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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불링/따돌림 소재 주의]

 

2학년 V반 거지방 공지사항!

 

1. 자기가 쓴 금액은 빠짐없이 여기에 공유한다!

2. 자기가 쓴 금액만큼 이름 옆에 누적액을 적는다!

3. 매달 말일마다 소비액을 비교하여 소비왕과 거지왕을 뽑는다!

4. 소비왕은 거지왕의 소원 하나를 들어준다!


안녕 얘들아 오늘도 다들 활기찬 하루 되고 절약을 잊지 나 우리 오빠들 앨범 샀어 않도록 하자!

석지현 요거 요거 연막치네

얼마 썼는지 솔직히 밝히세요

에이 들켰네

 

 

“지현! 너 이번에 돈 엄청 썼더라? 아직 15일인데 소비왕 확정되는 거 아냐?”

“대놓고 말하지 마! 안 그래도 쪽팔려 죽겠어 진짜.”

 

점심을 먹은 뒤 운동장을 따라 걷던 지현은 갑자기 날아온 기습 질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걷던 두 명의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해지지 않은 오후 5시 반의 노을이 느슨하게 아이들을 스쳐지나간다. 뒤이은 질문을 던지는 유나는 아까 한바탕 웃고도 아직 모자란 지 짐짓 궁금하다는 목소리였다.

 

“야, 쪽팔리다는 사람이 최애 밴드 앨범을 10개씩 사들이냐?”

“그치만 1년만의 신곡인데다 포카 3종 랜덤동봉이었다고! 어떻게 안 사냐?”

“니가 좋아하는 쭈니쭈니 오빠는 나왔어?”

“울 오빠들 포카 올 컴플리트했지~.”

 

지현은 방금 전에 한 말이 무색하게 금세 어깨를 피고 으스거렸다. 그 모습에 호응하듯 세 명의 아이들에게서 오~하는 탄성이 피어올랐다. 역시 지현! 할 땐 하는 여자! 지현의 친구 중 하나인 소영이 그렇게 말하며 한쪽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눈치가 빠른 지현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하이 파이브를 했다. 짝! 하는 경쾌한 소리가 퍼져나갔다.

 

“근데 저번 달에는 무슨 콘서트 간다고 뭉텅이로 돈 쓰더니. 용돈 괜찮아?”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엄마한테 엄청 까였어.”

 

옆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소영의 말에 지현이 한숨을 내쉰다. 마음 속 깊이 우러났다기보다, 다음 말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부러 푹 내쉬는 기색이 완연한 한숨이었다. 다만 아이들은 그 한숨에 크게 관심이 없는 듯 각자 손에 든 과자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다음 달에도 그렇게 돈 펑펑 쓰면 진짜 용돈 깎아버린다더라.”

“근데 앨범 샀죠? 10개 샀죠? 오빠들 포카 올컴했죠?”

“아 놀리지 말라고 소영!”

 

짜증나 진짜! 지현이 휘두른 팔이 소영의 등에 보기 좋게 명중하고 짧은 비명이 퍼져나간다. 하지만 식사를 마치고 운동장을 도는 아이들로 가득한 교정에서 그 정도 소음은 금방 묻혀버리고 말았다. 바로 저쪽편의 어딘가에서도 누군가의 장난에 깜짝 놀란 누군가가 소리를 지른 탓이었다. 수많은 아이들의 시선이 각자의 진원지로 향했다가 다시 풀어져나간다. 그 사이에 익숙한 모습을 발견한 것은 소영이었다.

 

“저기 미정이다.”

“엥, 어디?”

“진짜네! 쟨 왜 맨날 저렇게 거북목으로 걷는 걸까?”

“몰라. 가서 물어보던가.”

“싫어!”

 

푸하하. 지현의 투정 섞인 목소리에 유나와 소영이 나란히 웃음을 터뜨린다. 그 옆자리를 다른 아이들이 스쳐지나가며 잠시 흘끗거렸지만 금방 떨어져나갔다. 문제의 인물인 미정은 지현의 무리가 있는 자리보다 반 바퀴 정도 앞선 자리에서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말마따나 살짝 구부정한 자세가 눈에 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나가 짐짓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우리 반 이번 달 거지왕도 미정이가 될 것 같지?”

“쟨 뭘 샀다는 말이 없잖아. 맨날 단톡방 메시지만 읽던데?”

