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너희는 그저 싶었던

2023.12.12 09:0012.12

‘오늘이 아버지 제사네. 저녁에 갈게. 아주머니는 전화를 안 받으시길래 문자 드렸어. 예은이 보기 불편하면 방에 들어가 있어도 돼. 내가 잘 말해 놓을게.’

밤새 뜬눈으로 뒤척이다 새벽에 잠든 미루는 기상 알람을 듣지 못 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메시지 알림음에 눈을 떴다. 미루는 당황스럽고 난감한 마음으로 화면을 들여다봤다. 오늘이 ‘그분’의 제사라니. 선우와 예은이 온다니. 그분이 돌아가신 지 꽤 됐다는 인식은 어렴풋이 있었지만 그게 여름이었고 더더구나 정확히 1년이 지났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그럼 다 알아서 했을 텐데. 생선이며 고기며 나물을 잔뜩 사 놓고 새벽부터 지지고 볶고 했을 거야. 제기를 꺼내서 광이 나게 닦아놓고, 상과 병풍의 먼지도 털어놓고 말이야. 아예 대청소를 했을걸. 마당의 잡초도 뽑고. 선우에게 집에 돌아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며. 예은에게 책잡히기 싫다며. 미루는 조금도 돕지 않았을 거고, 엄마는 그런 미루를 나무라지 않았을 것이다.

미루는 방을 빠져나와 주방과 거실을 지났다. 밤새 조금도 식지 않은 집이 새로이 달궈지고 있었다. 미루는 티셔츠 자락을 털듯이 흔들며 계단을 올라 복도를 걷다가 안방 앞에서 멈췄다. 찌르르 머리가 울렸다. 간밤에 잠을 자보려고 들이켠 술 때문이었다. 목구멍도 텁텁했다.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잠깐 들어가 볼까? 미루는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미루가 사는 성북동에서 오늘 첫 작업이 있는 금천구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미루가 하는 일은 특히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고인은 산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전철에 올라탄 미루는 선우의 메시지를 들여다보며 답할 말을 고르고 골랐다.

‘미안. 엄마가 아프셔서 준비를 못 했어. 코로나래.’

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썼다가 지웠다. 미루가 사는 곳은 선우의 집이었다. 그에게 오지 말라고 할 권리는 미루에게 없었다. 곧바로 선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루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고 거짓말할 자신이 없어서 받지 않았다. 전화가 끊기더니 메시지가 도착했다.

‘몸조리 잘 하시라고 전해드리고 잘 돌봐드려.’

오지 않겠다는 뉘앙스였다. 제사에 관한 언급은 없었지만 선우와 예은이 사는 청담동 집에도 가사도우미가 있었다. 셋이 알아서 하겠지. 한시름 놨다는 게 이런 건가. 선우를 못 보게 된 것은 울고 싶을 정도로 아쉽지만.

미루는 헤드폰을 덮어썼다. 오래 전 선우가 생일 선물로 사 준, 소음 제거 기능이 있는 헤드폰이었다. 칠과 가죽이 벗겨지고 한쪽 스피커가 신통찮았지만 미루는 이것을 늘 목에 걸고 다녔다.

미루가 스스로를 세상에 내어놓은 지 한 달. 발 디딜 틈 없는 전철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못 본 체 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미루는 볼륨을 높였다. 음악에 빠져들려 했지만 자꾸만 선우에게로 생각이 미쳤다.

선우가 마지막으로 온 것은 늦겨울. 2월의 끝자락이었다. 그분의 생신이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의 생일을 챙긴다는 게 정말 이상했지만 그 풍습은 엄연히 생신제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엄마는 설 때처럼 생신제 사흘 전부터 난방을 돌렸다. 선우가 오기 직전에 돌리면 집이 여전히 추울 거라는 거였다. 덕분에 겨우내 싸늘하던 집은 선우와 예은이 들어섰을 때 꽤나 후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미루와 미루의 엄마를 쳐다보던 예은의 시선은 집을 도로 얼어붙게 만들 것 같았지만.

‘그분’이 돌아가신 후 미루와 미루의 엄마를 내보내는 문제로 예은은 발톱을 세웠다. 예은은 자신이 나고 자란 청담동을 벗어날 생각이 없었지만 이 집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미루 모녀를 내보내고 집을 팔거나 세놓자는 예은의 제안을 선우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 둘과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으며 그러므로 가족과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생신제 날, 미루는 이전에 선우와 예은이 왔을 때처럼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제사가 다 끝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가족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왜 돕지도 않고 코빼기도 안 비치는 거냐고 예은이 선우에게 따질 것을 알면서도. 미루는 선우가 자신과 예은 사이를 어색하게 오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시선이 선우에게서 떠나지 못 하고 저도 모르게 자꾸 웃음 짓게 되는 것을 예은이 알아차릴까 봐 두렵기도 했다.

생신제를 마친 늦은 밤, 미루는 방 안을 서성이며 선우를 기다렸다.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며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내비치는 그리움과 반가움은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자신 또한 그런 눈빛으로 선우를 맞이했었다.

시곗바늘이 세 시를 가리킬 무렵 선우가 왔다. 예은과의 결혼 전에 늘 그랬던 것처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돌아갈 듯 멈칫대다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문고리를 돌리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입맞춤을 퍼붓고 침대로 파고들었다. 벗어던진 옷과 이불과 두 사람의 몸이 한데 뒤엉켰다. 선우는 여전히 다정했고 미루의 귓가에 사랑을 속삭였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했고 올 때처럼 조심스럽게 방을 떠났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다섯 달 전. 선을 보고 온 선우는 침울한 얼굴로 말했었다. 그 여자랑 결혼 안 하면 아버지가 날 내쫓을 거야. 곧 은퇴하실 거니까 법무법인 물려주실 때까지만 참자.

미루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 않았지만 아예 불신하지도 않았다. 믿음과 불신은 치열하게 서로를 공격하며 줄다리기를 벌였다. 미루는 엄마를 혐오에 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불신을 응원했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살림 솜씨가 좋다고 이런 대저택의 사모님이 되는 건 아니잖아. 제발 그만하란 말이야. 미루는 엄마에게 쏟아 붓고 싶은 말을 자신에게 돌려주기를 반복했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선우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야. 거기다 넌 할 줄 아는 것도 없잖아.

‘그분’이 돌아가신 후, 미루가 스스로를 비틀고 짓밟지 않아도 불신은 커져갔다. 선우는 49재와 명절 같은 날이 아니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었을 거야. 예은의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걸 거야. 그런 중얼거림은 생신제 이후 완전히 멈췄다. 예은이 임신한 것이다. 미루가 엿본 예은의 페이스북은 임신의 기쁨과 출산에 관한 기대로 가득했다. 선우는 봄여름 내내 간단한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온 것을 빼면. 그간 잘 지냈느냐고 묻지도 않는 그 서늘함. 무심함.

네겐 사랑을 퍼부을 존재가 생겼으니까. 네 부모가 그랬듯이. 내 외할머니가 그랬듯이. 우리 엄마가 그러지 않았듯이. 넌 내게는 왜 그런 존재를 만들어주지 않았지? 왜겠어, 이 멍청아. 엄마가 돌아가신 걸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어. 결국엔 나가야겠지. 널 다시는 볼 수 없겠지. 미루는 눈 뿌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을 감았다.

