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종말 앞에서 인간은

2023.06.02 01:4706.02

신미래는 지금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곰벌레가 자신의 쌍둥이가 맞는지 의심하고 있다.

 

이름과 나이를 보면 의심할 바 없이 맞는데, 곰벌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며 집을 나간 뒤론 만난 적도 없고 연락조차 한 적 없어 지금의 신현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신미래로선 알 길이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앞에 있는 충인蟲人, 문자 그대로의 벌레 인간은 실험 막바지에 도달했는지 커튼처럼 늘어진 피부가 얼굴을 가려 더욱 알아보기 힘들었다.

 

충인은 화가 가라앉지 않는 듯 연신 씩씩거렸다. 충인이 씩씩거릴 때마다 하나의 덩어리 같은 몸이 들썩였다.

 

 

……신현재 씨?”

 

 

신미래의 부름에 충인이 신미래를 바라봤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바라봤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지, 신미래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저 보이십니까?”

 

 

신미래의 말에 충인의 얼굴이 신미래에게 고정됐다. 충인들은 늘어진 피부가 눈을 가린 탓에 시력이 좋지 않단 말을 들은 적 있다.

 

충인은 한참동안 신미래를 뚫어져라 보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누군가 했더니, 내 동생 아냐?”

 

 

충인의 말에 신미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차라리 신현재가 아니길 바랐다. 충인이 된 건 신현재의 선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창피한 일로 재회하고 싶진 않았다. 피해자의 변호사와 가해자라니. 부모님이 아시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일이었다.

 

충인, 그러니까 신현재는 상대방이 자신의 동생인 걸 알고선 원통 같은 입을 구기듯이 웃었다.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어디 있어, 그지?”

별로 반갑지 않은 우연이네.”

 

 

금세 바뀐 신미래의 태도에도 신현재는 그저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어도 가족은 가족인데, 알아서 잘 해 줄 거라고 믿는다.”

네가 뭘 오해하나 본데, 나 네 변호사 아니고 피해자 분 변호사야.”

 

 

신미래의 말에 신현재가 코웃음을 쳤다.

 

 

그 새끼 피해자가 맞긴 해? 죽을 뻔한 건 난데.”

 

 

충인은 신체적 특성상 이죽거리듯 입술을 구기는 것 외엔 표정을 짓는 게 힘들었다. 그럼에도 신미래는 신현재의 표정이 전부 보였다. 자신을 깔보는 듯한 얼굴, 넌 아무것도 모른다는 업신여김. 그건 신미래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보던 신현재의 특출 난 표정이었다.

 

신현재는 말을 잃은 신미래를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미래를 내려다보는 신현재의 얼굴 근육이 유독 크게 움직였다.

 

 

덕분에 이길 수 있겠어. 고맙다.”

 

 

그때 신현재에게 주먹을 날렸어야 했다고, 신미래는 그러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

 

 

지구 종말과 관련된 이야기는 쉬지 않고 탄생했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종말론에 정확한 근거가 있는지 궁금했다. 어떤 종말론은 고대인들의 달력에서 비롯되었고, 또 어떤 건 천체 현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어떨 땐 유명한 예언자의 예언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종말론 중 그 어느 것도 일치하지 않았다. 하나라도 일치해서 진작 지구가 종말 했다면 충인이 된 신현재와 재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전에 신현재가 곰벌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도, 더 나아가 나와 신현재가 태어나는 일도.

 

올해의 종말론은 수학자의 노트였다. 인류는 수십 년 동안 수십 개의 종말론이 거짓임을 몸소 경험했다. 하지만 매번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맹신했다. 나는 두려워하지도 맹신하지도 않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신현재는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그때도 지금도 걔의 생각을 모르겠다고, 나는 그렇게 답하고 싶다.

 

올 초부터 온갖 곳에서 종말론에 대해 떠들어댔다. 부모님은 이미 수차례 거짓 종말을 경험한 탓인지 종말론에 관심조차 갖지 않았지만, 나와 신현재는 종말론을 맞이하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흥미를 가졌다. 그러나 나는 종말론의 근거를 안 뒤부터 그것이 너무나도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대체 수학자의 비밀의 수가 뭐라고, 그런 건 자기 마음대로 계산하면 그만인데.

