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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바다로

2013.09.26 16:5109.26

   경로 1.


   수현은 달렸다.

   임산부용 환자복에 바닥 얇은 운동화만 겨우 꿰어 신은 차림으로 험한 산길을 달리는 수현의 팔에는 불과 몇 시간 전 그녀가 세상에 내보낸 아이가 안겨있었다. 찬 바람은 속옷도 입지 않은 아랫도리로 사정없이 파고들었고, 지척의 어둠 속에선 군홧발 소리가 들려와 그렇지 않아도 힘겹게 뛰는 심장을 제 멋대로 휘저어 놓았다. 산후조리를 해야 할 시간에 어쩌다 이런 꼴로 도망을 치고 있는지, 아니 애초에 왜 도망을 치게 되었는지조차 도망을 치는 이 순간까지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좀 특이한데…….

   담당의사가 실수로 내뱉은 말을 무통분만 직후의 나른함 속에서 들었을 때도 수현은 그런가보다 할 뿐 별 생각이 없었다. 모체 속에 있을 때부터 인간은 철저하게 사회의 처분에 따르는 존재였고, 낳은 이후의 처리도 사회에 맡기는 것이 순리였다. 설사 아이가 기형아로 태어났다 한들 그건 수현 개인이 아니라 지방자치정부에서 책임을 질 일이었다. 그것이 상식이었고, 출산공무원으로서 수현이 견지해 온 자세였다.

   알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저들 손에 붙잡히면 목숨을 잃을 거라는 비이성적인 공포로 가득 찼다. 죽는다. 잡히면 죽어. 엄마, 엄마, 날 좀 살려줘!

   "저 쪽이다!"

   오른쪽 아래에서 군홧발들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수현은 어쩔 수 없이 반대편에 입을 벌린 오르막으로 발을 내딛었다.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그대로 빠져 나오지 못하면 어쩌지? 아이를 빼돌린 건 순간적인 광기였다고 선처를 호소해 볼까?

   아니, 이미 늦었어.

   마음속에서 즉각 대답이 들려왔다. 차갑고도 신랄한 목소리였다. 출산공무원으로서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중징계감이야. 공무원으로서의 모든 특권이 철회될 테고, 불임시술까지는 받지 않더라도 더 이상 유전적으로 완전무결한 아이는 낳을 수 없을 테지. 그러나 이 아이를 보면 이미 여덟 달 전 자신이 받아들인 유전자는 인간으로서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아이의 모습은 뭐랄까, 이질적이었다.   


   아이는 신생아실이 아니라 의사의 사무실에서 바닷물이 가득한 수조에 온 몸을 담그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어째서 신생아를 짠물 수조에 담가 놔야 한단 말인가. 발생과정에서 뭔가 잘못 됐나? 아니면 내가 뭘 잘못 먹었을까? 아니, 착상 순간부터 임신기간 내내 관리를 철저히 받았으니 그럴 리는 없었다. 수현은 아이를 찬찬히 살펴보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강렬한 이질감이 수현을 휩쌌다. 세상의 한구석이 부서진 자리로 물이 스며드는데, 그 축축함이 나쁘지 않은 느낌이랄까. 수현은 그대로 아이 앞에 붙박였다. 심장이 도근도근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수현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호소하려는 듯 팔을 앞으로 뻗쳤다. 신생아 치고는 기다란 손가락이 좌우로 벌어지며 물갈퀴가 드러났고, 양 팔꿈치에서 옆구리까지 길게 붙은 지느러미가 오색으로 반짝이며 수조 안에서 물결을 일으켰다. 수현은 흰자위 없이 새카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아이의 눈동자에 사로잡혔다.

   -엄마, 나 여기 있기 싫어. 여긴 너무 춥고 또…….

   -참아, 수현아. 수현이가 열다섯 살이 되면 꼭 데리러 올 거니까.

   수현은 문득 엄마와 헤어지던 때를 떠올렸다. 그 날은 수현의 여섯 번째 생일이었고, 모든 영유아를 부모에게서 분리하여 인적자원으로 관리 하라는 긴급조치가 시행된 첫 날이기도 했다. 분리처분은 기반시설이 채 마련되기도 전에 시행되어, 그 때 부모로부터 분리된 아이들 중 다섯 살 이상의 아이들은 몇 달 동안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다. 잠자리가 부족하여 낡은 철제 침대를 폐쇄된 병원과 근로자 기숙사에서 가져다가 아이들을 재웠고, 침대보나 이불도 제대로 수급이 되지 않아 낡은 수건을 꿰맨 누더기로 필요량을 공급했다. 그런 침대가 한 방에 스무 개 가량 있었고, 한 침대에는 세 명의 아이들이 배정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조금 나아졌지만 수현은 시설에서 교육받던 때를 떠올리면 언제나 이불에서 풍기던 오줌냄새와 베개에 찌들어 있던 어른들의 담배냄새와 헤어로션 냄새가 함께 떠올랐다.

   수현은 자신도 모르게 수조 위로 몸을 구부렸다. 물속에 손을 넣자 아이의 지느러미가 부드럽게 손바닥을 간질였다. 수현은 키득대며 아이의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었다.

