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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스파이 만들기

2023.09.21 13:1309.21

“9시 뉴스입니다. 오늘 대선 여론조사 결과 정의혁신당 최혁신 후보가 야당의 청년미래당 명성후 후보를 10%이상 앞서고 있습니다. 최 후보측은 여유있게 승리할 거라 장담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선과 관계없이 최혁신 후보와 24세 연하 노하나 비서와의 관계도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최 후보측에서는 근거없이 떠도는 SNS의 수많은 댓글과 추측성 기사, 그리고 찌라시에는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합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10%면 엄청 큰 차이야. 우리가 또 질 수 있어. 노 비서와의 관계를 십분 활용해서 여론전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해.” 강창호 청년미래당 선대위본부장은 대응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SNS에서는 선거 열기가 한창이다.

-그냥 띠동갑도 아니고 2바퀴 띠동갑이라? 역시 깨어 있는 후보야. 요즘 대세를 따를 줄 아는 후보야. ㅋㅋ-

-저 비서, 옆에 빌붙어서 나중에 한 자리 하겠구만. 아니지, 영부인도 되겠는 걸.-

-얼마전 이혼한 이유가 있었군. 젊은 여자 사귈려고 그랬구나!-

-지인이 그러는데 저 비서 예전부터 정치하고 싶어 했대. 그럼 뻔하지 뭐.-

-또 다들 상상의 나래 댓글 펼친다고 ㅈㄹ들 한다.-

 

“더러운 찌라시 사냥꾼들!, 박 본부장! 이런 쓸데없는 얘기 안 나오게 조치 좀 잘 취해 봐!”

최 후보는 목이 탔는지 생수를 벌컥 들이마셨다.

“네. 후보님. 곧 반박 뉴스를 내보내겠습니다.” 여러 위원이 모인 자리에서 박 선대위본부장은 고개를 숙였다. 박 본부장은 최 후보의 친구로서 누구보다 최 후보를 당선시키려고 헌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9시 뉴스입니다. 여당은 야당이 몰래 여당 선거캠프를 기웃거리며 염탐질 하거나 스파이질 하고 있다는 의혹을 내놓았습니다. 이에 야당은 지금이 냉전도 아니고 무슨 스파이냐 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말라고 일축했습니다. 한편 최 후보측에서는 찌라시 내용은 모두 가짜라고 말하며 노 비서는 최 후보가 예전부터 아끼던 정치후배일 뿐 더 이상의 관계는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사실, 노하나가 정치에 관심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다 1년 전 박 본부장의 소개로 최 후보 비서가 되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정치입문을 위해서는 최 후보와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노하나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최 후보는 어느덧 진심이 되었다. 하지만 노하나는 6개월전 남친이 생겼다. 젊은 청년이었지만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사실을 최 후보는 어느 정도 낌새를 채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몰래 미행을 붙였다.

 

박 본부장은 최 후보와 단둘이 있을 때 넌지시 얘기했다.

“이제 곧 선거기간인데 노 비서는 대선 끝나고 신경쓰는 게 낫잖아. 지금 이 중요한 시기에 자제해. 공교롭게도 노 비서가 언론에 노출되고 나서 명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줄어 들었어.”

“그래도 10%이상이라 안심해도 돼. 언론에는 가짜뉴스라고 계속 내보내면 돼.” 최 후보는 겉으로는 이렇게 말했지만 황급히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한 순간의 실수로 지지율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야. 감정적으로 접근해선 안돼. 조심, 또 조심해야 돼.” 박 본부장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술을 오므렸다.

 

-격차가 조금씩 줄어드는 걸 보니 노 비서가 엑스맨이다. ㅋ-

-그래도 10%이상 격차야, 너희가 아무리 그래봤자 뒤집기는 힘들 걸.-

-난 둘다 싫다. 생일 축하금 주는 후보 찍을 거임!-

 

최 후보가 저녁에 쉬는데 전화가 왔다.

“노 비서가 어떤 남자와 함께 자기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집앞에 대기만 하고 있어. 내가 곧 가지.” 최 후보는 폰을 꽉 쥐며 눈꺼풀을 빠르게 껌뻑거렸다.

최 후보는 욱하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외출채비를 마쳤다. 꾹 눌러쓴 모자에 뿔테안경, 마스크, 허름한 복장으로 나름 변장을 했다. 휴대폰은 집에 두고 나갔다. 노 비서 집은 2층 단독 주택으로 얼마되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이미 노 비서 집앞에는 연강우와 노하나가 도착했다. 연강우는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몇 시간 전까지 비가 와서 거리는 젖어 있었고, 집 앞마당은 흙이라 약간 질퍽했다. 대문을 열고 현관문을 열어 신발을 대충 털고 들어갔다.

멍멍! 멍멍! 귀엽고 앙칼진 애완견 예삐가 있었다. 얘는 몇 번 봤는데도 모든 사람을 보면 크게 짖는 습관이 있었다.

