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중독

2014.04.09 01:5204.09

중독

 

설치류과 동물들은 음식을 먹을 때 저장하는 습관이 있다. 그들은 남은 음식들을 입 안의 작은 볼 주머니 안에 가득 찰 때까지 집어넣는다.

입 안에 음식물을 저장해 둠으로서 안전하게 보관하고, 또 원할 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은 그들이 하는 행동이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생존만을 위해서 그 행동을 하는 것일까.

입 안 가득 음식물을 머금은 채로 오늘 끼니 걱정을 해도 되지 않는 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은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그는 매일 아침 여섯 시 반에 칼같이 일어난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안경을 썼다.

그리고 옆에 잠든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평소 같았으면 가족이 깊게 자도록 놔두었겠지만 오늘은 그의 딸이 수능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그의 아내는 덤벙대는 딸이 혹시라도 준비물을 잊어버리거나 시험시간에 늦을까봐 노심초사하며 오늘은 일찍 깨워달라고 그에게 말했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남자는 세면대 수도꼭지를 돌렸다.

그의 손 위로 차가운 물이 쏟아져 나왔다.

양치질은 정확히 위 아래로 서른 번, 좌우로는 쉰 두 번을 문지르고, 샤워는 정확히 삼백초 동안 이뤄진다.

당신 어서 아침 먹어요. 그의 아내가 말했다. 시간은 일곱 시 삼십 분이었다.

식탁에는 여느때와 같이 그의 아내가 만들어 놓은 토스트와 커피가 놓여있었고, 텔레비전에는 아침뉴스 오프닝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 수능 보는 날이지? 그가 말했다.

그의 딸은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는 했는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졸린 얼굴을 연간 끄덕거렸다.

준비물은 다 챙긴거지? 현관문을 나서는 동안에도 그의 아내는 계속해서 그의 딸에게 물었다. 다 챙겼다니까.

그의 딸은 늦겠다며 찡그린 얼굴로 대답하며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그의 딸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의 아내는 걱정스런 얼굴로 계속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에게 걱정 말라며 손을 흔들고는 집을 나왔다. 시간은 여덟시 삼십분이었다.

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그것이 일어난 것 같은 착각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예로 복통이나 설사로 고생하는 사람에게 감기약을 특효약이라고 처방하면 실제로 낫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기약에 처방된 미량의 안정제가 몸을 조금 편안하게 했을 뿐이었다.

 

그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곱 시 반 쯤 업무를 전부 끝마치고 휴게실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사십 이 분에 그의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뉴스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그게 우리집 근처인 것 같아, 여보. 그의 아내는 다급한 듯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소리야. 그가 물었다.

그의 아내는 장을 보러 지금 시내에 나와 있는데 친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xx 백화점 근처인게 집 근처인 것 같다고 그의 아내가 정신없이 말했다.

그리고 아침에는 가스 밸브를 잠근 것이 기억나는데 방금 전에 나올 때는 확인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딸이 집에 있는 지를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는데 도통 받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에는 이미 소방대원과 사람들이 몰려들어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뜨거운 커피를 한 입에 들이켰다. 입천장과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그는 예정보다 일찍 퇴근했다. 시간은 일곱 시 오십 칠분이었다.

화재현장은 두 시간에 걸쳐 진화되었다.

아파트 가까이 있던 옆 건물 상가에도 옮겨붙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고 소방관이 그에게 말했다.

다행히도 그의 집에는 가스폭발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난 화재였다. 하지만 그의 집 안에는 정말로 폭발이라고 일어난 듯이 온통 침묵만이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집은 모든게 똑같은 상태였다.

다만 거실식탁 위에는 전원이 꺼진 핸드폰이 있었다. 그의 딸의 것이었다.

그는 딸의 방문을 열었다.

그의 딸은 침대에 몸을 파묻은 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었다. 그의 딸은 부모님을 보고는 아무래도 수능을 망친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은 열시 이십 육분이었다.

 

그는 여섯 시 반에 일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한 시간이나 늦게 일어났다. 고장난 시계처럼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피를 찾지 못했다.

그가 씻고 나왔을 때에는 이미 여덟시가 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평소대로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굽지 않은 빵과 물이 있었다.

그는 왜 빵을 굽지 않았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그의 아내는 대답없이 가스밸브만 걱정스런 듯이 쳐다보았다. 텔레비전에는 뉴스 대신에 와이드 쇼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딸에게 왜 수능을 망친 것 같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너무 긴장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퍽퍽한 빵을 씹으며, 그럴 수도 있다고 다음번에는 잘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의 딸은 그의 말을 잠시 듣고 있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아끼는 샤프로 시험을 봤다면 긴장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분명히 앞주머니에 챙겨두었는데 왜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식사를 전부 비우고 딸아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설사 그 샤프를 들고 시험을 보았더라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의 딸은 모의고사를 보아왔던 성적과 비슷한 등급을 받았다.

다만 그의 딸은 시험을 볼 때마다 잘 볼 수 있을지 긴장하는 습관이 생겼을 뿐이었다.

매일 아침 그는 침대에서 일어난다. 시간은 여섯시 삼십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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