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첩자 3일

2023.09.23 15:5809.23

 

1

<조선 말기 철종>

 

밀고자는 스승을 몰래 찾아갔다.

-스승님! 일이 쉽게 잘 풀릴 것 같습니다. 천신보살이 역모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역모? 어허! 그거 잘 됐구나! 우리가 굳이 힘쓸 필요가 없겠구나.- 스승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병조판서의 집>

 

-다들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지요? 금위영 대장은 실수가 없도록 하시오!-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병조판서 나으리!-

긴 탁자에 여러 명의 주동 인물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굳은 결의를 보여주듯 입을 꽉 다문 채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다다다다.. 문밖에서 점점 커지는 발걸음 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나으리! 서천이옵니다.- 병조판서의 연락책이었다.

-들어오너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어 제쳤다. 인사는 하는둥마는둥 병조판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뭣이?? 역모??-

다들 역모란 말에 뜨끔하여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보다 먼저 역모를 꾀한다는 놈들이 있다는 전갈이오!-

-네에??- 다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누가 우리보다 먼저 역모를 꾀한단 말입니까?- 어영청 대장이 물었다.

-어떤 밀고자가 털어 놓았다 하오. 무당이 가담했다고 하던데, 자세한 건 다음에 얘기하고 우선 전하께 아뢰고 당장 역모자를 잡아드릴 것이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빨리 돌아갑시다.-

다들 서둘러 빠져나갔다.

 

병조판서가 전하께 알리자 의금부의 금부도사가 역모자를 비밀리에 잡아들였다. 해질 무렵 역모자를 의금부의 공개 장소가 아닌 외진 장소 마당에 꿇어 앉혔다. 금부도사가 아래 위를 훑어 내렸다.

-천신보살 네 이년! 감히 무속인 주제에 역모자와 결탁하다니!! 무당이 권력에 맛을 들였구나!-

-어서 죽여라! 이미 내 아들은 얼마 전 민란 주동자로 처형당했다. 더 이상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천신보살의 얼굴과 목은 붉게 달아올랐다.

병조판서도 천신보살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죽이긴 왜 죽여. 문초를 해서 배후를 알아내야지. 뭣들 하느냐? 어서 준비해라!-

-네!-

-어차피 역모할 사람은 많으니라. 지금 나라가 이 꼴인데 역모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병조판서 당신도 역모할 것이란 걸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금부도사는 못 들은 척했다. 병조판서는 잠시 숨이 멈췄다.

-저 년이! 죽을때가 되니 해괴망칙한 말을 하는구나!, 어서 인두를 대령하라!!-

큰 쇠화로에 붉게 달궈진 인두가 꽂혀서 나왔다. 날이 어두워지니 인두는 더욱 붉게 보였다.

병조판서가 직접 인두를 들더니 천신보살 얼굴로 가져갔다.

-빨리 배후를 말하거라!-

-내가 주동자다! 어서 죽여라!- 보살의 목에 힘줄은 잔뜩 불거져 있었다.

-소원대로 해주지.-

시뻘겋게 달궈진 인두는 보살의 얼굴을 향했다. 눈속에 비친 인두는 점점 커지고 붉어졌다.

-불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뒤쪽 창고쪽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금부도사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최소 인원만 남고 어서 불을 끄도록 하라!!-

의금부에 있던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물동이를 들고 물을 퍼날라 불끄기 바빴다.

-침입자다!!-

바깥에 한 병사가 지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침입자들은 들키는 바람에 제대로 조준도 하지 못하고 활 시위를 당겼다.

“슉, 퍽!, 슉 퍽!, 슉 퍽!.....”

화살이 이리저리 날아들었다.

“흑!”

인두를 들고 있던 병조판서도 오른쪽 팔에 화살이 맞았고, 옆에 있던 병사들은 하나 둘 쓰러졌다. 곧이어 수 십명의 침입자가 기습을 했다. 무사들은 몇 안 되는 병사들을 쓰러뜨렸고, 금부도사는 병조판서를 뒷문으로 데리고 빠져 나갔다.

침입자 소식을 듣고 병사들이 다시 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불을 끈다고 힘이 빠진터라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다. 무사들은 천신보살을 말에 태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져 나갔다.

 

<창덕궁 인정전>

 

-병조판서 대감, 침입자가 무당을 데려갔다는 게 사실이오?- 왕은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어 물었다.

-네 전하. 밀고자가 있으니 다시 잡아들이면 될 것 같사옵니다. 너무 심려마시옵소서.-

병조판서 오른쪽 팔은 하얀 천으로 감겨 있었다.

