911일으로부터 15년이나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미련은 그의 인생을 무너트렸다.

그는 추모행사가 있는 딱 하루를 제외하고 구닥다리 캠코더로 그녀와의 추억이 담긴 테이프를 계속해서 돌려보았다. 그는 캠코더를 TV로 연결해 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오로지 캠코더에 달린 작은LCD로 영상들을 봤다. 주로 그 화면을 보면서 그녀를 찍었기에 그 나름의 추억을 떠올리는 방법이었다.

캠코더는 그녀가 사준 그의 첫 생일선물이었다. 그의 어릴 적 꿈이 영화감독이었다는 것에 착안한 아주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그녀와의 거의 모든 시간을 캠코더로 찍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캠코더를 매일 들이대는 게 싫은 건 아니었지만,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찍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는 좋아하는 영화는 안 찍고 왜 이렇게 사소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지긋이 미소를 짓더니 자신과 그녀의 얼굴을 캠코더 앵글에 밀어 넣고는 답했다.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모두 영화 같은걸.

그녀와의 연애는 2년 남짓이었던 것에 비해 테이프의 분량은 꽤 많았다. 거의 모든 일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사할 때면 그녀와 함께 식사했던 테이프들을 틀었다. 메뉴도 그날 먹었던 것을 똑같이 먹었다. 그래서 남들이 메뉴판에서 식사를 고를 때 그는 날짜가 적힌 테이프들을 골랐다. 식사 시작과 동시에 테이프도 돌아간다. 그러면 그는 마치 그녀가 맞은 편에 있는 것 마냥 그대로 테이프의 대사를 읊조렸다. 만약 테이프 중 자신이 포크를 떨어트린 날이면 그는 일부로 같은 타이밍에 포크를 떨어트리고 새 포크로 식사하는 짓도 마다치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와의 식사메뉴들이 다양했다는 것이다. 슈퍼볼이 열리는 매해 겨울날에는 같이 봤던 2001년 경기를 TV로 틀어놓고 테이프를 돌렸다. 역시나 같은 행동 같은 대사. 참을 수 없는 욕정으로 가득한 날엔 그녀 몰래 찍어놓은 섹스비디오를 틀어놓고 자위를 했다.

그는 영원히 그 행동들을 반복할 수 있었지만, 테이프들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 여러 번 돌려본 테이프들은 늘어지고 흐릿해져 갔다. 그리고 그녀가 떠난 지 12년이 지난 어느 날, 결국 테이프 하나가 끊어지고 말았다. 그는 테이프를 황급히 캠코더에서 꺼낸 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무조건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끊어진 테이프를 들고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무작정 뛰다 보니 반나절이 지났다. 그는 시내에 도착했고 어느 한 영상편집전문업체에 들어갔다. 그는 끊어진 테이프를 내밀며 제발 복원해달라며 사정했다. 매장직원은 자신만만하게 DVD나 동영상파일로 복원해드릴까요. 라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똑같은 6mm 테이프를 원했다. 몇 시간 뒤 매장직원이 6mm 테이프 하나와 DVD를 들고 나오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직원이 말하기를 끊긴 부분의 몇 초 정도가 잘렸다고 서비스로 영상을 구운 DVD를 건넸다. 그는 DVD를 받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직원이 보는 앞에서 DVD를 두 동강 내버리며 매장을 나왔다.

그 뒤로 그는 모든 테이프를 복원하고 여러 개로 복사했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몇 초에 대한 미련을 져버릴 수 없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아니 오랜 반복에 맞을 수밖에 없지만, 그녀와 거리에서 쇼핑하며 옷을 고르던 장면이었다. 그녀가 행복해하던 순간이 많은 테이프였다. 그는 문제의 테이프를 앞에 두고 혼자 중얼거렸다.

영화가 잘렸어. 영화가 잘렸어. 영화가……영화……영화……영화…….

