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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모의 꿈

2022.08.17 21:1508.17

네모의 꿈을 들어보았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동요 말이다. 나는 처음에 그 노래를 듣고 가장 완벽한 네모는 무엇인가, 떠올렸다. 이윽고 그것이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네모난 책들은 자신들이 가진 방대한 지식과 이야기와 사람들을 알고 내보이며 자랑한다. 예부터 책은 인류의 보고(寶庫)였다. 책에는 세상에 없는 게 없다. 그래서 ‘네모의 꿈’이란 찬송가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책이 네모난 게 아니라 네모난 게 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책의 사제들이다. 숭배하고, 역사를 잇는다.

나도 한 때는 그런 사람, 작가를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과 그들의 책들을 분류, 매입 및 매매를 하고 버리길 반복하는 일개 청소부에 불과하다. 내가 일하는 곳은 D중고서점으로, 일산 대화역 3번 출구 근처에 위치해있다. 옛날에 운영되던 거대한 2층짜리 옥상 카페를 개조한 곳으로, 다른 D서점의 지점들 중 가장 커다란 규모와 안락한 풍경을 자랑한다. 여름에는 몸이 시릴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대고, 겨울에는 뇌를 달구듯 난방을 해댄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충분했다. 길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으로서 ‘책’도 구경할 겸, 더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서점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잦았다. 사장의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커피 한 잔 값 정도 하는 중고책을 한두 권 사 자신의 지적자산을 쌓고 뽐내려는 무지렁이들이 점차 많아졌으므로.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동료들과 매니저에게 인사를 하며 출근카드를 등록했다. D서점의 로고가 새겨진 붉은색 유니폼을 걸쳤다. 카운터 뒤에 위치한 좁은 사무실은 털털 돌아가는 선풍기에서 풍기는 열기로 가득 들어찼다. 몸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사무실을 나섰다. 먼저 어제 매입한 책들을 분야별로 나누어야 했다. 나는 1층에 위치한 일반도서 담당이었다. 만화책과 어린이 도서, 그리고 카페로 구성된 2층은 매니저와 박 양 몫이었다. 나는 카트에 쌓인 책을 분야 팻말이 붙은 수레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 작업은 고루하면서도 지난했다. 문학은 시, 에세이 한국소설, 영미소설, 일본소설, 프랑스 소설, 인기저자, 신인작가로 나뉘었으며 나머지는 경제, 신학, 자연과학, 인문철학 등이었다. 같은 작업의 단순반복이었다. 책을 옮기고, 싣고, 나누고, 매대에 진열하고, 파본은 빼놓기. 중고책 특유의 때 묻은 향기가 코끝에서 얽혔다. 익숙한 향수를 떠올리게끔 하는. 켜켜이 쌓인 묵은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했다. 책은 상태가 최상, 상, 중, 하, 로 나뉘어 가지각색이었다. 훼손 정도가 심하고 본문을 읽는 데 불편을 주는 책은 매입 자체가 되지 않았다.

“힘들지 않아? 좀 쉬엄쉬엄 해. 오픈까지 아직 시간 좀 남았어.”

김 형이 다가와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곧 정규직 전환을 앞둔, 근육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거대한 몸집의 남자였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오픈 전에 조금이라도 쉬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할 게 많았다. 정가와 중고매매가 적힌 바코드도 붙여야 했고,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객들에게 보내기 위한 택배도 포장해야 했다. 김 형은 파스를 붙여주겠다며 뒤로 돌라고 했다. 나는 등 쪽의 옷을 살짝 걷었다. 시푸르게 찬 느낌이 등줄기를 훑다가 서서히 옅어졌다. 그 작업을 두세 번 정도 반복하자 허리에 철심을 박은 듯 힘이 조금 생긴 것 같았다. 나는 파스가 다 떨어졌는데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김 형이 빙글 웃었다.

“내가 너 주려고 따로 빼놨지. 다른 애들은 지금 파스도 못 붙이고 일한다, 야.”

