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그럼 이게 괜찮으려나?”

톰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어때?”

그것도 안 와 닿아.”

존이 말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톰의 얼굴에 실망이 떠올랐다.

, 다 싫다면 어쩌잔 거야.”

아까 네가 말하려다가 만 거. 그거 괜찮지 않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말이야? 그거 다른 데서 쓰고 있더라고.”

어디?”

소수자 모임.”

.”

어쨌든 그것마저 맘에 들지 않는다 이거지.”

톰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간식을 집어먹었다. 존도 그와 같이 간식을 먹었다.

또 없냐?”

하나. ‘우리는 별의 아이들이다’.”

미안하다. 그것도 별로다.”

그래.”

어차피 네가 만드는 모임이잖아. , 뭐였지?”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그거 말고도 암석행성 탐색도 하려고.”

, 뭐가 됐든. 네가 만드는 모임이니까 네 맘대로 정해도 되잖아?”

그런 식이면 모일만한 사람만 모이게 되니까. 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어떨까 싶어서 너한테 물어보는 거 아냐.”

겨우 표어잖아. 그럴 땐 그냥 발 넓은 사람 하나 집어넣으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모이게 돼있어.”

그러면 정작 활동은 제대로 안할까싶어서……. 됐다. 네 말도 맞다. 내가 괜한 욕심냈지. 그냥 하던 데로 해야겠다. 이거 네가 다 먹어라.”

하나밖에 안 남았잖아. 거기다 거의 네가 다 먹었으면서, 내 도움 받겠다고 사온 걸.”

결국 제자리니까 너 도움 안 된 거야. 그래도 하나 주잖아.”

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주변은 신경 쓰지 않으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폈다.

가냐?”

가야지. 나는 학교를 다니니까요. 애들한테도 표어는 포기했다고 말해줘야지.”

잘 가라.”

존은 손을 흔들며 톰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혼자 남겨진 존은 간식을 마저 집어먹고는 상자를 옆의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그는 벤치에 등을 기대어 잠시 하늘을 보았다.

세상은 아직 밝았다. 그러나 존이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세 시간 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공원에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존은 갑자기 지루할 정도의 공허함을 느꼈다. 평소에는 주점에서 늦게까지 일하기 때문에 밝을 때는 자거나 쉬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어쩌다 보니 톰을 만나러 나왔던 것이다.

톰과 존은 갓 걸음마를 떼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 사이였다. 덕분에 서로의 성격과 특징과 장단점까지 모두 알고 있었고, 그 모든 걸 덤덤히 받아들이는 사이였다. 그래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음에도 여전히 절친한 친구로 남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살고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톰은 완벽한 과학도다. 그는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공과대학에 진학했고,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거기에 그는 영화나 만화, 게임과 같은 오락문화의 열렬한 팬이었다. 존은 톰이 자신의 지인들과 만들려고 하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모임도 그러한 성향이 반영된 결과일 터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존은 일반적이고 평번한 청년이다. 그의 또래 청년들을 모두 모아놨을 때 그 중 80% 이상은 존일 정도이다. 또한 그는 톰과도 전혀 반대된다. 학교대신 파티장으로 진학했고, 과학대신 이성교제를 공부하며, 미래대신 현재를 추구하는 청년인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톰이 추진하는 계획은 그저 허무맹랑하고 의미 없는 것이었다. 원래 있던 모임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모임을 굳이 만들어야할 이유도 찾지 못하는데다가, 모임의 목적도 외계생명체를 찾는다는 둥의 실현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존은 친구를 비웃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존의 머릿속은 그저 주점이 문을 열 시간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그냥 조금 더 자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빌은 기분이 가히 좋지 않았다. 경찰은 시민이 위협을 느낄 때 도움을 주고 해결해주는 존재다. 그런데 지금 빌은 도움이나 해결은커녕 위협을 당한 시민을 다른 사람에게 통째로 넘겨줘야할 판이었다. 그것도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에게. 신원이 불분명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들은 분명히 빌보다는 윗사람들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분명히 지시도 내려왔으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 이게 다야.”

빌은 짐에게 서류뭉치를 던지듯 건네줬다.

이게 목격 진술이랑, 목격자 신원, 피해자 신원, 그 밑에 나머지가 증거 서류들.”

이것들만 그 사람들 넘겨주면 되지?”

빌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인 짐이 그 자료를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것까지 보자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수준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허름한 차림들 사이에 꼿꼿하게 서있는 정장 두 명. 그들은 빌이 건네주는 자료를 감사한 기색 없이 받아들였다. 오히려 당연한 것을 받아내는 자세였다.

아무리 자신들이 정부 요원이라고 밝혔고, 자신보다 상관이라고는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이 보상되지는 않았다. 다른 세계에 살던 높으신 분들이 갑자기 나타나 서를 헤집으며 간섭하였다. 더구나 이젠 자신이 발로 뛰어 모아온 것을 통째로 가져가 버리니, 애국심마저 붕괴되는 기분이었다.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놈들일세.”

짐이 빌에게 다가오며 농담을 던졌다. 빌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저런 분들께서 이런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네. 그 여자애가 고위 관가 숨긴 딸이었나?”

소문대로 무슨 외계괴물인거 아냐?”

말이 되냐. 빛 좀 반짝인 게 뭐 대수라고, 번개 처음들 보나. 그날 비가 온 건 두 살짜리 옆집 애도 알더만.”

그래도 괜히 저런 사람들이……언제 나갔데? 어쨌든 저런 사람들이 이런 데 괜히 올 리가 없잖아. 뭔가 더 있다는 거 아냐. 우리 권한 밖의 문제가. 그러니까 아예 정보도 전부 자기네 달라고 하지. 조사 권한만이면 몰라도 싹 긁어갔잖아?”

빌은 짐의 말을 흘려들으며 정부 요원들이 있던 곳을 보았다. 경찰이 손댈 수 없는 권한이 있다니, 그래서 아직 세상이 더러운 모양이었다. 그렇게 더러운 세상이니 멀쩡한 여자애를 납치하는 사건이나 벌어지는 것이 틀림없었다.