-그 밀고자가 누구요?- 왕은 얼굴을 내밀어 물었다.

-그건 아직 말씀 드릴수가 없습니다. 황송하옵니다. 전하- 병조판서는 고개를 조아렸다.

-아, 함부로 발설하면 안 되겠군요. 어쨌든 밀고자가 있어 다행이오.- 왕은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근데 전하, 우리쪽에서도 첩자가 있습니다.-

-뭐라? 첩자가? 그게 누구란 말이오?- 이번엔 입을 벌린 채 몸을 뒤로 기댔다.

-그건 아직 잘 모릅니다. 무당을 비밀리에 잡아 왔는데 어찌 알고 침입해서는 다시 데려 갔습니다. 누군가 알려준 게 틀림없습니다.- 병조판서는 고개를 들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모두가 못난 내 탓이오. 너도나도 역모하려니 참!- 왕은 의자 팔걸이를 살짝 내리쳤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밀고자를 잘 구슬려서 첩자로 심어 두면 별일 없을 것입니다. 전하.-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왕이 저리 나약하고 무능하니 역모할 수밖에..’

 

<인왕산 천목현의 거처>

 

방에는 천목현, 천목천 형제, 천목현의 제자 윤 천, 박차현, 최강추, 영의정의 수하 최 한이 있었다. 천목현은 재야 선비로 왕이 벼슬을 주고 가까이 하려 했다. 하지만 목현이 추구하는 정치 방향과 달라서 정중히 거절하고 산속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학식과 덕망이 뛰어나 나라를 잘 다스리라 생각했지만 목현 본인이 하기 싫어하니 어쩔수 없었다.

-천신보살님은 괜찮다 하더냐?-

-네. 스승님.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뻔 했습니다. 보살님이 들켰으니 당분간 거처를 여기 인왕산 산속으로 옮겼습니다.- 제자 윤 천이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쪽에 첩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 목현의 가는 눈에 힘이 들어가니 눈빛이 더욱 날카로웠다.

-네. 그나마 다행히 우리 중에는 없고 흩어져 있는 조직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여기에 있었다면 천신보살집을 찾아가지 않고 바로 여기로 왔겠지요.- 박차현도 거들었다.

-아마 천신보살이 있는 조직속에 있겠지. 우리도 첩자를 찾아야 하고 저쪽도 첩자를 찾고 있겠군.-

-큰 일을 빨리 서둘러야 하겠습니다.- 박차현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병조판서의 집>

 

사랑채에는 병조판서와 검은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밀고자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묻겠다. 그쪽을 배신하고 우리한테 밀고하려는 의도가 무엇이냐?-

-그럼 저도 직접적으로 답해 드리겠습니다. 명예와 권력이지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명예와 권력?- 병조판서는 이 말이 익숙했다.

-제 스승님을 천거하시고 신변을 보장해 주시면 됩니다.-

-스승?-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돌려 의아한 눈빛을 했다.

밀고자는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음... 스승이 야심이 크구나. 주동자만 잡는다면 그리하겠다고 전하거라. 그리고 내 책사로 쓰겠다고 하거라. 우린 진짜 주동자를 찾고 싶으니 그 무당보단 주동자를 알아냈을 때 그때 알려주면 된다.-

-네.-

 

<인왕산 천신보살의 거처>

 

천신보살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누가 밀고를 했단 말인가?’

주변 인물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역모의 수장인 천목현을 모르는 걸 보면 천목현쪽 사람은 아닐테고 분명 자기 주변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애기선녀, 무화선녀.

제자로 올 때부터 둘다 유심히 봐 왔다. 애기선녀는 아주 맑고 사심이 없는 아이였다. 무화선녀도 사주와 영적인 눈으로 관상을 봤지만 배신할 상은 아니었다. 단지 사주를 봤을때 처음에 알 수 없는 기운이어서 애매모호한 건 있었다. 원래 갓신내림 받은 무당은 기운 자체가 남달라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애기선녀가 무화선녀보다 조금 더 뛰어나 무화선녀는 질투심도 있는 듯 했다.

 

-내 지금 수하들을 한 번에 다 봐야겠다.-

-그럼 밀고자가 또 여길 밀고할 수도 있잖아요. 스승님.- 애기선녀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내려가서 밀고자를 찾을 것이다. 여기 이 장소는 절대 비밀이다. 넌 지금 내려가서 예전 그 장소에 다 모이도록 전갈을 넣어라!-

-스승님, 다 모이게 할 필요없이 저희의 일을 잘 알고 있는 몇 명만 모이면 되지 않을까요? 나머지 고을 연락책까지 불러 모으면 스승님이 더 위험할 것 같습니다.- 무화선녀도 걱정스럽게 말했다.

