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용현은 소년을 업은 상태로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가 몇 초 만이라도 숨을 돌리지 않으면 아예 정신 줄을 놓아 버릴 것 같았다. 괴물 어부 부부가 잡아먹기 수월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셈이었다. 그는 속도를 낮추면서 몸을 틀어서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때 마침내 소년의 말문이 트였다.

  -아저씨⋯⋯. 진짜 무서웠어요.

  용현은 소년의 말을 듣자마자 그를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곧장 돌아서 소년의 어깨를 감싸 쥐면서 말했다.

  -봤어? 이번엔 너도 다 본 거야? 그 빨간색 고리랑 전부 다?

  용현은 소년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표정으로 보아 소년은 이번에도 역시 못 본 것이 분명했다. 왜 나에게만 보이는가, 아니면 이 소년만 못 보는 것인가. 그는 의문점이 다시 커짐을 느꼈다. 그러다 이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내 앞에 있는 이 소년의 정체는 무엇인가.

  순간, 용현은 한참 전에 소년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아빠를 찾고 있었다. 용현은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빌어먹을 무엇이건 간에 모조리 짓밟아 이겨내고 ‘아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소년의 두 눈을 보니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용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소년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나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여덟 개로 늘어난 괴물 한 쌍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저편에서 하얀빛을 쏟아 내고 있는 등대가 보였다. 어떻게 보면 묘한 초록빛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의 가로등이 켜진 긴 방파제가 등대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는 소년을 데리고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배들이 있었다. 그곳은 작은 항구였다. 하지만 자정에 가까운 시간 때문인지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구할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용현은 지금 시간이라도 어쩔 수 없이 근처 민가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항구 반대편을 두리번거렸지만 다 무너져 가는 일 층 건물에 문 닫은 슈퍼 단 하나뿐이었다. 그는 그 이름이 당연히 ‘조심 슈퍼’일 줄 알았는데 아닌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해했다. 그냥 ‘슈퍼’였다. 진짜 이상하네, 조심 슈퍼가 아닐 줄이야, 그리고 보통 항구 근처엔 달랑 슈퍼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횟집 같은 식당이나 민박 아니면 모텔 뭐 그런 거라든지, 아무튼 사람 사는 집이 몇 집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용현은 또 혼란스러워져 갔지만 이내 다시 집중했다.

  소년은 잘 참아 내고 있는 듯 보였다. 용현처럼 주위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그리고 어쩌면 용현보다도 훨씬 강한 의지로 정신적 또는 신체적 체력을 유지하는 중일지도 몰랐다. 용현은 소년의 손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고 슈퍼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시 보니 슈퍼 건물 양쪽으로 낡았지만 그래도 가로등이라고 각각 서 있었다.

  용현은 슈퍼 앞에 도착하자마자 철로 된 미닫이문을 마구 두드리면서 아무도 없냐고 소리쳤다. 내부는 건물 양쪽에서 두 개의 가로등 불이 비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색과 같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늦은 밤이었지만 어차피 한 집뿐이라서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외쳐 댔다. 오 분 정도가 지났을 때 가게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용현은 안을 들여다보려고 얼굴을 문 유리에 바짝 붙였다. 순간, 누군가가 있는 힘껏 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하마터면 소년과 함께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거참! 저 옆에 안내문 안 보여요? 노크 세 번 하고 오 분 기다리면 나온다잖니, 글쎄.

  그러더니 주인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순간적으로 얼굴을 세상 온화한 표정으로 바꾸더니 소년에게 말했다.

  -어휴. 꼬마야, 다치지 않았지? 그래도 아줌마가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줌마 맘 알지?

  -그럼요. 아주머니. 괜찮아요!

  뭐야, 이 둘만의 친밀감은. 용현은 처음 듣는 것이 아닌 그 지역 억양에도 흠칫 놀랐지만 금세 어느 정도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슈퍼 주인이 어머니 또래로 보이는 데다 풍기는 이미지까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잠시나마 눈빛이 몇 배나 더 강해 보이긴 했으나 어쨌든 전체적으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용현이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그러면서 그는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슬쩍 훑어보았다.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365일/24시간 영업’. 진짜예요, 사장님? 용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진짜고 말고!

  용현은 온몸에 털이 바짝 서는 것 같았다. 또 도망쳐야 하나 생각했다. 그때, 슈퍼 주인이 이어 말했다.

  -아무튼 말이지. 배 한 척만 빌려주면 되나?

  미친! 돌아 버리겠네 진짜! 도대체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 그리고 이 쓰러져 가는 슈퍼에서 배를 왜 빌려주냐고! 왜, 팔지는 않나 봐? 용현의 머릿속은 의혹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그녀가 괴물로 변하려는 듯한 움직임은 없었다. 애매한 상황 속에서 슈퍼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의심만 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니? 그리고 그렇게 멍하게만 있다가는 나도 배도 싹 사라질 텐데?

  용현은 곧바로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보면 애초에 정상적인 것은 아예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이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독 정말 말도 안 되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회는 찾아오는 법이었다.

  -오케이. 좋아요, 배도 흔쾌히 빌려주시고 다 좋은데. 그게⋯⋯.

  -그게 뭐?

  -설마 빌려주시기만 하는 건 아니겠죠? 제가 어떻게 배를⋯⋯.

  -젊은 양반이 농담을 맛깔스럽게 하네?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딨니. 이 슈퍼가 겉모습이 이래서 그런 말을 하는가 본데 말이야. 요샌 손님이 하도 많아서 링거를 달고 산다고, 내가.

  용현은 또다시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배는 구했는데, 가지는 못하게 생겼네, 결국 이렇게 될 거였나?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가게 건물 오른쪽 가로등이 깜빡깜빡하다가 꺼져 버렸다. 그 탓에 슈퍼 주인의 모습이 더 어두워졌다. 표정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럴 시간이 없지 않니. 용현 총각. 나 오래 못 기다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는 것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용현은 그저 결단만 내리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떼려고 하자 오른쪽 가로등이 재차 깜빡깜빡하기 시작했다. 어찌 되든 시도해야겠지, 아예 전부 사라지기 전에. 용현은 속으로 속삭였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럼 전 뭘 하면 돼요? 일단 가서 렌터카 고르듯이 고르면 돼요? 진짜 이게 무슨⋯⋯. 아, 아니 제 말은 상황이 좀 독특하니까요. 그리고 사장님 결제는 지금 제가 현금이⋯⋯.

  -말이 왜 이렇게 많아. 그건 그냥 일 끝내고 와서 얘기하면 되잖니. 저쪽으로 가면 팻말이 있을 건데 거기 다 나와 있어. 자 그럼 갔다 와서 보자고. 꼬마야, 안녕. 또 만나자.

  슈퍼 주인은 그렇게 몇 마디 던지자마자 컴컴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가 보이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다시 나와서 한마디 더 던지고는 들어갔다.

  -현혹되지 마.

 

  용현은 잠깐 영문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다가 서둘러 몸을 틀어 팻말을 향해 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이겠지. 그가 그런 생각을 하자 그제야 자신의 옆을 헐떡이며 따라오는 소년이 보였다. 용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또 생각했다. 동준이 아빠를 찾으러 가면서, 동준이를 깜박하고 있었다니, 저 슈퍼 사장은 결국 나를 홀린 걸까, 그럼 저것은 겉모습은 변하지 않는 또 다른 괴물인 걸까, 괴물이다, 아, 어지러워.

  그런데 한편으로 그가 느끼기에 이번만큼은 어떤 존재가 자신을 억지로 티 나게 종용하는 것 같았다. 슈퍼 주인이란 작자는 마녀라고 그 마녀가 가라앉는 배를 주는 것이라고 이간질하는 것 같았다. 용현은 그래서 그런 외침들을 짓눌러 없애 버렸다. 슈퍼 주인은 마녀보다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마지막 기회였다. 용현이 다시금 소년의 손을 붙잡고 팻말 앞으로 가서 섰다.

  -동준아, 너 괜찮아? 아저씨 말은 그러니까⋯⋯ 시간도 너무 늦고 힘들지 않느냐는 말이야.

  -아빠 만나러 가는 데 힘이 들겠어요 아저씨? 어서요, 시간이 없어요!

  그는 정신이 바짝 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 누구의 충고보다 효과 만점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 배 하나, 둘⋯⋯ 다섯 척 중에서 하나를 골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아빠를 찾을 거야.

  용현은 소년 앞에서 포부 넘치는 말을 내뱉었지만 곧바로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아빠를 찾는다는 마음에는 결코 변함이 없어도 그가 최근에 타본 배라고는 거의 십여 년 전 남이섬 ‘바나나 보트’밖에 없었다. 그것은 사실상 배라고도 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앞에서 누가 끌어줘서 매달려 있기만 해도 되는 놀이 기구였다. 그런데 용현은 지금 배 하나를 직접 몰아서 소년과 함께 동해 바다, 더해서 어두운 밤바다로 나갈 참이었다.