 

미루는 금천구청 역 앞에서 박정식 팀장을 만나 그의 소형 세단 조수석에 올라탔다. 뒷좌석은 덩치가 큰 경빈의 차지였다. 경빈은 팀장과 같은 동네에 사는 덕분에 집에서부터 차를 얻어 타고 왔다. 미루는 출퇴근이 힘들어 사는 곳을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간혹 했지만 애초에 그럴 형편이 못 됐다.

‘그분’이 살아계실 때 엄마는 그분에게서 따로 월급을 받고 있지 않았다. 그분이 하사한 신용카드를 썼다. 그분의 아내가 돌아가신 무렵부터였다. 그분의 존함 석 자가 새겨진 반짝거리는 카드를 엄마는 틈이 날 때마다 꺼내보며 미소 짓곤 했다.

엄마는 카드깡 같은 건 절대로 할 줄 모르는 정직한 바보였다. 그래서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엄마의 수중에는 모아놓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그분의 재산을 관리하던 전문가들이 그런 사정을 알 리도 없고 안다 한들 봐 줄 리도 없었다. 카드는 해지되어 플라스틱 쪼가리가 돼 버렸다.

엄마는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엄마의 전문 분야인 가사 도우미였다. 수입은 생겼지만 그 거대한 저택을 유지 보수하고 나면 두 사람이 세 끼 밥 해 먹고 생활용품을 마련하기에도 빠듯했다. 전기료만 해도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나왔던 것이다. 겨울에는 난방비가 그렇게 들었다. 집이 너무 큰 탓이었다. 난방을 최소한으로 돌리고 전기를 필요한 만큼만 써도 그랬다. 그 돈을 벌기 위해 엄마가 일을 늘리면 집이 엉망이 됐다. 미루가 종일 방에 틀어박혀 음악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미루를 꾸짖지 않았고, 선우에게 손을 벌리지도 않았다.

선우는 순진했다. 자기 아버지가 미루의 엄마에게 한 몫 떼어줬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미루와 미루의 엄마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어보지 않는 걸 보면 그랬다. 어쩌면 그는 사람이 사는 데에, 그리고 그 커다란 집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모르는 걸지도 몰랐다. 오늘 아침에 보낸 메시지만 봐도, 그는 제사 준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당연히 미루의 엄마가 준비해놓았을 거라는 말투, 그 준비에 부족한 것이 없을 거라는 믿음.

미루는 선우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가 온다는 얘기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집에 오도록 내버려두고 싶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선우와 예은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를 똑똑히 알면서도. 집을 나가지 못 하는 건 그래서이기도 했다. 자신이 살게 될 초라한 곳에서 선우를 맞이할 자신이 없어서. 그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차가 도로를 내달렸다. 미루는 차창 밖의 행인과 건물 들을 바라보며 사람과 집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은 집에서 살아가며 집을 소중히 여기지만 그곳에서 태어나고 죽지는 않는다. 탄생과 죽음은 병원에서 이뤄진다. 그것이 안전과 품위 모두 보장되는 방식이니까. 따라서 이 현대사회에서 집에서 태어나거나 죽는 사람은 낙오자와도 같다.

미루는 집에서조차 태어나지 못 했다.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났다. 미루의 엄마가 신생아인 미루를 버리고 간 것을 경찰들이 알아냈고, 미루의 외할머니가 미루를 맡아 키웠다. 미루에게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의 동거인에 불과했다. 그런 자신이 죽을 때에는 어디에 있을까?

팀장이 차를 세운 곳은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골목이었다. 경찰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루는 의뢰받은 집으로 걷는 내내 창문으로 힐끔힐끔 내다보는 시선들을 느꼈다. 이들이 어떻게 고인을 잠재울지 궁금하면서도 고인이 풍기는 악취 때문에 구경할 엄두를 내지 못 하는 것이었다.

고인의 집은 어느 단독주택의 대문으로 들어가 건물 뒤쪽으로 돈 다음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 후미진 곳에 있었다. 종일 볕이 비치지 않는, 창고나 버려진 문짝을 대충 세워둔 것처럼 보이는 집.

미루는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악취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보호복 위에 우의를 걸치고 라텍스 장갑을 낀 다음 방독면을 썼다. 밤사이 집중호우가 예보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구름 한 점 없고 무더운 날씨였다. 겨드랑이에 땀이 흐르고 머리가 다시금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미루는 아침에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않고 나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지만 이 냄새를 맡으며 물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왜소한 체격의 박정식 팀장과 비대한 몸집의 경빈도 이미 땀에 전 모습이었다. 경빈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반면 팀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 거친 숨 한 번 내쉬지 않았다.

“시작하시죠.”

문 옆에 서 있던 경찰의 말에 팀장이 문을 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영면지원센터에서 왔습니다.”

고요했다.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윙윙거리는 파리 떼. 방독면을 뚫고 들어오는 지독한 악취.

방독면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미루는 이 일을 시작한 첫날 자신이 방독면을 잘못 쓴 줄 알고 다시 쓰려고 벗었다가 형언할 수 없는 강렬한 시취에 질식해 졸도했던 일을 떠올렸다. 빨리 냄새에 적응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오늘도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이 냄새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후각이 마비된 뒤에도 감지할 수 있는, 어쩌면 후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감지하는지도 모를 저세상의 악취였던 것이다.

집안 풍경은 여느 가난한 독거노인의 집안 풍경과 같았다. 금이 간 플라스틱 그릇들, 벗겨진 벽지와 누렇게 뜬 장판, 낡고 헤진 싸구려 옷들, 벽에 걸린 빛바랜 가족사진.

고인은 한때 이불이었으나 지금은 온갖 색깔의 액체로 범벅된 늪에 파묻혀 손발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악취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불과 사흘 전, 이것이 시취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 것은 어제. 고인의 부패 상태는 심각했다. 살덩어리가 반 이상 썩어서 흘러 내린데다 구더기가 우글대고 있었다.

연이은 폭염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나날이었다. 창이 활짝 열려 있었고, 집안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선풍기는 코드가 꽂혀 있고 버튼도 눌러진 채였지만 고장이 난 건지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돌아가고 있었던들 부패 속도를 줄이지는 못 했겠지만.

미루는 집에 돌아가면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고인의 상태를 살폈다. 숨이 가빠오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고인은 고령이었던 데다 남아있는 근육이 많지 않아서인지 움직임이 둔해 보였던 것이다.

고인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음식? 사랑? 건강? 미루는 인사하듯 손을 흔드는 고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한 달 전, 미루는 고인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 했다. 살아서 웃고 떠들던 인간이 썩어가는 고깃덩이가 되어 흐느적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자신도 죽으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이 특히나 그랬다. 뇌세포에 변형을 일으켜 죽은 사람을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인을 감염시켰다. 미루도 지금까지 세 번이나 걸렸다. 죽으면 좀비화 확정이었다.

이제 미루는 그들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끔찍한 외양과 지독한 악취에 어느 정도 무뎌지기도 했지만 자신들이 아니면 그들을 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들이 그걸 바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좀비가 된 것이라고.

“1947년, 전북 전주 출생 김말녀 님 맞으십니까?”

