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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둠속으로

2014.07.05 20:4807.05

어둠 속으로

1

가로등이 껌뻑거릴 때마다 어둠이 거리를 차갑게 식혔다. 가로등은 깨진 틈 사이로 위태롭게 빛을 뿜어냈다. 수 십 번이고 껌뻑거리다가 가로등이 언제 꺼져 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기 전에 내가 가로등을 고쳐야 했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불이 꺼졌다가 다시 들어오면 바닥에는 가로등의 크기보다는 조금 작은 그림자가 생겼다. 그 모습은 흡사 시계의 초침처럼 보였다. 나는 철제 사다리를 가로등의 옆에 가져다가 댔다. 가로등이 껌뻑거리는 문제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회로통이 있는 가로등의 위쪽으로 가야만 했다. 위쪽에 도착하자 나는 허리춤에 둘러 맨 가죽 백에서 십자 드라이버를 꺼냈다. 회로통 앞에 있는 나사를 분리하기 위함이었다. 총 네 개로 봉해져 있는 나사를 전부 분리해내는데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소 묵직한 회로통 뚜껑을 분리해내자 가로등의 안쪽이 여짐없이 드러났다. 회로통의 안쪽에는 수 많은 전기 코드와 가늘은 회로들이 먼지가 쌓인 채 엉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문제가 되기 전까지 관리원들이 몇 달이고 방치해놓은 것이 분명했다. 전기차단기가 어디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회로통을 뒤적이는 중간에 타들어간 전선이 보였다. 먼지 때문이었다. 나는 절연 장갑을 낀 손을 전선으로 가져다 댔다. 가로등은 계속해서 껌뻑거렸다. 단순히 절연테이프를 감아주기만 해도 될 수 있지만 심하게 방전되었다면 전선을 꺼내어 교체 해야만 했다. 내가 왼손으로 손상된 전선을 들어올리는 순간, 번쩍 하는 스파크가 일고 가로등의 불이 꺼졌다. 전선을 들어올린 왼손이 부들거렸다. 놀랐거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손 떨림은 삼 년전부터 생긴 고질병이었다. 침착하게 차단기를 내린 후에 해결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잘못된 접촉으로 폭발이 일어날지도 몰라 나는 왼손으로 전선을 들어올린 채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나머지쪽 손으로 회로통 안쪽을 더듬거렸다. 물렁한 전선이 닿을때마다 손에 땀이 흐르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둠 속에서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불이 켜지기 전까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몇 분간의 고투끝에 마침내 딱딱한 손잡이가 손에 닿자, 나는 있는 힘껏 손잡이를 아래로 내렸다. 후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낡고 오래된 아날로그 폴더폰의 화면이 가로등의 안쪽을 비추었다. 부들거리던 왼손의 떨림이 멈추었다. 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손상된 전선을 잡았다. 주변에 합선된 다른선들을 랜치로 조심스럽게 잘라냈다. 그리고 엉켜진 부분을 풀어내고 랜치에서 여분의 구리선과 도구들을 꺼내어 다시 이어주었다. 합선의 가장 큰 원인인 먼지를 제거해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손상된 전선은 다행히 크게 손상되지는 않았다. 전선의 녹아내린 부분에 튀어나온 구리선들을 잘 집어넣은 뒤에 절연테이프를 감아주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되었다. 전선들을 원 위치로 되돌리고 코드를 꼽은 뒤, 나는 차단기를 올렸다. 전기가 들어온 가로등은 몇 번 껌뻑거리더니 이내 환하게 주변을 비추었다. 나는 회로통을 원래 있었던 것처럼 다시 봉해놓은 뒤에 사다리를 타고 한 발 씩 천천히 내려갔다.

