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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1세기 자린고비 시트콤

2023.12.28 13:3012.28

<21세기 자린고비 시트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반드시 받은 만큼 되갚아주마!〉

자린고비 영감 집 거실에는 이렇게 가훈처럼 큰 글씨로 액자가 걸려있었다.

이것을 아는 이웃 사람들은 “누가 구두쇠 아니랄까봐 가훈도 아주 독한 집안이야!” 라며 혀를 찼다.

 

토요일 저녁 7시. 자린고비네 가족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저녁 밥상은 이미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절대 손대지 않았다. 침만 꼴딱 삼긴 채 십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여차하면 밥과 반찬을 한입에 다 죽여버릴 폼이었다.

다들 시한폭탄이라도 터질 걸 아는 것처럼 괘종 시계 초침을 바라보았다. 곧 고개를 돌려 베란다에 열린 창문을 쳐다보았다. 바람이 들어오자 코를 훌쩍거리듯 냄새를 맡았다. 모두다 심장은 르세라핌 공연을 하고 있었다. ‘붐붐붐붐, 심장이 뛰네!’였다.

영원한 구세주 아랫집 동태를 살펴가며 뭔가 큰 작전을 준비중이었다.

자린고비 영감은 이 모든 걸 총 지휘하는 전쟁터의 야전 사령관이었다.

“냄새 나는 것 같은데 아직 안 됐어요?” 참다못한 마누라가 물었다.

“아직 안돼!! 조금만 더 기다려!” 자린고비 영감은 콧평수를 넓혀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러자 아래층에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너무나 향기로웠다. 다들 입꼬리가 올라가며 코를 킁킁거리다시피 했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냄새를 다 빨아 당겨 안쪽 깊숙히 보냈다. 깊은 곳을 돌아 나와 입안에 잠시 머물다 목구멍으로 냄새를 삼켰다. 바람마저 불고 있어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다들 맡았느냐?”

“네!”

“잠깐! 베란다 문 더 활짝 열고 모든 방구석 문, 화장실 문까지 다 열어 제치란 말이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밥과 국, 반찬에 속속 배기 시작했다. 온 집안 구석구석은 삼겹살 불판이 되어 자글자글 노랗게 익어가는 듯 했다. 냄새는 온 몸과 벽지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자, 머릿속에 세뇌시켜! 집게로 길게 들어올린 오겹 삼겹살을 불판 위에 놓는다. 지지직! 기름이 튄다. 굵은 소금 55개를 흩뿌리듯이 투하한다. 2분 45초 후 뒤집는다. 또 지지직! 3도 화상으로 익어간다. 가위로 가로 5cm, 세로 2cm 직사각형으로 자른다. 상추를 집어 물기를 한 번 털어낸다. 젓가락으로 삼겹살 모가지를 콕! 집는다. 모가지를 기름장에 꾹 눌러 찍어 익사시킨다. 후후 2번 불고 상추에 살포시 눕힌다. 옆에는 마늘을 함께 눕혀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한다. 기호에 따라 명이나물이나 쌈무로 이불을 덮어준다. 상추를 보쌈하듯이 거두어서 입속으로 쏘옥! 턱관절로 힘주어 씹는다. 혓바닥을 놀려 뜨뜻한 고기맛과 시원한 채소맛의 케미를 온 몸으로 느낀다. 입가심으로 파절이로 마무리한다.”

가족들은 아버지 말씀을 따라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자, 밥상을 향해 돌격! 적들을 섬멸하라!” 드디어 사령관이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래봤자 밥과 국, 반찬 몇 가지 뿐.

밥상에는 젓가락, 포크, 숟가락 무기들이 쉴새없이 날아다녔다. 숟가락은 밥알들을 무자비하게 퍼올려 입안으로 씹어 섬멸했고, 젓가락은 김치와 나물 몸뚱아리를 낚아챘으며 포크는 총각김치를 잔인하게 찔러 붉은 고춧가루 피를 사방으로 튀게 했다.

“그냥 막 먹으면 안 된다. 반찬 공격할 때 삼겹살 굽는 냄새를 맡고 입에 넣으란 말이다! 타이밍이 생명이니라!” 자린고비는 입에 적들을 우적우적 씹으며 계속 명령을 내렸다.

허공에 들어올린 반찬들은 삼겹살 굽는 향기를 묻혀서 입속으로 골인했다. 동시에 콧구멍을 통해 들어온 삼겹살 굽는 향기는 입속 반찬들과 콜라보를 이뤄 새로운 맛이 탄생했다.