“으, 음침해. 무슨 고등학생이 노트 하나 안 사냐?”

“냅둬. 전에 지현이가 그거 물어본 날에 하루종일 입 댓발로 튀어나와있던 거 봤잖아?”

 

유나가 입술을 넙죽하게 삐죽이며 눈을 데룩데룩 굴린다. 지현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만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들이 웃는 일이야 예사라지만 온 운동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요란한 소리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아이도 여럿이었다. 그 웃음소리에 자기가 머쓱해졌는지 얼른 입술을 제자리로 되돌린 유나가 지현의 어깨를 꼬집었다.

 

“지현! 왜 이렇게 크게 웃냐? 방정맞게!”

“미안미안! 근데 진짜 너무 똑같아!”

 

지현이 유나를 따라하듯 입술을 넙죽하게 삐죽이고는 깔깔 웃는다. 두 명의 아이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다가 별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고는 운동장의 외곽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정은 여전히 저 먼 자리에서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었다. 그 등을 향해 지현을 포함한 세 명의 시선이 쏟아졌다.

 

“샀는데 안 산 척 하는 걸까, 아니면 진짜 안 사는 걸까?”

“글쎄. 전에 매점 갔으면서 안 올린 거 걸린 뒤로는 매점도 안 가던데.”

 

미정아! 너 어제 매점에서 딸기샌드 빵 사먹었지? 왜 안 올려??

미안. 딸기샌드빵 샀어. -1,000원

괜찮아! 우리 미정이 많이 배고팠나보다! 다음부터는 배고파도 까먹지 말고 꼭 올려!

미정아 배고프면 말해! 우리 과자 나눠줄게!

미정이는 몸도 크니까 많이 먹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독하다 독해. 나 같으면 그냥 빵 하나 샀다고 올리고 말텐데.”

“맞아. 우리가 미정이 소비품목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피드백해주는데 뭐가 불만이람?”

 

 

'다있어'에서 볼펜 구매. -1,000원

미정! 볼펜 없어? 없으면 말하지! 우리가 빌려줄 텐데!

미정이 볼펜 샀구나! 맨날 공책에 낙서해서 빨리 닳는 건가?

얘들아 미정이 민망하겠다! 그만 놀려! 사람이 볼펜 살 수도 있지!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걔가 워낙에 수줍음이 많잖아.”

 

유나의 말에 지현은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그 사이 운동장을 걸어가던 미정이 어딘가에 발끝이 걸려 크게 휘청였다. 순간 허우적거리던 미정이 균형을 잡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본 아이들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본 것을 장난스레 공유하려는 눈빛이 오가고 미정의 모습이 아주 약간 멀어진다. 끝내 웃음을 참지 못한 것은 지현이었다.

 

“미정아! 조심해야지!”

 

멀리 걸어가던 등이 움찔 멈춰서더니 머뭇머뭇 뒤를 돌아본다. 거리는 멀었으나 확실히 고개는 이쪽을 향한 상태였다. 지현은 자신의 친구 두 명을 거느린 채 이쪽을 돌아보는 미정을 향해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그러다 병원비 나가겠어!”

 

미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정과 지현의 무리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우와, 완전 무시. 소연이 짧뚱한 말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유나가 코웃음을 쳤다. 다분히 감정이 섞인 숨결이었다.

 

“우리가 어지간히도 싫은가보다?”

“너무 화내지 마, 유나야. 미정이도 다 생각이 있겠지.”

“지현이 넌 성격도 좋다. 어떻게 저걸 하나하나 다 참아 주냐?”

 

혀 차는 소리가 선명하다. 미정의 등이 조금 멈칫한 것도 같다. 지현은 그 모습을 느긋하게 쳐다보았다.

 

“미정이가 좀 서툴러서 그래. 어쩌겠어?”

“막말로 고등학교 2학년이 애도 아니고 뭐 저리 부루퉁하게 굴어? 게다가 매달마다 거지왕으로 뽑혀서 소비왕인 애가 소원도 하나씩 들어주는데!”

“에이, 그러지 마. 미정이가 일부러 그러는 거겠어? 그냥 자주 까먹는 거겠지.”

 

마지막에 덧붙여진 말은 다분히 어떤 방향성을 내포하고 아이들의 발걸음 운동장의 그늘진 방향으로 향한다. 많은 아이들이 그 그림자에 담궈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햇살 드는 양지로 발을 내딛었다. 그 발끝에 매달린 아이들의 그림자만이 음지의 증거로서 남아있었다.