  팻말에는 다섯 척 배 각각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제원 및 특징 따위가 적혀 있었다. 그중에서 용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게도 사진과 이름뿐이었다. 진짜 다 나와 있긴 하네, 까막눈이어서 문제지. 그는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그 즉시, 팻말 속 배 사진 모두가 낡아지는 듯했다. 마치 배들이 난파선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용현은 내용마저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서 다시 팻말을 살폈다.

  ‘수진호’라는 배의 특징에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운항 난이도: 제일 쉬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절대 안 뒤집힘’, ‘누구나 사용 가능한 3D 해상 내비게이션 완비’. 노골적으로 그의 수준에 맞춰 시선을 끄는 내용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전에는 없었던 문구 같았다. 그러나 용현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소년이 팻말의 수진호를 가리키면서 그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용현이 소년과 함께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오로지 수진호만 온전해 보였다. 그제야 제대로 본 수진호는 엄청 크진 않지만 날렵한 모습이었고 자동차처럼 핸들이 달려 있었다. 종류가 다른 나머지 배들은 낡고 군데군데 녹이 슬어 볼품없었다. 그는 지금 복잡하게 뭔가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용현은 수진호에 올라탄 뒤 이어 오르는 소년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고는 곧장 내려서 결박 끈을 풀기 시작했다.

  서둘러 다시 올라탄 그는 소년을 왼쪽 좌석에 앉히고 자신은 오른쪽 좌석에 앉았다. 그 좌석 가운데에는 방금 본 대로 동그란 핸들과 여남은 버튼 및 내비게이션으로 보이는 큰 화면 하나에 조그만 화면들까지 있었고 왼쪽에는 열쇠가 꽂혀 있었으며 오른쪽에는 자동차 기어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때, 용현은 갑작스러운 정체불명의 힘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그 탓인지 그는 망설임 없이 열쇠를 돌렸는데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의 시동이 켜졌다.

  용현은 본능적으로 왼손으로는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기어를 잡았다. 그러고는 몇 초 동안 기어를 만지작거리더니 상단부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그냥 앞으로 쭉 밀어 버렸다. 자동차 기어와는 뭔가 다른 것 같았지만 배만 움직인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다행히 배는 한 번 꿀렁거리고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용현과 소년이 바다로 나서는 순간이었다. 조용하던 소년이 그 순간에 맞춰 입을 열었다.

  -저 무서워서 조용히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저씨.

  -아저씨도 하나도 안 무섭다. 이깟 배 운전 완전 껌이네!

  하지만 용현은 뒤늦게나마 깨닫고 해상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려고 하다가 화면 자체를 알아먹을 수가 없고 또 무슨 특정 동네나 건물 같은 목적지를 찍고 가는 것도 아니어서 일단 놔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현은 항구와 등대에서 멀어질수록 앞이 점점 깜깜해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놀란 그는 떨리는 손으로 기어를 안으로 당기면서 속력을 줄인 뒤 똑같이 떨리는 다른 손으로 버튼 이것저것을 하나하나 눌러 보았다. 다섯 번째쯤 눌렀을 때부터 배 주위와 안으로 빨간색, 초록색, 흰색의 빛이 나타났다. 그 전에 반응이 없는 버튼은 원상태로 놓았다. 용현은 혹시 손 떠는 모습을 소년에게 들키지는 않았을까 눈치를 슬쩍 보았다. 소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앞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꾹 참고 있네, 강한 녀석이었어. 그는 소년에게서 자극받은 느낌이었다. 용현은 다시 속력을 높였다. 아까처럼 그것을 앞으로 밀기만 하면 그만이었고 방향 또한 핸들을 좌우로 돌리기만 하면 되었다.

 

* * *

 

  소년의 아빠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가 물살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방향이 어디인지 알기란 불가능했다. 한번은 이쪽에서부터 또 한번은 저쪽에서부터, 끊임없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검붉은 환초 괴물의 어떤 의도인지 의도란 것이 있기는 한 건지 모를 일이었지만 아무튼 여태껏 잠잠했던 환초 괴물은 그 소리가 낯선 까닭이었는지는 또 알 수 없어도 제 몸뚱이 색깔을 더 짙게 만들고 몸뚱이 전체를 부풀리며 꿈틀거렸다. 그러자 시간이 지날수록 괴물의 몸뚱이인지 팔인지 입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서로 합쳐져 검붉은 돌벽처럼 변하는 것 같았고 점차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갔다. 가운데 환초호는 여전히 스스로 에메랄드빛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돌벽 내부를 비추는 꼴이 되었다. 소년의 아빠는 바다 거인의 빛나는 우물 안에 빠진 느낌이 들었다. 또 생각해 보니 이것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배의 물살 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있었다.

  소년의 아빠는 사실 아주 예전부터 뱃일을 하면서 이 넓은 바다에 물고기 말고 생전 처음 보는 무언가가 나타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 생각의 출발은 후회스러운 과거와 고단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를 떠올릴 때 이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출현이 현실이 된 지금 그는 약해지고 있었다.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아들을 떠올리지조차 못하는 현재의 상태가 그것을 말해주었다.

  소년의 아빠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급격하게 무너져 내려갔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검붉은 돌벽은 더욱더 위로 뻗어 갔고 에메랄드빛도 그만큼 강해져 갔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나이를 얼마나 먹었더라, 대충 이 정도면 많이 살지 않았나, 그래, 아들놈이야 이제 다 컸고, 병호가 아마도 좀 돌봐 줄 테니까, 이제 그만⋯⋯. 그때였다. 이제는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여러 소리가 아래에서부터 겹쳐 들렸다.

 

  더 이상 살기 싫다면, 기꺼이 내가 도와주지.

  더 이상 살기 싫다면, 기꺼이 내가 도와주지.

 

  두리번거리던 소년의 아빠 시야에 닿은 돌벽 내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부분은 흉측한 모습으로 역겨운 소리를 내면서 어떤 형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곧 익숙한 실루엣이 드러났다. 그의 아들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얼굴이었다.

  소년의 아빠는 애써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은 채로 몸서리쳤다. 그러자 깊디깊고 검붉은 우물 속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점차 커져 갔다. 그는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우물 안은 아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소년의 아빠가 소리쳤다.

  -그냥 죽여! 죽이라고! 그러면 제기랄, 다 끝나잖아!

 

  죽겠다는 확고한 의지, 그것 참 마음에 드는군.

  죽겠다는 확고한 의지, 그것 참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듯이 나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지.

  하지만 네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듯이 나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지.

  모름지기 ‘기브 앤 테이크’ 아닌가? 당신하고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잖아. 안 그런가?

  모름지기 ‘기브 앤 테이크’ 아닌가? 당신하고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잖아. 안 그런가?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내가 원하는 것은 이거야.

 

  당신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

 

  이제는 아들의 얼굴만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또래만큼 자라지 못한 왜소한 체격의 아들 전신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아들의 목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소년의 아빠 머릿속은 비겁한 생각뿐이었다. 그는 쓰레기 같은 용기로 갑판 한쪽 끝에 섰다. 그러고는 두 발을 난간에 올리고 괴물의 도움 없이 스스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기다릴 거 없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이제 다, 끝내는 거야. 소년의 아빠는 떨림을 억지로 누르면서 자신에게 속삭였다.

  그는 눈을 감고 그대로 뛰어내리려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말았다. 누런 대형 물고기 떼가 가까이 있었다. 흠칫한 소년의 아빠는 흔들리는 몸의 무게 중심을 겨우 다시 잡았다. 이번에 그것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입을 가득 벌리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모양은 피라냐나 상어와는 결이 달랐다. 오히려 호랑이나 곰과 같이 육지의 맹수 이빨 형태를 띠고 있었다. 순간, 그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미 갑판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두 손으로는 난간을 움켜잡고 있었다. 그리고 떨고 있었다.

  -씨발! 씨발!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소년의 아빠는 자신의 뺨을 후려갈기면서 소리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어쩌다 지금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소년의 아빠는 그를 둘러싼 채 압박하고 있는 존재를 다시금 훑어보았다. 여전히 흉측스러운 모습이었다.

 

  이거 재미있군. 너무 우스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야.

  혼자서는 못 죽겠고, 그렇다고 고통을 느끼기는 싫고.

  당신은 정말 쓸모없는 존재야. 도대체 왜 살아가나?

  제발 혼자서 설치지 마. 내가 도와준다니까.

  대신에, 아까 말했듯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줘.

