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2023.11.26 17:0711.26

 

나는 마취에서 깨자마자 물을 찾았다. 목이 말랐다. 움직이려 했으나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끔벅거리며 열렸다 닫히는 시야 사이로 간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가 입에 흘려준 물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다. 간호사가 턱을 닦아주었다. 뭔가를 발음하려고 혀와 입술에 힘을 주었다. 관절이 망가진 나무 인형이 된 것처럼 삐걱거렸다.

“혹은, 제 혹은……”

내가 말을 채 잇지 못하자 간호사가 미소와 함께 괜찮다고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나는 그 말에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처럼 감정이 북받쳤다. 혹이 사라졌다. 수술 자국이야 남겠지만, 그야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다니면 될 일이었다. 무엇보다 모친을 보고 싶었다. 그녀가 가장 기뻐할 터였다. 그러나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했으므로 나는 병실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닫힌 창 커튼으로 햇빛이 새어들었다. 나는 나가려던 간호사에게 커튼을 젖혀달라고 부탁했다. 먼지를 날리며 커튼이 양옆으로 젖혔다. 햇빛이 채광창으로 쏟아졌다. 나는 웃었다. 누가 보면 웃는 게 아니라 안면근육을 괴상하게 일그러뜨리는 것에 불과했겠지만. 기쁨이 충만했다. 부종, 그러니까 혹을 달고 살던 나날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있던 그것은 자라면서 점점 커졌고, 어느 순간엔 제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커다랗게 부풀었다. 아이들은 혹부리영감이라고 놀려댔다. 자기들이 도깨비라며 내게 강제로 노래와 이야기를 시켰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나라는 존재 자체를 피했고, 끝내 없는 사람 취급했다.

네 탓이 아니야. 이 혹은 특별한 의미란다.

모친은 그렇게 나를 달랬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이미 나는 부종 혹처럼 속으로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마침내 의사가 나타나긴 했지만, 수술 성공률은 60퍼센트, 실패할 시 영구적인 장애나 자칫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모친은 말리는 기색이었으나 나중에 가선 떠밀리듯 수술동의서에 서명했다. 나는 성공을 믿었지만 동시에 죽음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보라, 성공했잖은가. 나는 이제 더는 혹부리영감도, 망할 도깨비도 아니었다.

스물다섯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해 중소규모의 문예지로 등단하여 문예창작 입시 과외로 생계를 이어갔다. 과외생이 서울의 신당동에 살아 그 근처 카페나 스터디룸에서 수업을 진행했다. 과외생은 나의 모교인 G대학교 문예창작과 1차 실기를 통과했다. 즉 2차 실기와 면접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역 근처 대형카페에서 수업을 했는데, 주변 소음 때문에 학생이나 가르치는 선생인 나나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음부턴 스터디룸을 예약하겠다고 했다. 그 애는 괜찮다며, 너무 조용한 것도 싫다고 했다. 시끄러워도 구석진 곳이면 된다는 거였다. 꼭 어릴 적 나를 보는 듯해 나는 괜히 그 애에게 마음이 쓰였다.

학교 야간자율학습이 끝나고 시작된 수업은 밤 11시에 끝이 났다. 수업시간이 평소보다 길어진 탓이었다. 나는 그 애 집이 근처라 다행이라고 여겼다. 어쩐 일인지 나는 괜히 카페에서 소설을 마저 완성하고 싶었다. 떠들던 단체 등산객 손님들이 빠져나간 터라 조용하던 차였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막 자정을 넘긴 후였다. 막차도 끊겼다. 24시 스터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밤을 샐까, 하다가 혼자 술이라도 마시자고 결정했다. 다행히 다음날엔 수업이 없었고, 소설만 탈고하여 잡지사에 보내면 되었다.