 2

내가 중간 쯤 내려왔을 때 뜬금없이 휴대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전화 올 사람이라고 해 봐야 한국에는 아무도 없었다. 더 이상 내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이혼한 아내이거나 혹은 아이들에게서 걸려온 전화일 것이었다. 삼 년 전, 아내는 이혼을 하자고 나에게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당신보다 더, 말이에요. 나는 아내가 결혼하기 이전부터 개방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명절 때나 제사 때에 참가하지 않거나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다는 것 쯤은 나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또 오늘은 기분이 좋지 않아 잠자리가 하고 싶지 않다던지 하는 솔직함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아이들에게 나쁘지 않은 엄마였고, 나에게 이렇다 할 간섭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나와 두 아이를 남겨두고 갑자기 이혼을 하겠다는 아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이들은 상관 없어요. 유학 가고 싶다기에 보내주기로 했어요.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 상의 없이 일을 치루는 것이 정말로 그녀다웠다. 나는 아내가 집에서 나간 이후 며칠 뒤에 두 아이들도 비행기에 태워 보내야했다. 나는 살던 집을 처분했다. 혼자살기에 넷이 살던 집은 너무 넓었다. 나는 돈을 예금하기 위해 은행에 들렸다. 그때서야 나는 몇 년간 둘이서 함께 들었던 적금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싸게 살 수 있는 단칸방으로 집을 옮겼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야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식기의 개수가 달라지거나 밥을 먹느냐 라면을 먹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매 달마다 이혼 한 아내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생활비를 핑계로 돈을 요구했다. 실제로 나는 아이들이 어디 무슨도시에서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 조차 몰랐다. 겨우 몇 달마다 전화로 안부전화나 듣고 있었으니 어느쪽으로 보나. 실질적으로 유학에 도움을 준 것은 아내였을 것이다. 나는 몇 시간 뒤 아내의 계좌에 돈을 송금했다. 아내에게서 답장이 왔다. 아이들도 기뻐할 거라고 했다.

나는 정말로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전 아내에게서 온 전화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정말로 돈을 전해 받은 아이들이 전화를 한 것일지도 몰랐다.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오른 손으로 사다리를 움켜쥐고 다리는 사다리에 고정한 채로 다른 한 손으로 핸드폰이 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마침내 핸드폰이 손에 쥐어졌다. 나는 한 손으로 폴더를 열기 위해 연간 낑낑거렸다. 철제 사다리가 휘청거렸다. 전화기를 쥔 왼손이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손 떨림이었다. 사다리가 다시 한 번 휘청거리자 나는 손에 들고있던 핸드폰을 놓쳤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은 퍽, 소리를 내더니 수많은 부품들을 토해내고는 부서졌다. 더 이상 어떤 전화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나는 사다리를 내려와 장비를 챙겨 그곳을 떠났다. 그때까지도 가로등의 초침은 멈춰있었다.

3

운 나쁘게도 지하철은 멈춰있었다. 마지막 운행을 마친 전차가 플랫폼 앞에 얼어붙은채로 어둠을 집어삼켰다. 플랫폼 안쪽, 그곳에는 어둠이 있었다. 아니, 어디에나 어둠은 있었다. 나는 플렛폼 벽에 붙은 의자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내 머리의 왼쪽 위에 켜진 작은 조명등이 주홍빛으로 붉게 일고 있었다. 역 중간에는 음료수 자판기와 공중전화가 달려있었다. 나는 공중전화 앞으로 갔다. 투박하게 달려있는 거대한 수화기와 번호가 찍힌 버튼들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버튼들은 내 손가락 크기에 딱 맞았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번호를 몰랐다. 아이들 번호도 전 아내의 번호도 몰랐다. 번호는 핸드폰이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부서진지 오래였다. 뚜- 소리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또한 그 소리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울렸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나는 반대쪽 플랫폼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껌벅거리는 조명등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차라리 조명등이 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저것들은 고쳐놓아도 다시 고장나고 또, 다시 고장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이따금씩 정전은 자주 일어났다. 여름 철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이기도 하고,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차단기가 내려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플랫폼의 끝자락 앞까지 다가갔다. 한 발자국만 더 움직이면 떨어질 거리였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되면 전차는 시간이 흘러감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철도를 따라 움직일 것이다. 나는 반대쪽 플렛폼의 어둠 속을 응시했다. 머지않아 열차가 텅 빈 통로를 따라 플렛폼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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