박정식 팀장이 질문에 고인은 반쯤 막힌 배수구에 물 내려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저희는 사랑모아 영면지원센터 23팀 박정식, 한미루, 최경빈입니다. 김말녀 님의 영면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팀장이 가방에서 올가미를 꺼냈다. 주머니 모양의 불투명한 방수천이 단단히 붙어 있는, 잠자리채 모양의 올가미였다. 작업하는 동안 고인의 눈, 코, 입으로 썩은 뇌수가 쏟아져 나오거나 맹독성의 세균이 번식하는 이빨로 작업자들을 물지 못 하게 막으려는 용도였지만 미루는 이것이 고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만든 물건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인들은 그 탁한 눈을 부릅뜨고 작업자들을 쳐다봐 악몽에 시달리게 만드는 습성이 있었으니까.

미루는 팀장이 건넨 상자에서 드릴과 주사기와 약병을 꺼냈다. 드릴은 미루가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소형이었다. 주사기는 지름 2cm에 길이 15cm 정도의 크기였고, 바늘이 실린더만큼이나 길었다. 약병에는 ‘Slumbelixir’라고 쓰여 있었다. 슬럼벨릭서. 잠의 영약. 망자들의 수면제. 미국에서 개발된 영면보조제로 일명 ‘슬럼벨’이라고 불리는 약물이었다.

팀장이 경빈을 돌아봤다. 경빈은 스마트폰 렌즈를 고인 쪽으로 향한 채 고개를 끄덕했다. 팀장이 미루를 돌아봤다. 미루는 주사기에 슬럼벨을 가득 채운 참이었다. 기다란 팁을 끼운 드릴과 주사기를 들어보이자 팀장이 올가미를 들고 조심스럽게 고인에게 다가갔다.

고인이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었다. 초인적인 괴력을 내며 갑자기 공격해오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다행히 고인은 얌전했다. 얼굴에 천을 씌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팀장이 올가미를 씌우고 줄을 당겨 목을 조이자 고인은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팀장의 손을 찾아 더듬었다. 마치 오랜만에 찾아온 아들의 손을 토닥이듯이. 라텍스 장갑을 낀 팀장이 손이 검푸른 살덩어리와 누렇고 벌건 액체로 뒤덮였다. 팀장은 개의치 않고 미루가 다가오길 기다렸다.

미루는 왼손으로 고인의 머리를 단단히 붙잡았다. 방수천 안에서 썩은 살점과 지방에 찌든 머리카락이 미끄러졌다. 미루는 고인의 머리가 방수천 안에서 돌아가지 않도록 더욱 단단히 붙든 뒤 오른손으로 고인의 콧구멍을 찾았다. 위치를 확인한 미루는 그곳에 드릴의 팁을 찔러 넣고 버튼을 눌렀다. 비강을 둘러싼 뼈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덜덜 떨리며 팁이 돌아가다 어느 순간 매끄럽게 돌기 시작했다. 미루는 드릴을 빼낸 자리에 주사바늘을 깊숙이 찔러 넣고 피스톤을 눌렀다.

미루는 이 작업을 할 때마다 언젠가 읽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다른 장기들은 소중히 보관하면서 뇌는 콧구멍에 갈고리를 넣어 빼내 버린 뒤 두개골 속에 헝겊을 채웠다는 것이다. 뇌를 무용한 장기로 여겨 그랬다고 한다. 바보들. 그럼 다시 살아나도 좀비가 되는데. 어린 미루는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고인의 움직임이 점점 사그라졌다. 슬럼벨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고인의 뇌 속 단백질들이 석회화되어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뉴런 사이에 전기가 흐르지 못 하도록.

팀장과 미루는 고인을 붙든 손을 놓지 않고 기다렸다. 10여 분의 시간이 흐르자 고인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팀장이 이제 됐다며 일어섰다. 미루도 일어나 주사기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모든 과정을 경빈이 찍고 있었다. 경찰의 수사를 돕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영면지원이 올바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였다. 영상을 제출하지 않으면 구청에서는 고인이 잠든 것을 보고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고인의 유족들이 고인이 영면에 드는 과정을 보고 싶다고 요청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과연 제 정신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고인은 시신을 담는 기다란 가방 안에 밀봉된 채로 집을 나갔다. 살아생전 자신의 두 다리로 넘어 다녔을 그 문턱을 넘어.

이불 위에는 고인이 누운 자세 그대로 썩은 살점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주변이 냄새나고 끈적거리는 거무스름한 액체로 뒤덮여 있어 엉망이었지만 영면지원센터가 처리할 문제는 아니었다.

팀장과 미루와 경빈이 집을 나서면 뒤에서 기다리던 경찰들이 죽음의 원인을 조사할 것이었다. 원래 시신이 발견되면 경찰이 조사부터 하고 시신을 치웠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 전 이야기였다. 이제는 시신들이 좀비가 되어 경찰들을 공격했기에 일의 순서가 뒤바뀌고 말았다.

경찰의 수사가 끝나면 특수청소업체가 와서 고인의 죽음을 완전히 지우고 유품처리업체가 고인의 삶을 완전히 지우고 집은 새 주인을 맞이할 것이었다. 고인의 시신은 불에 태워져 가루가 되어 무연고 사망자들을 위한 납골당에 10년 간 보관됐다가 폐기될 것이었다. 그러면 고인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아니, 정말 그럴까? 고인이 젊은 시절 무심코 칭찬했던 어린아이가 그것에 자극을 받아 열혈 구조대원이 되었다든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습관으로 바다거북을 멸종 위기에 놓이게 했다든가 하는 일은 없었을까? 세상은, 우리 모두는 조금씩 연결돼 있으니까. 미루가 그것을 느낀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었지만.

미루는 고인이 무슨 일로 죽었을지, 가족이 있을지 없을지, 있다면 왜 고인을 좀비가 되도록 내버려뒀을지를 상상하곤 했지만 모든 게 뻔했다. 고인은 돈도 가족도 친구도 없을 것이었다. 셋 중 하나만 있어도 좀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있으면 병원에서 죽을 테니 의사가 사망 직후 슬럼벨을 주입할 테고,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죽는 순간 곁에 있어줬을 테니까.

정확히 1년 전, ‘그분’이 돌아가실 때도 곁에 아무도 없었지. 하지만 그분에겐 스마트워치가 있었다.

늦은 밤 지인들과 술을 마신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 소유의 법무법인에 되돌아간 그는 사무실에 앉아 있다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켰다. 그의 손목에 채워진 스마트워치는 그의 심장이 정지한 것을 병원으로 알렸고 병원에서는 구급요원을 파견했지만 그들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분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곧장 슬럼벨을 주입받고 뇌가 굳어서 생전처럼 말끔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관에 누였다.

팀장과 미루와 경빈은 고인의 집을 나서자마자 우비와 장갑을 벗어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었다. 드릴과 방독면을 닦은 소독 티슈도 집어넣었다. 봉투는 아무리 꽁꽁 싸매도 냄새가 배어나왔다. 박정식 팀장의 차 트렁크에 던져 넣은 뒤에도. 마치 고인이 난 아직 죽지 않았다고, 이렇게 건재하다고, 너희 모두 나를 느낄 수 있지 않느냐고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 찾아간 집은 작은 아파트였다. 지은 지 몇 십 년은 되어 보이는, 재개발 얘기가 왜 나오지 않는지 이상한, 낡디낡은 아파트.

“하루가 멀다 하고 좀비가 나오는데 누가 와서 살겠어. 쳐다보기도 싫고 이름도 입에 올리기 싫을 텐데.”

차를 타고 가면서 경빈이 해당 아파트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며 떠들어댔다.