“강우 씨, 이번 대선만 마치면 시간적 여유가 있을 거야.” 노하나가 명품백을 소파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저 늙은이가 대선 후보만 아니면 그냥 당수로 목을 콱! 하하.” 강우는 오른손을 들어올려 허공에다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최 후보는 노 비서 집에서 조금 떨어진 대로변 차에서 내렸다. 확실한 증거를 잡을 기회였다. 감정에 북받쳤지만 박 본부장의 조언이 생각나 이성적 판단을 하기로 했다. 남자를 조용히 타이르고 노 비서를 따끔하게 혼내는 걸로 끝내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대통령 되고 난 다음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덩치 좋고 날렵하게 생긴 미행자가 담뱃불을 끄고 기다리고 있었다. 최 후보는 초인종을 바로 누르려다 집게 손가락을 내려놓았다. 놈이 놀라 도망갈 수 있어 담벼락을 한 번 쳐다보았다.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겠지? 넘어서 문만 몰래 열어 줘.” 최 후보가 턱으로 담벼락을 가리켰다.

“네.” 덩치는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보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다시 앞으로 폴짝 뛰어 가볍게 마당에 착지했다.

멍멍!! 멍멍!!

노하나는 찻잔을 깨질듯 내려놓으며 초인종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헉! 최 후보야, 빨리 2층 창문으로 도망쳐!” 노하나는 굳은 얼굴로 강우에게 손짓을 했다.

“뭐! 내 신발!” 강우가 2층 가려다 급히 돌아서자 노하나가 신발을 건네 주었다. 신발을 신을 새도없이 손에 들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빨리 대문 열어!” 개 짖는 소리에 최 후보의 이성적 판단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최 후보는 장애물 치우듯 문을 힘껏 열어 젖히고 들어왔다. 질퍽거리는 앞마당을 지나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있었다. 쾅쾅 두드렸다.

“노 비서 빨리 문열어! 다 알고 왔어!”

“부술까요?” 덩치가 한 걸음 뒤로 물러 서고는 발로 찰 준비를 했다.

그 찰나에 손잡이가 돌아가고 노 비서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남자 어딨어?” 최 후보는 안을 힐끔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예요? 저 혼자예요.” 노하나는 갸녀린 몸으로 입구를 가리고는 시간을 끌었다.

최 후보는 무시하고 노 비서를 밀치며 들어갔다.

“어머! 왜이러세요. 후보님!”

“1층 뒤져봐!”

“네.”

 

최 후보의 시선은 2층 계단을 향했다. 바로 올라갔다. 계단 위에는 방금 떨어진듯한 작은 진흙이 묻어 있었다. 놈이 2층에 있거나 뛰어내렸다고 확신했다. 창문이 열려 있어 더 활짝 열어 제쳤다. 고개를 내밀어 밑을 본 다음 저멀리 앞쪽을 보았다. 누군가 한쪽 발을 들어 비틀대며 신발을 신고 어두운 길을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었다.

노 비서가 2층으로 따라 올라왔다.

“누구야? 그놈!” 거의 협박 톤이었다.

“...”

“폰 줘봐!” 최 후보는 노 비서 손에 쥔 폰을 뺏으려 했다.

노 비서는 이를 악 물고 두 손으로 폰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내 놔!” 2층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둘다 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최 후보가 폰을 자기쪽을 힘껏 잡아당기자 뺏기지 않으려던 노 비서도 자기쪽으로 힘껏 잡아 당겼다. 그순간 폰에서 두 손이 미끄러지고 폰은 최 후보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노 비서는 몸이 뒤로 쏠려 계단 밑으로 몸이 넘어 갈 찰나였다. 오른발을 한발 뒤로 내 디뎠다. 하지만 평평한 바닥은 이미 끝나고 아래 첫 계단에 오른쪽 뒤꿈치가 먼저 닿고 말았다. 실랑이 소릴 듣고 방에서 나온 덩치는 노 비서가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노 비서가 내야 할 비명을 덩치가 대신 내고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엇!” 최 후보는 그제야 짧은 소리를 냈다.

쿠궁쿵, 쿵, 쾅! 마지막 소리는 머리를 세게 부딪히는 소리였다. 노 비서는 목이 왼쪽으로 휘어진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덩치는 노 비서 목에 손을 갖다 댔다.

“살아있습니다. 후보님!” 덩치가 손을 갖다 댄 채로 이층을 보며 외쳤다.

최 후보는 어찌할지 몰라 몸이 얼음이 되었다. 머릿속은 블랙홀이었다.

“119 부를까요?” 덩치가 최 후보 눈치를 살폈다.

“잠깐! 잠깐! 생각 좀..” 최 후보 눈알이 이리저리 돌아가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덩치도 최 후보의 입장을 아는지라 노 비서만 보고만 있었다. 최 후보는 생각하면 할수록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상황을 어떻게 끼워 맞추지?