나는 신당역 근처의 한 칵테일 바로 향했다. 새벽 다섯 시, 지하철 첫차가 다니기 직전까지 운영하는 곳이었다. 골목 담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이들 사이를 지나쳤다. 나는 잘 외기도 힘든 칵테일을 주문했다. 끝이 –코크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콜라를 섞은 술이었는데, 탄산음료나 다름없이 달았다. 쓰거나 싸한 맛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이름도 알지 못할 술을 두 잔째 마시며 종이에 인쇄된 내 소설을 읽어내려갔다. 낯선 여자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내 옆에 앉은 그녀는 한동안 내게 힐끔 눈길을 주더니 이내 말을 걸었다.

“술집에서 공부라도 해요?”

매력적인 여자였다. 적당히 날이 선 콧대와 조금은 좁은 미간을 둔 커다란 두 눈, 분홍빛 얄따란 입술이 이따금 움찔거렸다. 나는 오밀조밀한 그녀의 이목구비를 만지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소설이에요.”

나는 대답했다.

여자는 흥미를 보이듯 종이를 슬쩍 제 쪽으로 잡아끌었다.

“소설가세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소설가라, 저도 이야기를 꽤 좋아해요. 책도 좋아하고. 아는 작가도 많고.”

무람없이 자신을 뽐내는 그녀에 나는 점차 빠져들었다. 얼핏 보니 혼혈처럼 보였다. 이국적이었다. 두 눈은 언뜻 뱀의 눈처럼 사나워 금방이라도 사람을 잡아먹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또한 매력이었다. 그녀는 아직 초고 상태인 내 소설을 빠르게 훑으며 뒤적였다. 나는 그녀가 감상이랄지, 평가랄지, 무슨 말을 할까 기대가 되었다. 그녀가 마지막 장을 내려놓은 후 입을 열었다.

“잘 봤어요.”

“어때요? 보기에. 재밌어요?”

“조금은.”

여자가 싱긋 웃었다.

“근데 상투적인 캐릭터나 에피소드도 있고. 우리 세계에선 이미 다 통용되던 이야기라.”

‘우리 세계’라는 표현이 거슬리는 한편 궁금했다. 어떤 세계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물어보려다가 괜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 관두었다.

“어떤 책 썼어요?”

여자가 물음을 건넸다.

“아직 책은 못 냈어요. 여기저기 발표하느라 바쁘죠.”

“작가란 본디 자기 이름 박힌 책 한 권은 있어야 하죠.”

나는 대꾸를 하려다 말았다. 괜히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기 싫었다. 조용히 술이나 기울이며 소설을 마저 읽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가 놔주지 않았다. 그녀는 난데없이 내 턱을 가리켰다. 하마터면 손끝이 닿을 뻔해 흠칫 놀랐다.

“수술했나 봐요?”

“피부에 뭐가 나서요.”

나는 부종이라느니 혹이라느니 구태여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혹시 혹 아니에요?”

여자의 말에 나는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덩달아 그녀의 턱으로 시선이 향했는데, 덕지덕지 바른 파우더로도 가려지지 않는 혹 수술 자국이 또렷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녀도 혹시, 라는 생각에 말을 꺼내려다 관두었다.

“있잖아요. 너무 덥지 않아요?”

여자가 넌지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바도 홀도 만석이라 사람 열기로 몸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좋은 곳을 아느냐고 묻자 그녀는 자기 집이 근처라며, 간단하게 맥주 한 잔 더하고 가라고 권했다. 나는 홀린 듯 여자를 따라갔다.

그녀의 오피스텔은 정말 가까운 곳에 자리했다.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내게 입을 맞추었다. 내가 당황할 새도 없이 그녀는 안으로 들어선 내게 냉장고에서 막 꺼낸 맥주 한 캔을 건넸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맥주를 받아 들이켰다.

우리는 거나하게 취할 때까지 안주도 없이 맥주를 뱃속에 들이부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풀어져 그녀가 여러 모습으로 갈라져 보일 즈음이었다. 여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 턱 수술 자국은 뭐예요? 혹 뗀 거 아녜요? 정말로?”

“……맞아요. 혹 뗀 거. 어떻, 어떻게 알았어요?”

