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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날개

2013.10.29 19:4410.29

 

 

 

 

손목이 차갑다. 살에 닿는 수갑은 소름끼칠 만큼 매끄럽다. 그는 걷고 싶지 않지만 형사들이 양쪽에서 팔뚝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하릴없이 걸어간다. 심장이 폭발적으로 요동친다. 눈앞이 어지럽게 흔들린다. 도망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순간마다 형사의 허리춤에 채워진 권총이 눈에 들어온다.

밤과 새벽의 사이,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저 멀리 어딘가의 가게에서 죽어가는 간판이 깜빡인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몸을 절반쯤 자른 달이 떠 있다. 무거운 구름은 어둠 속에서 몸을 비틀며 한 차례 운다. 형사들은 그에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그는 던져 넣어진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왜 이래야만 하는지. 나는 왜 잡혀가야만 하는지. 나는 왜 두려워해야만 하는지. 나는, .

몸이 떨린다. 비가 내린다.

 

 

 

+++

  

 

환각을 보신 거예요.”

의사는 두 손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당연한 말만 남긴 채 이어지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의사는 나를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힌 문서를 넘기며, 의사는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그 환각의 규모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새빨갛게 보였다…… 이건 규모가 굉장히 큰 현상이거든요. 어쩌면 환자님의 현재 상태랑 관련이 있을 것도 같긴 한데.”

나도 모르게 손가락 관절 꺾는 소리를 냈다. 나는 의사의 두 눈을 마주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우리 아빠가 뭐요?”

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안경을 한 번 고쳐 쓰고 대답했다.

보호자님께 말씀드리기는 죄송스럽지만, 환자님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는 잘 아시잖아요.”

나는 의사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더 이상 그의 무표정을 견디기 힘들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시선을 돌렸다.

아빠가 처음 그것을 본 날은 3개월 전이었다. 아마 자정에 가까워진 시간이었을 것이다. 병실의 창문너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빠는 누군가 엿들을까봐 걱정하는 사람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빨간 비가 내린다고.

나는 아빠가 잠든 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잠들어 있다가 깨어났는지도 모른다. 비가 어떻다고? 나는 반사적으로 창문을 향해 시선을 비틀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서 뚜렷하게 보이는 건 창문에 붙은 빗방울들뿐이었다. 나는 여전히 시선을 창밖에 둔 채로 말했다.

아빠, 비가 뭐?”

"비가, 저기 비……."

"아빠, 나 아빠 딸이야. 괜찮아. 말해봐."

아빠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도망가야 돼. 새빨간 비가 내리니까. 피처럼 새빨간 색이야. 이제 나를 잡으러 올 거야. 그 사람들이 나를 붙잡으러 올 거야. 찾아내기 전에 어서 숨어야 돼……. 놀란 나는 뒤돌아서 아빠를 보았다. 아빠의 온 몸이 떨리고 있었다. 창밖의 어딘가를 향한 눈동자는 초점을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경련이 일어난 턱에서는 침이 흘렀다. 당황한 나는 의사를 부르러 가야하는지, 그렇긴 해야 되는데 그러면 병실에 아빠를 혼자 두고 가도 되는 건지,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하고 가야 맞는 건지를 동시에 생각했다. 머릿속이 뒤섞였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나는 의사에게 말했다.

요새는 치매가 심하면 환각도 보나요?”

잠재되어 있던 게 드러난 거겠죠.”

그래서,”

문서에 뭔가를 기록하던 의사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시선에 대고 내뱉듯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어차피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소리는 그만두고 그냥 내가 뭘 해야 되는지만 말해요.”

의사가 시선을 내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무언가를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전에 보인 적 없던 모습이었다. 의사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런 걸 여쭙기는 힘든 일이지만, 하면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실은 환자분 치료를 위해서 하나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물론 제 추측뿐이지만, 환자 과거 기록을 보는 게 옳은 일이 아니라서…… 불가피하게 직접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어설프게 미소 지었다. 괜찮다는 대답 대신이었다. 의사가 하겠다는 질문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의사가 말했다.

