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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립탐정

2006.07.11 04:0907.11


한국에는 사립탐정법이 통과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류씨가 하고 있는 일은 합법적이지 않다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불법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가 애매하다. 어쨌든 그로서는 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수입에 관한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기에 어찌어찌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류씨의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어느 남자의 목소리로 남자는 한 사람을 조사해줬으면 하고 부탁해왔다. 그는 의뢰가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던 1000만원의 보수를 약속했으며,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을 때는 추가로 1000만원의 보너스를 주겠다고했다. 류씨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의뢰인은 못생긴 30대 중반의 남자로 명품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는 너덜너덜한 바바리코트에 중절모를 쓴 류씨를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조사해줄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외모와 달리 탁 트여 있었다. 굉장히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이 같은 목소리를 어디에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는 얼굴 없는 유명한 가수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매력적이지 못한 외모로 인해 신비주의 전략을 펼치는 가수 말이다. 어쨌든 목소리가 매력적인 의뢰인은 그에게 한 장의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 안에는 검은 장미가 있었다. 더불어 그녀에 관한 간단한 정보와 500만원이 든 명품 가방을 받은 류씨는 한 참을 사진 속의 검은 장미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장미는 개인 소유의 아파트를 좋아했다. 검은 장미답게 검은색의 옷을 선호 했으며 검은 고급외제승용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잘 타지 않았다. 그녀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일곱 시까지 공원을 열심히 걸었다. 휘트니스 클럽을 이용해도 좋으련만 그녀는 직접 걷는 것을 더 마음에 드는 듯 했다. 샤워를 한 그녀는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그녀는 검은 원피스에 사슴같이 매력적인 목에 스카프를 매고 외출을 나선다. 그녀의 야외활동의 시작은 카페에서 시작된다. 카페 레옹의 볕이 가장 잘 드는 창가 14 번 테이블에서 그녀는 블랙커피 두 잔을 마신다. 블랙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 매력적이게 보인다. 그녀는 월드컵의 길거리 응원을 싫어한다. 그녀는 조용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녀에게 월드컵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깊게 가라앉은 눈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블루 블랙 빛을 띄지만 그것은 서클렌즈인지도 모른다. 류씨는 그녀의 행동반경을 체크하고,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매력적인 때깔 좋은 명품남자에게 보고했다. 검은 장미는 혼자 있기를 즐기지만 대화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정기적으로 친구를 만났다. 검은 장미가 들꽃이 되는 건 그때뿐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누구보다 활발하며 이야기를 주도하며 활기차게 맥주를 들이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친구와 헤어진 뒤 그녀는 더욱 깊이 가라앉는다. 그 뒤로 그녀의 아파트에 들어가서는 며칠이고 나오지 않는 것이다. 역시 류씨는 보고했다. 그러다 다시 활기를 찾으면 그녀는 공원을 걸었으며 카페에서 블랙커피를 마셨다. 그렇다. 블랙커피. 설탕도 프림도 넣지 않은 쓰디쓴 블랙커피. 그녀가 즐겨 마시는 커피였다.  

그녀가 마신 블랙커피의 잔 수가 34잔이 되는 날.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통화를 한 그녀의 얼굴에 미묘한 감정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페널티 킥을 선고 받은 팀의 가라앉은 골키퍼의 표정 같은 것 말이다. 커피를 마신 그녀는 평소완 다르게 아파트로 향한다. 그런 뒤 예의 정갈한 검은 복장을 한 뒤 지금껏 타지 않았던 검은 외제 승용차에 올라탄다. 류씨는 조심스럽게 오토바이크의 시동을 건다. 자동차에는 이미 발신기를 달아둔 터였다. 발신기. 한국에서 발신기를 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류씨는 품에 제품넘버가 새겨지지 않은 콜트 총을 가지고 있었다. 청계천은 위대하다. 검은 장미는 우아해 보이는 하얀 늑대를 만났다. 그렇다. 우아해 보이는 하얀 늑대와 검은 늑대. 늑대 무리는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알파와 베타로. 그 모양새에 류씨는 으르렁거렸다. 그는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기록했다. 담배는 몸에 해롭다. 4000여개의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담배 안에는 40 여개의 치명적인 발암물질이 있다. 류씨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담배를 피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변명을 하며 담배 갑을 털었다. 지렁이 같이 꾸부러진 담배를 입에 문 그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매력적인 명품자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품 자식과는 이틀 뒤 처음 만난 그 카페의 그 테이블에서 만났다. 류씨는 가라앉은 눈을 파일을 펼쳐 보여주었다. 파일 안에는 그녀의 사진과 그 밖의 정보가 있었다. 명품자식은  침중한 표정으로 계좌에 약속한 돈을 입금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얀 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원하던 것이 이거였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걸 기다려왔지요. 그래요. 아주 오래전부터…. 의심스러운 데 도저히 알 수가 없었지요.”

알파와 베타가 함께 있는 사진을 집으면서 말이다. 그는 큭큭 웃었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류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뭐라고요?”
“중요한 건 이겁니다.”

그러면서 류씨는 알파와 베타의 사진을 모두 옆으로 밀어버리고 사진 한 장을 들어 보여주었다. 명품자식은 의아한 얼굴로 류씨를 쳐다보았다. 류씨는 이해하지 못하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집어든 것은 카페 레옹에서 블랙 커피를 마시는 장미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블랙커피를 좋아하더군요. 저도 블랙커피를 좋아합니다. 솔직히 말해 프림이나 설탕은 커피의 맛을 탁하게 만들지요. 라면 좋아하십니까? 저도 좋아합니다. 하지만 라면에 달걀이며 치즈를 푸는 것은 정말로 싫어하지요. 왜냐하면 국물이 탁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매운 고추나 약간의 파를 썰어 넣는 것은 좋아합니다. 어쩌면 그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블랙커피를 사랑하니까요.”
어처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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