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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슈퍼 좀비 히어로

2012.08.17 19:4508.17

슈퍼 좀비 히어로




1.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아니, 예언자였다.



사람들은 항상 그 두 가지를 오인하곤 했다. 심지어 어머니 자신도 점집을 차리고 신당을 꾸려 장군님이며 동자님, 선녀님 조각 몇몇을 수집하듯 모셔 놓고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전적 취향을 가진 이들을 배려한 마케팅 수단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무병巫病을 앓은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내림굿을 받은 적은 더더욱 없었다. 그냥, 누군가의 운명을 손바닥 보듯이 살펴볼 수 있었을 뿐이다.
낯모르는 사람들의 운명을 살피는 것은 또한 어머니의 운명이었다. 어머니는 운명이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연쇄되는 일들이기에 기어코 운명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름이 되면 비가 오고, 겨울이 되면 눈이 오는 것처럼, 어머니가 살피는 운명이란 항시 상식의 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상식의 궤를 벗어난 운명의 준동을 꿈꾸는 것은 하찮은 인간들의 욕심이었으나, 어머니는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제 와서 생각건대, 어쩌면 이 모든 말들은 어머니가 스스로의 안에 쌓아가던 다짐, 혹은 좌절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운명의 자연스러움은 평생토록 어머니를 좌절시킨 우주의 법칙이었다. 스스로의 미래를 궁금해 한 나머지 어머니의 신당에까지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다지 밝은 운명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행에 지친 사람이나 미래를 궁금해 하는 거지.” 신당을 찾아온 손님이 떠나갈 때면, 어머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잘 나가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점집에 오겠누?” 그 또한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니 사실 평상시의 어머니는 무당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카운슬러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들의 운명이란 흔히 생각하듯 알 수 없는 안개 속에 갇혀서 힘찬 가물치처럼 요동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아무리 대책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운명에 대해 어렴풋하나마 어떤 모습의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은 그것이 맞았다. “저는 평생 이따위로 살다 죽는 걸까요?” 그래, 그 짐작이 맞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보통 하염없는 눈물과 함께) 던져지는 그 질문에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대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대책 없이 선량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추한 좌절에 독한 말을 던지는 대신 그 여린 마음을 다독이고, 눈물을 닦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이었다. 별로 나아지지 않을 것이 뻔한 미래에 대해 책임감 있는 조언을 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그것보다 괴로운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아주 가끔씩, 정말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이상한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포함한 이 세상의 누구도 알아내지 못할 섭리 – 이를테면 누군가의 업보라던가 - 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또한 어머니를 좌절에서 구하진 못했다. 좋은 운명을 마주할 사람들이야 어머니의 예언을 접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겠지만, 비극적인 운명을 마주할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피할 방법을 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성심을 다 해 방법을 찾고, 어떻게든 그들을 비극에서 구하려고 애썼지만, 매번 좌절에 부닥치고 말았다.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능력을 기울여 그 누군가를 예정된 비극에서 구할 때마다, 운명의 칼날은 자연스럽게 그를 스쳐 지났다가 어느새 시계추처럼 다시 돌아와 지연된 심판을 수행하곤 했다. 어머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었기에, 어머니가 알고 있는 운명답지가 않았다. 어떤 방법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필연적인 억울함 후에는, 절절한 한(恨)이 거친 불꽃처럼 현현하기 마련이었다. 운명은 약자에게 엄하고 강자에게 너그러웠다. 이해할 수 없이 무자비하고 우주적인 불의가 거침없이 자행되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능력 있는 예언자만이 비로소 엿볼 수 있는 운명의 냉혹한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선량하고 나약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만난 순간, 아버지의 운명에서 그 잔인한 칼날을 읽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운명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극진히 사랑한 어머니의 운명이기도 했다. 결혼과 함께 어머니는 기어코 운명에 도전하겠노라고 다짐한 것이었다.
내가 자라나면서 접한 어머니의 모습은 거의 ‘전통적인’ 무당의 그것으로 기울어 있다. 어머니는 여느 무당처럼 신당을 정성껏 차리고, 칼과 방울을 들고 춤을 추면서 작두 위를 걷는 법을 배웠다. 나는 어머니가 창피했고 어머니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도전의 일부였음을, 나는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작은 신당에 모셔둔 갖가지 잡신들과 그들의 조잡한 신통력들이 운명에 도전하는 어머니에게는 나름의 큰 힘이 되었던 것이다.