 

신현재는 나와 달리 꽤 오랫동안 종말론에 대해 떠들어댔다. 아무래도 맹신하는 쪽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태도와 달리 내가 그 말을 정말 믿느냐고 물을 때마다 신현재는 정색을 하며 장난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꼭 한마디씩 덧붙였다.

 

 

네가 뭘 알겠냐.”

 

 

그건 신현재의 말버릇이었다. 가족들 중 나에게만 그렇게 말했고, 신현재가 밖에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다니는지 모르기 때문에 말버릇이라고 해도 되나 싶지만, 아무튼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신현재에게 그 말을 자주 들었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신현재의 표정은 똑같았다. 나를 깔보고 업신여기는 표정.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충인이 된 뒤에도 그 표정만큼은 여전했다.

 

내 기억 속 신현재는 잘난 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는 걸 좋아했는데, 쌍둥이어도 자신이 오빠라는 자각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내가 법학 전공으로 대학교에 다닐 때도 내 옆에서 꼭 법에 대해 한마디씩 덧붙이며 아는 척을 했다. 자기는 법학 전공도 아니면서. 한 가지 확실한 건 신현재는 늘 나를 이기고 싶어 했다는 거다.

 

나에게 신현재는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신현재에겐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모르겠지만, 신현재가 곰벌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며 집을 나간 뒤로 연락 한 번 되지 않은 걸 보면 그저 그런 관계였을 게 뻔했다. 그리고 나는 신현재와 그저 그런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다.

 

 

 

 

 

 

 

 

 

곰벌레 프로젝트가 나타난 건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무렵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나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과학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과학자의 주장은 이랬다. 올해의 종말론은 다른 종말론들과 달리 과학적인 근거가 있으며, 그 근거를 당장 공개할 순 없지만 해의 마지막 달에 종말을 맞이할 게 분명하다고.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는 종말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지만, 그중에서도 종말에 맞설 수 있는 생명체가 딱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곰벌레라는 거였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곰벌레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뒤로 본 과학자의 모습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터넷 생방송을 통해 자신의 프로젝트를 공개한 과학자는 그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숨기다가 마치 극적인 상황을 계산하기라도 한 듯 그 한마디와 함께 카메라 앞에 나섰다. 과학자는 자신의 말대로 곰벌레가 된 모양인지 동그랗고 울퉁불퉁한 모습이었으며 처진 피부가 얼굴을 가려 입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마저도 인간의 입이라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원통처럼 동그랗고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머리숱이 원래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머리엔 머리카락 대신 더듬이가 달렸고, 손가락이 손톱처럼 뾰족하게 변해 있었다. 그가 원래 사람이었단 증거는 곰벌레처럼 팔다리가 여덟 개인 건 아니라는 점뿐이었다.

 

과학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프로젝트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자랑했지만 과학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몇 없었다. 대부분은 과학자의 말이 허구이며 지금 방송에 나오는 모습도 컴퓨터 그래픽일 거라고 확신했다. 그때 나는 그 방송을 사무장과 함께 보고 있었는데, 나와 사무장의 의견 또한 일치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신현재와 부모님도 그 방송을 봤는지 집으로 퇴근했을 땐 모두 곰벌레가 된 과학자에 대해 얘기 중이었다. 엄마는 그런 것 따위 다 뻥이라 했고, 아빠는 징그럽다며 학을 뗐다. 그리고 신현재는 흥미로워했다.

 

 

근데 재밌을 것 같지 않냐?”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나는 말없이 신현재를 바라봤다. 그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다. 옆에서 신현재의 말을 들은 엄마가 벌레가 되고 싶으면 호적부터 파라고 말했고, 그 말에 신현재가 농담이라고 받아침으로써 상황은 일단락 됐다. 하지만 나는 신현재의 말이 농담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쌍둥이로서의 감이었다.