“후보님! 후보님은 여기 없었던 걸로 하고 저만 있었던 걸로 하면 됩니다.” 덩치는 나름 묘안이 생각난 것이다. “제가 혼자 잠시 차를 세우고 담배 피는데 집안에서 강도라고 외치는 소릴 듣고 들어갔다 하면 됩니다. 들어가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된 거라고 하면 어떨까요?”

“대문은 담 넘었다 치고 현관문은 어떻게 열었다고 할 거야?”

“지금 발로 차서 부숴 놓으면 됩니다.” 덩치는 현관문을 바라보곤 저것쯤이야 하는 기세였다.

“나중에 그놈이 잡혀서 바른대로 말하면?”

“그전에 그놈을 찾아서..”

“빨리 찾는다는 보장이 없어. 일단 박 본부장한테 그렇게 얘기해보고 생각해봐야겠어.” 최 후보는 덩치  폰을 뺏듯이 건네받아 박 본부장에게 연락했다

 

“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상황을 설명들은 박 본부장은 자신이 대선에서 패배한 듯 울상을 지었다. 박 본부장도 이성 상실 직전이었다.

“제발 좋은 방법 좀 생각해 봐. 다잡은 대통령 놓치게 생겼다고!!” 폰에 침까지 튀기며 절박함을 내보였다.

“침착하고 기다려. 내가 가면서 대책을 생각하지. 바깥에 잘 살피고 그대로 있어. 119 신고하지말고 노 비서 그대로 둬.”

 

곧 박 본부장이 도착했다. 최 후보를 보자마자 욕을 참는 모습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었다.

“다행히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본부장님!” 덩치는 또 노 하나 목에 손을 대봤다.

“다행이 아니야! 우리한텐 불행이야! 나중에 깨어나면 더 큰 일이야.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고!” 박 본부장은 힘없이 누워있는 노 비서가 골칫거리인냥 쳐다보았다.

“어쩔생각인데 본부장? 119 정말 안 불러도 돼?” 최 후보 머릿속은 여전히 블랙홀이었다.

“일단 넌 잠시 나가서 밖을 관찰해. 우리 일처리 팀이 올 거야.” 박 본부장은 고개를 돌려 덩치에게 지시했다.

덩치가 나가자 박 본부장은 최 후보에게 다가갔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먼저 강도가 아니라 그냥 큰 비명소리에 쟤가 문 부수고 들어갔는데 이렇게 됐다고 진술하게 하면 돼. 그다음은 일처리 팀을 불렀으니 모든 걸 맡기면 돼. 바로 올 거야.”

“그래서 그다음은?”

“야당 스파이 활동이 진짜였다고 몰아가는 거지. 도망간 그놈이 지금부터 야당 스파이야.”

“스파이? 그걸 믿어줄까?” 최 후보 눈은 동그래졌다.

“믿게 만들면 돼.”

최 후보에겐 큰 위험부담이다.

“그냥 사실대로 말하고 정면 돌파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부적절한 관계도 아니고 남녀사이 좋아할 수도 있는 거 아냐? 요즘 시대 일반 국민은 그 정도는 이해해 준다고!”

“일반 국민?” 박 본부장은 이 단어가 우리말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정치를 그렇게 많이 하고서도 그 소리가 나와? 이게 일반적인 일이면 일반 국민이 믿어주지. 지금은 대선이라는 특수 상황이야. 야당놈들과 국민들이 좋게 보겠어? 아직 누굴 찍을지 고민하는 유권자들은 너한테서 멀어진단 말이야. 없는 사실도 만들어내는 세상인데 지금처럼 있는 사실이야 개돼지 같은 국민들한테는 먹잇감이야. 특히, 야당은 이걸로 대선 승리의 기회를 잡을 게 뻔해. 이미 진실은 물 건너 갔어!” 박 본부장은 속으로 제발 정신 차려 인마! 라고 하고 싶었다.

“하아!” 최 후보는 한숨만 나왔다.

“이건 단순히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이번에 지면 우리당 전체의 위기야. 맘 크게 먹어.”

“어떻게 스파이로 몰아 갈려고?”

“먼저 도청장치를 떨어뜨려 놓을 거야. 그리고 노 비서 폰을 수거해서 분석할 거야. 설마 전화 한통 안 하고 만났겠어?”

“도청장치로 뭐하게?” 최 후보는 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휴 답답해! 스파이가 노 비서한테 접근한거지. 집안에 도청장치를 몰래 설치하려다 들켜서 죽였다고 하면 되잖아.”

박 본부장은 곧 최 후보의 귓불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실시간으로 관람했다.

 

다다다다다... 밖에서 덩치와 일처리 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일상처럼 행동해. 나머진 우리한테 맡겨. 시간이 없어. 일 처리하고 나중에 연락하지.”

 

최 후보는 집으로 오면서 심장박동이 난타 수준이었다. 양심이 대선을 위해 사그라지는 순간이었다.

 

“다들 빨리 서둘러! 노 비서는?” 박 본부장이 덩치에게 눈짓을 했다.

