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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와일드 와일드 ○○

2006.02.01 18:4402.01

A

어둠이다. 눈을 감아도 떠도 눈꺼풀에서 떨어지지 않는 타르같은 어둠. 냄새나고 진득한 어둠.

지금 우리 무리를 뒤따르는 것은 그러한 성질의 것이다. 아무리 도망쳐도 그 것은 언제나 내 앞을 읽고 이동한다.

"재수 없군."

이런 말은 예사다. 늘 담배를 물고 한숨을 돌리려 해도 그 것의 소리가 우리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어디까지 쫒아 오는 거지? 다들 묻고 싶어 한다. 하지만 묻지 못한다. 낙오되는 동료와 그들의 손아귀에 놓인 동료들의 최후를 우리의 두 눈이 지켜보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남자들은 분노하며 여자들은 신음을 흘릴 뿐이다. 어찌 보면 여성이 제일 강인하다. 그들은 식량을 배분하고 이 상황을 지휘한다. 어찌 보면 그들에겐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힘이란 최고가 아니면 그 것은 힘이 아니게 된다. 예를 들자면 우리 남자들은 두려움에 자신들이 예전에 지니고 뽐냈던 힘은 이미 잃은 지 오래다. 그들은 아이들을 업고 여성들의 지시에만 힘을 쓰게 되었다. 어떠한 여성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된 둘째 날에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의 힘은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당신들의 근력과 파워를 보여주더라도 저들이 나타나 우리를 위협하는 동안에는 당신들은 결코 우리를 위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은 잉태하며 기르지만 당신들의 그 힘이란 이제 식량 배분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쟁만 일으킬 뿐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말하는 곳에 당신들의 힘을 쓴다면 그 것이 더 효율적일 겁니다."

분명 반대 세력이 생겼고 많은 남성과 일부의 여성이 반발했지만 차차 그 여성의 말에 납득하기 시작했다. 힘은 분쟁의 원인이었고 식량 배분에 비효율적이었다. 도망칠 때 재빠른 자는 적들에 의해 포획되고 죽임을 당했다. 여성들은 세심하게 함정을 살피고 먹을 것을 구분하며 흥분하기 쉬운 남성을 설득하여 안전한 길로 우회하고 분쟁을 최소화 하며 적들의 힘을 분석했다. 남성들은 아이를 업거나 부상자들을 도와주며 식량을 날랐다. 하지만 식량에 손을 대지 않는가는 철저하게 여성들이 살피고 있었다. 여성들은 기호품인 담배나 술의 보급을 최소화했다. 물론 사선에 나선 자들에겐 포상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色이 오락거리가 아니게 된 것은 벌써 예전 일이었다. 여성들이 무리의 지휘를 하는 만큼 色이 오락이 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임신한 여성이 거동이 불편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그 다음 날의 이동을 생각하면 무리한 운동은 금물이었다. 언제 적이 기습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에게 수면을 4시간 취하는 것은 이제 꿈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언젠가 나와 같이 잠을 잤던 여성은 이제는 상당한 간부가 되어 신체를 건드리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글픈 일이었다.


"도망치세요! 기습입니다. 원래 예정되었던 곳에서 만납시다!"

나는 빨리 담배를 비벼 끄고 적들을 교란시키기 위해 다른 이들이 도망치는 반대편으로 달렸다. 나의 덩치는 상당히 큰 편이라 눈에 잘 띈다고 한다. 게다가 상당히 재빠르다. 적들이 홀로 떨어진 나를 잡으려는 사이 무리들은 도망치는 것이다. 야속하다 할 수 없다. 그 덕분에 나는 금연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나는 어둠을 억지로 헤치며 달렸다. 그들은 금방 나를 따라잡을 듯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저들은 우리의 사지가 잡힌 후에도 멀쩡한 것을 원하는 것이다 라고 어떤 여성이 분석한 덕분에 우리가 포획되는 횟수가 적어지게 되었다. 그 예상을 기반으로 한 이 작전은 상당히 잘 먹힌다. 줄이 날아오면 목을 내민다. 우리의 목은 상당히 약하기 때문에 그들이 조금 당기는 것으로 부러져 버린다고 그 여성이 이야기했다. 그러면 적들은 그 줄을 놓아버린다. 그 때를 틈타 도망치는 것이다. 나는 상당히 이 일을 오래하는 축에 속한다. 운이 없으면 적이 놓지 않아 목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운이 좋은 것인지 그런 일은 여태껏 없었다.

