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이월 이십구일 이른 새벽, 용현은 좀처럼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와 단둘이 넓은 바닷가 모래사장을 걷는 중이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그리고 바람과 모래와 바다와 저 멀리 보이는 산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둘은 서로만을 의지하면서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용현은 그래도 옆에 어머니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하늘 위 누군가에게 감사했다.

  바람이 점점 더 거세어졌다. 용현은 처음에는 몰아치는 바람 탓에 모래가 마구 날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주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몸이, 팔과 다리가 모래로 변하면서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는 양손으로 어머니가 사라져 가는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어머니의 일부라도 붙잡기 위해서, 그렇게라도 한다면 마치 어머니를 되살릴 수 있는 것처럼 미친 듯이 오열하며 허우적댔다. 당연하게도 아무 소용 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바람에 실려 날아갔고 용현은 실성한 듯 한참을 모래사장 위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신음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다.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잠옷으로 입은 티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용현은 곧장 어머니 방으로 달려가 부숴 버릴 듯이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어머니가 말했다.

  “어휴, 깜짝이야. 현아. 무슨 일이니.”

  “아니에요. 아무것도⋯⋯. 나쁜 꿈을 좀 꿨어요. 죄송해요, 더 주무세요.”

  그는 얼른 문을 닫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온전한 모습으로 아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 단지 변한 점이 한 가지 있다면 그와 어머니가 십일 년하고도 삼 개월이라는 세월을 바친 조그만 식당을 어제부로 완전히 접었기에 당장 오늘부터는 정해진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하염없이 오르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사실 용현은 장소는 조금 더 외지지만 나름 목이 좋아 보이는 곳으로 이전할 데를 찾아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참에 조금이라도 쉬길 원했다. 그들은 정말로 거의 쉰 적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 느지막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계획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십여 년 동안 몸에 밴 기상 시간이 그들을 어김없이 깨운 것이었다. 둘은 늘 그랬듯이 비슷한 시간에 아침상을 차리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서로 별말이 없는 모습도 변함없었다. 빈 그릇을 개수대에 갖다 놓기 직전에 용현이 익숙함을 깨고 입을 열었다.

  “엄마. 우리 여행이나 갔다 올래요? 저기 속초 가서 바람 쐬고 하루 자고 오는 거지.”

  “난 생각 없다.”

  “왜요. 이럴 때 머리 식히고 좋잖아요. 기분 전환도 할 겸.”

  “넌 나하고 맨날 같이 붙어 있었으면서 지겹지도 않냐.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불러서 같이 갔다 와.”

  용현은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할 필요가 없어 어머니 대신 설거지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같이 갈 만한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홀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버스를 탈까도 생각했지만 출퇴근이나 배달할 때 항상 몰던 차로 다른 길을 달려보고 싶었다. 짐은 그냥 대충 쌌다. 짐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속옷 한 벌이 다였다. 날씨는 청량해서 꽤 추웠다. 그러나 그만큼 미세 먼지가 없어서 용현은 중간중간 창문을 열고 달렸다. 매서운 날씨에 미친 짓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미칠 듯이 개운했다.

  용현은 계속 고민하다가 고속 도로 대신 국도를 선택했다. 시간은 충분했고 어느 때고 좋은 풍경 앞에 멈추길 원했으며 또 그냥, 옛길로 가고 싶었다. 구부정한 길에서 천천히 지난날을 돌아보고 싶기도 했다.

  작은 휴게소에 들러 통감자를 사 먹고 아무도 감명 받지 않을 한 시골 마을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세웠다. 잠시 뒤 인제대교를 건너고 인제읍을 지나쳐 벗어날 때쯤 하늘이 조금 어두워졌다. 오늘 아침 기상 예보에는 강원도에 비가 내린다는 말은 일절 없었다. 그는 고개를 기웃거리면서 라디오를 틀어 뉴스를 하는 채널에 주파수를 맞췄다.

  마지막 뉴스가 끝나고 나온 기상 캐스터는 아주 발랄한 목소리로 다소 춥긴 하지만 맑은 지금의 이 날씨는 전국적으로 남은 오늘 내내 이어진다는 말로 예보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밖은 더 어두워졌다. 용현은 전조등을 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캐스터는 이제 지역별 날씨를 알리고 있었고 특별히 다른 내용은 없었다. 이내 그가 백담사 근처를 지나 미시령 터널 가까이 왔을 때는 밖이 불 꺼진 터널 안처럼 깜깜해졌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용현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두려움에 핸들을 잡은 두 손을 마구 떨기 시작했다. 차를 세워야 하나 생각했지만 적막만이 가득 차 있는 밖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았고 마땅히 세울 곳도 없어 보였다. 아까 켜둔 라디오 채널에서는 DJ가 청취자와 전화 연결을 해 농담을 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했다. 용현은 호흡을 가다듬고 밖을 다시 살폈다. 아까부터 이따금 보이던 도로 위 차는 그가 탄 차를 제외하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떨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굵은 땀을 흘렸다.

  그런 용현의 눈 바로 앞에 미시령 터널 입구가 나타났다. 그는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나 막상 터널 안으로 진입하자 용현은 뜻밖의 안정감을 느꼈다. 터널 내부 등이 그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잠깐 이러는 걸 거야, 속초 가서도 이상하면 고속 도로를 달려 얼른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이 빌어먹을 동네는 다신 오지 않을 거야.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혼잣말을 쏟아 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안정감은 순식간에 끝났다. 내부 등 모두가 점멸하면서 용현을 옥죄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가, 세찬 비가 미시령 터널 안에서 쏟아져 내렸다.

  용현은 실성한 사람처럼 깔깔대며 와이퍼를 최대로 작동시켰다. 배달차의 와이퍼는 요란한 소리만 낼 뿐 엄청난 양의 비를 걷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곧 빠져서 날아갈 듯 보였다. 그는 그 와중에 너무 웃어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맺혔다. 이제 용현의 시야는 전부 물로 채워졌다.

  내부 등이 켜졌다 꺼졌다 하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줄인 차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는 분명히 브레이크 페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배달차가 끝 모를 듯 속도를 높였다. 용현은 심각한 성격 장애를 가진 것처럼 이제는 욕을 내뱉으면서 있는 힘을 모두 끌어모아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전혀 먹히지 않았다.

  주위가 환해졌다. 내리는 비와 점멸하는 등불은 그 투명한 은빛 속에 묻혀 버렸다. 용현은 여전히 온몸을 뒤틀면서 페달을 밟고 있었다. 터널 안이 은빛으로 더 환해졌다. 그의 몸 전체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브레이크 페달을 더 이상 세게 밟을 수가 없었다.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그는 정신까지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자동차 앞 유리 너머 저 앞에서 어떤 형상이 보였다. 그 모습은 두 발로 걷는 사람이면서 네 발로 다니는 동물이기도 했고 일정한 형태가 없는 존재 같기도 했다. 용현은 몽롱세계에서 발버둥 치면서 핸들이라도 잡아, 핸들만은 놓치면 안 돼, 하고 스스로에게 외쳤다. 그러면서 그는 정신을 잃었다.