그의 말에 나도 마주 웃어보였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김 형은 나를 아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그와 동향이자 같은 학교 과 후배였기 때문이다. 그는 귀한 인연이라며 매번 나를 챙겨주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중소기업에도 채 미치지 못하는 중고서점 안에서조차 동향이자 과 선배라는 이유로 신경써주고 특별히 대한다는 것은. 학연이니 지연이니 지금 시대엔 다 필요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무엇보다 일, 노동의 세계에서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일을 구하고, 특혜를 받는 건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본보기가 되어야 할 고위공직자들부터 그러지 않는가.

그럼에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아 살살 비위를 맞춰주었다. 김 형의 연애상담사였고, 술친구였으며 대리운전기사이기도 했다. 생일이나 명절 인사도 꼭 잊지 않았다. 주변 동료들은 그런 김 형과 나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매니저 누나도 반쯤 농담으로 왜 이렇게 태석의 연인 같으냐며, 다른 애들도 좀 챙기라고 넌지시 일렀다. 그때마다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었다. 물론 다른 아르바이트생 동료들과 있을 땐 왕초처럼 굴었다. 마치 왕의 전권을 위임받은 섭정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그런 상황에서 내가 1층을 맡겠다고 한 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로서는 의아할 지도 모르겠다. 무겁고 두꺼운 책들이 한가득 있는 1층과 널찍한 카페와 얇은 어린이 책, 가벼운 만화책들로 구성된 2층은 천양지차였으니까. 이유는 간단했다. 1층이 더 눈과 몸에 익은 때문이었다. 나는 작가가 꿈이었고, 언젠가 글을 쓴 적도 있으니.

걸레질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바코드를 책 뒷면에 붙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쉽고 단순한 육체노동을 되풀이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현실의 감각만이 부딪쳐오기 마련이다. 나의 현실은 그리 밝지도, 암담하지도 않았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휴학생이었고, 학자금대출과 자취방 전세금 빚이 남아있었다. 아버지는 주유소에서 계약직으로 주유와 손세차를 도맡아 일했고, 어머니는 대형마트 캐셔였다. 우리는 잘 살진 않으나 못 살지도 않고, 풍족하진 않으나 크게 모자라진 않았다. 그저 평균 이하의 평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여자친구는 없었고 일찍 결혼할 생각도 없거니와 가정을 꾸릴 자금도 없었다. 지금 당장 집에 에어컨 하나 없어 이 무더운 여름을 선풍기 두 대로 버텨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뜩했다.

“오픈하자. 월요일이라 사람은 많이 없을 거야.”

매니저 누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이들이 방학을 했고, 휴가철이었다. 부모들이 수험 대비 지식과 미래의 교양을 길러준답시고 아이들을 몇이나 끌고 올지 아무도 몰랐다. 두려운 건 수레를 끌고 나타나는 젊은 사람이나 노인들이었다. 집에 곰팡이처럼 피어 기생하고 있는 낡은 책들을 닥치는 대로 가져오는 거였다. 매입이 될지, 안 될지도 따지지 않았다. 100원에라도 매입이 되면 팔았다. 여기가 거대한 책 무덤이라는 듯, 쓰레기장이라는 듯 굴었다.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을 그렇게 하찮은 쓰레기, 몇 천원이나 혹은 만 얼마의 대박을 건질 노다지로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걸핏하면 책등으로 사람들의 정수리를 찍고 싶었지만, 그만큼 책등이 단단히 멀쩡하게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 하나. 바로 책 매입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 남았다.

표지와 옆면, 아랫면, 윗면을 확인한 뒤 책을 이리저리 펼쳐 넘기며 오물이나 낙서, 훼손된 곳이 없는지 살피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까다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나도 긴장이 되었다. 그건 파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상태에 따라 매입가가 달라지기 때문에 서로가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었다. 어쨌거나 돈이 오가는 일이므로. 한편 그 순간이 재미있기도 했다. 나는 무언지 모를 우월감을 느꼈다. 초조하게 책을 검사하고 품질 등급을 매기는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즐거웠다. 때론 두렵고, 어느 순간은 희망차고, 한 찰나엔 아, 그렇군요, 내가 내뱉는 말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그 체념이 나를 묘한 흥미로 추동한다.

