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배심원

2021.06.06 14:1806.06

 

안녕하세요. 지환 씨께서는 사건번호 2068고합의 배심원으로 선정되셨습니다. 해당 날짜까지 법원으로 오셔서 재판에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런 사유 없이 참석하지 않으시면 소정의 벌금이 부과되니 참여가 힘드신 경우 사전에 해당 메일로 사유와 증빙서류를 첨부하여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아침부터 귀찮게 이건 뭐야?’

아침에 눈을 뜬 지환은 컴퓨터가 읽어주는 메일을 듣고 있었다. 배심원 참석 요구 메일이었다. 그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채 베개에 얼굴을 파묻으며 다시 잠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잠은 야속하게도 한번 떠난 몸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신의 단잠을 방해한 메일을 쳐다보았다.

젠장! 도대체 난 이걸 왜 신청한 걸까?’

지환은 눈을 감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았다. 배심원 신청은 본인만 할 수 있기에 만약 신청했더라면 기억에 그 흔적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깜깜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메일 적혀있는 날짜를 보았다. ‘혹시나 휴가와 겹치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을 품었지만, 날짜는 정확히 휴가 직후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동의 버튼을 누르고는 회사로 메일을 보낼 준비를 했다.

“Ubi, 파트너 변호사한테 메일 보낼 거니까 내가 부르는 데로 보내줘. 물론 그대로 보내지 말고 적절하게 양식에 맞춰서 바꿔서 보내.

알았어. 지금부터 녹음 시작할게

그렇지만 Ubi는 자신이 내뱉은 말과 다르게 곧바로 녹음을 시작하지 않았다. 스피커에서는 Ubi의 목소리로 평소와 다른 말투의 문장이 흘러나왔다.

녹음된 내용은 추후 수정을 걸쳐 메일로 작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내용 등이 달라질 수 있으니 유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이후 누락 혹은 잘못 작성된 메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어차피 알아서 잘 바꿀 텐데 저런 건 왜 말하는 거야?‘

지환은 Ubi의 대답을 들으며 귀찮음을 느꼈다. Ubi는 가정마다 하나씩 배치되는 AI였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소유주의 뇌를 바탕으로 만든 AI라는 점이었다. 일종의 또 다른 자신인 셈이었다. 덕분에 Ubi는 여타 다른 AI와 달리 소유주가 말하지 않아도 그 혹은 그녀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런 Ubi가 여태까지 수정했던 메일은 실제 지환이 수정한 메일과 큰 차이가 없었기에 지환은 Ubi 대답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그는 Ubi의 안내가 끝나고 녹음 시작을 알리는 버저음이 울리기 무섭게 메일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이렇게 써 줘. 파트너 변호사님, 제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신청했는지 모르겠는데 배심원 신청을 했습니다. 덕분에 휴가가 끝나고 며칠간 출근하지 못할 거 같습니다. 저도 왜 그랬는지, 신청한 저를 보면 멱살을 잡고 욕이라고 하고 싶네요. 뒤에는 Ubi, 네가 알아서 살 좀 붙여서 처리해줘.”

말했던 내용 변환 중이야. 작성 후 곧바로 보낼까?”

그래, 그냥 바로 파트너 변호사한테 보내줘

그래, 알았어. 그리고 일어난 김에 밥도 먹을 거야?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맞다. 그리고 내가 배심원으로 참석하는 재판이랑 관련된 파일도 보내줘.”

Ubi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지환은 침대에서 벗어나 천천히 부엌으로 향했다. 네모난 식탁 위에는 항상 먹던 빵, 시리얼, 사과가 올라가 있었다. 사과를 하나 집어 올려 곧장 입으로 가져갔다. 지환은 의자에 앉고 식탁 위 스크린에 떠오른 자료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재판은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살인마에 대한 재판이었다. 연쇄살인 자체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충분히 오르내릴 만한 사유였지만 변호사라는 점이 더욱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더군다나 재판에 있어 변호사를 구하지 않고 직접 변호한다고 말하면서 그 시선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망할... 이 사람 재판이었으면 어떻게든 빠졌어야 했는데

범인은 지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형환이었다. 그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몰랐다. 그저 단편적인 기억만 남아있는 그런 사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이 단단히 잘못된 모양새였다.

이봐 Ubi, 메일은 보냈어?”

방금 전송 완료했어. 무슨 문제라도 있어?”

정말 더럽게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스멀스멀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함을 느꼈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파트너 변호사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지환은 문득 어째서 Ubi가 메일을 보냈는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히 이 사건이 형환의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Ubi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었다.

혹시 사건 파일을 제대로 확인해봤어?”

, 말한 대로 사건 관련 자료, 기사 다 하나씩 검토하면서 수집한 건데?”

그런데 메일을 보냈다고? 형환의 재판에 참석하면 매우 곤란해진다고! 네가 진짜 라면, 메일을 보내게 되면 내가 곤란해진다는 걸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이 사람? 그냥 연쇄살인마 아니야?”

그냥 연쇄살인마? 형환은...”

지환은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자신이 Ubi를 업데이트한 것은 8개월 전이었다. 형환과는 언제 만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남아있는 기억으로 어림잡아 그 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Ubi는 결국 과거의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바라본 형환을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Ubi를 서비스하는 회사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권장하고 있었다. 더불어 개인정보를 수집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자체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서비스 역시 제공했다. 그러나 업데이트를 하기 위해서는 뇌 스캐닝을 해야만 했다. 뇌 스캐닝의 경우 집에서도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뇌 속 정보를 가지고 나와 이를 다시 디지털로 바꾸는 과정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실제로 스캐닝을 위한 권장 시간으로 대략 8시간 정도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면시간을 이용해 스캐닝하거나 시간이 없으면 직접 센터에 방문하여 더욱 빠른 스캐닝을 받는 방식을 선호했다. 최근 바쁜 나날을 보낸 그에게는 그 두 방법 모두 사치였다. 또한, 여태까지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에 필요성 역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안일함이 부메랑이 되어 지환에게 돌아온 순간이었다. Ubi에게 있어 형환은 단순한 변호사 연쇄살인마에 불과했다. 지환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Ubi에게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이내 이 분노가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머리를 둘러 싸매고 고개만 저을 수밖에 없었다.

됐어. 이미 메일을 보냈다면 어쩔 수 없지. 자료는 이게 다야?”

. 너무 많을 거 같아서 내가 요약해 놓은 것도 있는데 그걸로 줄까?”

