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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느 가족 이야기

2014.06.21 10:5206.21




어느 가족 이야기




 경찰서에 가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나가거나 남의 사정은 길가의 똥만큼이나 관심 없는 악인이여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분명 샌디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말이다. 멍청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샌디는 자신이 경찰서에 있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끔찍했던 점심을 몇 백 번째 떠올리면서 단단히 닫혀 있는 문을 몇 십 번째 흘깃거렸다.당장이라도 저 문을 열고 우락부락한 경찰이 뛰어 들어와 자신을 향해 총을 쏘거나 전기의자로 질질 끌고 갈 것만 같았다.

 

 “클램, 네 작은 숙녀가 눈이 빠지게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조금만 더 있다간 의자에서 오줌이라도 쌀 것 같으니 어서 가서 좀 얼러봐.”

 클램이 서류철을 들고 나타났을 때 샌디는 재빠르게 몸을 움츠렸다. 의자 위에서 사라지고 싶어 하는 듯했다. 소녀를 보자 클램은 머리와 가슴 언저리가 아파왔다. 샌디는 골치 아픈 문제였다. 알아주는 베터랑, 터프가이 클램에게도 샌디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미루고 싶은 문제였다. 한 가족이 점심을 먹던 중 모두 독살되다. 대낮의 참사. 기적처럼 살아남은 아이는 정신박약아입니다. 땅땅.

 

 “샌디, 너에게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단다.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몇 가지만 확인하면 오늘 이후로는 경찰서에 안 와도 될 거야.(샌디는 눈에 띌 정도로 안심했다.) 도와줄 수 있겠니?”

 클램은 아이가 놓치지 않도록 또박또박 말하며 책상 위에 서툴게 아이를 위한 것들을 펼쳐놓았다. 샌디가 클램을 마주보자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고 더러운 손이 한참 동안 망설이더니 사탕을 집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니?”

 “아주 어렸을 때부터요. 샌디 부모님은 옛날에 돌아가셨는데 지미 아저씨가 친척이라서 샌디를 받아주셨어요. 샌디는 고아원에 가지 않아 운이 좋은 아이예요.”

 샌디는 외운 것처럼 말했다. 과연 운이 좋은 아이인가. 클램은 다 떨어져가는 더러운 옷과 그 사이로 보이는 멍과 흉터에 눈길이 갔다.

 “지금 몇 살이지?”

 “12살이요.”

 “아주머니 일을 자주 도와드리니?”

 “아주머니가 시키시는 일은 모두 할 수 있어요.”

 “요리도 말이니?”

 “. 샌디는 아주머니를 도와서 매일 식사준비를 해요.”

 “빨래나 심부름 같은 것도?”

 샌디는 얼굴을 찡그리더니(아마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이다.) 빨래, 심부름, 청소, 텃밭정리 같은 일거리들을 쏟아냈다.다 쓰러져 가는 고아원의 고아와 다를 바 없는 모습 때문에 원래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정신박약의 여자애가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가족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니? 내 말은, 넌 오랫동안 함께 살았으니까 가족들의 진짜 성격을 잘 알거 아니니.”

 샌디는 입을 다물었다. 정신박약아라도 웃을 일이 많은지 울 일이 많은지는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샌디는 가족이 다시 무덤을 박차고 나오지 않을까 겁먹은 아이처럼 보였다. 샌디가 아주머니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쓸모없는 년이었다.아주머니 심부름 중에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매를 맞거나 밥을 굶게 되었다. 지미 아저씨는 숨 쉬듯이 술을 마셨는데 아저씨가 일찍 잠들지 않는 날에는 집안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제일 끔찍했던 기억 중 하나는 아저씨가 던진 그릇에 맞아 기절한 것이다. 그 날 샌디는 소란에 놀라 경찰과 함께 찾아온 이웃들 덕분에 병원에 처음으로 갈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상처가 머리에 남아있다. 그러나 제일 무서운 것은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아닌 아들 제임스였다. 제임스는 샌디보다 두 살이나 어렸지만 제 나이보다 두 배는 잔인할 줄 아는 아이였다. 제임스는 샌디에게 상상도 못할 짓을 즐겨했고 샌디가 울 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제임스는 샌디를 병신, 샌디-이라 부르길 좋아했다.

 

 “좋은 분들이었어요. 갈 때 없는 샌디를 먹여주고 재워주셨어요.”

 클램은 한숨을 쉬는 대신 서류철을 뒤적거렸다. 소녀는 더러운 소매로 퉁퉁 부은 눈을 비볐다.

 “그날 점심이 빵, 호박수프, 소시지 그리고 맥주 두 잔.. 그 날 요리도 샌디가 했니?”

 “아주머니와 함께 했어요.”

 “그날따라 평소와 다른 일은 없었니?”

 샌디의 얼굴이 다시 찡그려졌다가 붉어졌다.

 “설탕이 부족했어요. 샌디는 설탕을 정말 좋아하는데 아주머니는 샌디가 설탕 먹는걸 아주 싫어하세요. (이 부분에서 샌디는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그 날 아주머니가 샌디 때문에 설탕이 부족하다고 화내셨어요. 그래서 샌디가 설탕을 구해왔어요. 샌디는 단 걸 모아두는 보물상자가 있어요. 아주머니가 며칠 전에 버리셨는데, 다시 보니까 예쁜 병에 흰 설탕이 많이 들어있었어요! 또 혼날까봐 아껴뒀는데 요리에 쓸 설탕이 부족해서 그걸 아주머니께 드렸어요.”

 “그래. 찬장을 보니까 이 병이 있더구나. 네가 말한 그 병이 이게 맞니?”

 “.”

 “샌디는 그날 밥을 먹었니?”

 “아뇨. 아주머니는 샌디가 설탕을 훔쳐서 설탕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샌디는 벌을 받았어요.”

 클램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확인할 것도 없다. 제 부모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의 잘못과 죄책감을 모르던 제임스는 용서할 수 없는 장난을 저질렀고 그것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왔다. 운이 없는 건 그들이었다.

 

 “샌디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샌디의 눈이 다시 축축해졌다. 클램은 샌디가 더러운 소매를 다시 들기 전에 얼른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아이가 갈 곳은 뻔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은 15살까지만 머물 수 있다.이후에는 직업 훈련소를 겸한 소개소로 가야한다. 어느 하나 고단하지 않은 곳이 없다. 다른 아이들보다 정신적으로 부족한 샌디에게는 지미 아저씨 집보다 더 나아질 것 없는 인생이 될 것이다. 클램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상 위에 있는 것들을 모두 챙기렴. 내 아내가 식사를 준비했는데 양이 많다고 하는구나. 요새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을 텐데 함께 가지 않겠니?”

 샌디는 벌써부터 배가 고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퉁퉁 부은 눈이 순진하게 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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