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보낸 사람 - 황유석 대리

받는 사람 - 박종훈 이사

날짜/시간 - 20XX/2/20 13:38

 

안녕하세요 사장님.

저는 생산 2팀의 황유석 대리입니다. 사장님께 이렇게 먼저 그리고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건 처음이네요. 사장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편히 말해달라 하셨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회사 일이든 심지어 사적인 고민이든……. 지금이 그때이지 않을까 싶어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는, 생산 2팀에 보름달이 뜨는 이번 주 토요일 날 전원 특근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특근도 사실 불만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팀의 특성상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토요일이나 일요일 특근에 대해 대놓고 가타부타 얘기한 적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래 사원들에게 주임들에게 금방 끝내고 집에 가자, 어쩔 수 없잖냐, 그러니 괜히 힘 빠지는 소리 말고 열심히 일하자, 이렇게 힘을 북돋아주는 역할을 해왔던 게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보름달이 뜨는 날에 출근을 하라니요.

공지를 받자마자 저는 생산 2팀 김 팀장님께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김 팀장님이 늑대인간인 저에게 매우 차별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너만 일하니. 너만 힘들어. 보름달 뜨는 날이 되면 무슨 없던 병이라도 생기냐. 잠깐 늑대로 변했다가 돌아오는 거 아냐? 대체 왜 그렇게 유난이야. 늑대인간이면 다야. 황 대리, 요즘 물량 딸리는 거 뻔히 알면서 왜 그래? 나도 힘들어. 나도 출근하기 싫다구. 아주 개 같다구.”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김 팀장님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김 팀장의 이 말에서 ‘보름달 뜨는 날이 되면 무슨 없던 병이라도 생기냐’, ‘늑대인간이면 다야’라는 말은 엄연히 늑대인간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에 해당합니다. 특히나 ‘개 같다’라는 말을 늑대인간 앞에서 꺼내다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몇 차례 승강이가 이어졌습니다. 김 팀장님께서는 그렇게 싫으면 퇴사하든가 라는 말까지 하더군요.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회사 내에서 벌어진 늑대인간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바, 이렇게 사장님께 직접 메시지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궁금합니다. 보름달이 뜨는 이번 주 토요일 날에 대한 특근 지시는 사장님 선에서 결정된 사항인가요? 아니면 김 팀장님과 강 부장님 선에서 결정된 사항인가요? 어찌 되었든 이 특근 지시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낸 사람 박종훈 이사

받는 사람 황유석 대리

날짜/시간 20XX/2/20 16:22

 

보내준 메시지 잘 읽었네 황 대리.

김 팀장 말로는 화가 많이 났다고 하던데, 일단은 내 얘기를 들어주게나.

자네도 알다시피 회사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 늑대인간에 대한 처우 개선 및 일반 시민의 대한 안전을 고려하여 휴무할 것을 성실히 준수해왔네. 또한 정부의 권고대로 우리 회사는 고용에 있어서 늑대인간을 차별하지도 않았네. 그 결과물이 바로 황 대리 자네 아닌가. 늑대인간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자네를 채용한 것도 회사였고, 또한 능력대로 자네를 빠르게 승진시켜 대리로 올린 것도 바로 회사일세.

자네도 익히 알고 있듯이 김 팀장은 자네의 채용을 극구 반대했네. 김 팀장뿐이겠는가. 대다수의 직원들이 반대했지. 솔직히 나 역시 주저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어. 늑대인간에 대한 숱한 소문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사람을 산채로 잡아먹는다든가, 익힌 고기를 먹지 않는다든가, 매우 비위생적이어서 몸에 벼룩이 많다든가, 작은 것에도 쉽게 흥분해서 대단히 폭력적으로 변한다든가……. 물론 자네를 채용하고 자네를 지켜보면서 그것이 다 편견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네.

하지만 자네를 채용하기 전, 그러니까 3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늑대인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않는가. 절도와 폭행, 납치 등의 특수 범죄로 교도소의 절반을 채우는 게 늑대인간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떼로 몰려다니며 지나가는 선량한 행인에게 구걸이란 명목 하에 금품을 갈취하는 건 아주 사소한 사건에 불과하지.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곧잘 늑대인간들이 서성이곤 한다네. 그들에게는 아주 쓸모 있는 게 넘쳐나는, 환상적인 쓰레기 처리장이 있으니까.