그는 잠시 눈을 감더니 번뜩 눈을 뜨며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몇 초짜리 영화를 말이다. 지금 시각부터 체크했다. 오후 5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각이었다. 그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가장 중요한 구닥다리 캠코더를 챙기고 용모가 단정한지 거울도 보고 자라난 수염도 깎았다. 그는 차를 타고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께 드릴 꽃다발도 준비했다. 창문 넘어 분위기를 보아하니 저녁 식사 준비 막바지쯤 되는 것 같았다. 그가 원하던 타이밍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저벅저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의 여동생이 문을 열었다. 그를 보는 그녀의 여동생은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여동생은 그를 우선 들이지 않고 부모님부터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걸음에 달려온 그녀의 어머니 또한 그를 보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준비한 꽃다발을 들이밀며 저녁 한 끼만 얻어먹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의 꽃다발을 받고는 곧 눈시울을 붉혔다. 그가 건넨 꽃다발은 그녀가 좋아하던 붉은 튤립이었다.

그녀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함께한 식탁은 그녀가 있던 예전만큼 화목하지 못했다. 그녀의 빈자리가 컸기도 하지만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로 그녀의 가족들은 그를 만나기 꺼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를 만나면 항상 죽은 그녀가 떠오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그녀의 죽음을 잊고 살아가고 싶어 했다. 그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는 본래 목적이었던 그녀의 방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약간 망설이던 그녀의 어머니는 조용히 부엌 찬장에서 열쇠를 꺼내와 그에게 건넸다. 그녀의 어머니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이 층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방 안은 온통 흰 천들로 덥혀 있었다. 그는 영화를 찍기 위해 가장 중요한 소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옷이었다. 잘려나간 테이프에 등장했던 옷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입을 만한 흰색 원피스였다. 방은 그녀가 떠나기 전 남긴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아마 원피스는 상자들 속이나 어느 한 켠에 정리되어있을 것 같았다. 그는 방을 찬찬히 살피다가 침대 밑에서 봄이라고 적힌 상자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문제의 흰색 원피스를 찾았다. 그는 흡족해하며 그녀의 방에서 촬영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짤막한 대본을 적고 그녀의 대사를 대신할 스케치북을 원피스에다 걸었다. 그리고 촬영에 들어갔다. 테이프가 돌아간다. 그가 대사를 읊었다.

, 이 원피스만 벌써 세 번째인 거 알아? 그렇게 맘에 들면 보지만 말고 사.

잘린 부분의 바로 앞의 첫 대사였다. 그는 최대한 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연기했다. 그리고 그녀의 대사가 나올 부분에서 스케치북을 넘겼다. 스케치북에는 사고는 싶은데 너무 비싸단 말이야. 다른 게 더 좋은 게 있을지 모르니까 한 번만 더 돌자. ? 이라고 쓰여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그녀를 표현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다시 자기 포지션으로 돌아가서 다음 대사를 읊었다.

하아, 이제 그만. 어차피 종착역은 여기가 될 게 뻔해. 그냥…… 내가 사줄게. 더 이상은 지쳐서 안 되겠어. 남자친구 노릇 하다 다리 아파 죽을 지경이야.

그는 테이프에 나왔던 다리를 두드리는 제스처까지 똑같이 재연했다. 그녀의 대사는 또다시 스케치북이 대신했다. 그렇게 남은 몇 번의 대사 뒤에 컷을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촬영한 부분을 돌려보았다.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재촬영을 했다. 최대한 똑같이 재연하면서 말이다.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다시 재촬영. 시원찮았다. 아무리 재촬영을 해도 그의 맘에 들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찾아오신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의 촬영현장을 보고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에 오게 된 계기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리 재현을 해도 안된다고. 그녀의 어머니는 답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은 같이 있을 수 없는 걸 알잖니. 이제 그만 놓아주렴.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어머니였지만 자신도 그러지 못해 미련이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방에 와있으니 그녀와의 추억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너무나 생생해서 잊을 수가 없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옆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녀가 잠시 멀리 여행을 떠난 느낌이었다. 언젠가 돌아올 것 같아 항상 기다리고 그녀를 잊지 않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하고 재현해도 그녀와 있었던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그는 실감했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간절한 소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보고 싶어요. 그러면 놓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어머니는 그를 다독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억만금을 줘서라도 만나고 싶구나.

