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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아낌없이 주는 괴물

2014.03.13 19:1203.13



 

아낌없이 주는 괴물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 무더운 여름날.


보리밭에 사람이 죽어 있다는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들은 시체를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들 중 몇명은 참지 못하고 현장에서 구역질을 했다. 지독한 시체 냄새가 구토냄새와 함께 섞여서 현장의 공기를 침체시켰다. 보리밭의 노란 물결을 방해하며 누워있는 시체는 형태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있었다. 몸뚱아리에 뚫린 수많은 구멍들 사이로 초록색의 기다란 애벌레 여러 마리가 드나들며 꿈틀거렸다. 배의 한가운데가 크게 터져서 안에 있는 장기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온 상태였고, 애벌레들이 파먹은 눈알의 조각이 눈구멍에 남겨져 있었다. 

 
   -모든 장기에 애벌레들이 드나든 구멍이 뚫려 있어요. 밖에서 뚫은 구멍이 아니라 벌레들이 안에서부터 갉아 먹으며 나와서 생긴 구멍이에요. 외부에서의 자극은 전혀 없었어요.

-외부에서의 자극이 없었다니?

-애벌레들이 죽은 사람을 갉아 먹은 게 아니라, 산 사람을 먹어서 죽인 거에요.



***


-몇 십년 전.


작은 체구에 곱슬거리는 머리를 하고 있는 소년은 얼굴에 멍이 든 채로 집으로 들어왔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맞아서 든 멍이었다. 키가 작고 비실비실한 그는 항상 동급생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소년은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마룻바닥에 내팽겨치고 집을 나와 보리밭으로 들어갔다. 키가 큰 보리들 사이에 있을 때면 그는 안전함을 느꼈다. 연두색의 보리 밭 한 가운데로 그가 들어섰을 때 갑자기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보리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안녕, 꼬마야.”

  흰색의 부드러운 털에 공처럼 동그란 몸을 가진 그 이상한 생명체의 눈은 초록빛이 나는 신기한 보석으로 되어 있었다. 소년은 놀라서 자리에서 넘어졌다.

  “넌 왜 혼자 있니?”

  그 생명체는 사람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년은 눈을 크게 뜨고 더듬거리며 물었다,

 "넌 누구야?"

 "너 같은 외톨이지."

 그 생명체는 소년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소년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호기심에 이 생명체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입을 벌  린 채로 생명체를 눈으로 훑었다.

 "...내가 친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소년이 꺼낸 질문에 생명체가 웃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외톨이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법이니까."


  둘의 첫만남은 그렇게 보리밭에서 이루워졌고, 딱히 친구가 없었던 소년은 그 생명체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는 학교가 끝나고 괴물-이 괴상한 생명체를 소년은 그렇게 불렀다-과 어울렸다. 괴물은 그저 사람과 대화만 할 수 있는 짐승이 아니었다. 둘은 단순하게 나무를 타고 달리기를 하고 놀기도 했지만 인생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괴물은 확고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의 티를 벗어나지 못한 소년은 목숨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괴물은 그에 비해 성숙해보였고, 소년이 알 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소년은 괴물의 그런 점에 매료되었다. 

그가 항상 궁금했던 점을 괴물에게 물어보았을 때는 서로를 친구라고 부를만큼 가까워졌을 때였다.


 "넌 어디에서 왔어?"

 "그게 궁금해?"

괴물이 잠시 머뭇거렸다.

 "응."

 "내가 그 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었던 간에 우린 지금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야. 그러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있잖아, 부탁이 하나 있어."
 괴물은 자연스럽게 화재를 돌렸지만 소년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뭔데?"

"너도 날 위해 줄거지?"

상당히 애매하고 추상적인 질문이었지만 소년은 그게 뭐 대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 당연하지! 우린 친구잖아.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줘야지.”

“정말?”

“그럼.”

소년의 말을 들은 괴물의 보석 눈이 번쩍였다.


  그들이 그 대화를 나눈지 십 년 후, 소년은 커서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작은 체구 때문에 놀림 받았던 소심한 십대가 아니었다. 그의 몸은 다른 남자들 못지않게 성장했고, 그는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는 큰 꿈과 기대를 가지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향했다. 서울에 간 그는 괴물에 대해서도 거의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가 괴물과 재회를 했을 때는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잠깐 들렸을 때였다. 예전보다 키가 작아진 보리들 사이로 괴물은 다시 나타났다. 

“왜 그동안 날 보러오지 않았니?”

처음 만났을 때와 여전히 똑같은 모습의 괴물이 서운한 투로 물었다.

“난 이제 너랑 놀 시간이 없어. 앞으로 난 사업을 할 거야. 근데 자본이 없어.”

청년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그의 눈빛에서 어릴때의 순수함은 읽을 수 없었지만 미래를 향한 포부는 읽을 수 있었다. 괴물은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돈이 필요한 거라면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

“내 털을 깎아다가 파는 게 어때?”