 

곰벌레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며칠 뒤, 과학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의심하는 게 싫었는지 이번엔 텔레비전 토크쇼에 나와 대대적으로 공포했다. 과학자 혼자 진행했던 인터넷 생방송과 달리 토크쇼엔 다수의 목격자가 존재했고, 그래서인지 그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MC가 물었다. 과학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MC는 상대가 아무리 징그러워도 불쾌한 기색을 숨길 줄 아는 프로였다. 과학자는 아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답했다.

 

 

저처럼 종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곰벌레가 될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처음엔 제 외형에 거부감을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이것 또한 하나의 인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곰벌레는 인간과 달리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인한 생명체입니다. 저는 인간이 종말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곰벌레가 되는 것뿐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하는 과학자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여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도 솔깃할 만큼. 하지만 나는 그것이 조금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설령 종말이 눈앞에 있다 하더라도 벌레는 되고 싶지 않았다.

 

과학자가 뉴스에 나온 뒤부턴 과학자와 곰벌레 프로젝트를 향한 시선이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었다. 후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참여 이유를 가졌지만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가장 컸다. 생각보다 적지 않은 인원이었기에 거의 매일 곰벌레 프로젝트와 관련된 뉴스가 나왔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몇 날 며칠 같은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게 지겹게 느껴졌다. 정말로 사람들이 과학자처럼 곰벌레가 되었을지,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이득을 갖고 있는지, 그런 것 따위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궁금한 건 일련의 사건들이 대체 언제 끝날까 하는 점이었다.

 

다행히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고, 머지않아 곰벌레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과학자도 얼굴을 내비추지 않았다. 더 이상 사람들이 프로젝트에 대해 떠들어대지 않을 때쯤 과학자가 다시 나타났다.

 

곰벌레가 된 사람과 함께.

 

처음 프로젝트를 발표할 때처럼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인터넷 생방송을 했는데,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과학자의 뒤로 여러 명혹은 여러 마리의 곰벌레가 있다는 점이었다. 곰벌레들은 모두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고, 그때 내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신기함도 징그러움도 아닌 공포심이었다. 인간과 다른 신체 구조상 그들과 눈이 마주칠 리 없음에도 꼭 그들이 화면 너머의 나를 빤히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첫 번째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앞으로도 프로젝트는 계속 이어갈 예정이니, 저희와 함께 종말에서 살아남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주저 말고 연락 주세요.”

 

 

과학자는 의기양양하게 말했고, 나는 채팅을 통해 과학자에게 물었다. 왜 프로젝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거냐고, 곰벌레가 되고 싶다면 자기 혼자만 되면 그만일 텐데. 그 질문에 과학자의 더듬이가 쫑긋거렸다.

 

 

저 혼자서는 살아남아 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과학자의 대답은 그 한 마디가 전부였지만, 나는 그에게서 열 마디의 대답을 들은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서 영영 잊힐 것 같던 곰벌레 프로젝트는 첫 번째 실험의 성공으로 인해 잊히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곰벌레로 변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과학자의 말대로 이들을 새로운 인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생겨났다. 과학자 한 사람뿐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곰벌레가 된 이상 다른 사람들이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곰벌레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을 충인(蟲人)’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과학자는 곰벌레가 곤충이나 벌레가 아닌 엄연한 완보 동물이며 그러므로 충인보단 완보인(緩步人)’이란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곰벌레라는 어감을 무시할 수 없어서인지 사람들은 과학자의 주장에도 충인을 고집했고 결국 법적으로도 충인이란 인종명을 사용하기로 정해졌다.

 

신인류의 이름까지 정해졌지만 하루아침에 그들을 가족이나 친구, 동료로 받아들이는 덴 무리가 있었다. 충인들은 온갖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가족들에게 외면을 받는 등 차별을 받았고, 충인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운동까지 확산됐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나도 대부분의 비충인(非蟲人)처럼 충인들을 가깝게 받아들이진 못했는데, 징그럽고 이상한 건 둘째 치고 그들이 은근하게 비충인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충인들은 자신들이 비충인보다 우월하며 결국 이 지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건 자신들이기 때문에 비충인들이 우리를 우러러 봐야 한다고 주장하곤 했다.