   “수현씨?”

   아, 미끄러워서 하마터면 놓칠 뻔 했네.

   “김수현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이는 지느러미를 접고 수현의 품에 착 감기며 그녀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심장이 간질간질하고 괜히 웃음이 났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머리냄새를 들이키자 해초 냄새가 코끝에 훅 끼쳤다.

   “김수현씨? 아이에게서 손떼세요.”

   수현은 의사의 말은 아랑곳 않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속삭였다. 그런데 말이지 꼬마야. 우리 엄마는 결국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어. 열다섯 살이 되어서도, 열여섯 살이 되어서도. 처음엔 기다렸지만, 나중엔 화가 났어. 왜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했지? 그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난 엄마를 쉽게 잊었을 텐데. 엄마가 아닌 다른 아무라도 나를 데려가 주길 바라며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수현씨,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이를 내려놓고 물러서세요.”

   그랬다면 이렇듯 완성되지 못한 인간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었을 거야. 지금까지도 난 여성 영화감독들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우리 엄마가 아닐까 하고 유심히 보는 버릇이 있어. 날 떼어 놓고 갔으니 자기가 원하던 대로 외국도 가고 영화공부도 계속해서 영화감독이 되었을 테지, 하고. 제정신이 아니지. 요즘 나오는 감독들은 전부 나보다도 어린 애들인데.

   수현은 멍한 눈으로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응? 뭐라고? 너도 누군가가 널 데려가 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이 곳에 있으면 총을 가진 사람들이 와서 너를 데리고 갈 거라고? 좁고 어두운 곳에 너를 가둬 두었다가 자기네들이 필요할 때만 너를 꺼내어 바다에서 헤엄을 치게 해 줄 텐데, 그것도 다른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 일거고, 결국은 너도 죽임을 당하고 말 거라고?

   수현은 아이를 꼭 안았다. 불쌍한 것. 내가 널 데리고 가 줄게.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해 줄게. 그래, 이 엄마가 너를 도울게.

   “김수현씨!”

   당황한 나머지 대머리까지 시뻘겋게 피가 몰린 의사로부터 물러나며, 수현은 불룩대는 아이의 숨골에 재빨리 손을 올렸다. 숨이 차서 헐떡이는 의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물러서세요. 가까이 오면 이 아이는 죽습니다.”


   수현은 허둥대며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제멋대로 뛰놀던 관자놀이 혈관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찬바람이 아래에서 불어와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식혔다. 그제야 수현은 발아래를 내려다볼 여유가 생겼다. 까맣게 입을 벌린 비상계단은 한 사람이 겨우 오르내릴 정도의 너비였다. 잠시 현기증이 일어 난간에 기대자, 녹꺼풀이 허리 어림에서 바스러졌다. 비상시에 이용하라는 비상계단이 아니라, 사용했다가는 비상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비상계단인 듯 했다. 수현은 환자복 아랫단을 찢어내어 끈을 만들었다. 낡아 빠져 올이 성긴데다 구멍까지 난 옷이라 찢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대충 꼰 끈으로 아이를 몸에 묶고 나자 양손이 자유로웠다. 그동안 혹사당한 팔 근육이 비명을 질러대었지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수현은 손으로 한 뼘씩 난간을 확인해 가며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갔다. 그때였다.

   정문이 열리고 지프차 한 대가 들어왔다. 주차장을 돌던 지프차의 헤드라이트가 계단을 비추는 순간, 수현은 꼼짝없이 그 자리에 붙박였다. 숨어야 하는데 몸을 돌릴 공간이 없었다. 쭈그려 앉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지만 지금 갑자기 움직이면 꼼짝없이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다행히 지프차는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아 수현이 보이지 않는 곳에 섰다. 차 문이 열리는 소리, 이어 북한 억양이 섞인 낮은 목소리와 밑창이 딱딱한 신발이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수현은 불빛이 사라지자마자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이윽고 땅에 발이 닿았다.

   건물 안에서도 밖에서도 아직 사람들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계단에서 벗어난 수현은 건물 뒤편 수풀로 황급히 뛰어들었다. 건물의 불빛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몇 걸음 더 걷고 난 다음엔 자신의 위치조차 알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수현은 헐떡이며 어두운 길로 올라섰다. 이름 모를 나무 사이로 계속 이어지는, 멧돼지 길을 겨우 면할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길은 어둠 속으로 뻗어나갔다. 아니, 꼬여들었다. 허벅지는 딱딱하게 굳어갔고 폐는 불타는 듯 아팠다. 배는 그다지 고프지 않았지만 어지러웠다. 출산 직후 먹은 오렌지 한 쪽이 수현이 마지막으로 뱃속에 넣은 음식이었다. 밥이라고 먹고 나왔어야 하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수현은 실소했다. 붙잡히면 당분간 밥은 실컷 먹을 텐데, 뭘. 콩밥 말이다.

