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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밤바다 ; 생각의 차이

2014.06.20 00:0006.20

밤바다 ; 생각의 차이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과 고여 있는 물이 하나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듯 거세게 쏟아져 내린다. 칠흑 같은 어둠을 품은 저 밤바다에는 수많은 것들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절대로 세상에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라던가.

시꺼멓게 꿀렁거리는 파도는 마치 먹잇감을 잔뜩 삼킨 후의 소화 작용을 연상시킨다. 문득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 발작을 일으킨 환자가 약을 찾듯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나야.

 

익숙한 너의 목소리에 심장이 가라앉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터질 듯이 더 빨리 뛴다. 한참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나는 입을 떼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네 목소리가 이렇게나 따뜻할 줄이야. 하지만 네 목소리를 들을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겠지.

 

왜 그래?”

 

너에게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한 달 전에 생긴 나만의 비밀이야.

 

뭔데?”

 

너무도 숨이 가쁘고 혼란스러워서 혼자 버텨보려 했는데 너에게만은 말해야 시름을 덜 수 있을 것 같아. 넌 나를 미워하게 될 거야. 당장 나에게 달려와 뺨을 때리며 미친놈 취급 할 지도 모르지. 그래도 들어주겠니?

 

내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알았으니 말해 봐. 우리 사이에 언제부터 비밀이 있었니? 지금 그리로 갈게.”

 

그래. 동네 끝에 있는 해안도로에서 기다릴게. 오면서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비가 미친 듯이 내리는 군. 그 날도 딱 이런 날씨였지.

출장을 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는 길이었어.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우기라도 하듯이 촘촘하게 내리 꽂히던 밤비 때문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 켜 둔 라디오 소리와 빗소리가 섞여 들릴 정도였으니. 정말 무서운 기세로 내리는 비를 보면서, 무료했던 나머지 바다가 새어나오면 이런 느낌일까하는 상상을 하면서 차를 몰았어. 항상 달리던 해안 도로인데도 빗속을 뚫고 지나가려니 여간 위험한 게 아니더군.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도로를 빗소리만이 가득 채우고 있었지.

그 때였을 거야. 끊임없이 이어지던 빗소리를 잘라먹으면서 이질적이고 뭉툭한 소리가 났던 게. 텅 빈 공기만 가르며 나가던 차를 무언가 낯선 것이 막아섰던 게.

길고양이일까? 유기견일까? 그것도 아니면……?

 

생각보다 힘들군. 그만할까?

 

……, 아니. 계속 이야기 해 줘.”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어. 무엇인지 못 보고 지나쳐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생각한 그것이 아니었기를 바라면서 조수석 바닥에 놓아두었던 까만 우산을 쓰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어.

눈앞이 아찔했어. 빗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것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어.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있었어. 저를 친 사람을 눈으로 쫓으려는 듯, 커다랗게 뜨고 있었어.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잦아들더니 눈동자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맥없이 풀려버렸어.

3.

그 사람과 내 눈이 마주친 짧은 순간, 속에서 알 수 없는 부글거림이 올라왔어.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 그래.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 그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말해봐. 난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것 봐. 벌써부터 떨고 있잖아 넌.

 

피곤해서 차를 세우고 자다가 잠깐 꾼 개꿈이길 바랐어. 내 손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흔들어대는 건 정말이지 무서운 일이잖아. 미칠 것만 같았어. 난 주위를 둘러보았어. 오른 쪽엔 높은 산이, 왼 쪽엔 가드레일 너머로 곧장 깎아지른 절벽과 바다가 있었지. 그 넓은 풍경이 마치 사위를 틀어막고 있는 듯 했어. 그리고 그 누구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 않았지. 바닥을 보니 억수같이 내리는 빗물에 붉은 빛은 흐려지고 있었어.