운전대를 잡은 박정식 팀장은 아무 말이 없었다. 미루는 팀장과 일하는 것이 좋았다. 일에 대한 잡다한 감상이나 어설픈 철학을 늘어놓지 않아서였다. 미루나 경빈의 개인사를 궁금해 하지 않는 것도 편했고, 젊은 여자가 어쩌다 이런 험한 일을 하게 됐냐고 캐묻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번에 처리할 고인은 어린아이였다. 생부와 생부의 동거녀가 아이를 학대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였다. 아이가 연락도 없이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교사가 찾아갔다가 아이를 지방의 친척집에 보냈다는 생부의 말에 돌아서려는 순간 작은방 문틈이 온통 실리콘으로 떡칠이 된 것을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박정식 팀장과 미루와 경빈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악취를 거의 맡지 못 했다. 방문을 실리콘으로 꼼꼼히 봉한 탓이었다.

“이 정성으로 애를 잘 볼 것이지.”

경빈이 문틈의 실리콘을 칼로 파내면서 노인처럼 혀를 찼다. 정작 머리가 반백인 박정식 팀장은 조용히 그물만 꺼내 펴고 있었다. 그는 작업에 필요한 얘기 외에는 하는 법이 없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어린애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다들 두 눈 크게 뜨고 있어.”

팀장이 문 앞에 축구 골대 모양의 커다란 그물을 세웠다. 그물 안쪽에는 뽀로로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팀장이 문고리를 살그머니 돌리고 문을 슬쩍 밀어 열었다. 순간 ‘꺄아악’ 하는 새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튀어나와 뽀로로 인형에 돌진하는가 싶더니 우뚝 멈췄다. 어린 고인을 처음 보는 경빈이 ‘헐’ 하는 감탄사를 내보낸 탓이었다.

팀장이 그물의 위치를 조정하려는 순간, 고인은 방향을 냉큼 바꿔 그물을 휙 밀치더니 경빈에게 달려들었다. 경빈은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다. 고인은 그대로 경빈의 몸을 타고 올라 어깨와 가슴을 마구잡이로 물어댔다.

“이것 좀 치워줘! 치워 달라고!”

경빈은 고인을 떼어내려고 팔다리를 버둥대며 악을 질렀다. 팀장이 경빈의 스마트폰을 주워서 미루에게 건넸다. 여전히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멍하니 고인과 경빈을 바라보던 미루는 정신을 차리고 촬영을 재개했다.

팀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경빈은 고인이 물 경우를 대비해 보호복을 입고 있었다. 고인을 자극하지 않은 채로, 고인이 경빈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포획할 심산인 것 같았다.

팀장은 조금씩 발을 옮겨가며 고인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동안 경빈은 울부짖으며 고인을 떼어내려 애썼다. 고인은 경빈의 반격에도 아랑곳 않고 그의 팔을 우악스럽게 물어뜯고 있었다. 그 조만한 몸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놀라웠다. 경빈은 작업 시에 시신의 훼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철칙을 잊고 고인을 미친 듯이 밀고 흔들어댔다. 현관 밖에서 작업을 지켜보던 형사들이 욕설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삐이익! 팀장이 휘파람을 불었다. 고인이 모든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미루는 고인의 썩어가는 회색 눈동자가 반짝거리는 것을 본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휘리릭! 팀장이 던진 올가미가 고인의 목에 걸렸다. 팀장은 즉시 줄을 잡아 당겨 고인의 목을 조였다. 고인은 경빈을 물지는 못 했지만 앙상하고 얼룩덜룩한 시반으로 뒤덮인 작은 손으로 경빈의 몸을 꼭 붙들고 있었다. 경빈이 몸서리를 치며 고인의 손을 쳐냈다. 팀장은 재빨리 고인의 두 손을 모아 스트랩을 채웠다. 두 발도 마찬가지였다. 저 스트랩은 언제 꺼낸 걸까. 미루는 팀장의 민첩함에 혀를 내둘렀다.

경빈은 병든 황소처럼 퍼져 앉아 우는 소리를 냈다. 미루는 경빈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드릴과 주사기를 들고 고인에게 다가갔다. 팀장이 팔과 다리를 누르고 있었지만 고인의 저항은 여전했다. 까르르 웃는 것 같은 소리가 고인의 머리를 씌운 방수천 안에서 새어나왔다. 놀고 싶었던 거니? 외롭고 심심했던 거야?

미루는 고인의 조그만 머리를 바닥에 눌렀다. 콧구멍을 찾느라 더듬거려 보니 고인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궁금한 걸까? 이게 다 무슨 장난인지? 아니, 이건 그저 바이러스와 결합한 뇌세포들이 일으키는 반사작용에 불과하다. 미루는 드릴과 주사바늘을 고인의 콧구멍에 차례로 찔러 넣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제비처럼 파닥거리던 고인은 점차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축 늘어지고 말았다.

완전히 잠든 고인의 몸은 경빈을 공격할 때보다 훨씬 작아보였다. 세 살이나 됐을까. 미루는 뜨거운 것이 속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키우기 싫으면 보육원에 맡기든가 입양을 보내지 왜 데리고 살면서 상처를 주는 걸까. 어설픈 책임감 따위 차라리 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

형사들이 그제야 들어와 경빈을 나무랐다. 고인의 생부와 생부의 동거녀가 학대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시신의 부검만이 그들의 죄를 밝힐 수 있는 마당에 고인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면 어쩌느냐는 것이었다. 경빈은 거대한 등을 구부리고 ‘죄송합니다’만 연발했다.

팀장과 경빈과 미루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관리사무소에서는 그들에게 승강기를 타지 못 하게 했다. 시취가 밴다는 것이었다. 세 사람이 주차장으로 내려가자 경비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차를 빼라고 했다. 그들에게 소금을 던지는 주민도 있었다.

팀장은 묵묵히 차를 출발시켰다. 점심시간이 지나 있었다. 팀장은 아파트 상가에서 멀리 떨어진 도로변의 어느 분식점 앞에 차를 세웠다. 상가의 식당들이 이 차를 알아보고 주문을 받지 않을 것을 아는 까닭이었다. 그들은 차 안에 앉은 채로 김밥을 주문했다. 팀장 한 줄, 미루 한 줄, 경빈 두 줄. 김밥을 가져온 아주머니가 이게 무슨 냄새냐며 얼굴을 찡그리고 돌아갔다.

보호복을 벗고 난 뒤에도 시취가 몸에 배어 있어 세 사람은 식당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날씨가 더워서 도시락을 싸올 수도 없었기에 그들은 여름 내내 이렇게 점심을 때웠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작은 차 안에 들어앉아, 시취 때문에 음식의 맛과 향을 느끼지 못 하는 채로. 시취는 차 안에도 배어있었던 것이다.

김밥은 뻣뻣했다. 메마른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숙취로 속이 허했던 미루는 얼큰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허겁지겁 먹었다. 배고픔이라는 동력 하나만으로 무슨 맛인지도 모를 김밥을 입안에 욱여넣는 자신이 벌써 좀비가 된 것 같았다.

차에 타면서부터 경찰들을 욕하던 경빈은 김밥을 먹는 내내 밥풀을 튀기며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지청구를 들은 것이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었다.

“씨발, 지들이 해보든가. 가만 서서 구경만 하는 것들이 뭘 안다고. 좀비 새끼가 물어대는데 가만있으란 말야? 패혈증 걸려 죽으면 지들이 책임질 거냐고. 작업비도 코딱지만큼 주는 것들이.”