가족들은 말한마디 없이 손과 입이 비지(busy)했다. 그들 입속은 전쟁터였다. 입속에서 후각과 미각이 어울림 한마당을 했다. 냄새가 온 집안 구석구석 진동할 때 이 모든 작전을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충실했다.

전쟁은 십분만에 끝났다. 하지만 여전히 삼겹살 향기의 추억은 집안 구석구석에 배여 있었다. 이 냄새가 오래가길 바랐다.

마지막 숭늉을 마시고 고기 냄새를 맡으며 입가심했다.

“사람들이 왜 아랫집에서 생선이나 고기 굽는 냄새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네.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구나. 이렇게 좋은 이웃이 또 어디있다고 참!. 다음주엔 한우 구워드시라고 슬쩍 얘기 해볼게. 맛있는 냄새 맡으며 밥 먹으면 그게 바로 진수성찬이지. 허허.”

“맞아요 아버지! 지난 번엔 아랫집에 정말 실망했잖아요. 고기 냄새가 안 나고 무슨 참기름에 풀떼기 냄새가 나길래 비빔밥이구나! 하고 상상하며 밥 먹었잖아요. 나도 밥에다 남은 반찬 비벼서 먹었는데 역시 고기 냄새가 안 나니 밥맛이 영 없었어요. 비빔밥을 발로 비빈줄 알았다니까요! 하하!” 장남이 고기를 먹은 냥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말했다.

 

이렇듯 자린고비 영감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절약정신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교통비 아끼려고 걸어다니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보니 운동화 뒷굽은 한쪽 방향으로 닳아 있고, 앞쪽은 주름이 져 위로 들려 있었으며, 운동화 끈 앞부분 플라스틱은 너덜너덜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몇 번 더 신으면 삼선 슬리퍼가 될 지도 모를 운동화였다.

감기 정도는 절대 병원에 가질 않는다

“어차피 감기는 약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이면 낫는다. 거기서 거기니라.”

머리는 셀프로 가위로 자른다음 면도기로 빡빡 밀어버렸다. 휴지도 3겹짜리가 아닌 2겹짜리 값싼, 그것도 세일 하길 기다려서 샀다.

“김종국은 쨉만으로도 날 이길수 있지만 절약정신에서는 나한텐 쨉도 안되지!”

많이 먹질 않으니 음식물 쓰레기도 잘 나오지 않았다. 고기 뼈다귀 쓰레기는 꿈도 못 꾼다. 일반 쓰레기는 남이 내다놓은 쓰레기 봉투를 다시 열어 쑤셔 넣듯이 하며 봉투값을 아꼈다.

휴대폰도 없었다.

“라떼는 말이야, 편지를 써서 서로 의사소통을 했지. 나름 느림의 미학이 있어서 좋았단 말이야. 근데 지금은 스마트폰에 노예가 된 기분이거든. 잠시라도 손에 없으면 마음에 중풍이 걸린 듯 벌벌 떨고 있지.”

취미는 폐지 줍기다. 매일 손수레를 끌고다니며 동네 폐지를 모았다. 한 번은 주운 신문지 한 장이 바람에 날아가자 300미터를 쫓아가 다시 가져왔다. 날아가는 신문지가 자린고비에게는 날아가는 지폐로 보였다.

“옛날 자린고비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냐. 조선시대 자린고비는 파리가 국에 다리를 담궜다 날아가자 노발대발했지. 바로 파리채를 들고 옆동네까지 쫓아가 때려잡았다니깐!”

 

두 아들은 노총각이었다.

“저놈들이 나이가 찼는데도 결혼을 안 하려 하니 국제결혼이라도 시켜야겠다. 어흠!”

“국제결혼요? 어디 베트남이나 필리핀, 조선족 데려올려구요? 거긴 우리가 돈을 주고 데려와야 되는데요?” 마누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 무슨 영탁이 막걸리 한 잔 하는 소리야? 돈 드는 건 절대 안 되지. 스크루지 영감 가문같은 아주 검소한 집안을 찾아야지!”

한번은 막냇딸이 밥을 차려왔다.

“잉! 시래기국에 웬 고기냐?” 자린고비는 젓가락으로 시래기를 휘저으며 고기 덩어리를 집어올렸다. 코로 킁킁거리며 냄새까지 맡았다.

“아버지. 오늘 정육점에서 세일 하길래 싸게 사서 시래국에 넣어 봤어요. 세계 최초 시래기 고깃국이예요. 저 잘했쪄?” 막냇딸은 칭찬받을 생각에 입꼬리가 귀에 걸리다못해 눈썹까지 걸렸다.