짐의 농담대로 납치범이 외계에서라도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세상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증명되는 것은 그것들도 더러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주가 전반적으로 더럽다고 증명되면 최소한 세상 더러운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의도치 않았더라도 괴물에게 누명까지 씌웠으니 이미 충분히 깔끔하지 못 한 세상이었다.

이건 뭐냐?”

짐은 빌의 책상에서 익숙한 파일을 발견했다.

이거? 피해자 신상.”

그거 방금 넘기지 않았냐?”

사본이지 당연히.”

파기 안 하고?”

그냥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어서. 피해자가 내 조카랑 친구거든.”

 

존이 일하는 주점은 존과 같은 청년들의 모임장소이다. 원래 그러려고 만들어진 장소는 아니었지만, 모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존도 입소문을 통해 들어와 자리 잡고 일을 시작했다. 그는 그 만큼 이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모이는 사람들, 대화하는 주제, 공기를 매우는 음악까지 모두 트렌드를 따르는 것들뿐이었다. 쫓아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어울리기 위해 쫓아가는 분위기, 존의 성향과 어울리는 곳이었다.

존은 주문받은 안주와 술병을 놓은 쟁반을 들고 능숙하게 움직였다. 단골들과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가 도착한 곳엔 역시 단골이 있었다. 5명 정도의 남녀가 모인 집단이었다. 존은 술을 놓아주면서 집단의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앤은 보이지 않았다. 존은 앤의 친구인 질의 눈치를 살폈다. 질은 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곤 다시 주제에 집중하려 들었다. 존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앤도 단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점의 아이돌이었다. 단지 미모의 힘이 아니었다. 쾌할 하면서도 약간은 괴팍한 소녀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이 그녀를 좋아했다. 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만날 때는 서로 교제하던 사람이 있었기에 좋은 친구에서 멈추었지만 그렇다고 아쉬운 관계는 결코 아니었다. 덕분에 앤이 주점에 왔고 그녀의 친구들도 모여들었다. 존은 인간관계가 언제나 즐거웠기에 언제든 환영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 모든 이들의 친구가, 그 멋진 소녀가 어느 날 사라진 것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생겨난 빈자리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녀를 알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맥과 기술을 동원하여 수사를 도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비가 오던 날 번개와 함께 그녀는 사라진 것이다.

2주의 시간이 흐른 후 앤은 잊혀져가는 듯 했다. 정확히는 앤의 실종이 잊혀졌다. 거의 다수의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을 짐작하고, 확신했다. 그리고 존을 포함해서 모두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세상으로 나온 말이 그 자신을 현실에 드러낼까봐 다들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존은 질의 모습에서 착잡함을 느꼈다. 그녀의 삼촌이 형사라는 데에도 그녀의 반응이 밝아지려는 기색이 없으니 기대할 것도 없는 셈이었다. 존도 생각을 떨쳐버리고자 일에 열중하기로 했다. 주방으로 돌아가 음식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길에 주문을 받고, 주문을 기억하고, 주문을 말해주고, 음식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고, 음식을 받고, 주문을 받고, 농담을 받고, 농담에 답하고, 주문과 농담을 기억하고, 음식을 가져다주고, 주문을 말해주고, 음식을 받고,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주점을 조각내듯 누비던 존의 눈에 가게 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존은 일에 집중하면서도 새로 온 손님을 흘깃 쳐다보았다. 덕분에 집중이 완전히 깨져버렸다. ‘익숙한’ ‘손님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익숙한 손님은 아니었다. 톰은 원래 이런 곳에 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분위기에 압도되며 조심스럽게 빈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 여기서 뭐해? 빈자리는 저기 있어.”

고마워, 오늘 두 번 만나네. 다른 건 아니고 그냥 만날 친구가 있어서.”

너한테 술 좋아하는 친구 있는 줄은 몰랐다. 뭐 시킬 거 있어?”

나도 갓 만난 애야. 이번 모임에 끼기로 했거든. 주문은 그 친구 오면.”

표어는 정한 거냐?”

그냥 대충 정했어, 알게 뭔가 싶어서. 그래도 사람은 모였으니까. 저쪽에 너 부르는 거 아냐?”

괜찮아, 저쪽은. ! 잠시 만요! 어떤 친군데?”

괜찮은 녀석이야. 네가 말한 대로 인기 있기도 하고.”

어떻게 찾아냈네?”

걔가 날 찾아왔더라고. 그런 데에 관심이 많다나 뭐래나.”

잘 됐네.”

그러게, 너도 만나면 맘에 들 거야. 너랑 성향이 비슷해. 저기 오네.”

한 청년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존은 톰의 소개로 을 만났다. 톰의 말처럼 괜찮은 사내였다. 남자가 보기에도 멋진 외모와 어울리고 세련된 복장. 말을 나눠보니 진지함과 유머러스함이 잘 섞인 언행도 갖추고 있었다. 정말로 인기 있을 친구였다.

친형 때문이지.”

살짝 일이 적어진 틈을 타 존과 숀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취미나 취향을 알 수 있었고, 그 와중에 외계생명체에 대한 그의 취향도 알 수 있었다. 존이 세상이 넓고 사람이 많다는 것에 조금은 공감하면서 취향의 이유를 물었던 것이다.

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데, 형이 그런 방면에 관심이 많았거든. 형이 어릴 때 많이 놀아주다 보니 많이 알게 됐지. 덕분에 과학 공부는 잘 했으니까 은혜 입은 셈이지.”

이 녀석 꽤나 이쁨 받더라고. 교수님도 그렇고 여자애들도 그렇고.”

솔직히 여자애들 보단 교수님들 관심이 더 좋긴 한데.”

그래, 있는 놈들은 그렇게 말해.”

톰과 숀은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덕에 존은 숀을 관찰밖에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사람 셋 모이면 한 명은 듣는 역할을 맡게 되는 건 존도 충분히 익숙했기에 신경 쓰이진 않았다. 그래도 대화의 주제가 그의 관심 밖인 탓에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엔 하고 싶지 않던 앤에 대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긁어모은 목격담. 그녀의 지인들에게 물어물어 찾아낸 앤의 행적. 형사들이 참고할 정도로 정확하게 조사해놨건만 나오는 건 없었다. 그나마 나오는 거라곤 모두가 보았다는, 천둥 없는 번개뿐이었다. 소리 없이 그냥 반짝이기만 한 빛.