그게 그녀의 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가 떠난 그날 밤 그녀의 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다. 평소 앓던 우울증 때문이라 했지만, 그의 죄책감은 컸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를 장례식에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 그 날 그가 집에 온 것을 그녀의 아버지와 여동생은 저주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는 장례가 모두 끝난 뒤 몰래 그녀의 어머니의 묘를 찾아가 명복을 빌었다. 덜 굳은 땅만큼이나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생생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15주년 9/11 추모행사 날까지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다.

추모행사는 매해 그랬던 것처럼 추도와 애도의 물결로 가득했다. 그가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다른 추모객들도 희생자들을 잊지 못했다. 신앙심이 별로 없는 그였지만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할 때면 그녀를 위해 천국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할 때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에 그의 가슴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 아침 9시쯤 시작된 행사는 1시가 넘어서 끝났다. 길지만 짧은 순간이었다. 그도 이제 슬슬 마음을 추스르고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그에게 장문의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왔다.

메시지는 먼저 자신을 미국방부 연구개발위원회라고 밝혔다. 그들은 올해로 15년이 된 9/11 테러 희생가족들을 위로하고자 지금까지 결실을 본 연구성과로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선물은 즉 슨 죽은 희생자들을 단 한 번 약 몇 분 동안만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누가 9/11날에 맞춰 장난을 치는 건지 어쩐 건지 몰랐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신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 여성은 그가 제일 처음으로 전화를 주셨다면 감사의 인사를 먼저 올렸다. 여성은 희생자들은 만나기 위해선 준비해 올 것이 있다고 했다. 바로 희생자를 그릴 수 있는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옷이나 신발, 사진, 영상 등 뭐가 되던 좋으니 희생자와 관련된 물건들을 최대한 많이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는 알았다고 다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신을 어떻게 믿느냐고 묻자. 여성은 미국방부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리겠다고 했다. 통화가 끊어진 뒤 그는 휴대폰으로 미국방부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실로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그는 3년 만에 그녀의 가족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그를 반기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게 그녀를 볼 수 있는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염치 따위는 집어치웠다. 그들 또한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저 장난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방부 홈페이지를 증거로 보여주며 그들을 설득 시켰다. 그들 역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언제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 설득은 순조로웠다.

물건들을 들고 연구개발위원회에서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한 여성이 그와 그녀의 가족들을 안내했다. 그들은 군사작전지역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은밀하게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넓은 공터 같은 곳이었다. 그들보다 먼저 도착한 유가족들이 제각각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와 그녀의 가족들도 어수선한 공터에서 자리를 잡자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그들을 불렀다. 유능한 박사쯤으로 돼 보이는 그 남자는 준비한 물건들은 넘겨 달라 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앨범이며 옷가지 등을 남자가 가져온 수레에 실었다. 그는 수많은 6mm 테이프들을 담아 온 크로스 백 하나를 남자에게 조심스럽게 건넸다. 하지만 그는 가방의 끈을 붙잡고 한참이나 놓아주지 않았다. 남자가 가방이 늘어날 정도로 세게 당겨서야 그는 결국 가방 끈을 놓아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공터에 있는 단상 위로 정장을 입은 한 무리가 올라갔다. 그들은 연구개발위원회 연구원들인 것 같았다. 어수선한 유가족들을 주목시켰다. 그리고는 장황한 설명들은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알아들 수도 없는 희한한 어휘들을 써가며 열변을 토했지만, 그가 알아들은 거라고는 그녀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름은 카론 MK4’이고 물건들을 매개체로 그녀를 불러올 수 있는데 어떠한 이론 때문에 단 한 번뿐이며 고작 몇 분 밖에 안된다는 거였다. 설명이 끝나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기기들을 가지고 와 세팅하기 시작했다. 공구들과 부속품들이 사방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유가족들은 그들이 하는 것을 멀지 감지 떨어져 보고 있었다. 그들의 세팅이 끝나자 만들어진 것은 커다란 원을 세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도 안 하고 이번엔 기기를 설정하느라 바빴다. 어느 정도 설정이 끝나자 단상 위에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희생자들을 만날 준비를 하라고 했다.

