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긴 사람이 있었대. 자르고 싶어서 가위를 찾았지. 하지만 가위들이 다 거부하는 바람에 뜻대로 되지 않았어. 빨리 잘라버려야 속시원할 텐데. 밖에 나가면 덥수룩한 머리칼이 바람에 날려서 스타일링이 엉망이 되고(스타일링이라 할 만한 것도 없지만) 가끔 가다 눈까지 찌르니까, 얘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맞나 하고 짜증을 내기에 이르렀어.
그래서 돌바닥에다 비볐어. 탈모가 슬슬 시작될 나이였거든. 마침 모발도 얇아지고 있었고. 딱 좋은 때라고 생각한 거지. 돌바닥에 머리카락들이 뒤엉키고 짜부라지고 뜯어지고 난리도 아니었어. 두피는 피칠갑이 되고. 그런데 이렇게 되면 마음이 좀 편해져야 하잖아. 그렇지를 않은 거야. 정신을 차리니까 따끔 따끔 아파오는 거 있지. 막 찡그리며 아파하니까 혈압이 오르는 거야. 빠직. 개빡친 거지. 정말 살기 싫다고, 그 사람은 수변공원 한 가운데 흐르는 저수지에다 몸을 던졌어. 이런 몸뚱어리, 아무한테도 보여주기 싫다고.
돌바닥에는 시커먼 머리칼로 떡칠이 되어 있었어. 사람들이 다 거기를 걷기 싫어했지. 아마 그 위로 걸어다녔으면 한 발짝 뗄 때마다 끈적거렸을 거야. 낙엽은 또 그거랑 상관없이 떨어졌거든? 낙엽도 바람에 날릴 거 아니냐. 근데 이것들이 달달 떨리기만 하고 날아가질 않는 거야. 풀로 붙은 것처럼. 간신히 떨어져나간 것에는 붉게 핏기가 붙어 있었대. 그런 이야기야. 시체는 찾았냐고? 아무도 관심을 안 줘서 자살한지 몇 개월 지난 뒤에야 밝혀졌어. 수도세, 전기세 납부가 안 되고 있으니까 사람이 여러번 찾아왔었대. 실종신고가 들어갔던가? 아무튼 결국 죽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다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