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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탕

2004.10.30 09:5710.30

여기가 맞는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나는 가게 입구에서 망설였다. 그녀가 소개시켜준 곳이 여기가 확실한 것 같지만, 그래도 정말 그런 게 가능할까?

"처음 오셨죠?"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가게 주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얼굴은 젊어 보이는데도, 그의 짧은 곱슬머리에는 서리가 내려 있었다.

"네. 아는 사람 소개로-"
"들어오세요."

주인은 나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창가에 있는 자리를 권했다. 내가 앉아서 가게를 둘러보는 동안, 가게 주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실내는 어두웠다. 간접 조명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어두운 것 같았다.

"여기 있습니다."

주인이 메뉴판을 들고 돌아왔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뉴를 열어보았다. 그녀의 말이 맞다면 이 가게에서는,




- MENU -

근력이 강화되는 오무라이스 4,500
체중이 줄어드는 돈가스 4,500
체중이 늘어나는 돈가스 5,000
기억력이 촉진되는 새우볶음밥 5,500
키가 커지는 알밥 6,500
스페셜 함박 스테이크 14,000




그녀는 분명히 '체중이 줄어드는 돈가스'를 먹었다고 했다. 나는 메뉴판을 앞에 두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 그녀는 하루 아침에 몰라보게 날씬해지지 않았던가.

"알밥 주세요."

흔하디 흔한 말로, 밑져야 본전이다. 어쩌면 그녀의 경우처럼 나도, 정말로 어쩌면 나도, 키가 커질 수 있을 지 모르는 일이었다.
음식은 미리 만들어 놓기라도 한 것마냥 순식간에 나왔다. 주인도 키가 작은 나를 처음 봤을 때, 이미 내가 고를 메뉴가 뭔지 알 수 있었으리라.
나는 조심스럽게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맛이 좋았다.

"7000원 받았습니다."

그가 거스름돈 500원을 주려고 할때, 내가 말했다.

"그냥 가지세요."
"고맙습니다."

주인은 그것도 예상했다는 듯이 태연하게 미소지었다. 나는 그걸 보며 기분좋게 웃었다. 입가심 용으로 비치해 둔 사탕을 하나 들고 가게를 나섰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말 키가 커진 것이다! 오 센티미터 정도 커졌으니, 앞으로 두 번 정도만 더 오면 평생 나를 짓누르던 컴플렉스는 사라질 것이다. 아니, 이왕 하는 김에 한 여섯 번 정도만 더 올까?
사탕을 입에 넣었다. 처음 먹어 보는 신기한 맛이었지만, 어쨌든 맛은 좋았다. 사탕껍질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콧노래를 불렀다. 아직도 꿈만 같았다. 정말로 키가 커질 수 있다니.
그런데. 메뉴판 마지막에 있던 그 스페셜 함박 스테이크는 어떤 효과가 생기는 걸까. 정력 증강제? 나는 그 생각에 웃음을 터뜨리며 다음에 또 갔을 때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쓰레기통이 앞에 보였다. 나는 주머니에 있던 사탕껍질을 꺼내 쓰레기통 속으로 던졌다. 그리고 다시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나는 사탕 껍질을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혀가 살살 녹는 사탕'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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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y 04.10.30 10:30 댓글 수정 삭제
    오, 지금까지 올리신 단편들 중에 가장 좋군요.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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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 04.10.30 20:42 댓글 수정 삭제
    (...)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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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04.10.31 11:08 댓글 수정 삭제
    이.. 이거 제 미천한 머리로는 도대체 무슨 소린지;;
    혀가 살살 녹을 정도로 맛있는 사탕인건가..
    아니면 정말 녹는단 건가.. 그렇담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것인가.. 누군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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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ㅡㅡ;; 04.11.13 04:41 댓글 수정 삭제
    기발하네요, 거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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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형 04.11.27 10:55 댓글 수정 삭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꼭 소설이 뭔가 보편타당하거나 심오한 주제를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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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음? 04.11.28 18:05 댓글 수정 삭제
    아아.. 과연...
    그렇다면 한마디로 맛있는 사탕이라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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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형 04.11.28 23:13 댓글 수정 삭제
    음... 말하자면, 키는 컸지만, 혀가 녹았다는.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는... 그런 게 될까요.
  • No Profile
    흐음? 04.11.30 18:05 댓글 수정 삭제
    아아.. 말 그대로 녹았다는 내용이군요
    이제야 이 내용이 이해가 되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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