고독사한 시신 처리에 대한 업무가 법적으로 나뉘어 있는 것, 고인의 이빨은 보호복을 뚫을 수 없는 것, 혹여 물리더라도 24시간 내에 항생제를 투여 받으면 패혈증에 걸리지 않는 것, 최경빈 너도 죽으면 좀비 새끼가 될 거란 것, 작업비는 구청에서 주는 거지 경찰청에서 주는 것이 아닌 것, 이 일이 아니면 학벌도 인맥도 없는 네가 먹고 살 방법은 도둑질뿐이라는 것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를 미루는 느끼지 못 했다. 박정식 팀장도 마찬가지인 듯 말없이 김밥을 씹고 있었다.

 

다음 작업 장소는 어느 대학 앞의 원룸가였다. 차가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미루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지방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잠시 살았던 동네와 비슷했던 것이다.

놀라기는. 서울 골목길이야 다 똑같이 생긴걸. 원룸 건물도 전부 빼다 박았잖아. 미루는 당시의 기억을 떨치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또렷이 떠올랐다.

미혼모였던 엄마는 미루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와 어느 저택의 상주 식모로 들어갔다. 8년 뒤에 미루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아직 미성년이었던 미루가 보육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는 미루를 서울로 데려와 원룸을 얻어주고 거기서 혼자 살게 했다. 자신이 일하는 집으로 데려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루가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은 2년 뒤에 ‘그분’의 아내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나서였다. 그 대궐 같은 곳에서 미루에게 허락된 공간은 주방 옆의 쪽방이 전부였다. 직전에 살던 원룸과 똑같이 생긴 방이었다. 그 작은 방 안에 화장실과 싱크대가 다 들어가 있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공간이 분리돼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 방에서 자지 않았다. 그분의 방에서 그분과 함께 잤다. 그분과 그분의 아내가 누워 자던 그 침대에서. 모든 짐을 미루의 쪽방에 둔 채로. 그리고는 마치 집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미루에게 집안을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 것을 명했다.

밤마다 그분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엄마는 낮이 되면 집안일에 몰두했다. 밥에서는 언제나 따끈한 김이 피어올랐고 뽀얀 창틀에는 먼지 하나 놓여 있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호소하는 그 성실함이 미루의 속을 뒤틀리게 했다. 엄마와 한 집에 살면서도 함께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매 순간 남의 집에 얹혀사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몇 번이나 그 집을 나가려 했다. 그분의 아들인 선우만 아니었더라면, 매일 밤 찾아와주지 않았더라면…….

원룸 건물에 들어서면서, 고인의 방문을 열고 방안에 발을 디디면서, 미루가 느끼는 기시감은 점점 심해졌다. 모든 것이 그때와 비슷했다. 낯선 도시가 안겨주는 생경함과 지독한 외로움과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귀 따가운 소음과 누군가가 문을 따고 들어와 자신을 겁탈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이 좁은 원룸이 자신의 미래를 영원히 가둬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던 그때로.

학교에서도 맘에 맞는 친구 하나 찾지 못 했다. 모두가 미루를 촌년 취급했다. 얼굴은 예쁘지만 어딘가 음침하다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아니,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미래를 설계하느라 바빴다. 빠듯한 시험 일정과 학원 스케줄 때문에 서로의 참모습에 관심이 없었다. 그뿐이었다.

고인의 방은 미루가 지내던 곳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폭탄 맞은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벽에 핀 곰팡이를 닦아낸 흔적, 그 위로 다시 번져가는 곰팡이.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은 채로 싱크대에서 방치된 그릇들, 낮은 천장이 내뿜는 갑갑함.

다른 것도 있었다. 책상 위에 쌓인 공무원 시험 교재들, 구석에 놓인 일렉트릭 기타와 무릎 높이까지 쌓인 악보들, 맥심 같은 잡지에서 뜯어낸 것으로 보이는 반라의 여성 사진들로 도배된 벽면.

고인은 20대 남성이었다. 알몸으로 샤워기 기둥에 매달려 샤워기 호스에 목이 감긴 채로 괴성을 지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목이 비정상적인 각도로 꺾이고 안경이 삐딱하게 흘러내려 코끝에 간신히 걸려 있는 모습이 기괴해 보였다.

고인은 미루와 눈이 마주치자 더욱 심하게 팔다리를 휘저었다. 그 바람에 삭아가던 남성의 상징이 함께 흔들리다 몸에서 분리되어 떨어지고 말았다. 경빈이 짧게 혀를 찼다.

고인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여자? 미래? 희망?

미루는 어쩐지 감탄하게 됐다. 이런 싸구려 원룸에 저렇게 튼튼한 샤워기 기둥이라니. 고인은 경빈처럼 비대하진 않았지만 경빈보다 키가 컸다. 그런데도 기둥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고인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욕실 바닥은 고인의 몸에서 흘러내린 살점과 지방과 체액으로 뒤덮여 있었다. 자칫 잘못 발을 내디뎠다가는 그대로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팀장과 미루는 고무장화를 꺼내 신었다.

팀장이 고인의 머리에 올가미를 던져 씌우고 양손과 양발에 스트랩을 채웠다. 미루의 손은 고인의 얼굴에 닿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미루는 고인의 책상 의자를 갖다놓고 올라가 슬럼벨을 주입했다. 그러는 동안 고인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미루는 어떤 멜로디를 들은 것만 같았다. 미루는 그 멜로디를 따라 불렀다. 고인은 만족스러워 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잠들어갔다. 관객이 필요했던 건가요? 이제 만족하나요?

미루는 고인에게 묻고 싶었다.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어땠는지를. 슬펐는지, 아팠는지, 편안했는지, 황홀했는지. 미루도 그 원룸에서 몇 번이나 죽음을 생각했다. 자신을 가진 것을 알고 지우지 않은 엄마에게, 제대로 된 가정으로 입양 보내지 않은 엄마에게, 낯선 곳에 자신을 던져놓고 가버린 엄마에게, 어설픈 책임감과 철벽같은 무정함으로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엄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미루가 살던 원룸에는 이렇게 튼튼한 샤워기 기둥이 없었다. 치명적인 약물을 구하기에는 용돈이 모자랐다. 칼로 손목을 긋기에는 용기가 부족했고, 연탄불을 피우는 것은 양심에 걸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선우를 만났다. 살다 보면 모자람도 쓸모가 있는 법이라고 미루는 생각했다.

미루는 고인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에게는 선우 같은 사람이 없었던 거냐고.

고인을 끌어내리는 일은 팀장과 경빈이 했다. 미루는 자신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팀장은 완강했다. 그 가냘픈 팔로 고인을 끌어내리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경찰에 사유서를 내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구청에서 작업비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아까 경빈이 저지른 일 때문에 사유서를 쓰게 생겼으니 늘 담담한 팀장도 조금은 예민해진 것 같았다. 경빈은 시신에 손대기 싫은 기색이 확연했지만 군말 없이 팀장의 지시를 따랐다.

고인이 문밖으로 실려 나가자 그날의 업무가 끝났다. 여름은 다른 계절보다 사람이 덜 죽었다. 추운 계절보다 감기에 덜 걸리고, 해가 길어 우울증에도 덜 걸리기 때문이라고 경빈이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어쨌거나 더위에 보호복을 입는 건 고역이니 여름에 일이 주는 것은 다행이었다. 하필 이 일을 여름에 하게 된 것은 유감이었지만.