무속의 신들을 연구한 것 이외에도, 아마 어머니는 도술을 연구하고, 밀교에도 심취했으며, 카발라와 연금술을 위시한 서양 쪽의 신비주의에도 깊게 발을 담근 것 같다. 십수 년의 세월을 들여 어머니가 수집한 각종 자료들의 깊이는 감히 내가 파악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곳까지 도달해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실패했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운명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다. 한밤중에 괴한의 칼날에 맞아 쓰러진 후, 병원 중환자실에서 힘겹게 숨을 이어가던 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떠났던 그 밤, 어머니는 집 안마당에 차려 놓은 작은 신당에 들어가 제단 위의 잡신들에게 경건히 무릎을 꿇고 치성을 드렸다. 밤이 새도록 절을 올린 어머니는 새벽이 밝아오자, 그 위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다. 불이 신당을 홀랑 태워버리자 어머니는 뒤이어 집에 불을 질렀고, 곧이어 안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튼 채 잠이 들었다. 그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모들의 품에 안겨 영안실에서 넋이 나가도록 울다가, 기절하듯 잠들어 있었다. 깨어난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어머니의 일터였던 신당과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각종 비술(秘術)의 자료들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당이
아니, 예언자가 되었다.
나는 내 능력에 대해 단 한 번도 어머니에게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마 어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운명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대화로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머니처럼, 어렸을 적부터 다른 사람들의 운명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최후 도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날 밤 세상을 떠나리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은 그 이후부터 내가 뭘 해야 하는 건지, 내가 갈 길은 무엇인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미래를 알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문제였다. 내 미래는 걷잡을 수 없는 비극과 혼란으로 뒤엉켜 있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내 나이 열다섯은 정확히 그 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결말을 뻔히 알고 있는 미래에 몸을 던져 오륙십년에 이르는 비극을 더 견뎌내야만 했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나는 아직 어렸다. 모든 것이 다 운명이니까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나 지루하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와 같은 길을 걸어왔을 어머니가 나보다 먼저 깨달은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나는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 이었다. 이미 나 자신의 선례가 그러했다. 애초의 운명대로라면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자라났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십오 년 동안이나 정해진 운명을 지연시켰고 그 결과 거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내 운명을 뒤틀어버릴 수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퍽이나 능력 있는 예언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으리라. 역사적인 통계를 구할 수야 없겠지만 아마도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고, 선례가 있더라도 몇 차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어머니를 존경한다. 어머니는 나의 훌륭한 선배이자 선구자이시다. 어머니가 있었기에 나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어머니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운명을 극복할 것이다.
어머니의 말을 반복해 보자면, 운명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운명적인’ 사건들은 이미 과학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 인간들은 일기예보를 내고, 한 해의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며, 인구의 증감을 파악하고 문화와 유행의 미묘한 변화를 예측한다. 가끔은 틀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맞아 떨어진다. 내가 읽어내는 인간들의 운명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언자들은 어디선가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 남들보다 조금 더 현명하고 멀리 볼 수 있는 자들일 뿐이다. 의외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미래는 단지 조금 오래된 과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운명과 언뜻 생각하기에 자연스럽지 못한 운명들, 예컨대 갑작스런 자연재해나, 비극적인 사고와 같은 것들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들의 연쇄를 통해 발생한다. 우리 아버지를 찌르고 밤거리로 도망친 강도가 갑자기 초능력을 발휘하거나 잡귀에 홀려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전체의 맥락이 아닌 개개의 사건만 놓고 살펴본다면,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뿐이다. 이걸 누군가의 능력으로 몇 번 막아서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번 운 좋게 피한다 할지라도, 운명의 칼날은 똑같은 자리에 또 다른 자연스러움이 되어 들이닥친다. 그렇고 그런 사고들을 매번 운 좋게 피하는 것은 운명의 필연성을 극복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다.
생각의 지평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질문이 필요했다. 무엇을 위해 운명을 극복하려 하는가? 많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정말 절실한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죽음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과연 아버지는 운명의 칼날을 피하지 못해 세상을 떠난 것일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얌전히 최후를 택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강도의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난 것이다. 운명이나 우주적 비극 따위, 복잡한 말은 걷어 내고 일단 그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했다. 운명이란 게 누군가의 힘을 통해 임의로 지연시키거나 회피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걸 더 이상 운명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세상이 정해진 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화를 내지 않는다. 아침이면 해가 뜬다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고,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운명이란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사람들이 이를 거부하고 화를 내며 운명을 피할 방법을 찾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들의 삶을 완결시킬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 돌봐야 할 이를 남겨두고 죽은 사람,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죽은 사람,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죽은 사람… 비극적 운명이란 이렇게 누군가의 삶을 아무런 동의 없이 급작스레 멈춰 세우는 것들을 말한다.