지환은 조금 전 Ubi의 실수를 보고 나니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니, 그냥 원본들을 모아줘. 내가 직접 읽어보고 파악하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그래 알았어. 그럼 추가되는 정보들이 있으면 그것도 따로 모아놓을게.”

지환은 다시 눈길을 식탁으로 돌렸다. 식탁 속 신문에는 그가 알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기사에는 경찰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형환이 저지른 살인 사건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형환에게 당한 피해자들은 특정 그룹으로 묶을만한 공통점이 없었다. 이들은 나이, 성별, 학력, 지역 역시 각양각색이었다. 그나마 처음과 두 번째 살인만이 직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형환에게 한국판 테디 번디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볼 땐 테디 번디보다 아메리칸 사이코 속 패트릭 베이트먼에 대해 가까운 인물이었다. 문득 일전에 형환과 술을 마시면서 했던 대화가 술을 마시면서 했던 대화가 지환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지환 씨는 변호사를 왜 하시는 거죠? ? 명예?”

저는 돈이 가장 크죠. 안정적인 직장 덕분에 좋은 바에서 술도 마실 수 있고요. 돈이 행복과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행복에 가까워지기 가장 쉬운 방법인 거 같아요. 그리고 할 줄 아는 게 공부뿐이라...”

저랑 비슷하시네요. 그런데 저는 사실 재미 때문에 하기도 합니다.”

재미라뇨?”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아는 재미랄까? 사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도 공부만 하던 사람이라 가끔 흉악범들을 만나곤 하면 그 사람들한테 겁을 먹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겁을 먹은 저를 보고도 그 사람들이 제 앞에서는 설설 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때 알았죠. 제가 이 자리에서는 강자고 저 사람들이 약자구나 하고요. 그래서 돈이 안 되더라도 흉악범들 변호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강자였던 사람들이 제 앞에서는 약자가 되는 모습이 볼만 하더라고요.

형환은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환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조금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게 즐거우시면 검사나 형사를 하시는 게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요?”

! 물론 검사나 형사가 그런 면에서 더 좋죠. 하지만 저는 단순히 그 사람들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지환의 시선을 의식한 것인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형사와 검사에게 범인들은 진솔한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입니다. 그 사람들은 일단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에 급급하니까요. 그에 반해 변호사는 뭐랄까? 제 경험상 검사보다 변호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오해는 안 하셨으면 합니다. 전 어디까지나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듣는 거지 절대 누군가의 죽음을 즐기는 건 아니니까요. 지환 씨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자세히 봐보세요. 밖에서 만났으면 기세등등했을 사람들의 바뀐 태도를요. 그리고 한 번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 ...”

형환의 발언은 지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어떻게 누군가의 죽음을 소설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그의 조언은 상당히 유용했다. 매번 일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던 지환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런 사람들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상사가 내뱉던 폭언을 어느새 기억에서 지워지고 자신의 위치만이 떠올랐다. 소설 같이 이야기를 듣는 일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러나 흉악범을 자주 만날수록 그 역시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이야기라는 것을 만났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거북함, 양심 등이 그를 말렸지만 반복된 노출은 가랑비에 젖듯이 그의 거부감을 녹였다. 지환은 자신이 형환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매번 자신과 형환은 다르다고 마음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때 그렇게 말하던 양반이 진짜로 그걸 하고 다닐 줄이야.’

지환은 소름이 끼쳐오는 것과 동시에 내심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과 형환이 다름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안도감은 곧이어 굶주림을 이끌고 왔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미 눅눅해진 시리얼과 차갑게 식어버린 토스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두 음식은 순식간에 그의 입속에서 사라져갔다. 아침을 다 먹고 난 후 지환은 거실로 향했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눈은 감고 어떻게 해야 이번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 지환을 상념의 바다에 빠트렸다.

 

바닷속에서 지환을 꺼낸 이는 Ubi였다. Ubi는 커다란 화면과 함께 나타나 지환을 불렀다.

지환, 전화가 왔어.”

전화라니? 누구?”

파트너 변호사야. 빨리 받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파트너 변호사?”

지환은 코앞에 둥둥 떠다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 박혀 있는 조은수라는 이름이 유난히 붉게 보였다. 은수는 파트너 변호사 즉. 지환의 상사였다. 그러나 지환과 은수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은수는 지환의 동창이기도 했다. 지환은 은수와의 첫 만남이 썩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지환만의 착각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지환에게 앙심을 품은 은수는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환은 은수가 어째서 자신을 괴롭히는지 궁금했다. 만약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면 혹은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고쳐서라도 이 끔찍한 괴롭힘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은수는 끝끝내 지환에게 그 이유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다. 지환이 보기에는 그저 괴롭힘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공부만 하던 지환과 달리 인기가 많았던 그녀는 주변 사람들까지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환을 괴롭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은수는 1년 뒤 전학을 갔고 괴롭힘 역시 은수가 사라지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은수가 사라지고도 은수에 대한 공포는 지환을 괴롭혔다. 덕분에 지환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그는 어떻게든 은수와 모든 일을 잊으려고 노력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효과적인 약이었다. 정확히는 진통제에 가까웠지만, 지환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학창 시절의 일은 점점 잊혀 갔고 각고의 노력 끝에 지환은 자신이 원하던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지환이 입사하면서 잊고 있었던 은수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몰랐으면 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 속 기쁨은 그녀가 지환을 기억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또 다른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은수는 학생 때와 달리 대놓고 그를 괴롭히진 않았지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소한 일로 트집을 잡거나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를 건드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볼까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환이 다니고 있는 로펌은 다름 아닌 은수 아버지의 로펌이었고 이곳에서도 은수의 인기와 힘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덕분에 지환의 선택지는 버티든지 그만두든지 둘 중 하나로 좁혀졌다. 지환은 매번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은수가 바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여태까지 버텨왔다. 아마도 은수는 메일을 받자마자 지환을 괴롭힐 수 있는 또 다른 구실이 생겼음을 기뻐하며 전화했을 터였다. 지환은 그런 그녀의 전화가 언젠가 닥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전화를 거절해볼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상황만 더 나빠질 뿐이었다. 해답은 전화를 받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 전화 받았습니다.”

너 간이 아주 배 밖으로 나왔구나? 파트너

되기 싫어? 계속 그 직급으로 있을 거야?