오픈한 지 한 시간이 흘렀을까, 김 형이 ‘고객이 방금 팔고 간 책’ 코너에서 진열 중인 나를 소리쳐 불렀다. 오늘따라 판매자들이 많아 손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나는 그 옆에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한 여자가 쇼핑백을 들고 와 매대 위에 올려놓았다. 한 권, 두 권, 꺼내더니 어느 새 책이 서른 권을 넘어섰다. 대기표를 뽑아가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났다. 2층 만화 코너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머리 위에서 쿵쿵 울려 퍼졌다. 골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니 이해해야지. 매니저 누나는 주의를 주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내가 어떻게 이해하냐는 눈길로 쳐다보자 너도 저렇게 컸어, 인마, 웃어보였다. 여자의 손길이 멈추었다. 나는 매입 진행하겠습니다, 말한 뒤 책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대부분 낡아있었고, 상태가 좋으나 재고가 너무 많아 매입이 불가한 책들도 여럿이었다. 여차하면 불고기버거세트 값은 나올 듯했다.

“팔천원입니다.”

내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회원이신가요, 물음에 그녀는 알아서 핸드폰번호를 입력했다. 회원정보가 떴다. 이름이 떴다. 한 모. 갑작스레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이름이 ‘모’라니. ‘모’는 두부를 세는 단위가 아닌가. 다행히 모는 매장 안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예치금으로 넣어드릴까요?”

“현금으로.”

모는 말이 짧았다. 괜스레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최대한 정중히 현금을 세 트레이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느릿하게 돈을 세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잘못됐나 싶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뒤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대한 창고마트용 쇼핑백 두 개를 들고 온 사람도 여럿이었다. 나는 고개를 외로 비틀었다.

“신권 없어요?”

나는 신권이 처음에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한참을 곱씹고 나서야 그게 ‘새 돈’이라는 뜻임을 알아차렸다. 포스기를 다시 열어 돈을 뒤적였다. 딱히 새 돈이랄 게 없었다. 다 귀퉁이가 헤지거나 조금 찢어지거나 여러 번 접힌 상태의 돈이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막 발행된 빳빳한 새 돈을 원하는 듯싶었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난 헌 돈 싫어. 신권 주세요.”

“고객님, 지금 새 돈이 없어요. 아무래도 은행에 가셔서......”

“싫다니까요. 안 그래도 냄새 나는 책들 들고 와서 짜증나는데.”

나는 당황했다. 김 형을 돌아보았지만 저도 바쁜 모양이었다. 뻘뻘 땀을 흘리며 나는 신권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녀가 다시 트레이에 건넨 돈을 내려다보았다. 돈은 별 문제가 없었다.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냄새 나는 책, 이라니. 심히 거슬렸다. 나는 포스기의 지폐 중 그나마 새 것인 걸로 골라 바꿔주었다. 여전히 여자는 불만족스럽다는 듯 입을 혀로 찼다. 대기번호가 20번을 넘어가고, 나는 빨리 가라고 속으로 외쳐댔다. 한참이나 지폐를 꼼꼼히 살피던 그녀는 못마땅한 얼굴로 휙 돌아서 가버렸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돈이 어쨌다고. 그리고 쓰레기 같은 책이라니. 불쾌한 상태로 나는 다음 대기번호를 불렀다. 그게 모와의 첫 만남이었다.

 

“오늘 아빠 늦게 오신대. 우리가 분리수거하자.”

엄마가 말했다. 저녁 8시였고, 나는 막 퇴근한 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누인 상태였다.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엄마는 그럼 누가 쓰레기를 버리느냐며, 스물다섯이나 먹은 놈이 분리수거 하나 못하고 제 부모에게 미룬다면서 성을 냈다. 이장욱의 소설 <천국보다 낯선>을 뒤적거리던 나는 못내 일어나 그녀를 따라 쓰레기를 가지고 비척비척 집을 나섰다. 얼마 전 전등과 자동센서를 교체하여 아파트 층층 현관이 밝다 못해 눈이 부셨다. 단지 내가 너무 어둡다는 건의가 관리사무소에 계속 들어온 때문에 가로등도 길목에 몇 개 더 설치되었다. 이제야 동네가 우범지대 같지 않고 반딧불이 궁둥이 마냥 조금 환해진 느낌이었다. 습기 밴 바람에 살갗이 흐물흐물 해졌다. 하늘은 검보랏빛으로 물든 채 낮게 눌러앉았고, 떠다니는 구름들은 조각난 채였다. 정렬한 가로수들은 침묵을 머금고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우리를 관조했다.