-음... 좋다. 우리 일을 잘 알고 있는 그 다섯 명만 불러모아라. 대신 불러 모은 이유는 설명하지 말거라.- 보살은 나갈 채비를 했다.

 

몇 시간 뒤 천신보살은 예전 장소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석천, 달평, 상풍, 구화, 경촌 다섯명이 보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배신할 상은 아무도 없었다. 중요한 일을 맡겼는데 혹시나 잘못 봤을까봐 다시 확인차 온 것이다.

다섯 명은 왜 불렀는지 연유를 모른 채 나름 긴장하고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석천..., 달평...., 상풍...., 구화...., 자기 차례가 올수록 경촌은 다리가 부들거리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고개를 숙인 채 눈꼬리만 힐끗 들어 보살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런 행동을 보살은 파악하고 경촌을 좀 더 자세히 보았다. 또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보살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경촌은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죽을 죄라니?- 보살은 드디어 놈을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만 마누라와 애새끼들이 배가 고파 훔쳤습니다.- 경촌은 꿇어 앉아 몸을 바르게 하고 고개를 숙였다.

-뭘 훔쳤단 말이냐?- 의외의 대답에 눈빛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창고에 쌀 말입니다요!- 울부짖는 듯했다.

역시 배신할 관상을 찾지 못해 발거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2

 

<병조판서의 집>

 

다시 긴급히 모였다.

-우리 중에 첩자가 있소!- 병조판서는 탁자를 탁! 내리쳤다.

다들 첩자란 말에 서로 쳐다보며 헛기침을 하였다.

-어제 무당 얘기를 여러분 앞에서 처음 꺼내고 전하께 알리러 갔는데 놈들이 어찌 알고 침입을 했소.-

서로를 매서운 눈초리로 둘러보기 시작했다.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중에 있다면 우리 역모를 왜 전하께 알리지 않았을까요? 알렸으면 벌써 우리도 잡혀 갔어야지요.- 금위영 대장이 말했다.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다만. 어영청대장은 뭐 짚이는 거 없소?- 병조판서가 차를 마시며 물었다.

-전하가 알면서도 모른 체 할 수도 있지요.- 어영청대장도 차에 입을 대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알면서도 모른 체를 한다구요?- 병조판서는 찻잔을 급히 내려놓았다.

-병조판서 나으리가 무서워 자기편을 들어 줄 신하가 없으면 그럴 수 있지요.-

-왕이 나약해서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금위영 대장도 거들었다.

-우리 중에 첩자가 있다면 그 놈은 참 어리석군. 저렇게 나약한 왕을 보호해서 뭘 얻을 게 있겠소. 그냥 우리 일에 가담해서 나라를 새로 일으키는 게 훨씬 나을 텐데 말이오. 어흠!-

병조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 우리가 아닌 외부인 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중에 모르고 외부인과 얘기하다 슬쩍 흘린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때 헤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역모자가 무당이라고 얘기한 적 있습니까?- 금위영 대장이 한 번 쭈욱 둘러보았다.

다들 서로를 쳐다보며 자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병조판서도 쭈욱 둘러보자 모두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천목현의 집>

 

천목현이 영의정 수하 최 한을 보며 입을 열었다.

-병조판서가 먼저 역모하기 전에 우리가 빨리 기회를 잡아야 하오.-

-맞습니다. 변방에 최승업, 곽정토 장군이 군사를 끌고 와 병조판서와 합세하면 큰일입니다.- 최 한이 특유의 굵은 목소리로 대답하니 설득력이 있었다.

-병조판서, 금위영과 어영청 대장 이 자들만 없애면 우리가 유리하지요. 수어청 대장, 훈련도감 대장, 총융청 대장들은 모두 왕의 친인척들이니 역모에 가담할 가능성이 낮지요.- 동생 천목천이 말했다.

-그래서 확실히 하기 위해 우리쪽 첩자와 계속 접촉을 하고 있습니다.- 최 한의 역시 굵은 목소리에 안심이 되었다.

-저들이 우리보다 먼저 역모를 하면 어쩌지요?- 제자 최강추가 끼어들었다.

-그렇게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직 최승업, 곽정토 군사가 없는 한 수적 열세에 있지. 역모에 성공 했다해도 우리 때문에 불안할 것이야.- 천목현은 차를 마시며 옅은 한숨을 쉬었다.