아무튼 회사에서도, 그리고 이 회사를 운영하는 내 입장에서도 자네를 채용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네. 도전이었지. 그리고 나는 이 도전이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네.

자네에게 했다는 김 팀장의 그 차별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내가 직접 김 팀장에게 경고를 하겠네.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해주기를 바라네. 어쨌든 계속 한 팀으로 지낼 사이인데 이 일로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나빠질까 걱정되어서 그러네. 그러니까 김 팀장을 감싸고 도는 게 아니고, 자네를 위해서 그러는 거니 오해하지 말게나.

보름달이 뜨는 이번 주 특근 지시에 대해서는 내 선에서 결정된 사항이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번복될 여지가 없음을 밝히네.

최근 정부의 지침이 어느 정도 완화된 걸 알고 있나? 무조건적인 휴무가 아닌, 회사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휴무 여부를 정할 수 있다는 게 최근 정부의 지침일세. 늑대인간을 고용한 회사에게든 아닌 회사에게든 무조건적인 휴무를 강요하는 게 고용주 입장에서나 영세한 기업 입장에서 과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었더랬지. 또한 늑대인간이 늑대로 변했을 시의 공격성이 일반 시민에게 위협적인 수준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의견도 있었고 말이야. 아무튼 이번 특근 지시는 이러한 정부의 지침에 따라 결정된 사항일세.

물론 낮 동안에 한해서 말이지. 어차피 늑대로 변해버리면 과한 처사든 아니든 위협적이든 아니든, 일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나. 공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번 토요일 특근은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 30분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정확히 명시해놓았네.

황 대리 자네만 출근시키지 말까, 이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야. 하지만 그랬다가는 늑대인간이 아닌 다른 팀원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네. 특혜니 역차별이니, 뒤에서든 앞에서든 말이 많겠지. 이들의 불만이 오롯이 자네에게 돌아갈 게 분명하지 않겠나. 어떻게 보면 내가 자네를 무척 아끼기에 ‘전원’ 출근을 지시한 걸세. 그렇게 생각해주게.

무엇보다, 이번 물량을 최대한 빨리 처내야 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자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회사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겠나. 이번 특근에 대해서는 자네가 너그러이 이해해주기를 바라네.

 

 

 

보낸 사람 황유석 대리

받는 사람 박종훈 이사

날짜/시간 20XX/2/20 21:54

 

답신 감사합니다 사장님.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께 제 얘기를 해드리고 싶어졌습니다. 글이 다소 길어질 수도 있겠습니다. 금일 생산 업무를 마친 후 홀로 사무실에 남아 이 글을 쓰는 중이니,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내로라하는 대학을 우수한 학점으로 졸업한 저였지만 다른 늑대인간들이 그렇듯이 취업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사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늑대인간에 대한 인식이 좀 그러니까요.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사람을 잡아먹는다느니 몸에 벼룩이 많다느니……. 네. 그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대학 동기 중 누군가는 대뜸 이렇게 물어보기도 했지요.

“사람 잡아먹은 적 있어?”

매우 무례한 말이었습니다만, 지극히 차별적인 말이었습니다만, 늑대인간이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게 무례한 말인지 차별인지조차도 모르더군요.

늑대인간도 엄연히 지성을 갖춘 인격체입니다. 돌연변이에 불과할 뿐이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 눈에는 여전히 괴물처럼 보이나 봅니다.

어쨌든, 사람 잡아먹은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생각 때문에 저 역시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이 학벌로 능히 갈 수 있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지 못했습니다. 아.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우리 회사가 훌륭하고 건실한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사장님이 저에게 주신 기회에 늘 감사하는 마음일 따름입니다. 보통 사람들 기준으로 말하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학벌로, 솔직히 말해 중소기업 생산직을 하고 있을 리 없잖습니까.

종종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늑대인간이 교도소의 절반 이상을 채우게 된 게, 떼로 몰려다니며 지나가는 행인 삥이나 뜯고 다니는 정도가 얌전한 늑대인간이라 여겨지는 게, 늑대인간이란 족속 자체가 원래 그런 족속인 걸까. 그게 아니면 그런 족속이라고 섣불리 속단하여 사람들이 꺼리게 되면서 늑대인간들이 그렇게 살게 된 것은 아닐까.