 

“에휴, 우리 지현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무슨 소리야~. 우리 반 애들 전부 다 착하고 좋은 애들이거든?”

“한 명 빼고 말이지.”

 

지현은 대답하는 대신 눈을 데록데록 굴렸다. 그 얼굴을 본 유나가 지현의 볼을 쿡 찔렀다.

 

“너 왜 그러냐? 좀 수상한데?”

“아냐, 별일 없었어. 진짜로. 특히 미정이랑은 아무 일도 없었어.”

“뭐야, 곽미정이 너한테 뭐 했어?”

“에이, 진짜 별 거 아니라니까. 실은 어제 저녁에….”


야 곽미정! 너 자꾸 돈 쓴 거 안 올리고 숨길거야?

안 숨겼어.

거짓말 하네

너 어제 옆동네에서 떡볶이 사가는 거 다른 애가 봤다는데 왜 안 올려?

[사진]곽미정이 편의점에서 즉석 떡볶이를 사가는 사진이다.   

돈 썼으면 여기 제때제때 올리고 금액 기록해달라고 공지 썼잖아. 반 애들 전부 친목을 다지는 겸 해서 하자는 건데 넌 대체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야? 거지왕 자리가 그렇게 좋아?

씹냐?

곽미정 완전 베짱 장사하네?

와 대박ㅋㅋ

내일 학교에서 기대해라

미안해. 다음부턴 안 그럴게. 정말 미안해.

우리가 널 이제 어떻게 믿어?

진짜 실망이다 곽미정

넌 인간 이하야

잘못했어. 미안해. 용서해줘.

손가락만 놀리면 다냐?

얘들아 그러지 마. 미정이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그렇지 미정아? 어쩌다보니 깜빡한 거지?

…맞아.

봤지 얘들아? 미정이도 실수한 거야. 너무 몰아붙이지 마.

진짜 지현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다.

곽미정, 너 이번에 쟤 덕분에 산 줄 알아라.

또 돈 쓴 거 가지고 장난치면 죽을 줄 알아.

대답 안 해?

응. 알겠어.

 

흥, 쌤통이다. 지현은 샤워를 마친 후 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침 내가 거기에 볼일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우리가 돈 쓴 거 가지고 하나하나 딴지를 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누가 얼마나 돈 쓰는지 알아보자고 하는 건데 멀쩡히 자기 돈 써놓고 슬쩍 묻어가려고 하다니. 설령 부모님 카드를 썼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보고하는게 우리 반의 친목을 위한 일이기도 하잖아? 미정이도 이걸로 좀 정신을 차렸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거지방을 나온 지현은 곧바로 메시지가 들어온 또 다른 방을 터치해 들어갔다. 거기는 곽미정을 제외한 3학년 V반의 모든 인원이 들어와 있는 별도의 단톡방이 있었다.

 

얘들아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 험악해졌지ㅠㅠ

지현이가 왜 사과해! 이건 쟤 잘못이잖아.

맞아. 자기가 쓴 돈을 숨기는 게 잘못이지.

다들 같은 사람이 계속 거지왕 되는 거 봐주고 봐줬는데 솔직히 이건 좀 선 넘었지.

지현이가 미정이 소원 제일 많이 들어줬을텐데 완전 안하무인.

저거 지현이 뜯어먹으려고 저러는 거 아냐?

아냐! 미정이는 맨날 햄버거만 얻어먹고 마는 걸?

으! 곽거지! 졸라 싫어.

거지방이라지만 진짜 거지가 있을 줄은 몰랐다ㅋㅋ

솔직히 쟤가 왜 우리 반인지 모르겠어

너무 화내지 말자. 미정이도 우리반 애잖아!

제발 어디 전학갔으면 좋겠음.

내 말이~

 

단톡방에는 쉴새없이 메시지가 올라온다. 대부분이 예의도 모르고 분수도 모르는 미정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지현은 그 내용에 하나하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손가락으로는 쉴새없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미정이를 두둔하는 내용을 입력했다. 아이들은 그런 지현의 말에 순한 양처럼 굴면서도 이 방에 존재하지 않는 미정을 향해 날카로운 말을 날려댔다.

 

아아, 정말이지 우리 애들은 너무 날카로워.

