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중편 당신이 남긴 말 - 완

2021.10.31 02:1610.31

아빠가 응급실에 가는 바람에 짧은 휴가가 갑작스럽게 끝을 맺었다. 동준이도 감기에 걸려 버렸고, 엄마도 함께 바다에 빠져 독감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간밤의 일로 온 마을이 감기 대잔치가 열려 고생이었다. 엄마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욱 삼촌이 동준이네를 도시로 데려다 주기로 하였다. 코를 푸는 엄마의 뒤로 동준이가 앉고, 한 명의 손님이 더 올라탄다.

 

 

할머니는 정말 맘 정한 겁니까?

 

 

그래, 더는 여기서 볼일 없다.

 

 

알겠습니다, 출발할까요?

 

 

엄마가 할머니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머님은 들고 갈 짐 같은 건 없으세요?

 

 

되었다, 다 늙어서 무얼 가져간다는 게야.

 

 

지욱 삼촌의 트럭이 부르릉, 몸을 떤다. 동준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풀지 못하였다. 마음속이 엉망이었다. 아직 누나에게 할아버지의 일을 전하지 못했는데. 더 놀지 못했는데. 출발을 하려는 차를 웬 노성이 붙잡는다.

 

 

잠깐, 이 녀석아!

 

 

경억 할아범, 무슨 일로?

 

 

커험. 헛기침을 하던 그가 할머니의 자리로 다가가 창으로 편지 한 장을 건네어 준다.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받아든다.

 

 

이제 됐어!

 

 

소리 지르며 다시 자리를 뜬다. 헐레벌떡 떠나는 경억 할아범의 뒤로 자상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말을 붙인다.

 

 

그 편지, 상혁이 녀석이 쓴 거야.

우리가 전해주려고 했는데,

경억이 녀석이 질투를 해서 그만.

 

 

누가 질투를 했다는 거야!

 

 

지욱 삼촌의 트럭이 다시 시동을 킨다. 연기를 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천천히 속도를 높이는 차창으로 이번엔 하람이와 은령이가 달리며 동준이를 불렀다.

 

 

쭈나!

 

 

여!

 

 

다들 와 줬구나!

 

 

지욱 삼촌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 속도를 느리게 맞추었다. 두 아이가 차 옆으로 바싹 붙어 달린다. 창을 내려 동준이는 고개를 내밀었다.

 

 

다음에 오면 또 놀자!

 

 

준아 기다릴게!

 

 

응, 꼭이야, 약속할게!

 

 

사실 하람이도 인어 누나를 좋아했대.

 

 

야!

 

 

장난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빼던 은령이를 하람이가 뒤쫓는다. 하람이와 은령이가 떠나가는 동준이를 향해 소리친다.

 

 

다음에 같이 인어를 찾자, 꼭이야!

 

 

손을 흔든다. 팔을 뻗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어주었다. 두 아이가 멀어지고 할머니는 차분히 편지지를 열어 글씨를 읽어갔다.

 

 

‘나의 동반자, 현숙 씨에게’

 

 

글을 읽던 할머니가 두 손을 포개어 편지를 꼭 품는다. 동준이가 할머니를 바라본다. 할머니의 얼굴은 밝고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지만 활짝 웃는 이상한 얼굴이었다. 할머니가 지욱 삼촌을 부른다.

 

 

역시 두고 온 물건이 있네.

잠시 돌아가 주겠나.

 

 

아무렴요.

 

 

지욱 삼촌의 트럭이 다시 바다 마을의 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가 할머니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버님이 무어라 적으셨어요?

 

 

잔뜩 미소를 머금은 할머니는 세상 가장 기쁜 얼굴로 고개를 숙여 울었다.

 

 

행복한 것들을 잔뜩 적어두었구나.

 

 

멀리, 할아버지 집의 창가로 액자 하나가 타고 삼촌의 트럭을 반긴다. 바다의 물결을 받아 잔뜩 반짝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이 반짝여 온 마을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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