 

충인들의 주장이 비충인으로서 불쾌한 것과는 별개로 충인이 비충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실제로 충인들은 곰벌레와 마찬가지로 영하 272도 혹은 영상 150도에서도 버틸 수 있으며 방사능 노출에도 끄떡없었다. 이러한 충인들의 신체 능력이 알려지자 비충인들이 할 수 없던 위험한 일들에 충인들이 투입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 대가로 거액의 돈을 받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거액의 돈이었다. 그 한 가지에 너도나도 충인이 되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리고 더는 자신들을 무시하지 말라며 의기양양하게 구는 충인들이 늘어났다.

 

무시는 자기들이 더 한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때쯤이었다. 신현재가 충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게.

 

부모님은 아들의 충격 선언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예상했던 터라 그러려니 하며 먹던 저녁이나 계속 먹었는데, 엄마는 내 등짝을 때리며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했다.

 

 

충인만 되면 떼돈 벌 수 있다니까! 얘가 벌어 오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냐.”

 

 

신현재도 가만히 있는 나를 걸고 넘어졌다. 그때 나는 이미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는데 남들이 아는 만큼 거액을 버는 게 아님에도 신현재는 내가 수억을 버는 줄 알았다. 내 수입을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기에 신현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지만, 나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믿었다.

 

 

돈 좀 벌겠다고 벌레가 된다고? 제정신이야?”

 

 

보다 못한 아빠가 말했지만 신현재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벌레 아니고 동물이야. 완보 동물.”

어쨌든 인간이 아니라는 거잖아.”

엄연히 충인으로 부르고 있는데.”

충인이든 뭐든 안 된다고!”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신현재는 엄마의 반응에 놀란 듯 말을 더 잇진 않았지만 자신의 다짐을 꺾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날은 그렇게 일단락 됐다.

 

진짜 사건은 며칠 뒤 벌어졌다. 신현재가 집을 나간 것이다.

 

다 큰 성인이 집을 나간 건 가출도 뭣도 아닌 독립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신현재가 투척한 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늘 조마조마했다. 엄마는 연락이 되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는지 나에게 신현재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들들 볶았지만 나 또한 연락이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나에게는 연락할 이유조차 없었다. 어련히 알아서 할 나이인데. 충인이 되는 거에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나이도 아니고. 하지만 엄마의 걱정까지 무시할 순 없었기에 나는 간간이 신현재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딱 한 번 답장이 왔다.

 

 

너보다 더 대단한 사람 돼서 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

 

 

대체 왜 나를 이기려고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지는 대신 부모님에게 연락이라도 한 번 하라고 말했다. 신현재는 답장하지 않았다.

 

 

 

 

 

 

 

 

 

충인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과학자는 종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종말의 가능성보단 눈에 보이는 돈을 위해 충인이 되기 시작했다. 충인의 수가 많아지자 충인들만 할 수 있는 직업들도 생겨났다. 충인들은 화산 속을 탐험하거나 북극과 남극의 바다 속으로 들어갔으며 방사능 유출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기도 했다. 물론 충인들도 불사신이 아니었기에 오랜 시간 위험한 장소에 있을 순 없었지만, 비충인들과 달리 보호 장비 없이도 멀쩡하다는 건 큰 이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위험한 순간이 충인들의 몸속에 독성 물질처럼 쌓였을지도 모른다.

 

과학자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곰벌레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반 년 정도 지났을 무렵 최초의 사건이 일어났다. 충인이 비충인을 폭행한 것이다. 어떤 이유든 폭행은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건 차치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기에 사람들은 범행 동기를 궁금해 했다. 그래서 조사가 끝나고 폴리스 라인 앞에 선 가해자에게 기자들은 가장 먼저 동기를 물었다.

 

 

그 사람이 절 쳐다보는 게 기분 나빠서 때렸습니다.”