2단지 제1경비실 근처에 위치한 분리수거장은 막 저녁을 먹고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게 일찍 오자고 했잖니, 엄마가 앞장서 쓰레기봉투를 비우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상자들을 해체해 얇게 펴 쌓았다. 무거운 병 분류는 내가 맡았다. 병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릴 때였다.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초록색 청소차가 들어섰다. 나는 별달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모를 발견한 건 5분 정도 지난 후였다. 엄마를 따라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미화원복을 입은 모가 청소차 뒤편에서 집게손을 조종했다. 검게 녹이 슨 붉은빛의 집게손이 길게 구부러지더니 경비가 막 정리해놓은 쓰레기 포대자루 아래쪽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위가 뚫린 짐칸에 그대로 투하했다. 각양각색의 쓰레기들이 허공에서 미끄러졌다. 나는 몇 번이나 계속되는 그 광경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모에게로 눈길을 다시 돌렸다. 그녀가 조종석에서 내려와 경비와 함께 주위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짐칸으로 던져 넣었다. 가서 도우라는 엄마의 말에 나는 얼떨결에 옆에 서서 쓰레기를 주웠다. 나는 천천히 모의 옆모습을 살폈다. 깎아지른 듯한 코와 움푹한 눈두덩, 빛을 잃은 커다란 두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작달막한 머리는 이따금 허공을 내저으며 돌아갔다. 모가 고개를 돌린 찰나, 우리의 시선이 서로 맞닿았다.

“어, 서점 직원 아니에요? 그, D서점. 저번에 책 팔러 갔을 때 본 것 같은데.”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나는 내 차림을 깨달았다. 목이 늘어난 흰 셔츠, 아무렇게나 아래에 걸친 팬츠가 전부였다.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황급히 가로등 저편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모가 그쪽의 쓰레기 좀 주워달라고 말했다. 내가 짐칸 위로 던졌지만 벽에 맞고 튕겨 나와 모를 맞혔다. 죄송하다고, 괜찮으냐고 물었는데 모는 아무렇지 않은 듯 떨어진 쓰레기를 다시 주워 성공적으로 던져 넣었다. 그런 뒤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칠칠맞지 못하게. 여기 살아요?”

“보시다시피. 그쪽이 저, 우리 동네 담당일 줄은 몰랐네요.”

“나도 몰랐어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녀는 형광색 조끼 하나를 걸친 채 짐칸으로 걸어가더니 쓰레기더미에서 무언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품에 한 아름 책을 갖고 내려왔다. 내 앞에 선 모는 책을 내보이며 말했다.

“이 정도면 얼마 정도 될까요? 불고기버거세트 값은 나오겠죠?”

“거의 새 책들이네요. 사람들이 그냥 맞 갖다버리나 봐요.”

“그런 사람들이 있죠. 되팔기 귀찮아서, 그깟 거 얼마나 하냐면서.”

“그게 다 돈인데.”

“그러니까요.”

내 말에 그녀는 맞장구를 쳤다. 일순 구름에 갇혀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형체에 빛이 스몄다. 얄따란 턱 선이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가누지 못할 듯 긴 목이 나를 향해 까닥거렸다. 몸체는 작았고 키는 컸다. 나는 괴생명체를 바라보듯 그녀를 마주보았다.

“저번에 짜증낸 건 미안해요. 말 짧았던 것도. 냄새날까봐서 그런 거예요.”

“냄새요?”

나는 무슨 냄새? 하면서 문득 호흡을 의식했다. 역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건 아니었다. 모는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반은 사실이고 반은 거짓인 몸짓이었다.