비극적인 운명을 극복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 필연적인 미완결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죽음은 어째서 비극인가? 아버지는 죄 없이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비극을 해소하려면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은, 그 강도를 잡아다가 똑같은 방법으로 가슴팍에 칼을 꽂아 넣어야만 한다. 이렇게 하면 아버지의 운명은 비극에서 깨끗한 복수극으로 마무리될 수 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아버지의 비극이 아버지의 손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찝찝했다. 남의 손에 의해 대리된 복수라니, 유사 이래 이 주제를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니컬한 감정들을 쏟아냈던가. 나는 그 강도의 펄펄 뛰는 심장을 가지고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펑펑 우는 착한 딸 따위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를 이 땅에 되살려,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마무리 짓고, 다시 안식을 취하게끔 해야 했다. 이것은 단순히 사적인 복수가 아니었다. 운명을 극복하고 비극에서 탈출하기 위한 인류의 위대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연구를 시작했다. 무덤에 들어간 아버지를 불러 일으켜 강도의 심장에 똑같이 칼을 꽂아 넣게 할 수 있는 비법. 바로 그것이 필요했다. 어머니가 오랜 세월에 걸쳐 신당에 쌓아 놓은 자료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와 같은 목적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시체를 일으켜 사적인 용도로 부려 먹으려는 노력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개중에는 성공했다는 기록도 꽤나 눈에 띄었다. 나는 죽은 자들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미 존재하는 사술(邪術)들을 가다듬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잠에서 깨어나 대지를 활보하는 시체들… 그리하여 끝내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는 시체들이었다.
문제는 실험 대상이었다. 말이야 쉽지만, 운명이 그렇게 심하게 뒤틀린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 설령 찾게 된다 하더라도 모종의 ‘시체’ 에 술수를 부릴 만큼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결국 최대한 예언의 촉을 펼치고 인과의 끈을 흔들 만큼 흔들어서 내가 원하는 기회를 직접 ‘만드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맘을 그렇게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적당한 대상이 찾아왔다. 멀지 않은 곳에 강렬하게 순환하는 폭력의 끈이 느껴지는 한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모 방송국에서 가정 문제 솔루션 프로그램을 촬영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주머니를 무작정 말렸다. 촬영은 중단되었다. 자연스럽게 나를 찾아온 담당PD에게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늘어  놓으며 미리 만들어 놓은 부적을 내밀었다. 그리고 남은 일은 얌전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부적은 이제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운명의 경로를 따라 내가 감지한 폭력의 근원을 향해 떠내려갈 터였다.
머지않아 인터넷이 시끄러워졌고 상황이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콧노래를 부르며 사태를 스케치한 기사들을 읽어 내려갔다. 내 힘으로 바꿔놓은 운명의 흐름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윽고 부적이 힘을 발휘하게 될 새벽에는 흥분한 나머지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의 신당에 불을 환하게 켜 놓고 나비 걸음으로 이곳 저곳을 서성거리며 갖은 잡신과 신장(神將)들에게 나름의 치성을 드렸다. 이제 억울한 죽음은 사라질 것이다. 안타까운 작별도 사라질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딛고 일어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그것’ 이 땅을 뚫고 나와, 다시 한 번 대지에 발을 디디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제단 깊이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죽음이란 비극을 극복하고 당당히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는 첫 번째 신인류가 탄생했다.
그것은 진정한 영웅의 탄생이었다.






2.