……그 빛을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

존이 되묻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그에게 집중되어 버렸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던 톰과 숀이 그를 쳐다본 채 말을 잃었다. 말을 다시 찾아낸 건 톰이었다.

왜 그래?”

, 무슨 빛 얘기하진 않았어?”

어 그랬지. 미확인 비행물체 얘기.”

그래? 미안 내가 딴 생각하다가 너희 얘기를 잘못 들은 모양이다.”

난 네가 그 미확인 비행물체를 본 줄 알았네. 너무 깜짝 놀라기에.”

가능성이야 있지. 가까우니까.”

가깝다고?”

. 이번에 광장 앞에 42번 길에서 그게 목격됐었거든.”

어디라고?”

광장 앞 42번 길. 귀를 열어 인마.”

톰의 말에도 존은 귀를 닫았다. 광장 앞 42번 길. 앤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였다.

 

빌은 광장 앞 42번 길에서 흡연구역을 찾아 해매고 있었다. 탐문수사를 위해 돌아다녔던 것이 엊그제인데 어느새 흡연구역이 철거되어 있었다. 씁쓸한 기분이 드니 담배다 더 끌렸다. 결국 그가 몰래 골목구석에서라도 피우자고 결심할 무렵, 정장들이 지나갔다. 그에게서 수사 자료를 챙겨갔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빌을 보지 못한 채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빌은 얕은 증오와 싶은 호기심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수사권은 잃었지만 그는 앤을 찾고 싶었다. 조카가 어릴 적부터 친했던 친구였던 덕에 다른 조카나 다를 바 없던 아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해매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방황을 멈춰줄 이정표가 두 명 걸어가고 있었다.

빌은 담배 생각도 멈춘 채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참을 걸었다. 앞서가는 정장은 무슨 의도인지 이리저리 길을 꼬아가며 걸었고, 뒤 쫓는 형사는 그들을 놓치지 않으면서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며 걸었다. 이윽고 도심을 벗어나 교외의 숲 근처까지 도달했다.

빌이 아름드리나무에 몸을 숨길 무렵 그들이 멈췄다. 그들은 한참을 숲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빌은 그들의 동향을 살피러 나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도 잘 보이지 않으니 빌은 조금 더 대담하게 몸을 내밀었다.

그렇게 조금만 고개를 내밀어도 은폐가 드러나니 저희는 나무 뒤에 숨지 않습니다.”

요원 중 한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빌은 그 큰 목소리에 밀려난 것처럼 뒤로 넘어졌다. 단순히 놀랐기 때문이지만.

그 때 서에서 봤던 형사님이군요.”

두 정장은 뒤로 돌아섰다. 빌과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끈질기게 쫓아오시기에 때어놓으려 빙 돌아 걸어왔습니다.”

그래도 따라 붙으시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말을 하고자 결정한 겁니다.”

경계를 푸시고 일어서십시오.”

해칠 생각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말한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말투였다. 그러나 빌은 그런 걸 고민할 정신도 없었다. 중요한 건, 그들이 자신을 따라오게 허락했다는 것이다. 먼저 말을 걸어왔으니 분명 대화가 가능한 것이었다.

직업 덕에 자신 있었는데. 많이들 쫓아다녔거든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 가까이 오셔서 얘기하시죠.”

당신이 누군지는 알고 있습니다. .”

저희가 받아간 그 사건의 담당 형사셨죠.”

못마땅해 보이셨습니다.”

빌은 나무에서 나와 그들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전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제 담당사건에 애정이 강해서죠.”

이해합니다. 올바른 경찰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그 사건에 당신네 같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지, 이해가 가는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쫓아오게 됐네요.”

설명을 원하시는군요.”

.”

그 둘은 빌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빌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보여드릴 것은 최고 기밀사항입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형사님 또한 감시하며 예의주시할 것입니다.”

그러니, 원치 않으신다면.”

지금 떠나주십시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세 명의 청년이 교외의 숲 속에 진입했다. 숲은 우거져 햇빛을 막아섰기 때문에 그들은 손전등을 들고 헤매야만 했다. 그들이 이런 시간에 탐사를 시작하기로 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그들이 찾고자 하는 건 대체적으로 어두울 때 목격담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 때 비밀스럽게 활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둠은 그들의 탐색을 힘들게 하지만, 더불어 그들이 발견되기 힘들게 도와주기도 한다. 탐색 목표도 굳이 몸을 숨기려 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들의 탐색이 오히려 용이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사항으로, 세 청년은 낮에 좀 바빴다.

세 청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움직였다. 그들을 움직이는 연료는 그리 심각하진 않은 목표의식이었다. 그들은 이 숲에 자신들이 찾는 것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를 위해 청년들은 동맹을 맺기로 한 것이었다. 이 동맹이 가지는 그렇게 심각하진 않은 불안요소는 하나뿐이었다. 그들 중 두 명이 찾는 건 괴물이고, 나머지 한 명이 찾는 건 친구라는 것이다.

이젠 슬슬 진짜 어두워지는데.”

존이 손전등으로 톰을 비추며 말했다. 손전등은 너무 눈 부시는 걸 막고자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덕분에 톰은 평소보단 붉어보였다.

제대로 붙어 다니자.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사라지면 찾아다니러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어 질 거야. 참고로 말하는데 진짜로 길 잃으면 알아서 숲 밖으로 나와라.”

톰이 말했다.

너희가 찾는 게 여기 있긴 해? 진짜 그 좀 이상한 번개가 단서의 끝이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인한 내용이야. 다른 지역에서부터 계속 목격담이 나오고 있거든. 목격담이 이어지는 경로는 이 지역에서 끝나고 있어.”

숀이 말했다.

그런 곳도 있구나.”

, 정보들을 공유하는 거지. 평소에는 우주망원경 영상을 공유해서 외계행성 추적하는 걸 주로 하지만.”

