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중편 당신이 남긴 말 - 7장

2021.10.31 02:0710.31

어서 오렴, 늦었구나.

 

 

준아!

 

 

안녕!

 

 

은령이와 하람이가 집에 와있다. 작은 집안의 작은 거실이 아이들로 북적인다. 두 사람을 보자 동준이는 아까의 일들이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신이 나 두근거린다. 할머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 티비방으로.

 

 

어머님, 식사는요?

 

 

되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당신의 모습으로 욕실에 그림자가 비친다. 동준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가 온 거야?

 

 

동준이의 물음을 들은 엄마의 얼굴이 밝지 않다. 걱정스러운 얼굴이 된 그녀는 준이를 거실로 물리고 냄비에 담긴 물을 끓였다. 동준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이들이 있는 탁상으로 돌아간다.

 

 

준아, 우리가 중요한 걸 알게 됐어.

 

 

뭔데?

 

 

은령이는 신이 난 듯 손뼉을 치며 지껄인다. 하지만 하람이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은령이가 하람이의 수첩을 대신 꺼내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먼저.

 

 

검지를 따라 동준이와 하람이의 고개가 올라간다.

 

 

인어는 폭풍을 몰고 와.

 

 

폭풍?

 

 

동준이가 묻고 하람이가 친절히 답하여주었다.

 

 

인어의 시체를 찾으러 해왕이 찾아온데.

그때, 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되는 거야.

 

 

시체?

 

 

맞아, 인어는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하거든.

인어의 저주에 걸린 사람과 돌아가지 못하면 말이야.

 

 

인어의 저주?

 

 

응, 인어의 저주에 걸린 사람은

인어 밖에 사랑하지 못하게 된데.

 

 

은령이의 위풍당당한 설명에 하람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눈에 띄게, 단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색을 바꾸며. 그것은 아연하거나, 절망에 빠진 얼굴은 아니었다. 하람이가 동준이에게 두 손을 모았다.

 

 

사실 준아, 너에게 고백할게 있어.

 

 

준이가 은령이를 바라보지만 영이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아이가 하람이를 보았다. 그는 결심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 사실, 작년 여름에 인어를 본 적이 있어.

아마, 네 할아버지가 본 그 인어일 거야.

 

 

하람이의 결심이 굳은 목소리는 동준이의 등을 꼿꼿이 펴게 만들었다. 하람이의 눈이 반짝인다.

 

 

나는 네 할아버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그 인어를 만나고 싶어!

 

 

하람이의 중대한 고백과 함께 엄마가 거실로 들어와 아이들을 부른다. 그리고 엄마의 뒤로 수줍게 손을 모으고 있는 연약한 여자가 하나 서있다. 까만 머리칼에 산뜻한 비누향 아래로 바다 냄새가 감도는 인어. 동준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누나!

 

 

인어 누나가 집에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누나를 내일 곧바로 경찰에 넘길 것이라 하였다. 동준이는 안된다고 떼를 썼지만 엄마를 이길 수 없었다. 잔뜩 볼이 부푼 동준이와 함께 세 아이가 누나를 사이에 두고 눈을 반짝였다. 누나는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박고 있다.

 

 

적당히 하고 자야지.

하람이랑 은령이는 오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렴.

 

 

네!

 

 

기운 찬 대답을 위로 엄마는 살며시 거실을 떠난다. 세 아이가 후다닥 누나의 곁으로 모여든다. 하람이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은령이는 신기한 눈으로 누나를 살펴본다. 동준이는 괜히 득의양양해져 팔짱을 꼈다. 자신이 누나를 부른 것도 아니면서.

 

 

이 누나가 할아버지의 인어야.

 

 

말도 안 돼!

 

 

우와!

 

 

은령이와 하람이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준이가 하람이를 향해 심술이 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도 믿는다며.

 

 

그건.

 

 

누나가 고개를 살며시 든다. 그녀의 눈이 은령이와 닿는다. 영이는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언니 정말 인어야?

 

 

은령이의 앞 뒤 없는 질문에 하람이와 동준이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누나가 고개를 살짝, 아주 살짝 끄덕인다. 그러자 하람이가 몸을 앞으로 당겨 누나에게 들이대었다.

 

 

진짜예요, 정말?