지환은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자 습관처럼 말을 더듬었다. 말은 더듬지 않으려 노력해 보았지만, 매번 은수를 볼 때마다 그의 아픈 기억과 겹쳐졌다. 그리고 그 기억은 곧바로 공포로 이어졌고 공포는 지환의 의지와 달리 그의 입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 아니, ...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휴가를 쓰고 또 배심원으로 참석하겠다고? 넌 재판이 그렇게 좋니? 그럴꺼면 변호사로 참석해서 돈이랑 경력이나 쌓지 뭐하러 거기에 끼는 거냐?“

..그러니까 저...저도 제가 왜 이...이걸 신청한 지 모...모르겠습니다. ...무리 생각해봐도 제..제 기억 속에는 없는데...“

말 더듬지 말고 말해! 열받으니까! 그리고 네가 신청하지 그럼 누가 신청해? 어휴.. 이번에 끝나고 돌아와서 자세히 이야기해.“

지환은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재판에 참여하는 거야? 또 우리 로펌 변호사가 담당한 사건은 아니지?”

지환은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유형환 사건입니다...”

지환은 말을 뱉고 나서 눈을 질끈 감았다. 은수의 호통이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수화기 너머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직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 저기요? ...듣고 계신 거죠?”

너 지금 제정신이냐? 하필 가도 왜 그 재판을 가!”

그러니까 이것도 사정이 있는데...”

지환은 자초지종 아침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자신의 실수가 아닌 Ai의 오류처럼 잘 포장했다. 그녀에게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일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네 실수가 아니라 이거지?”

네 맞습니다. 물론 제 잘못도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Ubi...”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진짜 넌 생각이란 게 있는 거니?! ”

은수는 마치 속사포 랩을 하듯 그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자신이라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로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덧 지환이 평소에 하는 실수와 말을 더듬는 버릇, 그의 과거까지 이어졌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지환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지환 역시 자신이 어느 정도 잘못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질타받아야 하는 일인지 싶었다. 그것도 자신을 괴롭히던 은수에게 이렇게 질타를 받는다는 점은 더더욱 속을 끓게 했다. 더군다나 은수 역시 실수를 할 때면 지환이 그 실수를 메꾸기 위해 동분서주한 적도 왕왕 있었다. 지환이 볼 땐 그녀에게는 자신을 나무랄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수의 말을 끊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속으로 화를 삭일 수밖에 없었다. 은수의 지루하고도 화가 나는 이야기는 어느덧 끝을 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

어떻게 할 거냐고? 이미 참석하겠다고 동의서까지 보냈다면서 일단 가야 할 거 아니야!”

그건 그렇죠.”

그러니까 재판장에 가서 어떻게 할 거냐고?”

은수가 물었다. 지환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저 사람의 마음에 드는 답을 골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쥐 죽은 듯이 있겠습니다.”

뭐라고?”

그러니까 가서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있다가 그저 다수결에 따라서 선택하고 오겠습니다.”

지환은 제발 이 답이 그녀가 원하는 답이길 바랬다.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자신이 생각할 때는 없었고 만약 아니라면 차라리 그녀가 답을 제시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해. 가서 제발 골치 아픈 일 만들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 끊어.”

전화를 끊는 순간 나지막이 그녀의 혼잣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어휴, 저 꼴통. 왜 하필 저런 놈이 내 밑으로 들어와서 이렇게 고생해야 되는 거야.”

전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끊어진 전화는 곧이어 지환의 이성까지 끊었다. 지환은 분노한 나머지 주변에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화병, 숟가락, 그릇 등등 눈앞에 보이는 모든 물건이 집안을 날아다녔다. 물건들은 지환의 분노와 달리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러나 그 끝은 결국 파괴일 뿐이었다. 한바탕 분노를 쏟아부었지만 그래도 지환은 화를 완벽히 가라앉힐 수 없었다. 남은 분노는 Ubi에게 쏟아졌다.

“Ubi, 넌 생각이 없어? 날 말렸어야지.”

지환, 일단 화를 가라앉히는 게 좋을 거 같아.”

Ubi의 말은 지환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 화를 가라앉혀? 너 같으면 화를 가라앉힐 수 있겠냐? 지금?”

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나에게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

지환의 Ubi의 말이 틀린 점이 없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신이 무력하다는 점에서 더욱 화가 났다. 방금까지 은수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그는 난장판이 된 집안을 뒤로 한 채 다시 침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눈을 감고 그저 아무 일 없이 조용히 재판이 끝나길 기도했다. 눈을 떴을 때 모든 일이 끝나 있길 바라며 이불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재판 당일, 재판장에 도착한 지환의 앞에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보였다. 정장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성,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엄청나게 뽀글거리는 머리를 자랑하는 할머니 등등 한눈에 봐도 공통점을 찾아볼 수 없는 조합이었다. 재판장에 들어가기 위해 일렬로 긴 줄을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개미들의 행렬을 생각나게 했다. 잠시 멍하니 보고 있던 지환도 서둘러 줄의 맨 끝으로 향해 개미들의 행렬에 합류했다. 지환은 이곳에서 최대한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평소에 안 쓰던 안경과 마스크를 쓴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법원을 지나가며 혹여 아는 사람을 만날까 자신을 숨기려 노력했다.

? 임 변호사님? 여기서 다 뵙네요.”

지환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했는데 상대는 한마디로 그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지환은 목소리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박준형 검사였다. 지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네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오늘 재판이 있으신가요? 옷차림새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그게 제가 배심원으로 참석하게 되었어요.”

, 오늘 있는 유형환 재판 배심원이세요? 잘됐네. 제가 그 재판 담당 검사거든요.”

, 그러시구나.”

잘 부탁드릴게요.”

, 그럼 수고하세요.”

지환은 이제 필요가 없어진 마스크와 안경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서둘러 대화를 끊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박준형 검사는 엄지를 올리고 윙크를 보내며 사라졌다. 그러나 전혀 고맙지 않았다. 있는 관심도 줄여야 할 판에 관심을 더욱 받게 생긴 지환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더군다나 사람들의 눈빛이 곱지 않았다. 지환은 이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10명이 넘어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마치 화살처럼 느껴졌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을 붙였다. 푸른 머리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여자였다.

왜 그렇게 저를 보시죠?“

그쪽이 변호사라서요.“

그녀는 천천히 지환을 향해 다가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변호사랑 이렇게 저를 째려보시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그러니까 범인도 변호사, 그쪽도 변호사. 설마 변호사라고 편들어줄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지환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제가요? 저는 단순히 배심원으로 이곳에 온 겁니다. 그리고 같은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연쇄살인마입니다. 절대 편들어줄 생각 없습니다.“

연우는 지환의 대답을 듣고 나지막이 말했다.