이번에 내가 만든 모임이 평소 하는 게 그거야. 천체관측.”

난 너희가 이런 것만 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사람이 좀 더 모아서 돈 모으면. 자주 목격되는 장소는 멀리가야하거든. 이렇게 가까운 곳에 기회가 오는 건 흔치 않다고. 그러고 보니 이런 흔치 않은 기회를 잡고 참가한 너도 이젠 명예회원이다, 축하해.”

됐어.”

존이 톰과 숀을 따라온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미확인 비행물체가 목격됐다는 시간과 장소가 앤의 실종과 일치했던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숲도 이미 경찰조사가 끝나있을 게 당연했다. 그래도, 존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톰이나 숀과는 다른 각오로 숲을 탐사하러 왔다. 톰과 숀은 원하는 걸 찾지 못해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겠지만, 존은 마지막 희망도 버릴 것을 생각했다.

.”

한참 탐색을 위해 숲을 해맬 때였다. 갑자기 숀이 짧고 조용한 비명을 질렀다. 그 덕에 일행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

톰과 존은 숀을 돌아보았다. 그는 멀리 보며 턱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지나갔다.”

숀이 조용히 속삭였다. 톰과 존은 숀이 손전등을 비추는 곳을 바라봤다. 그 곳엔 이미 아무것도 없었기에 숲의 모습보단 숀의 모습이 더 흥미로웠다. 숀은 등대마냥 손전등만 비춘 채로 굳어 서 있었다. 갑자기 그 스스로 생기를 포기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가자, 우리.”

숀이 조용히 말했다.

얘 왜 그런대?”

저기……저쪽으로 지나갔는데, 흰색이고, 두껍고…….”

외계인? 괴물?”

톰은 커다래진 눈으로 숀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톰의 표정 덕에 존은 공포와 기쁨이 얼굴 안에서 룸메이트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가보자.”

톰이 표정에 비장함을 새로 입주시키고 발걸음을 내밀었다. 존이 머뭇거리는 숀을 잡아끌고 뒤를 따랐다. 어둠 속의 숲은 손전등 덕에 이상하게 빛났고, 그 모습은 이제 그들을 위협적으로 둘러쌌다. 숲이 무언가를 숨기며 그들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세 청년은 그 모습에 경계심을 높였다. 그들은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줄여가며 숲을 해치고 나아갔다. 높이 솟은 경계심은 그들의 감각이 멀리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 덕에, 그들은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세 청년이 숲을 헤맬 무렵, 빌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신이 밟고 선 땅이 무너져 내려 나락으로 떨어질 때, 나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미치지 않을 사람은 없을 터였다. 빌은 미침을 앞당겨줄 물약을 거침없이 들이켰다. 그 약이 미침을 주기 전에 미칠 듯 한 씁쓸함을 줘서, 빌은 배신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목구멍을 태우는 쓴 맛이 사라져서야 빌은 얼굴을 폈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조카인 질에게 연락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녀에게, 그녀의 좋은 친구는 무사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했다.

빌이 조카에게 연락을 보낼 무렵, 숲에서 검은 정장차림의 두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발등에 떨어진 수많은 불 중 하나를 껐다. 작지만 성가신 임무가 하나 끝났다. 그리고 그들의 동업자들과 만족스러운 합의를 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들이 직접 나서서 지역주민들과 관련되는 사건의 수는 줄어들 것이었다.

동업자들은 표면상으로는 그들에게 친절했다. 엄밀히 말하면 협조적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협조를 함부로 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업자들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를, 이 세상을 크게 뒤흔들 무기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탓이다.

정장 입은 사람들이 숲 속을 나올 무렵, 세 청년은 자신들이 발견한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톰은 놀랐고, 그의 놀람은 가장 순수했다. 그는 그냥 숲 한복판에 웬 여자가 누워서 정신을 잃어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숀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늘 충분히 더 놀라운 일을 겪었던 탓이다. 그렇다고 그가 놀라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자를 보고 놀랐지만, 이내 더 불안해 졌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존은 제일 크게 놀랐다. 그는 이 여인은 알았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어벙한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었다. 앤을 다시 만나면 좀 더 기쁜 감정이 클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앤의 귀환을 주점을 뒤집었다. 사람들의 떠들썩거림이 좀 만 더 컸더라면 주점을 물리적으로 뒤집을 수도 있을 듯 했다. 그런 점으로 봤을 때 앤이 집에서 회복하느라 주점에 나서지 않았다는 사실은, 주점에겐 정말로 다행이었다. 또 한 편으론 그녀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 한다는 것 때문에 떠들썩함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기도 했다.

온갖 추측이 나돌았다. 단순한 가출과 여행 같은 얌전한 추측부터 소설에나 나올 법한 추측, 출판되지 않는 소설에나 나올 법한 추측, 자신 주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추측, 심지어는 어린이 동화 같은 몽환적인 추측까지 나왔다.

그게 사실이면 앤은 그 곳 역사에 남는 위인이 되는 거네.”

분명 지금 그 세계에선 앤을 찬양하는 음유시인이 있을걸?”

질은 그녀의 친구들과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그 이전보다도 훨씬 가벼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가 다시 돌아왔으니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주점 전체에 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이 주점에 모이는 또래들에게 앤이 가지는 영향력이 느껴졌다. 이 분위기에서 가장 동떨어진 사람은 셋뿐이었다.

그건 절대 그냥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고!”

존이 안주를 가져다주는 그 순간까지, 숀은 흥분하며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그걸 듣는 톰은 그의 비정상적인 수준의 흥분을 가라앉히기에 바빴다.

내가 널 못 믿는다는 게 아니야. 난 그저 좀 더 확인을 해보잔거야.”

좋아, 그럼. 내가 본 그것이랑, 앤 이랬나? 그녀의 발견이 관련은 있을 거다, 라는 것에는 동의하지?”

어느 정도는.”

숀이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숨을 돌린 그는 20분 전부터 뱉어오던 주장을 다시 뱉었다.

그럼, 그녀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 아냐.”

그건 아까도 말했잖아. 경찰조사 중에 병원치료 중인 사람을, 남도 아니야, 존이랑 친구라는데, 그런 사람한테 무작정 물어보자고?”