미정이가 행여 이 방에 있었으면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생각은 그렇게 하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뿌듯한 미소는 감출 수 없는 노릇이다. 지현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하며, 내일은 또 어떤 즐거운 일이 일어날지 상상했다.

 

아주 유쾌했다.

 


 

“지현이? 너 지현이 아냐?”

“어?”

 

설핏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 것은 계산대 뒤쪽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혹시 대학교 동기가 자신을 알아본 건가 싶어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던 지현은 반가운 기분을 느꼈다. 눈앞에는 고등학교 때 전학을 가게 된 이후로 차츰 소식이 끊어졌던 친구 유나가 있었던 것이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올리던 지현은 곧바로 제정신을 차렸다. 지금 이 편의점 계산대 뒤쪽은 자신의 아르바이트 장소였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때 친구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에는 걸맞지 않은 장소였다는 뜻이다.

 

“유나야, 진짜 반가운데 미안. 나 지금 아르바이트 중이라서.”

“괜찮아! 알바 끝나면 내 번호로 연락 한 번 줘! 나 번호 아직 그대로야!”

 

전학으로 헤어진 친구는 다시 만나면 데면데면해지는 경우가 많다던데 유나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지현은 유나의 모습에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며 편의점에서 빵을 사서 나가는 유나의 모습을 배웅했다. 그러나 그와 스쳐지나가듯이 들어온 손님은 더할 나위없는 진상이었고 지현은 손님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몇 십분 내내 죄송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마침내 진상이 나가고 겨우 마감을 쳤을 때는 정규 퇴근 시간을 30분이나 오버한 뒤였다. 그제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난 심야 근무자를 한 번 쏘아보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온 지현은 서둘러 유나의 연락처를 검색한 뒤 메시지를 보냈다.

 

유나! 나 지금 알바 끝났어!

 

하지만 답장은 금방 돌아오지 않는다. 30분 정도 길 한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던 지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메시지 옆의 1 표시를 바라보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답장이 온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지현! 늦어서 미안! 어제 친구들이랑 한 잔 했거든ㅠㅠ

아냐 괜찮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야 잘 지냈지~ 지현이는 어떻게 지냈어?

 

나는

 

키패드를 두드리려던 손가락이 멈춘다. 지현은 제 입술 속살을 지긋이 깨물다가 자신이 사는 원룸을 슬쩍 둘러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약 4년. 재수 끝에 겨우 합격한 대학교 근처 원룸에는 살짝 쿰쿰한 냄새가 감돌았다. 창문 바로 앞에 건물이 자리 잡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거니와 방 자체가 습한 공기를 머금은 탓이었다. 하지만 지현이 이 원룸에 품는 유감의 근본은 자신이 조금만 더 잘 알아보았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미련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솔선해서 이 방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었다.

 

나도 잘 지내고 있지. 요새는 용돈벌이 삼아 알바 하는 중ㅋㅋ

헐 진짜? 지현이 대단하당ㅠㅠ 부모님이 허락하셨어?

 

아니. 사실은 아빠가 전재산 다 끌어모아서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싹 다 말아먹는 바람에 허락받고 할 것도 없어.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려는 말을 억지로 씹어 삼키며 지현은 자신의 근황을 지어냈다. 아직까지 자신을 철부지로 보는 부모님,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한 자취생활, 용돈 벌이로 시작한 아르바이트의 고충 등등. 실제 부모님은 별거 상태고 자신은 재수를 거듭한 끝에 하향지원한 대학교에 겨우 합격했으며 아르바이트 급여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말해서 뭐가 나쁘겠는가?

 

핸드폰 너머의 유나는 지현의 말을 크게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다. 지현과는 달리 재수 없이 한 방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유나는 현재 대학교 2학년생으로서 스킨스쿠버 동아리에 가입한 상태였고 그곳에서 나이가 두 살 많은 남자친구도 생겼다고 한다. 수다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던 유나가 두 사람이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을 올린다. 지현은 그만 이를 세게 악물고 말았다.

 

남친 잘생겼네ㅋㅋ 축하해!

고마워! 참, 미정이도 나랑 같은 대학에 붙었어!

미정이? 곽미정?

맞아, 걔!

 

진짜? 웃긴다. 걔 대학에서도 혹시 똑같은 짓 하고 다녀? 빠른 속도로 키패드를 두드리던 지현은 그 다음에 이어진 문장을 보고 손가락을 멈췄다. 거기에 떠오른 문장은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참, 지현이는 아직 모르겠네? 나 미정이랑 친구 됐어!