나는 꼬부라진 혀를 어긋버긋 놀리며 반문했다.

“척하면 척이죠. 저도 그 수술 했거든요.”

그녀가 제 오른쪽 턱을 가리켰다.

“알아요. 아까 봤어요. 근데 그쪽은 어쩌다가?”

“우리 먼저 통성명이나 하죠. 난 전채연이에요.”

그녀가 다짜고짜 손을 내밀기에 나는 어설프게 맞잡았다.

“전 김서도.”

“저도 혹이었죠. 그래서 말인데, 궁금한 게 있어요. 물어봐도 돼요?”

여자가 예의바른 대학생처럼 손을 들고 질문했다.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거면요.”

“당신, 도깨비죠?”

나는 도, 깨, 비, 라는 단어를 음절 단위로 분석했다. 이내 파하하,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도깨비? 초등학생 시절 이후로 내게 도깨비 타령을 하는 이는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어딜 봐서 도깨비냐고, 이렇게 잘생긴 도깨비 봤느냐고 물었다.

“많이 봤죠. 드라마에서도 봤고.”

“그건 그렇네요.”

나는 싱겁게 웃어넘겼다.

“아무튼, 당신 도깨비 맞죠? 확실해.”

“내가 왜 도깨빈데요, 채연 씨?”

“혹 수술 자국이 그렇고, 무엇보다 그 눈빛, 눈빛이 그래요.”

“전 아니에요. 사람이라구요…… 사람!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난 도깨비예요. 동족은 동족을 알아보죠. 당신은 도깨비예요.”

“당신이 도깨비라구요?”

그녀는 살짝 발그레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술기운 탓일까, 부끄러운 탓일까.

나는 어이가 없어 여자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캔에 남은 맥주를 마저 비웠다. 도깨비라니, 말도 안 된다. 나는 아주 건강하고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에 불과한데, 도깨비라니. 새삼 내가 뭔가에 홀린 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발수건을 밟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녀는 그게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한참 동안 깔깔거렸다.

“도깨비 맞네. 거울 봐요, 거울. 술 취하면 긴장이 풀려서 다 이렇다니까.”

나는 그녀의 말에 이끌려 옷장 한구석의 전신거울을 바라보았다. 순간 내 눈이 잘못됐나, 의심이 솟았다. 그녀 말대로 거기엔 동화책에서 본, 영락없는 도깨비가 서 있었으므로. 나는 술에 취해 헛것이 보이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도깨비가 ‘된 건지’, ‘도깨비인 건지’ 헛갈렸다.

네 혹은 특별한 거야…… 네 혹은 특별한 거야……

어렸을 때 모친이 늘 주문처럼 외던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그럴 리가, 없어요. 전 이만, 이만 가봐야겠어요.”

나는 비틀거리며 현관으로 갔다. 그녀가 손에 뭔가를 쥐여주었다. 놓고 갈 뻔한 내 핸드폰이었다.

“내 번호 저장했어요. 연락해요. 도깨비 씨.”

나는 도망치듯 그녀의 오피스텔을 나와 택시를 붙잡았다.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다급히 외쳤다.

“일산 대화역이요!”

“술을 많이 드셨나 보네. 이 시간까지 하는 술집도 있어요?”

나이 든 택시기사의 물음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귀신에 홀린 건 아니죠? 여기 신당동이, 사실 귀신 신자 써서 신당동이거든요. 조심해요.”

그 말은 까무룩 잠이 들며 흐려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를 떠돌았다.

정신을 차린 곳은 다행히 원룸 침대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턱 끝을 매만졌다. 혹은 없었다. 그러나 머릿속에 도깨비가 남아있었다. 재빨리 핸드폰 화면으로 나를 비추었다. 옷매무새가 좀 흐트러진 것을 빼면 멀쩡했다.

“그럼 그렇지, 도깨비라니. 별. 하하.”

나는 그렇게 옷을 벗고 갈아입으려다 비명을 질렀다.