무작정은 아니지.”

다를 바가 없잖아. 만약 그 사건이든 뭐든 거기에 트라우마라도 가지고 있으면 어쩌게?”

맞는 말이지.”

존이 술을 한 병 더 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 너 흥분을 넘어서 좀 화난 것 같아.”

……내가 그걸 본 것 같아. 진짜 뭔가 다른 게 보였어. 그걸 확인하고 싶어.”

그들은 말없이 애꿎은 탁자만 노려봤다. 존이 일을 하러 일어나서야 잠깐이나마 정적이 깨질 수 있었다.

네가 봤던 건 뭐였을까?”

글쎄…….”

톰과 숀이 정적을 깨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문제될 건 없었다. 주점은 충분히 시끄러웠다.

 

앤은 병원에서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고 진단해주었기에 집에 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는 침대에 앉은 신세를 면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지금 침대 옆 창문을 등진 채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었다.

빌의 조카랑 친구라고 했지?”

, 그 애는 질이에요.”

그래. , 그 애랑은 얘기 했니?”

그냥 제가 무사하다는 연락만 했어요. 빌 아저씨도 얘기해 줬을 거예요.”

짐은 앤이 해 주는 이야기를 간략하면서도 꼼꼼히 적었다. 그는 자신이 적은 것을 다시 읽어보곤 만족했다. 충분히 내용 있는 탐문결과였다.

그래, 수고했다. 고생 많았어. 빌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놈 갑자기 의욕을 잃었거든. 하긴, 수사권을 잃었더니 사건이 해결됐고, 사건이 해결되고 나서야 마무리나 하라고 수사권을 돌려주니, 그 성격이면 의욕 잃을 법도 하지.”

……그렇겠죠.”

난 가보마. 다시 말하지만 고생 많았다. 푹 쉬어라.”

앤은 짐이 방을 나서는 것을 지켜봤다. 그녀는 굳이 창밖으로 짐이 집을 떠나는 것을 살펴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는 창밖을 보기 싫었다. 그렇다고 창을 가려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앤은 한참을 넋 놓고 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앤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빌에게 전화를 걸었다. 빌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그래, .”

말씀하신 데로 형사분께 말씀드렸어요.”

잘 했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이런 것까지 시켜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쉬어라. 그 사람들에겐 내가 말하마.”

앤이 전화를 끊는 것을 확인하고, 빌은 전화를 끊었다.

했다는군. 이제 됐소?”

빌은 자신의 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사실 그는 두 사람과 같이 있었지만, ‘같이 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는 자들이었다.

수고했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성가시게 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정장 입은 사내들이 빌에게 답했다.

“‘아마도는 무슨 말이요?”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저희는 확신할 수 없단 뜻입니다.”

그들이 다시 그녀를 필요로 한다면.”

다시 그녀를 귀찮게 할지도 모르죠.”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놈들이 그 아이를 필요로 할 이유가 또 있소? 반대의 경우란 것은 무슨 말입니까?”

두 정장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희도 상사하게 알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전례를 통해 예상을 할 뿐입니다.”

당신은 그저 지금처럼만 행동하시면 됩니다.”

약속만 지켜주시면 안전은 보장해드리겠습니다.”

빌은 말없이 들었다.

……전례를 알려주실 수 있겠소?”

그러겠습니다.”

, 그 소녀에게 알려줘선 안 됩니다.”

혹시 모르니까.”

 

이번엔 앤의 방에 독특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친한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친구의 친구였다. 존은 누구나 그렇듯 우선 걱정을 내비치며 안부를 물었다. 앤은 누구에게나 그랬듯 미소를 지어보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존은 이어서 몇 가지 양해의 말과 함께 톰을 소개했다.

톰은 앤에 대해 많이 들었다며 인사해왔다. 앤도 존으로부터 들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인사를 받았다. 톰과 앤은 처음 보는 사람답게 적당한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톰은 이제, 진짜로 그녀에게 볼일이 있다고 우겨대는 숀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앤이라고 하셨죠? 하얗고 이상한 모습의 사람들을 보셨나요?”

숀은 그 자리의 모두가 당황해 할 말을 던졌다. 그 말을 듣고 당황한 사람은 앤 만이 아니었다. 숀은 대답을 기다리느라, 나머지는 할 말이 없어져서 침묵이 찾아왔다. 가장 먼전 정신을 차린 건 의외로 앤이었다.

……무슨 뜻이세요?”

그 숲에서 보시지 않으셨나요? 그 괴물들.”

!”

톰이 참지 못하고 숀을 막았다. 하지만 숀은 굽히지 않았다.

대답하기 싫으시다면 분명히 싫다고 말해주세요. 모르면 모른다고 확실히 말해주시고요. 아니면, 말해주세요. 전 그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제가 본 괴물들이 도대체 뭔지. 보셨나요? 제가 방금 말한 것과 비슷한 것이라도?”

……나가주세요.”

?”

존이 되물었다.

미안해 존. 그래도 이분들 데리고 나가줬음 좋겠어.”

존은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는 흥분한 숀과 숀 때문에 흥분한 톰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방만으론 부족하다 싶어 집 밖까지 나가는 동안, 톰은 계속 숀을 질타했다.

그래, 이젠 어떻게 할래? 간신히 만들어놓은 인터뷰 자리를 훌륭하고 멋지게 날려먹었는데. 너 왜 그러는 거야 도대체? 무슨 6살짜리 꼬맹이가 되어가지고 흥분해서 달려드는 이유가 뭐야?”

……참을 수가 없어.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쳐들어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이해는 해.”

존이 집 문을 닫으며 말했다.

난 아니라도 너희는 그런 걸 찾아다녔다며. 특히 숀은 직접 봤으니, 뭐가 됐든 확실히 확인하고 싶을 거란 거 아냐. 그래서 좀 급한 거였을 수도 있지.”

모르겠어.”

?”

진짜인지, 가짜인지, 내가 바라는 게 뭔지, 확인하고 싶은 게 뭔지. 잘 모르겠어. 왠지 가짜였으면 싶어……내가 뭐라고 했으면 내가 잘 못 본거라고 얘기해줬을까?”