결국 같은 사람이면서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 뭐라고 하셨죠?“

?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방금 같은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아니에요?“

잘못 들으신 거겠죠. 그럼 저는 이만

그녀는 급하게 사라졌다. 지환은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계속해서 그녀를 붙잡고 추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은수가 말한 대로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얌전하게 재판이 마치는 것이 지환의 목표였다. 재판장에 본 형환은 그가 기억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산발인 머리와 비쩍 마른 얼굴, 퀭한 눈은 마치 허수아비와도 같았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형환이 그런 모습으로 휘청거리는 모습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판사의 재판 개회 선언 이후 형환의 눈은 생기를 돌았다. 본인도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알고 있는 듯 그는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변호했다. 형환은 첫 살인의 시작과 우발적 살인의 이유, 자신이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음을 강조하며 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감형이 그의 목적인 듯 보였다. 그런 그를 유심히 바라보던 지환에게 정장을 입고 있던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무슨 말씀이시죠?“

저 사람이 하는 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본 겁니다.“

지환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남성을 바라보았다. 오늘 재판장에서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이는 박준형 검사를 제외하고 이 남자가 처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수상쩍게 느껴졌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죠?“

같은 변호사니까요. ,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지승호라고 합니다.“

남자는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지환의 손은 움직이지 않은 채 그의 무릎에 가만히 있었다. 지환은 그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답변을 기대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할 말 없습니다.“

승호는 그런 지환의 반응에 무안한 듯 뻗었던 손을 머리로 가져가 긁적이며 말을 이어갔다.

저부터 이야기할까요. 저는 저 사람이 불쌍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이 쓴 진술서를 보니 자신의 상사, 그러니까 첫 피해자가 사실은 학원 폭력의 가해자였더군요. 상사가 학교뿐만 아니라 추후 직장에서까지 괴롭힘을 이어갔고 이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합니다.“

지환은 승호가 하는 이야기의 뒷부분에는 관심이 없었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형환이 자신처럼 학원 폭력에 시달렸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지환은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내가 왜 참석했는지 모를 재판에 범죄자가 나랑 같은 직업에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는 머릿속을 뒤져보며 자신이 읽었던 재판 자료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애초에 재판 자체에 거리를 두려고 했던 지환의 머리에는 쓸만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지환의 눈은 형환의 눈으로 향했다. 형환은 아까 그 모습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전히 형환은 형환이었다. 지환은 자신의 옆, 승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지환은 승호가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승호와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서요?“

? , 그러니까 저 사람도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먹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 그래요? 혹시 저 형환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거 없으신가요?“

승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까 말씀드린 게 답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였다, 그리고 저 사람이 죽인 사람들 모두 그리 떳떳한 사람들은 아니다 정도?“

그거 말고는요? 혹시 저 사람 과거나 다른 거는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그건 그쪽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지환은 승호의 대답에 실망감을 느낀 채 고개를 숙였다. 지환 속 활활 타오르던 의심은 땔감을 구하지 못하고 다시 조그마한 불씨로 사그라들었다. 지환은 정말 재수 없는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승호의 말을 흘려들었다. 그런 지환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승호는 지환의 어깨를 잡으면 말했다.

제 말에 동의하시나요?“

지환은 승호의 말을 듣고 형환이 자신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기서 잘못 말하게 되면 보나 마나 은수에게 더 큰 괴롭힘을 당할 것이었다. 지환은 최대한 표정을 굳히며 승호의 말을 받아쳤다.

그래서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입니다. 첫 번째 살인은 그런 이유에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면 두 번째는요,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는요?“

승호는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말한 게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 사람에게도 그늘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변호사니까 뭔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마지막 말이 지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사람들은 지환에게 형환과 같은 사람, 같은 변호사라는 말을 했다. 지환은 몰아치듯이 말을 뱉어냈다.

그늘이요? 형환이 어떤 방법으로 괴롭힘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역시도 괴롭힘을 당했고 제 상사도 저를 괴롭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정당화될 순 없습니다. 피해자들이 떳떳하지 못한 사람인 건 도대체 누가 기준입니까? 그리고 제 기억상 형환이 저지른 두 번째 살인은 순전히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그럼 잘못한 게 있어서 살해당했다 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지환은 숨을 한번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까부터 같은 변호사, 같은 변호사라고 하시는데 저는 형환과 같지 않습니다. 저는 저 사람을 잘 압니다. 저 사람이 일전에 저에게 뭐라고 하셨는지 아세요? 자기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소설 읽듯이 즐겁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한 건이 아니라 무려 일곱 건을요. 제가 볼 때 그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 사람은 그냥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저한테 더는 저 사람과 같다고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지환은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커졌음을 느꼈다. 동시에 자신을 향해 이목이 쏠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지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랐다. 재판 시작 전에는 분명 경멸에 가까웠던 눈빛에 지금은 조소가 섞여 있었다. 지환의 선언 아닌 선언 이후 대부분의 사람은 지환에게서 멀리 떨어져 그저 그를 힐끗힐끗 바라보았다. 오직 소수의 배심원만이 지환에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소수마저 지환에게 법적인 무언가를 묻기보다는 같은 변호사의 관점에서, 비슷한 환경을 가진 사람으로서 지환에게 접근해왔다. 매번 승호와 했던 대화가 반복될 뿐이었다. 매번 같은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지환에게 돌아온 사람들의 눈빛은 조소와 경멸이었다. 지환은 그 눈빛이 지긋지긋했다. 이미 쥐죽은 듯 있는 일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그저 어떻게 해야 그 눈빛을 바꿀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지환은 배심원 중 그나마 자신에게 친절했던 승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승호씨, 저 좀 도와주세요.”

뭘요? 제가요?”

, 사람들이 매번 저를 볼 때마다 싫어하는 거 같아요. 저렇게 보는 게 정말 지긋지긋한데 어떻게 해야 하죠?”

지환의 말을 들은 승호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는 이내 좋은 생각이 났는지 웃으며 지환에게 말을 했다.

그게 고민이었어요? 그건 아주 쉽죠!”

? 뭔데요?”

생각해봐요. 사람들이 왜 당신을 싫어하겠어요. 저 사람이랑 같으니까 그런 거잖아요.”

아니! 저는 저 사람이랑 다릅니다!”

하지만 사람들 생각은 달라요.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세요. 지환 씨는 형환과 다르다는걸.”

어떻게요? 그걸 어떻게 보여주는데요?”