몸에 온통 곰팡이 같은 검푸른빛이 맴을 돌았다.

 

그때부터 나는 앓았다. 원인 모를 발열과 기침, 피부 발진, 몸살 증상이 계속되었으며 약을 먹어도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전남 나주에 사는 모친이 올라와 병간호를 해주어도 마찬가지였다. 문자 그대로 사경을 헤맸다.

급기야 응급차에 실려 대화역 인근 백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호흡기를 끼고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스무 시간을 내리 잔다든가, 의식 없이 그저 멍하니 깨어있을 때가 많았다. 기억나는 거라곤 간호사와 의사, 모친의 얼굴이 전부였다.

어느 날 정신이 설핏 들었던 때가 있었다. 여자, 그러니까 채연이 찾아왔던 날이었다. 채연은 내게 무언가를 먹였고, 나는 그걸 마시고 나서 잠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녀는 모친과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다.

“좀 어때요?”

모친이 자리를 비운 사이 채연은 물어왔다.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두 눈은 여전히 사납게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졌고, 작은 콧구멍으로는 뜨거운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나는 그녀의 목을 졸라 제압해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그녀가 무슨 일이든 벌일 게 틀림없다는, 그녀는 인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만큼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고, 채연은 두통 하나 없어 보이는 건강한 성인이었다.

“나한테, 뭘, 뭘 먹인 거예요?”

“도깨비풀을 우린 차. 그게 괜히 도깨비풀인줄 알아요? 흉년으로 잡아먹을 사람마저 굶어 죽으니까 찾아낸 풀때기지, 뭐겠어요. 자, 더 마셔요.”

“그땐 뭘 먹인 거예요? 마, 마약, 환각제라도 넣은 거죠?”

내가 바들바들 떨며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자 채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냥 술에 취한 거예요. 도깨비는 알코올이든 뭐든 그런 각성제를 많이 먹으면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 쉬워요.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간 지 오래라 그럴 일은 적지만요.”

“도대체 도깨비고 뭐고, 어떻게 된 거냐고요. 엄마는, 엄마는 또 어떻게 한 거예요?”

“어떻게 하긴요. 잠시 저녁 드시고 온다고 하셨어요.”

채연이 내 허리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사나운 눈빛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여태껏 궁금하지 않았어요? 왜 혹이 있는지, 이따금 몸에 생기는 검푸른 빛이며 반점이며 피부 발진은 무엇인지.”

“안 궁금해요. 안 궁금해요!”

나는 고개를 거칠게 내저었다. 그녀는 떼쓰는 아이를 지켜보는 참을성 많은 엄마처럼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채연의 말에 따르면 나는 도깨비였다. 그럼 엄마도? 하는 표정을 짓자 채연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엄마도 도깨비라니.

이건 어쩌면 거대한 몰래카메라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닐까? 나는 일반인 참가자로 뽑힌 거고. 그러나 그렇다기엔 장난의 정도가 너무 심했고, 의심되는 정황이라곤 채연의 지나치게 활달한 행동이 다였다. 그녀의 말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도깨비는 수천 년을 인간과 함께 살아왔다. 본래 귀신의 한 종류였으나 인간의 몸을 지나치게 탐낸 나머지 사람 모습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원래 모습으로 바꿀 기력과 방법을 잃었고, 결국 ‘사람처럼’ 지내게 되었다. 다만 원형으로 돌아갈 훈련을 하고, 인간의 것을 멀리하면 예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러길 원하는 도깨비는 지금껏 단 한 명 만나지 못했다고, 채연은 설명했다.

“왜 하필 내가 도깨비인데요? 혹은 또 뭔 상관이고? 전래동화대로라면, 혹은 인간에게 달린 거잖아요.”

