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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서글픔

2004.06.14 22:1506.14


  으득.

귀까지 울리는 둔탁한 소리에 잠시 숨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돌솥에 숟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입안이 버적거렸다. 나는 상 구석에 놓여 있던 휴지를 몇 장 뽑아 입안에 있던 것을 조심스럽게 뱉어냈다. 얼굴을 찌푸리자 그제서야 그가 이쪽을 봤다.

“뭐야?”

“굴 껍질.”

그는 그럴 수도 있다는 투로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숟가락을 놀렸다. 애초에 굴 돌솥밥을 먹으러 오자고 한 것은 그였다. 그는 어렸을 때 바다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유난스럽게 해물을 좋아했다. 나도 해물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므로 흔쾌히 온 것이다.

굴 돌솥밥은 영양밥 같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굴 외의 내용물은 콩나물이 많은 것이 달걀을 뺀 비빔밥 같았다. 잘잘한 굴이 잔뜩 얹힌 뜨거운 밥을 그릇에 퍼내고 돌솥에 물을 부어 나무뚜껑을 덮었다. 그릇에 담긴 밥에 간장 양념을 넣고 비벼먹는 맛은 나쁘지 않았다. 그는 정말 맛이 있다는 듯이 열심히 밥을 먹다가 뚜껑을 덮어뒀던 돌솥이 부글부글 칙칙거리며 물이 끓어 넘쳐 들썩대자 나를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어보였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입 안에서 굴 껍데기를 세 번째로 골라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기분이 좀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불평을 하는 대신 숟가락을 들었다. 그는 정말로 맛있게 먹고 있었다. 샘이 날 정도로.




다음 날 아침, 그는 모닝빵에 우유를 식탁에 차려놓고 먹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부벅부벅 긁으며 그의 식탁에 합류했다. 그가 먼저 좋은 식성으로 썩썩 자기 몫의 빵을 해치우고 일어났다.

“먼저 나간다.”

“응.”

나는 그를 보내고 식탁으로 가 우유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축축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었다. 우유와 빵을 들고 텔레비전 앞으로 가 야금야금 먹으며 아침 뉴스를 보는데 막 세 번째 빵을 입에 넣었을 때, 이제까지 빵을 먹으면서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기묘한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가락을 입에 넣어 그것을 끄집어냈다. 손가락 위에 얹혀 나온 것은 달걀껍질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내가 달걀껍질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자 그가 웃었다.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도 나도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말자, 그 제과점에서 빵을 사먹지 말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 그의 강력한 주장으로 우리는 다시 굴 돌솥밥을 먹었던 식당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식당에 오자는 것에 대해 별로 반론을 하지 않았다. 굴 껍데기를 빼면 가격대 성능비도 괜찮았고 김치 맛도 달지 않은 것이 좋았다. 여기 칼국수가 그렇게 맛있다고 눈을 반짝이던 그에게 초를 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우리는 김치전과 칼국수를 시켰다. 그는 굴 칼국수가 메뉴에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먹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백배 양보해 바지락 칼국수로 합의를 보았다.

김치전은 생각보다 컸다. 넓은 접시에 얹힌 전은 한눈에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솔직한 감상은 김치전이라기보다는 색만 빨간 파전이었지만 고추의 매큼한 맛과 아낌없이 들어간 홍합이 미각을 돋궜다. 그런데 문제는 홍합이었다.

“이건 분명히 마가 낀 거야.”

나는 내 입에서 나온 까만 홍합껍데기 조각을 보고 중얼거렸다.

“넌 진짜 아무 것도 안나왔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유난스럽게 음식을 열심히 씹어대는 거 아냐? 나야 별로 안 씹고 꿀떡꿀떡 넘기니까.”

“삼키는 게 더 나빠. 열심히 씹어 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세 번이나 당했으면 더는 안 그러겠지. 칼국수는 괜찮을 거야.”

그가 위로하는 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김치전을 먹어치운 뒤 칼국수를 기다렸다. 곧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칼국수가 상 위에 올라왔다. 푸짐한 그릇에 하나로 담겨 개인 접시에 떠먹게 되어있는 칼국수에는 바지락이 많았지만 칼국수의 조개껍질은 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가 떠준 칼국수를 입안에 넣었다. 맛있었다. 뭔가가 더 씹히지도 않았다.

“괜찮지?”

“응.”

나는 안도하며 젓가락을 놀려 칼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칼국수를 다 먹을 때까지 나는 조개껍질 같은 건 하나도 씹지 않았다.

오득, 오득, 오득.

대신 칼국수 속의 바지락을 씹을 때마다 모래가 버적댔다. 나는 맛있게 칼국수를 먹는 그를 보며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조개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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