 

  빵- 빵- 용현은 뒤차가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대자 소스라치면서 깨어났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온몸을 더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살았다, 살았어, 나 안 죽었어. 빵빵빵빵- 덤프트럭 여남은 대가 뒤에서 위협하는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용현은 재차 소스라치면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룸 미러로 일 톤 트럭 한 대가 보였다.

  그는 반강제로 사거리에서 직진해 이 차선 다리 입구로 진입하고 있었다.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생각할 새도 없이 노란불이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넘어왔다. 일 톤 트럭은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오고 있었다. 용현은 거울로 보이는 거슬리는 뒤차에서 내비게이션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비게이션 화면 밑으로 속초해수욕장과 조도(鳥島)가 사라져 갔다. 명백히 용현은 이 차선 다리를 건너 어딘지 모를 섬 같은 곳으로 건너가는 중이었다. 그는 평소에 그렇게 헤매더니 이젠 완전 맛이 갔네, 하면서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다.

  용현은 미시령 터널 안에 비친 은빛이 무엇이었는지, 왜 기억이 싹둑 끊겨 있는지, 여긴 어떻게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천천히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장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자신의 크기보다 열 배가 넘는 경적 소리를 내는 트럭이 쫓아오고 있었다. 그 젠장맞을 트럭은 아무리 답답해도 중앙선은 침범하지 않는 교통 법규 절대 준수 차량이었다. 마침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도 없었다. 다리 위에는 둘뿐이었다. 용현은 자신에게 권한이 있다면 대한민국 모범 운전자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내 용현의 배달차가 이름 모를 섬에 닿고 소리만 십 톤짜리인 트럭이 바로 뒤를 이었다. 용현은 또다시 나타난 사거리까지 가지 않고 갓길에 차를 세웠다. 다신 보기 싫을 그 트럭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거리를 향해 달려갔다. 조수석 창문으로 슬쩍 보이는 모범 운전자는 목각상 같은 섬뜩함을 풍겼다.

  마침내 용현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생겼다. 저 앞에 사거리를 중심으로 근처에 몇몇 일 층짜리 가게들이 있었지만 사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들이나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없어서 주위까지 한산했다.

  그는 먼저 은빛 속으로 빨려드는 순간을 떠올렸다. 뚜렷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살아있잖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살아있으니까 된 거잖아, 집에 가야지, 당장 가야지, 다시는 이 동네 근처에도 안 올 거야. 용현은 기어를 바꾸고 고개를 들다가 내비게이션 화면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동해 바다 위에 떠 있지 않았다. 화면은 평소처럼 여기가 어디쯤인지를 지도상에 표시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실제와 같이 사거리 조금 못 미치는 곳에 서 있었다.

  휴대폰, 휴대폰 어딨지. 용현은 다시 기어를 바꾸고 조수석에 벗어둔 패딩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배터리가 얼마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지도 앱을 켰다. 내비게이션과 다를 바 없었다. 용현은 두 손가락을 몇 번이나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했다.

  -조심도? 조심도? 이런 데가 있어? 미친, 이제 내가 헛것을 보네. 아님 이것도 맛이 갔나.

  그는 지금 조심도(鳥深島)에 있었다. 조도와 조심도 사이에 놓인 이 차선 다리를 넘어 동해 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조심도에 와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육지와 조도 사이에 놓인 다리는 정신을 잃었을 때 어떻게든 건넜을 것이었다.

  용현은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어서 그는 점점 꿈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러 잠에서 깨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꿈이 아닌 자신 앞에 있는 현실이었다. 그때였다. 모래로 변해 날아가지 않은 현실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잘 도착했니. 여보세요?

  용현은 다시 한번 안심하면서 그제야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사과를 해야 했다.

  -미안해요, 엄마. 여태껏 내 생각만 하고 있었네. 별일 없죠?

  -별일이 왜 있어. 몇 시간 지났다고. 아무튼 잘 간 거야? 어디니 지금.

  그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속초에 조심도라는 데가 있어요?

  -넌 어쩜 그렇게 어릴 때 기억을 하나도 못 하냐. 네 아버지랑 셋이서 종종 갔잖아. 갈 때마다 그렇게 좋아해 놓고선.

  어머니의 대답을 들은 용현은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싶어졌다.

  -그 사람 얘긴 왜 또 해. 하지 마세요. 듣기 싫으니까. 아니, 엄마도 진짜⋯⋯.

  -그 사람이라니.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고 했잖아. 그런 마음은 너나 나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니까. 아니, 아니, 내가 이 얘기 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고. 나도 좀 쉬다 올게. 친구랑 제주도 가기로 했다. 한 삼일 있을까 싶네.

  -갑자기? 친구 누구?

  -말해도 모를 거야. 넌 모르는 애야.

  그러고는 어머니는 늦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용현은 농몽함과 현실감 사이를 헤매고 있었다. 갓길 옆으로 이번엔 진짜 덤프트럭이 쌩하고 지나갔다. 그가 탄 작은 배달차가 휘청거려 용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일단은 갓길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또다시 기어 변경을 하고 사거리 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찝찝하니까 일단 나갈까. 용현은 생각했다. 그가 사거리에 다다라서 유턴을 하려는데 떡하니 유턴 금지 팻말이 걸려 있었다. 팻말은 유난히 진하고 커 보였고 결정적으로 서북 방향에 경찰차가 한 대 숨어 있었다. 세수가 부족하다는 상부의 압박을 받은 모양이었다.

  용현은 직진한 다음 적당한 곳에서 차를 돌리려는 요량으로 말도 안 되게 긴 신호를 기다리다가 이번에는 동북 방향에 있는 큰 비석을 발견했다. 거의 이 미터는 돼 보였으며 ‘鳥深島’라고 한자로 적혀 있었다.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여긴 조심도겠지! 그가 중얼거리다가 소리쳤다.

  사계절이 지날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긴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신호가 바뀌었다. 용현은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동시에 흠칫 놀라며 경찰차 쪽을 바라봤는데 그것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엔진이 웽 소리를 내며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때, 비석 뒤에서 작은 실루엣이 튀어나왔다. 아이 같았다. 용현이 속도를 줄였다.

  그 아이는 난데없이 용현의 차 뒤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비록 이 차선 도로에 오가는 다른 차는 없었지만 엄연히 도로 한 차선 중앙을 사람이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용현은 비상등을 켜고 차를 오른쪽에 최대한 붙여서 세웠다. 그러고는 주위를 재차 살핀 뒤 차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는 태어나서 그렇게까지 달리는 것은 처음인 듯 보였다. 소년은 용현 앞에서 숨을 고르다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아저씨, 아저씨, 우리 아빠가 없어졌어요⋯⋯. 좀 찾아주세요⋯⋯.