“실망이구나! 네가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정말 실망이야!” 자린고비는 고개를 저었다.

막냇딸은 입꼬리가 다시 내려와 턱밑으로 걸렸다.

“세일하는 고기를 산 것까지 좋았다. 그러나 고기를 국에 그냥 넣지 말고 실에 매달아서 국 끓일때마다 담궈서 빼고 보관했다 담궈서 빼고 보관했다 했으면 더 오래 먹을 수 있을 것을.. 참으로 안타깝구나!” 자린고비는 국을 한 술 떠며 못마땅해했다.

어느날은 마누라가 이웃집에서 요쿠르트를 한 묶음 얻어 왔다. 마누라가 뜯어서 하나를 먹으려 하자 뺏어버렸다.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바늘이었다. 바늘로 윗뚜껑을 톡 찔렀다.

“이렇게 바늘로 뚫어서 쪽쪽 빨아 먹어야 더 오래 먹을 수 있지.”

직접 시범을 보였다. 자린고비 목젖으로 요쿠르트가 침과 함께 꼴까닥 넘어가고 있었다.

“어이구! 차라리 그러지 말고 이거 다시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게 더 아끼겠네요!”

“빙고! 그런 좋은 방법이 있다니!”

가족들 모두 속으로는 천불이 났지만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었다. 특히, 자식들은 나중에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아야 했다.

 

한편 이런 자린고비 영감의 소식을 듣고 유튜버 다밝혀는 취재를 하러갔다. 다밝혀는 유튜브를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생방송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편집을 해서 재밌게 만들어 녹화 방송으로 했다. 하지만 조회수가 그리 많지않아 구독자 수가 적었다. 먹고 살기 위해 큰 이슈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 같은 사람 취재 하지말고 더 좋은 사람 취재나 해!” 자린고비는 단칼에 거절했다.

다밝혀는 포기하지 않고 몰래 뒤를 밟아 찍었다. 며칠 뒤 유튜브에 방송에 내보냈다. 허락없이 방송이 되자 자린고비는 엄청 호통을 쳤다.

“이런식으로 개인 사생활 침해하지 마! 얍삽한 방법으로 돈벌려고 하지마란 말이다. 정직한 방법으로 하란 말이다!”

‘구두쇠 영감쟁이! 뜨게 해줄라했더만. 어디 두고보자.’

다밝혀는 좋은 이슈가 없나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찍힌 영상으로 인기를 끌 기회를 잡았다.

현재 최정상 인기 연예인 나떴다 씨 영상이었다. 이 영상으로 나떴다 씨는 인기가 먼지가 되어버렸다.

지나가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달라고 하는 걸 매몰차게 거절하는 모습이 찍힌 것이다. 그 짤이 인터넷에 떠돌며 네티즌 손가락을 바쁘게 했다. 조회수가 껑충 뛰었다.

SNS에서는 댓글 잔치가 벌어졌다.

-흥! 인기는 있으나 인성은 없었다!

-딱 걸렸어! 학창시절에 떠도는 말이 사실이었어.

-전화받는 척하며 거절하는 모습이 가관이네. 아주 고개까지 돌려버렸어.

나떴다 씨는 해명했다. 그 당시 생방송에 늦어 담당자와 통화한다고 할머니를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통화중에 할머니가 뭐라 말하길래 통화 소리가 안 들려 잠깐 고개를 돌린 게 캡처 되었다고 했다.

역시 댓글들이 달렸다.

-그럼 5년 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생방송이었냐? 말해봐!

네티즌 수사대는 5년 전 무명이었을때 사진을 내보냈다. 할머니가 넘어져 일어서질 못하자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었다.

-거봐. 생방송 아니였어도 저놈은 할머니 도움 무시했을 거야.

-평상시 잘해야 되는 거야. 할머니의 애절한 얼굴이 안 보이냐?

-연예인 되기전에 도덕 좀 다시 배워라.

또 해명했다. 그땐 정말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했다. 이미 할머니를 도와주는 일반시민이 있어서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저땐 무명이었으니까 별 타격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이번은 아니야.

-그냥 빤히 쳐다보고 가는 모습 참 어이없다. 당신 인기는 여기까지!

-한 사람 보내버리기 참 쉽죠잉!

언론에서는 네티즌들의 손가락질 폭격을 비판했지만 악플은 계속되었다. 다밝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생은 한 방이다!’