  그런 의미에서 다음 작품을 선보일게. 제목은 ‘어부의 아내: 수진’이야.

  얼른 보고 싶지? 그렇지 않아?

 

  소년의 아빠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용현과 소년이 탄 수진호는 동해라는 망망대해에 있었다. 배는 기어가다시피 하다가 아예 그냥 가만히 떠 있으면서 조류의 움직임에 휩쓸리기만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용현은 배를 그저 자동차처럼 동해 바다로 끌고 나와서 무작정 소년의 아빠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육지와 바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아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세상이었다. 용현은 그 자명한 사실을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책임감으로 인해서 거의 잊어버렸던 셈이었다.

  그가 멍하니 핸들을 잡은 채로 제주도에 있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내비게이션인 큰 화면이 꺼졌다가 화면 중앙에 한 입 베어 문 익숙한 사과 로고 대신 온전한 생선 로고와 함께 다시 켜졌다. 그러고는 거의 동시에 가로로 길고 속이 빈 막대가 나타났고 그 속이 점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또 기다리는 중에 막대 밑으로 메시지 하나가 나타났는데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무상 업데이트 제공(하도 답답해서) -슈퍼 주인백-’

  한편 소년은 여태까지 잔뜩 긴장한 표정과 졸린 표정을 수없이 반복해서 짓고 있었다. 두 가지 표정이 교차하는 일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지만 이번만큼은 소년에게서 나타났다. 아마도 소년은 새까만 밤바다에 자신과 용현 외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서 몸이 굳었을 것이며 또한 어른이 아닌 어린이로서 밤이 깊어 가도록 계속 눈을 뜨고 있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었다. 그런 그가 내비게이션 업데이트 완료 시점에 맞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저씨. 업데이트 다 끝난 거 같은데요?

  -그래. “업데이트가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떴네. 근데 너, 업데이트가 뭔지는 알아?

  -당연하죠! 아무튼 그건 좋은 거잖아요. 왠지 이제 아빠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소년은 또다시 용현에게 자극을 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용현은 어두운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업데이트 따위 다 무슨 소용이야, 동준이 아빠가 있는, 잠깐, 그걸 뭐라고 하지, 그래 좌표, 어쨌든 그걸 아는 것도 아니잖아, 아니 그 전에, 내가 이걸 아예 쓸 줄을 모르는데, 누구나 사용 가능하다는 설명은 거짓말이었어. 그때였다. 내비게이션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길동무-MAX’예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시고, 가시려는 목적지나 말씀해 주세요.>

  길동무-MAX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용현은 아주 드물게 집에서 텔레비전을 켜거나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서 음성 인식 스피커에 대고 또는 배가 절대로 아닌 차에서 내비게이션이 먹통이 됐을 때 목적지를 설정하기 위해서 휴대폰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아리아’라고 불러 본 적은 있어도 배에 달린 내비게이션이 그에게 먼저 자신을 길동무-MAX라고 소개하면서 잡생각 집어치우고 목적지나 말하라고 한 경험은 결코 없었다.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는 반응하기를 머뭇거렸다. 그러자 소년이 답답하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동준인데요. 제가 그러니까⋯⋯ 아빠랑 강원도 속초시 조심면 조심해안로 36번길 1에 사는데요. 아빠가 집에, 그게 몇 밤이더라? 아. 벌써 세 밤이나 지났는데 아니, 이제 네 밤인가? 아무튼 집에 안 들어왔거든요. 근데 어쩌다 보니까 여기 어디쯤에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그 바다 주소 같은 건 잘 몰라서⋯⋯. 아. 우리 아빠 이름은 이⋯⋯.

  내비게이션한테 그렇게 길게 또 존댓말까지 할 필욘 없어, 게다가 얘는 사람 찾아 주는 탐정이 아니라고. 용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도와드릴 수 없어요. 올바른 사용자님이 다시 시도해 주시겠어요?>

  소년은 용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용현이 안쓰러운 마음으로 소년의 눈빛을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지금 이곳에서 이런 길동문지 뭔지 하는 내비게이션에게 무슨 말을 한들 딱히 이상할 것도 없을 듯했다.

  -그럼 올바른 사용자가 나야?

  <용현 님, 우리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어디든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릴게요.>

  -후⋯⋯. 엄마가 너무 보고 싶네. 나이 먹고 창피하지만⋯⋯.

  <네?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기요, 길동무 님. 알겠고요. 아무튼 우리는 동준이 아빠를 찾고 있는데⋯⋯.

  길동무-MAX가 용현의 말을 대번에 끊고 대답했다.

  <저는 길동무-MAX예요. 먼저 자리 밑에 손잡이를 돌려 보관함에서 구명조끼를 꺼내 입으세요. 혹시 포기라도 하게 된다면 배가 언제 뒤집힐지 모르니까요. 그런 다음에는 화면만 보고 따라가세요!>

  용현은 일단 소년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준 다음 자신도 서둘러 입었다. 그는 소년까지 데리고 엄청나게 무모한 짓을 한 셈이었고 그것을 깨닫자 몸이 다시 떨리는 것 같았다. 더구나 삼 분할된 내비게이션 화면 중 오른쪽 세로 화면은 넓은 범위를 나타내는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목적지로 표시된 ‘빨간 점’이 그 화면 상단에 있었는데 굉장히 불쾌하게 빨갰고 살짝 이글거리는 느낌까지 받았다.

  <용현 님, 걱정하지 마세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릴게요.>

  그래⋯⋯ 요, 부탁할게요, 길동무 님, 아, 아니 길동무-MAX 님⋯⋯. 용현은 결국 마음속으로 대답했지만 그가 한 말은 분명히 존댓말이었다.

 

  용현은 길동무-MAX가 보여주거나 알려 주는 대로 방향을 틀고 속력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운항해 나갔다. 자동차 기어를 닮은 그것은 레버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는 또 잘 알지는 못해도 일반 해상 내비게이션의 화면은 전혀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옆에 소년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철저한 초보자 맞춤형이었다. 화면은 자유자재로 분할했다가 또 뭉치면서 핸들을 이만큼 더 돌려라, 속력은 이 정도로 맞춰라, 이 버튼은 끄고 저 버튼을 켜라 하고 가르쳐 주고 그는 뭐가 뭔지 모를 가상 현실에 증강 현실 화면까지 띄우면서 용현이 원하는 바를 이루도록 이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까 불타오를 듯이 이글거렸던 목적지인 빨간 점은 종종 어느 화면 끝자락에 나타나긴 했지만 그냥 별 느낌 없이 차분한 빨간색으로 변해 있었고 순간순간 그 붉은 색깔마저도 점점 옅어져 갔다.

  용현이 약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 그제야 소년의 시선을 느꼈다. 깊은 새벽에도 아빠를 찾겠다고 강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천하무적 소년이었다. 용현이 뭔가 말하려는데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도 아저씨 아빠가 보고 싶어요?

  용현은 갑작스러운 섬뜩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젠장! 네가 뭔데 그 사람 얘길 해, 넌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 사람이 내 아버지가 맞긴 하지만, 어쨌든 넌 그 작자가 우리 엄마와 나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 게 전혀 없잖아! 그는 소년에게 그렇게까지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옛날 일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고 눈앞에 아른거리고 귓가를 맴돌았고 늘 담배에 찌들어 있던 그 사람, 아버지의 냄새까지 나는 듯했다.

  -아저씨?

  소년은 용현이 대답이 없자 재차 불러 보았다. 그러나 용현은 목각 인형처럼 굳은 자세로 핸들과 레버를 잡고는 간혹가다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 어느 기억에 휘감기고 있었다. 때문에 수진호는 길동무-MAX의 인도를 위태롭게 넘나들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어린 용현은 아버지가 아닌 엄마로부터 아버지가 중동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에 사 년 정도 일하러 간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 나라 수도 리야드에 대규모 플랜트 건설 현장이 있는데⋯⋯. 용현은 그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즉, 나라 이름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평소에 용현은 아버지가 아무리 바빠도 엄마까지 세 식구와 또는 아버지와 단둘이서 함께하는 시간을 더러 가졌다. 어리지만, 종종 아버지로부터 텅 빈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드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힘들게 일하니까 가끔은 그럴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싫어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떠나기 전 아버지의 표정을 용현은 똑똑히 보았다. 나이 어린 꼬마였지만 알아볼 수 있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표정, 어려운 문제를 거의 다 푼 표정, 꼬불꼬불한 미로에서 출구를 발견한 표정⋯⋯. 그렇게 그 표정들은 용현의 머릿속 한편에 자리 잡았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다고 말한 무렵이 되었을 때 전화 대신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그 내용은 공사 기간이 길어져 몇 년 더 일하게 되었으며 내 걱정 말고 건강히 잘 지내라는 것이었다. 어린 용현은 제일 먼저 그때 아버지의 표정들이 떠올랐다. 어머니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결국 또는 당연하게도 아버지와의 연락은 완전히 끊어졌다. 용현은 마음속의 예상대로 아버지가 엄마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어쨌든 가슴속으로는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겠지만 왜 그런지 모르게 아들처럼 적어도 남편의 생사에 있어서는 문제가 없다고 믿었으며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 나날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심이 늘어 가는 아들 용현을 달랠 뿐이었다.