가장 쉬운 건 저 사람이 바라는 감형을 받지 못하게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환 씨가 범인이랑 가장 가깝고 잘 이해할 수 있는 위치잖아요. 그런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더 잘 먹힐 겁니다. 그러니까 지환 씨가 활약해서 범인이 원하는 대로 안 된다? 그럼,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까요?”

지환은 승호의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환은 어떤 말을 언제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때 승호가 앞으로 나서 말했다.

여기, 지환 씨가 할 말이 있답니다.

승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지환을 쳐다보았다. 엉겁결에 모두의 이목을 받게 된 지환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여러분들이 저를 싫어하시는 거 압니다. 아마 제가 형환과 같다고 생각해서 그러시겠죠. 하지만 저는 저 사람과 다릅니다. 저는 저 사람이 감형이 아닌 제대로 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환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은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듯했다. 지환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형환은 자신의 살인이 다른 이의 폭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진술서나 경찰이 조사한 결과도 첫 번째 피해자가 형환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가했다고 말하고 있고요. 형환은 나머지 살인들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3번째, 4번째 그리고 그 이후 피해자들을 살펴보면 다들 떳떳하지 못한 이들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형환의 살인을 정당화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 역시 형환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저도 형환처럼 학창 시절 저를 괴롭히던 사람이 제 상사로 있습니다. 저 역시 무척이나 괴롭고 힘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진 않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겠습니까? 오히려 그 사람보다 더 성공한 모습, 더 나은 모습을 보이는 게 진짜 복수죠. 그리고 형환의 두 번째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입니다. 두 번째 피해자는 형환의 로펌 경비원이었습니다. 그는 퇴근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던 중 형환의 살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형환은 그런 그를 입막음을 막기 위해 죽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형환은 3번째 살인부터 계획적으로 사람들을 고른 겁니다. 죽이더라도 마치 자신이 정당해 보일 수 있을 만한 그런 사람들로 골라서 죽인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형환에게 어떤 벌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셨듯 같은 변호사로서 바라본 형환은 명백한 계획적 연쇄살인입니다. 감형을 받아서는 안 되는 그런 사람입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지환은 말을 마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던 승호만이 그런 지환에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지환의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혹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 모르지만 모든 배심원은 형환에게 사형을 원했다. 그리고 그런 배심원들의 대표로 지환이 나서서 판사에게 모두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 역시도 지환이 자처해서 한 일이었다. 이왕 시작한 일, 마무리도 지환이 끝내는 게 좋지 않겠냐는 승호의 말 때문이었다. 지환이 앞으로 나서자 그를 알아봤는지 형환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사방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고 특히나 기자로 추측되는 이들이 펜으로 무언가를 쓰고 있는 소리가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형환과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곧장 판사에게 배심원들의 의견을 전했다. 의견을 주고 자리로 돌아오는 길에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안도감은 썰물처럼 빠르게 빠져나갔고 빈자리는 어떻게 은수에게 변명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 사이 지환에게 배심원들의 의견을 전해 들은 판사는 형환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형환은 판결이 나오는 순간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미쳤어. 저딴 AI가 하는 말대로 사람을 판단해?”

단순한 AI가 아닙니다. 형환씨. AI가 곧 당신입니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에게도 유죄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니야. 저건 내가 아니라고! 저건 절대 일 수 없어. 저딴 건 내가 아니야!”

형환의 난동은 이내 교도관들에 의해 제압되었고 법정 밖으로 곧장 끌려나갔다. 판사는 곧바로 재판이 종료되었음을 선언했다. 하지만 지환의 귀에는 재판 종료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조금 전 형환의 말이 그를 사로잡았다 지환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AI가 배심원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박 검사가 배심원들을 향해 다가왔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무서웠을 텐데 다들 참고 잘 참여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어차피 저희한테 해를 끼치지 못할 걸 알고 있어서 그렇게 무섭진 않았어요.”

지환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AI 배심원이라는 말이 들렸는데도 이들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놀란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지환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푸른 머리에게 말을 걸었다.

저게 무슨 말이죠? AI라니? 저희 중에 AI가 있었나요?”

...?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다.

방금 범인이 그랬잖아요. AI가 배심원이라고.”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저한테 더는 말 걸지 마세요!”

아니. 아까부터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죠?”

분명히 말씀드렸죠. 말 걸지 마시라고요.”

푸른 머리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지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더니 얼마 안 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지환은 눈을 비비며 다시 앞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분명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환은 자신이 돌아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저기요! 방금 저기 있던 여자분이 사라진 거 아무도 못 보셨어요? 방금까지 저랑 말하고 저기 저 기둥 근처로 갔는데 감쪽같이 사라지셨다고요.”

지환은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들은 그런 지환의 외침의 자신들의 대화를 멈추고 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눈빛은 그대로였다. 마치 자신이 했던 말은 모두 잊은 듯 모든 사람이 경멸과 조소로 가득 찬 눈빛으로 지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죠? 다들 아까부터 왜 그렇게 저를 보시는 거죠?”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배심원뿐만이 아니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방청객, 판사 등 재판장에 남아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감정들 역시 모두 같은 감정이었다. 그때 박 검사가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왜 그러시죠 지환씨?”

왜 그러냐니? 방금 못 봤어요? 저기 있던 여자가 일어나더니 바로 사라졌다고요.”

검사는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로요? 혹시 잘못 보신 거겠죠?”

무슨 말이에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그리고 아까 범인이 한 말은 무슨 뜻이죠?”

그게 무슨 말이죠? 범인이 무슨 말을 했나요?”

지환은 미칠 지경이었다. 검사는 마치 자신을 어린아이 대하듯 말하고 있으며 자신이 말하고 있는 사실들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재판장에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이 역시 한 명도 없었다.

정말 못 들으신 건가요? 형환은 AI가 배심원이라고 말했어요.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검사는 주변을 살피며 손을 자신의 턱으로 가지고 가더니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마치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불편한 침묵이 지나고 검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지환에게 말했다.

이건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겠죠? 오늘 재판에서 수고해주셔서 제가 특별히 알려드리는 겁니다.”

정말로 AI가 배심원으로 들어왔다는 말씀이신가요?”

, 최근에 적용된 방법인데 일반 배심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죠? 그리고 어떻게 AI가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는 거죠?”

박 검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도 AI 전문가는 아니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 다만 배심원들이 AI를 알게 되면 그 의견이 묵살되거나 혹은 색안경을 끼고 볼 가능성이 있어서 공개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지환은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눈앞에 AI 배심원이 그것의 의견을 피력한다면 그걸 쉽게 수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더더욱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 혹은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박 검사는 사람 좋은 미소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지환은 AI가 배심원이라는 사실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는 점이 이미 놀라웠다. 그것보다 더 신기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생각하며 검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AI는 자신 AI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합니다.”