   바람이 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바스락 소리가 모두 아이와 자신을 쫓는 군홧발 소리인 것만 같아 수현은 온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수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수현은 기겁을 하며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허둥지둥 아이의 몸을 더듬어 보니 아이의 체온이 잔뜩 올라가 있었다. 콧구멍으로는 거친 숨을 내쉬었고, 피부를 둘러싼 미끄러운 점액은 수분을 잃어 끈적끈적했다. 수현은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갓 태어난 아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출산 공무원은 아이를 낳을 뿐 아이를 키우는 건 보육 공무원들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단 하나, 이대로 아이를 계속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했다. 수현은 뻣뻣이 굳은 아이의 온몸을 기도하는 심정으로 문질렀다. 얼굴부터 다리까지 지느러미와 물갈퀴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정성스레 마사지했지만 아이에게는 별 변화가 없었다. 수현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물. 물에 넣어야 하나? 하지만 주변에 물이라고는 없다. 산 속 어디선가 샘물이 솟고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걸 찾아 낼 재주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는 바닷물 수조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으므로, 함부로 민물에 넣었다가는 죽을지도 몰랐다.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무언가 조치를 취할 수도 없었다. 수현은 어쩔 줄 몰라 우두커니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슴이 꽉 조여들어 숨이 막혔다. 심호흡을 몇 번 거듭하자 가슴이 딴딴하게 뭉치더니, 젖꼭지 부근으로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현은 환자복의 가슴팍을 더듬었다. 무언가 축축한 감촉이 손끝에 와 닿았다. 아이가 남긴 점액질인가 하는 순간, 액체는 다시금 솟아오르며 희미한 비린내를 풍겼다. 출산 후 곧바로 식사를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식사를 했더라면 젖을 멈추는 호르몬도 같이 섭취를 했을 테고, 그랬다면 지금 아이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테니까. 수현은 아이의 입술을 더듬어 찾은 다음 서투르게 젖을 물렸다.

   잠시 후 아이의 몸에서는 미끈미끈한 점액이 새어 나왔다. 아이는 푸르르, 소리를 내며 지느러미를 반짝였다. 아이의 온 몸으로 오색 빛이 흘렀다. 수현은 아이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절대로 널 저 사람들 손에 넘겨주지 않을 거야. 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네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어. 내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내가 책임지고 널 거기 데려가 줄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수현이 비틀거렸다. 눈앞이 새카매지며 균형을 잃었다. 끈에 끌리듯 몇 걸음을 걷다가, 아래인지 위인지 구별도 안 되는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안돼.




   경로 2.


   “김수현씨요? 예, 오늘이 예정일입니다. 분만은 잠시 후에……. 예? 예, 전에 말씀하신 대로 조처해 놓겠습니다. 아이고, 물론이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화면 속의 남자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최박사는 굽실대던 허리를 폈다. 가운 자락을 추스르며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이제는 벽에 난 검고 네모진 웅덩이에 지나지 않는 전화기 화면을 씁쓸하게 바라보다가 킁,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이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니 굳이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았고 사실상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출산공무원 제도는 국력증강의 깃발 아래 인구를 늘리기 위해 시행중인 제도였지, 유전자 실험 따위나 하자고 만든 제도가 아니었다. 어딘가에 이용해 먹을 돌연변이들을 만들어 내자고 전국 가임여성의 50퍼센트에게 공무원 지위를 부여한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통일 후 오히려 거대해진 군부의 명령을 일개 봉급쟁이 의사인 자신이 거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적으나마 그것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군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입장에선 더욱 그랬다. 출처 모를 정자나 줄기세포를 제멋대로 맡기고는 열 달, 가끔은 다섯 달, 드물게는 세 달 만에 신생아를 찾아가도 최박사는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몇 번 생각해 본 일이 있지만, 그럴 때면 어김없이 의료용 알코올에 물이라도 타서 진탕 마시고 죽은 듯 취해버리거나 취한 김에 죽어버리고 싶어졌기에 아이들의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을 어느 순간 그만두고 말았다. 

   그래, 생각 따위 집어치우자. 아무리 생각한들 뾰족한 수 없이 우울하기만 할 뿐이다.  그저 참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몸상하고 마음 상해가며 이따위 일에 이용당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꼭 오고야 말 것이다.

   최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벌떡’은 생각뿐이었다. 최근에 불어난 뱃살과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든 허벅지 근육 때문에, 의자와 함께 나뒹굴 뻔 하면서 겨우 일어섰다. 누가 봤을 리도 없는데 주위를 힐끔 둘러보고 크흠 헛기침을 한 최박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제 127호 분만실로 향했다.

   복도를 따라 줄지은 분만실은 대부분 팻말이 붙은 채 문이 닫혀 있었다. 이 곳을 지날 때마다 최박사는 커다란 닭장을 떠올렸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든 창살 안에 갇혀 암탉들은 쉼 없이 알을 낳았고, 조산원들은 그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달걀을 주웠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조산원들의 등 뒤에서 품질을 관리하는 역할에 머물렀지만, 의사들 중 소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접 달걀을 주워 몰래 빼 내었다. 그건 이 병원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암암리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윽박지르면 쉽게 꺾이고, 자신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변명을 거듭하며, 또 그러한 변명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은 어느 집단에나 존재했다. 그러므로 최박사만이 비난 받을 일은 아니었다.