  그때였다. 용현과 소년이 탄 배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크게 흔들렸다. 용현이 느끼기에 무언가가 다가와서 배의 밑바닥을 후려친 것 같았다. 그것은 길동무-MAX가 전혀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고 게다가 지금 길동무-MAX는 화면이나 음성이나 모든 부분이 지지직거리면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은 두려움을 온몸이 아예 굳어 버리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치 그 자신의 시간만은 완전히 정지되어 버린 듯했다. 용현이 소년을 살펴보려고 손을 뻗자 느닷없이 공포감이 몰아쳤다. 동시에 가슴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고 손을 거두어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곧 다시 쿵, 소리가 났다. 아까처럼 배 밑에서 나는 소리인 것을 용현은 그 와중에도 알 수 있었다.

  가슴 통증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그는 수진호의 오른편에서 슬며시 떠오르고 있는 그것을 발견했다. 용현은 처음에 그것이 뭔지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다시 보니 그저 평평해 보이는 넓은 암석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 점차 떠오르자 아래의 완만하게 경사진 부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배의 몇 배는 돼 보였다. 그는 이렇게 큰 암석이 갑자기 바다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살아 있는 생물이 아닌 것에 안심하려 했다.

  그렇지만 암석은 살아 있었다. 암석은 스스로 제 몸을 일정한 구획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갈라진 모양이 마치 거북이 등딱지 같았다. 그러더니 곧장 각 구획 부분 부분 끄트머리가 뾰족하게 변해 갔다. 용현은 그 괴기한 변신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끄트머리들은 제각각의 영혼이 있기라도 하듯이 사방으로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그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뭔가 제 몸에 스치기만 해도 몸뚱이 전체를 꽂아 버릴 것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더불어 이제는 암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것이 조금 더 떠올랐다. 용현은 재차 소년을 살피려 고개를 돌리려고 했으나 이제는 몸 자체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입으로 소년을 부를 수도 없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그의 눈에 수면 위로 온전히 떠오른 그것이 보였다. 물속에 가려져 있던 큰 구멍 같은 것이 약간은 대각선으로 두 개 있었다. 그때였다. 두 구멍에서 무언가가 뻗어 나왔다. 그것은 다리였다. 다만 살덩어리가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두 다리뼈였다. 움직이는 다리뼈는 뻗어 나오면서 큰 너울을 만들어 냈다. 때문에 용현과 소년이 탄 배는 어느 순간에는 거의 사십오 도까지 기울었는데 그럼에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정말로 그들이 배의 특징대로 ‘포기’하지 않은 까닭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직 몸이 풀리지 않은 용현은 바다 깊이만큼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일단 이렇게나마 무사하더라도 소년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전혀 알 수가 없는 탓이었다. 그는 괴물 경찰 앞에서 겪었던 상황이 생각났다. 용현은 그때처럼 겉몸 안에서 괴물 경찰 대신에 새로운 괴물을 쳐다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내 괴물은 몸뚱이의 방향을 조금 틀었다. 어렴풋이 반대편에 달린 다리 아니, 다리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제발, 제발⋯⋯. 용현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는 몸을 움직이려 발버둥 쳤다. 아무 소용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시도하려다가 겉몸마저 완전히 굳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보다 훨씬 큰 하나의 구멍에서 하늘을 향해 사선으로 뭔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용현은 원래 있던 구멍을 못 봤던 것인지 아직은 무엇인지 모를 저 역겨운 것이 나오기 위해서 구멍이 동시에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역겨운 것은 머리였다. 그것은 다리와 같이 살이 아예 없고 눈알도 이빨도 없는 뼈 덩어리였지만 벌어졌다 닫혔다 하는 턱뼈가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위협을 나타내고 있었다. 저 턱에 걸린다면 그 어떤 것이든 바다에 뿌려지는 유해처럼 가루가 될 것이었다.

  분명히 그것의 머리뼈에는 눈알이 달려 있지 않았으나 용현은 그 텅 빈 두 곳과 눈이 마주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다 괴물은 그들이 탄 배의 지척에 있었다. 눈이 마주친 괴물이 이제 그들을 으스러뜨리러 다가올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슈퍼 주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용현아, 현혹되지 마.

  그는 속몸이 꿈틀거리고 겉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곧장 오른손으로 레버의 버튼을 누르고 앞으로 끝까지 밀었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핸들을 꽉 쥐어 방향을 잡았다. 배는 조금 비틀거리다가 전속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소년은 턱을 딱딱 떨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무사해 보였다. 길동무-MAX가 여전히 지지직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달빛과 배 전등에 의지해야만 했으나 어떻게든 바다 괴물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핵심이었다. 용현은 소년만 다시 살필 뿐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속도 또한 줄이지 않았다. 수진호는 그저 앞으로만 달려갔다.

 

  그들이 탄 배는 여전히 지칠 줄 모르고 파도를 가르는 중이었다. 용현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뒤를 한 번 돌아볼 수 있었다. 바다 괴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었다.

  그는 한숨 돌리긴 했지만 길동무-MAX가 언제 다시 작동할지 몰랐고 따라서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은 계속해서 멀리 벗어나야만 했다. 이 방향이 소년의 아빠가 있는 곳과 조금이라도 더 가깝기를 바랄 뿐이었다.

  소년은 이제는 각성의 단계까지 훌쩍 넘어선 듯 보였다. 두 눈을 짓부릅뜬 채로 허리까지 꼿꼿이 펴고 앉아 있었다. 그런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용현에게 말했다.

  -아저씨, 길동무-MAX를 좀 깨워야 하지 않을까요? 저랑은 얘기를 안 하니까 제가 불러 봤자⋯⋯.

  용현은 ‘아리아’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길동무-MAX’를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는 굉장히 단순한 생각과 행동이라고 느꼈지만 정작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소년의 말대로 그것밖에 없었다.

  -기, 길동무-MAX? 아, 아니, 길동무-MAX 님?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용현의 맞은편에서 여태껏 지지직거리기만 하던 길동무-MAX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직거림이 점점 줄어들면서 본래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어쩌면 심각한 문제일지도 몰랐다. 지직거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얼굴의 주름처럼 남았으며 무엇보다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쉰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용현은 전방을 주시해야 했지만 길동무-MAX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어떤 힘을 몰아내려고 고군분투하는 듯했다. 잠시 뒤, 하나로 된 화면 상단 중앙에 목적지인 ‘빨간 점’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처음 봤던 것처럼 미칠 듯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검붉은 색이었다.

  목적지가 나왔음에도 길동무-MAX의 안내가 없었기에 용현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길동무-MAX 님이 도와주셔야죠,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아빠를 찾고 있어요. 그가 말하듯 중얼거리자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아⋯⋯녕하⋯⋯. ⋯⋯MAX예요. ⋯⋯적지를 마⋯⋯씀해⋯⋯.>

  그러면서 화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검붉은 목적지의 색이 또 옅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또다시 진해졌다. 소년의 아빠를 꼭 찾겠다고 재차 결심했을 때 나타난 슈퍼 주인이 업데이트해 준 ‘길동무-MAX’는 그 불쾌한 빨간색을 없애려 하고 있었다. 반면에 어떤 알 수 없는 힘은 빨간색을 검붉게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만약 그 힘이 아까 바다 괴물과 관계까지 있다면 길동무-MAX를 다시 먹통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용현은 수진호의 속도를 낮출 수 없었다. 길동무-MAX가 정상이라면 바다 괴물을 완전히 피하면서도 소년의 아빠가 있는 곳으로 어떻게 가는지 차분하게 물어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배는 앞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그런데 도무지 이유는 몰라도 바다 괴물은 다시 보이지 않았다.

  순간, 화면이 아닌 바다 저편에서 뭔가가 용현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화면에서 본 소년의 아빠가 있는 목적지이자 검붉게 이글거리는 점이었고 실제와 현실의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레버에서 손힘을 뺐다.

  용현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 빨간 것을 경계하거나 피해야 한다고도 인식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고 있었다. 게다가 저곳에는 소년의 아빠가 있었다. 마침내 찾아낸 것이었다. 또한 소년의 결정적인 한마디가 있었다.

  -아저씨.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그런데 있잖아요⋯⋯.