부적이 더 필요했다. 아니, 그보다는 부적이 좀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게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일단은 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부적을 그려주기로 했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시체 근처에도 갈 일이 생기지 않을 사람들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무차별 살포보다 좋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머니의 명성이 동네에 자자했던 덕에 어머니의 뒤를 이은 나를 찾아오는 손님도 꽤 되는 편이었다. 나는 닥치는 대로 부적을 그렸다. 부적을 지닌 사람 중 몇몇은 자잘한 교통사고 현장에 가게 되거나, 병원 영안실에 가게 되거나, 혹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하수구나 야산에 매몰된 시체 근방을 지나게 되는 만큼, 나는 아주 가끔씩 또 다른 시체가 땅을 뚫고 되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에 비례하여 그들을 목격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들에게 불의의 습격을 받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나는 다시금 운명의 끈을 조정하여 사태를 최대한 조용하게 유지하는 데에 신경을 기울였다. 비록 언젠가는 전국적인 화젯거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저 한여름의 헛것이나 꿈속의 환영처럼 되살아난 시체들의 존재를 모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체들에게 불필요한 습격을 받아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항상 골칫거리였다. 첫 번째 실험작이 깨어날 때에도 같은 일이 있었지만, 보통의 경우 죽음에서 돌아온 시체들은 무차별적인 공격성을 보이기 때문에 그 앞을 가로막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들은 엄연히 ‘시체’ 다. 시체에겐 생명이 없다. 따라서 무슨 짓을 하더라도 멈춰 세울 수가 없다. 불태워서 허공으로 날리면 연기가 되어 날아다닐 것이고 갈아서 강물에 뿌리면 파도가 되어 그 누군가를 덮칠 것이다. 그럼 어떡해야 하냐고? 그냥 모른 척 하면 된다. 모른 척 하면, 이들은 자신의 삶을 완결 지을 어떤 폭력 – 혹은 이에 준하는 어떤 일 - 을 행사한 뒤 얌전히 죽음으로 되돌아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일단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마주한 사람들에게 그렇게나 신사적인 행위를 요청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내가 일으킨 시체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처리할 방도를 찾으려 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도는… 이들 또한 일으켜 세워서 못다 푼 한을 풀게끔 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 방법을 섣불리 실행에 옮겼다가는 세상이 온통 시체더미가 되어버릴 우려가 있었다. 그보다는 시체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성을 약화시키고,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게끔 적절히 조절하는 편이 현명해 보였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들이 온전한 제정신을 갖게 될 경우, 스스로를 저주하며 또 다른 좌절에 빠지게 될 것이고, 아주 이성을 잃게 될 경우,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 되어 무수한 희생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적절하고 깔끔한 지점’ 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사실 불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한 가지 방책을 찾아냈다. 이들의 통제권을 단일화하여 누군가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살육을 막아내고, 운명의 흐름을 잘 읽을 줄 알며, 강인한 정의감을 가진 그 누군가에게.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일단 그 사람은 나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나의 지혜나 정의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가진 예언자로서의 능력은 불가피한 소동의 여파를 조절하고 무고한 피해자를 최소화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일단 모든 시체들의 통제권을 손에 쥐게 되자, 나는 하루 종일 신당에 앉은 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신당 문을 닫고 시체들을 통제하는 데에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되살아난 시체들의 욕망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그것보다 수천 배는 더 강렬했다. 게다가 그 욕망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치인이나 대기업 회장처럼 잘 알려진 사람들을 무작정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고, 헤어진 애인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고 싶어 하는 이들, 슈퍼스타가 되거나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꿈인 이들도 있었다. 예언의 촉을 아무리 뻗쳐 봐도, 내가 아는 사술들을 모두 다 동원하더라도 이런 욕망들을 모두 다 이뤄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려 이성을 잃은 자들은 이 허다하고 까마득한 불가능의 벽 앞에서도 그저 신음소리를 내며 버둥거릴 뿐, 조금도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이 버려진 자리에는 운명의 자연스러움을 거부하는 인간의 욕망만이 남았다.