 

미루는 팀장과 경빈과 헤어져 전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탄 뒤 언덕을 걸어올라 집에 도착했다. 감히 집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의심스러운 그곳에. 저택은 비슷한 규모의, 저마다의 독창적인 디자인을 뽐내는 다른 대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대문의 패스워드를 누르기 전, 선우에게 전화나 메시지가 온 게 있는지 다시금 확인해 봤지만 없었다. 사지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미루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대문에 가만히 몸을 기댔다. 대문은 뜨거움 속에 비정한 차가움을 감추고 있었다.

너와 나는 이렇게 끝나는구나. 새삼스럽기는. 당연한 거잖아. 순진한 건 나였어. 네가 변호사와 남편과 아빠가 되어가는 동안 나는 겁 많고 소심한 멍청이로 남아 있었던 거야. 우리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겠지. 너와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거짓말이라며 비웃을 거야. 너는 나와의 추억을 흑역사로 이름붙이고 지워버리겠지. 걱정 마. 나도 이제 조금씩 우리를 지워볼게.

그때 집 앞 이면도로 끝에서 까만 세단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바로 옆집에 사는, 그분의 생전에 두터운 친분으로 왕래했던 어느 기업 사장의 차였다. 이러고 있다가는 선우가 괜한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었다. 미루는 서둘러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미루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당은 잡초들이 무릎까지 웃자라 야생의 초원처럼 변해 있었다. 온갖 벌레들의 사냥터이자 놀이터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불과 한 달. 그 사이에 이토록 번창하는 생명력. 사람들이 이 집을 보면 폐가라 하겠지.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이렇게 넘치는 생명을 두고 그런 말을 하다니.

툭. 이마에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미루는 하늘이 어두워진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바람이 거세어진 것도. 투둑투둑. 하늘이 빗방울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풀잎들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처럼 까딱거렸다. 미루가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비가 무서운 기세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미루는 잠시 서서 차가움을 만끽하다 현관으로 향했다. 내일이면 잡초들이 더욱 무성하게 자라 있을 것을 예감하며.

집안에 들어선 미루는 그 냄새를 감지했다. 옷을 세탁기에 던져 넣고 샤워를 하고 나와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집이 커서 다행이었다. 옆집에서 이 냄새를 맡지 못 할 테니까.

미루는 해가 다 지도록 창가에 서서 마당의 나무가 비바람에 흔들리는 광경을 감상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한 의식이었다. 미루는 결심했다. 더 늦어서는 안 된다. 오늘이어야 했다.

방에서 드릴과 주사기를 갖고 나왔다. 실린더에 락스를 가득 담았다. 2층 안방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다. 극심한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에어컨 설정 온도는 18도. 어깨가 오슬오슬 떨렸다. 미루는 에어컨이 튼튼한 것에 감사하는 한편 머리를 말리지 않고 온 것을 후회했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옷 속에 파묻혀 있었다. 옷을 먹으려는 건지 입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어설프고 굼뜬 움직임. 식탐 많은 아이가 과자에 침을 발라놓는 것처럼, 엄마에게서 떨어진 지방과 살점과 머리카락들이 방바닥을 뒤덮은 옷들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 옷들은 엄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분의 아내가 생전에 입던 옷이었다. 그분이 한사코 치우려 하지 않은 물건 중 일부였다. 화장대에는 그분의 아내가 쓰던 화장품과 향수들이 죄다 깨진 채로 어질러져 있었다. 방안은 엄마가 풍기는 시취와 오래된 화장품과 향수의 부패한 내음이 뒤섞여 이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 그분의 마음을 정말 몰랐던 거야? 이 물건들은 그분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만 나타내는 게 아냐. 엄마한테 주제를 알라고 놓아둔 경고장이었다고. 사실 엄마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럼에도 엄마는 주기적으로 이 옷들을 세탁하고 화장품 뚜껑에 쌓인 먼지를 닦았지. 그 분이 언제쯤 이 물건들을 치워 달라 할지, 그럼 엄마의 물건으로 이 방을 채울 수 있을지를 애타게 궁금해 하며.

미루는 드릴을 손에 쥐고 엄마에게 다가갔다.

“그만하자. 이제 우리, 나갈 때가 됐어.”

엄마는 턱이 반으로 갈라지고 목이 뒤로 완전히 꺾인 채로 밍크코트를 입으려 애쓰고만 있었다. 엄마는 생전에도 사후에도 미루에게 관심이 없었다.

 

한 달 전, 엄마는 거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전구를 바꾸려고 사다리를 디디고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었다. 무려 5미터 높이의 사다리였다. 그분이 살아계실 때에는 사람을 불러서 하던 일이었다. 전구가 하나씩 나가고 거실이 밤마다 암흑이 되자 엄마는 결국 창고에서 사다리를 꺼냈다.

미루는 방에서 음악을 듣느라 엄마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것도 몰랐다. 저녁이 다 되어 배가 고파서 나왔다가 거실 중앙에 쓰러진 사다리와 바닥에 턱을 박고 죽은 엄마를 발견했다. 사다리를 붙잡아줄 걸 그랬다고 후회했던가?

미루는 112를 눌러야 하는지 119를 눌러야 하는지 알지 못 한 채로 전화기를 들다 멈칫했다. 엄마가 죽으면 자신이 이 집에서 살 명분이 완전히 사라진다. 그분의 제사 준비를 돕기는커녕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 자신을 예은이 가족으로 여겨줄 리가 없었다.

선우도 더 이상은 날 변호해주지 못 할 거야. 어쩌면 예은이 사다리를 망가뜨린 걸지도 몰라. 당황스러움에 휩싸인 미루는 엉뚱한 상상을 펼치며 이 사태에서 도망가려는 의식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이 집을 나가면 노숙을 해야 해. 선우를 다시는 볼 수 없어.

미루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엄마를 안방으로 옮겼다. 여름 내내 꺼져 있던 에어컨을 틀고 온도를 최저로 내렸다. 그 사이 엄마는 꿈지럭대기 시작했다. 슬럼벨이 필요했다.

미루는 안방을 나와 슬럼벨에 대해 검색했다. 곤란하게도 그것은 병원과 영면지원센터에만 납품되는 물건이었다. 미루는 어느 영면지원센터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덜컥 지원했다. 일자리 창출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 국민에게 스마트워치를 보급하자는 주장이 힘을 잃고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업체 중 하나였다. 다음날 박정식 팀장은 미루에 전화해 어느 고인의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그것이 이 일의 시작이었다.

미루는 일하며 슬럼벨을 훔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팀장은 무척이나 명민한 사람이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는지 미루와 경빈의 일거수일투족을 꿰뚫고 있었다. 미루는 팀장이 알려주는 업무 강령을 익히며 슬럼벨을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뇌를 꼭 굳히지 않아도 된다. 녹여도 된다. 다만 고인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서 슬럼벨을 사용할 뿐이다.

그 사실을 안 뒤에도 엄마의 머리에 락스를 주입할 수가 없었다. 에어컨을 이렇게 틀다가는 한 달 뒤에 엄청난 전기료가 부과될 것을 알면서도. 그 커다란 집에서 혼자 사는 것은 원룸에서 혼자 살던 시절을 생각나게 했다. 세상과 어떠한 끈으로도 연결되지 못 한 기분을 느끼던 그 시절을. 하지만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안방을 돌아다니는 그것이 자신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끈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미루는 마스크와 장갑을 꼈다. 엄마의 머리를 움켜쥐려다 멈췄다.