  용현은 소년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곧바로 레버를 앞으로 밀었다. 수진호는 재차 움직였다. 해냈어, 내가 찾아냈어!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용현은, 그리고 소년은 저편 해수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엇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 * *

 

  잠시 뒤 순식간에 검붉은 돌벽 내부 전체는 어부의 아내, 수진의 모습들로 가득 찼다. 그 수많은 모습들은 소년의 아빠의 옛 기억을 모조리 끄집어내고 있었다. 순간순간 아들의 모습도 나타났다가 찰나에 사라졌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사무치도록 괴로웠다.

 

  이거, 이거, 극적인 부부 상봉에 내가 도움이 좀 됐나?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이라 시간이 더 걸렸지 뭐야.

  아. 아들내미는 보너스였어. 감사 인사까진 안 해도 돼.

  근데 정말 이해가 안 가서 하는 말인데, 자식 낳는데 왜 목숨을 걸지?

  무엇보다 말이야. 도대체 당신은 뭘 한 거야?

  따지고 보면 결국 당신이 죽인 거나 마찬가지지. 솔직히 그렇잖아?

  귀한 아들놈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잘 돌봐 줄게. 거짓말 아니야, 진짜라고.

 

  그는 이제 더 이상은 참기가 힘들어졌다. 살아 견딜 이유건 뭐건 간에 모두 다 아까와 같은 생각 밑으로 묻혀 버렸다. 역겨운 용기가 차올라 왔다. 이번엔 무조건이야, 밑을 보지 마, 그렇게만 하면, 잠깐이면, 다 끝나. 소년의 아빠는 재차 난간에 올라섰다.

  그때, 느닷없이 검붉은 우물 안 환초호가 크게 너울거렸다. 그 탓에 소년의 아빠는 갑판으로 고꾸라졌다. 에메랄드빛 환초호 깊숙한 곳에서부터 어떤 소리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아내의 소리였지만, 웃는 소리는 아니었다. 비웃는 소리였다.

  이내 검붉은 돌벽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갈라지고 벌어져서 다시 정체 모를 괴기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소년의 아빠는 낚싯배 위에서 살아 있는 것도,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어떤 한 방향을 향해서 유난히 큰 물결이 계속 넘실거리고 있었다.

 

  용현의 시야가 큰 파도로 채워지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파도는 그와 소년을 그대로 집어삼킬 듯 보였다. 그는 어떤 본능적인 마음으로 자신 대신에 소년을 먼저 살폈지만 곧 체념이란 우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검붉고 굵으며 긴 산호들이 배를 둘러싸며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두족류의 촉수 형상을 띄기도 한 그것들은 일순간 용현과 소년이 탄 배를 휘감았다. 그러고는 즉시 파도를 가르면서 동쪽 어디론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용현과 소년은 모두 꼭 묶인 채로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용현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꿈같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 누군가는 용현의 아버지였다.

 

* * *

 

  소년의 아빠가 번쩍 눈을 떴다. 익숙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가 끌려온 모습 그대로 배 한 척이 괴물의 팔에 휘감겨 마치 날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레저용 요트인 듯했는데 조심도에는 없고 속초 시내 마리나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저런, 여기까진 올 일도 없을 텐데 어쩌다가⋯⋯. 소년의 아빠는 순간 자신의 처지를 잊은 채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타인에 대해 신경 쓸 일말의 여유가 없는 그였지만 그는 그랬다.

  이내 그 배가 아주 가까이 끌려왔을 때 소년의 아빠는 본능적으로 연민했던 이유를 깨닫기 시작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실루엣은 아들 같았고, 다시 봐도 아들임이 분명했고, 요트가 환초호에 내팽개쳐질 때 본 그 소년은 의심의 여지없이 아들 동준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들까지 살피는 나머지 한 사람이 있었다.

 

  용현과 소년 그리고 소년의 아빠. 그들 모두는 이제 동일한 공간에 있었다. 여전히 환초호 깊숙한 곳에서부터는 에메랄드빛이 솟구치고 있었고 누런 대형 물고기 떼가 그 빛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무엇보다, 환초호를 둘러싼 검붉고 굵으며 긴 산호, 때때로 크툴루의 촉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들이 여느 때보다 기괴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용현 앞에는 검붉은 꿈틀거림보다도 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분명히 고깃배에 타고 있는 그 어부는 소년의 아빠일 것이었다. 아무리 허허바다 한복판일지라도 다른 사람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현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였다.

  어설프게 흐릿한 형상이 위로 겹쳐 보이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게도 진짜 아버지였다. 조금 늙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왜, 여기서라는 의문을 가질 여유는 없었다. 용현의 머릿속에서 여태까지 아버지라는 존재를 애써 잊고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가진 채 산 기억이 사진첩을 빠르게 넘길 때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소년은 그런 용현 옆에서 그칠 줄 모르고 울고 있었다. 환초 괴물이 당장이라도 목숨을 빼앗을 것처럼 바로 곁에서 꿈틀댔지만 그는 줄곧 고깃배의 어부를 쳐다보면서 울고 있었다. 소년은 뭐라고 말하려는 듯했지만 쉽지 않은지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빠⋯⋯. 아빠!

  소년의 아빠는 멍하니 넋이 나간 채로 그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순간, 여러 가닥의 산호가 그들 머리 위를 쓸듯이 스쳐 지나가면서 끈적끈적한 액체를 역겨운 냄새와 함께 흩뜨렸다. 그리고 환초호 색깔도 에메랄드빛에서 누런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는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따가우면서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가야 해, 우리 전부가 안 되면, 동준과 저 청년만이라도. 소년의 아빠는 생각했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환초호 깊고 깊은 곳에서부터 조롱과 경멸로 가득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올라왔다. 이번엔 그 누구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역하고 불쾌한 그 소리는 본래 그것의 것일 수도 있었다.

 

  저런.

  저런. 저런.

  저런. 저런. 저런.

  이 쓸모없는 인간아.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선은 넘지 말아야지.

  기꺼이 우리 집에 초대했건만 그런 식이면 내가 서운하지 않겠어?

 

  용현은 대혼란이 자신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도무지 아버지일 수 없는 사람, 아버지이면 안 되는 사람이 아버지로 보여 불가항력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옆에 소년은 그 사람을 향해 ‘아빠’라고 외쳤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조심도에 들어온 뒤에 몇 차례 들었던 온몸을 굳게 만드는 그 불결한 목소리의 진짜 정체를 목격했으며 아버지, 어쨌든 아버지도 그것에게 옥죄이고 있었다. 나가야 해,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나가야 해. 용현이 속으로 되뇌는데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제 말 들리세요? 저기 우리 아빠라고요! 찾았어요! 역시 아저씨가 찾아 주실 줄 알았어요! 아빠!

  소년의 아빠는 아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아들을 온전히 느낄 수는 있었다. 또 청년에게는 이기적이게도 상황상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 됐든 아들을 바로 옆에서 지켜주고 있었기에 일단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방법은 못 찾고 있었다. 절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환초 괴물에 둘러싸인 채 아니, 삼켜진 채로 무언가를 하기에는 자신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였다. 스스로를 희생할 묘안과 용기 또한 깜깜한 어둠 속으로 시그러져 갔다. 그때 환초호가 거칠게 넘실거렸다. 그들 셋은 찰나에 누렸던 가짜 안정감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곧바로 검붉은 촉수 가닥들로 이루어진 군락 전체가 더 썩은 냄새를 내고 더 짙은 색깔을 띠기 시작했다.

 

  죽은 표현을 하나 빌리자면 말이야.

  정말 눈물 없인 못 봐줄 그런 엄청나게 감동스러운 장면이네.

  제목은 음⋯⋯ 재회? 그래, ‘재회’ 이거 좋네. 간결하고 함축적이고 말이야. 안 그래?

  괜한 짓은 하지 마. 그래 너. 너한테도 하는 말이야. 아무 소용도 없는 짓에 힘 뺄 필요는 없잖아.

  아무튼 순서는 이렇게 하려고 해.

  아들내미, 그다음엔 아비, 그다음엔 나머지 하나.

 

  누런빛의 환초호를 품은 검붉은 촉수 괴물이 소리를 이었다.

 

  그래. 궁금하겠지.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지금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인가, 꿈치고는 지랄 같게 생생하다.

  뭐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겠지.

  인간은 말이야. 정말 역겹도록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야.

  항상 난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있는데 언제나 제 스스로 올가미를 뒤집어쓰지.

  끊임없이 무언가에 현혹된다는 얘기야.

  그중에서도 당신들은, 유난히 불쾌한 냄새가 나. 메스꺼워.

  이런⋯⋯ 나도 주책이지. 쓸데없이 말이 너무 많았어.