   양심이니 원칙이니 입을 잘못 놀리다가 어느 산기슭 구덩이에 파묻히느니 차라리 앞서 협력하는 게 나았다. 밤중에 집까지 쳐들어와 몇 년 전에 저지른 잘못까지 들추어내며 겁을 주는 데 버텨낼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들 앞에서 옷을 입은 채로 오줌을 까지 한 번 싸고 난 이후 최박사는 그들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탓하려면 전국 병원에 한둘씩 뿌리박힌 그와 같은 사람들을 모두 탓해야 했고, 그 전에 출산공무원들을 이용해 자기들의 이득을 챙기려는 군부를 탓해야 했다. 최박사는 숨을 몰아쉬며 복도 제일 끝 왼쪽 방문을 열었다.

   여자는 벌써 기차가 되어 있었다. 저러다 과호흡으로 기절하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열심히 숨을 몰아쉬는 여자를 본 순간 최박사는 직무에 충실한 출산공무원들을 볼 때면 늘 그러하듯 미미한 불쾌감을 느꼈다. 성실하고 전문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것 까지는 좋지만, 그들은 때로 광신적이라고 할 정도로 자기 일에 충실했다. 심지어 어떤 출산공무원은 아이를 받는 법에 대해, 그것도 본인이 출산하는 도중에 그를 가르치려 들기까지 했다. 다행히도 이 여자는 가쁜 숨소리 외에는 딱히 소리다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점점 더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여자는 마침내 숨을 멈추며 온 몸에 힘을 주었다. 위 아래로 물결치던 배가 순식간에 푹 꺼져 내렸고, 곧 여자의 다리 사이에서 아이가 미끄러져 나왔다.

   아이의 피부는 축축한 점액으로 뒤덮였고, 부드러운 정수리는 여느 신생아들과 마찬가지로 불룩거렸다. 외호흡기관이 분명히 겉으로 드러나 있으니 폐호흡을 하긴 할 테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피부로 숨을 쉬는 모양이었다. 팔과 옆구리를 따라서는 길게 지느러미가 달렸고, 손가락 사이엔 물갈퀴가 났다. 미루어 짐작컨대 아이는 인간과 어류 사이의 아종인 듯 했다.

   -아이가 좀 특이한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최박사는 움찔하고 말았다. 모체를 앞에 두고 아이에 대해 언급하는 건 규칙 위반이었다. 모체의 질책이 날아오길 기다렸지만 커튼 너머에선 가벼운 바스락거림과 뭔가를 먹는 소리, 그리고 옅은 오렌지 향기만이 건너왔다. 즉시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규칙위반은 무효였으므로, 뒷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최박사는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아이는 과연 독특했다. 얼마 전 삼 개월 만에 모체를 찢어발기다시피 하며 태어났던 그 생명체 -곧 사살되었고, 모체는 쇼크로 사망했다-에 비하면 외형이 험악하지도 않았고, 반짝이는 지느러미는 분명 아름답기까지 했다. 이질적이었지만 두려움이나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최박사는 오히려 아이에게 얼마간의 호감마저 느꼈다. 혈액검사를 마치고 귀에 체온계를 넣는 순간, 아이는 감았던 눈을 떴다. 순막과 눈꺼풀이 차례로 올라가더니 흰자위 없이 온통 새카만 눈이 드러났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조그마한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시늉을 했다.

   최박사는 잠시 손을 멈추고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마도 지금이 아이의 일생에서 가장 편안한 때일 것이다. 잠시 후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옮겨가 온갖 종류의 일을 하며 실험대상이 되기도 했다가 유전자에 새겨진 수명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겠지. 그렇게 살면서 제 수명대로 살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최박사는 아이를 들어올려 군인들이 명령한 대로 준비해 둔 바닷물 수조에 넣었다. 아이는 목구멍에서 꾸국꾸국 소리를 내며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좁은 어항 속을 이리저리 헤엄치다가 눈이 마주칠 때면 이 없는 잇몸을 보이며 웃기까지 했다. 무언가 먹을 것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군부에서는 자기들이 올 때까지 아이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아이는 밥을 주는 자의 손에는 채찍도 함께 쥐여 있다는 삶의 냉엄한 진리를 경험하게 될 터였다. 최박사는 양 손으로 얼굴을 연거푸 문질렀다. 그렇게 하면 얼굴에 달라붙은 음울한 표정을 떼 내기라도 할 수 있다는 듯.

   너나 나나 하나 다를 것 없는 처지구나, 꼬마야. 최박사는 수조 표면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이는 맑은 눈으로 최박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갓 태어난 너나 마흔 해 가까이 살아온 나나 밥을 주는 손, 채찍을 내리치는 손앞에서 벌벌 떨어야 하는 건 마찬가지야. 처지가 낫기로는 아직 그런 일을 겪지 않은 네가 나보다 훨씬 나으려나? 최박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어난 게 죄다, 꼬마야. 태어난 게 죄야.