 

 

<병조판서의 집>

 

침묵을 깨고 병조판서 맞은편에 앉은 금위영 대장이 입을 열었다.

-이 참에 우리가 먼저 일을 도모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판서 나으리.- 금위영 대장이 병조판서 눈치를 살폈다.

-수어청, 총융청, 훈련도감 대장들이 우리편이 아니라 힘들 것이오. 변방에 최승업, 곽정토 장군을 기다려야 하오. 그보다 상대방 역모자들을 먼저 제거해서 안심시킨 다음 일을 도모하는 게 나을 것이오. 우리가 다른 역모를 막는다면 왕의 신임을 얻을 수 있어 도모하기가 더 수월하지요. 곧 밀고자의 연락이 있을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봅시다.

 

 

3

 

새벽 축시경 천신보살은 주위를 살피며 인왕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천목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그 뒤로 밀고자가 몰래 따라가고 있었다.

천목현 거처는 인왕산에서도 외진 곳이라 길이 험했다. 게다가 산속이라 그런지 진득찰, 도깨비바늘 같은 끈끈이 풀이 옷이나 머리에 달라 붙어 귀찮았다. 하지만 큰 일을 하는데 이정도 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밀고자는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두르고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갔다. 다행히 그믐달이라 소리만 내지 않는다면 들킬 염려는 적었다.

‘드디어 주동자를 볼 수 있겠구나!’ 하며 가슴을 졸이며 한발자국씩 따라갔다.

천신보살은 가끔씩 뒤를 돌아보았지만 보이는 건 시커먼 나무들과 바위뿐이었다. 드디어 산정상 골짜기에 다다랐다.

-뉘시오?- 어둠속 나무 뒤에서 쉰 목소리만 들렸다.

-천신보살입니다.-

이미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터라 천목천이 나와 있었다.

-여기서부터 발밑을 조심하시오.-

보살은 밑을 살피며 능숙하게 발을 높이 들었다. 천목천은 보살 어깨너머 뒤로 동태를 살폈다.

밑에서 밀고자는 바위 뒤에 숨어 두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거리가 좀 있는지라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기가 주동자의 소굴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목천은 보살을 모시고 천목현 방으로 데려갔다. 천목현과 여러 제자들이 있었다.

-보살님, 고문은 당하지 않으신지요?- 천목현은 보살님 얼굴을 걱정스럽게 보았다.

-고문 직전에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무사합니다.- 천신보살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밀고자는 아직 찾질 못했습니까?-

-네. 분명 우리쪽에 있을 법한데 이상하군요.-

 

밀고자는 멀리서도 인기척 소리가 들리지 않자 한발자국씩 발걸음을 떼며 올라갔다. 산 정상에 왔을 때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분명 방안에서 역모를 꾸미고 있을터이니 좀더 다가가 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때 찌르릉!

미리 나무마다 방울 달린 줄을 묶어 놓았던 것이다.

목천이 방문을 홱 열어 제쳤다. 쇠로 된 둥근 문고리가 벽에 부딪혀 소리가 크게 났다.

-웬 놈이냐?- 목천이 자라 고개 내밀듯이 얼굴을 내밀어 둘러보았다.

밀고자는 심장이 떨어질세라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게 섯거라!-

제자 두 명이 위험을 감지하고 급히 뒤쫓았다.

-형님은 문을 닫고 여기 계십시오. 적들에게 신분이 노출되면 안됩니다.-

목천은 문을 닫고 집주변을 경계했다.

밀고자는 초행길이지만 마치 훤히 아는 길처럼 성큼성큼 뛰어내려갔다. 아니,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뒤를 쫓는 제자들은 길이 익숙한지라 어둠속에서도 밀고자의 방향을 잘 알고 있었다. 점점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짙어졌다. 밀고자는 이미 등에 식은땀과 검은 천을 둘러쓴 얼굴에도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대로 가다간 보나마다 잡히겠구나!’

상황을 파악한 밀고자는 원래 자신의 거처는 포기하고 병조판서 집으로 바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오히려 병조판서 집이 더 가까웠다. 오른쪽으로 샛길이 보이자 몸을 틀어 바로 옆 바위와 큰 나무가 있는 곳에 몸을 숙였다. 그리고 발밑에 짱돌을 집어 저 멀리 내리막길 숲으로 던졌다.