“숨이 멎었습니다.” 덩치는 노 비서 목에서 손을 뗐다.

“도청장치는 소파 밑에 떨어뜨려 놓고 이 집에 최 후보 관련된 걸 다 없애!”

일처리 팀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마치 빨리 끝내기 신기록이라도 깨듯이 1, 2층을 오가며 최 후보 채취 지우기에 나섰다.

“강 팀장은 이 폰을 가져가서 철저히 분석해. 그리고 여기 경찰서장이 최형우가 맞지? 도청장치 위치 잘 가르쳐 줘.”

 

다 나가고 덩치만 남았다. 112를 눌렀다. 드디어 스파이 만들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박 본부장은 최 후보와 통화했다.

“이제부터 최 후보는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돼. 여론전이 시작될 거야.”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끝장이야. 잘 좀 처리해.”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폰을 쥐고 있었다.

“걱정 마. 그때 자네는 거기 없었던 거야.”

박 본부장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소파에 앉아 담배를 여유있게 물었다.

 

한편 연강우는 노하나가 걱정되었다. 창문 뛰어내리기전 시끄러운 소릴 듣고도 아무것도 못해준 게 못내 아쉬웠다.

 

“긴급속보입니다. 대선후보 최혁신 후보의 노 하나 비서가 어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현재 강동구 최형우 경찰서장의 브리핑을 보시겠습니다.”

 

“어젯밤 9시경 목격자가 비명소리를 듣고 문을 부순다음 집에 들어가보니 2층에서 노 하나 비서와 어떤 남자가 휴대폰을 서로 뺏으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답니다. 그러다 노 비서가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고, 남자는 2층 창문을 통해 도망갔다고 진술했습니다. 남자 얼굴은 자세히 보지 못했고 휴대폰은 그 남자가 뺏어서 가져갔다고 합니다. 목격자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해보니 이미 노 비서는 숨진 상태였고, 남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집을 수색한 결과 머리카락이 있었고, 도청장치가 발견되었습니다. 더 자세한 상황은 조사를 한 다음 다시 발표하겠습니다.”

 

-도청장치? 진짜 야당이 스파이를 심어 놓은 건가?-

-그냥 강도가 든 거 아냐? 도청장치는 그 남자가 설치 안 했을 수도 있지.-

-강도든 아니든 도청장치라면 야당 스파이가 맞는 것 같은데.-

-최 후보가 노 비서한테 고백했는데 차여서 죽인 거 아냐? ㅋㅋ-

 

연강우는 뉴스속보를 보고는 속이 뒤집혔다.

미친놈들!

야당 선거캠프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이 무슨 날벼락이야!! 여당놈들 자작극 아냐?” 강 선대위본부장은 눈썹을 치켜들고 뉴스속보를 노려 보았다.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다가 곧 북소리처럼 심장박동이 뛰었다. 캠프 분위기는 핵폭탄을 맞은 듯했다. 안 그래도 지지율이 뒤처지는데 엎친데덮친격이었다.

 

“9시 뉴스입니다. 지금까지 경찰조사 결과 침입의 흔적이 없는 걸로 보아 면식범의 소행이며 목격자를 찾고 있습니다....” 길거리 CCTV에는 어두워서 흐릿한 얼굴만 보였다.

 

-도청장치를 설치한 거면 녹음 됐겠네. 분석해보면 야당 스파이 짓인지, 여당 자작극인지 알 수 있지. 나 똑똑하지? ㅎ-

-아무리 자작극이래도 여당이 자기 비서를 죽인다? 말이 돼?-

-최 후보가 차이니까 죽이고 스파이 짓이라고 자작극? 너무 허무맹랑한가? 미안. ㅋㅋ-

 

연강우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휴대폰을 눌렀다. 강동구경찰서 오격두 팀장 휴대폰이 울렸다. 분위기 안 맞게 BTS의 다이너마이트 음악이었다.

“어! 강우야.” 한 손은 서류를 보느라 손놀림이 바빴다.

“지금 통화 가능해? 엄청 중요한 일이야.”

“난 더 엄청 중요한 일 하거든. 너도 알잖아. 노 비서 사건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오격두도 찌푸린 얼굴이었다.

“그럼 대화가 되겠네. 너 급속승진하고 싶댔지? 연예인처럼 경찰에서 뜨고 싶댔잖아?”

연강우는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뭐? 니가 거기 있었다고? 이 무슨 BTS가 다이너마이트 터뜨리는 소리야!” 오격두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두리번거렸다.

“야, 살살 말해!”

오격두는 주위 눈치를 살피고 복도로 나왔다. 고개를 바짝 숙이고는 목을 넣은 채 입술을 전화기에 갖다 댔다.

“그럼 노 비서가 양다리였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난 그냥 사적으로 선거지원 때문에 가끔 만났을 뿐이야.”