   한참을 묵묵히 허공의 한 점을 노려보던 최박사는 마침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모두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는 수조에서 손을 떼며 아이를 쏘아보았다.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월세를 대신 내 줄 테냐? 내가 매일 경험하는 오금저리는 순간들을, 네가 나대신 견뎌내 주기라도 할 거야? 어쨌거나 내 삶을 버텨 낼 사람은 네가 아니라 나란 말이다. 자기연민에 빠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일상은 무너진다고!

   날 그렇게 보지 말라니까!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그들이다. 최박사는 즉시 문을 열고 허리를 구십 도로 숙여 반갑게 인사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조금 전의 그 출산공무원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머쓱해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요점을 말했다.

   “아이를 좀 보여 주세요.”

   이런 사람들이 드물게 있었다. 교육으로도 약물로도 호르몬의 작용은 막을 수 없는지 무작정 찾아와 아이를 보게 해 달라고 졸라대었다. 출산공무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행동이었다. 최박사는 여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좀 곤란합니다.”

   여자는 최박사의 말에 아랑곳 않고 문 안으로 한 발 들어왔다. 최박사는 경비호출 버튼으로 손을 뻗었다가, 왜 신생아실이 아닌 사무실에다 아이를 데려다 놓았냐고 누가 물으면 할 말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여자가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지식 추구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최박사는 여자를 물끄러미 보았다. 갑자기 헌법은 왜 들이미는 거지?

   “모든 신생아에겐 외부인 접견권이 보장되어 있고요.”

   그제야 여자가 무슨 논리를 내세울지 짐작이 된 최박사가 귀찮은 것을 내쫓듯 손을 내저었다.

   “원칙이야 그렇지만 당신은 모체이니까요.”

   최박사의 대답을 들은 여자가 눈을 찌푸렸다.

   “모체와 외부인이 다를 게 뭡니까? 적어도 전 단 한 순간도 이 아이와 감정적 유대를 맺은 적이 없습니다. 여덟 달 동안 물리적으로 함께 있었을 뿐이죠. 출산 후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완전한 객체가 됩니다. 객체이고 서로 타인인 만큼, 서로가 서로에 대한 외부인이지 않겠습니까?”

   여자의 논리는 얄팍했다. 최박사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요점은 분명했다. 아이를 보러온 건 애착이 아닌 호기심 때문이라는 점.

   “아이가 특이하다고 하셨잖습니까? 특이하다면 얼마나 특이할지 그게 궁금합니다.”

   저 반짝이는 눈을 보면 별 애착이 없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분명했고, 아이를 막상 대면한 여자의 저 자신만만한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도 궁금했다.

   “원래는 이러면 안 됩니다만, 김수현님의 사회적 지위를 봐서 특별히 허가해 드리는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여자는 교육을 잘 받은 사람답게 아이의 기묘한 생김새에도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보통 신생아와는 다른 생김새의 아이를 여덟 달 동안 품고 있었다면 소름이 끼칠 만도 한데, 여자는 그다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저게 출산 공무원으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인가 싶긴 했지만, 최박사는 눈앞의 저 여자가 어쩐지 사람 같지가 않았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얼마나 이론으로 억누르면 저런 감정적인 기형이 되어버릴까. 아니면 비교적 늦은 나이에 분리를 겪은 세대의 특질일까? 거부감이 들었던 한편 안심했다. 최박사는 긴장을 풀고 여자에게로 한 발자국 다가갔다.

   “수현씨?”

   재차 본 여자의 낌새가 이상했다. 수조를 들여다보던 여자가 갑자기 그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김수현씨,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이를 한 번 놓칠 뻔 하면서 여자는 물 속에서 아이를 들어올렸다. 공중에 들어올려 잠시 눈부신 듯 바라보다가 서투르게나마 아이를 껴안고는 아이에게서 나는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여자의 눈에서 몽롱한 광채가 뿜어 나왔다.

   “김수현씨? 아이에게서 손떼세요!”

   여자의 귀에는 이미 최박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온전히 아이에게만 몰두한 채 무슨 말인가를 중얼대던 여자는 갑자기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렸다. 미친 여자의 웃음이었다. 최박사는 최대한 건조하고 차갑게 말했다.

   “수현씨, 지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아이를 내려놓고 물러서세요.”

   여자는 최박사를 본 척 만 척 아이를 어르며 그의 앞을 지나쳤다.

   “김수현씨!”

   최박사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갑자기 몸을 움직여 숨이 가빴지만, 최박사는 온 힘을 다해 여자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는 의사를 똑바로 노려보며 아이의 부드러운 정수리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물러서세요. 가까이 오면 이 아이는 죽습니다.”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 나갔다. 최박사는 복도 중간까지 여자를 쫓아가다가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며 그 자리에 무너졌다. 복도 굽이를 막 돌아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으며 입을 벙긋대다가, 눈을 까뒤집으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경로 3.