엄마는 열여섯에 미루를 낳았고, 죽을 때 고작 마흔 셋이었다. 동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고 아무도 40대로 보지 않았다. 환갑의 그분이 보기에는 어린애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미루가 처음 온 날 이렇게 큰 딸이 있었냐고 그분이 놀란 일을 미루는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의 곱고 탄력 넘치던 얼굴은 지금 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안구도 빠져나가고 없었다. 하루 종일 옷에다 문질러댄 탓이었다. 미루는 문득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엄마가 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 미루는 엄마를 향한 원망과 미움을 새로이 불태웠다. 내가 옆에 서 있어도 모르는구나. 엄마의 존재를 지우려고 하는데 관심조차 없구나. 그래, 이 옷들, 화장품들 실컷 뒤집어 써 봐. 그래봤자 엄마는 이 집 귀신이 되지 못 해.

미루는 방문을 쾅 닫고 나왔다. 온 집안이 조용했다. 창을 부술 듯이 때려대는 빗소리와 하늘이 깨질 것처럼 울리는 천둥소리만 아니었다면 세상이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의심했을 것이었다.

주방으로 내려가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맥켈란 25년도 크리스털 잔도 그분의 유품이었다. 엄마는 본인이 죽고 나서야 그분의 아내의 옷을 훔치기 시작했지만 미루는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분의 위스키를 훔쳐 마셨다. 선우가 떠난 후부터였다. 해가 진 뒤에는 이것을 마시지 않으면 자신의 쪽방으로 기어들어갈 수가 없었다. 열리지 않는 조그만 채광창이 달린 그 방이, 선우가 찾아오지 않는 그 구석진 방이 마치 관처럼 느껴졌다. 선우의 방에서 자는 일은 감히 꿈도 꾸지 못 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니까. 선우에 대한 그리움에 더욱 잠을 이루지 못 할 테니까. 복도 건너에서 엄마가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평소 한두 잔에 그치던 술을 오늘은 반 병이 넘게 비웠다. 아침에 선우와 나눈 메시지 때문이었다. 2층에서 바보짓을 하고 있는 엄마 때문이었다. 몽롱하게 취기가 오른 미루는 거실 창가로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낮 동안 달궈진 집이 여전히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몸도 식히고 머리도 식히고 싶었다. 아까 빗방울이 때려댈 때 느낀 그 시원함을 또 만끽하고 싶었다.

미루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았다. 거센 바람이 빗방울을 몰고 날아와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청량하고 상쾌한 기분이 들며 모처럼 미소가 지어졌다. 풀잎들이 비를 맞아 춤추듯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느닷없이 용기가 샘솟았다.

나가자. 떠나는 거야. 그 다음은 나도 모르겠지만.

취한 탓인 것을 알면서도 미루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지금 저지르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할 것만 같았다. 화면을 켜자 그새 맺힌 빗방울들이 프리즘처럼 영롱한 빛을 발했다. 그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미루는 화면을 옷에 문질러가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고마웠어. 행복해.’

여러 말을 떠올렸지만 결국은 이게 전부였다. 그 외의 것들은 사족이고 미련이고 핑계일 뿐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그랬다. 미루는 자신이 쓴 메시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옛 추억을 하나씩 떠올렸다.

교복 차림으로 이루어진 첫 만남. 어색하게 시선을 피할 때마다 웃으며 말을 걸어주던 너. 너의 부탁으로 그분의 차를 함께 타고 등교하던 일. 내가 주눅 들지 않게 등굣길 내내 명랑하게 떠들던 너. 한밤중에 캄캄한 주방에서 단둘이 벌인 내 생일 파티. 네 손으로 내 머리에 씌워준 헤드폰. 그날 이뤄진 첫 키스. 대학에 입학한 너를 보며 가슴이 서늘해지던 기억.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와 사랑을 고백하던 너. 그날 이뤄진 첫 섹스. 마당에서 이뤄진 달밤의 소풍. 함께 좋아한 어느 가수의 콘서트에 가보자던 약속. 결혼식 전날 내 품에 안겨 울던 너.

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어. 밝게 웃어보라고, 집밖으로 나가보라고, 뭐라도 배워보라고 요구하지 않았어. 생각이 많아 보여 좋다고 했지. 생각이 많은 건 성실하기 때문이라고. 성실한 건 삶의 소중함을 알아서라고. 삶이 소중한 건 너와 내가 함께여서라고.

미루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듯이 추억을 떠나보냈다. 마침내 메시지 옆의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고인의 머리에 슬럼벨을 주입할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모든 것이 정지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선우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관계의 석회화가 지체되고 있었다. 제사 준비로 바쁜 거겠지. 아니야. 됐어. 언젠간 보겠지. 이제 네 생각은 그만 할래. 서운해 하지 않을래. 내 마음이 어떻든 너는 잘 살 테니까.

미루는 선우에 대한 생각을 밀어놓으려 애쓰며 팀장의 번호를 검색했다. 박정식. 반듯한 이름처럼 어쩐지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마음을 쉽사리 내어주지는 않지만 몰래 뒤통수를 때리지도 않을 사람. 이런 분 밑에서 일을 배우며 이 분야에서 내 자리를 찾는 것도 괜찮겠지.

일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아니,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었다. 자연이 마무리 짓지 못 한 죽음을 자신의 손으로 매조지하는 것. 권능 같은 걸 느끼는 건 아니었다. 고인을 자연으로 돌려보낼 때마다 각각의 고인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 듯한 그 느낌이 좋았다. 조금씩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

미루는 공연히 희망에 부풀어 뻐근해지는 가슴을 잠시 가만히 누른 뒤 새로운 메시지를 작성했다. 모든 게 술이 부리는 객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팀장님,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순간 화면이 꺼졌다.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봐도 켜지지 않았다. 물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너도 죽었구나. 하필 이 중요한 시점에. 아니야. 내가 멍청한 거지. 산 지 10년도 지난 고물이 방수가 될 리가 없는데. 미루는 갑작스레 참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의식이 더욱 몽롱해졌다. 시커먼 화면을 노려보다 전화기를 풀밭으로 집어던졌다. 결국 나 혼자 해야 되는 거야. 늘 그랬던 것처럼.

졸음이 몰려왔다. 열대야에 시달리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내리누르는 느낌이었다. 미루는 조금만 눈을 감고 있다가 엄마를 저세상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미루가 눈을 뜬 것은 쾅쾅거리는 소음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바람이 여전히 거셌다. 눈동자를 때리는 빗방울도 굵었다.

미루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놀라서 몸을 내려다봤다. 속옷 차림이었던 것이다. 옷은 계단 옆으로 던져져 있었다. 비록 잠이 들었어도 옷을 벗은 기억은 없는데. 누군가가 담을 넘어 들어와 자신을 겁탈한 걸까? 그토록 두려워하던 일 중 하나가 일어난 걸까? 하지만 아무데도 아프지 않았다.

쿵. 쿵. 누군가가 계속해서 대문을 치고 있었다. 손으로 두드리는 것이 아닌 숫제 몸을 던지는 듯한 굉음. 겁에 질린 미루는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동작감지등이 환히 켜졌다. 문고리를 잡으려 손을 뻗던 미루의 두 눈이 커졌다. 온몸이 붉은 얼룩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도장을 아무렇게나 찍어놓은 것처럼.

“미루! 미루!”