뭐?

고등학교 때는 잘 몰랐는데 대학교 와서 보니 얘가 엄청 성실하고 사람도 좋더라고. 이것저것 신세지기도 하고 내가 도와주기도 하면서 지내고 있어!

어, 잘됐다. 미정이 나 있을 땐 친구도 별로 없었잖아.

ㅎㅎ 맞아 그랬지~. 지현이도 미정이랑 만나볼래? 미정이 많이 걱정했잖아.

 

미쳤어? 내가 걜 왜 만나? 습한 공기 속에서 그렇게 답장하려던 지현은 문득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미정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무뚝뚝하던 얼굴, 구부정한 자세, 우물거리는 목소리. 그런 모습이 고작 4년이 지났다고 변했을까? 대답은 자연스럽게 ‘아니오’로 기울었고 지현은 언젠가 자신이 지었던 미소를 그대로 지으며 키패드를 두드렸다.

 

그래! 한 번 만나자. 나도 미정이 보고 싶어.

 

유나는 그 말을 허투루 흘려듣지 않았고 그 일주일 후에 미정이와 유나, 그리고 지현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었고 지현이 쓰고 가던 비닐우산은 중간에 세찬 바람을 맞고 망가졌다. 편의점까지 종종걸음으로 뛰어 들어가 우산을 사긴 했으나 지현이 야심차게 입은 하늘색 상의에 번진 물자국은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말라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지현은 상황을 크게 비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만날 상대는 미정이었으니까.

 

“오랜만이야, 지현아.”

 

미정이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체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 덩치와 목소리는 그대로인데도 묘하게 당당해진 미정의 모습은 단톡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얻어맞던 과거의 미정과 사뭇 달라보였다. 입고 있는 옷은 깔끔하니 단정했고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힘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음침하던 곽미정이 대체 무슨 사기를 친 거야?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것은 순전히 지현의 자제심이 활약한 덕분이었다.

 

“너… 너 몰라보게 변했다. 깜짝 놀랐어.”

“그래? 그렇게 많이 변하지도 않았는데.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

“미정이가 지현이 너를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아? 우리 진짜 사이좋았잖아!”

 

지현은 그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 우린 사이가 좋았지. 아주 좋았잖아. 안 그래? 지나간 과거의 일을 정리하는 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생각해보면 그때 자신이 적절한 자극을 준 덕에 미정이가 이렇게까지 변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현은 제 머리 속의 결론에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과 추억담을 나누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야기가 툭하면 유나와 미정의 스킨스쿠버 동아리 이야기로 튕겨나간 까닭이었다.

 

“그래서 전에 유나 남자친구가….”

“어우, 그건 말하지 말라니까!”

 

‘그게’ 뭔데? ‘전에’는 언제인데?

 

“두 사람 진짜 친해졌나보네?”

 

목소리가 살짝 뒤틀린 기색을 띈 것은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나도 미정도 그 미묘한 차이를 눈치 챈 기색은 없었다. 단지 깔끔한 옷을 입은 미정이 앗차, 하는 얼굴로 입가를 가렸을 뿐이다. 지현은 그 동작이 한없이 가증스럽다고 여겼으나 가까스로 미소 지은 얼굴을 유지하며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미안해, 지현이가 지루했겠다. 맨날 유나랑 얘기하던 버릇이 들어서….”

“에이~ 그런 걸로 화낼 정도로 쪼잔할 지현이가 아니지!”

 

닥쳐. 너 그 계집애가 더럽고 재수 없다고 나랑 뒷담까던 건 언제고 이제 와서 걔한테 딱 달라붙어 있는 거야? 그 계집애 나한테 소원도 제대로 말 못 하고 내가 사주는 제일 싼 햄버거나 꾸역꾸역 먹어대던 애인데.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감추기 위해 슬쩍 볼을 매만진 지현은 속으로 참을 인자를 되새기며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소영이랑은 같이 안 지내?”

“소영이는 지금 해외 언어연수 가서 못 만나.”

“…아, 그…렇구나.”

“지현이도 해외 연수 갈 생각 없어?”

 

나는 내년 쯤에 갈 생각이거든! 천진난만한 얼굴로 말하는 유나의 얼굴에 자기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끼얹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으며, 지현은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를 냈다.