“강박증이랄까, 새 거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어서.”

“왜요?”

“보시다시피. 그런 병 생길 법 하잖아요? 애정결핍이랄까.”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녀의 청소차가 멀어져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김 형이 결혼을 한다고 알려왔다. 나는 축하한다고 말하려다 멈칫했다. 청첩장을 건네는 그의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그는 한 달 후에 서점을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계약기간이 끝나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곧 정규직 전환 아니었나? 내가 채 다시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

“계약을 다시 하자고 하더군. 정규직 전환은 좀 지켜보자면서. 본사 사정이 안 좋다고.”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법적으로 정규직 해줘야지.”

“그게 사실, 말로 약속해줬던 거라.”

그가 멋쩍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지금 웃을 계제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두려웠다. 나보다 경력도, 나이도, 덩치도, 경험도 많은 사람이 정규직 전환 약속을 구두로 했다니. 그걸 믿고 2년을 일했다니. 이 사회의 잔인한 자본주의 앞에선 김 형 같은 사람도 별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별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글 쓰던 문과생에 불과했으므로. 그는 여자친구한테도 아직 말을 못했다고 했다. 어찌할 지 고민이라고, 내게 무슨 뾰족한 수가 없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황당했다. 일한지 반년도 되지 않은 스물다섯 살짜리 애한테 무슨 답이 있을까. 결혼을 미뤄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려다 괜히 욕만 들을 것 같아 관두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냐고 물음을 던졌다. 그는 태평하게 다른 곳 알아봐야지, 여자친구가 알기 전에, 라고 대꾸하고는 점심을 먹으러 자리를 비웠다. 나는 그가 정리하던 ‘한국 대표 여성작가선’ 코너로 가 마저 책을 진열했다.

사람들에 의해 판매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된 책들에 턱을 괴고 손으로 받쳐 옮기는 와중이었다. 누군가와 부딪쳐 책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고개를 들었는데 모가 당황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책 바구니를 옆에 내려놓고는 재빨리 책을 같이 주워 담았다.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그녀에게 나는 괜찮다면서 물었다. 그보다 서점엔 무슨 볼일이냐고.

“책 팔러 왔죠. 봐요. 어제 돌면서 건진 거예요.”

그녀가 바구니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많네요. 정말.”

“뭐해요, 손님이 왔는데 안가보고.”

나는 카운터로 돌아가 23번 손님, 하고 불렀다. 모가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책을 올려놓았다. 이번엔 스무 권 남짓 되었다. 무슨 성경에서부터 이상한 경전, 옛날 학습교재, 만화책 등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누가 보면 어디 다른 헌책방에서 훔쳤겠다고 생각할 법했다. 대부분 매입불가거나 1000원 이하의 상품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냄새 안나요?”

책을 바코드에 찍으며 최종가격을 확인하는 와중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다시, 호흡을 의식했다. 향긋한 내음이 풍겼다.

“무슨 냄새요? 어제부터 자꾸.”

“쓰레기 냄새죠. 내 몸에서 쓰레기 냄새 나지 않느냐고요.”

“본인이 쓰레기도 아닌데 왜 나겠어요.”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의 싸가지 없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날 수도 있죠. 쓰레기 치우는 사람인데.”

“본인이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말을 뱉고 나서 나는 무례했나, 싶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반쯤은.”

“총 3200원이에요.”

“현금으로 줘요. 햄버거 세트 값도 안 나오네.”

나는 이번엔 신중하게 지폐를 골라 건넸다. 신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빳빳했다.

갑자기 모가 파안대소 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꼭 안 그래도 돼요. 그날은 내가 좀 짜증나는 일이 있어서 심술 좀 부렸어요.”

“무슨 일이었는데요?”

손님이 많지 않아 나는 그녀와 얘기를 나눌 틈을 만들 수 있었다. 매니저 누나는 2층 카페를 잠시 보고 있었고, 다른 오후 파트 직원들은 출근 전이었다.