“아, 미안. 정말 최 후보가 죽인 게 맞아? 이거 엄청난 사건이야. 니 말대로라면 여당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진실을 덮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 내가 스파이가 말이 돼? 죽일 놈들!!” 강우는 턱을 바짝 당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잘못 파헤치다간 나까지 저세상 텐션이야 인마!” 오격두는 복도에서 거의 5초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이렇게 해야 급속승진이지. 연예인처럼 뜨는 게 쉬운 줄 알았어? 중요한 건 나같이 억울한 시민이 생기는데 형사인 니가 진짜 범인을 찾아야지!”

오격두에겐 어쩌면 모험인 동시에 기회였다.

“어차피 여당에서는 언론이나 고위관료를 포섭해서 너같은 형사 의견은 무시할 거야. 그래서 너와 친한 기자들과 긴밀히 하면 돼.”

“야아~ 이거 성공하면 나도 뜨고 기자들도 뜨겠는데. 오히려 기자들이 사명감에 우리보다 더 달라 들거야. 특히, 야당 열렬 지지자 오 기자라고 있어.” 오격두는 벌써 머릿속으로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상상했다.

“좋아. 최 후보가 노 비서와 연인관계였고, 그 시간에 최 후보가 노 비서 집에 있었다고만 밝히면 모든 게 끝이야.”

“벌써 최 후보측에서 손을 써 놓지 않았을까?”

“놈들도 급하게 발표하는 바람에 빈틈이 있을 거야. 넌 먼저 그 시간 최 후보 동선을 추적해 봐. 최 후보가 차타고 갔을 테니 알아내기 쉽잖아. 노 비서한테 들었는데 2층집과 자가용을 최 후보가 해주었다고 했어. 그럼 연인관계 설명이 되잖아.”

“정말? 그럼 의외로 쉽겠네. 오 기자한테 표 안 나게 슬쩍 흘려 볼게.”

 

“9시 뉴스입니다. 사망한 노 비서에게 최 후보가 전세자금과 차량 구입비를 대줬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야당의 주장에 따르면 통장거래내역을 조사하면 알 것이라 하고, 이건 연인관계가 아니라는 최 후보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좋았어! 오 기자가 제대로 일하는군. 이렇게되면 우리가 결코 불리한 게 아니라고! 허허.” 강 선대위본부장은 역전의 기회를 잡았다는 표정으로 오른손 주먹을 들어올렸다.

분위기의 반전에 유권자들은 진실이 궁금했다. 도청장치의 내용과 최 후보와 노 비서의 관계가 관심사였다.

 

“빨리 언론 입막음 해야할 거 아냐?” 최 후보는 박 본부장을 쏘아붙였다.

“최 후보, 이번엔 정면돌파야. 가끔 감정에 호소하는 것도 정치적으로도 괜찮아.” 박 본부장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해야할 말을 일러 주었다.

 

“긴급속보입니다. 곧 최혁신 후보와 강동경찰서장의 기자회견이 있겠습니다.”

 

“먼저 불미스런 일로 이 자리에 쓰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의혹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노 비서에게 전셋집과 차량을 해준 건 맞습니다. 하지만 연인관계가 아니라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끼는 정치후배로서 생활이 넉넉지 않은 걸 알았고, 저 또한 노 비서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열심히 해보자는 차원에서 해준 겁니다. 막말로 설령 연인관계였더라도 그게 뭐가 잘못 됐나요? 부적절한 관계도 아니잖습니까? 자꾸 야당에서는 이걸 가지고 네거티브 하는데 정치와 무관한 사생활 얘기는 안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네거티브 하려면 제발 정책 대결로 승부를 보십시오. 하늘에 있는 노 비서에게 미안할 따름입니다....”

 

-연인관계였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지. 야당은 엉뚱한 꼬투리 잡지말고 스파이나 인정하라!-

-비서 잃은 것도 슬픈데 자작극? 부적절한 관계? 웃기고 있네 야당들. 지지율이 낮으니 별걸다 걸고 넘어지네.-

-여당은 도청내용이나 빨리 까봐라. 그럼 답 나올 거 아냐?-

 

다음은 강동경찰서장의 브리핑입니다.

“도청 내용에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 말씀드립니다. 도청장치에 녹음된 건 하나도 없습니다. 거실에서 1개가 발견되었는데 추측하기로는 거실에 설치하다 들켜서 둘이 실랑이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바로 들키는 바람에 설치도 못해서 다투는 소리가 녹음되지 못한 걸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의문의 남성은 증거를 없애려고 휴대폰을 뺏은 것 같고 그때 목격자가 들어오자 도청장치를 수거하지 못하고 곧바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그럼 의문의 남자와 노 비서가 무슨 관계지? 침입 흔적이 없다면 그렇고 그런사이?-

-연인인 척 접근해서 도청하려다 실패. 뭔 스파이가 저리 어설퍼. 야당은 007영화 다시 보기 해라!-

-여당의 자작극으로 의문의 남자가 노 비서를 죽였다긴 보다 야당 스파이가 죽였다는게 더 설득력이 있잖아!-

-밑에 댓글들 수십 개 보니 시나리오가 노벨 문학상 감이야!-

 

“뭐야 이건! 오히려 여당에게 동정표가 가겠는데!” 강 본부장은 예상이 어긋나자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났다.