 

“난 아직은 생각이 없어.”

“왜? 슬슬 준비해야지 취업에 도움이 될 텐데!”

 

숨통이 조이는 기분이 든다. 할 말이 없어 카페 여기저기를 빠르게 눈으로 훑던 지현의 시선이 문득 미정의 시선과 마주쳤다. 자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흑갈색의 눈동자. 하지만 그 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미정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의례적인 미소가 아니라 상대의 안쪽에 가라앉은 갈급한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지현이는 다른 생각이 있나봐.”

“맞다! 지현이네 아빠 사업가셨지? 내가 너무 아는 체를 했네.”

 

유나가 밝은 목소리로 웃는다. 지현은 그 이상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대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카페의 화장실은 마구잡이로 구겨진 지현의 자존심과 정반대로 아주 깨끗했고 거울도 깔끔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지현은 차마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나갈까 고함을 지르지도 못하고 변기에 앉은 채 입슬을 짓씹어댔다. 결국 지현이 품은 대부분의 감정은 목 아래로 고요히 삭혀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당연하다. 어떻게 저 얼굴들에 대고 우리집이 아주 폭삭 망했으며 이제는 내 앞길도 깜깜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곽미정, 그 계집애가 방금 자신을 보던 눈빛은….

 

쾅, 하고 신발 밑창이 반지르르한 타일에 부딪친다. 애꿎은 발바닥만 아프도록 발길질을 해대다 밖으로 나온 지현은 자리에 앉아있던 유나와 미정 두 사람이 무언가를 함께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둘 중 한 사람의 핸드폰으로 추정되는 물건이었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 걸로 보면 유튜브 영상은 아닌 것 같았다. 둘이서 무슨 작당이라도 하는 건가. 지현이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다가가는 것과 동시에 유나가 고개를 들었다.

 

“지현! 혹시 우리가 하던 절약방 기억해?”

“절약방?”

“그렇게 말하면 지현이는 모를 수도 있겠다. 예전에 네가 하던 거지방 있잖아. 이름만 바꾼 거야.”

 

미정이 담담한 어투로 설명하는 사이 복도쪽 자리에 앉아있던 유나가 지현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익숙한 단톡방의 형태를 한 그곳에 사람들의 말풍선이 올라왔다가 새로 올라오는 메시지에 밀려 위로 사라져갔다. 익숙한 모습을 본 지현의 마음에 약간의 안도감이 돌았다.

 

“아…. 이거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몰랐네.”

“아마 우리 세대 정도만 하고 있을걸?

“너희가 관리하는 거야?”

“아니, 방을 만든 건 다른 사람!”

“그렇구나. 미정이 너, 물건 산 건 제대로 올리고 있어?”

 

지현의 말을 들은 미정이 빙긋 미소지었다.

 

“응. 근데 부끄럽지만 대학생 되고서부터 절약을 잘 못하고 있어. 매번 내가 소비왕 자리를 차지한다니까.”

“미정이 씀씀이가 그만큼 커진 거지! 나도 지지 않는걸!”

 

웃음꽃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한 사람 만이 웃지 못한다. 그 순간 지현은 제 안에서 누군가가 라이터 불을 일으키는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거지방, 소비왕, 거지왕. 그런 단어들이 지현의 머릿속에서 마구 뒤엉켜 휘몰아치는 가운데 미정이 또 다시 지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까 전에 보였던 것과 같은 부드러운 미소로.

 

“나도 거기 들어갈 수 있어?”

 

뱉은 말은 언제나 주워담을 수 없다.

 


 

백화점 쇼핑 -230,000원

허걱

지코님 진짜 통이 크시네용;;

 

자신이 올린 메시지 하나에 술렁이는 채팅방을 바라보며 지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유나와 미정이 있는 절약방 (퍽도 예의바른 이름이다) 에 들어온 지 어언 2주일 째. 이제 이 방에서 가장 많은 지출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지현이었다. 유나나 미정은 감히 다다를 수도 없는 높은 금액을 제 이름 옆에 새기며, 지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짜릿하고 소중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 비싼가요ㅠ 근데 꼭 필요한 물건이었어요

지코님의 소비는 진짜 차원이 다르네요

리얼루요

아니에요 그냥 겸사겸사 용돈에서 쓰는 거에요

이게 용돈이라구요? ㄷㄷ

 

그래. 굉장하지? 나에게 감탄해. 내가 엄청나다고 생각하고 알아서 머리를 조아려! 나는 이 정도 금액은 얼마든지 턱턱 쓸 수 있는 사람이야. 절약이니 뭐니 해도 이만한 금액을 손으로 주무를 수 있다고!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무렵 핸드폰이 진동한다. 또 무슨 악성 스팸인가 싶어 별다른 생각없이 액정을 터치한 지현은 화면에 떠오른 문자의 나열을 보고 얼굴을 확 찌푸렸다.