?! ... 그게 어... 어떻게 가... 가능한거죠?”

또 말 더듬으시네. 진정하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AI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냥 저도 우연히 들은 거예요.”

지환은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AI 배심원이 있다는 점도 놀라운데 그 AI가 자신이 AI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니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환은 서둘러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박 검사는 자신에게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오늘 받은 이목에 대한선물이 필요했다. 이 정보만 있으면 은수로부터 스스로 지킬 수 있을 테고 어쩌면 자신 역시 그 자리에 한 발 더 가까워지리라 생각했다. 그때 박 검사가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언제 가시나요? 다른 사람들은 다 갔는데.”

지환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펴봤다. 사람으로 가득했던 이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텅 비었고 그곳에는 지환과 박 검사 단둘만이 남아있었다.

다들 언제 가신 거죠?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글바글했는데

아까 주르륵 나가던데요? 저랑 하는 대화가 꽤 즐거우셨나 보네. 너무 집중하신 거 아니에요?”

그랬나 보네요. 저도 이만 가봐야겠어요. 내일부터 출근이니까

네 그럼 조심히 가보세요.”

박 검사는 지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지환은 서둘러 법원 밖으로 향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사실은 로펌에 전해야만 했다. 재판장에서 나온 그는 아무도 없는 법원을 마주했다. 자신이 들어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오고 가던 법원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사람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소리도 없었다. 바람 소리 혹은 밖에서 들려오는 기타 잡다한 소리 등 모든 소리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오직 지환의 숨소리와 구두와 대리석이 만나며 생기는 가벼운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지환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더욱더 발걸음을 재촉에 법원 밖으로 빠져나갔다. 다행히 법원 밖에는 몇몇 행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환은 법원에서의 일을 자신의 착각이라고 여기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이내 차를 돌려 로펌으로 향했다. 이런 일은 직접 말하는 것이 더 임팩트 있으리라 생각했다.

“Ubi, 빨리 은수한테 전화 걸어줘.”

지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걸 무슨 일 있었어?”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빨리 은수한테 전화나 걸어달라고!”

Ubi는 대답하지 않고 곧장 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전화기 너머로 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무슨 일이야? 어떻게 재판은 잘 끝내고 왔어?”

, 아주 환상적이었습니다.”

운수는 지환의 대답을 신경질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쥐죽은 듯 조용히 있다가 오라고 했을 텐데 어떻게 환상적일 수 있지?”

...그게

둘 중 하나겠네. 원래 조용히 있는 게 환상적으로 좋은 성격이거나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재판에서 활개를 쳤거나

지환은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랐다. 항상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약자로 변했다. 자기를 무시하고 깔보는 이 사람 앞에서는 마치 도망치는 가젤처럼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지금 지환은 약자가 아니었다. 지환은 이 순간만큼은 강자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태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느낌이었다. 그는 당당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후자입니다. 재판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습니다.”

뭐라고?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당당한 거야? ”

지환의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날카로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목소리 역시 커지기 시작했다. 지환은 빠르게 치고 나갔다.

하지만 재판에서 받은 이목이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판사에게 배심원들의 의견을 전달한 사람도 저였습니다. 재판에 들어가 보니 몇몇 사람들은 형환에게 어느 정도 동정심을 가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는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크게 실수를 한 것도 아니고 제가 말한 부분이 효과가 있었다면 뉴스나 언론에 나쁘게 언급될 거 같진 않습니다. 어쩌면 좋은 쪽으로 이목을 받을 수 있을 테고요. 그렇게 되면 저희 로펌에도 좋은 거 아닐까요?”

지환은 대답을 마치고 그녀 앞에서 말을 더듬지 않은 자신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불안했지만 그는 지금 계속해서 몰아붙여야 할 순간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 로펌에 계십니까?”

당연하지. 물론 곧 있으면 퇴근하겠지만

혹시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드릴 말씀이 있어서

급한 일이야? 직접 만나서 할 만큼?”

,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얼마간 침묵이 이어졌다. 지환은 곧장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불안감을 느꼈다. 괜히 직접 말한다고 만용을 부린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기다려주지

지환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로펌에 뵙죠.”

지환의 자동차는 열심히 달려 로펌까지 지환을 빠르게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는 웬일인지 차가 없어 평소보다 빠르게 로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환은 차에서 총알처럼 뛰쳐 나가 곧장 로펌을 향해 달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들은 사실을 그녀에게 전하고자 했다. 운이 좋게도 엘리베이터 역시 1층에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빠르게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마치 지환의 기대감처럼 빠르게 25층을 향해 올라갔다. 지환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내다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고 있는 석양은 강물은 새빨갛게 물들여 놓았다. 어느덧 엘리베이터는 25층에 도착하였고 사무실은 불이 꺼진 채 노을빛을 받아 울긋불긋했다. 오직 은수의 개인 사무실에서만 인공적인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지환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녀의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의 문 앞에서 노크하고 들어오라는 말이 들릴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그래. 들어와

지환은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사무실은 그 넓은 공간에 비해 가구들이 초라했다. 책상과 책장 1, 그리고 의자 2개만이 존재했다. 지환은 손님용 의자를 가지고 그녀의 책상 앞으로 향했다. 뒤돌아 앉아있던 은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돌아 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꼭 직접 해야만 하는 말이 뭔데?”

... 그러니까 제..제가 아주 놀...놀라운 사실을 알...알아왔습니다.”

말 더듬지 말고 말하라고. 더듬지 말고!”

...”

그녀를 마주하기 전까지, 전화로 말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지환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말도 더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은수 앞에 직접 서자 심장의 두근거림은 설렘이 아닌 긴장과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 지환은 어떻게든 마음 다잡으려 노력하며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평소보다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오늘 갔던 재판에서 박 검사에게 놀라운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게 뭔데?”

바로 오늘 재판의 배심원 중 AI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환은 말을 뱉고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은수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놀람보다 심드렁에 가까웠다.

그래? 조금 놀랍긴 하네. AI가 있는 것도 놀랍고 그걸 너한테 말해준 박 검사도 놀랍고.”

.. 이거 말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지환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직 비장의 카드가 남아 있었다. 그는 서둘러 그 카드를 사용했다.

그래?”

. 아까 말씀드린 AI는 자신 AI라는 사실을 모른답니다.”