늑대인간 기준으로 보면, 저는 썩 훌륭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졸이나 하면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늑대인간 중에서는 대단히 고학력에 속하고, 직원수 육십 명이나 되는 직장에서 무려 대리라는 직함까지 달다니요. 늑대인간이라고 해서 보통 직원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 건 애석한 일입니다만, 어디 그러지 않는 데가 있던가요. 어쨌든 저보다 더 좋은 대학을 나와 어마어마한 스펙을 쌓은 늑대인간도 저보다 좋은 직장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는 어느 형이 딱 그런 경우인데, 최저임금보다 못한 돈을 받고 어느 빌딩 청소부를 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물론 그 형은 어느 공기업의 늑대인간 할당제만 바라보다가 세월만 잡아먹고 오갈 데 없어져 그리 된 탓도 있지만요.

아무튼, 사장님께서 입사 초부터 지금까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저를 얼마나 챙겨주시는지요. 누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은혜를 입었다 생각하기까지 한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드리는데 보름달이 뜨는 날 출근하라는 지시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재고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최근 정부의 지침이 바뀐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휴무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고용주와 근로자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장님께서는 근로자 간의 합의를 마치셨는지요. 무엇보다 회사 근로자 중 유일한 늑대인간인 저와 합의를 하셨는지요.

그리고 사장님께서는 ‘낮 동안’에 한해서 근무하면 문제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퇴근하여 귀가하는 시간은 미처 생각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회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한다하면, 제가 집에 도착하는 시각은 6시 30분이 됩니다. 아직 겨울이어서 해가 짧습니다. 그때쯤이라면 해가 지고도 충분할 시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의 변신은 해가 저물자마자 이뤄질 것입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늑대로 변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정말로 싫습니다.

사장님께서는 늑대인간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실 테죠. 늑대인간이 아니니까요. 늑대인간들은 보통 두 부류로 나뉩니다. 늑대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거나, 혹은 부끄러워하거나. 애석하게도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그것도 매우, 지극히, 몹시도 부끄러워합니다.

늑대인간의 사회화 작업이 13세기 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건 알고 계시겠지요. 사나운 늑대인간은 추방하고 온순한 늑대인간들끼리 혼인시키기를 거듭한 결과, 일반 시민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지금의 늑대인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잘 모르더군요. 늑대인간 역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잘 모르더랍니다. 실은 관심조차 없는 경우도 많고요. 사나운 늑대인간과 온순한 늑대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은 단순하고 무식하게도, 그 생김새에 기초를 두었더랍니다. 덩치가 크고 이빨이 단검처럼 예리하면, 한마디로 말해 위협적이다 싶으면 사나운 늑대인간이다 하여 추방했습니다. 말이 추방이지 실은 죽게 놔두는 거였죠. 그리고 덩치가 작고 위협적이지 않다 싶으면 온순한 늑대인간이다 하여 살려두고 교배를 시켰던 겁니다. 혼인이 아닌 교배를요.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듭하고 거듭한 결과, 늑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웬 자그마한 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그마한 개입니다. 19세기에 들어서 견종 개량 열풍이 불면서 자연스레 늑대인간의 ‘인종 개량’ 또한 활발히 이루어졌답니다. 그때만 해도 늑대인간을 완전히 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었죠. 흑인 노예와 비슷한 취급을 받던 게 우리 늑대인간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흑인만도 못했죠. 흑인보다 10년이나 늦게 투표권을 얻게 되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그런 끔직한 짓을, ‘근친 교배’를 자행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늑대인간은 요즘의 개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이 늑대인간이지 실은 개인간이 되어버린 셈이지요. 말티즈인간, 푸들인간, 치와와인간, 포메라니안인간……. 사실 이렇게 불러야 정확할 겁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늑대인간들은 자기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는 늑대인간으로, 아직 늑대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말티즈인간으로 사는 게 얼마나 비극인지 말입니다.

늑대인간들끼리도 소위 말해 ‘계급’이란 게 있습니다. 참 웃기지요. 오랜 세월 차별받아온 늑대인간이 저들끼리 급을 나누고 서로를 차별한다니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하는 게 ‘인간’의 속성이지 싶습니다.