풀숲을 헤치며 굴러가는 짱돌 소리가 들렸다. 두 제자는 그 소리가 밀고자의 발자국 소리로 듣고 발걸음을 폭을 더욱 넓혀서 내려갔다.

자신을 지나친 것을 본 밀고자는 그제서야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땀을 닦았다. 병조판서 집은 왼쪽 숲속길이었다. 밀고자는 저 밑을 한 번 쳐다보고는 왼쪽 숲속길로 내달렸다.

 

천목현은 천신보살과 밀담을 나누다가 방문을 살며시 열었다. 여전히 목천과 남은 제자가 지키고 있었다.

-목천아, 밀고자가 맞다면 병조판서 집으로 갔을 수도 있다. 지금 내려가서 판서 집 동태를 살피거라!-

-네-

목천은 칼을 차고 내리막길을 내달렸다. 병조판서 집에 갔다면 본거지를 쳐들어 올 수 있기 때문에 낭패다. 밀고자보다 두 배는 빠르게 내려갔다.

가는 도중 밑에 어둠속에서 누군가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게 보였다. 칼을 꺼내려 했다.

-윤 천, 박차현?-

-천목천 어르신?- 두 제자였다.

-어찌 됐소?- 칼을 다시 집어 넣었다.

-저희가 빠르게 내려갔지만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이 어둠에 길을 잘 모르는 자라면 중간에 숨어 있거나 다른 험한 곳으로 갔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병조판서 집으로 밀고하러 간 것 같소이다. 내가 확인하러 가 볼테니 올라가서 방비를 하십시오.-

목천 역시 왼쪽 숲속으로 내달렸다.

 

밀고자는 병조판서 집 입구에서 칼을 찬 문지기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마당을 들어갔다.

병조판서는 이른 새벽에 밀고자가 온 것이라면 분명 큰 걸 물어왔구나 하고 확신했다.

밀고자는 역모자들이 있는 곳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정말로 거기가 주동자 소굴이 맞느냐?- 병조판서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마 그럴것입니다. 들키는 바람에 주동자를 못 보았지만 천신보살을 만났으니 틀림없을 것입니다.-

-얼른 너도 네 거처에 들어가 보거라. 곧 무사들을 준비해서 보낼 것이니 들키더라도 안심해라.-

한편 병조판서 집을 멀리서 지켜보던 목천은 대문이 열리자 눈을 크게 떴다. 누군가 급히 나오는 게 보였다.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렀지만 행동거지가 남정네는 아니었다. 거리를 두고 뒤를 밟았다. 가는 곳은 천신보살님이 있는 곳이었다.

‘설마 보살님 제자가?’

목천은 보살님이 올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천신보살도 천목현과의 밀담을 일찍 마치고 산에서 내려왔다. 거처는 새벽이라 평온했다.

-보살님, 목천입니다.- 목천은 작은 목소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보살을 불러 세웠다.

-병조판서 집에 간 게 아니었소?- 천신보살은 당신이 왜 여기 있냐는 표정이었다.

-갔다왔는데 밀고자가 여기로 들어갔습니다.-

-뭣이?, 애기선녀! 무화선녀! 빨리 나오너라!- 방을 향해 소리쳤다.

둘다 방이 따로 있었다. 먼저 뒷마당에서 애기선녀가 나왔다. 보살님과 목천이 있는 걸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방에서 안 나오고 왜 거기서 나오느냐?- 천신보살은 눈을 째려보며 애기보살 몰골을 훑었다.

-방금 뒷간 갔다오는 길입니다. 보살님.- 애기선녀는 영문을 몰라 바짝 쫄아 있었다.

-무화선녀는 어디 있느냐?- 보살은 무화선녀 방문을 보며 외쳤다.

신발은 가지런히 그대로 있었다. 그제서야 무화선녀는 방문을 열고 잠이 들깬 채로 밖을 보았다.

-어머! 무슨 일이세요?-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았다.

-너도 이리 나와 보거라!-

무화선녀는 옷을 대충 걸치고 밖을 나왔다. 목천 남정네를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옷 매무새를 다잡았다.

-목천 어르신! 둘 중 누굽니까?- 빨리 찾아내라는 말투였다.

목천은 둘을 몇 번이나 보았지만 긴가민가 했다.

-글쎄요, 온 몸을 가리고 있어서..-

게다가 둘은 몸집도 비슷했다.

보살은 증좌를 찾으려고 둘을 아래위를 마치 참빗으로 훑어내듯이 쳐다보았다.

먼저 애기선녀 머리가 눈에 띄었다.