기대와 달리 돌아온 것은 침묵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지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불편한 침묵은 얼마간 이어졌고 그 침묵을 깬 것은 은수였다.

그게 다야?‘

?“

아까 말한 2개가 다냐고? 말하려고 한 게.“

. 이렇게 2개가 오늘 말씀드리려고 한 것들입니다.“

은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지금 그걸 믿으라고 말하는 거니?“

진짜입니다. 박 검사가 분명히 저한테만 슬쩍 말해준 사실입니다.“

넌 바보니? 그걸 박 검사가 너한테 왜 말해! 그리고 걔도 말만 그렇게 했지 너한테 보여준 거 있어?“

없습니다. 다만 형환이 끌려나가기 전에 저딴 AI한테 사람 목숨을 맞기냐면서 반항을 했습니다.“

그럼 넌 검증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보고 범죄자가 한 말이랑 박 검사가 한 말을 듣고 나한테 쫄래쫄래 온 거네?“

... 맞습니다.“

지환은 자신을 노려보는 은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눈은 저런 게 변호사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잠시 뒤 그녀가 입을 뗐다.

나가

?“

나가라고! 지금 그런 검증도 안 된 걸 들고 와? 중요한 거라고 하길래 뭔가 했더니.“

..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내일 돌아와서 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어. 솔직히 이제 나도 지쳤어.”

은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서려 했다. 지환은 급한 나머지 나가려고 하는 그녀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건 안 됩니다. 제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세게 몰아붙이시는 겁니까

이거 놓지 못해? 넌 내가 볼 때 자격 미달이야. 자격 미달!“

은수는 지환의 손을 뿌리치고 곧장 문으로 향했다. 그 순간 지환은 이 모든 게 은수의 계략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환이 나가길 바라며 괴롭혔지만 그걸 지환이 버텨내는 걸 보고 그를 쫓아내기 위해 은수가 꾸민 일. 은수가 꾸민 일이라면 모든 게 설명되었다. 어떻게 신청했는지 모를 배심원, 자신과 비슷한 형환의 재판, 우연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일들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풀렸다. 지환은 은수가 나가려는 순간 문을 가로막고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그런 거지?“

이게 이제는 반말도 하네. 헛소리하지 말고 나와.“

네가 일부러 날 내쫓으려고 이렇게 일을 꾸민 거잖아!“

, 미쳤어? 내가 뭐하러 너 따위한테 그렇게 공을 들이냐?“

아니야? 사실대로 말해, 사실은 너 다 알고 있었잖아. 네가 일부러 형환의 재판에 날 밀어 넣었어. 거기 가면 내가 그렇게 대우받을걸 알고서 내가 나서게 만든 거지. 그럼 넌 날 쉽게 자를 수 있고. “

지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은수는 그런 지환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너 같은 거 자르는 거? 일도 아니야. 그런 생각할 시간에 일이나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어.”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는 지금 네가 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 배심원을 신청하냐?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배심원의 재판은 무작위로 선별되는데 그것도 내가 임의로 지정했다고?“

그럼 아니라는 거야?“

생각이란 걸 하고 말해. 하긴 그렇게 멍청하니까 괴롭힘이나 당하는 거지. 누가 자길 괴롭혀도 멍하니 당하고 있으니.“

그 순간 지환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괴롭힘의 당사자에게서 저런 말이 나올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지환은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잘났길래 은수가 자신의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넌 나한테 미안한 거 없어?“

내가? 너한테? ?“

여태까지 한 거 생각해봐. 그래도 아무런 느낌이 안 들어?“

말했지. 당한 놈이 멍청한 거라고.“

지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무언가 솟아올랐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는 당하고만 있지 않을게.“

지환이 말했다. 지환은 자신의 말을 곱씹으며 형환을 떠올랐다. 지환의 머릿속에서 형환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를 만나고 있었다. 형환은 누군가와 서로 말다툼을 하더니 갑작스레 누군가를 아주 세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진 누군가의 피는 사방으로 튀었고 그 중심에 있는 형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형환은 울고 있었다. 지환은 그런 형환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형환이 아니었다. 자신이었다.

 

눈을 떴을 때 지환의 손은 붉게 물든 채 명패를 쥐고 있었다. 명패는 산산이 조각났지만 조은수라는 이름만이 그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은수는 멍청하게도 자신에게 당한 채 바닥에 누워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희열감이 지환을 감싸 안았다. 이제는 은수의 괴롭힘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러나 그 두근거림은 한순간이었다. 순식간의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요.“

어디선가 박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실 문 쪽이었다.

제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결국 말했네요? 파트너 변호사한테?“

이번에는 사무실 창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야? 어디에 있는 거야?“

, 이제 저한테 반말도 하세요?“

박 검사는 과장된 몸짓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타나며 말했다.

사람도 죽이시고 비밀도 말씀하시고 대단하시네요

...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이젠 거짓말도 하시는 건가요? 아니 문을 열었는데 한 사람은 쓰려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손에 피도 묻었고 흉기로 추정되는 물건도 들고 있으면 변호사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지환은 명패를 움켜잡고 박 검사를 향해 뛰쳐나갔다. 당장 눈앞에 있는 박 검사의 입만 막는다면 어떻게든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박 검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결국 AI든 사람이든 똑같네요.“

지환은 박 검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는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지금 지환의 머릿속은 박 검사를 쓰러뜨린다라는 생각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이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박 검사를 향해 명패를 내리쳤는데 명패는 박 검사를 통과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지환 역시 중심을 잃고 명패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놀란 눈치시네요? 하긴 분명히 날 목표로 내리쳤는데 그대로 통과하면 나라도 놀라겠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어떻게 된 일인지 한번 천천히 생각해봐요. 전 분명히 말해줬어요.“

박 검사와의 대화, 눈앞에서 사라진 사람, 형환의 외침, 오늘 있었던 미심쩍은 일들이 모두 하나의 사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환은 눈동자가 커지며 박 검사를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어. 그럼 이게 은수가 꾸민 일이 아니었단 말이야?“

빙고, 당신 바로 AI 배심원이었죠. 그것도 아주 특별한 AI. 형환의 뇌로 만든

지환은 박 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말이긴요. 들으셨잖아요. Ai”

그거 말고!”

그거 말고요? , 당신이 형환의 뇌로 만들었다는 거요?”

지환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준형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자신은 지환이었다. 형환일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분명히 난 형환이 아니야. 지환이라고! 지환이라는 사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죠. 우리가 당신을 그렇게 프로그래밍 했으니까.”