다밝혀는 ‘그래 이거야!’ 하면서 연예인들을 더욱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큰 걸 한 건 했다. 이번엔 무명 연예인 공춘팔이 한 순간의 동영상으로 떴다.

나떴다와 달리 훈훈한 영상이 올라왔다.

길 가던 할머니가 쓰러지자 바로 업고는 근처 병원으로 가는 모습이 찍혔다. 다밝혀는 선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SNS에 퍼뜨렸다. 누군지 인터뷰 하려고 쫓아갔지만 뒤로 몇 번 돌아보다가 도둑놈 마냥 내빼는 장면이었다.

네티즌 수사대의 숨은 영웅 찾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무명 연예인이 영웅이 되는 순간이었다. 방송국이 나서서 띄워주고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을 했다.

공춘팔은 부끄럽다고 했다. 그의 인터뷰도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큰 일도 아닌데 제가 마치 영웅이 된 것처럼 띄워주는데 이런 거 좀 안 했으면 합니다. SNS 발달로 영웅과 마녀 만들기가 너무 쉬워진 것 같아 안타까워요. 조금 좋은 일 한 것 가지고 이런식으로 퍼뜨리면 당사자들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요. 반대로 얼마 전 인기 연예인처럼 조금 잘못 한 것 가지고 마녀 사냥식으로 몰아부치니 그분 인생도 힘들어지겠지요. 누구나 실수는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인간성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한 순간에 마녀로 만들어버리는건 아닌 것 같네요. 저 역시 운좋게 선행하는 게 찍혔을 뿐이죠. 저도 가끔은 무단횡단하고 운전할 때 신호 위반도 합니다.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일상들이 너무 많은 관심으로 영웅과 마녀로 각인이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세치 혀와 손가락질 하는 글들이 한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 SNS엔 개념 연예인이라고 띄워주었다.

-어쩜 저리 말도 곱게 하시지?

-나떴다까지 걱정해주고 인성이 바른 연예인이야. 나떴다 보고 있나?

-당신이 나떴다로 개명하시오. 이제 확실히 떴소.

공춘팔은 방송 섭외 요청과 광고로 20년 무명을 벗어났다.

6개월 후 다밝혀를 만났다.

“곧 인기가 사그라지겠지?” 공춘팔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러면 또 사건을 만들어야지. 주변에 연기할 사람 많아. 덕분에 나도 구독자 수가 늘었거든.” 다밝혀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을까? 요즘 워낙 정보 유출이 잘 되는 세상이니 이런 짓도 금방 탄로날 수 있어. 한 번으로 끝내야겠어. 양심상 못하겠어.”
다밝혀도 사실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구독자수 욕심에 일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꼬리가 길면 잡힐 것 같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러다 진짜 큰 건수가 생겼다. 이번엔 조작이 아니었다.

유튜버 다밝혀입니다.

드디어 제가 얼굴없는 천사를 알아냈습니다.

매년 연말 주민자치센터에 30년째 현금 다발 천만원을 몰래 두고 가는 천사를 찾았습니다. 며칠전 잠복근무 끝에 알아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천사는 얼마전에 부모없는 남매를 후원해주기로 했답니다. 누군지 다 밝히고 싶지만 천사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변조로 인터뷰만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구독자 여러분의 양해바랍니다.

 

이게 유튜브로 먼저 방송되자 바로 방송국에서 앞다퉈 이슈화했다. 30년전 이 천사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얼굴없는 천사 기부 릴레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제가 어렸을적 힘들게 살아서 가난한 사람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렇게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불쌍한 남매의 사정을 알고는 좋은 부모가 나타날때까지 후원하기로 했습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국민들은 다밝혀한테 천사를 공개하라고 압박을 넘어 협박 수준이었다. 이런 사람은 널리 알려서 상을 줘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영웅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밝혀는 약속을 한 게 있어서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뉴스 앵커가 멘트를 했다.

천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독감과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지만 천사들의 기부 행렬이 더 전염되어 유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티브이를 보던 자린고비는 불편한 심기였다.

“어흠!! 뭔 자랑이라고 저런 사람들을 언론에 내보내지. 그냥 냅두면 될 것을.. 어흠!! 하여튼 유튜버나 언론이 문제라니까!!”