뭔 소리야.”

톰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실존이 우리 입장이잖아. 너 왜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너희는……못 봤잖아.”

숀은 조용히 중얼거리곤 그늘진 낯빛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풍겨대는 분위기 탓에 톰과 존은 그 뒤를 차마 따라가질 못했다. 며칠 후 존이 숀을 만난 것은 주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숀이 우울해하고 어두워진 덕에 그의 인기는 암묵적으로 올라가 있었다. 어두운 남자는 보통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다. 허나 인기 있는 남자기 어두워지면 효과가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존은 일을 하면서 숀에게 다가오는 여자가 다가오는 빈도가 잦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네 시간만 더 있으면 여자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자들이 다가갈수록 더욱 우울해하는 숀의 모습이 이 현상을 촉진시키는 모양이었다. 존은 만약 숀이 자살한다면 그 이유는 여자들이 달라붙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 괜찮긴 한 거냐?”

존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

아니잖아.”

존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다른 것도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그걸 묻기 위해선 숀이 정신을 차려야했다.

그걸 본 게 그렇게 충격적인거야? 너 상태는 특히 이상했고, 톰도 그랬지. 보고 싶어 하던 거 아냐?”

숀은 다시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존은 긴 한숨을 내쉬고 숀을 바라보기만 했다.

톰도 많이 화를 냈어.”

숀이 말을 되찾았다.

내가 귀중한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어. 그래도, 급했어. 얼른 듣고 싶었어. 내가 보게 뭔지, 그녀가 본 거랑 내가 본 게 같은 건지. 다른 거라면 다행인데, 같은 거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아니, 내가 뭐라고 했어야 나한테 그 대답을 해 줬을까? 근데 나는 왜 다른 거였길 바라는 걸까? 내가 헛것을 봤으면 하고 바라는 게 맞나?”

숀은 웅얼거리다 잔을 단숨에 들이켜 비웠다.

톰이 앤한테 간댔어.”

?”

가서 확실히 알아오겠다고 하더라고, 숲으로 가겠데.”

언제?”

꽤 됐어. 아마 앤은 벌써 만났을걸.”

존은 마침내 찾아다니던 톰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순간적인 불안을 느꼈다. 톰은 앤과 숀의 반응에 미묘하게 분노하고 있었다. 톰이 열성적으로 바라던 것을 앤과 숀은 불길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톰은 격노한 것 같았다. 그런 그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다가 누군가를 해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존의 머리를 스쳤다.

, 너 혼자 집에는 갈 수 있겠냐?”

존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숀을 다그치듯 물었다. 그는 마음이 급했다. 그래서인지 술집의 웅성거림을 느끼지도 못했다.

?”

나도 앤한테 가봐야겠어. 톰이 보이질 않으니, 앤이 어디 있는지 알거야,”

그럴 필요 없을 거 같아.”

뭔 소리야?”

존은 그제야 주변의 웅성거림을 느꼈다. 모르고 있기엔 웅성거림이 커져있던 탓도 있었다. 존은 웅성거림의 중심에 선 사람을 돌아보곤 숀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가 앤에게 갈 필요가 없었다. 앤이 이곳에 온 것이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빌은 이제 화가 나려고 했다. 이 정장 입은 것들이 한밤중에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빌은 자신이 모슨 호출기사라도 되나 싶어 더욱 화가 났다.

무슨 문제요?”

두 가지 문제, 첫째는 한 청년입니다.”

전화의 한계 때문인지 한 사람만이 빌에게 말하고 있었다. 빌은 그것이 살짝 웃겼다.

앤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세 청년 중 한명입니다. 그가 직접 그들과 접촉을 시도했고, 성공했습니다.”

성공? 어떻게…….”

앤이 알려준 것 같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문제입니다. 그녀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폭주한다고 말한 게요, 방금?”

그녀는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처럼 처음에는 부정했습니다. 물론 그녀도 지금은 극복했습니다만, 당신과는 다른 방법으로 극복했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긍정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들에 대해 일종의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빌은 이 어이없는 소리에 할 말을 잃었다. 그 괴물들을 보고 충격을 먹어서, 멀쩡했던 소녀가 한다는 것이 신흥종교를 만들어 믿는 것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게 그렇게 급한 문제요?”

앤은 자신의 강한 긍정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피해자가 바로 그 청년입니다.”

첫 번째 문제라는 그 청년?”

그렇습니다. 앤이 그 청년에게 그들과 접촉할 기회를 제공해 준 듯합니다. 그 청년은 그들과 함께 있습니다.”

……전례.”

그렇습니다.”

빌은 그가 들었던 전례를 떠올렸다. 그들은 다른 외형을 가졌지만,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들과 같다. 사악하진 않지만 간악해 질 줄 안다. 호기심이 많기에, 그들의 고향을 떠나 이곳까지 와서 사람들을 연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풀숲에 숨어 야생동물을 관찰하듯 사람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들을 찾아오게 만들기도 한다. 간악하기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이용해 그들의 호기심을 채울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들이 앤을 이용하는 것이군.”

. 그 청년의 호기심을 앤을 통해 자극한 겁니다. 직접 데려가지 않기로 했지만, 오는 걸 막지는 않습니다.”

앤을 세뇌한 거요?”

그런 미개한 짓을 그들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앤을 이용할 수 있다고?”

, 그들은 저희보다 아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저희와 같은 역사적인 경험을 이미 했고, 그들과 저희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겁니다.”

……나는 뭘 하길 바라오?”

저희는 그들과 접촉한 청년의 무사귀환을 담당하겠습니다. 형사님께서는 앤을 감시하여주십시오.”

 

숲에 자아가 있고 감정과 지성이 있다면, 숲에 다시 들어온 세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에 재밌어하며 머릿속으로 온갖 소설을 썼을지도 모른다.

숀은 전에 없던 움츠러든 모습으로 숲에 들어오고 있었다. 끄는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밝은 모습을 하고 있는 앤에게 거의 끌려가고 있었다. 이 기묘한 커플의 한참 뒤에는 존이 함께하고 있었다. 거리로 봐선 일행이라 하긴 힘들었지만, 존은 그들을 미행하는 셈이었으니 충분히 일행이었다.