-네 머리에 거미줄은 무엇이냐? 뒷간이 아니고 산에 갔다온 게 아니더냐?-

또 한 번 째려 보았다.

애기선녀는 놀라 손으로 머리를 훑었다. 거미줄이 손에 잡혔다.

-어머!, 보살님. 정말 뒷간 갔다왔습니다. 뒷간에 거미줄이 있었나봅니다.-

손에 붙은 거미줄을 거칠게 떼어냈다. 목천도 애기선녀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번엔 보살은 무화선녀를 꼼꼼히 보았다.

-으음!!, 네 이년! 네가 밀고자구나! 몹쓸 년!- 천신보살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네? 밀고자라뇨? 전 계속 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억울합니다!- 무화선녀는 고개를 흔들어제쳤다.

목천과 애기선녀도 무화선녀 얼굴을 바라보았다.

-네 오른쪽 옆구리에 붙은 풀이 그 증좌이니라! 그건 여기서 붙을 수 있는 풀이 아니니라. 깊은 산속에서만 붙을 수 있는 풀이란 말이다!-

목천은 칼을 뽑더니 무화선녀 옆구릴 들춰서 도깨비풀을 떼어냈다.

-맞습니다. 보살님!, 죽일 년!-

칼을 무화선녀 목에 갖다 댔다. 그믐이지만 칼끝은 빛났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휙, 슉! 화살이 날아와 목천 가슴에 꽂혔다.

-윽!-

짧은 비명에 목천은 화살을 한 손으로 잡고 쓰러졌다.

병조판서가 보낸 무사들이었다.

-저놈들을 모두 끌고 가라!-

-네!-

 

<창덕궁 인정전>

 

병조판서는 날이 밝지 않았는데도 전하를 찾아갔다.

-전하! 천신보살을 다시 잡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주동자 소굴을 알아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왕은 뜻밖이라는 얼굴로 고개를 내밀었다.

-인왕산쪽이랍니다. 날이 밝는데로 군사를 모아 잡으러 갈 것입니다.-

-그래서 변방에 최승업, 곽정토 장군을 부른 것이오?- 다 알고있다는 말투였다.

-아, 맞습니다.-

병조판서는 움찔했지만 다시 평온을 찾으며 말을 이었다.

-역모자들이 몇 명인지 모르니 이참에 확실히 하고자 제가 급히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전하께 그걸 아뢸려고 지금 급히 온 것입니다.-

병조판서는 왕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으흠..-

왕은 내심 불쾌했다. 또 자기가 무시당하는 것 같았다.

 

<천목현의 거처>

 

-목천이가 왜이리 늦지?- 천목현은 뭔가 잘못됐음을 짐작했다.

-아까 우리와 마주치고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 좀 이상합니다.- 윤 천도 뭔가 이상했다.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오른손 주먹을 쥐고 바닥을 눌렀다.

똑똑! 문고리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천이냐?-

-천목현 어르신!- 첩자의 연락책이었다.

제자 최강추가 문을 열었다.

-보살님과 목현이 잡혔다하옵니다.-

-뭐라?..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군.- 천목현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래서 병조판서가 여길 먼저 치기전에 우리가 먼저 역모하라는 분부셨습니다. 시간이 없다 하셨습니다.-

연락책은 첩자의 계략을 상세히 설명했다.

 

-좋다! 시간이 없소. 우리쪽 사람들을 다 모아서 바로 궁궐로 향할 것이오.-

 

<의금부>

 

창고 안에서 금부도사와 병조판서가 보살을 문초하고 있었다. 옆에는 무화선녀가 서 있었다. 목천은 죽어가는 숨소리로 누워 있었고 애기선녀도 꿇어 앉아 있었다.

-주동자를 밝혀라! 두 번이나 잡히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병조판서는 이번에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으니 안심하고 문초할 작정이었다.

-그냥 날 죽여라!-

천신보살은 고개를 쳐들었다. 무화선녀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분명히 널 처음 보았을 때 배신할 상은 아니었는데, 내가 잘못 보았구나! 이제 나도 신기가 다한 모양이구나.-

모든 걸 포기한 듯한 목소리였다.

-아니요, 보살님이 신기가 뛰어나 우리가 장난 좀 쳤지요.- 무화선녀는 눈을 내리깔고 천신보살 몰골을 훑었다.

그때 창고 문이 열리며 한 무당이 들어왔다.