 

 

그 순간을 기억한다. 공기조차 멈춘 듯한 분위기. 모든 이들이 눈치를 보는 와중에도 범인 혼자 당당하게 서 있던 그때를 사람들은, 비충인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최초의 사건 이후 충인들이 비충인을 상대로 폭행을 저지르거나 심한 경우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가해자들의 동기는 하나 같이 비슷했다. 저 사람이 나를 쳐다보는 게 기분 나빠서, 지나가다가 툭 쳐서, 나를 무시해서…… 충인들 사이에서 급격하게 나타난 폭력성에 비충인들은 실험의 부작용이 이제야 나타나는 게 아니냐고 따졌지만 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과학자조차 인터뷰를 하러 온 기자가 귀찮게 군단 이유로 그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충인들의 폭력성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몇몇 비충인들은 충인들의 폭력에 반대하는 반충인(反蟲人) 단체를 만들었다. 주된 업무는 충인들에게 피해 입은 비충인들을 돕는 것이었고, 나는 대표의 제안으로 단체의 고문 변호사를 맡았다. 그렇게 수십 건의 사건을 처리하던 중 충인이자 가해자가 된 신현재와 재회하기에 이르렀다.

 

 

*

 

 

저는 그냥 놀랐을 뿐이에요. 그 충인을 해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요.”

 

 

피해자인 서다은은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지만 파르르 떨리는 손까지 감추진 못했다. 신미래는 서다은의 손을 잡아 진정시키는 대신 따뜻한 차를 건넸다. 서다은은 퉁퉁 부은 얼굴로 차를 마시면서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입술 때문에 따끔거리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서다은이 차를 마시며 진정하는 사이 신미래는 피해자의 진술을 곱씹었다.

 

 

저는 그때 퇴근하는 길이었어요.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충인이 제 어깨를 잡아당기는 거예요. 그러더니 하는 말이 제가 자기의 부름을 무시했다며, 왜 사람을 무시하냐고…… 계속 화를 내면서 달려들었어요. 저는 너무 겁이 나고 놀라서 그 충인을 밀쳤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봐요. 그 충인이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한 건 제 잘못이니까…….”

 

 

충인에게는 딱 한 가지 약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넘어졌을 때 혼자서 일어날 수 없단 점이었다. 물론 다른 신체 능력들에 비하면 너무나도 미미한 약점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충인을 일부러 넘어뜨리고 공격할 수 있단 점을 고려해 고의든 실수든 충인을 넘어뜨린 사람은 처벌이 가능하도록 법을 제정했다. 신미래는 지금 그 법을 어떻게든 없애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놀라서 그 충인을 일으킬 생각도 못했는데…… 다행히 주위의 비충인들이 저 대신 그 충인을 일으켰어요. 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충인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는데, 그 충인은……

 

 

신현재는 서다은의 사과를 무시한 채 손부터 날렸으며, 주위 사람들이 말려도 아랑곳 않고 몇 십 분이나 서다은을 폭행했다. 그때 신미래는 서다은의 기억을 억지로 꺼내는 자신이 가해자 같단 생각을 했다.

 

서다은이 돌아간 뒤에도 신미래는 온통 사건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사건 당시 서다은의 공포를 상상해 봤다. 서다은을 폭행하는 신현재의 모습도. 신현재가 왜 서다은을 폭행했는지,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신현재의 폭력성이 실험의 부작용인지는 더더욱. 아마 신현재는 충인이 되지 않았더라도 언제 어딘가에서 비슷한 사건을 저질렀을 거라고, 신미래는 생각했다.

 

 

 

 

 

 

 

 

 

충인의 폭력성과 관련된 최초의 사건 땐 재판장에 방청객이 많았다. 모든 최초는 좋든 싫든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관심은 미지근해졌다. 신미래는 그게 싫었다. 비슷한 사건이 쌓인다는 건 좋지 않은 징조이며,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피해자들의 고통까지 한 데 묶을 수는 없었다.

 

재판장엔 신미래와 서다은이 먼저 도착했다. 신현재는 한참 뒤에야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껄렁거리며 재판장 안으로 들어왔다. 어딘가 모르게 의기양양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피고인 자리에 앉아 자신을 보며 웃는 신현재가 신미래는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재회했을 때 주먹을 날려서 다시는 웃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야 했다.