 

  용현은 있는 힘껏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살포시나마 소년을 안아 주었다. 이상하거나 나쁜 짓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애는 아닌 것 같았다. 용현은 도로 한복판에 선 채로 소년을 달래줄 수가 없어서 그를 차에 태웠다. 소년은 조수석에 타자마자 혼자서 낑낑거리며 안전벨트를 채우려고 했다. 똘똘한 자식이네. 용현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을 거들었다.

  소년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계속 훌쩍였다. 용현은 막상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그저 잠시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 돼 보이는 소년은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넘겼고 볼살도 적잖이 탱탱했다. 옷차림새는 두툼한 보라색 맨투맨 티에 어린이의 전유물인 밝은 청색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하얀색 신발만은 낡고 때가 잔뜩 끼어 있었고 결정적으로,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다. 용현 자신도 차에 패딩을 벗어 두었기 때문에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었다. 용현은 소년이 혼자서 아빠를 찾아다니는 모습과 어딘가 조금 부족해 보이는 소년의 행색에서 그는 아빠 외에는 다른 가족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유추했다. 문득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별로 안 추워요. 그리고 어, 이 신발은요. 조금 까매져서 그렇지 우리 아빠가 속초 시내에서 제일 좋은 걸로 사준 거예요. 근데요, 아저씨.

  용현은 자유자재로 독심술을 구사하는 듯한 소년의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러다 점점 안 들리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아저씨!

  -어? 어, 어 그래. 저기⋯⋯. 뭐부터 하면 좋을까. 그래, 아저씨한테 더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겠어? 아. 그전에 너 이름이 뭐야?

  -제 이름은 이동준인데요. 아저씨 그런데 있잖아요. 경찰 아저씨가 우리 잡아갈 거 같아요.

  -왜?

  -저번에도 아빠랑 집에 가는데, 아빠가 갑자기 이거 깜빡깜빡하는 거 켜고 차 세워서 누구한테 전화하는데, 경찰 아저씨가 우리한테 와서 잡아가려고 했었거든요.

  -어, 어 그래⋯⋯. 알았어.

  용현은 닥치고 일단 출발했다. 뭐 좀 가다 보면 차 세울 데가 있겠지. 그는 생각했고 소년은 잠시 멈췄던 훌쩍거림을 재차 시작했다. 용현의 마음도 또 울렁거렸다. 어렸을 적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 두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돈 벌러 나갔다가 연락이 끊긴 아버지가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생각난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백여 미터 앞으로 공터인지 주차장인지 모를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다가갔을 때는 하늘색과 진한 하늘색이 어우러진 인테리어의 익숙한 편의점 하나가 넓은 주차장을 품고 서 있었다. 용현은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려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차가 한 대도 없어서 잠깐 세워 놔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주차장 끄트머리에 주차하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룸 미러와 사이드 미러로 가게 쪽을 바라보자 간판이 보였다. 간판에는 용현이 생각했던 그 이름이 없었다. 대신에 ‘조심25’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제기랄, 그래! 여긴 조심도다! 조심도야! 어쨌든 나는 얘만 어디든 데려다주고 당장 나간다!

  -아저씨. 혼자서 무슨 생각해요?

  -어? 아, 아냐. 자. 이제 누구도 못 잡아갈 안전한 곳에 차를 세웠으니까. 어떻게 된 건지, 아저씨가 어디로 데려다주면 좋을지 알려줄래?

  -아, 목마르다.

  -꼬마야.

  -꼬마 아니고 동준이요.

  -그래, 사랑스러운 동준아. 그냥 콜라가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싶다고 말해라. 네가 아저씨 여자친구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음⋯⋯. 이건 정말로 복잡한 메커니즘 아니, 그냥 복잡한 얘기라서 나중에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다. 그렇다고 안 좋은 얘기는 아니야. 다만 조금 어렵다고나 할까. 아무튼. 우선 동준이 얘기부터 해줄래?

  소년은 또다시 아빠 생각이 났는지 울상이 되었다. 막상 이야기하려니 불안한 듯 보였다. 용현은 아차, 목이 마르다고 했지. 생각이 났다. 그는 혼자 금방 편의점에 다녀오려다가 그렇게 하면 소년이 더 불안해 할 것 같았다. 조금 전 추측한 대로 소년은 여태껏 홀로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용현은 소년과 함께 편의점으로 걸어가면서 그의 손을 잡았다. 불필요한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 모습은 조심도에서 제일 어색해 보였다. 소년은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얼른 뿌리치고 성큼성큼 출입문으로 다가갔다.

  편의점 내부는 꽤 넓었지만 거드름 피는 사장인지 성실한 직원인지 모를 사람 한 명과 손님 한 명만이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오묘했다. 용현은 그 손님이 자신을 힐끔거린다고 느꼈다. 예, 예, 저 이방인 맞습니다, 곧 나갈 거니 볼일 보시죠. 그러면서 용현은 소년이 가리키는 음료를 꺼냈다. 콜라는 아니었다. 다행인지 육지에 파는 것들이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것도 하나 골라서 계산대로 향했다. 소년이 졸래졸래 따라왔다.

  여전히 사장인지 직원인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계산대 안쪽으로 들어가서 기계처럼 음료들의 바코드를 찍었다. 용현은 신용 카드를 건네면서 비닐봉지에 담아 달라고 말하려고 하다가 그 편의점 로봇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홍채가 유난히 짙었다. 얼핏 보면 동공과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용현이 흠칫하여 눈을 깜박였을 때는 원래 사람의 것처럼 돌아와 있었다. 결제 뒤 뺏듯이 카드를 받아 든 용현은 물건을 챙겨 소년을 데리고 서둘러 편의점을 나섰다. 그러고는 차로 뛰어들 듯이 달려갔다. 영문을 모르는 소년도 마찬가지였다.

  조수석으로 뛰어든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왜 갑자기 뛰었어요? 혼자서? 추워서 뛰었어요?

  -넌 못 봤어?

  -뭘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잠깐만⋯⋯. 내가 이 동네를 당연한 듯 여기고 있네?

  -아저씨, ‘여기고 있네’가 무슨 말이에요? 제 환타는 언제 주실 거예요?

  -후. 갑자기 질문을 왜 이렇게 많이 해. 자, 여기. 따 줘?

  용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에게 뚜껑을 연 음료를 건넸고 소년은 두 손으로 환타를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아빠가 보고 싶어요.

  젠장, 얘는 조울증이야 뭐야, 아무튼 빨리 해결하고 나가자. 용현은 생각했고 소년에게 다시 물어보려는 순간 소년이 말을 이었다.

  -우리 아빠는요. 여기 조심도에서 물고기 제일 많이 잡는 어분데요. 아빠가 그러는데 아빠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부였대요. 계속 조심도 일등 어부였대요. 근데 아빠가 배 타고 나갔는데⋯⋯. 집에 안 와요. 저는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가 집에 안 와요. 전화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아요.