"헤억, 헤억."

기묘한 소리, 나의 신음은 어둠 속에 잠겨 사라진다. 여전히 어둠을 감싸고 있는 적들은 한 손에 하얀 줄을 들고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럼 하늘에서는 '쉬익'하고 날카로운 창이 나를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이제 도망치는 것은 신물이 날 정도다. 눈을 감고서도 창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다. 힘껏 달리면서 옆으로 나뒹굴었다. 내 옆의 풀숲에 '푸숙'하는 소리와 함께 몇 마리의 운 없는 벌레들은 놀라 하늘로 날아간다. 찬찬히 감상한 것이 아니다. 도망칠 때는 무엇 때문인지 모든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진다. 덕분에 나의 공포심은 증대된다. 영원을 달리는 것처럼 나는 두려워한다. 단지 몇 개비의 담배에 위안을 묻고 나는 달리고 있다.

"쉬쉬쉬쉬쉬쉬-"

적들이 소리를 낸다. 저 소리는 그들도 급해졌다는 것이다. 유리를 긁는 손톱이 내는 비명처럼 그들의 격한 소리에 내 고막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나보다. 저들의 소리는 나의 뇌를 뒤흔든다. 일종의 감각의 셰이커이다. 시각도 혼란된다. 청각도, 촉각도. 정상적인 것은 도망치겠다는 정신 오직 그 하나다. 그래서 달린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창은 3발이 한계이다. 아마 저들의 저 고양된 소리는 한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나 같은 녀석 중 하나가 첫 발에 뻗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바보 자식!"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진득한 말이 나를 위안하는 마지막 거리이다. 바보가 되지 않겠다고 하는 다짐 같은 것이랄까. 아니면 이렇게 몇 개비의 담배에 위안을 가지며 치졸한 영웅 심리로 이 짓을 계속 하는 나를 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나의 혀도 이미 셰이커의 감각에 흔들려 버린 거다.

"쉬쉬-쉬쉬쉬쉬-"
"그래! 바보 자식들아! 여기다!"

어릴 적 영화건 만화건 나의 자리를 없었다. 단지 묵찌빠를 열심히 해서 묵찌빠 파워를 모아 주던가 로봇을 사서 스스로 자신이 만화 속의 인물인 양 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다. 하지만 우습게도 지금은 나의 자리가 있다. 아마 영화를 찍는다면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공포 영화도 괜찮을 것이다. 내가 옛날에 오금을 지렸던 공포 영화에도 이렇게 두려운 것은 없었으니까. 알 수 없는 정체의 적, 그 것도 강한 힘을 지니고 우리를 뒤쫓는다. 목적은 모르지만 우리의 포획이 최우선이다. 사라진 동료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어쩐지 공포영화. 그 것도 완벽한 블록버스터. 아아, 달리면서도 이러한 공상을 하다니 역시 셰이커 때문일 것이다.        

감독은 누가 좋을까?

배우는 역시 ◇■◆가 좋겠지.

특수 효과가 스타워즈 정도라면 아주 좋을 텐데.

아니, 그 이하라도 상관없어. 전설의 고향정도만 아니면 된다구.

사실 내 귀가 듣는 것은 저 빌어먹을 소리밖에 없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환청을 듣는다. 그리고 내 목에 감기고 있는 줄의 움직임에서 생겨나는 바람의 소리까지 들린다. 아니, 이건 현실인가보다. 목이 조여져 왔다. 아픔이 저릿하고 전신을 달린다. 물리적 아픔이 아닌 단순히 숨을 못 쉰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고통. 나는 헐떡이며 계속 줄을 풀기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다.

'줄이 목에 묶였을 때는 최대한 움직이세요. 저들은 우리의 생포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즉시 줄을 놓을 겁니다.'

"거-짓말이었-나."