주인들에게 버려진 절망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았다. 머지않아 나는 내가, 좁은 신당에 쪼그려 앉은 채 낯선 사람들의 운명을 들여다보며 세상의 견고함에 끝없이 절망하던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이상한 직감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직감과는 관계없이, 일단 뿌려진 부적들은 세상을 돌고 또 돌았다. 그에 비례하여 내 통제 하에 들어오는 시체들도 점점 늘어만 갔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하지만 결단을 내리기에 앞서 해야 할 일도 남아 있었다. 다름 아닌,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꽂아 넣었던 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을 재생한 후,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자를 쫓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 쉬운 일을 여태까지 하지 않고 있던 이유도 있었다. 과연 내가 그 자의 신원을 온전히 파악한 이후에도 사적인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는지, 도통 자신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통제 하에 있는 시체들을 모조리 그 자에게 보내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내장을 몸 밖으로 끌어내어 씹어 먹게 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그 황홀한 장면에 취해 기어코 이성의 끈을 놓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럼 이 땅에는 불멸의 시체 수십 구를 수족처럼 부리는 마녀가 탄생하게 된다…
이제 나는 어머니가 예언자가 아닌 무당으로 살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운명이 변경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예언자는 인과의 흐름을 읽고 그 안에 자그마한 불씨를 던져 무시무시한 파국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파국 이외에는 어떤 것도 만들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절망시켰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능력이 그 어떤 방법으로도 좋은 결말을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폭탄이었다. 안전핀이 달랑거리는 폭탄이었다. 끝없이 정신을 차리고, 분노에 휩쓸려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너무도 쉽게 폭발해 버린다. 어머니의 자살은 어쩌면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폭발하려는 자신을 봉인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처럼 손쉬운 자폭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내 통제 안에 들어온 시체가 오십구를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들은 야산에서, 강바닥에서, 하수구에서 기어 나와 숨이 넘어가는 신음소리를 내며 내 손아귀를 벗어나려 했다. 내가 이들의 목끈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 괴물들은 멈출 수 없는 총알이 되어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날아가게 될 것이다. 그게 옳은 일일까?
그래, 나는 일찍이 운명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 맺힌 자들을 죽음으로부터 다시 불러왔다. 이제 와서 이들의 목끈을 틀어쥔 채 나 혼자 절망으로 신음하는 것은 애초에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이들을 놓아줘야 한다. 하지만 놓아주었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그럼 어떡해야 하지?
매 시간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죽은 자들의 한 맺힌 목소리가 내 이성을 쉴 새 없이 깎아내렸다. 예언의 촉을 펼쳐 세상의 운명을 읽어 볼 필요도 없었다. 이제 선택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세상이 멸망하던지, 운명이 뒤집히던지. 이것은 운명을 적수로 택한 대결의 자연스러운 종착지였다. 그 끝에는 내가 있었다. 운명을 수호하게 될 운명을 간직한 자들, 예언자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가 느껴졌다. 어째서?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 가부좌를 튼 채 재가 된 사람이 십수년이 지나버린 후에도 세상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신당을 헤집고 다니다가 한 구석에 수북이 쌓아놓은 부적더미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췄다.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전율이 스며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어째서 처음에는 몰랐던 걸까? 대답은 필요 없다. 애초부터 그럴 운명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 누구보다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뒤를 이을 예언자가 존재할거란 사실도 알았을 테고, 그 예언자가 어머니가 모아 놓은 비술 자료를 토대로 세상의 운명에 도전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쯤 운명에 도전해 보는 것이야말로 모든 예언자들이 겪곤 하는 열병과도 같은 것이니까. 어머니가 왜 그걸 몰랐겠는가? 왜 자신의 젊음과 사랑을 오롯이 바친 비술 자료를 그렇게도 허술하게 방치해 뒀겠는가? 자신이 죽을 때 함께 불살라버리지 않고?
이제야 알았다. 내가 세상에 풀어 놓은 죽은 자들은 시체 오십구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이 연구하고 몸을 바친 비술 속에 스며들어가, 운명의 혈관에 바이러스처럼 독소를 주입하고 있는, 절망한 예언자의 영혼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단순하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평생토록 운명을 저주하고 불가해한 운명 앞에 좌절했던 사람이다. 정지선 앞에서 자신을 멈춰 세우고 불살라버릴 자존감과, 불가능의 벽 앞에서 절망할 이성을 잃은 예언자의 영혼은 과연 세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어머니는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3.
머지않아, 더 이상 운명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보통의 경우 운명의 흐름에는 일정한 경향이 있어서, 잠시만 정신을 집중하면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 이에 대비할 수 있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강물에 갑작스레 바윗덩이가 쏟아지고, 모래톱이 생기고, 뜬금없는 토목공사가 시행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분명 누군가의 독한 의지가 강하게 개입된 장난질이었다. 그리고 운명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장난질을 칠 수 있는 존재는 예언자 밖에 없었다.
결국 예측하지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카메라에 되살아난 시체가 노출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그 방법 역시 퍽이나 요란했다. 꽤 유명한 아이돌 가수의 밴이 이동 도중에 사람을 치었는데, 반대 차선을 향해 10미터는 족히 튕겨져 나간 피해자는 오고 가는 차량들에게 핀볼 처럼 치여 단숨에 죽사발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몰골 그대로 바닥을 딛고 일어나,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있던 매니저를 향해 걸어왔다고 한다.