아무튼 이 ‘계급’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자면, 늑대의 모습을 잃지 않은 늑대인간이 늑대인간 사회에선 최상위 계급에 속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진정한 늑대인간’, ‘야만적인 늑대인간’이라 칭하며 으스댄답니다. ‘인종 개량’되어 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갖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운이 좋아 시베리안 허스키인간, 블러드하운드인간이 된 늑대인간이 중간 정도 계급을 갖습니다. 그리고 말티즈인간이나 치와와인간이나 포메라니안인간은 늑대인간 사회에서는 최하위에 속하는 계급으로, 이쪽에서는 ‘늑대인간’이라 쳐주지도 않는답니다. 이쪽 세계에서 말티즈인간으로 산다는 건 속되게 말해 ‘개새끼’ 취급을 받는 거랍니다.

늑대인간들끼리의 이런 유치한 계급 놀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있었던 일인지라, 이게 잘못된 것인 줄 알면서도 말티즈인간 같은 최하급 늑대인간은 어려서부터 관성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유년기의 기억이란 게 참으로 지독한 거더군요.

요즘 티브이에 나오는 늑대인간을 보면 더욱이 그럴 수밖에 없죠. 거친 갈색 털에 우람한 몸체, 다부진 근육,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붉게 빛나는 사나운 눈……. 어떻게 보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늑대인간들끼리의 차별을 조장하는 것 같더군요. 의도했을 리는 없겠지만.

생각해보건대 우스운 노릇이죠. 야만적이라 하여 추방하였던 그때 그 늑대의 모습이 이제 와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멋들어지게 포장되어 소비되고 있다니요.

그리하여 거친 갈색 털도 없고 우람한 몸체도 아닌 늑대인간은, ‘개새끼’라 불리는 자그마한 늑대인간은 보름달을 두려워한답니다. 그리고 변신한 자신의 모습이 혹여나 남들 눈에 띄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방 안에 틀어박혀 하염없이 울기만 하죠. 그렇습니다. 웁니다. 그런 늑대인간들에게 보름달이 뜨는 날이란 태어날 때부터 이리 태어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우는 날인 겁니다. 말티즈로 변한 모습을 하고서 말입니다.

“이토록 작고 보잘것없는 늑대라니. 이토록 부드러운 하얀 털이라니. 이토록 작고 뭉툭한 이빨이라니. 난 늑대도 아니야. 늑대는 무슨. 개새끼에 불과한걸!”

이런 말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불운하게도, 바로 제가 그 방 안에 틀어박혀 홀로 울고 있던 말티즈랍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지요. 비단 저뿐만이 아닙니다. 전체 늑대인간 중 상위 23%에 속하는 ‘진정한 늑대인간’과 블러드하운드인간 등을 제외한 77%의 늑대인간에게 보름달이 뜨는 날은 바로 그런 날이랍니다.

이제 사장님께서는 제가 왜 이렇게 개인적으로 메시지까지 보내면서까지 이 특근 지시에 대해 거듭 재고를 부탁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결국 이렇게 장문의 글이 되어버렸네요. 바쁘신데 시간을 많이 뺏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모쪼록 부탁드리겠습니다.

 

 

 

보낸 사람 박종훈 이사

받는 사람 황유석 대리

날짜/시간 20XX/2/21 17:41

 

나에게 어려운 얘기를 해주어서 고맙네 황 대리. 사연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어.

내부에서 논의한 결과, 황 대리에 한해서만 이번 주 토요일 특근 근무 시간을 오전 7시에서 오후 4시 30분으로 조정하기로 결정했다네. 출근시간이 다소 이르긴 하지만 감수해주길 바라네. 어쨌든 퇴근하여 귀가하는 한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해가 지지는 않지 않겠나.

나로서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네. 앞서 말했듯이,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지금 들어온 주문량, 어떻게든 다음 주 말까지는 쳐내야 해. 명심해두게.

그럼 수고해줘.

 

 

 

보낸 사람 황유석 대리

받는 사람 박종훈 이사

날짜/시간 20XX/2/27 10:54

 

안녕하세요 사장님.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마지막이 되겠네요. 우선 그동안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회사에서는 저에게 금일부로 3개월 간 정직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처분 역시 사장님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이겠죠.