혹시 환자님께서,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예전에 고문을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아빠는 언제나 새가 날아가는 곳으로 걸었다.

아빠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까지 가려고 그래. 아무리 큰 소리로 말해도 아빠는 내 말에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빠의 시선은 흐린 하늘 위에 매달려 있었다. 산책은 늘 그런 식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넓게 펼쳐진 갈대밭으로 산책을 나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빠는 내 존재를 잊은 듯 멍하니 서서 어딘가 먼 곳으로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었다. 가만히.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아기처럼 그 새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새의 비행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목적지는 또 얼마나 먼 곳인지도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아빠가 이대로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뒤따라 걸었다. 저무는 하늘로부터 갈대밭으로 짙은 햇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녹슨 빛깔의 햇살 속에서 흐릿해진 아빠의 몸집은, 휘청거리는 발걸음을 따라서 길게 자란 갈대 사이로 사라졌다가는 어느 순간 나타났다가 또 다시 사라지고.

매번 해가 지고 나서야 산책은 끝이 났다. 더 이상 뒤따라갈 새를 찾지 못한 아빠는 저녁 어둠에 휩싸인 갈대밭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그제야 아빠가 내 말을 들을까 싶어 말했다.

아빠는 왜 그렇게 새를 쫓아다니고 그래?”

어린애처럼 왜 그래, 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억지로 삼켰다. 내 말을 듣기는 한 건지 아빠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빠의 대답은 늦었다. 언제나 늦었다. 아빠랑 대화하면서 나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얘기하는 기분을 느낄 때가 가끔 있었다.

부러워서.”

그 한마디만 남기고 아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매달린 것처럼 무거운 움직임이었다. 더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나는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은 듯 보이는 아빠의 눈을 보며 힘없이 웃었다. 울 수는 없었기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3개월 전 아빠의 증상에 대한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남편은 언제나처럼 침착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의사는 아버님을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겠대?”

몰라. 그 인간들 말을 어떻게 믿어.”

그래도 전문가들이잖아.”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인간들 눈에 우리 아빠는 그냥 수많은 환자 중의 하나야. 그냥저냥 견디다가 죽어서 병실 비우는 수많은 환자 중의 하나.”

남편은 희은아,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빛났다.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남편은 자신감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아마 나는 그의 자신감에 이끌려 결혼했겠지만 가끔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는 늘 적응하지 못했다. 언제나 세상은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일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다. 남편은 달랐다. 나는 매순간 실감했다. 그는, 나와는, 다르다. 남편은 적응하는 사람이었다.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사람.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그 어떤 상황에 놓여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

네가 의사들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건 이해해. 충분히. 입원하고 나서 지금까지 점점 병이 악화되기만 했으니까. 그래도 의사 말보다 더 믿을만한 건 지금으로서는 없잖아.”

나는 남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아빠가 말했었어. 예전에 아빠랑 내가 둘이서 살던 집이 있는데, 거기에 가고 싶대.”

그렇게 말씀하셨어?”

밥 먹으면서 우물우물 말하길래 내가 물어봤지. 예전에 우리 살던 그 갈대밭 근처 주택 말하는 거냐고. 그러니까 아빠가 진짜 고개를 5분 동안 끄덕였다니까.”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하는 기분으로, 거기 가서 아빠랑 나랑 둘이 살면 상태가 더 좋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에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남편과 한 달 정도 떨어져 예전에 아빠랑 둘이서 살던 집에 지내기로 결정 내렸다. 의사는 병원에서 체계적인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말했지만 상관없었다. 고향 집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아빠의 표정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같이 집에 내려가서 지내다보면 아빠가 언젠가 다 낫지 않을까, 다시 예전처럼 나를 보면서 웃는 날이 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아빠, 이제 집에 가야지.”