빗줄기 사이로 들려온 것은 선우의 목소리였다. 울부짖다시피 하는, 애가 끓는 목소리.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선우였던 것이다. 왔구나. 네가 왔어. 근데 패스워드를 알면서 왜 문을 두드리는 거야. 미루는 당혹스럽고 의아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대문으로 뛰어갔다. 알몸인 것을 까맣게 잊은 채.

“오빠…….”

문을 열자마자 튀어 들어온 선우는 잠옷 차림이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다. 자다가 몰래 빠져나온 건지 잠옷 외에는 아무것도 걸친 게 없었다. 늘 손목에 차는 스마트워치도. 왼손 약지를 구속하는 결혼반지도. 문틈으로 보이는 이면도로에는 선우의 SUV가 보이지 않았다. 이 빗속을 걸어온 모양이었다.

선우는 미루가 뭔가를 묻기도 전에 미루를 끌어당기며 입술을 덮쳤다.

두 사람은 그분과 미루의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마당으로 나와 함께 달을 올려다보고 풀벌레 소리를 듣곤 하면서도 손조차 잡지 못 했다. 마당을 촬영하는 방범용 카메라를 의식해서였다.

이제 우리를 세상에 내놓기로 한 거야? 미루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예은을 버리고. 자신에게로. 남의 눈에 띌까 쪽방에서 숨죽이던 사랑은 훗날 웃어넘길 과거가 되었다.

미루는 입맞춤을 받아들이며 그의 몸을 더듬었다. 그를 안은 채로 잡초 위로 쓰러져 살갗이 베이는 줄도 모르고 뒹굴었다. 거친 흥분과 함께 알 수 없는 완력이 솟아올라 그의 옷을 찢어발겼다.

번쩍거리는 번개가 사방을 하얗게 밝혔다. 뒤이어 귀를 찢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선우의 몸은 상처와 멍으로 얼룩덜룩했다. 머리는 어딘가에 심하게 들이박았는지 한 쪽이 우그러져 있었다. 피부 밖으로 튀어나온 뼛조각과 뇌의 일부가 만져질 정도였다. 미루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려 했지만 선우는 미루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번개를 반사하는 선우의 눈동자는 애욕만 들끓을 뿐, 무언가가 한 꺼풀 쓰인 듯 초점이 없었다. 미루는 그가 죽었음을 직감했다. 그럼에도 선우의 몸이 자신의 몸속을 파고들도록 내버려뒀다. 죽은 선우도 선우이니까.

그는 차가워야 했다. 그러나 차갑지 않았다. 선우의 몸도, 하늘에서 퍼부어대는 비도. 무언가를 깨달은 미루는 환희를 느꼈다. 자신도 죽은 것이다. 어떻게 죽은 건지, 앞으로 선우와 자신은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선우가 돌아왔다는 사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로. 황홀감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이제 자신과 선우는 누가 보아도 동등한 존재가 되었다. 둘이 함께라는 사실을 백안시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자신은 이제 선우를 마음껏 사랑해도 되는 것이었다.

미루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나는 이제 너를. 마음껏 사랑해도. 너를 이제. 사랑해도 돼. 마음껏. 사랑. 돼. 나는 너를. 사랑 이제. 돼. 나……너……마음……사랑……사……ㄹ……ㅎ……ㄷ……ㅅㄹ……

 

정식은 알몸으로 잡초 위를 뒹구는 두 고인을 난감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두 고인은 한 몸으로 뒤엉킨 채 외설스런 몸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얼굴을 비벼대며 입을 맞추고 있었는데 입 주변이 피범벅이었다. 이가 서로 부딪히고 쓸리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고, 서로를 물기도 했는지 볼과 목과 어깨와 가슴의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가 뼈가 보일 정도로 덜렁거리고 피가 조금씩 흘러내리는 모습이었다. 그 둘이 어떤 경로로 뒹굴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마당의 풀밭은 살점투성이에 피투성이였다. 폭우가 그친 뒤에도 두 고인은 교접을 계속해온 것이다. 그간 흐른 시간을 반영하듯 파리들이 두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알을 까고 있었다.

두 고인은 휘파람 소리에도 고함 소리에도 가까이 가서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불러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자신들의 일에만 열중했다. 억지로 떼어낼 수는 없었다. 시신이 훼손될 수 있기에. 형사들은 몸을 떼어내는 것은 검시관이 할 테니 얼굴만이도 어떻게든 떼어내어 잠재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 둘의 사인은 대강 밝혀진 뒤였다. 남자는 한밤중에 본인의 SUV를 몰고 이곳으로 다급히 오다가 교차로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회전하던 중 빗길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되고 말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늦은 시각이라 주변에 지나다니는 차량과 행인이 없어서 차는 새벽이 되어서야 발견됐고 경찰들은 주변 CCTV 영상을 조사해 그가 이곳으로 온 것을 알아냈다. 화면 속의 그는 뒤집힌 차를 어기적거리며 빠져나와 이상한 각도로 팔을 흔들며 빗길을 절뚝절뚝 달렸다.

여자의 사인은 저체온증으로 보였다. 마당을 촬영하는 방범용 카메라가 작동을 멈춘 상태라 확신할 수 없었지만, 피부가 선홍색의 시반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옷은 다른 고인과 뒹굴던 장소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 혈흔 하나 없이 널브러져 있었다. 저체온증에서 종종 보이는 이상탈의 때문인 것 같았다.

정식은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이 건넨 슬럼벨을 받을 생각도 않은 채 두 고인을 눈알이 빠져라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미루라는 아르바이트생이 연락도 없이 나오질 않아 경빈에게 부탁해 급히 데려온 젊은이였다. 그 옆에서 경빈은 낄낄거리며 두 고인을 촬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이면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좀비 섹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올 것은 뻔한 일이었다.

“팀장님, 이 한미루가 정말 그 한미루 아닐까요? 몸매가 딱 그 한미루인데.”

정식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런 집에 사는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겠느냐고 속으로 반문하면서도.

미루. 어두워 보여도 성실한 친구였는데. 정식은 고개를 저었다. 성실하긴 쥐뿔. 역시 젊은 것들은.

정식은 미루를 향한 실망을 멈췄다. 실망은 차고 넘치도록 해 봤다. 이 일을 하면서는 더욱 그랬다. 결국 일이 힘들었던 거겠지. 젊고 예쁜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지.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볕이 따가웠다. 정식은 두 고인의 얼굴을 어떻게 떼어놓을지를 고민하며 현관으로 향했다. 2층에 있다는 고인부터 처리할 생각이었다. 머리가 뒤로 꺾인 데다 공격적이지 않다니 손쉽게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정식은 걷다가 두 고인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그 둘의 욕정은 어쩐지 애절한 구석이 있었다. 태초의 수컷과 암컷처럼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우리의 민낯이지. 식욕과 성욕에 의해 움직이는. 거기다 조금 더 보태면 자존심 정도? 다들 아닌 척, 고상한 척, 겸손한 척 하고 있지만 말이야.

정식은 죽은 사람을 다루는 이 일이 좋았다. 죽은 사람은 솔직하고 정직했다. 원하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지 않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속임수를 쓰지도 않았다.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자신을 포장하려 자만하거나 위선을 떨지도 않았다.

사람이 별 거냐. 인생도 별 거 없지. 너희는 그저 사랑하고 싶었던 걸 거고. 정식은 스스로 떠올린 낯간지러운 단어에 얼굴을 붉히며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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