 

재판은 정확히 오후 한 시에 시작됐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자꾸만 피해자가 피고인을 넘어뜨린 일을 들먹이며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신미래는 속에서 화가 들끓었다. 피고인이 먼저 피해자를 공격적으로 대했고 피고인이 넘어진 일에 대해선 피해자가 뒤늦게나마 사과를 했다고 말했지만, 피고인의 변호사는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를 수십 분간 폭행한 피고인의 죄질은 매우 나쁘다. 그러나 피해자는 충인인 피고인이 넘어졌을 때 혼자서 일어나지 못함을 알면서도 피고인을 넘어뜨리고 방치했다. 이러한 행위는 충인보호법에 의거, 폭행과 동등한 죄로 인정한다. 이에 따라 피고인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방청석에서 항의가 터져 나왔지만 얼마 되지 않은 인원수 탓에 항의는 소음조차 되지 못했다. 판사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피해자는 울었고 신미래는 피해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피고인은 깔깔 웃었다.

 

 

 

 

 

 

 

 

 

알아서 잘 해 줬네?”

 

 

왜 출근하자마자 신현재를 봐야 하는 건지, 신미래는 알 수 없었다.

 

신현재가 이죽거리며 신미래에게 말을 걸었지만, 신미래는 신현재의 말을 무시했다. 대신 내선 전화로 사무장을 불렀다.

 

 

저 없을 땐 손님 들이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게……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들어가셔서요. 힘으로라도 끌고 나오려고 했는데…….

 

 

사무장의 뒷말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충인과 비충인의 힘의 차이를 무시할 순 없었다. 신미래는 알았다고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

 

 

“무례하게 굴기로 작정했나 봐. 예의 없는 건 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넌 오빠한테 재수 없게 말하는 버릇 좀 고쳐라. 진심으로 충고하는 거야.”

 

 

신미래는 코웃음을 쳤다. 나한테 오빠가 어디 있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신미래에게 신현재는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굳이 말해 봤자 신현재의 폭력성만 키우는 꼴이 될 것 같아 코웃음으로 그 한마디를 정리했다.

 

 

용건만 말하고 나가.”

 

 

신미래가 말했다. 마지막 인내심이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항소해 봤자 소용없는 거 알아두라고.”

그걸 여기까지 와서 말한다고.”

 

 

신미래의 말에 신현재가 얼굴을 우그러뜨리며 웃었다.

 

 

내가 너 이긴 것도 알아두고.”

 

 

신미래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신현재의 말을 인정해서도, 신현재에게 진 사실이 분해서도 아니었다. 그 한 가지를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신현재가 불쌍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신현재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연민은 잠깐이다. 신미래는 신현재가 떠난 뒤 사무장에게 다시는 신현재가 자신의 사무실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뒤로 신현재가 신미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신현재가 무죄를 받은 날로부터 2주가 지났다. 신미래는 서다은의 의견에 따라 항소를 준비했다. 신현재는 항소해 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했지만 신미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이 없었다.

 

올해의 종말론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끝나지 않은 재판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소행성의 속도와 방향을 봤을 때 지구와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결코 피할 수 없는 종말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과학자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우주가 입증했다.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을 막는 방법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소행성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소행성이 변덕을 부려 지구를 지나가는 것이었다. 사실상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었다. 그마저도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전문가들이 예측한 종말의 날은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과학자의 말이 현실이 되자 많은 비충인들이 이제라도 충인이 되겠다며 과학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중에서는 반충인 단체에서 활동하는 비충인도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충인이 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과학자는 충인이 되기 위해선 여러 단계를 거쳐야하며 그 단계들을 일주일 안에 끝낼 순 없다고 설명했지만, 이미 종말의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과학자의 말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반복되는 싸움 끝에 결국 과학자는 프로젝트를 폐기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본 충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했다. 아직 종말이 오지 않았음에도.

 

현실이 된 종말론에 세계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미래도 그중 하나였다.

 

신미래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일주일 뒤에 올 종말이 아닌 내일 열릴 항소심이었다. 그건 피해자인 서다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신미래는 소행성이 마음을 바꿔 내일 당장 지구를 향해 날아온다 하더라도 항소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 신미래와 서다은뿐인 듯했다.

 

 

재판 하루 전에 연기 사실을 알려주는 게 어디 있습니까?”