주점에서 앤은 숀을 거의 꼬드기다시피 했다. 그녀의 상태와 톰의 행방에 대해 묻는 존을 본체만체하며 숀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녀는 숀에게 마음의 병을 치료하고 싶으냐면서, 진실을 알고 나면 오해가 풀리면서 기분이 나아질 거라며 숀을 꼬드겼다. 숀은 그녀의 말에 홀린 듯 그녀에게 동조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둘은 그 숲을 향해 출발했다.

그와 동시에 존도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세 가지 감정이 겹친 추적이었다. 먼저 친구 톰. 그는 앤의 말을 듣고 이 숲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를 알고 있을 터였다. 존은 그녀가 숀을 끌고 가는 곳이 톰이 있는 곳이라고 확신했다. 또 하나, 저 불안해 보이는 커플의 행방. 한 사람은 불안하게 미쳐있고 한 사람은 밝게 미쳐있었다. 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마지막 목격자일 자신이 그들을 도와야 할 거라는 책임감이 존에게 있었다. 그리고 분노. 분노는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타오르기 시작해 상상이상의 화력을 발휘하곤 한다. 존은 분노했다. 그녀를 걱정하고, 그녀를 찾아다니고, 그녀를 걱정하던 사람은 존이었다. 그런데 앤은 그의 친구를 실종시키고 엉뚱한 사람을 챙기고 있었다. 존이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서 존은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소외감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위협은 생존본능을 일깨우고, 생존본능은 분노에게 있어 마른 장작이다.

존이 차마 깨닫지 못한 어둠이 조금씩 찾아오고 있었다. 주변은 나무 장작이 쌔고쌨지만 아직 살아들 있으니 존의 시야는 어쩔 수 없이 짧아져 있었다. 그 시야 탓에 멀찍이 나아가는 그 커플의 모습도 추적하기 쉽지 않았다. 차라리 붉은 손전등이라도 챙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늘이 조금씩 남색과 붉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 색들이 갑자기 앤과 숀을 잡아먹었다. 존은 그들의 행방을 놓치자 순간 당황했고, 달리다시피 그들이 사라진 곳을 향해갔다. 그 때 존의 눈앞을 누군가가 덮쳤다.

!”

! 나다.”

존은 마음을 가다듬고 나서야 그의 앞을 가로막고선 사람이 빌임을 깨달았다. 앤의 실종 당시에 만났던 질의 삼촌이자 담당형사였기에 안면이 있었다.

빌 형사님?”

여기서 뭐하냐?”

존은 불안한 표정으로 빌의 어깨 너머를 내다봤다. 빌은 존의 말없는 대답을 이해했다.

앤을 쫓지 마라. 위험해.”

어째서죠?”

설명은 힘들구나. 하지만 내가 앤을 데려올 테니…….”

도대체, 뭔데요!”

존의 무의식에서 타오르던 분노가 그의 밖으로 옮겨 붙었다.

젠장! 앤은 사라졌다 싶다가 다시 나타나더니 이젠 제 발로 숲속으로 사라지고 있고! 톰은 괜히 저 혼자 열불내더니 직접 자진해서 사라졌고! 숀은 저기서 뭐 좀 봤더니 찌질이가 돼서, 이상한 헛소리만 하다가……젠장! 도대체 저 곳에 뭐가 있고, 뭐하는 놈들이 있기에 사람들을 병신으로 만드냐고요!”

존은 한바탕 쏟아 붓고는 씩씩거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빌은 그런 존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존 진정해라. 많이 흥분했어. 그러니까 돌아가라. 감정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그들을 봤다간 너도 병든다.”

“‘그들이요?”

빌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이 어린 친구에게 사실을 알려 스스로 판단하게 할 생각이었다. 사실을 알면 돌아갈 지도 몰랐다. 만일 계속 가겠다고 해도 마음의 준비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터였다.

저 너머에 있는 자들은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러기에 오히려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혼란에 빠지지. 차라리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주 다르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아주 같으면 훨씬 받아들이기 쉬울 텐데…….”

무슨 말씀이세요?”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어, 하지만 잘 듣거라. 저 자들은 저 멀리서 온 것들이야. 생긴 것은 확실히 다르지. 그런데도 속이 너무 닮았어. 그래서 우리와 저들은 서로에 대해 심한수준의 호기심을 갖지. 있는지 없는지 증거는커녕 흔적도 없는 시절부터 우리는 저들의 존재를 상상해왔을 정도로 선천적인 호기심이 있는 거야. 그래서 서로는 끌리지. 그러나 저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있어, 우리는 처음부터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거다. 저들의 우월한 호기심과 우리의 불안한 호기심이 만나면 결과는 좋지가 못 해.

어설프게 그들과 만났다간, 우리는 알아내고 싶은 것도 알아내지 못 한 채 불안한 호기심을 마음속에 쌓게 된다. 그렇게 되면 두려움이 생겨나. 아무리 원하고 긍정하던 것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받아들이기 힘들어지는 법이거든. 지금껏 믿고 살던 현실성이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지. 현실을 무너뜨린 상대를 공포와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다. 온 마음을 다해 부정하고 싶어지게 되는 거지.

하지만 반대로 너무 완전한 접촉을 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져. 현실은 무너졌지만 이젠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되는 거야. 네가 지금 그들을 만나러 가면 바로 너의 현실을 부수고 새로운 현실을 보게 되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너 스스로도 잃어버리게 돼. 길을 잃고 헤매게 되면 너도 앤이나 저 같이 가는 청년과 똑같아진다.

그 청년은 우연히 마주친 것만으로도 현실을 잃었다. 부정하고 싶어져 앤을 찾아간 모양이더구나. 그런데 앤은 그들을 너무 완전히 마주했지. 그 애는 저것들을 필요 이상으로 긍정하고 있어. 아마 부정하려는 청년을 설득하겠다고 데려가는 모양이구나. 나는 나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기에 내 현실을 잃어버리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붙잡을 수 있었어. 그럼에도 많이 힘들었지. 너는 돌아가거라. 지금 네가 가진 현실을 붙잡아. 나는 너를 그만큼 도울 줄 모른단다.”