“거기까지 읽다 잠들었군요, 서도 씨. 동화로 전해오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가 있어요. 혹을 떼서 가져간 도깨비들은 자기들도 노래를 잘 부르고 이야기를 잘 지어내려다 그만 혹을 달고 말았는데, 그때는 도깨비 지능이 유아 3세 정도였던 때라 떼는 법을 알고서도 기억해내지 못했어요. 사람들이 멍청한 도깨비 골려주는 옛날 이야긴 기억나죠? 영악하고 잔인한 일본 도깨비 ‘오니’ 말고요.”

“모르겠어요, 모르겠어.”

나는 혼란스러웠다.

“당신, 작가라고 했잖아요? 나도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했고. 도깨비 중엔 작가가 많아요. 작가 도깨비들 비밀 모임도 있고. 왜 그런지 알아요? 혹을 달거나 달았어서 그래요. 그 혹엔 노래와 이야기들이 가득하거든요. 전래동화처럼. 동화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녀가 벙글 웃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침대 발치엔 과외생들 학부모가 보내온 과일바구니가 여러 개 놓여 있었다.

쾌유를 빕니다.

그렇다. 도깨비이건 뭐건 간에 나는 병에 걸린 환자였다. 문제는 고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채연은 당연히 고칠 수 없으며, 그건 고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이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내가 도깨비라니.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지니고, 늘 감추며 숨어 살아야 하는 삶을 살게 된 거다. 끔찍했다.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던 내가 알고 보니 도깨비라니, 이건 인터넷 소설이나 라이트노벨 따위에 나올법한 내용이 아니던가. 그런 것들은 글로도 취급하지 않아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 순간 모친이 들어왔고, 채연은 얘기하시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입가와 미간이 안쓰럽다는 듯 구겨져 있었다.

“미안하다. 서도야.”

“그 말이 진짜였어요? 어렸을 때 네 혹은 특별한 거라고 하던 게...... 진짜였냐구요.”

“엄마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니. 진짜지, 그럼. 너는 병에 걸린 게 아니라 특별한 거고,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고 ‘우리 세계’에선 평범한 거야.”

나는 반발했다.

“그놈의 우리 세계, 우리 세계라고 그만 좀 말해요! 그런 건 없어요. 전 살아가던 삶이 있다고요. 거기가 내 세계예요……”

“세상에 세계가 하나뿐일 리가 있겠니. 여러 세계가 있고, 너도 여러 세계를 가진 것뿐.”

“이런 세계는 원하지 않아요.”

“처음이라서 그래. 엄마도 어렸을 때 도깨비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무척 슬퍼했어.”

“전 스물다섯이에요, 엄마.”

나는 ‘스물다섯’에 힘주어 발음했다.

“알아. 그러니까 얘기하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네가 도깨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저, 불여우 같은 년(이라고 말할 때 엄마는 병실 밖으로 말이 새나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었다)이 인간인 척하면서 너 홀린 것도 사실이고. 이렇게 알게 돼서 유감이다만, 어쩌겠니. 그냥 책임져야 할 자식 하나 생긴 셈 치렴.”

모친은 말을 끝내고는 슬픈 얼굴로 나를 들여다보다 병실을 나섰다. 채연이 병실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난 이제 가봐야 해서요. 다음에 몸 괜찮아지면 모임도 소개해줄게요.”

“무슨 모임이요?”

나는 힘겹게 상체를 다시 일으키며 물었다.

“작가 도깨비들 모임이요. 도깨비 소설가님.”

 

2차 실기가 끝나고, 나는 새 입시가 시작될 때까지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나는 완전히 나을 때까지 병원에 있지 않고, 일주일 후에 의사의 만류에도(그는 원인 불명의 중증 호흡기질환이니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퇴원을 강행했다.

쉬는 동안 나는 도깨비에 관한 모든 것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기 전 자료조사를 할 때와 같았다. 각종 책과 신문기사는 물론이요, 자신이 도깨비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취재하는 데도 서슴없이 나섰다. 하지만 그런 이들 대부분은 허언증 환자거나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일생이 심심한 이들이었다. 채연과는 가끔 연락했다. 과외를 잠시 쉬고 있으니 신당동에도 갈 일이 없어 우리는 홍대에서 만나거나 그녀가 일산으로 직접 왔다.