 

  환초호가 누런빛으로 가득 찬 이유는 에메랄드빛이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른 것과는 달랐다. 곧 환초호 표면 전체에 크고 작은 기포가 생기면서 마치 용암이 끓는 것처럼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터진 기포는 이리 튀고 저리 튀어 제각각 뭉쳐서 어떤 형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사람 아니, 그것은 생선 대가리를 목 위에 단 채 아가미를 펄럭거리면서 양손을 수면 위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이어서 머리 생김새가 조금씩 다른 그것들이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만 나타나지는 않았다. 환초 괴물이 팔인지 다리인지 입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검붉은 산호를 환초호 위에서 마구 흔들자 또 다른 그것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네 개의 팔과 네 개의 다리를 꿈틀대면서 환초호로, 또 용현과 소년, 소년의 아빠가 탄 배 위로 떨어졌는데 온몸에 빨간색 고리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소년의 아빠는 하마터면 그것에게 깔릴 뻔했다.

  용현은 소년을 꼭 붙잡고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들을 주시하려 애쓰고 있었다. 소년의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용현과 소년이 탄 요트 선두와 선미에 빨간색 고리로 온몸을 치장한 그것들이 꼿꼿이 서 있었다. 모두 흰자위가 사라진 새카만 두 눈이 조금씩 조금씩 튀어나오는 중이었다. 갑자기 용현의 품에 안겨 있던 소년이 양손에 힘을 있는 힘껏 주면서 벌벌 떨기 시작했다. 용현이 뒤돌아보니 또 한 마리의 그것이 빨간색 고리를 반짝거리면서 머리통과 몸뚱이를 부풀리고 있었다.

  빨간색 고리 괴물을 피해 키잡이칸에 들어온 소년의 아빠는 자신이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키잡이칸이어도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끝내 없었고 중요한 사실은 그곳 천장 위에 있던 팔 넷-다리 넷 괴물이 키잡이칸을 감싸듯이 흐물거리면서 내려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아빠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음에도 가려지는 창문 사이사이로 요트 쪽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생선 대가리 괴물들이 아들과 청년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들은 입을 쩍쩍 벌리면서 몰려들고 있었는데 소년의 아빠는 본인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결단코 모르는 듯했다.

  용현과 소년은 이제 몇 겹의 괴물 무리에 완전히 둘러싸인 상황이었다. 어떤 초월적인 연결 고리로 한 몸으로 엮인 그것들은 무척이나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한편 소년은 아까부터 끊임없이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는데 그 소리가 지금에 와서는 못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커지는 중이었다.

  -흐리다, 흐리다, 흐리다⋯⋯.

  흐리다? 뭐가? 용현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소년과 대화를 나눌 상황은 아니었기에 속으로 생각했다. 소년은 멈췄다가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흐리다, 흐리다⋯⋯.

  그 소리를 끝으로 용현은 이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굳은 몸으로 빨간색 고리를 더 밝게, 더 반짝거리면서 시커먼 눈알을 부라리는 괴물과 생선 대가리에 육지의 맹수 이빨을 단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는 괴물, 그것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순간 소년의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깜빡했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순간이었지만 마치 하나의 생각을 공유한 것처럼 느껴졌다. 흐리다⋯⋯ 동준아, 혹시 저것들 윤곽 군데군데 희미한 부분을 말하는 거야? 용현은 지금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생각이라는 감각만은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소년의 아빠는 키잡이칸 안에 있었지만 밖에 있는 것과 차이가 전혀 없어 보였다. 밖을 조금이나마 살필 수 있었던 창문 사이사이는 이제 생선 대가리 괴물이 메꾸고 있었다. 잠시 뒤, 키잡이칸 창문들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소년의 아빠는 곧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깨져 버릴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리다. 흐리다.

  분명히 속삭이는 목소리였는데 키잡이칸 속이 울릴 정도로 들렸다. 아들의 목소리가 창문에 금을 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였다. 범위가 틈처럼 좁긴 해도 다시 창문 사이사이로 밖이 보이고 있었다. 괴물들의 윤곽에서 흐려진 부분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보통 새끼들은 귀여운 법인데 말이야.

  처음엔 인간 비린내가 안 나는 거 같더니, 이렇게 갑자기 뿜어내다니.

  역시. 새끼도 새끼 나름이지. 내가 착각했어.

  꼬마야. 이건 안개란다. 조금 짙게 끼었을 뿐이지.

  안개가 뭔지는 학교에서 배웠지? ‘조심초등학교’에서?

 

  환초 괴물이 울긋불긋하고 굵으며 긴 산호들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환초호도 넘실거렸다. 그러더니 제일 굵은 촉수를 대각선 위로 쭉 뻗었다가 아래로 내리꽂듯이 순식간에 움직여 소년의 아빠가 탄 낚싯배를 움켜쥐면서 들어 올렸다. 다른 괴물들은 떨어지지 않고 서로 엮여서 대롱대롱 달렸다. 그리고 원래라면 촉수를 환초호에 꽂을 때 큰 파도가 일어야 했지만 그 움직임이 워낙 빨랐기에 용현과 소년의 배는 조금 흔들리고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만 물이 찼다. 촉수 괴물은 제거 순서를 바꾼 것이었다. 소년의 아빠는 으깨지는 키잡이칸 안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용현은 빨간색 고리 괴물과 생선 대가리 괴물의 흐린 윤곽 부분을 인지한 뒤로 굳었던 몸은 조금 풀렸지만 곧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와 소년의 몸은 더 늘어난 팔과 다리들에 끈적한 액체와 함께 묶여 버렸고 코앞에는 있는 대로 입을 벌리고 역한 냄새를 내뱉는 생선 대가리들이 있었다.

  (아저씨. 역시 아빠는 괴물에 붙잡혀 있었을 뿐이었어요. 사라지려고 하신 게 아니었어요.)

  (동준아! 동준아!)

  순간 용현의 눈앞에 사막을 걷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엄마랑 나를,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고? 그저, 뭔가에 현혹돼 이런 괴물에 잡혀 있는 거라고? 내 말이 맞니, 동준아? 대답해 줄 수 있겠어? 말로든 생각으로든 상관없어. 아저씨랑 동준이는 연결돼 있는 게 틀림없으니까. 뭐든지 상관없어.

  문득 하늘에 아침이 다가오는 듯했고 용현은 자신과 소년을 옭아맨 그 힘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비록 역겹게 꾸물럭거리는 소리였지만 점점 주위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생선 대가리 입에서 맹수의 이빨 같았던 그 이빨들이 하나씩 하나씩 빠져 사라져 갔다. 요트 안으로 들어온 바닷물은 하얀 소금 결정으로 변해 바람에 날아갔다.

  소년의 아빠는 엎드린 자세로 있다가 점점 공중에 붕 뜬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그는 찌그러진 키잡이칸 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의아해할 뿐이었다.

  그와 낚싯배를 움켜쥔 환초 괴물의 대형 산호 가닥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팔이나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지는 것처럼 아래로 떨어지는데, 조금씩 굳어지면서 떨어졌기에 거의 반파되다시피 한 낚싯배는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형체를 유지한 모습으로 환초호에 내려앉았다. 빨간색 고리 괴물과 생선 대가리 괴물들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것과 같이 진작에 공중에서 날아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산호 가닥만 하얗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산호 가닥들이 이룬 군락 전체가 새하얗게 변했다.

  소년의 아빠는 몸을 뒤집어 누운 자세를 취하고 발 아래 쪽 으스러진 키잡이칸 창문의 남은 유리를 발로 차서 깨뜨렸다. 조금 긁히기는 했지만 그 구멍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환초호를 품었던, 이제는 하얗게 변해 전의를 상실한 것만 같은 산호 군락을 보았고 무사한 아들과 청년을 보았다. 아들은 청년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이 넓은 바다에서 뱃일하면서, 저세상 것인 듯한 게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었지만서도, 이게 다 무슨 일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로 모르겠고 믿기 힘들지만서도, 저놈은 내 아들이고, 아들 동준이는 곧 수진이고⋯⋯

  그래⋯⋯ 인생이라는 게, 입에 게거품 물면서 버티다가 또 버티다가, 가끔 만선같이 좋은 일이 생기면 즐기고, 어쩌다가 진짜 어쩌다가, 운이 지랄 맞게 좋으면,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기도 할 거고, 믿기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다면, 실컷 또 즐기고⋯⋯ 그래, 버틸 수 있잖아, 버틸 힘이 없지는 않잖아.

  그때였다. 새하얗게 변한 산호 군락의 형체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검붉었고 굵었으며 길었던 산호들이 흰색 가루가 되어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어느새 낮의 햇살을 뿌리는 해 덕분에 더욱 잘 보였다.