543초 정도입니다. 시작을 기점으로 1분마다 벨이 울리고 끝으로 30초가 남았을 때와 10초가 남았을 때 벨이 울린 다음에 기기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알람에 대한 설명을 끝으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속전속결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원에서 빛나는 작은 점 하나가 생겼다. 이 점은 점점 커지더니 공기를 찢는 듯한 굉음을 냈다. 모든 이들이 그 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침내 점은 커다란 원이 되더니 하얀 별똥별들을 토해냈다. 그 별똥별들이 바닥에 닿자 사람의 형태를 갖추더니 이내 희생자의 모습이 되었다. 그들은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그녀를 찾아 헤맸다. 그녀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자 별똥별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였다. 그는 한걸음에 그녀에게 달려가 그녀 앞에 마주 섰다. 그에 눈에서 물줄기가 흐른다. 차마 그녀를 안을 생각도 안 들고 그저 그녀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그리고 동시에 슬펐다. 그런 그를 그녀가 먼저 껴안았다. 그녀의 체취도 그대로였다. 뒤늦게 그녀의 가족들이 왔다. 그녀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차례로 안았다. 그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해 레베카 보고 싶었어.

아담 아직도 날 못 잊은 거야? 15년이나 지났다고.

내가 널 어떻게 잊어.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아담…….

내가 그동안 어떻게 네가 없이 살아왔는지 모르겠어. 날 떠나지 마, 레베카.

나도 여기 남고 싶어. 영원히 네 곁에 있고 싶어, 아담.

그는 잠시 레베카를 두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답했다.

그럼 내가 그렇게 해줄게.

그녀와의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고 이 마약의 촉매제는 다시 겪어야 되는 이별의 고통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유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분이 남았다는 벨이 울렸다. 그러자 아담은 큰소리로 외쳤다.

돌려보낼 수 없다! (No return!)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다.

돌려보낼 수 없다!(No return!)

그러자 다른 유가족이 점차 그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돌려보낼 수 없다!(No return!)

그는 어지럽게 굴러다니는 공구를 하나 집어 들고 재빨리 단상 위에 올라가 희생자들을 돌려보낼 수 없다고 외쳤다. 그리고 기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을 여기에 남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가족들을 선동했다. 만남의 희열과 이별의 아픔이 선사한 마약은 그를 미치게 했고 더불어 유가족들을 멈출 수 없게 했다. 그들은 그의 주장이 옳다고 느꼈다.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공구나 잔여부품들이 그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희생자들과의 이별은 다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 생각은 그들을 무장하게 하고 기계 설정판이 있는 곳으로 몰려가게 만들었다. 연구개발위원회 사람들은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는지 우왕좌왕하며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똑같이 공구를 들었다. 하지만 연구개발위원회 사람들이 수적으로 불리했다. 그러자 흰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유가족들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기계가 멈추지 못하면 그 뒤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자 유가족 무리를 뚫고 아담이 앞장서면서 흰 가운을 입은 남자에게 대응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그들이 이곳에 남을 수 있다는 소리도 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기계를 사수하세요!

유가족들은 수를 앞세워 연구개발위원회 사람들을 공구로 쳐냈다. 지하 공터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30초가 남았음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이제 연구개발위원회 사람들은 포기하고 대피하기에 급급했다. 유가족들은 다시 희생자들에게 돌아가 승리를 기뻐하였다. 아담도 레베카에게 돌아갔다.

레베카, 이제 남을 수 있어. 이제 우리 영원히 함께하는 거야.

아담…….

10

9

8……7…….

0.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봐봐 레베카 그 사람들은 겁쟁이였어. 이제 우린 영원히……키스해줘 레베카.

둘은 진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원은 눈부시게 빛났다. 공기를 찢는 굉음이 커졌다. 지하 공터는 빛으로 가득 차버렸다. 그리곤 그곳의 모든 이들은 빛과 함께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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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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