내가 어떻게 됐었나봐. 내 눈이 빗물에 쓸려 드러난 나무뿌리로 향했을 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드러난 뿌리 사이에 끼어있던 사람 머리통만한 돌을 보았을 때,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던 영상이 머릿속에 미친 듯이 그려지기 시작했어.

뒷좌석에 넣어두었던 수트케이스를 열어젖히고 어제 맸던 넥타이를 꺼냈어. 세면도구를 담아두었던 에코백을 비우고, 돌을 집어넣고 빠지지 않게 입구를 묶었지.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서 그녀의 다리에 묶었어.

 

잠깐. 왜 그래?

 

……, 설마.”

 

그래. 그건 정말, 정말 무서운 꿈이었어.

그 작은 몸뚱이를 안아 올려서 가드레일 너머 시꺼먼 어둠 속으로 내던졌어.

그리고 몇 초나 지났을까.

풍덩하는 소리가 나더니 정지되어 있던 시간이 풀린 듯 빗소리가 귀를 때렸고, 내 기억도 거기서 끊어졌어. 정말 기막힌 꿈이었어.

 

그런 꿈은 잊는 게 좋을 거야.”

 

그럴 수 있을까?

 

비는 그쳐 있었어. 차에서 정신을 잃고 그대로 잤나봐.

차를 움직이려 백미러를 보니 뒷좌석에 널브러진 옷가지들과 물건들이 보이더군. 머리를 쓸어 넘기니 머리카락에 물기가 남아있었어.

난 절망했어. 살인자라도 된 느낌이었어.

아니, 진짜 살인자였지. 너무나 괴로웠어. 실종신고가 접수 된 건지,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이 나붙었고, 경찰도 수사를 시작했지. 너무나 무섭고 불안한 나날들이었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 너도 봤잖아, 그거.

밤마다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나를 바라보던 짧은 순간의 눈빛이 너무나 강렬했어. 난 밤새도록 그 눈빛과 마주해야 했어. 그녀의 시선 끝에는 내가 있었고, 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 새하얀 얼굴과 마주쳤지. 정이 들어버릴 정도로 끈질기게 나를 쫓았어.

차라리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를 했더라면 훨씬 나았겠지. 미친 듯이 죄책감이 밀려왔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며 하루에 수십 번씩 나를 질책했지. 당연히 바다 속에 가라앉았을 그녀를 찾을 수는 없었고, 난 매일 혼자 그 꿈에 시달렸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던 걸까. 결국 나를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몰아넣을 걸 몰랐던 걸까? 그녀의 울음소리가 아직까지 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아.

 

이제 조금 편해지고 싶어. 날 용서해 주겠니?

 

무슨 소리야! 지금 다 왔어. 어디 있니?”

 

넌 내 이야기를 듣고도 나를 만나고 싶니?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우리 만나서 얘기하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잖아. 더 큰 일은 벌이지 말자.”

 

그토록 바라던 그녀가 내 앞에 왔다. 쏟아지는 빗물 앞에선 우산도 무용지물이다. 그녀의 젖은 눈이 많이 흔들린다.

급하게 뛰어 나왔니?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나오지, 미안하게 왜 그래. 그녀가 입을 열기 전에 와락 끌어안았다.

 

쓸 데 없는 이야기를 듣게 해서 미안해. 마지막으로 안아보고 싶었어.

 

무슨 소리야!”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주겠니?

 

날 미친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내가 한 달 만에 얼마나 망가졌는지 아니?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사그라지고 그 자리를 다른 감정이 메우기 시작했어. 그들이 끝내 그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너무나 정성스럽게 그녀를 묶어서 바다에 내던졌거든. 그래.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일이었어. 발견 되었어도 그녀에게서 나를 발견할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어. 괜한 불안감이었어. 난 이대로 함구하면 되는 거였어. 그 때였어, 처음으로 안도한 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성취감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이상한 감정이 끓어올랐어.