우리의 집은 작았다. 안에서 지내다보면 동화책 속 나무 위의 집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어서 창밖을 보면 물결치는 갈대밭이 내려다보이고 하늘이 더 가까이 보이는 듯했다. 창문너머 풍경이라고 해봐야 번쩍거리는 고층 빌딩밖에 없던 병원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렇게 아빠와 함께 답답한 병원을 떠나서, 나에게는 아빠가 누구보다 현명한 사람이었던 그 시절의 집으로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고 나는 생각했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아침부터 흐린 날이었다. 아침과 저녁, 낮과 밤의 경계조차 불분명한 날이었다. 묘하도록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날이었다. 아빠와 나는 여느 때처럼 저녁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 아빠는 외투에 팔을 끼우는 걸 유난히 어려워했다. 바늘구멍에 실을 끼우듯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아빠는 옷을 다 입었다. 옷을 입히는 일에 나도 모르게 너무 집중해버린 탓에 나는 아빠의 몸이 굳어 있다는 것을 늦게 알아챘다.

?”

정말 아무런 짐작이 가지 않았기에 왜, 라고 묻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말도 없었다. 수많은 불안한 가능성들이 머릿속에서 꿈틀거렸다. 아빠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온 일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섬뜩한 데자뷰를 느낀 것은 아빠의 몸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창밖에 시선을 던졌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갈대밭이 물기에 젖은 듯 보였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가늘게 내리던 비가 서서히 뚜렷한 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빠는 흔들리는 시선을 창밖에 둔 채로 형태가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 아빠, 아빠 괜찮아? 아무리 팔을 붙잡고 흔들며 말해도 대답은 없었다. 아빠의 중얼거림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더니 소름끼치는 단어가 아빠의 입술 틈으로 흘렀다.

…….”

점차 거세진 비가 창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나는 아빠를 따라 내 몸도 같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뿌리를 알 수 없는 어떤 충동이 나를 사로잡았다. 아빠의 입을 막고 내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으니. 이 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은 없었다. 이어지는 아빠의 말이 선명한 감각이 되어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자동차 소리가 들려. 가까이, 거의 다 왔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그 사람들이 알아냈어. 이제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거야. 숨어야 돼. 숨지 않으면…… 빨리…….”

아빠는 흐느꼈다. 온 세상의 설움이 아빠의 눈꺼풀에 내려앉은 듯했다. 나는 세상에 없는 공포를 보면서 흐느끼는 아빠를 어떻게 달래야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의사는 나를 보호자님이라고 했지만 그 순간 나는 아빠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나는 오히려 내가 환자가 된 것처럼 아빠의 팔을 꽉 붙잡았다. 아빠는 내가 자신을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지, 아니 애초에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인 눈빛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거세게 내리는 비는 이제 허공을 새하얗게 덧칠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빠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눈물 몇 방울이 바닥으로 투신했다. 아빠는 흠뻑 젖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나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저는 빨갱이가 아니에요.”

  

 

+++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건 내가 7살이 되던 해였다. 놀이공원은 세상의 모든 색채를 모아서 흩뿌려놓은 듯이 화려했다. 아빠는 사람이 많은 곳에 나를 데리고 갈 때면 언제나 말했다. 아빠 손 꼭 잡아야 돼. 알겠지? 아빠 손 꼭 잡아야 돼. 나는 그 말대로 아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반대편 손에는 풍선이 들려 있었다. 풍선은 살아 있는 새처럼 자꾸만 하늘로 날아가려고 했다. 나는 풍선에 매달린 끈을 더욱 꽉 쥐었다.

주말이었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놀이공원에는 평생을 다해도 헤아리지 못할 듯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나는 아빠의 손을 더욱 꼭 잡았다. 나는 사람들이 곁을 지나쳐가는 가운데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날은 나의 생일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빠는 부모 노릇에 서툰 사람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빠 혼자서 부모 역할을 해야 했으니. 게다가 아빠는 별로 현실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는 늘 꿈을 꾸던 사람이었다. 걸어 다닐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내가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던 누군가에 대한 불평이나 어린 소녀의 투정을 들으면서도 아빠는 늘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게 어떤 꿈인지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눈을 보면 아빠가 늘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을, 오늘이 아닌 다른 날을 꿈꾸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게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날은 아마 내가 어른이 된 날이었을까. 가족이라고는 아빠뿐이었던 어린 시절에 나는 가끔씩 아빠가 나를 혼자 두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는 꿈을 꾸곤 했다.