  -그래, 그렇구나. 혹시 동준아. 이번엔 아빠가 일하러 나가셔서 평소보다 약간 더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 그래서 집에 조금 늦게 오시는 게 아닐까?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서 전화 연결도 안 됐고 말이야.

  용현은 소년을 안심시키고 싶었고, 때문에 타이르듯 말했으나 소년은 곧장 소리쳤다.

  -벌써 세 밤이나 지났다고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뭐? 삼 일이나 지났다고? 신고했어? 경찰한테 말이야. 112 알지. 몰라? 왜 몰라. 저번에 경찰이 아빠랑 너랑 잡아가려고 했었다며. 그래서 신고 안 했어? 이런 맙소사.

  용현은 순간적으로 상황에 몰입해 우는 소년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이 어릴 적 기억으로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만큼은 유독 힘이 든다고 느끼면서 그 기억을 밀어내려 애썼다. 그리고 곧 소년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소년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점점 더 크게 울고 있었다. 용현이 소년을 진정시키면서 말했다.

  -동준아, 놀랐어? 미안하다. 아저씨 목소리가 너무 컸지. 아저씨도 동준이 아빠가 걱정이 돼서 그랬어. 아마 아빠한테 다른 일은 없을 거야. 왜냐면 아저씨 감이 좋은 편이거든. 근데 동준아.

  소년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리기는 했지만 눈물과 콧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용현이 조수석 서랍에서 휴지를 꺼내 소년의 얼굴을 닦아 주려고 하자 소년이 휴지를 낚아챘다. 그러고는 스스로 눈물을 닦고 코를 팽 하고 풀었다. 용현이 멋쩍은 듯 말을 이었다.

  -근데 동준아. 그럼 너 여태껏 밥은 어떻게 먹었어. 옆집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챙겨 주신 거야? 그분들한테 아빠 얘기 안 했어?

  -옆집은 없는데요. 거긴 우리 집뿐인데. 근데 아저씨, 저 엄마 없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용현은 거기에 대해서는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이런 생각이 또 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얘는 몇 살이지, 112에 신고는 못 하면서 며칠을 혼자 보낼 수 있다고?

  -동준이 너 몇 살⋯⋯. 아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너 뭘 제대로 먹긴 한 거야? 밥부터 먹자.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줄게. 뭐 먹고 싶어. 그리고 밥 다 먹은 다음에 같이 경찰 아저씨한테 가서, 아빠 찾아 달라고 하는 거야. 어때.

  -아저씨는 못 찾아요?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경찰 아저씨가 전문가니까.

  -‘전문가’가 무슨 말이에요?

  -뭐 먹고 싶은지부터 말해 주면 알려 준다.

  -햄버거요. 햄버거 먹고 싶어요.

  -햄버거? 그거로 되겠어? 그럼 속초 시내로 나가야겠네. 이야, 잘됐다. 아니 그러니까 아저씨 말은 햄버거 먹으러 시내 나가면 큰 경찰서도 있으니까. 거기엔 여기보다 경찰 아저씨가 더 많이 있을 거 아냐. 아무튼 어서 가자.

  -아저씨.

  -왜. 뭐.

  -배고픈데 거기까지 가요? 조심도에도 햄버거 가게 있는데요. 아빠랑 가 본 적 있어요. 여기서 어떻게 가는진 잘 모르겠지만.

  왜, 여기에 햄버거 가게가 왜 있어, ‘조심킹’이나 ‘조심도날드’라도 있는 거야 뭐야. 용현은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휴대폰을 찾았다. 뒷좌석 패딩에 파묻혀 있었다. 아까 소년을 조수석에 태우면서 던져둔 것이었다. 그는 다시 못 미더운 내비게이션 쪽으로 고개를 돌린 뒤 패스트푸드로 검색을 했다. 정말로 섬 중심부에 ‘버거킹’ 가게가 있었다. 그 뒤로 ‘조심파출소’도 보였다. 용현은 이어 생각했다. 우리 동네에도 없는 버거킹이 이 조심도엔 왜 있냐고 대체. 그러고는 기가 막힌 웃음을 짓고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들이 탄 차가 출발하자 소년은 아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용현이 보기에 그의 표정이 살짝 풀리는 것 같았다.

 

* * *

 

  소년의 아빠가 있었다. 그는 아마도 동해 바다 어딘가인 듯한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배를 딛고 떠 있으면서 어떤 속삭임이 메아리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이면서 아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소년의 아빠는 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약해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빨리 배 전체를 휘감은 이 검붉고 굵으며 긴 산호 같은 것들을 벗겨 내고 혼자 있는 아들 곁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언젠가부터는 눈물만 흐를 뿐이었고 지금은 몸까지 서서히 굳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이유는 며칠 만에 검붉은 산호들의 색깔이 더 진해지고 굵어졌으며 움직임의 크기 또한 배로 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탄 배가 산호들에 감긴 채로 방향을 바꿔 물살을 크게 가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조심도에서 더욱 멀어지는 동쪽 방향이었다.

 

  소년의 아빠는 그날도 어김없이 바다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학을 맞은 아들을 집에 또 혼자 놔두고 나가려니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지만 일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곧 삼치 철이 끝날 참이었다. 그렇다고 아들놈을 데리고 갈 수도 없었는데 뱃멀미를 워낙 심하게 하는 탓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자신이 유일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뱃일을 앞으로 아들이 배울 수 있을지, 배우려고나 할지 걱정이 되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소년의 아빠는 이른 시간 만선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들이 좋아하는 햄버거를 먹으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내 그가 방향키를 잡은 배가 힘차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섬에서 꽤 떠나왔을 때 소년의 아빠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낚시 달린 줄을 푸른 바다에 던졌다. 낚싯바늘에 붙인 먹이는 은색 빛깔 멸치처럼 생기기만 한 가짜였지만 아들과 만선, 그 두 가지를 위하는 마음은 진짜였다. 이제 삼치들이 아빠의 진짜 마음을 읽고 가짜 멸치를 덥석 물어줄 차례였다.

  그러나 배가 동해 바다를 한참을 내달린 뒤에도 걸려든 삼치는 하나도 없었다. 소년의 아빠는 가끔씩 있는 일인데도 이상하게 오늘따라 더 큰 실망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실망감은 점점 커져 여러 생각들을 낳기 시작했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뱃일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부모님, 아내와의 만남, 동준의 탄생과 아내의 죽음, 순식간에 지나간 행복한 나날들, 외롭고 지쳐가는 자기 자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두운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은빛 아닌 누런빛을 내는 이름 모를 물고기 떼가 보였다. 색 바랜 물고기들은 수면에서 힘없이 흐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아빠 눈에는 아니었다. 저 앞으로 엄청난 양의 물고기 떼가 수면을 넘나들며 지나가는 중이었다. 수십 년의 어부 경력으로도 알아보기 힘든 어종이었지만 금빛 비늘들이 태양에 반사되어 빛나는 모습에 그는 사로잡혔다.