   코피 웅덩이 속에 시퍼런 얼굴을 처박고 쓰러져있던 덩치 큰 의사는 수술실로 옮겨졌지만 곧 사망했다. 심장마비였다. 신생아가 들어있어야 할 수조는 텅 비었고, 모체는 실종되었다. 당연히 화가 머리끝까지 난 윗분들은 당장 신생아를 찾아내라며 박대위를 닦달했다. 박대위는 수조 근처부터 시작해서 모체와 신생아가 남긴 흔적을 살폈다. 자료에 의하면 목표물은 2종 알파 타입이라고 했다. 2종 알파 타입이라면 수중침투와 기뢰나 어뢰 설치를 전문으로 하는 종이었다. 물고기처럼 지느러미가 달렸고, 신체는 점액으로 뒤덮였다. 과연 점액질의 물방울이 의사의 사무실 바닥에 점점이 흩어져 있었고 물방울은 복도를 따라 비상구까지 이어졌다. 박대위는 비상구 문을 열어젖히고 아래를 보았다. 잔뜩 녹이 슨 철제 계단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벽에 달라붙어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난간에는 녹의 일부가 부스러진 흔적이 보였다. 박대위는 무전기를 켜고 비상계단 아래로 대원들을 소집했다.

   박대위는 고출력 테이저와 야간 투시경으로 무장한 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대상의 종류는 2종 알파다. 신생아의 모습일 때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졌지만, 쫓겼을 때 생존본능을 어떻게 나타내어 보일지는 미지수다. 실종시각은 2407시, 방향은 현 지점에서 120도. 산 속으로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막 아이를 낳은 여자가 신생아를 데리고 도망을 쳤으니 얼마 가지는 못했을 거다. 지금부터 120 방향을 중심으로 모체의 흔적을 찾을 테니 대원들은 나를 따르도록.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한쪽 발을 다른 쪽 발에 척 붙이며 한 목소리로 외치고는 박대위를 따라 일제히 산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

   놀란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풀벌레 소리도 일순 멈추었다. 낙엽과 마른 수풀이 군화에 사정없이 짓밟히며 질러대는 메마른 비명을 듣는 박대위의 마음속에 서서히 기대감이 끓어올랐다. 흔적을 찾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며 수색의 그물을 조여들어가는 과정이 박대위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심리적 물리적으로 압박을 해 가다 마침내 대상을 고립시켰을 때의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잠깐. 범위를 점점 넓혀가며 흔적을 찾던 박대위는 수신호를 보내어 대원들을 멈추었다. 땅에는 낙엽이 눌린 자국이 났고, 그 위 오르막으로 오르는 곳엔 나뭇가지가 이리저리 꺾인 흔적이 보였다. 박대위는 발자국을 따라 몇 걸음을 걸어 보았다. 3kg 정도의 여분의 질량을 지고 속도를 내었으므로 보폭은 실제보다 좁다. 무게중심도 앞으로 쏠렸다. 그 점을 감안해서 보폭으로 키를 계산했다. 키는 박대위보다 조금 작은 167cm 정도. 몸무게는 59kg. 가지고 있던 모체에 대한 정보와 일치했다. 땅에 가해진 압력이 불균일한 것으로 보아 약간 비틀대며 걷고 있었음이 판명되었고, 길이 아닌 곳으로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는 결단력은 있었으나 곧 걸음이 흔들린 것으로 봐선 딱히 목표를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박대위는 입을 열었다.

   “내가 추적기를 달고 여자의 흔적을 따를 테니 대원들은 측면에서 나를 따라올 것. 안중위는 추적기 신호의 벡터를 측정하고.”

   “대위님, 엄호는…….”

   박대위는 안중위의 말을 끊었다.

   “필요 없어.”

   집중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혼자 추적하기를 고집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흔적을 따라 걷고 뛰며 추적대상을 고스란히 입어보는 장면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걸음걸이를 따라가다 보면 추적대상과 비슷한 감정을 떠올리게 될 때도 있는데, 헐떡이고 때로 찡그리는 그런 모습은 아무래도 팀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야간투시경의 초록색 시야 속에서 나뭇가지들이 하얗게 떠올랐다가 앞 다투어 투시경을 때리고 사라졌다. 규칙적으로 다리를 움직이는 가운데 머릿속은 점점 명징해졌다. 박대위는 긴장을 풀고, 도망치는 자의 마음을 느껴보았다. 막 낳은 아이를 품에 안고 달린다. 잡히면 처벌을 받는다. 두렵지만, 아이를 놓칠 수는 없다.

   왜? 왜? 왜? 몇 번을 물어봐도 모르겠다. 도무지 박대위로서는 알 수 없는 감정이다. 박대위는 불임이고, 누군가를 돌보는 자로서의 정체성에 이입을 해 본적도 없다. 사람에게도 물건에도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당혹과 불안 같은 불편한 감정이고, 우거진 나뭇가지에 온 몸을 긁히면서까지 앞으로 나가겠다는 결기와 의지 정도다. 모체의 걸음걸이는 점점 느려지다가 의식적으로 빨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멈췄다.

