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2014.03.25 18:0403.25


쾅쾅쾅. 누군가가 내 방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수연아. 밥 먹어야지!”

엄마의 목소리다.

“안 먹어!”

“한 숟가락만 먹어. 수연아. 엄마가 방금 밥했어. 수연이 좋아하는 고등어도 사왔어.”

“안 먹는다고! 씨발!”

“….”

꼭 욕을 해야 그만 한다니까. 나는 눈을 뜸과 동시에 컴퓨터를 켰다.

‘등신 새끼들 잘 잤냐? 아. 애미 때문에 진짜 짜증남.’

사이트에 글을 올리자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ㅋㅋ 등신이네.’

‘애미 이쁘냐?’

‘니 애미 창녀’

한창 인터넷에서 욕을 늘어놓고 있는데 문 너머로 아버지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야이, 개년아!”

“아이구. 수연이 아빠 또 어디서 술을 이렇게 먹고….”

“닥쳐. 이년이 어디서…. 으억!”

“아이고! 수연이 아빠! 수연아! 수연아!”

“아…. 씨발.”

나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로 나가니 거품을 물고 이상한 춤을 추고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런 아버지를 붙잡고 우왕좌왕 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씨발. 또 춤 춰?”

“수연아! 춤이라니! 아빠가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춤이라니!”

“아. 몰라. 알아서 해.”


아버지는 헌팅턴 병의 환자다. 헌팅턴 병의 증상은 기억력의 감퇴와 근육의 조절 능력 상실이다.

근육의 조절 능력 상실이 커지다가 무도증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자기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춤을 추는 거처럼 신체가 뒤틀리는 웃긴 상황이 벌어진다.

지금도 아버지는 내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침을 흘리며, 고통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아. 더러워. 나는 아버지의 구원을 원하는 눈빛을 외면하고 뒤로 돌아섰다.

“씨발…. 집에서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내가 도와줘?”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내 등 뒤로 엄마가 ‘수연아! 수연아!’ 하고 불렀지만, 나는 무시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이불을 덮고 누웠다. 인터넷을 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헌팅턴 병은 유전병이었다. 나도 언젠가 아버지처럼 온몸을 비틀어대며 춤을 추다가 죽을 날이 올 것이다. 씨발.

내가 처음 아버지의 춤을 본 이후로. 난 늘 무서웠다. 나도 언젠간 저 춤을 추게 될 것이라는 생각과 춤을 추다가 죽어버릴 내 운명이 무서웠다.

그래서 현실로부터 도망가기로 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하루, 현재를 살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 사회와 사람들에게 늘 분노했고,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쳤다. 하지만, 며칠에 한 번씩은 아버지의 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거실에서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잦아드는 것을 보니 아버지의 춤이 끝났나 보다.

나는 이불 안에서 흐느껴 울었다. 무섭고, 불쌍했다. 나와 아버지 모두.

눈을 떴다. 울다가 지쳐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집안은 조용했고, 침묵만이 존재했다.

잠들기 전에 미처 끄지 않은 컴퓨터는 지금 시간이 아침 7시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인터넷을 키려다가 문득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뭔지 궁금해 하고 있는 도중 갑자기 내 오른손 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내 인생 첫 춤.


“끄아악!”

전신에 경련이 일면서 나는 극심한 고통에 온통 주위에 침이 튀며 내 몸이 요동쳤다.

아. 아버지는 이런 고통을 몇 년 동안 안고 살았다는 건가? 나는 극심한 고통 사이에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처음으로 느꼈다.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는데 내 귀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는 들을 수 없지만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오려고 시도 하는 것 같았다.

잠긴 문고리에서 찰칵찰칵 소리가 나더니 쾅. 하고 누군가가 내 방에 들어왔다.

아버지였다.

방에 들어온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들고, 내 얼굴에 떡칠이 되 있는 눈물과 침, 콧물 등을 닦아 주었다.

“아…. 아…."

“….”

경련이 끝나고,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 볼 수 없어 잠든 척 했다.

아버지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가고, 나는 헌팅턴 병을, 무도증을, 그리고 내 운명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는 어머니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신발장을 열고 신은 지 몇 년이 지난 신발을 꺼내 먼지를 털고 신발을 신었다.

오늘부터 새로운 하루를 시작 할 것이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857 단편 (심사 제외)탐정 어느 지방 사서 2014.04.27 0
2856 단편 표절방지기 부엉 2014.04.23 0
2855 단편 텅 빈 지하철에서 엄길윤 2014.04.11 0
2854 단편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특수문자 2014.04.14 0
2853 단편 중독 깨진유리잔 2014.04.09 0
2852 단편 시선이 머무는 곳 Joaquin 2014.09.23 0
단편 플루터비 2014.03.25 0
2850 단편 아낌없이 주는 괴물 정원 2014.03.13 0
2849 단편 레스토랑 어느 지방 사서 2014.03.10 0
2848 단편 걷는다. 어느 지방 사서 2014.03.11 0
2847 단편 나는 니그라토다 [intro]1 뫼비우스 2014.03.08 0
2846 단편 지옥 EYL 2014.03.16 0
2845 단편 단편1 어느 지방 사서 2014.03.10 0
2844 단편 너는 눈을 감는다. 티아리 2014.02.26 0
2843 단편 청개구리의 꿈을 꾼 이야기1 너구리맛우동 2014.02.24 0
2842 단편 안 알려 줌 Tom_Ashy 2014.02.25 0
2841 단편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얼빠진소 2014.02.21 0
2840 단편 나는 자석의 기원을 이렇게 쓸 것이다 너구리맛우동 2014.02.19 0
2839 단편 [심사제외]노예주와 노예 니그라토 2014.02.19 0
2838 단편 색출 마지굿 2014.02.07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