  소년의 아빠는 다시 낚싯줄을 던지고 쫓아갔다. 황금빛에 홀린 듯이 배의 속도를 계속 높이면서 쫓아갔다. 그러나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뒤쫓아도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마침내 겨우 물고기 떼 후미에 다다랐을 때 금빛 비늘 물고기는 없었다. 물고기 무리가 없었다. 그것은 한 덩어리였다. 곳곳이 파인 채 다 썩어가는 누런 몸뚱이를 억지로 꿈틀거리는 대형 물고기 한 마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소년의 아빠는 즉시 배를 멈추었다. 그렇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멈추기를 시도한 것밖에 안 됐다. 실질적으로는 어선의 배터리가 그 순간 방전되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그는 여전히 몽롱한 표정으로 작은 갑판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체 같은 물고기가 사라진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의 아빠가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기묘한 일은 연이어 나타났다. 어선 하단에 무엇인가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배 주위로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할 만한 틈을 주지 않고 푸른 바다 안 어딘가에서부터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예의 검붉고 굵으며 긴 산호 같은 그것들이었다.

 

  소년은 ‘버거킹 조심도점’에서 본인은 주니어인데도 불구하고 ‘와퍼 주니어’ 대신에 ‘콰트로 치즈 와퍼’에 또 치즈를 추가해서 먹었다. 작은 입을 도대체 몇 번을 움직이는지 용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보기만 해도 느끼해 보이는 것은 덤이었다.

  용현은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것도 당연할 것이 소년의 아빠는 지금 나흘째 소식이 없는 상태였다. 그가 소년으로부터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괜찮겠지, 사고 난 건 아닐 거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 사람처럼 도망⋯⋯ 아니, 아무튼, 이제 경찰에 신고만 하면 되는 거야. 라고 근거 없이 애써 생각했지만 햄버거를 한 입 두 입 베어먹을수록 불안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틀림없이 굶주리고 무서웠을 소년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온 식당이었는데 어느새 한기가 차오르는 듯한 공포의 장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용현은 소년을 데리고 그곳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빠져나왔다. 막상 나오고 보니 또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수많은 버거킹 가게 중 하나로 보였지만 용현은 소년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차에 올라타 파출소로 향했다.

  그들은 오 분도 채 안 되어 ‘조심파출소’에 도착했다. 조수석의 소년은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작은 몸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용현은 운전석에서 내려 뒷좌석에서 패딩을 꺼냈다. 그러고는 조수석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진작에 줄걸. 자, 동준아. 이거 입고 들어가자. 옷이 큰 거보다 냄새가 좀 나긴 하는데⋯⋯. 아무튼 추우니까 이거 입고 아저씨랑 같이 들어가는 거야.

  -저 하나도 안 추워요.

  -꼬마가 어디서 센 척이야. 센 척은. 벌벌 떨고 있으면서.

  -그냥 콜라를 너무 많이 마신 거예요. 아저씨.

  -야. 잔말 말고 아저씨 시키는 대로 해라.

  -네, 알겠습니다.

  용현은 한껏 찡그렸던 표정을 풀고 다시 나름 온화한 얼굴로 소년에게 옷을 입혀 주었다. 패딩 밑단이 땅바닥에 닿았다. 뭐, 상관없어. 용현은 생각했다. 소년은 꽤 야무지고 귀여운 녀석이었다. 용현이 이제 경찰 아저씨들만 믿으면 된다고 말하려는 찰나 파출소 정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유는 아까 느낀 한기와는 또 다른 차가움 때문이었는데 파출소의 파란 간판이 유독 검푸르러 보였다. 마치 기괴한 심해어가 사는 깊은 바다 같았다.

  하지만 당장 그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소년은 아빠를 찾아야 했고 용현은 그런 소년을 도와주려면 경찰에 잘 인계해야 했다. 용현은 소년의 손을 잡고 파출소 정문 바로 앞까지 걸어가서 몇 차례 숨을 고른 뒤 문을 열었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접수대가 파출소 중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용현과 소년이 서 있는 접수대 앞쪽 공간 왼쪽에는 여러 철제 캐비닛들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정수기와 원형 테이블이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을 둘러싼 네 개의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는데 접수대 뒤쪽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을 도와주면 되겠냐고 물어봐야 할 경찰마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쪽 끝 어딘가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복장 상태가 별로인 경찰 한 명이 나타났다. 그는 어슬렁거리면서 접수대를 향해 다가왔다. 도움을 줄 의지가 충만하지는 않은 듯했다. 경찰이 건성으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면서 말했다.

  -후. 이번엔 또 어떻게 오셨습니까.

  뭐지. 용현은 황당하고 짜증도 좀 났다. 기운이 쭉 빠지는 첫마디였다.

  -저 근데 또라니요. 여기 처음 온 건데⋯⋯.

  -아이고, 죄송합니다. 요 며칠째 하도 신고 접수가 많아서 제가 예민해졌는지 말실수를 했네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용현은 이 사람과 쓸데없는 말을 섞을 여유도 없을뿐더러 사과까지 받았기에 곧바로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소년도 사는 곳이라든지 이런저런 내용으로 옆에서 몇 마디 거들었다. 이런 일을 자주 접하는 직업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경찰은 팔짱을 낀 채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근데, 그쪽에도 민가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여기 온 지도 한참 됐는데 진짜 신기하네.

  소년이 아까부터 잡고 있던 용현의 손을 더 꽉 쥐었다. 용현은 건들거리는 경찰 때문에 이번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짜증이 솟구쳤다.

  -저기 경찰 아저씨.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요. 뭐 서류 같은 건 안 쓰는 거예요? 그냥 기다리면 돼요?

  경찰이 한 박자 쉬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이제 댁이든 어디든 돌아가시면 됩니다. 뭘 하실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아, 맞다. 혹시 서울로 바로 가시려거든 미시령 터널로는 가지 마세요. 또 물이 샐지 모르잖아요. 안 그래요?

  용현은 빠르게 굳어가는 겉몸을 그대로 느꼈다. 마치 얼어붙은 우주복이나 잠수복 안에서 속몸만을 꿈틀대는 것 같았다. 바깥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심장 뛰는 소리와 피가 도는 듯한 물줄기 소리만 들렸다. 냄새는 맡을 수 없었고 그저 공기가 들어오고 나간다는 느낌만 받았다. 턱과 혀와 입술이 굳어 버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우물거리기만 가능했는데 또 그것을 확인할 수도 없었다.