 

 

신미래는 목 끝까지 치민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세계적 재난 사태라서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 모든 공판이 무기한 연기된 상태고요. 만약 일주일 뒤에 지구가 종말하지 않는다면 그때 재판 날짜를 다시 잡아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신미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종말은 종말이고 재판은 재판이다. 일주일 뒤 운 좋게 모두가 살아남아서 다시 재판을 한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해소되지 못한 피해 안에 갇혀 지낸 시간들은 누구도 보상해 주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신미래에게는 법원의 안내가 피해자 따위 안중에도 없단 말처럼 들렸다.

 

신미래를 통해 재판 연기 사실을 알게 된 서다은은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신미래는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만들어낸 고요함이 두 사람을 옥죄었다.

 

 

만약 일주일 뒤에 예정대로 지구가 종말 한다면, 저는 이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건가요?”

 

 

서다은의 목소리가 탁자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신미래는 어떤 대답도 서다은을 편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다은은 신미래의 침묵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았다. 그 어떤 말을 사이에 두고 변호사와 피해자는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내일 2. 대법원 앞에서 재판 연기 불복 시위 예정되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반충인 단체의 대표가 보낸 메시지는 반충인 단체뿐만 아니라 이번 재판 연기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에게 전달됐다. 이대로 손 놓은 채 종말만 기다릴 순 없다고 생각한 대표가 시위를 주도했다. 대표의 결단력에 신미래와 서다은은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는 무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대표는 그렇게 말했지만, 신미래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대법원 앞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모든 이들이 시위를 하기 위해 모인 거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진 않았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곳곳에 배치된 경찰들과 취재를 하러 온 기자들이 많았다. 종말 때문에 재판은 미뤄져도 누군가의 안전과 알 권리는 지켜지는 지금의 사태가 신미래는 우스웠다.

 

시위대의 선두에 선 대표가 확성기를 들고 선창했다.

 

 

일주일 뒤 종말 할 수 있단 가능성 하나로 재판을 연기한 법원의 결정에 우리는 불복한다. 불확실한 종말을 핑계로 피해자들의 호소를 무시하지 마라. 재판을 연기 당한 현 시점이 피해자들에겐 종말이나 마찬가지다! 재판 연기 취소하라!”

 

 

대표의 선창 뒤로 시위대가 외쳤다.

 

 

재판 연기 취소하라!”

 

 

대법원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란스러움에 한 번씩 흘끗거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다들 종말을 앞두고 각자의 삶을 살기 바빠 시위대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종말이 오면 전부 죽을 비충인들 주제에 쓸데없는 짓 한다고 비웃는 충인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꿋꿋이 시위를 했다. 신미래와 서다은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신현재와 눈이 마주쳤다.

 

서다은은 신현재를 보자마자 시위대 뒤쪽으로 몸을 감췄다. 겁을 먹은 게 아니었다. 화가 났다. 뻔뻔한 가해자를 계속 보고 있다간 속에 있던 모든 것을 게워낼 것 같았다. 신미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신미래는 신현재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현재가 자신을, 우리를 더 오래도록 바라보길 원했다. 종말 후에 살아남았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기를 바라며.

 

그러나 신현재는 신미래와 재회했을 때처럼 입이 구겨지도록 웃고선 그 자리를 떠날 뿐이었다.

 

 

 

 

 

 

 

 

 

소행성은 전문가들이 지정한 종말의 날에 맞춰 지구로 날아왔다. 전 세계에서 소행성을 향해 핵폭탄을 발사했지만 어떤 나라도 소행성을 폭발시키진 못했다. 그 후 소행성은 지구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고, 더 이상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비충인들은 종말의 공포에 잠식돼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가만히 종말을 맞이하는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충인들은 지구로 날아오는 소행성을 마치 별똥별을 보듯 감상했다. 그리고 시위대는 끝까지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했다.

 

신미래는 태양보다 커진 소행성을 보며 서다은의 손을 잡았다. 서다은은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다은 씨.”

 

 

신미래가 서다은을 불렀다. 서다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마치 신미래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 그래서 신미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날아오는 소행성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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