옆에 앉아 있던 마누라는 남편을 슬쩍 흘겨보고는 “당신 같은 사람 좀 보라고 내보는 거예요! 저렇게 기부는 못하더라도 가족한테 돈 좀 쓰세요. 도대체 명품이 어찌 생겼는지 구경 좀 하고 싶어요. 저한테 돈 좀 쓰세요. 동창회 나갈 때 제대로 화장도 못하고 가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하며 원망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당신은 화장 안 해도 미스코리아야.” 자린고비는 마누라를 달래려 끌어 안으려했다.

퍽!

이미 마누라 옆차기가 자린고비 배를 강타했다.

 

그러다 몇 달 후 자린고비 영감은 노환이 들어 드러눕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얼마남지 않았다고 했다. 입원비도 아까워 집에서 남은 인생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드디어 자식들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다들 속으로 ‘우리가 이때까지 아버지 때문에 명품하나 못 걸치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돌아가시기 전에 재산분배 받아서 이젠 좀 편히 살련다.’ 라고 생각했다.

이런 속마음을 자린고비 영감은 다 알고 있었다.

자린고비 영감은 자식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여기 자필로 쓴 유언장이다. 유언장을 우리 세대 스테디셀러 모나미 0.7 검정 볼펜으로 쓰려다 마지막 나의 글이니 특별히 거금을 투자해봤다. 아주 비싼 네임펜으로 써봤으니 장남이 읽어보거라.”

장남은 덥석 받아들었다. 딱 한 줄이었다.

자식들은 속으로 미소를 머금은 채 장남이 읽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장남의 눈동자가 강도 7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눈동자 뿐만이 아니었다. 입술을 파르르 떨고, 목젖에는 침이 꼴딱 넘어가고 있었으며 유언장을 쥔 손은 수전증에 걸린냥 떨고 있었다. 이러다 아버지보다 먼저 저승사자와 급만남 직전이었다.

“저.. 형님! 아직 한글을 못 깨우치신건 아니죠?” 보다못한 동생이 물었다.

“어서 읽어보아라!” 자린고비 영감은 마지막 힘을 내어 재촉했다.

장남은 읽기 시작했다.

“내가 사망하면 장남은 3천만원, 차남은 2천만원, 막냇딸은 1천만원 가져간다. 끝”

나머지 자식들도 장남과 똑같은 강도 7의 눈동자가 되었다.

“아버지, ‘0’자를 몇 개씩 빼먹은 건 아닌지요. 3억이나 30억이겠지요. 돌아가시기전까지 이런 개그를 하시다니요!” 장남은 인상이 찌그러질대로 찌그러졌다..

나머지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네 이놈들! 그동안 나 때문에 너희들이 절약 정신이 몸에 배지 않았느냐? 이런 정신으로 살았으니 너희들이 지금도 부족함이 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식으로 살면 재산은 얼마든지 너희 스스로 더 모을 수 있느니라. 너희 노력으로 재산 모을 생각을 해야지, 감히 내 덕을 보려고 하느냐?” 다 죽어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호통이자 유언이었다.

“그래도 너무 하십니다. 그동안 아버지 비위 맞춘다고 돈 한번 시원하게 써 본적 없습니다. 그 돈 죽어서 가져갈 것도 아닌데 어디 쓰려고 하세요? 빨리 내놓으세요!” 차남은 주먹을 불끈 쥐어 방바닥을 꾹 눌렀다.

“우리 꼴을 보세요 아버지!, 아직도 이런 허접한 옷을 입고 있잖아요? 명품하나 사 본적 없다구요!” 막냇딸도 참다못해 한 마디 했다.

“그놈의 명품! 명품!, 명품 좋아하네. 사람이 명품이 되어야지!” 자린고비는 숨이 넘어갈듯 말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눈물이 흘렀다. 누워있는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러 옆 귀밑머리를 타고 이불을 적셨다.

가족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만 멀뚱멀뚱했다.

“사실 나,....... 고아원 출신이야.” 자린고비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자린고비 영감은 누운채로 코를 훌쩍거리며 옛날 일이 생각난 듯 서러움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렸을적 너무 힘들게 살아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었거든. 네 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 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아버지였어. 어머니도 날 키운다고 고생 많으셨지. 남의 집 식모살이 하면서 힘들게 살았어. 그런데 어머니마저 폐렴에 걸려 시한부 인생인데다 날 키울 능력이 없었어. 어쩔수없이 보육원에 날 보냈지. 설상가상 내가 보육원 생활하는 동안 어머닌 돌아가셨어. 진짜 고아가 된 거지. 20살이 되면 보육원에서 나가 혼자 살아야 하거든. 앞길이 막막했지. 보육원 원장님께서 나가기 전날 조언을 하더군.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남한테 나쁜 짓 하거나 폐를 끼쳐선 안 된다고. 살면서 돈은 소중하니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고.” 살며시 눈을 감은 다음 눈꺼풀에 힘을 주자 눈가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곧바로 눈물방울이 쥐어짠듯 또 흘러내렸다.