  다만 눈은 다른 양상이었다. 내부의 눈알이 움직이지는 않아도 외부를 즉, 앞을 볼 수는 있었다. 경찰은 그 앞에서 웃기 시작했다. 소리 없는 웃음이었다. 그리고 변하기 시작했다.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있었다. 곧 입은 제 얼굴을 모두 뒤덮을 듯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갔다. 그 안으로 뾰족한 이빨들이 위아래로 촘촘하게 박혀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벌린 입을 닫으면서 용현을 쳐다보았다. 눈썹과 눈꺼풀이 사라진 적막한 두 눈으로 용현을 노려보았다. 용현은 그 검은 두 눈이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른팔만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누가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용현은 그제야 자신이 소년의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이어서 약간의 두통이 생기면서 소리가 점점 들려왔다. 소년이 용현을 부르는 바깥 소리였다.

  -아저씨! 아저씨! 제 말 안 들려요? 아저씨!

  용현의 눈앞에 빛이 번쩍거렸고 덕분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의 겉몸과 속몸이 순식간에 하나로 합쳐졌다. 소년은 두 눈에 눈물을 가득 채운 채로 용현의 오른팔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있었다. 그는 곧바로 소년을 끌어안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접수대 너머를 보았다. 그것은 다시 경찰로 변해 있었다. 아까처럼 팔짱을 낀 채 경찰이 말했다.

  -아니, 그새 정이 많이 드셨나 보네. 이제 저희한테 맡기시고 걱정 말고 돌아가세요.

  -네? 아, 뭐⋯⋯. 그, 그러죠, 뭐. 근데 혹시⋯⋯ 펜 하나만 비, 빌릴 수 있을, 까요?

  용현은 공포에 떠는 자신을 티 내지 않으려고 온몸에 미칠 듯이 힘을 주면서 말했다. 경찰은 용현의 말을 듣고 묘한 표정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거기. 접수대 위에 있는 거 쓰세요. 다 세금인데 마음껏 쓰셔야지.

  용현은 접수대에서 펜을 집어 들다가 옆에 메모지도 발견했다. 원래는 되는대로 소년의 손바닥에 적어줄 참이었다. 메모지를 한 장 뜯으면서 경찰의 눈치를 봤다. 그 사람은 이미 뒤돌아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용현은 그 틈에 빠르게 한 줄 적은 뒤 소년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동준아, 이거 아저씨 전화번호야. 또 햄버거 먹고 싶으면 이 번호로 전화해. 알았지?

  그러나 메모지에는 어떤 번호도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짧은 문장 하나가 있었다.

  ‘경찰 아저씨, 저 아저씨한테 잠바 드리고 올게요!’

  용현은 소년과 눈을 마주치고 다시 한 번 경찰의 눈치를 본 다음 파출소 밖을 향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걸어 나갔다. 소년은 용현이 문을 열고 나간 뒤 메모지를 들지 않은 손으로 숫자 셋을 세고는 경찰이 있는 쪽으로 외쳤다.

  -경찰 아저씨, 저 아저씨한테 잠바 드리고 올게요!

  동준이가 왠지 다 알아들은 느낌인데. 용현은 차로 가면서 생각했다. 파출소 정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상하게 합이 잘 맞는 거 같단 말이야. 용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소년이 뛰어오고 있었다. 패딩으로 파출소 마당을 모조리 쓸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용현은 상황에 맞지 않게 살짝 웃음이 났다. 똘똘한 녀석이었다. 용현이 조수석 문을 열어 주자 소년은 곧장 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문을 닫고 용현도 서둘러 차에 올랐다.

  -이제 동준이 혼자 안전벨트 매 볼래? 아저씨랑 빨리 여기서 나가자.

  -네!

  그들이 탄 차가 파출소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파출소 좁은 입구 앞 도로 반대편 차선에서 빨간 경차 한 대가 파출소로 들어오려는지 왼쪽 방향 지시등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용현은 먼저 양보할 시간이 없었다. 그저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용현은 룸 미러로 뒤를 살폈다.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면서 쫓아올 줄 알았는데 따라오는 어떤 차도 없었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도 한 대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 제정신이 맞는 건가, 대체 언제부터 미쳐버린 거지, 조심도라니, 그 괴물은 뭐야, 얘는 어쩌냐고 이제, 근데 이동준이라, 얘는 진짜 맞아? 그는 머리가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한편 소년은 생애 처음인 것으로 보이는 나 홀로 안전벨트 착용을 마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말문을 열었다.

  -아저씨. 아저씨!

  -어? 어, 동준아. 왜. 왜 불렀어.

  -아저씨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용현이 보기에 소년은 전혀 겁을 먹은 구석이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동준아. 너도 봤을 거 아냐. 파출소 그 괴물 말이야. 무서워? 그냥 얘기하지 말까?

  -우리 아빠가 괴물 같은 건 없댔는데.

  -그 경찰이 입을 이렇게 벌리고 있었잖아. 후⋯⋯. 그 날카로운 이빨이랑 물고기 같은 눈알, 못 봤어?

  -그럼 파출소 경찰 아저씨가 괴물이에요? 근데 저는 못 봤는데. 그게 너무 높아서.

  소년은 정말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앞 유리창과 조수석 창문 밖 땅거미 지는 풍경을 번갈아 가면서 보려 애썼다. 그거라니, 접수대 말하는 건가, 진짜 미치겠네. 용현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소년에게 물었다.

  -동준아. 그러면 너 왜 아저씨 따라왔어. 원래 아빠가 안 돌아오실 땐, 아무튼 이럴 땐 경찰 아저씨 찾아가면 되는 거야. 동준이도 아저씨처럼 본 줄 알았지.

  -아저씨, 아저씨가 아빠 찾아주실 거잖아요! 근데요. 있잖아요. 궁금한 게 생겼는데 물어봐도 돼요?

  -⋯⋯뭔데 그래.

  소년은 뜸을 한참이나 들였다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우리 아빠가 저만 놔두고 다른 데로 가버린 건 아니겠죠? 그렇죠, 아저씨?

  운전대를 잡은 용현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다가 소년을 향해 잠깐 고개를 돌렸을 때는 가슴을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소년의 모습에 용현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작은 실루엣은 사라졌다.

  -당연하지. 동준이 아빠가 우리 동준이 놔두고 어딜 가시겠어. 아저씨가 아빠 찾아 줄게. 걱정 마.

  용현은 액셀러레이터를 더 세게 밟았다.

 

  소년이 오줌보가 터질 것 같다며 갑자기 난리를 치는 바람에 용현은 긴급 상황을 해결할 만한 장소를 찾다가 그냥 갓길에 차를 세웠다. 섬 중심부에서 벗어나서 그런지 주변에 뭐가 아무것도 없었고 인적 또한 없었다. 용현은 소년이 파출소 마당을 죄다 문지른 패딩에 오줌까지 묻혀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용현은 소년이 쉬를 할 때 여태 뒷좌석에 처박아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배터리가 거의 없었고 부재중 영상 전화와 사진이 첨부된 메시지 한 통이 각각 와 있었다. 어머니였다. 그는 메시지 알림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너 또 휴대폰 내팽개쳐 놨구나. 오늘 또 연락할 생각은 없었는데 성산 일출봉을 나만 보기가 너무 아까워서 사진 찍어 보낸다. 너도 거기서 잘⋯⋯.’