 

AF신용카드(4***)

석지현님,

4/26 18:54

3개월 할부 230,000원 결제

누적금액 2,764,000원

 

젠장, 누가 돈 안준다고 했어? 뭘 하나하나 내용을 보내오고 난리야! 속으로 욕설을 뱉던 지현이었으나, 결국 그 손끝은 자신이 이용하는 은행 어플로 향했다. 어머니가 보내오는 소정의 생활비와 자신의 아르바이트 대금이 입금되는 통장 잔고는 어딜 어떻게 애써 봐도 이번 달 결제액보다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괜찮아. 어차피 할부로 결제한 것들인걸! 실제로는 이것보다 잘게 쪼개져서 결제될 테니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끝내 신용카드 어플로 들어가 다음 달 결제액을 미리 계산해본 지현의 눈앞에 상상보다 묵직한 금액이 나타났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금액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측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금액이 한 번에 빠져나간다면 다음 달의 지현은 원룸에서 삼시 세 끼 컵라면만 먹고 살아야 할 터였고 절약방에 올릴 소비내역도 급격히 감소할게 틀림없었다. 이따금 만나는 유나나 미정에게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물건들을 반품할 수 없는 지현이 골머리를 앓는 사이, 연신 카드 광고를 띄우던 어플리케이션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 리볼빙?”

 

「카드 대금을 언제든지 원하는 만큼 결제하고 월별 결제 금액을 합리적으로 관리하세요!」 어플에 간단명료하게 정리된 안내 문구를 본 지현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간다. 최소 결제비율이나 적용이자율에 대한 것은 일단 건너뛰고 『리볼빙 상담』 버튼을 누르며, 지현은 과거 자신이 느꼈던 것과 같은 영광이 돌아올 것임을 예감했다.

 

아주 유쾌했다.

 


 

자린고비방 공지사항

 

-자기가 쓴 금액은 단톡으로 공유하고 이름 옆에 누적액 기록해주세요.

-과도한 소비금지! 소비할 때는 꼭 생각하고 또 생각합시다.

-소비왕 뽑지 않습니다. 절약왕 뽑습니다.

-신용카드 리볼빙 금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용~

어서오세영!

저 이런거 처음 해봐서 그러는데

공지사항에 '리볼빙 금지'는 뭔가요?

아 저거요

방장님도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다는데

어떤 사람이 절약방에서 매일같이 카드 긁으면서 자기 소비 과시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리볼빙이어서 카드값이 반 년만에 2천만원을 뚫었다나요

그래서 나중에 소식도 끊기고 실종됐다고 하더라고요

헉;;

그래서 혹시 모르니 조심하라고 붙여놓았다고 하셨어요.

근데 절약방에 들어와서 신카를 그렇게까지 긁어대는 사람이 있나요?

저도 들은 말이긴 한데 진짜 있었던 일이래요.

소비로 자기를 증명하려는 그런 사람이었나 보죠ㅋㅋ

암튼 저희는 절약방이니까 파이팅!

넵!

 


 

지현아

너 괜찮아?

연락도 안 받고 대체 어디 있는지…

네가 그렇게까지 돈을 쓰는데 집착할 줄은 몰랐어

너답다면 너답다고 해야 할까?

친구들끼리도 어쩜 이리 닮았는지….

아무튼, 이거 보고 연락할 수 있으면 연락 줘야 해.

네가 어떤 모습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밥도 못 먹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또 연락할게.

 

미정은 마지막 메세지를 전송한 뒤 고개를 들었다. 시간은 오후였고 하늘은 주홍빛 노을로 곱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상쾌하고 도로를 지나가는 차소리마저 하나의 화음이 되어 흘러간다. 어딜 어떻게 흠잡으려 해도 도저히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한 일상의 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얼마간 신호를 기다리던 미정은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길을 건넜다.

 

자신의 미래를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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