   발자국이 멈춘 자리엔 모체가 주저앉은 흔적이 있었고, 그 주변에선 뭔가 바다 냄새 비슷한 것이 났다. 바닥에는 대상의 신체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액질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흩어져 있었다. 박대위는 야간투시경을 벗었다. 갑자기 펼쳐진 어둠의 바다 속에서, 손끝에 찍은 액체의 냄새를 맡았다.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을 만큼 깊은, 위장이 아닌 세포 차원의 배고픔이었다. 박대위는 온 몸을 부르르 떨며 긴 하품을 했다. 눈을 반쯤 감고 입맛을 다시며 엄지손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리움 이전의 그리움이 몰려온다. 아늑하고 따뜻한 감각이 전신을 둘러싼다. 엄마의 품과 같은……. 엄마? 박대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라는 단어는 인적자원의 분리가 이루어지기 전에 쓰인 사전에나 실린 단어로, 박대위가 자연스럽게 떠올릴 만 한 단어가 아니었다. 순간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꽉 움켜쥐고, 절박한 두 눈동자가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박대위는 손등을 얻어맞은 듯 소스라치며 입에서 엄지손가락을 뺐다.

   -잘 들어. 네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이 있어.

   누구야? 박대위는 야간투시경을 다시 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다. 목소리는 귓가에서 다급하게 헐떡였다.

   -내가 바로 네 엄마야.

   목소리는 박대위의 머릿속에 하나하나 새겨 넣듯 필사적으로 속삭였다.

   -내가 널 낳았고, 석 달 동안 젖을 먹여 키웠지. 그래, 이 가슴으로 너를 품고 안았어. 하지만 네가 태어난 지 넉 달 만에 분리가 시행되었고, 난 널 그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지.

   이 목소리는 무엇이지? 절망과 고통과 정체모를 습기로 가득한 이 목소리는? 언젠가 들었던 목소리, 동일한 종류의 습기인데 그게 언제 어디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나려고 살았어. 널 다시 만나려고 양육공무원이 되었고, 널 쫓아 국군 유년대의 보모가 되었지. 덕분에 네가 자라는 모습을 내내 지켜볼 수 있었어.

   차갑게 불어오던 바람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유년대의 보모라고? 그래, 기억난다. 그렇다면 그 때의 그,

   “교관님?”

   때로는 다정했고, 때로는 엄격했던 교관이었다. 언제나 다른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지만 뒤를 돌아보면 꼭 어린 박대위와 눈이 마주쳤다. 맞아, 그때도 지금과 같은 겨울이었고, 교관의 손에 이끌려 부대를 나와 산 속을 달렸어.

   -회령 어딘가에 부모와 아이가 함께 살 수 있는 피난처가 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좀 더 빨리 너를 빼 내서 거기로 갔을 텐데.

   끌고 끌리며 달리는 가운데, 교관은 박대위에게 연신 사과했다. 미안해, 너무 늦어서 미안해. 이런 세상을 살도록 만들어서 미안해. 단 한 번 세상을 되돌릴 기회가 있었음에도 겁에 질린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해버려서 미안해.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왔다. 확성기소리가 어지러이 그들을 둘러쌌다. 마침내 교관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어린 박대위를 꼭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잊지 마, 주영아. 절대로 이 엄마를 잊으면 안 돼.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너의 손을 잡고 최선을 다해 겨울 산을 달렸다는 사실을,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는 너를 기억하고 사랑할 거라는 사실을.

   교관은 납치 및 추행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어린 박대위는 피해자인 동시에 증인 신분으로 그 곁에 섰다.

   -박주영 대원, 묻겠다. 김교관이 너를 납치했나?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너를 추행했지?

   -예, 그렇습니다.

   어린 박대위는 꼿꼿이 선 채로 집행관의 추궁에 분명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령 어딘가에 피난처로 가고 있었다는 것과, 교관이 스스로 박대위의 엄마라고 밝혔음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박대위는 모든 것을 잊었다. 본바탕이 텅 빈 박대위에게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진 적이 없으니 빼앗길 일도 없다. 간단한 일이었다. 박대위는 고개를 갸웃하며 뺨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았다. 묵묵히 눈물을 닦으며 몇 걸음을 더 내딛다가 그 자리에 우뚝 섰다.

   한 발자국만 더 갔다면 절벽이었다. 박대위는 절벽 아래로 초음파를 쏘아 보내 높이를 측정했다. 건물 3층 정도의 높이였고, 절벽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바위 위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추적대상 중의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모체였다.

   등뼈가 부러졌고, 내장에는 상처를 입었다. 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몇 번이나 일어나 보려고 한 듯 모체의 다리는 기묘한 각도로 뒤틀렸다. 박대위는 조심스레 모체의 맥을 짚어보았다. 심장박동은 멈춘 지 오래, 당연히 동공반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박대위는 대원들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 무전기를 꺼냈다.

   모체가 눈꺼풀을 파들대며 눈을 뜬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박대위는 재빨리 모체를 향해 테이저를 겨누었다. 손잡이를 움켜쥐어 전기충격을 가하려던 찰나, 모체의 팔은 이미 죽은 몸과는 완전히 다른 생물처럼 움직여 품에 안았던 것을 박대위의 눈앞에 내밀었다.