-넌.. 동화보살?- 천신보살은 뜻밖의 인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당은 여유로운 미소로 천신보살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난 조선 최고의 무당이 되는 게 꿈이였지. 근데 너 때문에 항상 난 두 번째였어. 우리 스승한테도 난 버림받았지.-

-그건 네가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잖아!- 동화보살을 보자 맺힌게 많은 듯 창고가 울릴세라 외쳤다.

-시끄러! 그냥 너만 없애면 될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더군. 나보다 뛰어난 그 뭔가를 배우고 싶었어. 정확히 말하면 무화를 시켜 너의 그 능력을 훔치는 거였지. 그럼 다른 무당한테도 이길 수 있잖아.-

-그래서 무화 저 년한테 굿을 해서 나한테 보낸거였군.- 천신보살은 이제야 깨달았다.

-역시 잘 아네. 굿을 했으니 넌 무화 정체가 헷갈렸겠지.- 동화보살은 비웃듯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굿을 좋지 않은 곳에 썼으니 넌 천벌을 받을 것이야! 그래서 역모하면 저 놈이 한자리 준다더냐?- 역시 목에 힘줄이 불거지며 병조판서를 노려보았다.

-원래 난 권력에 관심 없었지. 단지 네 능력을 훔치려고 무화를 보냈는데 우연히 네가 역모에 가담했다더군. 더 잘 됐다 생각했지. 의심 안 받고 처리 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새로운 왕 옆에서 책사 노릇하면서 명예와 권력을 함께 얻을 수 있으니 더 잘 됐지.- 병조판서를 쳐다 보았다.

-이젠 둘다 사연을 알았으니 그때 못다한 문초를 하겠다.-

병조판서는 벌겋게 달궈진 그때 그 인두를 집어 들었다. 그때 다하지 못한 한을 품었는지 인두는 더욱 벌겋게 보였다. 역시 눈 가까이 가져갔다. 천신보살은 눈꺼풀이 뜨거워졌지만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증오의 눈이 더 뜨거웠다.

 

덜커덩! 그때 창고문이 열렸다.

-판서 나으리! 전하께서 역모자 소탕에 앞서 중요한 얘기 있다고 하십니다. 당장 모든 문무 신하들을 불러들이라는 어명이십니다.-

-지금 말이냐?- 오른손에 쥔 인두는 여전히 붉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예. 급한 일이라 지금 가셔야 합니다. 다른 신하들도 지금 오고 있다고 합니다.-

-네 년 명줄도 참 길구나. 어차피 조금 있다 인왕산으로 가면 주동자는 밝혀지겠지.- 병조판서는 인두를 내려놓으며 분한 마음을 싹혔다.

-판서 나으리. 어서 가보십시다.-

금부도사가 먼저 창고문을 나섰다.

 

<창덕궁 인정전>

 

이미 금위영 대장, 어영청 대장을 비롯한 주요 관직자들이 와 있었다. 병조판서는 금위영, 어영청 대장과 눈빛을 맞추고 같은쪽 자리에 앉았다. 바로 가까운 맞은편에는 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의 무관이 줄지어 있었다. 서로 다 안다는 듯 눈빛으로 견제했다.

‘좀 있다 인왕산 역모자들을 잡아들인다음 왕을 없애고 역모하면 된다. 금위영, 어영청 군사와 최승업, 곽정토 장군 군사만 오면 모든 게 끝이다.!’

병조판서는 오직 이 생각뿐이었다.

다들 전하가 무슨 중요한 말이 있어 이른 아침부터 신하들을 불러 모았는지 궁금했다.

 

왕이 수염을 한 번 크게 쓸어내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새벽 역모자들이 인왕산에 숨어 있다는 급한 전갈을 받았소. 그래서 곧 군사를 보낼 것이오. 이 사실을 모든 신하들에게 알리고자 이렇게 모이라 한 것이오. 어흠.-

역모자라는 말에 처음 알았던 문관 위주의 신하들은 놀랐으나 이미 알고 있던 신하들은 별 놀라운 반응이 아니었다. 특히, 병조판서, 금위영, 어영청 대장은 굳이 이것 때문에 모일 필요요가 있었냐는 반응이었다.

‘역시 앞뒤 구분 못하는 왕이로구나! 급한 일 먼저 처리하고 나중에 알려도 될 것을.. 네 놈도 이제 죽을 준비나 해둬라. 내가 왕이 되면 너처럼 유약한 왕노릇은 하지 않을 것이니라.’

그때 쉬이잉! 쉬이잉! 쉬이잉! 갑자기 세 개의 칼을 빼어드는 소리가 인정전 넓은 공간을 갈랐다.

