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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늘을 나는 방법

2006.02.08 00:5402.08


하늘을 나는 방법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무튀튀한…… 금방이라도 때가 묻어 나올 것만 같은 그런 하늘이었다.

*

출근 시간의 도시는, 혼잡 그 자체이다.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선 차들과, 그 길이 만큼이나 끊이지 않는 시끄러운 경적소리. 그 뿐만이 아니다. 안 그래도 미어 터지는 인도는 차도의 경적소리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불협화음을 이루는 가게의 음악소리로 멀쩡한 청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적대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한다.

긍정적인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활기차다’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글쎄……. 뭐, 제 3자로써 약간 떨어진 곳에서 관찰한다면, 조금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법 한 풍경이라는 건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 거리를 조금만 걸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곳이 ‘활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이곳엔 아무 것도 없다.

활기라는 게 무엇인가? 단지 시끄럽고 혼잡하다고 해서 전쟁터를 활기 차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해 보라. 수만. 아니 어쩌면 수십만의 사람이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걷는 거리를,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어떤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 뿌리 깊게 박힌 공허의 실체를.

내가 그 공간을 느끼게 된 것은, 이 혼잡한 거리를 3년째 걷게 되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세상을 찢어버릴 듯 한 소음에 짜증을 내며 길을 걷고 있던 나는, 어떤 광경을 목격했다.

소매치기였다.

그래, 분명 소매치기였다.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어떤 여성의 핸드백을 뺏어 달아나고 있었다.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남자에 의해 밀쳐진 여자는 주저앉은 채로 소리를 질렀다. ‘소매치기야-! 소매치기야-!’ 주위의 사람들은 그녀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소매치기를 당한 한 여자에 대한 동정심에서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소음.

단지 그 뿐이었다. 난 그 시선을 느끼고 허탈하게 앉아있는 여자에게서 눈을 돌려 그 소매치기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물론 그가 특히나 잘 달렸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인파의 홍수 속에서는, 달린다는 것 자체가 당연스레 놀라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황한 내 눈에, 이상한 광경이 들어왔다.

난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래.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거리에서 달릴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가 그토록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달려가는 대로 길을 내어주는 주위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는 특별히 위협의 말을 외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가 달리는 대로 인파는 갈라지듯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직감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품속에 들어있을 지도 모를 칼을 두려워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건, 단지 일상적이고 평이한 자신의 삶에 균열을 가져올 또 하나의 ‘귀찮은 사건’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혐오를 느끼고…… 또 이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을 혐오하는 나를 혐호하게 된 순간, 내게 이곳은 더 이상 시끄럽지 않았다. 그때 분명히 깨달았던 것이다. 이곳을 지배하는 건, 자동차의 경적이나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하찮은 소음 따위가 아닌, 그 이면에 덧씌워진 숨막히는 정적일 뿐이라는 것을.

그 후로 내 출근길은 더 이상 시끄럽지 않았다. 난 항상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그 정적 속을 걸었고, 그래도 소음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았느냐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다시 3년째가 되는 오늘, 난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참을 수 없는 어떤 충동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오늘 회사에 중요한 거래가 있다는 것도 기억났다. 난 이 회사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최상위층의 인물은 아니지만, 회사의 중요하고 공식적인 일은 내가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내가 이 거리를 6년 동안 걸어온 것의 대가이다. 그런 내가 빠진다면, 거래가 제대로 성사될 리가 없다. ……하지만, 곧 그런 것쯤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난 도시의 외각을 달리고 있었다. 손목에 찬 시계는 이미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시를 빠져 나오는 것은 힘들었지만, 일단 외각을 들어선 이후로는 놀랍도록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일? 지금쯤이면 회사 사람들은 거래가 곧 시작하는데도 왜 내가 오지 않는지 쩔쩔 매며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오지 않는 나 대신 대체 인원을 투입하게 되겠지. 하지만 상대는 깐깐하다. 핵심 인물인 내가 빠진 이유를 꼬치꼬치 캐 물을 테고, 결국 거래는 우리 쪽의 형편없는 손해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에 왠지 웃음이 나왔다.

*

나는 점점 더 한적한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마지막 국도를 벗어난 것은 이미 오래 전이었다. 그냥 길을 따라, 마음가는 데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문득, 숨이 막히는 듯한 광경을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

하늘과 땅이 만나 있었다.

하늘은 끝없이 맑았다. 또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그리고 그 청아한 하늘에는, 건드리면 터져 버릴 듯 부풀어 오른 커다란 뭉게구름이 새하얀 햇살로 부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관이, 그 모든 것이 지상에도 그대로 담겨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난 터질 것만 같은 심장을 움켜쥐고 다시 자세히 그곳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호수가 있었다.