“웹소설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면접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웹소설 매니지먼트라니, 나는 잊고 있던 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는 쉼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다짜고짜 처음 질문이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일부러 이 책들 가득 들고 갔는데. 그 전에도 그랬지만, 그때부터 내 몸에서 정말 쓰레기 냄새가 나나, 정말 이러다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닐까 무서웠어요.”

“그래서, 떨어졌어요?”

“떨어졌죠. 겨우 그 비정규직 쓰레기구덩이 벗어나나 했는데. 시팔.”

그녀가 작게 뇌까린 욕이 문득 웃겨 나는 깔깔댔다. 모는 뭐가 그렇게 웃기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미안하다며, 근데 웹소설 매니지먼트라니, 글을 쓰느냐고 물었다. 모는 아니라고, 남의 글을 읽고 봐주는 게 재밌을 뿐이라고 했다. 대학 학과도 문예창작과라고. 나는 혹시나 해서 어느 학교냐고 물었다. 그녀는 A대학교라고 대꾸했다. 나는 거기서 멀리 떨어진 C대학 학생이었다. 아쉽다는 내색을 표하자 모는 같은 과였더라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을 거라고 답했다.

“왜냐면 전 철저히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니까요. 동기들은 내가 있는 줄도 모를걸요.”

그녀와 얘기하는 도중에 매니저 누나가 내려와 속삭이듯 이제 일하라고 다그쳤다. 퇴근시간이 20분 정도 남아있었다. 나는 책 정리를 마저 하고 오겠다고 한 뒤 자리를 떴다. 나를 졸졸 따라온 모는 저녁을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뭐 먹을 건데요?”

나는 간격을 두고 물었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배가 고프긴 했다.

그녀가 검지로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불고기버거세트요. 사줄게요.”

 

모는 두부를 싫어했다. 처음 그녀를 만난 날 떠올렸던 것처럼 아이들이 두부 한 모, 두부 한 모, 라고 놀렸던 탓이었다. 외향적인 동시에 내성적인 성격인 그녀의 인간관계는 다소 망가진 상태였다. 전 남자친구와는 완전히 끝맺음을 하지 못한 채 섹스파트너로 연을 유지하고 있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한두 명 빼고는 연락이 끊겼으며 대학 동기들은 아예 연락처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엉성하고 관계 그물망에 내가 들어선 것이었다. 모에 대해 한 걸음 더 알게 되어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롯데리아로 가 불고기버거세트 두 개를 시켰다. 모가 샀다. 내가 커피를 사겠다고 하자 그녀는 됐다며 거절했다. 요즘 커피 값이 기본 5천원이 넘는다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콜라나 리필해먹자고. 나는 너무 깍쟁이가 아닌가, 여기면서도 우스운 면이 있어 그러자고 했다. 천천히 햄버거를 베어 먹었다. 콜라는 탄산이 다 빠져 밍밍한 설탕물 같았고, 불고기버거의 핵심인 불고기 소스가 너무 적어 식감이 마치 맨 빵 사이에 맨 고기를 끼워 먹는 듯했다.

“있잖아요.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책과 쓰레기는 무엇이 다른가?”

“같진 않죠.”

내가 감자튀김을 집어 먹으며 답했다. 장마가 오려는지 습해 눅했다.

“그럼 청소부인 나하고 책팔이인 당신이 달라요?”

“똑같이, 같은, 사람이죠.”

내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녀가 콜라를 한가득 들이켜며 거보라는 듯 가볍게 탁자를 내리쳤다.

“똑같잖아요. 근데 사람들은 왜 차별하죠?”

“누가 차별해요?”

“거짓말하지 마요. 당신도 내가 청소차 몰고 쓰레기 처리하는 거 알고 놀랐으면서.”

“아닌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사람들은 책을 쓰레기로 버리고, 나는 그 쓰레기더미에서 돈 될 만한 책 찾고, 팔고. 당신은 그 책을 다시 팔고, 버렸던 사람들은 그걸 다시 사고. 돌고 도는 거예요. 다 같단 말이죠. 윤회사상처럼. 아, 난 불교신잔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니까. 뭘 믿으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고.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이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 인생이.”