가족들은 누워있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보육원도 누군가의 도움을 많이 받아 운영해왔대. 그런 사람들한테 항상 고마워하며 살라고 하더군. 콜록콜록.” 자린고비는 침을 한 번 힘들게 삼켰다.

“난 깊이 새겨들었지. 그때부터 자립해서 열심히 벌었지. 정승같이 쓰는 건 잘 모르겠고 일단 개같이 벌었던 건 맞아. 온갖 힘든 일 다해 봤거든.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막상 돈을 많이 벌었는데 못 쓰겠더군. 습관이 참 무서워. 그러다 여기까지 와 버렸어. 그래도 원장님 말씀대로 아무리 힘들어도 남한테 나쁜 짓 하거나 폐를 끼친 적이 없어. 단지 남들이 내가 구두쇠라고 손가락질 할 뿐, 난 그들에게 나쁜 짓 한 적 없거든. 콜록콜록. 어억!”

그리고 눈을 서서히 감으셨다.

“아버지!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이렇게 돌아가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나머지 재산은 어딨냐구요? 개같이 번 돈 어딨냐 말입니다!!” 장남이 흔들어 깨우듯이 외쳤다.

“그러니까 이놈들아, 지금 무서운 습관처럼 그냥 살면 되느니라. 어차피 내 재산이 원래 너희 것도 아니었잖아. 손해보는 건 없지 않느냐? 너희건 너희가 벌어서 살거라. 나머지 재산은 벌써 다 써버렸다. 그러니 미련을 버리거.. 으억!” 꼴까닥이었다.

 

# 못다 한 이야기

 

티브이에는 크리스마스니 연말이니 하며 사람들의 바쁜 모습만 보여주었다.

자린고비는 역시 못마땅해 했다.

“저럴 시간에 돈이나 한 푼 더 벌지. 흥!”

티브이를 끄고 자린고비는 나갈 채비를 했다.

활동성 좋은 츄리닝을 꺼내 입었다. 겉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쳤다. 창이 긴 중절모자도 썼다. 쓰지 않던 검고 두꺼운 뿔테 안경도 썼다. 마스크는 당연히 했다. 신발은 구두가 아닌 운동화였다. 삼선 슬리퍼 운동화가 아닌 새 운동화였다. 완벽한 변장이다.

마누라는 생각했다.

구두쇠라 워낙 소문이 나서 얼굴을 알아보면 부끄러워 변장하는 거라고..

하지만 자린고비는 핑계됐다.

“아, 그게 아니고.. 모자는 예쁜 내 얼굴 햇볕에 타지 말라고 쓴 거고, 뿔테 안경은 내가 안구건조증이 있어서 바람이 눈에 들어가지 말라고 쓰지. 마스크는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잖아..”

“아휴, 핑계가 좋지!”

 

자린고비는 마치 007작전을 하듯 몰래 마을을 빠져나갔다. 어깨에는 가방을 둘러메고 나갔다. 옷차림과 달리 가방은 시커먼 때가 묻어 허름했다. 가방을 멘 뒷모습은 모든 돈을 가방에 쓸어 담을 폼이었다. 자기 집 근처에서 작전을 벌이면 알아 챌 수 있으니 버스타고 다른 동네로 갔다.

역시 그곳은 사람이 많이 들락거렸다. 좋은 건물이었다. 눈치를 살폈다. 요즘엔 웬만한 곳에는 카메라가 다 설치되어 있어서 이 짓거리도 갈수록 힘들었다. 작전 후 냅다 뛰어야 되는데 해가 갈수록 달리기가 느려졌다. 그래서 작년에 새 운동화를 큰 맘 먹고 구입했다. 겨울이라 오후 5시도 안돼 해는 금방 져서 어두스럼 해서 좋았다.

그곳을 한 번 쓱 둘러보고는 사람이 많이 지나가지 않는 곳을 찾았다. 다행히 저쪽 모퉁이에 한 사람만 보였다. 회색 군밤모자를 꽉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사람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자린고비는 건물을 돌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카메라가 없는 곳을 찾았다. 예전처럼 뒤편 화단쪽에 나무가 심겨져 있는 곳은 사람도 없고 카메라도 없었다. 화단옆 썬팅이 된 창문을 바라보았다. 안이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상상이 갔다. 한 번 더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런일 할때마다 심장은 스트레이트로 폭행당한 듯 두근두근거렸다.