우리 나라에, 아니 이 세상에 저런 곳이 있었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이 호수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거울이 되어 하늘을 담아내고 있었다. 난 그대로 차를 세워둔 체 호수로 다가갔다. 지상에 펼쳐진 하늘은 진짜 하늘과는 또 다른 신비감이 있었다. 거대한 유리를 보는 것 같은, 너무 얇고 맑아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만 같은.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생각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감정의 충돌에, 난 그대로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그런 울음이 아니었다. 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격한 울음이었다. 난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지는 않았는가. 난 그대로 호수 속에 뛰어들었다. 티끌 한 점 없이 맑고 차가운 물이었다. 너무나도 벅찬 행복이 전신에 감겨들었다.

*

후우우-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난 호수에 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진짜 하늘이었다. 도시의, 내가 걷던 거리 위에 떠있던, 손만 뻗으면 닿아 버릴 듯한 그런 답답한 하늘이 아니었다. 정말 높고, 정말 맑고, 정말 눈부셔서,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들게 하는, 그럼에도 내 모든 걸 다 바쳐서라도 가고 싶은 그런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늘을 보다, 어릴 적의 추억을 하나 떠올리게 됐다.

하늘을 날고 싶다.

이 세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 평범한 소망이다. 하지만 -그러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의 난, 그저 막연한 소망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절실히 하늘을 원하고 있었다. 난 시간이 날 때마다 등산을 했다. 산 정상의,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의 공기를 마셔보고 싶은 까닭에서였다. 내 사진첩은 그런 산 정상의 하늘이 찍힌 사진들로 빽빽이 들어찼다. 그 사진첩은 꽤 오랜 시간동안 내 보물 1호를 차지했었다. 그러니까,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에 의해 사진첩이 불타버리기 전 까지는 말이다.

분노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평생 이렇게 살수는 없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감정과는 별개로, 까맣게 재만 남은 내 보물 1호를 보며, 내 모든 꿈은 그때 전부 타버렸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꿈만이 아니라, 앞으로 꿀 미래의 꿈까지 말이다. 그건 충동적인 반항심이나, 좌절감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생각이 아니라……. 그냥 무덤덤히 인식하게 되는, 그리고 인정하게 되는 그런 류의…… 좌절이었다.

그 후로 나는 꽤나 평범한 삶을 살았다. 머리가 좋지 않았기에 밤새 공부했고, 그렇게 재능 있지만 공부에 적은 시간을 투자하는 친구들을 힘겹게 추월했다. 산? 하늘을 쳐다본 일도 손에 꼽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좋은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 좋은 조건으로 결혼하기 위해서. 그래서……. 좋은 집과 차를 얻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당시의 나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어떤 차이도 없는 평이한 일상을 보냈었다.

그렇게 내 시간을 몽땅 바친 대가로, 난 알아준다는 대기업의 회사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역시 열심히 했다. 6년 동안. 그리고 다시 그 시간의 대가로 회사 내에서도 알아주는 요직에 오르게 됐다. 좋은 집. 좋은 차. 넉넉한 월급. 모든 것을 손에 넣었다. 괜찮은 거래 아닌가. 학창시절을 즐기지는 못했지만, 명문대학을 거쳐 대기업에 취직했고. 그 후로 다시 6년을 일에만 빠져 살았지만, 그 대가로 대기업에서도 고위직에 오르게 됐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 만약 내가 학창시절에 남들처럼 놀았다면,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기고만장해 헤이해졌었다면 난 결코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다. 그건 정당한 투자며, 거래다.

생각해 보라. 내가 학창시절에 그까짓 자치기 따위에 빠져 있었다면, 그때의 일시적이고 하찮은 기쁨이 가져온 결과가 결국 다 무너져 가는 대학에 들어가,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삶이었다면, 나는 만족했을까? 내가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사실만으로 월급을 펑펑 쓰며 놀고먹었다면, 그래서 진급은커녕 실직해버려 다시 무일푼의 신세로 돌아갔다면, 나는 그때 잠시의 행복을 되새기며 기뻐했을까? 부정적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는 어떤 의미도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그리고 -보다 중요한- 곧 현재가 될 시간. 즉 미래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항상 더 잘살기 위해 내 시간을 투자해 왔다.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

"뭐, 하나를 선택하려면 하나는 버려야 하는 법이죠."