모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입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무교였다. 부모님도 같았다. 그들은 뭘 믿지를 않았다. 아무 것도. 신을 부정했고 믿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나 가족들, 친척들은 물론이고 자식인 나까지도 쉽사리 믿지 않았다. 본인들 간에도 똑같을 거였다. 자기 자신은 믿는지 의심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고, 엄마는 믿을 거면 돈부터 받고 믿으라고 했다. 사기를 당해 전세금을 날리고,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쉬운 해고’를 당한 직후에 한 말이었다. 처음에 내가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강하게 반대했다. 예고를 가려고 했지만 학비가 모자랐고, 대학 문예창작과는 국립에다 집 근처, 그리고 당시 성적에 갈 수 있는 대학 중 가장 좋은 곳이어서 겨우 갈 수 있었다. 내가 글을 관둔 건 재능이 없던 탓도 있지만, 대학생활을 하고 군대를 갔다 오면서 깨달은 바가 컸기 때문일 거다. 이 나라 이 사회에서 책이란 종이에 ‘쓰레기’라는 글자마저 적어내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한다는 사실. 그것이 수학공식이나 영어단어가 아닌 이상. 나는 콜라 뒷맛이 쌉싸름하다고 느끼며 얼음사이 빈 공간에 빨대를 깊숙이 찔렀다.

“꿈이 뭐예요?”

“어떤 거요?”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꿈이요, 꿈. 자면서 꾸는 꿈 말고, 장래희망도 말고,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거.”

나는 차마 소설가, 라고 하진 못하고 부자, 라고 겨우 답했다. 모가 웃으면서 그게 최고죠, 수긍했다.

“우리 부자 돼 봐요, 그럼.”

“어떻게요?”

“부자를 납치해서 돈을 뜯어낸다거나. 그런 거죠.”

그녀가 킬킬댔다. 나는 그 웃음이 문득 마음에 들어 입가에 미소를 들였다.

“그거 좋네요. 누구로 할까요? 일론 머스크? 이재용?”

그런 시답잖은 얘기로 우리는 자리를 마무리했다. 그녀가 2차로 술을 먹자고 했지만 내가 거절했다. 다음 날 오픈 근무이고, 집에 가서 부모님이 오기 전에 몰래 해야 할 일이 밀려있었으므로. 헤어지고 돌아선 그녀의 등 뒤를 나는 가만히 바라보다 모! 라고 소리쳐 불렀다. 모가 뒤돌아보았다. 나는 그녀에게로 달려가 핸드폰 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에프터신청하는 거예요?”

“그냥, 혹시 모르잖아요.”

내가 슬며시 웃어보이자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자요. 그럼, 진짜 잘 가요.”

그녀의 형체가 희끄무레한 밤안개에 스러질 때까지, 나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에게서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가 지난 저녁이었다. 아직 부모님이 퇴근하기 전, 나는 공모전에 제출할 소설을 몰래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집에서 계속 글을 쓸 줄은 엄마도 아버지도 꿈에도 모를 거였다. 한창 열중해 쓰고 있는데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전화를 받으니 모였다. 모의 어조는 다급했고 숨이 차있었으며 어딘가 불안하게 들렸다.

“모?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자신의 자취방이라고 밝히며 한 주소지를 밝혔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재차 묻자 모는 일단 와보라고 했다. 지금 연락이 닿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면서. 나는 소설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종료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문을 연 순간 막 퇴근하는 부모님과 맞부딪쳤다. 어디 가느냐는 이 시간에 나는 친구가 불러서 잠깐 나갔다 올게요, 둘러댔다.

“술 마시지 마라. 너 내일도 출근 아니냐? 저번에 서류 넣은 건 어떻게 됐어?”

“이따, 이따 갔다 와서 말씀 드릴게요. 늦었어.”

돈도 없는 주제에 콜택시를 불러 탔다. 모의 집으로 가는 길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20분쯤 달렸나, 택시가 멈춰 섰다. 나는 현금으로 급히 결제한 뒤 모가 알려준 304호로 달려 올라갔다.