 

“진짜 누구말대로 소설 쓰시네!” 강우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증스런 여당 때문에 이를 꽉 깨물었다.

그때 오격두한테 전화가 왔다.

“어찌 됐어?”

“어, 동선 추적해봤는데 그 시간에 최 후보 차는 집에 있었어. 아마 다른 차를 이용했나봐. 그래서 택시를 탔을 가능성을 두고 조사해봤지. 콜택시는 흔적이 남으니 그냥 길거리에서 바로 잡아서 타고 갔겠지.”

“그래서?”

“교묘하게 집 근처에서 택시를 잡지 않고 대로변에서 잡아 타고 내릴때도 노 비서집과 떨어진 대로변에서 내렸나봐.”

“택시기사가 최 후보 얼굴은 봤을 거 아냐?” 강우는 점점 입이 바짝 말라갔다.

“아무래도 변장한 것 같아. 기사 말로는 그때 마스크에다 모자, 안경도 쓴 거 같다고 해서 누군지 잘 모르겠데. 룸미러로만 대충 봤대.”

“그시간에 최 후보가 거기 있었다는 증거를 빨리 찾아야 돼!” 강우는 없는 증거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쩔수 없어. 너도 정면돌파야. 언론에 긴급기자회견 열고 사실대로 말해. 니가 죽였다는 증거가 없잖아! 재판하면 넌 무죄라고! 그게 진실이야.”

“선거에서 진실은 중요치 않아. 유권자를 어떻게 몰아가느냐가 중요하거든. 여당이 지금 그 짓거리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오 형사는 대답 대신 딴 생각을 했다.

“아! 생각났다. 내가 다시 한번 조사할 게 있어. 일단 끊자.”

 

“박 본부장, 노 비서 휴대폰 아직 분석 안 됐어?” 최 후보도 입이 바짝 마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놈 연락처가 대포폰이더군. 지금은 위치 추적이 끊긴 상태야.”

“뭐! 대포폰? 그럼 우리가 불리한 상황 아냐?” 최 후보 심장은 다시 난타였다.

“아니, 오히려 더 좋을수도 있지.”

“??”

“대포폰인걸 알면 스파이가 더 확실해지잖아. 우리가 폰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순 없으니 곧 경찰이 알아서 발표할 거야.” 박 본부장은 소파에 푹 기대곤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9시 뉴스입니다. 경찰에서 통화내역 조사해보니 노 비서와 통화한 걸로 추정되는 전화번호가 대포폰인 걸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사건 당시 의문의 남자가 다른 길거리 CCTV에 찍혔습니다. 밤이라 어둡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해서 알아보기 힘듭니다. CCTV를 피해서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택시를 타고 도주한 듯 합니다.”

 

-대포폰? 점점 스파이 짓 같은 느낌은 뭐지?-

-이번처럼 스릴 넘치는 대선은 처음이야.-

-이번 대선은 한편의 서스펜스 영화야. 칸 영화제 출품해라!-

 

“강우야! 우리쪽 경찰위에 놈들도 한패인 것 같은데! 중요한 자료는 발표를 안 했더만. 이거 내가 목숨 걸고 하는 거야.”

오격두는 자료내용을 설명했다.

“그럴줄 알았어. 목숨 건 만큼 성공하면 유명인사가 되는 거야. 영웅이 되는 거지. 우리도 기자회견 준비해야겠어.” 강우는 반전의 기쁨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좀만 기다려, 오 기자와 준비하고 있으니깐.”

 

“긴급 속보입니다. 자신이 의문의 남성이라는 사람이 형사와 기자를 동반한 채 기자회견을 한다고 합니다. 곧 시작됩니다.”

 

“강우야! 떨지 말고 잘하라고. 우리가 옆에 있으니깐.”

오격두와 오 기자도 긴장한 채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기자회견장은 시끌벅적했다.

“제가 바로 사건 당일 의문의 남성 연강우입니다. 최 후보의 스파이 만들기에 기가 차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노 비서와는 사적으로 선거지원 관계로 안 지는 6개월 됐습니다. 우리 사이를 잘못 알고 질투한 최 후보는 미행을 붙여 집까지 감시했습니다.

먼저 최초 목격자라 했던 사람은 최 후보가 고용한 사람입니다.”

회견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목격자의 동선을 조사한 결과 목격자는 자신의 차량으로 저와 노 비서를 미행해 왔습니다. 미행 동선이 저희와 일치하고 통화내역을 조사한 결과 목격자와 최 후보가 여러 번 통화한 게 밝혀졌습니다. 여기 옆에 있는 오격두 형사가 밝혀냈습니다.”