죄송한데, 뭔 소린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요! 현실이니 뭐니 하는 소리는 알아듣고 싶지도 않고! 그런 이상한 소리로는 저 녀석들이 미친 이유가 설명이 되질 않잖아요! 안 되겠어요. 제가 직접 봐야겠어요.”

존은 이미 뒤집어진 눈으로 빌을 밀치려고 들었다. 빌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난감한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존을 들여보내야 했다. 빌은 그 정장 놈들에게 연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저 멀리 앞서가던 두 사람이 있는 곳에서 비명이 들려왔던 것이다. 분노에 싸인 존보다도 빌은 습관 덕에 더 빠르게 튀어나갈 수 있었다.

 

●○●○●○●○●○●○●○●○●○●○●○●○●○●○●○●

 

21790615.

디어엘리제 518-c 행성 거주민접촉연구기록

NASA 챈호옌 호 외계생태분석수석연구원 크리스토프 Y 스미스

개인연구일지 E12

 

독특한 일이 있었다. 행성거주 원주민들 네 개체가 갑자기 은신처로 찾아왔던 것이다.

개중 두 개체는 이미 접촉한 적 있는 개체였다. ‘ㅐㄴ이라는 발음의 이름을 가진 암컷개체와 ㅂㅣㄹ이라는 이름의 수컷개체였다. ‘ㅐㄴ은 포획 후 연구했던 개체였다[*연구기록 J016 참조]. 이미 연구를 마무리 시켰고, 거주민 지도부 소속 개체가 요구해왔기에 풀어주었었다. ‘ㅂㅣㄹ은 그 거주민 지도부 소속 개체가 소유한 일종의 수하로 보이는 개체다.

나머지 두 개체는 각각 ㅐㄴㅂㅣㄹ의 인솔을 받아서 우리의 은신처로 찾아왔다. ‘ㅐㄴ이 데려온 수컷개체는 우리를 보자마자 신음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그 개체는 비명을 지르며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것의 회색얼굴이 희게 보일 정도로 낯빛이 나빠졌다. 아마 우리를 보고 놀란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이미가 숲을 해매다 우연히 접촉한 개체라는 모양이다. 아마 그때의 접촉에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생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ㅐㄴ은 그에 반해 우리를 만나자마자 아주 기쁜 표정을 지었다. 신이 나서 데려온 개체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는데, 경황이 없어서 번역은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우리를 보고 심하게 기뻐하는 모습이 약간 우스웠다. 우리가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준 기억은 없었는데 말이다.

ㅂㅣㄹ과 그 동료개체는 예의 수컷개체가 지른 비명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 우리는 ㅂㅣㄹ을 알아보고 그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도 한 손을 펴 들어 올리며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제야 번역기를 켠 우리는[*범위 번역기 작동일지 참조] 우선 ㅂㅣㄹ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려했다. 그 때 갑자기 ㅂㅣㄹ이 인솔해온 개체가 우리를 보고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ㅐㄴ이 나서서 달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개체를 사살해야 했을 뻔했다.

ㅂㅣㄹ은 우선 자신의 상관 개체가 우리와 만나고 갔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이미 만났으나, ‘ㅌㅗㅁ이라는 발음의 이름을 가진 개체는 아직 우리가 확보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개체는 우리와 자발적 접촉을 한 때에 사고로 좌측 팔에 분쇄성 골절을 당했기에 우리가 치료 중에 있는 개체다. 특히 절단되다시피 한 좌측 6번째 손가락은 우리의 기술로밖에 치료가 되지 않는다[*포획거주민 확보 기록 T009 부록 B 부상거주민 치료기록 참조].

ㅂㅣㄹㅌㅗㅁ의 거취에 대해선 납득했으나, 우리가 인솔해온 두 개체를 확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맹렬히 반대했다. 그는 얼굴빛을 검게 물들이며 강하게 주장했으나 우리는 계약사항을 제시했다. 그가 특히 주장한 ㅈㅗㄴ이라는 개체는 ㅐㄴ을 쫓아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철회 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미 두 수컷개체는 ㅐㄴ의 설득에 붙잡혀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지역에서도 수월하게 연구 대상 포획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까지 요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한 것은 처음이지만, ‘ㅐㄴ은 잘 해낼 것 같다. 행성 지도부가 우리와 민간의 접촉을 민감하리만치 거부하고 있지만 우리도 연구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문을 열 수 없으니 그쪽에서 문을 열고 오게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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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857 단편 (심사 제외)탐정 어느 지방 사서 2014.04.27 0
2856 단편 표절방지기 부엉 2014.04.23 0
2855 단편 텅 빈 지하철에서 엄길윤 2014.04.11 0
2854 단편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특수문자 2014.04.14 0
2853 단편 중독 깨진유리잔 2014.04.09 0
2852 단편 시선이 머무는 곳 Joaquin 2014.09.23 0
2851 단편 플루터비 2014.03.25 0
2850 단편 아낌없이 주는 괴물 정원 2014.03.13 0
2849 단편 레스토랑 어느 지방 사서 2014.03.10 0
2848 단편 걷는다. 어느 지방 사서 2014.03.11 0
2847 단편 나는 니그라토다 [intro]1 뫼비우스 2014.03.08 0
2846 단편 지옥 EYL 2014.03.16 0
2845 단편 단편1 어느 지방 사서 2014.03.10 0
2844 단편 너는 눈을 감는다. 티아리 2014.02.26 0
2843 단편 청개구리의 꿈을 꾼 이야기1 너구리맛우동 2014.02.24 0
2842 단편 안 알려 줌 Tom_Ashy 2014.02.25 0
단편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얼빠진소 2014.02.21 0
2840 단편 나는 자석의 기원을 이렇게 쓸 것이다 너구리맛우동 2014.02.19 0
2839 단편 [심사제외]노예주와 노예 니그라토 2014.02.19 0
2838 단편 색출 마지굿 2014.02.0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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