두드리자마자 문이 거의 동시에 내 쪽으로 젖혔다. 모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안고 있는 것도. 아기였다. 네모나지 않은, 둥근. 갓난아기였는데, 죽은 듯 꼼짝하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문이 닫히고 나는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는 물음에 그녀는 중구난방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모는 여느 때처럼 청소차 짐칸의 쓰레기를 비우러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2000년대 중반 미디엄 템포 발라드 노래를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다음 날이 휴무인 터라 집에서 실컷 늘어지게 잘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쓰레기더미에서 여느 때처럼 책을 찾는데, 웬 희미한 강아지 울음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누가 강아지를 유기했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이쪽, 저쪽 쓰레기더미를 뒤졌다. 이내 손에 물컹한 게 잡히더라는 얘기였다.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나다 자빠진 그녀는 그 정체가 아기라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누군가 갓난아기를 몰래 쓰레기봉투나 이곳에 버린 게 틀림없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던 그때 아기가 깨어났고, 그 길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조용히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결말이었다.

방법을 모르겠는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책만 만지던 인간이, 여자 한 번 안아보지 못한 인간이 아기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저 초중등학교 성교육 시간에 배운 게 전부였다. 아기는 눈을 감은 채 여전히 미동조차 않았다. 그녀가 조심스레 자신의 침대 위에 아기를 내려놓았다. 두려움이 빠르게 피어났고 침묵이 궤를 같이했다. 바깥의 소음, 우리의 행동 무엇 하나 아기의 숨소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겨우 입을 떼 어떻게 해야 되지? 혼잣말을 했고 모는 아기를 향해 가만히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자는 건가?”

“자는 것 같은데.......”

내가 안아보려고 아기를 건드린 순간이었다. 보자기가 풀어지며 아기의 축 늘어진 몸이 떨어질 듯 흘러내렸다. 우리는 거의 동시에 머릿속으로 같은 결론을 내렸다. 병원에 가자.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이.

우리는 대화역 인근 백병원으로 향했다. 아기는 곧바로 정밀검사에 들어갔고, 나와 모는 밖에서 의사의 말대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모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이 밀물처럼 밀려들었고, 나는 몇 번을 졸다 깨다 하다 스르르 저편의 세계 너머로 스몄다.

 

잠을 깨운 건 모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됐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아기는 어떻게 됐어?”

그녀의 얼굴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커다란 두 눈이 생멸의 소실점으로 좁혀들었다. 울먹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의 어깨를 조심히 감쌌다. 나는 울 줄 모르는 사람처럼 가만가만 눈을 깜박였다. 그러기를 몇 번, 뺨이 달아오르며 코가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왜 이러지, 매운 걸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내 아이도 아닌데. 왜 이러지, 맨날 뉴스에 나오는 일인데. 이게 뭐라고.......

우리는 함께 슬픔을 더했다.

 

“오늘만 대타 해줘. 응?”

매니저 누나가 남자친구하고 1000일 기념으로 제주도 여행을 간다며 대타를 부탁했다. 나는 언제나와 같이 책을 정리하고 오픈 시간에 맞춰 카운터에 섰다. 문을 열었고, 사람들이 들어섰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였다. 점심도 거르면서까지 책을 정리하고 카페에서 음료를 내린 뒤 다시 1층 카운터로 돌아왔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카운터 앞에 서있었다.

“7번 손님. 안녕하세요.”

나는 형식적으로 인사를 하며 건네는 책을 받았다. 일순 생각이 멎은 듯, 행동을 정지했다. 내 이름이 들어간 공모전 수상작품집이었다. 새 책이었다. 앞의 손님이 모자를 벗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책을 펼쳐 상태를 확인하고 품질 등급을 매겼다.

“최상. 7500원입니다.”

나는 되뇌며 핸드폰 번호를 입력해달라고 했고, 현금을 건넸다.

“불고기버거세트 값은 나오겠어요.”

나는 나가려던 손님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손님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누가 이 책을 버렸어요? 궁금하네.”

“버린 거 아니에요.”

손님이 돌아서며 대답했다.

“내가 돈 주고 산 거지.”

모는 다시 몸을 돌려 서점을 나섰다.

나는 그 순간부터 그녀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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