나의 등줄기에 무언가가 주사되었다. 나는 그대로 몸을 무너트리며 쓰러졌다. 의식이 조금씩 흐려지면서 내 주위로 그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박쥐의 얼굴을 달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B

오늘도 작업입니다. 이곳은 정말이지 미개합니다. 하지만 미래에도 저들이 생존해 있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까요. 우리는 지금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동물들을 더 좋은 환경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솜씨가 미숙하지만 다른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어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4마리를 포획해서 좋은 환경에 방사하였습니다. 얼마나 기운차게 뛰어다니던지 제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하지만 한 마리는 실수로 죽여 버려서 매우 미안했습니다. 이 곳 와일드 ○○는 다양한 종의 생물이 살고 있지만 그들처럼 포획할 때조차 귀찮게 만드는 종은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털이 매우 특이하게 납니다. 그들의 감각 기관은 둥근 구에 모여 있고 그들의 털은 그 구의 어느 부분에서 집중적으로 납니다. 하지만 어떠한 생물들은 아예 다른 생물과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적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노화의 정도를 다른 생물과 비교할 때 나이를 먹을수록 털이 적어지거나 색이 변모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각적 역할을 하는 부분의 위에 짧게 털이 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털이 나는 곳이 점점 후퇴하다 남긴 흔적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한 생식 기관의 가까이에 털이 나 있는데 암컷은 이곳의 털을 없애기도 하는 것을 보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털의 길이는 암컷일수록 길지만 암컷 중에 짧은 생물도 있습니다.
이들의 번식 방법은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하는데 이 경우 반드시 수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한 번에 두 마리의 새끼는 갖는 것은 드문 일로서 대부분 한 번에 한 마리의 새끼를 출산합니다. 그러나 임신기간이 10개월로써 매우 길고 암컷의 행동이 제약되는 점에서 매우 불편해보입니다. 또한 수컷은 암컷의 임신 기간에 다양한 행동 변화를 보이는데 아무런 신경을 안 쓰는 녀석부터 아예 암컷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녀석까지 실로 다양합니다. 그리고 수컷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무척 많이 합니다. 자신의 암컷을 아무 의미 없이 폭행하거나 자신의 새끼를 죽이기까지 하는 것으로 보아서 수컷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특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암컷은 우리의 몸치장과 비슷한 행동을 많이 하고 서로 모여 자신들의 털가죽을 바꿔 입어보거나 장시간 의사소통만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이들 중 수컷들만을 모아 한 방에 장시간 가두어 두었을 때 그 방의 덩치 작은 수컷을 폭행하거나 교미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수정되지는 않습니다. 이번엔 암컷들을 한 방에 장시간 가두었습니다. 암컷들은 곧 세 성질의 그룹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강한 그룹과 중간자 그룹, 약한 그룹입니다. 약한 그룹의 수가 얼마 되지 않고 강한 그룹이 이들을 일방적으로 폭행하며 중간자 그룹은 이들을 방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끼리 의사소통을 하거나 다시 폭행과 방관을 반복합니다. 약한 자가 죽으면 다른 약한 자가 생겨납니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결과 실험을 더 진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중단하였습니다.

중략

이 종은 우리의 보호가 없다면 스스로 자멸할 지도 모르는 생물이며 와일드 ○○내에서 신체적 조건에서 보았을 때 약자에 속하지만 폭력적인 성질이 매우 높게 나타나는 생물인 것 같습니다. 다만 집단으로 모이면 엄청난 조직력을 가지므로 한 지역에 너무 많은 방사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생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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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와일드 아프리카를 읽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난데없이 줄을 던지고 마취시키고 눈을 가리고 트럭에 태워서 먹을 것이 풍부한 곳에 방사시켜준다면 별로 그닥 기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신랄한 감상 부탁드립니다.
댓글 2
  • No Profile
    잘 읽었습니다. 와일드 와일드 아프리카는 무슨 책인가요?
  • No Profile
    상대방에게 잔혹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비인간화'라고 하지요. 제국주의의 시대에 백인들이 저지른 무수히 많은 짓들은 유색인종은 인간이 아니란 생각에서 기인했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이런 문제에 대한 생각이 드는군요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얘기가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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