“우리는 무슨 관계예요?”

나는 지하철 창 바깥으로 흘러가는 한강을 내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글쎄, 요즘 어린 인간들 말론 ‘썸’을 탄다고 하던데.”

그녀가 장난기 어린 투로 대꾸했다.

“피해자나 가해자, 뭐 그 비슷한 관계가 아니고요?”

“농담도 지나치셔.”

채연이 팔꿈치로 나를 툭 쳤다. 그녀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나를 위해 작가 도깨비들이 도깨비에게 좋은 거라며 준 선물들을 전했다. 확연히 인간이 만든 것보다 몸에 잘 들었다. 나는 독자회원인 그녀를 따라 객원작가 자격으로 모임에 들어갔다. 개중엔 문단에서 유명하거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들도 많았다. 여기서 실명을 거론할 순 없으나 책을 좋아하거나 종종 읽는 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작가들이 대부분 도깨비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들의 이야기의 원천은 모두 그 혹에서 나왔다. 대대로 인간들 혹을 떼먹고 물려주며 이야기와 노래 재능을 탈취한 도깨비들의 탐욕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내가 작가가 된 것도 도깨비라서 그런 건가, 하는 체념에 주눅이 들다가도 그렇다면 어떤 ‘인간들’보다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모임은 의외로 개방적이었다. 채연은 요즘 새 바람이 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화된 도깨비들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 데 한창 작가들의 주목이 쏠려 있다는 얘기였다. 그 예로 유튜브 방송을 꼽았다. 실제로 작가 도깨비들 몇이 본래 도깨비인 모습으로 시나 소설, 괴담이나 미스터리 이야기 따위를 낭독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모임 작가들은 전부 나의 선배, 대선배들이라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경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독자회원은 채연 하나뿐이었다. 알고 보니 작가들 다수가 인정하는,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비평가였다. 나는 내심 그녀에게 감탄하는 동시에 그녀가 신비하게만 여겨졌다. 뭐하는 사람일까. 어떤 작가는 내게 비밀을 알려주듯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인간과 도깨비 혼혈이야.”

또 다른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도깨비는 아닌데 도깨비가 되고 싶은 인간이지.”
그런 인간이 있을까 싶은데, 어찌 되었든 신비한 존재임엔 틀림없었다.

“처녀 귀신이야. 도깨비하고 한패 먹고 인간 홀리려는 게 틀림없어.”

그건 좀 아닌 듯했다.

도깨비 모습으로 돌아가는 훈련은 선배 작가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그저 각성제를 조금 마신 뒤 온몸의 긴장을 풀고, 부처의 말씀이 기록된 경문을 외우면 되었다. 일종의 주문술, 변신술과도 같았다.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등장인물 마법사들이 순간이동 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훈련에 집중했다. 그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자유자재로 도깨비와 인간의 모습을 왔다 갔다 변신할 수 있었다. 인간일 때가 물론 아직 더 편했지만, 도깨비일 때는 나름의 색다른 욕구와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오래 살았고, 체력에 허덕이지 않았다. 힘도 세고 주술에도 능했다.

내가 방송에 나가게 된 건 한 대선배 작가 도깨비가 인간의 모습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게 된 때문이었다. 빈자리를 메워야 했으므로 내가 대타로 나가서 도깨비의 모습으로 두 시간 넘게 떠들어야 했다. 고조선 때부터 전해 내려오거나 각색 또는 창작한 괴담들을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었다. 사람들은 도깨비 코스튬이 리얼하다며 환호했다. 여러 번 변신을 보여줄수록 후원금액도 늘어갔다. 나는 차차 그것에 익숙해져 갔다. 인간들은 자신들과 다른 종족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는 반면 그것의 특수성과 이점은 챙기려 들었다. 내가 인간으로 살아갈 때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서로 간이든, 타 종족 간이든 자신을 치장할 수 있는 좋은 것이면 무엇이든 빼앗으려 들었다.

