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내가 다시 그 해변으로 간 건 무척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어. 암초가 물살에 닳아 작아지고 파도가 늙어 잔잔히 부서지는 물결이 되는 계절이었지. 그를 만나고 싶었고, 다시 보고 싶었어. 세어도 다 차지 않을 거대한 모래시계 속에서 그곳을 찾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 그와 닮은 소년이 앳된 얼굴로 해변을 걷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를 만났던 처음의 그 순간처럼, 처음 마주 보았던 그 발그레한 뺨처럼. 무척 그리운 기분이 들어 그가 거니는 모래밭으로 다가갔단다.

 

 

슬프게도 그 아이는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었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아이는 가만히 서서 꼼짝도 않았거든. 분명 달려와 줄 거라 생각했는데. 실망한 내 눈으로 그 아이는 호기심에 가득 차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더구나. 언제고 나를 처음 보았던 그 사람처럼. 난 몸을 돌려 집으로 가려 하였지.

 

 

저기.

 

 

그 아이가 나를 불렀어.

 

 

상혁은 제 할아버지 이름이에요.

당신이 그 인어인가요?

 

 

나는 그 아이가 있는 해변으로 헤엄쳤어.

 

 

너는 누구니?

 

 

아이가 답하였지.

 

 

손주에요.

 

 

그 아이는 나를 보고도 무서워하거나 겁내 하지 않았어.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아이의 얕은 호의인 줄 알았지. 하지만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조금 특별한 것이었어.

 

 

할아버지가 누나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자기가 어렸을 적 인어랑 놀았다구요.

 

 

그 아이의 말이 사실일까. 나를 잊지 않았던 걸까. 그저 한 낱의 꿈으로 여기지 않고 믿어주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는 왜 나를 찾지 않았던 거니?

 

 

아이는 고개를 저었어. 맑은 눈동자가 푸른 바닷물로 가득 들어찼어.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눈으로 나는 손을 뻗었어. 뭍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였단다.

 

 

그는 어디 있니?

 

 

목소리가 멋대로 커지고 말았어. 아이가 놀라 뒤로 물러섰어. 그럼에도 도망만은 치지 않았지. 참으로 용감한 아이였어. 내 질문에 그 애는 그저 고개만 살래살래 저을 뿐이었어. 내가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 못내 입을 연 그 아이는 웅얼웅얼 말을 내었단다.

 

 

먼 곳으로 가셨대요.

저도 잘 몰라요.

 

 

그는, 그렇다면 그는. 인간은 우리와 달리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계절의 하나가 그들에겐 수 년의 시간으로 흐르니까. 가엾은 그 아이를 두고서 집으로 돌아갔어. 하늘은 맑았고 게들이 모래를 헤치는 물결에서 힘을 놓았단다. 몸이 가라앉았고 눈을 감았지. 그가 여기 없다면, 정말 어느 밤으로 닿아 별이 되었다면 더 이상 이곳으로 올 이유가 없는 거야. 그리워할 무언가도 손에 남아 있지 않은 거지. 그건 내일로 오는 푸른빛을 보고서 막연한 기대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말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웬걸 그 꼬마가 내가 있던 물속으로 몸을 던져 빠지고 있었어. 그 아이를 잡아 간신히 수면 위로 끌어 올렸지.

 

 

얘, 지금 뭐하는 거니!

 

 

콜록 콜록.

 

 

연신 바닷물을 뱉으며 아이는 무언가를 말하려 애썼어.

 

 

할머니가 말했어요.

할아버지가 만났던 인어를 보고 싶다고요.

누나를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그 애를 뭍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생각에 빠지었어. 몸을 햇빛 조각들에 맡기고서 집으로 헤엄을 쳤어. 그러다가 말이야, 한 가지 결심을 했어. 겨우 내로 들었던 마음이 다시 뛰었고 난 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었지. 우리 인어들이 가지고 있는 전설 말이야. 바다 마녀와 인간의 다리에 관한 동화를 따라 나는 뭍으로 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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