이번엔 카메라가 오격두를 클로즈업 했다. 순간 오격두는 어떤 포즈를 해야 잘 뜰까 하며 여러 가지 얼굴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날 노 비서 집에는 세명이 아닌 최 후보까지 네명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닌 최 후보와 실랑이를 벌이다 사망한 것입니다. 최 후보와 목격자가 쳐들어오자 놀란 저는 급히 2층 창문으로 도망친 것입니다. 휴대폰도 저 사람들이 가져갔습니다. 전 없습니다.”

더욱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강우는 숨을 고른다음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최 후보한테 보내는 자신감이었다.

“증거가 있습니까? 증거요?” 모두가 알고 싶은 궁금증을 어느 기자가 불쑥 뱉었다.

“네.” 강우가 오 기자에게 눈짓을 주자 조명이 어두워지고 화면이 비췄다.

“제가 도망칠 때 CCTV에 흐릿하게 잡혔듯이 최 후보도 그때 2층 창문에서 얼굴을 내민 장면이 잡혔습니다. 도망가는 저를 보고 있는 모습이 길거리 카메라에 흐릿하게 잡힌 겁니다. 경찰에서는 발표할 때 왜 이 CCTV를 공개 안 했는지 의문입니다.”

기자들은 흐릿한 얼굴을 자세히 보기 위해 목을 쭉 빼고 있었다.

화면에는 모자와 마스크, 검은 안경의 남자가 창문에서 목을 쑥 내밀어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들어갔다.

“비록 변장은 했지만 최 후보가 확실합니다.” 강우는 가슴을 쫙 펴며 단호하게 말했다.

기자들은 약간은 실망한 듯 했다. 강우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사람 인상착의가 택시 기사의 진술과 일치합니다. 최 후보가 노 비서 집으로 올 때 자기 집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노 비서 집 근처에 내렸습니다. 사건 후 집에 갈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복장이 조금전 창문에서 보았던 복장과 일치하는 진술입니다. 휴대폰은 집에 두고 와서 위치상으로는 집으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데 저걸로 직접적 증거가 될 수 있나요?” 여당 성향의 방송국 기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직접적 증거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누구나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지 않나요? 목격자는 저 사람에 대해서는 언급도 하지 않고 그냥 저만 언급했습니다. 그럼 저 사람은 귀신입니까? 목격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자 오격두가 마이크를 뺏듯이 잡았다.

“지금 목격자를 다시 조사해야 합니다. 만약 목격자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최 후보측을 의심할 수밖에 없지요. 잘 생각하세요.” 카메라를 보며 최 후보에 보내는 경고 메시지인 동시에 전 국민에게 오격두라는 메시지를 각인시켰다. 강우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까지 하고 판단은 국민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여당은 스파이 만들기 그만 하시고 유권자 여러분은 합리적 의심을 통해 이성적 판단을 하십시오. 그리고 저와 오 형사, 오 기자 신변을 좀 보호해 주십시오!”

 

짝짝짝! 티브이로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청년미래당 강 본부장은 박수를 쳤다.

“드디어 저 사람이 일을 제대로 했어! 신변보호는 야당에서 적극 나서야지.”

 

-잉? 또 반전? 재밌는데!-

-목격자와 아는 사이라.. 자작극 맞네. 여당놈들아, 지금이 어느 시댄데 스파이야!-

-하기야 스파이가 저렇게 어설프게 들킬 일 없지.-

-최 후보야, 자작극 폼 미쳤다!!-

-저사람이 최 후보 얼굴이란 증거는 없다. 못 알아보겠구만!-

 

“야! 박 본부장! 일처리 팀 어떻게 된 거야?” 최 후보는 화면을 보자 손발이 떨렸다.

“시간이 촉박해서 창문밖을 본 건 우리가 확인을 못했어. 아직 얼굴을 모르니 최 후보가 아니라고 계속 우기면 돼.”

“세명이 아니고 네명이잖아. 이건 어떡할 거야?” 따지듯이 물었다.

“덩치한테 실랑이 할 때 2층 계단쪽에서 연강우 저놈만 봤고 나머지 한 사람은 못 봤다고 진술하게 하면 돼. 나머지 한 사람은 2층 어딘가 숨어 있다가 창문을 본 다음 사라진 것 같다고 경찰에서 다시 발표하면 돼. 미스터리로 남기면 돼.” 박 본부장도 뭔가 꺼림칙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미스터리? 진찌 귀신으로 몰아가겠군.” 최 후보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치며 한숨을 쉬었다.

 

몇 시간 뒤 경찰에서는 박 본부장 말대로 발표했다. 그리고 최 후보가 기자회견을 했다.

“저 희미한 얼굴은 저 아닙니다. 그때 저는 집에 있었습니다. 휴대폰 위치 추적도 저희 집입니다. 저도 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목격자는 저와 아는 사람이 맞습니다. 미행을 붙인 이유는 계속 우리 선거 전략이 유출되는 것 같아 노 비서를 의심하고 미행을 한 겁니다.....”