흘러가는 인파 속에 가만히 서 있던 아빠가 문득 손가락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희은아, 저기 보이니? 나는 아빠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바라보려 했다. 아무리 까치발을 들어도 낮은 시선에 들어오는 건 떼 지어 몰려다니는 사람들의 머리뿐이었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높은 곳에서 파란 하늘을 휘젓는 듯 보이는 놀이기구 하나.

? 바이킹? 나 바이킹 못 타는데?”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시선을 둔 채 아빠는 말했다. 아니. 바이킹 말고. 저기 회전목마 있잖아.

회전목마는 아까 탔잖아. 다른 거 타자.”

내 손을 잡은 아빠의 손아귀 힘이 스르르 풀리는 게 느껴졌다. 놓쳐버릴 것 같았다. 무서웠다. 나는 아빠의 손을 다시 꽉 잡았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빠 손 꼭 잡아야 돼.

아빠는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꿈꾸는 듯 아른하게 흔들리는 목소리였다. 회전목마는 그냥 돌기만 하는 거잖아. 끊임없이. 근데, …… 도는 걸까. 아무리 돌아봐야, 하루 종일을 돌고 또 돌아도 결국엔 그 자리 안에서 움직일 뿐인데. 그 순간만 화려하면 상관없다는 걸까.

낯설었다. 이전에도 아빠가 문득 시간이 멈춘 듯 서서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말을 종종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도 더 낯설었다. 아빠의 눈빛, 손짓과 목소리마저도 다른 사람의 것처럼 낯설었다.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붙잡기 위해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알았어. 나도 회전목마 싫어. 저 말들 너무 무섭게 생겼어. 다른 데로 가자. ?”

바삐 걸어가는 몇몇 사람들이 가만히 서 있는 우리와 부딪치며 지나갔다. 아빠는 소리 없이 웃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것은 아빠가 나에게 처음으로 보인 비웃음이었다. 그래, 무섭지. 똑똑히 알아둬. 너는 무서운 것을 보고 무서움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할 거야.

아빠의 손은 시체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꼭 잡아도 금방 놓쳐버릴 듯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봤다. 하늘로 날아가는 아빠를 목 놓아 부르던 꿈속의 장면이 불현 듯 떠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외쳤다. 아빠, 아빠. 대답은 없었다. 무슨 깊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나는 아빠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손으로 아빠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한손에 풍선에 들려 있었다는 것조차 잠시 잊었다. 내가 풍선을 놓쳤다는 것은 뒤늦게야 알았다. 빨간 풍선이 둥실 떠올라 내 손이 닿지 않을 곳으로 멀어져갔다. 아빠의 시선이 풍선을 따라 떠올랐다. 풍선이 바로 눈앞을 지나쳐가는데도 아빠는 풍선을 잡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어어, 하면서 나는 풍선이 구름사이까지 날아가 작은 점이 되어가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서야 풍선을 잡아주지 않은 아빠에게 괜한 화가 치밀었다.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려서 그때까지도 정신 빠진 얼굴로 서 있던 아빠를 째려보았다. 그러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 쩍, 하고 금이 가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아빠는 하늘 어딘가로 날아가는 풍선을 보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빠의 눈물, 이라는 것에는 모든 생각을 멎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마 나는 막연하게 아빠라는 존재는 원래 울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쩐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져서 나는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 그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꺼낸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아빠에게 그날의 일을 말했다. 집에서 아빠랑 저녁을 먹던 때였다. 평소처럼 농담을 주고받던 중에 장난처럼, 그냥 아빠가 내 풍선도 안 잡아주고 멍하니 서 있던 적이 있었다고.

아빠는 기억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면서 나에게 말했다. 한심한 소리지만 가끔은 하늘을 볼 때마다 저 너머 어딘가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다고. 가끔 그곳으로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이상한 말이었지만, 아빠는 늘 꿈속의 사람이었기에 나는 더 이상 어린 시절에 그랬듯이 되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씩 집을 청소하다보면 아빠의 대학시절 사진들이 발견될 때가 있었다. 열정에 휩싸인 젊은 아빠의 모습은 사진이 아닌 그림인 듯 나에게 어색하게 보였다. 단편적인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어느 날엔가 발견한 아빠의 낡은 일기장을 몰래 보면서 나는 아빠의 젊은 시절을 더듬어보곤 했다. 내 상상 속에서 그 시절의 아빠는 왠지 늘 혼자였다.