일이 얼마나 커졌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데다가 이미 목격자도 워낙 많았다. 가수나 매니저 모두 섣불리 뺑소니를 칠 마음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허연 다리뼈를 아스팔트 바닥에 긁으며, 고개를 270도가량 꺾고, 터진 물풍선 마냥 여기저기서 피를 뿜어대고 있는 희생자의 모습은 어떻게 봐도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매니저는 기겁해서 차 안으로 도망쳤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사이 시체는 밴으로 다가와 선텐된 차창을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마침 차 안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 중이었던 6미리 카메라 한 대와 VJ가 있었는데, 피 곤죽이 된 시체가 야밤에 차창을 두들기는 극한 상황에서도 VJ는 고도의 직업정신을 발휘해 이 장면을 그대로, 생생하게 메모리에 담고야 말았다.
밴은 꽁무니가 빠져라, 먼 곳으로 도망갔다. 시체는 차가 출발한 직후에야 내 통제 하에 들어왔다. 나는 우선 시체를 어둠 속에 숨긴 후 할 수 있는 힘을 다 해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뒤였다. 사람들은 워낙 미스터리를 좋아했다. 게다가 이건 인기스타가 개입된 미스터리였다. 시체가 사라진 뺑소니, 목격자가 즐비한 ‘좀비 사건’ 이라니. 이 일을 수습하느니 부채질로 태풍을 일으키는 편이 좀 더 쉬웠을 것이다.
때를 같이 해서 가까스로 묻어두었던 ‘좀비 목격담’ 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 있었지만 고작 한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을 뿐이라, 통제는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좀비가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 는 이야기들이 곳곳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용기를 얻은 가수의 소속사는 ‘좀비’ 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테이프를 경찰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비록 살아 움직이긴 했지만 이미 살아있는 사람으로 볼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공식적인 주장이었고, 그날 밤 이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주장이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같은 소리를 하자 경찰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운명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몸을 뒤채는 것이 느껴졌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유가족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멀쩡한 딸을 차로 치여 죽인 걸로 모자라 그 딸이 좀비가 되어 세상을 돌아다닌다고 주장하는 미친 작자들에게 퍼부을 욕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희생자의 어머니를 움직였고 기삿거리에 목이 말라 있던 스포츠 신문의 기자들을 움직였다. 운명의 강은 여전히 거세게 들끓고 있었지만 아직 나에겐 원하는 길을 통제할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다.
효과가 있었다. 어머니의 절절한 눈물이 기사화되자 사태를 오컬트 테러로 몰고 가던 사람들은 일단 목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아마 길게 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단 이 교통사고 말고도 수많은 좀비 목격담들이 세상을 떠돌고 있었고, 아마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사이에도 새롭게 생겨나고 있을 게 뻔했다. 인간들의 집단 무의식, 인식의 지평 밑바닥을 거친 들불처럼 훑고 있는 독소(毒素)를 근본적으로 추려내야 했다. 아마도 유일한 방법은 내가 세상에 뿌려놓은 부적들을 모두 회수하여 불사르는 것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한 장의 부적이 불태워질 때까지, 내가 할 일은 쉴 새 없이 버둥거리고 울부짖는 시체무리를 제어하는 한 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최대한 감추는 것이었다.
그건 불가능했다.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항상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나는 그만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들의 의지를 강하게 억누르는 한편 최대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곳에 숨겨두는 것은 더욱 복잡한 요령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 통제 안에 들어오는 시체들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속도였다. 마치 자가 증식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세세한 사연을 살펴보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거의 매 시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식은땀을 흘리며 제단 앞에 쓰러져 나도 모르게 펑펑 울고 있을 때면, 허공에서 어머니의 환영이 내려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네가 어쩔 수 없는 일이란다.” 어머니는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운명이란 게 다 그런 거야.”
시체들의 이상증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분명히, 시체들은 부적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나고 있었다. 병원 영안실에서 갑자기 몸을 일으키기도 했고 오래 된 전쟁터에 남아있는 유골 몇 개만 힘겹게 움직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애초에 부적이 유통된 적도 없는 바다건너, 지구 반대편에서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어째서? 나는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말로 거침없는 귀곡성을 내뱉는 아프리카의 여자 시체를 진정시키다가 문득 깨닫고 말았다.