   아이는 한 군데도 다친 곳 없이 초록의 시야 속에서 하얗게 빛났다. 눈을 덮은 순막을 들어올리고 빛나는 눈으로 박대위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지느러미를 펼치며 기묘한 음계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귀를 통해 들어와 심장을 움켜쥐는 소리였다. 박대위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가고 싶어.

   처음에는 미세하게 떨리기만 하던 심장이 제 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세상의 일부가 조금씩 부스러져나가, 그 틈새로 강렬한 희망과 아련한 슬픔이 새어 들어왔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관통 당한 박대위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무릎을 꿇으려던 찰나, 딸깍 소리와 함께 무전이 들어왔다. 

   “박대위님? 추적기의 신호가 한참동안 멈췄습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박대위는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산의 동쪽 단애 아래에서 추적대상을 발견했다. 모체는 사망했고, 주 타깃은-”

   아이로부터는 여전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선뜻 다시 입을 열지 못하는 박대위에게 아이는 이 없는 웃음을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가고 싶어.    

   “주 타깃은 어떻게 됐습니까, 박대위님?”

   박대위는 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손을 아이에게로 마주 뻗었다. 아이의 손을 더듬어 잡자 축축한 냉기가 팔을 타고 올라왔다. 문득, 아이의 피부에서 냉기를 가셔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없어.”

   박대위는 목을 가다듬고 좀 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

   안중위의 놀란 목소리가 이쪽으로 건너왔다.

   “독립적으로 움직일 능력이 있었단 말입니까?”

   “근처에 흔적이 남아 있으니까 그걸 따라가 볼게. 그런데 부탁한 방향성 측정은?”

   “아, 그거요. 초반에는 이동경로가 복잡한 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말입니다, 결국은 한 방향을 가리키더군요. 박대위님이 계신 곳에서 85도 방향. 바다 쪽이었습니다.”

   바다, 바다란 말이지. 박대위는 멍하니 중얼대며 모체의 손에서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가 푸르륵 소리를 내며 박대위의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타깃이 남긴 흔적도 그 쪽으로 가고 있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 날 따라오도록.”

   박대위는 무전을 끊고 속도를 내어 달리기 시작했다.

   “박대위님, 너무 빠릅니다!”

   예고도 없이 다시 들어온 무전을 아무 말 없이 끊어버리며 박대위는 더욱 속도를 붙였다. 공기가 차가운 면도날이 되어 감각이 사라지도록 얼굴을 베고, 안정적인 발 굴림 위에 상체가 얹혀가는 느낌이 들 때까지. 박대위는 문득 생각했다.

   어릴 때도 이렇게 달릴 수 있었다면, 교관님과 난 회령까지 갈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뭔가를 잃어버린 느낌에 혼자 기숙사 침대위에서 깨어나, 창문으로 꾸역꾸역 스며드는 어둠을 더듬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교관과의 일을 잊어버린 뒤에도 어린 박대위는 바스락대는 제복 너머에서 전해오던 온기와 향기를 종종 떠올렸다. 실낱같이 이어지다 결국은 사라지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분명한 그리움이었다.


   박대위는 대원들보다 한 발 먼저 바다에 도착했다. 갑자기 속력을 줄여 잠시 정신이 아득했지만, 휘청대면서도 망설임 없이 바다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등 뒤로 대원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대위님, 어디 가십니까?”

   “품에 안고 계신 게 뭡니까?”

   “무슨 짓이십니까, 박대위님! 당장 그걸 내려놓으십시오!”

   박대위는 파도 속에서 비틀대며, 점점 다가오는 물마루를 홀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널따랗게 덮쳐오는 물기둥 속에서는 아이와 닮은 생물체들이 지느러미를 오색으로 반짝이며 박대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감정을 가늠하기 어려운 까만 눈으로 박대위를 응시하다가, 이리로 오라는 듯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들에게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박대위는 허우적대며 물 속으로 고꾸라졌다.

   공기거품이 격렬하게 입 밖으로 뿜어져 나갔다. 빠져나간 공기만큼의 바닷물이 콧속을 긁으며 밀려들었다. 무언가가 무릎 부분에서 박대위의 다리를 잡아당겨, 박대위는 도무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까르륵하는 천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몇 번을 몸부림치며 물을 먹고 나자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완전히 방향 감각이 사라지고 말았다. 정신없이 흩어지던 공기방울들이 점점 가라앉았고, 몸에서는 갈수록 힘이 빠졌다. 죽는 건가? 몽롱한 의식 속에 한 마디를 떠올리는 순간 어깻죽지 아래로 여러 개의 손들이 거칠게 쑥 들어와 박대위를 일으켰다.

   몸이 물 속에서 둥실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키자 공기가 폐를 날카롭게 찔러왔다. 이어 다리가 땅에 질질 끌리는 감각이 든다 싶더니, 박대위는 어느 새 대원들에게 이끌려 물 밖에 나와 있었다.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박대위 위로 드리웠다. 손전등 불빛 속에 불신과 경악으로 가득한 얼굴들이 드러났다. 박대위는 코와 입으로 물과 함께 기침을 쏟아내면서, 꿈에서 깬 기분으로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달리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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