  메시지를 끝까지 읽지 못했는데 휴대폰 전원이 꺼지고 말았다. 용현은 상관없었다. 휴대폰 따위 다시 충전하면 그만이었다.

 

* * *

 

  소년의 아빠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날이 저물어도 멈추지 않고 동쪽을 향해 달려가는 배 위에 있었다. 갑판에서나 키잡이칸에서나 따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체념한 듯 조그마한 키잡이칸에서 나오려고 몸을 돌려 두 손으로 벽을 더듬어 짚고 한 발짝 걸음을 옮겼을 때 무언가가 발에 챘다. 만져 보니 휴대폰이었다. 아까 배가 크게 회전하면서 가방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는 무시했다. 배터리도 아예 없거니와 충전할 수도 없었고 어차피 이것들에 휘감긴 이후로 통신망이든 긴급 통신망이든 어떤 것과도 일체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VHF 통신 장비도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지금 소년의 아빠가 타고 있는 배는 그냥 맥없이 끌려가기만 하는 노마저도 없는 나무배와 같았다.

  그래서 어디로 데려가는 건데, 이렇게 친절하게 말이야, 이 괴물 새끼야, 날 그냥 죽여 버리지 그래. 소년의 아빠는 갑판 구석에 쪼그려 앉아 괴물의 팔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순간 팔에 근육이 솟듯이 그것들이 동시에 꿈틀거렸다. 그는 자신의 몸까지는 감기지 않았는데도 숨이 점점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숨통이 조이는 탓에 귀 기울일 정신은 없었다.

  소년의 아빠는 곧장 갑판에 널브러진 짐 중에서 중간 사이즈 생수 한 병을 집어 들 수 있었다. 그사이 두 눈이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탓이었다. 그는 벌컥벌컥 물을 마시다가 이제는 마실 물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생각나 들이켜는 행동을 멈췄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소년의 아빠는 다시 생수병을 입에 갖다 댔다.

  느닷없이, 그가 탄 배가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분명하게는 그 해저 괴물의 팔이 끌고 가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그는 되는대로 키잡이칸 앞에 붙은 철대를 있는 힘을 다해 붙잡았다. 혹시라도 놓치면 바다에 그대로 빠질 정도로 배는 요동쳤다. 아예 붕 떠서 날아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조금 뒤 소년의 아빠는 양팔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마치 두 팔 모두가 몸에서 떨어져 나간 듯했다. 그때 배는 여태껏 중에서 가장 높게 떠오르고 있었는데 그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살아 숨 쉬는 검붉고 굵으며 긴 산호 무리였다. 꿈틀거리는 그것들은 원 모양으로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흡사 산호초 중 환초와 닮은 모습이었다. 움직이는 환초였다.

  여기까지 소년의 아빠를 끌고 온 괴물의 팔인지 입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자신의 중심부에 그가 탄 배를 패대기쳤다. 다만 무슨 의도인지 전복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곳은 환초로 따지자면 가운데에 있는 환초호와 같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그의 눈이 아무리 어둠에 적응한 상태였어도 검붉은 색깔과 크툴루의 촉수 같이 생기기도 한 형태와 군락의 모습을 오롯이 목격한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그리고 지금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중심부가, 그러니까 환초호가 드넓은 검은 바닷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누군가가 안속 깊숙한 곳에서 조명을 비추는 것 같이 에메랄드빛을 내뿜고 있었다. 소년의 아빠는 환초 괴물이 휘감아서 가지 못했던 갑판 앞쪽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 그는 놀라서 그대로 고꾸라질 뻔했다. 그때 그 누런 대형 물고기가 떼를 지어 투명한 바닷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니라 틀림없는 물고기 떼였는데 여전히 썩은 몸뚱이를 흐느적대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몇 초간만이라도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캄캄한데 지금에야 이 빛을 느끼다니, 이 뻘겋고 누런 것들은 뭐냔 말이야, 이건 현실이 아니야, 미치도록 생생한 악몽인 거야. 그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 가고 있을 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울려 퍼졌다.

 

  모든 것은 현실이다.

 

  -뭐야. 누구야. 이런 개같은 짓을 하는 새끼가. 누구냐고! 이런 씨발 누구냐고!

  소년의 아빠는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그저 그 목소리가 다시 반복해서 울려 퍼질 뿐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소년이 난데없이 두 눈을 번쩍 뜨고 누군가의 말을 따라 하듯이 외쳤다.

  -누구냐고! 이런 씨발 누구냐고!

  용현은 소년의 찰진 욕지거리를 듣고 놀라서 급정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차선 도로에 그들만 있었기 망정이지 하마터면 곧장 천국으로 갈 뻔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선택권은 없으니 지옥행일지도 몰랐던 일이었다.

  -동준아!

  -아저씨.

  -그래, 아저씨야. 악몽을 꿨나 보네⋯⋯. 괜찮아?

  -아빠였어요. 아빠 목소리가 들렸어요. 쓰면 안 되는 나쁜 말이긴 하지만요. 아저씨도 들었죠? 그죠?

  자기 입으로 내뱉었는지는 모르고 있어, 진짜 아빠 목소리에 놀라 깬 줄 알고 있어. 용현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소년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정확하게 증명할 길은 없었지만 아무튼 그가 보기에 거짓은 아니었다. 용현은 다시 한번 그렇게 믿고 말했다.

  -아저씨는 운전하느라 잘 못 들었어. 그래도 중요한 건 아빠는 틀림없이 무사하시단 거야. 동준이가 들은 것처럼 말이야. 그저 약간 번거로운 사정이 있으신 거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쁜 말도 쓰신 거고. 그러니까 동준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아! 맞다! 무슨 파도 소리도 들렸는데?

  -일사천리네. 동준아. 꽉 잡아 붙들어 매라. 그 이상한 아저씨 집까지 엄청 달릴 거야.

  -‘일사천리’가 무슨 말이에요, 아저씨?

  -음⋯⋯. 곧 아빠를 만나게 된다는 뜻이야.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정말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거구나. 용현은 딴생각을 잠시 했다. 미약하게나마 여유가 생긴 탓일 수도 있었다. 음식을 실어 나르던 배달차는 점점 굉음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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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시간 전에 용현과 소년은 각자 볼일을 끝내고 갓길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용현은 휴대폰을 차량용 충전기에 연결했지만 그 뒤에 그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용현은 소년에게 아빠를 찾아주겠다고 자신 있게 내지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사실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교묘히 맴도는 것은 혼자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할 수 없을 것이다,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라는 생각들이었다. 따라서 휴대폰을 손에 쥔 지금 전원을 켜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전화를 해야 했다. 그는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다만 그중에는 반드시 제해야 할 곳이 있었다. 경찰서였다. 용현은 조심파출소에서 괴물로 변한 경찰을 똑똑히 보았다. 아냐, 그놈만 그런 걸 거야, 무슨 근거로 모두가 변한다고 할 수 있겠어. 그는 휴대폰 잠금 화면에서 긴급 전화 목록으로 바로 들어가 ‘경찰서(112)’를 눌렀다. 연결하겠느냐는 물음 앞에 용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또 무슨 근거로 그놈만 변한다고 할 수 있겠어, 경찰은 안 돼. 그는 스스로 재차 반문했다.