하지만 제 결정은 퇴사입니다. 김 팀장이 병가 중이어서, 부득이 인사과 과장님께 사직서를 제출해둔 상태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참을 수 없습니다. 바쁜 때인 건 압니다만, 이해 부탁드립니다.

토요일 날 일어난 일은 모두 제 잘못이 맞습니다. 제가 참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보낼 때, 사장님이 그 내용을 김 팀장과 공유할 것이라는 걸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어느 특별한 팀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팀장이 알고 있어야 하겠지요. 사장님께서는 김 팀장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그에 대해 의논했겠죠. 제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어보니 제가 보름달이 되면 말티즈로 변한다는 사실을 비밀로 지켜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더군요.

사건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작업 중 김 팀장이 먼저 시비를 걸었습니다. 갑자기 작동이 정지된 장비를 손보던 중 김 팀장이 느닷없이 나타나 저보고 말티즈인간이라고 하며 놀려댔습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팀원들이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늘 밤 우리 황 대리 산책시켜줄 사람?”

그래서 김 팀장에게 달려들어 그의 허벅다리를 물어뜯었습니다. 그러면 안 되었는데, 참지 못했습니다.

늑대인간에 대한 숱한 오해들 중 하나가 전염성인데, 전염성은 전혀 없습니다. 어디에서 그런 오해가 비롯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습니다. 김 팀장에게도 전화 통화로 사과의 말과 함께 그 사실을 알렸는데 여전히 걱정하는 눈치더군요. 혹시나 사장님께서도 오해하실까봐 거듭 알려드리는데, 전염성이 있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에 불과하답니다.

그리고 늑대로 변했을 때에도, 정확히 말해 말티즈로 변했을 때에도 제 이는 날카롭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의 모습일 때 물어뜯었으니 엄청나게 커다란 사고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사람이 홧김에 물었다, 근데 조금 세게 물었다,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김 팀장이 말하는 것처럼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엄살임을 알려드립니다.

어쨌든 모든 게 다 제 잘못입니다.

대체 왜 물어뜯었을까요. 주먹질을 했으면 어떠했을까요. 차라리 나앗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본능에 따랐을까요. 늑대의 습성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걸까요.

제가 보름달이 뜨면 말티즈로 변신한다는 사실도 까발려진 마당에 그렇게 사람을 물어뜯었으니, 팀원을 비롯하여 회사 직원들 모두가 저를 버릇없는 개새끼 취급을 하겠지요. 그래서 여기서 단 한 시라도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데 배를 떠나게 된 데에, 팀장도 병원에 실려 간 마당에 대리인 제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팀을 떠나게 된 데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김 팀장을 물어뜯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날, 김 탐장을 물어뜯은 그날 하얗고 자그마한 말티즈로 변신한 저는 방 안에 틀어박혀 정말이지 오랜만에 울었답니다. 그렇게 구슬프게 운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왜 그랬을까요.

저에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늑대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고 있노라고요. 그리고 저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 그리고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이렇게 생각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같이 일해 보니까 일도 잘하고 괜찮네. 늑대인간이라고 해서 아주 몹쓸 건 아닌가봐. 이 세상엔 좋은 늑대인간도 있는 거야.”

저의 자부심, 그리고 제가 품은 소망이 한순간의 실수로 모두 끝장이 난 셈입니다. 김 팀장의 허벅다리를 물어뜯음으로써 말입니다.

그래도 이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했습니다. 비록 김 팀장과의 관계가 썩 좋지는 못했지만 다른 팀원들과는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생각합니다. 늑대인간인 제가 무려 직원수 육십 명이나 되는 회사를 다니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하기도 했지요. 만약 김 팀장을 물어뜯지 않았더라면, 정말이지 이 회사에 뼈를 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감사하다는 말과 더불어 죄송하다는 말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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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2 단편 종말 앞에서 인간은 천가연 2023.06.02 0
2841 단편 명과 암 기막준 2023.05.28 0
2840 단편 루틴 아르궅 2023.05.21 0
단편 생산 2팀 황유석 대리의 퇴사 사유 박낙타 2023.05.19 1
2838 단편 로보 김성호 2023.05.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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