이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는 건 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운명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자연스럽다는 건 누가 판단하지? 사람들이 판단한다. 사람마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물론 다를 수 있겠지만, 세상에는 적어도 그 최소한의 기준선이 존재한다. 그것이 내가 읽어내는 운명의 강이고 현실의 지평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고, 시체가 제 발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세상. 그리고 사람들은 운명을 바꿀 수 있다. 한 세대에는 자연스럽지 않았던 것이 다음 세대에는 몹시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질적으로는 자동차, 비행기와 같은 발명품의 등장이 될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는 노예해방과 같은 사건들이 있었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운명의 강을 뒤흔드는 변혁은 한결 같이 한 세대의 역량이 총동원된 발명품이었고, 굉장히 많은 경우 인간 진보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대 사람들은 드디어 ‘좀비’ 를 발명해 낸 것이다.
아냐. 자연스럽지 못하다. 너무나도 빠른 변화다. 한 해가 흐른 것도 아니고 한 계절이 흐른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간 퍼진 좀비 목격담이 인식의 지평을 뒤흔들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로 퍼져 나간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 파고들었지만 결코 자연스럽지 못한 이 변화의 흑막에는 틀림없이 누군가의 장난질이 관여되어 있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어머니의 굳건한 의지였다. 더 늦기 전에 부적을 모두 회수할 필요가 있었다. 정확한 결말을 읽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것만이 세상을 제 모습으로 돌리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다행히 늘어나는 시체들은 모두 내 통제 하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능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머니의 환영에 시달리지 않을 누군가가. 나는 최대한 시간을 버는 한편,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운명이 뒤틀어지기 이전부터 퇴마사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안간힘을 다해 뻗친 예언의 촉에 걸려들었다. 모르긴 모르건대, 아마 이 사태에 대해서도 뭔가 범상치 않다는 인상 정도는 받고 있을 것 같았다. 마지막 주의를 기울여 이들 중 한 명을 끌어들이는 운명의 길을 텄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머니의 의지는 점점 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고 나는 전 세계에서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는 시체들을 억누르느라 힘의 대부분을 소모하고 있었다. 달포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남자 한 명이 제대로 된 길을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내 신당 문을 열고, 얇은 미닫이문 뒤에 서서 제단 위에 그림자를 비췄을 때, 나는 거의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단 하루만 지체되더라도, 더 이상 버텨 낼 자신이 없었다.
이윽고 그가 문을 열었다. 나는 제단 앞에 엎드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가 한참 만에 고개를 들었다. 늦은 오후의 태양이 남자 뒤편에 강한 후광을 뿌리고 있었다. 남자의 그림자에 파묻혀 버린 나는 그의 얼굴도,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내 상태에 놀란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대답했다.

- 그… 괜찮으신 건가요?
- 괜찮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실 나는 당신의 운명을 읽어보려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어째서 이곳에 왔는지 전혀 알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내게 그만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냥 당신을 믿겠습니다. 당신을 믿고 내 실패를 고백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모든 게 운명이란 말도 드릴 수 없습니다. 운명으로 장난을 쳐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제는 그런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운명은 이미 망가졌습니다. 세상은 멸망하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세상을 지켜야 합니다…
- 무슨 말씀이신지…
- 모르는 척 하고 싶으시겠지만,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퇴마사로 오랫동안 활동하셨지요? 당신을 여기로 부를 때는 저는 제정신이었습니다. 그걸 부인하실 수는 없을 겁니다.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의 속을 읽어내지 못했다. 철이 든 이후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상대방이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두 파악한 후에야 대화에 임해 왔으니까.
이제는 반대 입장에 서야 할 때였다. 나에게는 그의 속을 읽어낼 시간도 여유도 없지만, 그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나의 모든 고민을 알아야만 한다. 세상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걸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누가 잘못한 것인지. 되도록 올바른 죄의식과 책임감을 세상에 남기고 싶었다. 나는 간절함을 담아 입을 열었다.

- 죽은 자들이 세상에 들끓고 있습니다. 절대 절망하지 않을 욕망을 가지고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자들입니다. 저는 예고 없는 죽음을 가엾어 했고, 운명을 저주했으며, 그래서 운명을 뛰어넘은 신인류를 만들고자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운명은 뒤틀리고 세계는 멸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잘못입니다.
- 설마 좀비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 네. 좀비. 좀비라고 부르면 됩니다. 제가 풀어놓은 악마들이고 아직까지는 제 의지 안에 머물고 있으나, 머지않아 열린 세상으로 달려 나가고 말 것입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파국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제 능력 밖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불렀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그리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내 앞에 무릎을 숙이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 좀비들을, 막을 방법이 있다는 겁니까?