, 그들은 날 찾지 못해. 정신없이 움직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결국엔 나를 담지 못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못 본 그들은 나를 찾지 못한다고. 알겠니? 나는 사람을 죽였어. 그리고 시체를 은폐했어. 하지만 그들은 나를 몰라. 내 손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움직이는데도 우매한 그들은 나를 찾지 못하지. 비밀의 힘은 그만큼 위대한 거야. 우리 사이에 비밀이 없다고 했니? 그건 순 엉터리야. , 정말 내가 한 달 동안 하루하루 후회 속에 갇혀 지내던 게 한심스러웠을 정도였지. 왜 그랬을까. 진작 깨달았으면 훨씬 편하고 좋았을 것을.

 

하하,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만약에 그날 일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성실한 회사원으로, 너의 착한 연인으로 남을 수 있었겠지. 나도 이런 내가 징그러워. 쓸 데 없는 곳에서 희열을 느끼는 내가 소름끼치도록 낯설어. 내가 왜 웃고 있는지, 내가 왜 이렇게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오랜 잠에서 막 깨어나 천천히 감각이 돌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야. 아아, 시간을 돌리고 싶어. 그 감각을, 그 묘한 느낌을 기억하기 전으로.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을 때로! 내가 그 때 다른 행동을 취했더라면 난 아마 지금도 소름 끼치도록 평범하고 정갈하게 살고 있었겠지.

 

너무 궁금해. 너도 죽을 때 필사적으로 그렇게 나를 찾을까? 이제 대답해 줘야지.

이런, 벌써 말을 못하게 되어버린 거니? 사람이 생각보다 참 쉽게 가는구나.

 

……후회하게 될 거라고 했잖니.‘

 

이것 봐. 사람 목숨 쥐고 흔들기가 이렇게 쉽잖아. 비오는 날이 왜 좋은지 아니? 이렇게 피가 많이 흘러도 물에 씻겨 나가서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이야.

 

 

 

*

 

 

 

비가 언제 그친 것일까. 어느새 투명한 밤공기가 나를 깨운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니 비릿한 냄새가 손에서 올라온다. 저릿하다. 아직까지는 조금 마음이 쓰리다. 어서 손을 씻어야겠어.

대단하게만 느껴졌던 그 목숨을, 내게 너무나 커보였던 너를 내 손으로 이렇게나 쉽게 부릴 수 있을 줄이야. 정말 기가 막히지 않니?

숨을 헉헉 몰아쉬며 그녀에게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그러고 보니 이쯤이었던가. 숨겨져 있던 내 모습을 이끌어 내어 준 그 사람과 처음 대면한 것이.

그래, 내일 너의 가족들은 너를 찾지 못할 거야. 그리고 바보 같은 경찰들은 나를 찾지 못할 거야. 오늘은 풍덩하고 파문이 이는 소리가 꽤나 여유롭게 들리는 군.

 

나쁘지 않아.’

 

평범한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썩 나쁘진 않군. 너무나 미안하지만 난 확답을 얻고 싶었어. 이제 너의 미소를 볼 수 없다는 건 참 안타깝지만 그래야 마음이 편해 질 것 같았어. 아니라면 평생 그렇게 과거만 되돌아보다가 갈 것 같아서 말이야. 이런 나를 모두가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겠지만, 난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아무도 이해 못하는 삶을 산다는 건 힘든 일이지만 그것도 결국 입을 다물면 될 일이라는 걸. 이해 따위 얻지 않아도 난 잘 살고 있으니.

그리고 이런 비밀을 그러쥐고 사는 것도 꽤나 흥미로운 일이잖아?

 

이런, 밤이 늦었군.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하니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어. 차를 가져오지 않아서 돌아가는 데 꽤 시간이 걸리겠는걸. 모처럼 비도 그쳤으니 가드레일을 따라 걸어볼까. 시꺼먼 밤하늘을 집어삼키고서 무겁게 꿀렁이는 바다를 보며 걸어야겠어.

 

난 저 바다가 좋아.

내 이면을 알고도 입을 열지 않는 저 과묵한 밤바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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