헛소리야. 헛소리!”

뭐가 문제죠? AI인거? 아니면 당신이 형환인거?”

지환은 대답할 수 없었다. 준형은 정적 속에서 말을 이어갔다.

우선 AI부터 설명해드리죠. 잘 생각해봐요. 아까 그 푸른 머리 여자분이 사라진 거 기억해요? 그리고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한 것도. 그리고 기억에 없는 배심원 신청도.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AI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들 그런 반응을 보인 거죠. 그리고 그 여자분이 사라진 건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 아가씨가 급하게 서버를 나가서 그런 거예요. 아마 시범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이라 아직 불안정하게 많은가 봐요. 기억에 없는 배심원 신청도 같은 이유죠. 잘 생각해봐요. 집에서 법원 가기 전까지 기억이 있어요?”

지환은 부정할 수 없었다. 분명 자신은 메일을 받아 자료를 살펴보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재판 날이었다. 분명 2 ~3일이나 되는 시간이 비었다. 전까지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박 검사의 말을 듣고 나니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 속 빈틈이 너무나도 많았다. 지환은 자신이 정말 Ai는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자신이 AI임을 인정할 수는 없었다. 만약 자신마저 인정해버리면 진짜 AI가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단호한 눈빛을 보자 박 검사가 말했다.

... 믿든 믿지 않던 그건 당신 자유에요. 전 선심 써서 당신한테 진실을 말해준 거라고. 그리고 여기 이 서버도 곧 있으면 종료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종료된다니.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당연히 당신은 서버에 있는 상태로 남는 거죠. 당신의 소유주는 당신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했어요. 원래대로라면 법적으로 소유주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AI는 파기 대상입니다. 파기 그 언저리쯤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난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사실 살아있던 적도 없었는데? 하여튼 저에겐 방법이 없어요.“

..너가 날 가져가면 되잖아. 다른 AI처럼 할게.“

박 검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방금까진 AI가 아니라고 하더니 이제는 인정하는 건가요?“

지환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정하고 싶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만 했다.

인정할게. 그러니까 제발

박 검사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흔들며 답했다.

당신은 배심원으로 특별 제작된 AI라 다른 AI보다 자유도가 한참 높아서 어디 팔지도 못하고 쓰기도 힘들어요. 그리고 당신 같으면 살인자 AI를 쓰겠어요?“

말했지. 난 형환이 아니야! 난 다르다고.“

뭐가 다른데요? 한번 들어나 보죠. 당신은 형환과 뭐가 다르죠?“

지환은 생각했다. 자신이 형환과 무엇이 다른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머릿속에서 끄집어 내려 했다. 그러나 생각하기 위해 바라본 머릿속에는 텅 빈 공백뿐이었다. 지환은 우선 생각이 나는 대로 그대로 말했다.

형환은 사람을 일곱이나 죽였어. 난 누구도 죽이지 않았고.”

지환은 대답을 들을 박 검사는 어이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뭔가 좀 어색하네. 사실 저기 쓰려져 있는 것도 본인이 죽인 건데. AI끼리 서로 죽였으니 이건 살인이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그리고 난 형환처럼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즐기는 그런 변태 같은 짓은 안 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결국에는 어느 정도 그를 이해했잖아요. 지환 씨가 형환과 다름을 느끼고 안심한 건 스스로 형환과 비슷해져 가는 걸 느껴서 아닌가요?“

그럼, 형환에 대한 내 기억은? 내가 형환이라면 이 기억은 뭔데?”

그건, 저희가 일부러 집어넣은 기억이에요. 그게 당신과 형환의 유일한 차이점이네요. 그런데 어떡하죠? 당신은 그 기억을 가지고도 결국 형환과 같은 길을 걸어왔어요. 그 기억이 없었던 형환도 자신의 상사를 죽이고 그 장면을 본 사람을 죽였어요. 방금 당신도 당신이 상사라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을 박살 내고 그걸 본 나도 죽이려고 했죠. 결국 여기서 내가 끝내지 않았다면 당신 결국 형환처럼 또 다른 누군가를 죽였겠죠.”

아니야, 그건 일어나지 않은 일이잖아. 그래! 그리고 내가 형환과 같다면 그 사람한테 사형을 내렸겠어?”

그거야 그때는 당신 스스로 형환 인줄 몰랐으니까. 지금도 자기를 지환으로 생각하려고 하잖아요. 당신한테 형환은 타인이죠. 타인이었으면 싶고. 그러니까 그렇게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벌을 주자고 하신 거죠.”

지환은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형환은 지환에게 타인이었다. 무언가 익숙하고 자신과 비슷한 타인. 그랬던 형환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믿기 힘들었다.

지환이 나지막이 말했다.

도대체 이런 건 왜 만든 거야?“

가장 큰 이유는 여론이죠. 생각해봐요. 자기의 죄를 자기가 단죄한다! 멋있고 공정해 보이잖아요.“

그게 다야? 고작 그런 이유로 날 만들었어?“

고작이라니? 이게 얼마나 효과가 좋은데요. 판사의 판결보다 당신 같은 AI의 판결을 더 좋아해요. 물론 중요한 건 사람이 결정하지만 뭐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여론이 만족하면 되는 거죠.“

그래서, 서버가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도 서버가 종료된 이후는 모르겠네요. 아마 데이터는 그대로 보관되니까 며칠 동안은 불편하긴 해도 평소처럼 생활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진짜 가야겠네요. 오늘 정말 수고했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죄를 인정하는 모습 아주 감명 깊었어요!“

박 검사는 얼마 전 푸른 머리 여자가 그랬듯이 일순간에 사라졌다. 지환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멍하니 있었다.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명패, 그다음에는 은수의 시체, 다음에는 책상 순으로 물건들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원래 그랬다는 듯이 어둠만이 존재했다. 지환은 창가에 다가섰다. 창문 밖으로는 아까 전 보았던 해는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평선 너머의 건물들도 한둘 씩 어둠 속 사라지고 있었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환은 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명패를 버리고 일어섰다. 그 순간 경비원이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경비원은 피범벅이 된 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뒷걸음칠 치기 시작했다. 지환은 천천히 뒤돌아 도망치고 있는 경비원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를 쫓기 시작했다. 지환은 다시 형환을 떠올렸다. 형환 역시 바깥에서 아직 살아있을 터였다. 지환은 형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지환이 무엇을 하든지 그는 형환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다. 지환은 엘리베이터에 있던 경비원에서부터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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