예전엔 어려운 사람들이 참 많았어. 살던 집에서 쫓겨나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한줌의 빛을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어둠 속에 살아야 했던 셈일까. 어둠 속에 들어간 사람들은 내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그런데 빛을 받는 사람들은 늘 정해져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왜, 라고 늘 생각했던 거야.”

아빠의 목소리에서 담배냄새가 났다. 아빠가 담배를 폈던가. 아빠는 창밖으로 햇빛이 사그라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불가능한 꿈을 꿨던 거지. 차라리 어딘가 다른 세상이라면 가능했을까.”

아빠의 부드러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창문을 등지고 앉은 아빠의 뒤로 저녁 바람이 넘실거렸다. 커튼이 일렁였다. 아득한 기억의 간격을 넘어 아빠는 말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전화기너머로 남편이 말했다.

희은아, 무슨 말인지 알겠냐고. 그렇게 고집만 피운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거 너도 알잖아.”

벽에 걸린 달력을 보았다. 몇 달이 지나도록 넘기지 않은 달력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잠에서 덜 깬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에게 따지듯 말했다.

네가 그랬잖아. 딱 한 달이라고. 한 달이 뭐야? 벌써 두 달이 넘어가고 있잖아. 너 그리고 지금 어디 있는지 위치도 주소도 나한테 확실히 말 안 해줬잖아.”

말했잖아.”

침묵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렸다. 나는 기침하며 덧붙였다.

나 자다가 지금 전화 받고 깼어. 조금만 천천히 얘기하면 안 돼?”

남편이 한숨 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듯했다.

너 거기가 예전에 살던 집이 맞긴 한 거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편은 아빠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둘은 끝내 친해지지 못했다. 사실 애초에 친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아빠와 남편은 너무나 달랐다. 생각과 말투, 감정을 내비치는 표정이라든가 걸음걸이 같은 사소한 습관까지. 언젠가 아빠의 방에 이삿짐처럼 가득히 쌓여 있는 책 중의 하나를 펼쳐보며 남편이 말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 말을 써가면서 어려운 생각들을 하는 걸까. 그는 책장을 빠른 속도로 넘기며 말을 이었다. 지식인이란 사람들은 말이야, 사실은 나약한 거야. 그냥 몽상가들이지.

남편은 장인에게 예의바른 사위였으나 절대 진심으로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와 남편이 위태로운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남편은 입을 다물었고 아빠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짓기만 했다.

병원 밖에 있는 건 한 달뿐이라고 했었잖아. 치료는 병원에서 해야 돼. 이건 네가 의사들을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야.”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세상이 한층 흐리게 보였다. 마음에 들었다.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멀리 떨어뜨리자 남편의 목소리는 최면 속의 목소리처럼 아득해졌다.

아니 애초에 아버님이 거기 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는 게 사실이긴 해? , 솔직히 얘기하면 너도 아버님처럼 조금 이상해진 것처럼 보이는 거 알아? 대체 애처럼 왜 그래?”

애처럼 왜 그래, 하는 말이 귓가에 선명하게 남았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화기를 잡은 손에, 먼 옛날 놀이공원에서 아빠의 손을 꼭 잡았던 감촉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느꼈다.

나는 말했다. 어쩐지 목이 메었다.

갈게. 아빠 데리고 갈게. 나는 그냥…… 아빠가 여기 있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다 잘 될 줄 알았어. 그래도 갈게.”

병원으로 오겠다고?”

나는 내가 전화로 대화하고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남편의 한숨소리가 전화기에 맴돌았다.

잘 생각했어. 아버님 병세는 어때?”

많이 괜찮아졌어.”

