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초단편 _ 공범 (Accomplice)

2012.07.26 14:5307.26

공 범 (Accomplice)



김대리가 해고 되었다. 2년차 직원이 해고되는 건 회사에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회사 상황이 안좋더라도 2년차 이하는 대게 지방발령으로 돌리거나 해외연수를 보내곤 했었다. 회사 업무와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한 회사원이 스스로 사직서를 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만약 버틸 생각만 있었다면 내보내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끝내 김대리는 해고 되었다.
회사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사장은 전체 회식을 열었다. 사장은 각 부서의 자리를 돌아다니며 격려의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 동안은 인원의 보강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자네들이 눈치껏 힘을 써주게."

직원들은 술에 취하지 못했다. 회식자리가 끝나고 모두 삼삼오오 집으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사장의 말을 곰씹어 보기도하고 누군가는 잠에 든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겁에 질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사우나에 들러서
알코올의 기운을 모두 뺀 후 청심환 한 알을 사서 회사로 출근 하기도 했다.

"어이- 인턴. 저 자리 좀 치우게. 언제까지 저대로 놔둘건가."

최팀장은 턱 끝으로 김대리의 책상을 가리키며 얘기했다. 김대리의 책상은 이미 깨끗하게 비어있는 상태였다. 굳이 무언가 있다면 아침에 요쿠르트 아주머니가 남기고 간 발효식품 뿐이었다. 신인턴은 속이 쓰려옴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발효식품을 손에 쥐었지만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 아무도 신인턴과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없었다. 떠난 길에 뒷처리 조차 깔끔하게 하지 못한 김대리를 원망하며 신인턴은 발효식품을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더이상 발효식품을 배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쪽지 하나를 써서 올려놓았다.

"인턴 - 평생 책상만 바라볼 건가? 사장님 말씀 들었잖아. 가뜩이나 사람이 없는데 남은 우리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지."

최팀장의 호통에 혼이 나간 신인턴은 바쁘게 몸을 움직였다. 몸을 움직였을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쓰레기를 비우거나 서류를 가지런히 모아 놓는 일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다음 날의 해가 떴다. 김대리의 책상 위에는 새로운 발효식품이 올려져 있었다. 신인턴은 또다시 속이 쓰라리기 시작했다. 역시 그 날도 신인턴은 최팀장에게 불려갔다.

심지어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발효식품은 배달되었다. 신인턴은 누구보다 빠르게 (최소한 최팀장보다 빠르게) 출근하였다. 이제는 책상 위에 올려진 발효식품을 서랍에 넣어두는 일이 그의 아침 업무가 되어버렸다. 쪽지도 남겨보고 경비아저씨에게 부탁하여 말을 전해보려고도 했지만 어김없이 그 다음 날에도 발효식품은 배달되었다.

상부의 지시로 사원 평가가 매 달마다 이뤄지기 시작했다. 상반기와 후반기, 두번에 걸치던 사원 평가가 열두번으로 늘어난 것이다. 휴가라도 가는 달이면 그 사원의 업무 평가란은 빌 수밖에 없었다. 더운 여름이 되었지만 휴가를 내는 직원은 없었다. 신인턴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위에 지칠 때면 신인턴은 김대리의 발효식품을 몰래 마시곤 했다. 어차피 신경 쓰는 사람도 없었을 테지만 그의 행동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 역시 장에 좋은 식품이라 그런지 신인턴의 쓰리던 속이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참을 수 있는 날이면 최대한 참아보았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김대리의 책상 위에는 발효식품이 아닌 석 달치의 영수증이 놓여있었다. 신인턴은 그 영수증을 만질 수 없었다. 갑자기 겁이 나고 다시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하나 둘 씩 출근을 하였고, 오며가며 김대리의 책상의 영수증을 확인하였다. 심지어 최팀장도 영수증을 보았지만 왠일인지 특별히 신인턴에게 그것에 대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마치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인 것 처럼 영수증은 내내 그 책상 위에 올려져있었다.

영수증은 며칠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누군가 천원 한 장을 옆에 올려놓은 것이다. 모두가 그 변화를 눈치 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진 않았다. 천원 한 장이 두 장이 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침내 영수증의 액수가 맞춰진 금액이 책상 위에 올려지자 신인턴은 그 돈을 영수증과 함께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고 퇴근하였다.
그 다음 날부터 발효식품은 배달되지 않았다.



+

어느 덧 2년차가 된 신인턴에게도 후임이 생겼다. 더불어 그에게도 드디어 실제 회사의 일이 주어졌다. 컴퓨터 앞에 앉아 서류를 작성하고 선배와 함께 거래처를 다니는 생황 속에서 작은 안심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쓴 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은 더욱 악화 되었고 결국 최팀장이 해고되었다. 사장은 똑같은 회식을 열고 여전한 격려를 직원들에게 전했다. 다음 날 신인턴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회사에 출근하였다. 최팀장의 책상은 깨끗하게 비어있었고 그 위에는 발효식품 하나만이 놓여있었다. 직원들은 이른 시간부터 차례대로 출근을 했지만 정시가 되어서야 후임이 나타났다. 철없는 후임을 한껏 나무랬지만 후임은 자신이 왜 혼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할 말이 없어진 신인턴은 후임을 시켜서 최팀장의 책상을 정리하게 하였다. 후임이 최팀장 책상 앞에서 난처해함을 느껴졌지만 신인턴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때지 않았다.
다만 신인턴은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최팀장님이 전부터 요쿠르트를 주문하셨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최팀장이 발효식품을 마시는 건 몇 번 목격했지만 그것이 그의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누구에게도 그에 대해 물어보진 못했다. 다만 '이번 만은 손대지 않아야지' 다짐을 할 뿐이었다.



...

부족합니다만 용기를 내어 글을 써봅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959 단편 Kyrie 뻐꾸기 2012.10.22 0
1958 단편 도시아이 사이클론 2012.10.14 0
1957 단편 아젠트 노 새 2012.10.14 0
1956 단편 코스모스 CB진우 2012.10.12 0
1955 단편 헬로, 소돔 라티 2012.09.20 0
1954 단편 가객(歌客) 숨쉬는 돌 2012.09.17 0
1953 단편 소년 징이 2012.09.15 0
1952 단편 마지막 점프 숨쉬는 돌 2012.09.17 0
1951 단편 우주 시대의 고찰 야경꾼흑아 2012.09.09 0
1950 단편 이어지고 들러붙다 나폴마틸다 2012.09.10 0
1949 단편 여름의 최후 이상혁 2012.09.12 0
1948 단편 세계의 끝 JH 2012.09.07 0
1947 단편 신데렐라 컴플렉스에 대하여 summer 2012.08.22 0
1946 단편 성장 소설 summer 2012.08.25 0
1945 단편 갈매움과 돗뫼 먼지비 2012.09.04 0
1944 단편 <b>거울의 다섯 번째 소재별 단편선에 실릴 작품을 모집합니다</b> mirror_b 2011.12.22 0
1943 단편 슈퍼 좀비 히어로 빈군 2012.08.17 0
1942 단편 로부전 勞婦傳 룽게 2012.08.16 0
1941 단편 음모론 오파랑 2012.08.15 0
1940 단편 다음은 내 차례인가 오파랑 2012.08.15 0
Prev 1 ... 8 9 10 11 12 13 14 15 16 17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