 

-야아! 이거이거 진짜 미스터리네. 자! 같이 합리적 추론 합시다!!-

-최 후보 나쁜 놈! 뻔뻔하게 거짓말을.-

-목격자를 최 후보가 고용했고, 질투심에 집에 갔는데 남자는 도망가고 그 남자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폰 뺏으려다 사고사. 그걸 숨기기 위해 도청장치를 설치해서 연강우를 스파이로... 내 추론 어때 합리적이지?-

-최 후보라는 직접적 증거가 없으니 재판에서는 무죄!-

-무죄지만 합리적 의심으로 최 후보가 범인!-

 

“그냥 우리가 가만 있어도 네티즌 수사대가 알아서 다 결론 내준다니깐! 내일 명 후보 연설 초안 다시 잘 짜봐. 지지율 뒤집어 질테니까!!” 강 본부장은 승리를 확신했다.

 

노 비서 사건으로 지지율 격차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때 창문 내다보던 남자, 최 후보 집근처에서 급히 들어가는 것 본 것 같아. 비슷해.-

-뭐가 비슷해. 똑같구만. ㅋㅋ-

 

“9시 뉴스, 오늘의 딴지 걸기 코너입니다. 이제 대선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마치 스파이 게임 영화를 한편 보듯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대선전까지 볼 수 없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결국 열린 결말로 끝나겠는데요. 유권자 여러분은 어떤 결말을 선택하셨나요? 부디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선거 직후>

 

“9시 뉴스입니다. 오늘 치러진 대선에서 이번 대통령은 청년미래당의 명성후 후보가 민주혁신당의 최혁신 후보를 0.5%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당선 되었습니다..... ”

명성후와 강 본부장은 서로를 보고 무언의 미소를 지었다.

 

<어느 산장>

 

어서 열어달라는 폼으로 산장 출입문 손잡이가 금색으로 빛났다.

손잡이를 돌리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삐익! 금색 손잡이 귀품과 다르게 문은 뻑뻑했다.

안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예상대로였다.

두 명은 서서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었고, 한 명은 회전의자를 돌려 앉아 있었다. 뒤통수만 삼분의 일쯤 보였다. 머리를 왼쪽으로 약간 기울인 채 천장 위로 담배 연기가 퍼져 올라갔다.

두 명의 떡대를 보고는 약간의 눈웃음과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떡대들 보다는 저 뒤통수 삼분의 일이 더 부담됐다. 자주 보던 사람이지만 다시 나가고 싶었다.

“너 때문에 큰 일 날뻔했어.” 한 명의 떡대가 안경을 고쳐 쓰며 아래 위로 흘겨 보았다.

“정말 아찔했단 말이야!” 또다른 떡대가 시간차도 주지 않고 공격했다.

“당에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사고였습니다.” 강우도 시간차 없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때 회전의자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재떨이에 담뱃불을 꾹 눌러 비벼 껐다. 비벼 끄는 손이 보통보다 힘이 더 들어갔다. 찌그러진 담배 꽁초가 마치 강우 자신 같았다.

“아니, 그 사고도 없어야 했단 말이야!! 뉴스속보에 도청장치 말이 나왔을 때 얼마나 심장이 쪼그라들은 줄 알아?!” 강 본부장은 다시 담배를 꺼내 꽉 물었다. 그리고 강우 눈만 바라보며 침묵의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왜 그랬어?

강우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쩔수 없는 사고였다구요! 라고 침묵의 답만 했다.

“근데 그게 전화위복이 됐지 뭐야. 참 나! 만약 이번에 우리가 졌더라면 너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강 본부장은 담배 한모금을 길게 빨아들이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이젠 전 어떻게 되나요?” 강우는 목구멍으로 침을 꼴딱 삼켰다.

“백번 성공하더라도 한 번 실패하면 토사구팽 되는 게 스파이야. 천만다행으로 놈들이 급하게 일처리 하는 바람에 우리 거는 못 찾아냈나봐. ” 또한번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제가 다시 수거해 올까요?” 강우는 살짝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폈다.

“그건 안돼! 위험해. 다른 팀이 수거하든지 힘들면 집에 불 질러 버릴 거야. 결과는 좋았지만 너무 위험했어. 칭찬을 해야 할지 욕을 해야 할지. 자, 여기 몰디브 티켓이야. 당분간 휴가나 즐겨. 몰디브 가서 모히또 한잔. 아니지,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 해.” 

 강우는 이 말이 이 세상 마지막 농담처럼 들렸다.

몰디브 티켓을 받았지만 씁쓸했다.

‘토사구팽’ 속으로 외치며 공항을 향했다.

 

 

 

 

 

 

 

 

 

 

 

 

 

댓글 1
  • No Profile
    글쓴이 꿈꾸는작가 23.09.21 13:20 댓글

    두 번째 도전입니다. 좀 더 나은 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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