  용현은 그러나 그 장관을 넋 놓고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소년의 아빠가 탄 배가 심상치 않았는데 낚싯배는 가라앉는 중이었다. 그는 뱃사람답지 않게 무뎌진 채 서 있었다. 용현이 그에게 소리치려는 찰나, 소년이 외쳤다.

  -아빠!

  소년의 목소리는 동해 바다가 울릴 정도로 컸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몸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아 왔던 힘을 한꺼번에 분출하는 것처럼 그를 향해 외쳤다. 그는 다시 주위를 살피다가 용현과 소년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용현은 소년의 아빠를 보았다. 서랍 속 사진에서 봤던 소년의 아빠가 있었다. 그러나 용현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구명조끼가 있는 보관함으로 달려가다가⋯⋯ 옆에 걸린 주황색 튜브를 집어 들어 던졌다. 딱딱했지만 가벼웠던 튜브는 똑같은 색깔의 꼬리줄을 달고 소년의 아빠 방향으로 계속 날아갔다. 내가 힘준 것보다 훨씬 더 멀리 날아가네, 다행이야. 용현은 생각했다. 이상할 게 없다는 표정과 함께였다.

 

  마침내 그들이 한 공간에 모였다. 소년이 아빠와 다시 만난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용현도 잠시나마 아버지를 만난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년이 앞으로 절대 아빠를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매달려 있을 때 소년의 아빠와 용현은 어색한 눈인사만 반복해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조심도 사람 아니, 이 세계 어떤 사람도 믿지 못할 일을 겪은 뒤였다. 소년의 아빠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고, 고맙습니다. 일단은 이 말밖에는⋯⋯.

  -아니요, 아닙니다. 아버님. 동준이⋯⋯ 동준이가 다 한 거예요.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하다가 소년의 아빠는 지친 동준이를 팔로 안아서 들어 올리면서 우선 돌아가자고 말했고 용현도 동의했다. 출발하기 전에 소년의 아빠는 뱃사람이라서 그런지 요트 운전석 밑에 아예 살림집 하나가 있는지 대번에 알아서 이미 기절하다시피 뻗어 버린 소년을 침대로 보이는 곳에 눕혔다. 용현은 욕실 문에 걸린 큰 타월을 챙겨서 소년의 아빠에게 늦게나마 건넸다. 그는 살며시 웃었다.

  용현은 뱃사람 경력이 무척이나 짧아서 비교하자면 말단 선원급이었지만 나름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배를 몰아본 따끈한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요트 살림집에서 운전석으로 먼저 올라가 출발 준비를 하면서 소년의 아빠를 기다렸다. 내비게이션은 켜졌지만 길동무-MAX는 켜지지 않았다.

  소년의 아빠는 용현이 준 구명조끼를 입은 뒤에 본인이 운전을 하겠다고, 이런 괜찮은 요트를 꼭 한번 몰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용현은 자리를 비켜 주고 옆 좌석에 앉았는데 그 순간부터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어디로 돌아간다고? 아, 그래, 조심도⋯⋯ 맞아, 조심도로 돌아가야지, 여기는 동해 한복판이니까⋯⋯ 근데 나⋯⋯ 아버지를 만났어, 동준이 아빠도 만났지만, 분명히 내가 봤어, 잠깐이었지만⋯⋯ 아버지, 제가 깨달은 게 맞죠? 아버지도 동준이 아빠처럼 엄마랑 저를 버리려고 하지 않았죠? 지금 어디 계세요? 잡혀 있어요? 아버지, 이겨 내실 수 있어요. 저도 도울 방법만 있다면⋯⋯. 그리고 보고⋯⋯ 싶은 거 같아요, 아니, 보고 싶어요.

  소년의 아빠는 말이 없었다. 운전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용현의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또 이어졌다.

  동준이 아빠는 찾았지만, 낚싯배는 다 부서졌고, 이 배로는 어떻게 안 되나? 어휴, 정신 차려! 이 배는 반납해야지, 그 슈퍼 주인이 기다리잖아, 큰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근데 대여료는 얼마나⋯⋯.

  순간 용현은 생각을 멈췄다. 소년의 아빠가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겪은 일 말이에요. 아무도 믿지 않겠죠?

  -그렇겠죠. 그럴 거예요.

  -이제 동준이 데리고 진짜 열심히 살 겁니다. 반드시.

  제삼자가 듣기에는 그들의 대화에 빈틈이 많을 수 있었지만 용현과 소년의 아빠는 기묘하게 얽힌 짧은 대화만으로도 충분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굳이 그 이유를 파고들지 않았다.

  배는 끊임없이 바다를 가르며 달렸고 이제는 조심도가 더 확연히 드러났다. 그들은 현혹하는 괴물에게서 벗어나 곧 도착할 참이었다. 용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 멀리 소년의 아빠가 탔던 낚싯배와 비슷한 배들이 곳곳에 떠 있었고 초록빛을 뿜기도 했었던 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면, 나타난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수도 있었다.

  대신에 밀접한 위치에는 분명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느닷없이 요트 왼쪽에 파도가 일었다. 그러고는 점점 그 크기가 커져 갔다. 소년의 아빠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서 속도를 높였다. 설마, 아니겠지. 용현은 옆에서 생각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 그것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암석같이 생긴 바로 그것이었다. 소년의 아빠는 필사적으로 거리를 더 벌렸다. 곧바로 암석 앞쪽에서 대각선 위로 뭔가가 튀어 올랐다가 들어갔다.

  그것은 두 눈과 살점이 온전히 붙어 있는 바다거북의 머리였다. 그리고 암석 닮은 것은 암석이 아니라 거북의 등딱지인 셈이었으며 그 부분도 뒤따라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큰 파도가 얼마 동안 일다가 점차 줄어들었고, 잔잔한 파도와 합쳐졌다. 바다거북은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떠난 것이었다. 용현은 소년의 아빠를 진정시켰고 속력이 준 배에서 그들은 웬만한 작은 무인도만큼 큰 바다거북이 나타났다 사라진 쪽을 잠시 바라보았다. 소년의 아빠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감당도 못 할 좋은 일이 생기려 하길래⋯⋯.

  그때 용현은 머릿속에 조그맣게 남아 있던 바다 괴물의 기억을 떨쳐 내느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소년의 아빠는 배의 방향을 틀어 다시 등대가 있는 쪽으로 배를 몰았다. 용현이 가까스로 기억을 떨쳐 버리고 소년의 아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 때 요트는 방파제를 오른쪽에 끼고 돌아 항구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용현은 재차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다른 항구가 있었다. 조금은 크고 고즈넉한 처음 보는 항구가 있었다. 그는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소년의 아빠에게 말했다.

  -저기, 아버님. 혹시 있잖아요.

  -네?

  -여기에⋯⋯ 이 항구가 원래 있었어요?

  -그럼요. 여긴 북촌항이에요. 제일 가까워서 일단 여기로 왔어요. 그럼 남촌항에서 출발했었어요? 아니지, 이 배는 그러니까⋯⋯. 뭐 어쨌든, 빨리 땅 밟고 싶지 않아요?

  소년의 아빠는 역시 뱃사람이었다. 마치 요트 주인으로서 북촌항을 늘 드나드는 사람처럼 거리낌 없이 요트를 정박시켰다. 용현은 그저 먼저 내려서 결박 끈을 일차로 걸어 놓기만 하면 충분했다. 소년의 아빠가 결박을 완전히 끝내고 소년을 데리러 살림집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 용현은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선착장을 나섰다. 너무 달라진 ‘북촌항’을 빨리 살피고 싶었고 그래야 ‘슈퍼’도 잘 찾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대여료 정산 문제가 남아 있었다.

  용현은 갖가지 괴물과 마주쳤을 때 못지않게 놀랐다. ‘북촌낚시용품점’, ‘북촌항모텔’, ‘북촌횟집’ 그리고 여러 민가와 ‘조심25’를 포함한 편의점 몇 개⋯⋯. 그 슈퍼는 없었다. 그는 잠시 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일단 소년의 아빠와 소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용현이 배 앞에 도착했을 때 뭔지 모를 고요함이 있었다. 동준이 이놈, 제대로 뻗었구만, 하긴. 그가 생각하면서 배에 오르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냈다. 용현은 고개를 돌려 보았고 그 사람이 있었다. 슈퍼 주인이었다.

  -사장님!

  그 사람은 세상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사장님? 당신 뭐 하는 사람이니. 배 터는 좀도둑이야 뭐야. 내가 속초경찰서에 언니 동생 하는 사람이 열댓 명은 있는데 그중에서 끗발 있는 사람만 반이 넘는다 이거 아니야.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아니, 사장님. 저 기억 안 나세요? 꼬마 한 명이랑 왔었잖아요. 일행이 한 명 늘기는 했지만⋯⋯. 돈 받으셔야죠, 돈. 배 대여료.