자린고비는 얼른 작전을 실행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뒤돌아서 나왔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도로가로 향했다. 혹시나 뒤로 슬쩍 돌아보았다.

‘음, 조금전 군밤모자?’

얼핏 봤던 터라 긴가민가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도로가에 주차된 차량의 사이드 미러로 힐끗 보았다. 군밤모자가 조심스레 오고 있었다.

‘여기서 들키면 이 무슨 망신인가?’

못 본 척 계속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 섰다. 여러 사람들이 신호등 양쪽에 파란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 신호등 뒤쪽으로 낮은 산이 보였다. 자린고비가 어렸을적 자주 가던 산이었다. 저 산으로 도망쳐서 따돌릴 작정이었다. 도로 너비는 십미터 정도. 뛰어서 3초면 충분히 건널 수 있다.

파란불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양쪽에서 걸어나와 서로 교차해서 지나쳤다. 자린고비는 건너지 않았다. 신호가 깜빡이길 기다렸다.

군밤모자는 십여미터 떨어져 감시하고 있었다.

10초, 9초, 신호가 깜빡이면서 빨리 건너라고 재촉했다.

자린고비는 밑을 내려다보며 운동화 끈이 꽉 조여진 걸 한 번 더 확인했다.

5초, 4초, 3초! 급출발했다. 죽어라 달렸다. 군밤모자도 뒤따라 뛰었다. 자린고비가 반대편 도로에 이르자 신호는 빨간불로 바뀌었다. 군밤모자는 횡단보도를 두어발자국 내딛고는 빵! 소리와 빨간 불을 보고는 뒤로 걸음을 물렸다. 눈앞에 고급 외제차가 창문을 열고 씩씩거리며 지나갔다. 바로 뒤로 배달 오토바이가 옷깃을 스치듯 앞만 보고 휑 지나갔다.

약 2분 후면 신호가 또 바뀌니 자린고비는 산으로 뛰었다.

최대한 나무가 많은 산속으로 뛰었다. 오르막길이라 헉헉거렸다. 그때 뒤에서 뭔가가 뛰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군밤모자가 벌써?’

재빨리 뒤돌아 보았다. 어두워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토끼였다.

자린고비는 오랜만에 등산하고 다시 버스 타러 내려올 작정이었다. 밤이지만 보름달빛이 도와주었다. 산길도 훤히 알고 있으니 군밤모자를 따돌리긴 식은 죽 먹이였다. 삼십분 정도 지났다. 다시 내려왔다.

오랜만에 산에 올라갔다오니 온 몸에 땀이 찼다. 중절모자와 뿔테 안경을 벗고 마스크도 벗어 숨을 한껏 내뱉었다.

저기 도로가에 차들이 지나갔다. 차들의 불빛과 보름달빛이 어우러져 자린고비 형체를 비추어 주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동영상을 다 찍고 있었다. 셀카봉에 단단히 고정된 폰은 자린고비를 향해 찍고 있었다. 잠시뒤 몰래 다가왔다.

“드디어 내가 범인을 잡았어! 대박이야! 다시 올 줄 알았지! 땡큐베리망치!” 셀카봉을 자린고비 몸 전체 비율이 잘 나오도록 조절했다.

자린고비는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식었던 땀이 다시 데워졌다. 아까 그 군밤모자!

“잠복근무한 보람이 있었어. 그나저나 형사들은 이 짓거리를 어떻게 하는지 몰라. 정말 존경스러워. 산기슭에서 추워 죽는 줄 알았네!”

군밤모자 입술은 허옇게 터 있었다.

 

군밤모자는 셀카봉을 자린고비 얼굴 가까이 갖다댔다. 보름달빛에 얼굴이 엷게 드러났다.

“윽!! 할아버진?? 이럴수가!!” 군밤모자는 셀카봉을 내리고 얼굴을 다시 확인했다.

“윽!! 넌.. 그때 그놈!” 자린고비는 중절모자와 뿔테 안경, 마스크를 다시 썼다.

둘다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유튜버 다밝혀는 천사가 자린고비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셀카봉을 든 손이 조금 떨렸다. 하지만 다시 셀카봉을 꽉 잡았다.