-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비록 운명의 강이 크게 요동쳤지만, 제가 아는 운명은 그렇게 녹록한 힘이 아닙니다. 저쪽… 제단 오른편을 찾아보세요. 제가 만들어 놓은 부적이 보일 겁니다. 그래요. 그겁니다. 세상에 그것과 똑같이 생긴 부적이 81개 있습니다. 정확히 81개입니다. 제가 닥치는 대로 뿌려놓은 그 부적이 세상을 이렇게 뒤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게 힘이 더 있다면 정확한 위치까지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만,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 저는 너무 많은 힘을…
- 알겠습니다. 말씀은 그만 하세요.

나는 터져버릴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쥐고, 제단 위의 부적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는 그에게로 물끄러미 시선을 돌렸다. 그는 제단 너머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살에 날카로운 눈매에 딱딱한 턱선을 빛내고 있었다. 얼핏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역시나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안도감에 잠깐 여유가 생긴 나는 그의 과거를 잠시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유능한 퇴마사였다. 게다가 어설픈 잡귀나 지박령 따위나 잡다가 젊음을 허송세월한 사람도 아니었다. 제법 무서운 마귀나 그들을 부리는 사술사들도 상대한 경험이 풍부한 듯 했고, 무엇보다 운명의 흐름과 그 뒤틀림의 법칙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안도감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나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 어? 이봐요!

그는 부적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나에게 달려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든 시체군단의 의지를 억눌러 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품에 나를 안았다가, 바닥에 가지런히 눕힌 그는 곧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스르르 감기는 시야 너머로 나는 비로소 그의 맨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직접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어디선가 운명을 읽다가 스쳐 지나간 얼굴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니고, 내가 딱히 그의 얼굴만 이렇게나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건 여러모로 이상했다. 그런 식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얼굴이라곤 오로지 한 사람뿐이었다.
아버지의 살해범.

-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이젠 편히 쉬시죠.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는 내 눈을 감기려 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눈을 부릅뜨고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눈동자 속에 담았다. 그가 맞았다. 그 자식이 맞았다. 차가운 밤길에서 아버지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던 그 자식. 경찰도 자취를 모르고 목격자도 나타나지 않아, 공개수배 전단을 그렇게 뿌려도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던 그 자식. 나라는 예언자를 폭발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뇌관…
왜 하필 이런 순간에? 알 수가 없었다. 그보다 어째서 퇴마사가 강도질을 한 걸까? 아냐. 운명의 흐름에 정통한 저 퇴마사의 눈에, 요망한 술수를 부려 십오 년째 죽음을 피하고 있는 아버지는 사람이 아니라 괴물처럼 보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어머니는 운명의 차가운 손길이 아니라 사람의 하찮은 정의감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무서워졌고, 폭발하기 직전에 불길 속에 자신을 봉인했던 것이다…
그는 눈을 감지 않는 나를 이상스레 여긴 모양이다. 한참동안 측은한 얼굴로 날 바라보더니 하지 못한 말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물론 많다. 맘 같아선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을 떠돌고 있는 죽은 자들의 저주를 모두 뭉쳐서 그에게 내던지고 싶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세상은 끝내 회생을 거부했다. 이렇게나 분명하게! 이렇게 간절한 순간에, 하필이면 저 자식을 내 앞으로 보냄으로써!

“불행에 지친 사람이나 미래를 궁금해 하는 거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정의를 구현할 시간이었다. 세상의 운명을 대가로 한 정의, 그토록 오래도록 지연되어 왔던 복수를.
나는 손가락 끝을 움직여 아직 내 의지 안에 머무르고 있는 모든 시체들에게 말했다. 와라. 바로 이 곳, 내 머리맡, 내 마지막 모습을 보고 있는 이 자에게. 이 자의 사지를 뜯어내고 창자를 뽑아 날카로운 앞니와 단단한 어금니로 짓이겨라. 그리하여 기어코 도래한 정의의 현현을 노래하라! 너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너희는 좌절하지 않는 욕망의 화신이다. 불가능을 모르는 불의 전차다. 죽음도 너희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세상은 너희 앞에 무릎 꿇을 것이다. 초라하게 사그라든 너의 삶에 웅대한 마침표를 찍어라!
너희는 영웅이다!






+ 이 단편은 아래 <애들한테 무슨 죄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연작이라 할 수도 있고... 헐거운 스핀오프 정도로 계속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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