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 대장이 칼을 빼어 들고 병조판서, 금위영, 어영청 대장의 목에 각각 칼을 겨누었다.

쉬이잉! 또 하나의 칼이 무서운 분위기를 갈랐다. 전하 옆의 호위무사도 칼을 빼어들고는 왕의 목에 칼을 겨눈 것이다.

-이 무슨 짓들이냐?-

왕은 칼 끝에 걸린 목을 바짝 들고는 그들을 노려 보았다. 손은 떨면서 목소린 흔들렸다.

-대체 전하 앞에서 이 무슨 짓들이오? 당신들도 역모자와 한패요?- 병조판서는 칼을 빼든 신하들을 보며 호통을 쳤다.

-우리가 할 소리다! 병조판서께서 역모를 꾸미는 것을 모를 줄 아시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선수 치는 것이오.- 훈련도감 대장은 병조판서 목 가까이에 겨눈 칼을 더욱 내밀었다.

스르륵! 옆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너 넌, 천목현? 감히 네가!- 왕은 곁눈으로 째려보았다.

왕은 칼에 베일까봐 목은 더욱 뻣뻣해졌고, 입술은 떨고 있었다.

이미 밖에는 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 군사가 집결해 있었다. 천목현이 큰 소리로 모두를 향해 소리쳤다.

-모두 잘 들으시오! 저 병조판서한테 나라를 넘기느니 우리가 나라를 이끌 것이오. 이 유약한 왕과 저 악랄한 병조판서가 있는 한 이 나라는 무사하지 못하오. 전하를 당장 유배 보내고 저 놈들은 당장 하옥시켜 목을 칠 것이다!-

-천목현! 네가 감히 역모를 할 수 있느냐?- 병조판서는 선수를 뺏긴 게 억울했다.

-신하들도 잘 들으시오! 병조판서에 붙어먹은 신하들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이제 모두 새로 시작이오. 그리고 훈련도감 대장은 급히 최승업, 곽정토 장군께 전갈을 넣어 병조판서 역모가 들통 났으니 마음을 고쳐 먹고 당장 변방으로 돌아가라 하시오. 그리하지 않으면 가족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 전하시오!-

밖에는 이미 그 가족들이 잡혀 있었다.

-네!-

이렇게 역모는 끝났다.

 

#못다 한 이야기

 

-영의정 대감, 천목현이 벼슬을 줘도 안 하려고 하니 어쩌면 좋소? 내 주변에는 언제 역모할지 모르니 걱정이오.- 왕은 이마에 손을 얹으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본인이 싫다하니 어쩌겠습니까?- 영의정도 안타까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과인이 생각한 게 있는데 들어보겠소? 절대 아무한테도 알려서는 아니 되오.-

 

-네! 저 보고 역모를요? 그 무슨 가당치도 않으십니다. 전하!- 천목현은 죄인인마냥 고개를 숙여 엎드렸다.

-그럼 저 병조판서 놈한테 나라가 넘어가도 괜찮단 말씀이오? 거처를 인왕산으로 옮기고 준비를 하시오. 준비가 되면 내가 부를 것이오. 따로 연락책을 보내주겠소. 내가 그대의 첩자가 되리다. 왕 노릇 너무 힘드오. 나와 내 가족을 그냥 유배 보내주고는 산에서 농사나 짓게 해주시오. 우리 가족 여생만 보장해 주면 됩니다. 나한테 왕노릇은 맞지 않소. 천목현 그대도 잘 아시잖소. 훈련도감, 총융청, 수어청 대장은 나와 친인척이니 내가 구슬리면 될 것이오. 안 그렇소? 영의정!-

-네. 병조판서, 금위영, 어영청 대장만 확실히 막으면 충분히 가능하오. 전하께서 그냥 왕위를 그대에게 물려 주긴엔 명분이 없소. 따로 전하께서 믿을만한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잖소. 그러니 우리끼리 역모를 통해 그대가 왕이 되고 병조판서 일당을 미리 처리하는 것이오. 그게 전하와 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오.- 영의정의 얼굴엔 부탁반 협박반 표정이었다

-이건 부탁이 아니고 왕으로써 마지막 어명이오. 그대가 왕이 되어 다스려 주시오. 다른 놈들 못 믿겠소!- 왕은 천목현의 두 손으로 잡으며 ‘제발’이라는 눈빛을 보냈다.

-천목현, 잘 생각해보시오. 그대가 추구하는 정치를 이때 하면 되지 않소?-

영의정은 천목현의 눈에서 갈등의 눈빛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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