“오! 이런 더 대박이야! 해외 토픽감인데요! 땡큐베리망치몽키스패너펜치드라이버! 이런 반전 좋았어요.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완전 스타 유튜버 되겠는데요. 역시 인생은 한 방이야!! 하하!!” 폰 화면에 자린고비의 얼굴을 꽉 차도록 담았다.

자린고비는 폰을 툭 치며 “쉿!” 하고 그놈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멱살을 잡았다.

“내말 잘 들어! 부탁이다! 이렇게 내보내면 내년부턴 이 좋은 일을 하지 못해! 그럼 불우이웃을 돕지 못한단 말이야!! 바붕 멍충아! 진정 그런 걸 바라는 거냐?” 목소리 톤과 멱살은 협박반 부탁반이었다.

하지만 다밝혀는 자기가 완전 스타가 된다는 생각에 자린고비 말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잘 생각해봐. 젊은이 당신이 한 번이라도 남을 위해 방송한 적 있어? 언제나 당신 방송 조회수나 올리려고 했잖아? 그것도 비열한 방법을 많이 썼을 걸. 제발 내보내지 마. 내보내면 난 더 이상 좋은 일 할 수 없어. 이건 전국에 있는 천사에 대한 모독이야. 내가 30년전 시발점이 되어 또다른 천사가 나타난 것에 아주 자랑스럽게 살아왔어. 그 전통을 지킬수 있게 도와줘.” 어느새 반협박의 몸짓은 사라지고 제발! 이라는 손짓으로 바뀌었다. 자린고비 눈엔 간절함이 있었다.

다밝혀는 70대 할아버지의 간절한 눈을 보고야 말았다. 보름달빛에 비친 눈빛은 부탁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대신 모자이크 처리와 음성변조는 협조할게. 그러면 너에게 자원봉사 할 곳을 소개해주고 방송도 하게 해줄게. 물론 후원금도 줄게. 어때? 방송도 하고 인기도 얻고 합법적으로 후원금도 받고 일석 몇조야? 내 좌우명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반드시 받은 만큼 되갚아 주는 거거든. 나도 보육원에서 이름모를 천사한테 도움을 받아서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거야. 그걸 똑같이 되갚고 싶어.” 자린고비는 멱살 쥔 손을 약간 풀고는 다밝혀 눈을 쳐다보았다.

다밝혀는 자린고비 눈빛속에 자신이 살아온 짧은 인생이 스쳐지나갔다. 비겁하게 살아왔다. 살아오면서 자신이 과연 누군가를 위해 뭘 했는지 생각해봤다. 없었다. 한 방의 인생만 노렸다.

다밝혀는 더이상 할아버지를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해 눈길을 밑으로 깔았다. 할아버지의 새 운동화가 보름달빛에 비췄다. 흰 운동화엔 진흙과 갈색 솔잎이 덕지덕지 묻어버려 낡은 운동화처럼 초라해 보였다.

“그냥 인생 한 방은 없어. 인생을 열심히 진실되게 살다보면 한방 인생은 저절로 찾아 오는 거지.” 자린고비는 멱살을 서서히 풀었다.

다밝혀는 양심이 들키고말았다. 심장박동은 휘모리 장단에 비트박스까지 콜라보였다. 엇박자로 춤추는 심장은 부끄러워 피부를 뚫고 나올 듯 했다. 아니, 직접 심장을 꺼내 어두운 풀숲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다밝혀는 폰을 거두고 카메라를 껐다. 떨리는 눈빛으로 자린고비를 쳐다보았다.

“방금 한 말 약속 지켜 주실거죠? 지켜 주신다면 할아버지와 좋은 일을 같이할게요. 전국에 천사를 함께 지킬게요.”

자린고비는 그제야 다밝혀의 옷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힘든 결정 고맙다. 마지막으로 내가 언젠가 죽게되면 나 대신 가족한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된다.”

 

*

자린고비 영감 장례식이 열렸다. 시에서 주최하는 특별 장례식으로 치렀다.

“오늘은 슬픈 날이면서 또한 희망을 보인 날입니다. 시장으로서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자린고비님 뿐만 아니라 이름모를 천사들은 모두다 숨은 영웅들입니다. 이런 좋은 일들이 널리 알려져 아름다운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연설이 끝나고 자린고비 영정 앞에 하객들이 국화를 헌화하고 있었다.

뒤에서는 다밝혀가 촬영하고 있었다.

“이런 영웅들이라면 얼마든지 이 다밝혀가 다밝혀도 좋은 일이지!”

그 뒤에 양복 입은 신사 몇 분과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몇 분도 계셨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그들은 서로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모두다 숨은 천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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