  -이거 안타까워해야 하나? 단단히 미쳐 버렸네. 엔진 수리 때문에 며칠을 세워 놨는데 청년 양반이야말로 기억이 안 나는 거 아니니? 그리고 난 내 거 함부로 빌려주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건 나 혼자 타는 거라고.

  용현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 진짜 돌겠네! 사장님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여기 일행도 있다고요!

  그러자 언니 동생 하는 경찰이 열댓 명이나 있는 그 무시무시한 사람은 용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제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끗발 있는 사람을 당장이라도 부르겠다는 무언의 협박 제스처였다. 용현은 일단 피할 수밖에 없었다. 괴물 경찰은 오지 않겠지만 진짜 경찰이 올 수도 있었다.

  그는 북촌항을 돌아다니면서 소년과 소년의 아빠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항구 어디에도 없었다. 편의점이며 횟집이며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집 놔두고 모텔을 갈리도 없었다. 용현은 생각이나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지만 잘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을 계속 곱씹다 보니 자신이 무작정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아주 잠깐 배로 다시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해 봤지만 곧바로 접었다. 무서운 사람은 분명 아직도 보초를 서고 있을 것이었다. 또 생각해 보니 한때 사장이었던 그 사람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까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 용현이 패딩을 뒤져서 주머니에 처박혀 있던 휴대폰을 꺼냈다. 당연하게도 꺼져 있었다. 아마도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는 정신이 좀 드는 듯했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은 소년을 업고 정신없이 뛰다가 멈춰 선 뒤 등대를 발견한 곳 근처였다.

  엄마한테 연락을 해 봐야겠지, 아무 일은 없겠지만, 그래, 차를 저쪽 마을 끝 그 집 가까이에 세워 놨었지, 가만, 차 키가⋯⋯ 여기 있었네, 근데 그 집은⋯⋯ 아냐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다 사라졌잖아. 용현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면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듯한 거리를 걸었다. 정신없이 뛰어온 거리라서 그럴 수 있었다. 간간이 주택이나 가게가 보였다. 그러나 소년과 소년의 아빠가 사라진 것처럼 숨 쉬는 존재들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용현은 다시금 어머니의 안위에 대해 집중했다. 겨우 이것 하나로 생각을 모은 그였다.

  그는 조금 헤매긴 했지만 어느덧 외톨이 집을 찾았고 가까이에 서 있는 한때 수많은 음식을 실어 날랐던 배달차도 찾았다. 용현은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를 느껴 얼른 운전석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았다. 시동을 켜고, 휴대폰을 차량용 충전기에 꽂았다. 기다리는데 잠이 쏟아져 왔다. 그는 눈을 좀 붙이더라도 연락을 해 보고 붙여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누가 옆에서 알려 주기라도 했는지 잠결에 창문을 조금 열었다.

 

  용현이 화들짝 놀라면서 잠에서 깼다.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그는 악몽을 꿔서 깬 것 같기도 하고 빗소리 때문에 깬 것 같기도 하고 추워서 깬 것 같기도 했다. 뭐가 제일 정확한지는 잘 몰랐다. 용현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충전기에서 뽑아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아들. 메시지 답장은 안 해도 읽기는 했겠지? 성산 일출봉이랑 주상절리 사진을 몇 장 보냈는데. 아무튼 별일 없지? 잘 쉬고 있니?

  하루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들에서 벗어나 이제는 조심도를 떠나고 싶었다. 만에 하나 그 기묘한 경험들이 전부 가짜라고 밝혀지더라도, 그래서 다시는 소년과 소년의 아빠를 만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용현은 분명히 잠깐이나마 아버지와 재회했고 크기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왜 말을 안 해. 여보세요?

  -어. 엄마. 아니에요, 아니야. 나? 잘 있죠. 이제 집에 가려고.

  -벌써? 좀 더 쉬지 그러니. 뭐, 너 편한 대로 해.

  어머니와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은 용현은 창문을 닫고 히터를 켰다. 그러곤 낯선 기분에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하려는데 최근 목적지 ‘강원도 속초시 조심면 조심해안로 36번길 1’이 보였다. 그는 또 머리를 흔든 뒤에 ‘우리집’을 선택했다.

  용현이 탄 배달차는 조심도 해안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점점 거세지는 비를 뚫으면서 서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곧 사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해서 이 차선 다리를 건널 참이었다. 그것은 한참 동안은 다시 방문하지 않을 듯한 조심도를 떠난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거리에 다다랐을 때 저편에 큰 비석이 보였다. 거리도 있었고 비가 너무 많이 왔으며 우회전도 해야 했기에 더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鳥深島’라고 세로로 적혀 있을 것이었다. 용현은 벌써 몇 번째인지는 몰라도 또 머리를 흔들었다.

  이 차선 다리에 네 바퀴가 전부 닿았을 때 비는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주 천천히 직진해서 무사히 다리를 건너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조심도는 정말 끝까지 용현을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제는 폭풍우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의 시야에는 정말 코앞에 중앙선과 난간밖에 보이지 않았다. 순간 용현은 미시령 터널을 건넜을 때가 생각났다. 그래도 머리는 흔들 수 없었다. 살아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거북처럼 느린 속도로 이 정도까지 왔으면 속초를 아예 건너뛰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차에, 정면에서 큰 불빛이 한 번 번쩍였다. 용현도 반사적으로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거북보다 느리게 달리고 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용현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날에 저녁 어스름이 깔려 오는 도로를 달리는 중이었다. 그의 머리 위로 ‘인제’, ‘용대리’라고 적힌 표지판이 스쳐 지나갔다. 미시령 터널을 지났다고? 그는 깊은 한숨을 쉬고는 속도를 높였다. 이제 진짜 집에 가자, 상황 정리는 나중에 해야지, 아니, 하지 말자, 다 잊자, 다 잊어버리자. 용현은 주문을 외듯이 중얼거렸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운전하다 보니까,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까 어느덧 해는 지고 피로와 잠이 또 쏟아졌으며 결정적으로 배까지 고파 왔다. 마침 저 앞에 휴게소라고 알리는 듯한 표지판이 눈에 띄었고 내비게이션도 그렇게 알려 주었다. 용현은 오른쪽 깜빡이등을 켜고 휴게소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오른쪽 끝에 통감자 코너가 보였다. 그 전에도 한 가지 코너가 더 있었지만 그는 쳐다도 보지 않고 그곳으로 갔다. 통감자 코너의 직원이 아주 작은 감자 하나를 더 얹어 주고는 생색을 내면서 그에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그런데 머리에 그 흰 가루는 뭐예요? 공사판에서 오신 거 같진 않은데. 비듬은 아닌 거 같고. 아무튼 잔뜩 묻어 있어요. 한번 뒤돌아보세요. 세상에, 장난 아니네. 저기 가서 좀 털고 와요. 감자에 소금 대신 뿌려 드시겠어.”

  용현은 가벼운 실랑이 끝에 먼저 통감자를 받아 들었고 물을 사려다가 다시 화장실로 갔다. 정말로 흰색 가루가 잔뜩 있었다. 그는 털어 내지도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용현은 생각하느라 가루를 터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통감자도 화장실 세면대 위에 그대로 둔 채 나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터벅터벅 차로 걸어가는 동안 그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동준이랑 동준이 아빠⋯⋯ 조심도 토박이치고는 너무 사투리를 안 썼네. 근데 그거야 뭐⋯⋯ 어쨌든, 집으로 가자, 더 미치기 전에.

  그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바로 시동을 켰다. 그런데 손에서 비린내 섞인 바다 냄새가 났다. 용현은 짜증을 억누르면서 실내등을 켜고 보조석 앞 서랍을 열었다. 그의 기억에 그곳에 물티슈가 있었다. 열어 보니 기억대로 물티슈가 있긴 했는데 그 위에 뭔가가 놓여 있었다. 운전면허증과 똑같은 크기의 카드였다.

  ‘동력수상레저기구조종면허증’, ‘요트면허’

  이런 것들이 용현의 이름과 함께 카드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뒤에 포스트잇이 삐뚤빼뚤한 글씨와 연륜이 묻어난 글씨의 메모와 함께 붙어 있었다.

 

  <아저씨! 축하해요! 아저씨도 이제 뱃사람!>

  <용현 청년, 축하해요. 고마웠어요.>

 

  용현은 카드를 오랫동안 매만졌다. 진짜였다. 생일과 주소까지 정확하게 일치하는 그의 것이었다. 누가 메모를 썼는지 밝히지 않았어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용현은 눈물 대신에 웃음을 한 번 짓고는 집으로 다시 출발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때마다 ‘동력수상레저기구’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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