“!”

괴물에게는 그 어떤 동물의 털보다도 부드럽고 질 좋은 하얀 털이 있다는 걸 청년은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그는 괴물의 털을 깎아서 팔았다. 생각보다 그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 나중에 네가 더 가치 있는 걸로 갚아 줄 테니까. 그렇지?”

괴물이 어렸을 때의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럼.”

그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청년은 몰랐지만 사업이 성공하면 뭐든지 다 해 줄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청년은 사업을 시작했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의 안정된 삶은 얼마 못가고 말았다. 오랜만에 괴물을 만났을 때 그는 괴물이 전처럼 무언가를 줄 수 있기를 내심 기대했다.

“네 털은 더 이상 자라지는 않는 거니?”

“미안해. 내 털은 한 번 밖에 자라지 않아. 또 돈이 필요하니?" 

“사업이 망했어. 다시 무언가를 해 보려면 돈이 필요해.”

“……그럼 말이야.”

“?”

“내 가죽을 가져가서 파는 게 어때?”

“!”

괴물에게는 그 어떤 동물의 가죽보다도 두텁고 질 좋은 하얀 가죽이 있다는 걸 청년은 그제서야 기억해냈다. 그는 살아 있는 괴물의 가죽을 칼로 벗겨서 팔았다. 사람들은 처음 보는 신기하고 두꺼운 가죽에 매료되었고, 청년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 나중에 네가 더 가치 있는 걸로 갚아 줄 테니까. 그렇지?”

“그럼.”

그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청년은 여전히 몰랐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대답했다.


청년은 사업을 망치고 나서 나쁜 길로 빠져들었다. 그는 도박을 시작했고, 괴물로 부터 얻은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고 말았다. 그는 또다시 괴물을 만나러 갔다. 털과 가죽이 없어서 속살이 드러나 보이는 흉한 모습의 괴물이 기뻐하며 그를 맞았다.

“도박으로 돈을 모두 잃었어. 돈이 필요해.”

청년은 이번엔 괴물이 좋은 생각이 있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내 보석 눈을 가져가서 파는 게 어때?”

사실 청년은 괴물의 보석 눈을 탐내고 있었다. 괴물은 기꺼히 그에게 두 눈을 내어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소년은 기뻐하면서 괴물의 눈을 칼로 도려내어 팔았다. 괴물의 보석은 영롱한 에메랄드 빛을 내뿜었고, 사람들이 처음 보는 아름다운 보석에 매료되는 것은 당연했다. 경매에서 비싼 값에 팔게 된 덕분에 청년은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걱정 마. 나중에 더 가치 있는 걸로 갚아 줄 테니까.”

청년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며 미소지어보였다. 괴물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하지만 도박의 유혹에서 그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고, 돈을 금방 다 써버린 것도 모자라서 빚을 져버리고 말았다. 빚이 어마어마하게 불어나는 건 한 순간이었다.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린 그는 핼쑥해진 얼굴로 괴물을 찾아갔다.

“도박으로 빚을 졌어.”

“저런.”

벌거벗은 몸에 뻥 뚫린 눈구멍을 가진 괴물이 그를 위로했다.

“돈이 필요하니?”

“그래. 그 동안 돈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어.”

“이제 어떻게 돈을 줘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먹을 건 줄 수 있어.”

괴물이 말을 이었다.

“나를 먹는 게 어때?”

그는 괴물을 위아래로 훑었다. 점점 늙어가고 돈을 잃어버리는 그와 달리 괴물은 몸집이 꽤나 커져 있었다. 잡아먹기에는 딱 좋아 보였지만 소년은 잠시 고민했다. 괴물을 먹게 된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괴물에게서 돈을 얻어낼 수 없게 될 터였다. 하지만 눈도 없고 털도 가죽도 없는 괴물이 그에게 더 이상 고기 외에 다른 걸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청년은 아무런 동요 없이 괴물의 가죽과 눈을 가져간 칼을 꺼냈다.

“날 산 채로 먹는 게 몸에 좋을 거야.”

괴물이 제안했다. 그 편이 싱싱할 것 같다고 그도 생각했다. 그는 살아 있는 괴물을 칼로 토막 내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음, 괴물의 제안에 따라 요리하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


***

 

지난주 오후 xx지역 한 마을의 보리밭에서 애벌레에 파먹혀 죽은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사망자 김모씨는 정체가 확인되지 않은 짐승을 날것으로 먹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국과수의 부검결과와 경찰의 조사에 따라 짐승이 새끼를 벤 상태였고 유충이 김모씨의 몸 안에서 자라 살을 뚫고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김모씨가 먹은 짐승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학계에 발표되지 않은 종일 확률이 크다는 것이...


***


나중에 네가 더 가치 있는 걸로 갚아 줄 테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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