어디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아무도 없던 호수 한가운데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상태만 아니었다면, 그냥 아무생각 없이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아무도 없던 호수 한가운데 둥둥 떠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상태가 맞았고, 그래서 끌어안고 싶다는 생각이 미처 들기도 전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난 당황하며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는 이때까지 일에 치여 살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길게 기른 금발. 그리고 그 금발에 물들어버린 듯 한 금색 눈동자에 눈처럼 하얀 피부까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미모였다. 괜찮다. 이것까지는. 물론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여태까지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수면에서 다리를 개고 앉아 멍한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내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한 말을 툭 던지는 광경은…… 아무리 애써 봐도 내가 정상이라는 것과 양립될 수 없는 사실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난 당황했다. 물론 나를 쳐다보는 순간 그가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건 바보라도 알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그가 신기루일거라, 그리고 방금 내가 들은 소리는 그저 내 마음의 소리일 뿐이었을 거라고 (거의 발악적으로) 믿고있던 나는, 이제 그 신기루에 맞는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극히 비생산적인 일이었다. 넌더리가 날 것 같았지만,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당신은……."

그토록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결국 '누구신가요' 라는 뒷말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뜻이 전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평범한 인간입니다."

난 그 뒤로 이어질 말을 기대했다. '아니,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등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 뒤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제야 난 '평범한 인간입니다.' 라는 두 마디가 그의 자기소개의 전부라는 것을 눈치챘다. 너무나 무성의한 대답이다. 아니면, '평범하다' 의 범위를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넓게 잡고 있다거나. 그리고 어느 쪽이라도 맘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말이었다.

"현재와 미래. 만약 당신이 둘 중 하나에서만 행복해질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고르겠습니까?"

글쎄. 분명 뜬금 없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가슴에 팍, 하고 박힌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현재와 미래라. 10년 정도 행복하다고 해봤자, 그 이후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조금 고생한 후 행복해지는 것을 고를 것이다. 그게 보편적이며,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다. 딱히 고민할 이유가 없는 물음이었다. 하지만 왠지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뭐랄까. 사실 이 질문을 받아본 적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난 그때마다 미래를 선택했다. 하지만 이번에 역시 미래를 선택한다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순간에는 늘 그렇듯, 근거라고는 전혀 없지만 확신에 가까운, 그런 괴이한 느낌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결국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 그가 일어섰다.

"하늘을 날고싶어 하셨죠."

도저히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이상한 타이밍이 아닌가? 내 마음속을 훤히 읽고있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뚜벅뚜벅 수면을 걸어갔다. 물론 하늘을 나는 것은, (비록 한때였지만) 내 일생 일대의 소원이었으므로, 일단 그를 놓쳐버리기는 싫었다. 난 미숙한 수영솜씨로 힘겹게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는 나를 보며, 과연 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나는 꽤 오래 동안 이동했다. 수영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렸을 때 자유영과 배영 정도는 배운 적이 있었고, 그를 따라갈수록 호수의 폭이 좁아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으므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그의 걸음걸이에 맞춰 헤엄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는 걷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므로, 이 이상한 청년과의 어색한 분위기가 더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하늘을 날고싶다는 것과 이 이상한 동행 사이에 어떠한 관계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채고 당황해하고 있을 즈음,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앞쪽을 바라봤다. 이미 물살은 내가 굳이 발장구를 치지 않아도 무리 없이 나를 이끌 정도로 세져 있었으므로, 난 갑자기 멈춘 그의 다리를 잡고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루함에 못 이겨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가 쳐다보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일단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여전히, 눈이 시릴 만큼 푸른 하늘이었다. 그리고 그 하늘을 가리는 뿌연 안개……. 안개? 지금은 한 낮이다. 난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안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안개처럼 뿌옇게 하늘을 가리던 것의 정체는,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작은 물방울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챈 순간, 이곳이 왠지 내가 책에서 봤던 그 무언가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진지하게 고려해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곳은 폭포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
"네?"
"고작 하루만에 이렇게 많은 상식이 파괴될 수는 없는 거라고!"

얼핏 어리광 같은 말이었지만, 그는 무시하거나 피식 웃는 대신 약간 슬픈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상식이란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바라보던 그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외모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던 힘이었다. 물론 부력 때문에 내가 가벼웠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것으로 놀라기엔, 내가 수면에 섰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맙소사. 내가 물위를 걷다니. 누군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줄 알았겠는가? 폭포 쪽으로 점점 다가가는 그를 따라가면서도, 난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내 발 밑으로 흐르는 물을 보며, 정말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기를 기도했다.

