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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피의 일요일

2014.06.15 22:1506.15


피의 일요일



아내가 손목을 그었다. 집안에 피가 흘러넘쳤다. 나는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지혈제와, 소독약과, 붕대가 필요했다. 나는 가파른 계단을 두 계단 세 계단씩 뛰어내려갔다. 더러운 물웅덩이를 밟으며 나는 비틀거리며 골목을 가로질렀다. 동네 주민과 어깨가 부딪혔고, 그가 잘보고 다니라고 소리쳤지만 나는 들을 수 없었다. 나는 달렸다. 심장이 부서지도록, 달렸다. 폐가 폭발하도록, 나는 달렸다. 태양이 너무 밝았다. 머리 속이 너무 밝았다. 머리 속의 눈물샘이 눈부시게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는 달렸다. 10년만에 처음 하는 달리기였다. 나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였다. 그것은 건강을 위한 달리기였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마라톤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북동쪽 약 30Km 떨어져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서, 이곳에서 기원전 490년에 페르시아군과 아테네군 사이에 전투가 있었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의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뛰어가 전한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기리는 뜻에서, 나는 달렸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약국 앞에 도착했다. 나는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박동과 함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나는 문이 부서지도록 두드리고 두드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달렸다. 그리고 달렸다. 나는 인적 없는 일요일 아침의 거리를 가로질렀다. 일요일이 너무 길었다. 그것은 피의 일요일이었다. 그것은 1887년 11월 13일 런던에서 일어난 폭력 사건이었으며, 2차 보어 전쟁 중인 1900년의 대규모 인명 손실이었으며, 1905년 1월 22일의 상트페테르부르크와, 1913년 8월 31일과 1920년 11월 21일의 더블린과, 1972년의 런던데리와, 1939년의 비드고슈치와, 1965년 3월 7일의 셀마 몽고메리의 행진 중에 일어난 그 모든 사건이었으며, 바르샤바 공방전 중의 1939년 9월 10일의 공중 폭격이었으며, 나의 아내가 초당 5밀리리터의 속도로 피흘린 날이었으며,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휴식을 취한 날이었으며, 동네의 모든 약국이 문을 닫은 날이었으며, 내가 미친듯이 동네를 뛰어다니며 닫혀진 모든 약국들의 문을 두드린 날이었다. 나는 두드렸다. 두드리면 열리나니. 열려라 참깨. 풀리지 않는 천국의 비밀 암호.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나는 천국의 약이 필요했다. 러너스 하이. 나는 달렸다. 그리고 달렸다. 그리고 또 다른 약국의 문을 향해서 달렸다. 또 다른 십자가를 향해서 달렸다. 나는 그 모든 십자가들을 향해서 기도했다. 그러나 나의 기도는 아무런 응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두드렸다. 그리고 달렸다. 나는 24시간 영업이라고 쓰여진 약국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두드렸다. 그리고 두드렸다. 나는 열두 시간 동안 두드렸다. 마침내 문이 열렸다. 나는 약국으로 들어갔다. 그 신성한 백색의 공간 속에서 나는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벽에 걸린 시계가 2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바늘이 똑딱거리고 있었다. 나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물은 셀프였다. 나는 물을 마셨다. 하루에 여덟 잔의 물을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낡은 이론을 아직 나는 믿고 있었다. 나는 낡은 로맨티스트였다. 나는 약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증세를 설명했다. 그는 일시적인 증세일 뿐이므로 걱정하지 말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의심했다. 그러나 그는 차근차근 내게 설명했다. 결국 나는 설득되었다. 나는 그가 권하는 약들을 구입했다. 그리고 달렸다. 나는 가파른 계단을 두 계단 세 계단씩 뛰어올랐다. 개들이 짖고 고양이들이 울부짖었지만 나는 달렸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나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어두웠다. 나는 불을 켰다. 나는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거울을 열었다. 그리고 거울 안쪽의 수납장에 약국에서 구입한 것들을 집어넣었다. 그것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달리기는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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