거짓말이다. 아빠의 새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창밖에서 새가 날아가는 날갯짓 소리만 들리면 아빠는 밥을 먹다가도 집밖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행여 아빠가 사라져 버릴까봐 잠들 때조차 불안했다. 게다가 아빠는 며칠 전부터 가끔씩 비가 내리지 않는 날에도 환각을 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나를 보며 간절하게 무언가를 부탁하듯이 중얼거렸다. 빨간 비가 내린다. 빗물이 새빨간 색이야. 피에 젖은 것 같아. 숨을 곳이 없어. 자동차가 저 앞에 왔어. 발걸음 소리가 들리잖아. 늦었어. 이제 도망갈 수도 없어. 이미 늦었어.

그래. 다행이다. 이제 병원에서 다시 치료받으시면 더 괜찮아지실 거야.”

너는 늘 맞는 말만 하지.”

나는 불쑥 충동적으로 말했다. 잠깐의 사이를 두고 남편이 되물었다.

?”
그렇잖아. 늘 맞는 길을 따라 왔으니까. 넌 원래 그런 사람이잖아. 우리 아빠는 너랑 완전히 다른 사람이야.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하지.”

또 왜 이러는 거야. 희은아 너…….”
남편의 목소리가 집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에 섞였다. 남편이 논리정연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전화기를 나는 내려놓았다. 비 내리는 창밖을 보자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가 환각에 시달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잠에서 깨어나고 나서 아빠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잠긴 목소리로 소리 내어 불렀다. 아빠, 아빠 어디 있어? 대답은 없었다. 넓지 않은 집이었다. 목소리가 안 들릴 리는 없었다.

여러 번 둘러보고 나서야 나는 집에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어지러웠다. 아빠 손 꼭 잡아야 돼.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손에서 놓친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 사라지던 장면이 떠올랐다. 다시 붙잡아야만 했다. 떨리는 손으로 앞을 더듬으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문손잡이를 잡고 열어젖히자 빗물 섞인 바람이 세찬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아빠 손 꼭 잡아야 돼. 바람을 거스르며 걸음을 내딛었다. 온몸이 비에 젖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비로 가득 찬 허공이 더 몸속 깊게 파고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게 아빠인가. 고개를 드니 저절로 눈이 감겼다. 억지로 눈을 떴다. 아빠를 찾아야 돼. 아빠 손 꼭 잡아야 돼. 비에 흠뻑 젖은 갈대밭너머로 시선을 옮기자 서서히 세상에서 지워지고 있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존재하지 않는 듯 새하얀 하늘이었다. 결코 닿지 못할 하늘이었다.

그 하늘을 건너,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새 한 마리가 날고 있었다.

 

  

+++

 

  

차는 빗줄기를 뚫고 달린다. 갈수록 더 거세지는 빗줄기가 차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다. 부서지는 빗물의 파편들이 차창에 흩뿌려지는 게 보인다. 애원하듯 차창에 붙어 있다가 끝내 미끄러져버리는 빗방울들을 보며, 그는 이제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가늠해본다. 그의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자신조차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휘청거리던 시선은 끝내 불투명한 창밖의 하늘에 가 닿는다.

어쩌면 환각, 아니면 신기루일까. 쏟아지는 하늘에 비를 맞으며 새 한 마리가 날고 있다. 당장 시야에서 지워져버릴 듯 아득한 실루엣이다. 날갯짓 소리가 바로 그의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는 홀린 사람처럼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의 손이 창문에 닿기도 전에 형사들의 억센 손이 그의 뒷목을 잡아 눌러버린다.

대가리 숙이라면 숙여 새끼야. 하여간에 말 안 들어 처먹는 건 빨갱이 새끼들…….”

나는 왜, 라는 질문이 그의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무서운 질문이다. 어쩌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형사에게 뒷목을 잡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여전히 차가운 수갑의 감촉을 느끼며 그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 생각한다. 새의 날갯짓 소리가 천둥소리인 듯 크게 울린다. 다른 세상에 태어나야 했던 걸까. 다시 한 번만 더 하늘을 보고 싶다. 도둑질하듯이 곁눈질로 몰래 바라본 하늘은 거짓말처럼 넓다. 더 이상 새는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야가 흐려진다.

날아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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