"자, 다 왔습니다."

그는 폭포의 끝자락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야 미끄러진다 해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으니 괜찮겠지만, 나는 미끄러진다면 그대로 저 세상 행이다. 그래서 나는 거의 그에게 매달리다 시피 해서야 밑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피가 식는 기분을 느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수십 년 전부터 있었던 폭포지만 바닥은 물 한 방울 묻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오싹한 생각이 드는. 하늘을 날고 싶냐고? 설마 이 녀석, 여기서 뛰어내리려는 건…….

난 당황해 고개를 들어 그를 돌아봤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그가 있던 자리를. 하지만 그는 내가 힘이 풀려 주저앉은 사이 이미 폭포 앞에 둥둥 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꿈, 영원히 깨지 않고 싶다고 했던가. 미안하지만 그건 취소다. 이봐요. 지금 제 생각 읽고있겠죠? 그러면 제발 당신처럼 여기서 뛰어내리라는 말은 하지 말아요.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만 아니라면 뭐든지 용납할테니까.

물론 이렇게 수면을 걷고 하늘을 나는 기적을 보였는데도, 난 여전히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는 사실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건 그는 나를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고, 내 강경한 태도에 결국 마음을 바꿨는지 조용히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하늘을 나는 건, 무척 쉬운 일입니다."

후……. 허를 찔린 기분이다. 말장난하고 있자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무슨…….

"인간은 항상 하늘을 그려왔고."

그는 헉, 하며 숨을 들이마신 나를 보며 엷게 미소지었다.

"……하마터면 거의 성공할 뻔했죠. 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었을 때 드디어 인간이 하늘을 나는구나, 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무래도, 이 녀석은 다른 사람의 말을 끊고 자신의 마을 이어가는데 천재적인 소질이 있는 것 같다. 하늘이라니. 이 녀석은 나를 너무 잘 알고있다. 게다가 그 말 한마디 한마디가 궁금증을 유발하는 말들 뿐이라, 말을 끊긴 것에 화나기 전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지니 말이다. 뭐, 그것도 다 녀석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 하는 말이지만. 어쨌든 이번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때 이후로 인간은 비행에 성공했다. 설마, 당신 같은 사람들이 하는 그 '비행'을 말하고 있는 건가?

"그건 일종의……, 보행기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그럴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늙어 죽을 때 가지 보행기에 의지하여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곧 자유로운 두 다리로 걷게 되죠. 전 라이트형제가 발명한 비행기가 인간의 훌륭한 보행기가 되 줄거라 생각했죠. 스스로 하늘을 날기 전까지 인간을 부축해줄, 그런 것 말입니다. 하지만 라이트형제 이후 최근까지 인류의 발전 방향은……. 스스로 걸으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항상 더 좋고 편리한 보행기만을 만드는데 치중해 있었죠."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하늘은, 그렇게 해서 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날 수 있다는, 작은 상상력만 있으면 되는 것이죠."

무어라 대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투명한 금빛 눈동자가, 차갑게 끓어오르고 있다고 느껴졌다.

"당신은 이미 이 곳을 찾아냈습니다. 아직도 이런 곳이 원래부터 세상에 존재했다고 믿고 계신 겁니까? 당신은 단지 상상한겁니다. 이 곳을! 이 호수를! 이 폭포를! 전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상상하세요. 날 수 있다고. 이 곳을 만들었을 때처럼! 그럼 당신도 날 수 있는 겁니다!"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치 이 간단한 사실을 왜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했냐는 듯이. 그렇다면, 내가 정말 이곳을 만들어 낸 걸까.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때까지 봤던 그 어떤 하늘보다 더 푸른.

*

"어 자네, 어서 오게. 이제 시작이야."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거짓말처럼, 어제 했어야했던 거래는 그쪽의 사정으로 인해 오늘로 연기됐다고 한다. 글쎄. 이것도 내 상상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사람이 현재와 미래 중 하나를 고르는 순간, 대부분 미래를 고르는 이유는 그만큼 현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로 지나가고, 미래는 현재로 다가오니까. 하지만 지금 미래를 위해 소비한 현재 역시, 과거의 내가 현재를 희생해 얻은 미래다.

어제, 그 결정의 순간에서 나는 뛰어내리지 못했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그가 처음 물은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 중요한 사실을 알았고, 그걸로 만족한다.

창 밖으로, 도시의 하늘이 보였다.

여전히 검었지만, 그 뒤의 푸른 하늘을 이제 나는 안다.







끝부분이 어수선합니다
조만간 고쳐야겠네요;;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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