 

 

준이와 영이가 하람이의 몸을 붙잡아 뒤로 당긴다. 누나의 얼굴이 발갛게 익는다. 흥분한 목소리로 놀라던 하람이는 안경을 고쳐 잡고서 헛기침을 하였다.

 

 

그럼, 어떻게 증명할거죠?

누나가 정말 인어라고요.

 

 

내가 봤다니까!

 

 

동준이가 팔을 붕붕 흔들며 소리 지른다. 하람이도 지지 않고 누나를 가리켜 보였다.

 

 

하지만 인간이잖아.

 

 

그러니까, 그건.

 

 

준이가 설명을 하려하자 누나가 팔을 저으며 자신을 보인다.

 

 

난, 상혁이를, 그를, 보러, 볼 거야.

 

 

켁켁거리는 목소리. 기침과 단어가 섞이는 잡음들. 그녀가 만든 문장은 어설프고 어긋나있다. 하람이는 그제야 경계심을 풀어 어깨를 늘어뜨렸다. 정말, 자신이 인어를 만난 걸까. 어린 그의 가슴은 기대를 확신으로 바꾸었다.

 

 

그럼 준이네 할아버지를 보러 오신 거군요.

 

 

누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하람이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은령이를 보았다. 영이도 덩달아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하람이는 진지한 어투를 내며 어른 말투를 흉내 내려 한다.

 

 

그럼 우리 마을은 어떻게 되는 거죠?

 

 

누나가 동준이를 본다. 준이는 두서없이 쏟아지던 은령이와 하람이의 대화를 기억해내려 애를 썼다. 은령이가 먼저 선수를 친다.

 

 

언니가 여기서 죽으면 온 마을이 확!

바다에 잠긴대요.

 

 

은령이는 두 팔을 위로 뻗으며 몸을 흔들었다. 준이가 하람이를 본다. 하람이 역시 틀림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투였다.

 

 

누나는 왜 준이네 할아버지를 보고 싶은 거죠?

우리 마을을 위험에 빠트리면서 까지요!

 

 

그만해.

 

 

동준이가 하람이와 은령이의 앞을 막아선다. 누나는 힘에 겨운 목으로 간신히 단어들을 조합하였다.

 

 

아니야, 그건, 바다라니, 잠긴다니.

난 그저, 상혁이가.

 

 

하람이가 똑바로 누나를 보면서 물었다.

 

 

다 사실이 아니란 말이죠?

 

 

누나가 고개를 있는 힘껏 끄덕인다. 동준이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하람이는 진지한 어투와 찌푸리던 눈살을 풀었다.

 

 

알았어요, 그럼.

 

 

동준이와 누나가 숨을 돌린다. 이번엔 은령이의 차례다.

 

 

하지만 준이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언니는 어떻게 할아버지를 만날 건데요?

 

 

동준이가 눈을 굴리며 변명거리를 꺼내려 애를 썼다. 그에 반해 누나의 얼굴은 차분하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누나는 등 뒤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두었다. 세 아이들도 함께 누나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곳은 티비방이 반듯이 앉아 있었다. 누나의 어설픈 목소리는 어린 아이들이 듣고 알 수 있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만나야 해.

상혁이를, 알아야 해.

 

 

동준이는 고개를 들어 누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로 든 슬픔을 엿본다. 동준이는 전부터 궁금하던 게 있었다. 만약 일이 잘 풀려서, 할머니가 마법의 약을 먹고 착해지셔서, 온 마을이 그녀를 도와서. 비밀처럼 꽁꽁 묶인 할아버지의 과거를 온 세상이 알게 된다면.

 

 

누나, 그러고 나면.

그러고 나면, 누나는 무엇을 할 건데?

 

 

또 묻고 말았다. 하지만 동준이는 후회라는 감정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리 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것은 하람이도 마찬가지였는지 몸을 앞으로 숙여 귀를 기울였다. 은령이는 늦은 밤에 못 이겨 꾸벅꾸벅 몸을 흔들었다. 파도 소리가 들린다. 희미하지만.

 

 

나는.

 

 

그 다음 말. 그 다음 약속. 그 다음 일. 동준이는 내심 무엇을 바래왔던 걸까. 누나는 눈을 감고서 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는, 바다가 될 거야.

 

 

파도 소리가 저만치서 어부들을 데리고 와 자장가를 부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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