일은 점점 커졌다. 유튜브 구독자 수가 50만을 돌파하더니, 각종 책 출간 제의와 인터뷰, 원고 의뢰가 쏟아졌다. 웬만한 잡무나 사무 일은 모두 채연이 도맡아 했다. 그녀는 티를 내진 않았으나, 이따금 나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회의감이 든다고 속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존재를 알리는 게 너무 광대 같다고, 관심종자처럼 보일까 두렵다고, ‘인간’들은 질리면 언제든지 돌아서서 욕하고 혐오하는 자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힘들고 지친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언제든지 그만둬도 된다고, 다른 모임 작가들에겐 내가 잘 말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난 인간으로도, 도깨비로도 인정 못 받아요.”

“정말 인간 도깨비 혼혈이에요?”

나는 술김에 떠보듯 물었다.

“왜요, 맞으면 떠나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니요.”

나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맞으면 더 가까이 있으려고요.”

나는 느릿하게 말하며 싫지 않게 알코올 향이 적당히 풍기는 그녀의 입에 입술을 가져갔다. 입술이 찼다. 축축했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대설이었다. 눈송이가 둥근 궤적을 그리며 눈앞을 하얗게 덧칠했다. 대형 중앙일간지에서 인터뷰 섭외 요청이 와 한창 신문사로 차를 몰고 가는 중이었다. 채연의 소식을 들은 건 신문사에 막 도착해 라이브 방송에 나가기 직전이었다. 나는 전날 변신 훈련 연습도 많이 했고, 인터뷰 원고도 수십 차례 외워서 말해보았다. 자신 있었다. 이번 일만 잘 해낸다면 유튜브 구독자 100만 돌파도 무리 없었다. 그때 뒤늦게 들어온 후배 작가가 다급히 내게로 다가왔다. 그는 귓속말로 말을 전했다.

“전채연 선배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답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잘못 들었거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자는 걸 오해한 거라는 생각으로 불안을 저만치 밀어두었다.

“옥상에서 투신했다고요.”

후배 작가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큐 사인이 떨어졌고,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얼결에 자리에 다시 앉은 나는 진행자를 바라보았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멀어지는가 싶더니, 일순 화살촉처럼 귀에 와 꽂혔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엇을요?”

나의 반문에 진행자가 당황했다. 나는 농담을 생각하느라 미처 듣지 못했다고, 죄송하다고 말을 이었다.

“도깨비의 기본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말입니다. 도깨비 역시 인간과 동등한 존재일까요?”

“네....... 그렇죠. 맞습니다.”

진행자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원고를 잠시 재빠르게 훑었다.

“평소 작가 도깨비로 유명하신데요. 정말 혹부리영감 얘기가 사실인가요?”

“맞습니다. 혹부리영감은 사실인데, 동화로 각색되어 전해져오는 것뿐입니다. 사실은 더 잔인하죠.”

“교육 전문가들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창의력과 개성 등 재능을 위해 혹을 사고파는 시대, 혹이 미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오는 걸 염려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혹은 아무래도 꼴 보기 싫지 않을까요? 저는 떼지 못해 안달이었는데요.”

나는 하하하 크게 웃어젖혔다. 진행자가 어색하게 마주 웃었다.

“도깨비분들은 어디서 온 걸까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요?”

“우린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닙니다. 원래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던 것뿐이죠.”

나는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진행자는 상관없다는 듯 다음 질문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도깨비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10대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도깨비 당사자로서, 도깨비의 미래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도깨비의 권리 등 이슈도 함께 포함해서요.”

“도깨비는……”

나는 뜸을 들였다. 조명이 뜨겁고 따가웠다. 땀이 흘렀다. 원치 않는데 자꾸만 변신이 시도되었다. 화가 나면 저절로 변하는 헐크처럼. 나는 침을 삼켰다.

“……이대로라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습니다.”

“예?”

“……도깨비가 죽었습니다. 방금.”

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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