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녹슨 검

2019.02.03 14:5702.03

 

 

대장장이는

남자의 낯이 많이 익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 만났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시선은

대장장이의 어깨너머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남자의 시선을 따라간 대장장이는

구석에서 대장장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낡고 녹슨 검을 보았습니다.

 

 

검붉은 녹이 잔뜩 낀 검은

그것이 희생자의 말라붙은 피인지

녹인지 구별조차 힘들었고

그 무딘 날로 무언가를 자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선택이었지만

대장장이는 그 검을 남자에게 팔았습니다.

 

 

대장장이는

왠지 자신이 사기꾼이 된 듯한 생각에

찝찝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전쟁이 끝나고 찾아온 평화로운 시대에

팔리지도 않는 낡은 검을 판 돈으로 저녁거리를 사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대장장이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습니다.

 

 

그때

대장장이는

한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수년 전

세상이 전쟁의 불씨로 타오를 때

대장장이는 전쟁터를 떠돌며

죽은 병사들의 갑옷과 무기를 훔쳐

몰래 팔았습니다.

 

 

한 번은

죽은 줄 알았던 병사의 몸에 손을 대자

병사가 눈을 떴습니다.

 

 

앳된 얼굴의 병사는

죽은 말에 깔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병사는

대장장이에게 도와 달라고 애원했지만

대장장이는

병사의 갑옷을 벗기고

그의 무기를 뺏고는

병사를 그대로 내버려 둔 체 떠났습니다.

 

 

자신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그 앳된 얼굴의 병사…

 

 

세월의 흔적을 타긴 했지만

대장간에서 낡고 녹슨 검을 사간 남자가

틀림없었습니다.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뭔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대장장이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깊은 산속에서 정신이 돌아온 대장장이는

눈앞에 낡고 녹슨 검을 든 남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보았습니다.

상체를 벗은 남자의 몸을 뒤덮은

수많은 고문의 흔적들을…

 

 

그렇습니다.

대장장이가 떠난 후

남자는 적군에 포로로 붙잡혀

고문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간 대장장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대장장이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대장장이는

그때 남자를 도와주지 않았던 것을

깊이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후회스러운 것은

낡고 녹슨 검을 남자에게 판 일이었습니다.

 

 

무디고 무뎌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할 것 같던

그 낡고 녹슨 검…

 

 

그 검은

무언가를 베고 자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썰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757 단편 기록된 이야기 진영 2013.03.30 0
2756 단편 동전 전쟁 빛옥 2013.03.15 0
2755 단편 불지 않을 때 바람은 어디에 있는가 먼지비 2013.03.15 0
2754 단편 어느 심사평 바닐라된장 2013.03.08 0
2753 단편 그녀가 잠을 자는 이유 민아 2013.03.09 0
2752 단편 우주정복 니그라토 2013.03.10 0
2751 단편 악어는 악어대로 그곳에 김효 2013.03.10 0
2750 단편 기억 초연 2013.03.15 0
2749 단편 두려움에 맞서다 엄길윤 2013.02.27 0
2748 단편 가족야구 조원우 2013.02.17 0
2747 단편 인간신화 목이긴기린그림 2013.02.13 0
2746 단편 호메로스식 고로케 레시피 김효 2013.02.11 0
2745 단편 도둑의 심장 진영 2013.02.05 0
2744 단편 야구공, 사진, 음악CD, 거울 그리고 열쇠 진영 2013.02.09 0
2743 단편 티셔츠 라벨1 김효 2013.02.02 0
2742 단편 연인 김효 2013.02.02 0
2741 단편 박제의 집 솔리테어 2013.02.04 0
2740 단편 별자리와 꿈의 기원 너구리맛우동 2013.01.15 0
2739 단편 게시판 사용법입니다. mirror 2003.06.26 0
2738 단편 괴물. 사납고, 강하고, 끙끙거리는3 호워프 2013.02.01 0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