  그 바로 밑에 ‘화재구조구급(119)’이 보였으나 용현은 바로 넘어갔다. 이미 소용없다고 판단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위치가 어디죠”, “그곳 상황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따위의 질문을 받는다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답변을 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이런 게 있었구나! 용현은 눈치껏 잠자코 있는 소년이 알아채지 못하게 속으로 외쳤다. 호언장담한 것을 변명하는 일은 일단은 나중 일이었다. 어쩌면 아예 변명할 필요가 없게 될지도 몰랐다. 그가 본 것은 ‘해양재난신고(122)’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용현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도로에서 경광등을 밝히며 달리는 경찰차만 봤지 바다를 가르는 해양 경찰 경비함은 본 적이 없었다.

  일반 경찰과는 엄연히 다른 곳이지 않겠어? 용현은 약간은 합리화하는 태도로 122에 연결을 시도했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졌다. 그리고 계속 이어졌다. 긴급 전화임에도 어느 누구도 받지 않고 있었다. 빌어먹을, 전화 받으라고, 혼자선 자신 없단 말이야. 그가 생각하는데 순간, 무슨 소리가 들렸다. 수화기 저편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꼬마한테 잠바는 잘 받았어요? 밤인데 꼬마는 안 추우려나. 그리고 그 구닥다리 휴대폰은 버려야겠어. 신고 전화번호는 통합된 지 오래라고. 아무튼 그건 그렇고, 조심도 구경은 어찌 잘 하고 계신 건가? 아,

 

  아직도 그놈 아빤지 뭔지를 찾고 있나?

 

  용현은 그대로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귀가 먹먹했고 머리가 깨질 듯했으며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치 물이 귀에 잔뜩 들어갔다가 조금씩 빠지는 것처럼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두통은 가라앉았고 몸은 풀렸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부터는 누군가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소년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용현은 고개를 돌렸고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이지 않았는데도 소년에게서 어떤 형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사라진 그 형상의 정확한 모습을 복기하고 싶었지만 소년의 말에 그럴 수 없었다.

  -아저씨 많이 아파 보여요.

  -아냐. 이제 괜찮아.

  -아닌데요. 땀을 엄청 흘리시는데요. 진짜 아플 때 그러는 거 아니에요?

  -이까짓 땀이야 그냥 닦으면 그만이지. 아무튼 동준아, 아저씨가 작은 도움을 좀 받을까 해서 전화해 본 건데 별 쓸모가 없어 보이네. 역시 적임자는 아저씨뿐인 거 같다.

  소년은 두 눈을 될 수 있는 대로 동그랗게 뜨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을 짓더니 곧바로 물었다.

  -무슨 전화요? 아저씨, 근데 ‘적임자’가 무슨 말이에요?

  -응? 뭐 일단 적임자는 아빠를 찾아줄 사람이 바로 이 아저씨라는 말인데⋯⋯. 근데 무슨 전화라니?

  -네?

  바로 옆에 있었잖아, 네가. 용현은 나약한 모습을 혹시라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속으로만 삭이고는 소년의 볼을 꼬집어 보았다. 분명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소년의 탱글탱글한 볼살이 만져졌다. 소년은 모든 어린이가 그렇듯이 귀찮다며 필사적으로 뿌리쳤다.

  내가 진짜 미쳐버렸나 보다, 단 하루 만에, 이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용현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지, 그래, 이 조심도에서, 애 아빠를 찾아주기로 했지, 잠깐, 아빠라고, 그런 사람을 왜 찾는 건데, 원래 아빠니 아버지니 하는 놈들은, 놈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어쨌든 그놈들은, 죄다 지 앞가림하는 데만 급급하단 말이야, 어떤 놈은 글쎄, 사우디아라비아라고 왜 중동에 있는 나라 있잖아, 거기에서 돈 벌어 온다고 하고는 의기양양하게 떠났는데, 사라졌어, 왠지 어딘가에서 살아는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개뻥치고 혼자 튄 거지, 그러니까 의기양양이 무슨 말이냐면⋯⋯. 그러다가 용현은 최면에서 벗어나듯이 깼다. 소년이 있었다.

  -동준아. 아저씨가 생각해 보니까 여태까지 아저씨 입장에서 주로 본 거 같은데⋯⋯. 아빠가 도망, 아니 아니 그러니까 아저씨 말은 혹시 아빠가 일을 다 보시고 늦게나마 지금 집으로 돌아오시진 않았을까? 넌 어떻게 생각해. 집으로 가볼까? 먼저 전화부터 해볼까?

  용현은 소년이 눌러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집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용현이 우물쭈물하자 콧구멍을 벌렁거리던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아빠는 집에 없어요.

  -집에 계시는데 전화를 못 받으셨을 수도 있잖아.

  -전화랑은 상관없어요.

  -무슨 소리야?

  -어, 아빠가 집에 있으면 제가 밖에서 모래성 만들면서 놀고 있어도 노래 부르면서 놀고 있어도 항상 아빠 냄새가 났거든요. 근데 지금은 아무 냄새도 안 나요. 그러니까 아빠는 아직 집에 안 왔어요.

  -음⋯⋯.

  용현은 이성적인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다시 소년에게 물었다.

  -그래. 일단 알겠고. 동준아, 그럼 말이야. 아빠가 어디 계실지 알 만한 사람 없어? 친구라든가.

  소년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 그 이상한 아저씨. 안경 쓴 어부 아저씨. 가끔 우리 집에 오는 이상한 아저씨 한 명 있어요. 요샌 잘 안 왔지만.

  -이상해? 어디가 이상한데 그래.

  -⋯⋯.

  -뭐야. 그냥 그 안경 쓴 아저씨가 싫은 거네.

  -네, 맞아요. 그 아저씨 싫어요. 아빠랑 영화 보고 있을 때마다 쳐들어온단 말이에요.

  -그래. 그것도 일단 알겠고. 아무튼 그 아저씨한테 가 보자. 뭘 알고 있을지도 몰라. 먼저 전화부터⋯⋯.

  당황한 표정의 용현과 내키지 않는 표정의 소년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용현이 말했다.

  -혹시, 너 아니? 안경 쓴 아저씨 전화번호나 집 주소 같은 거 말이야.

  소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어찌 됐든 동준이 집부터 가 봐야겠네. 집으로 가는 길은 대충 알겠지? 아빠 방에 가면 그 아저씨 번호나 뭐 그런 걸 찾을 수 있을 거야. 간 김에 너 옷도 좀 챙기고⋯⋯. 세상에. 지금이 몇 시야. 너 배 안 고파?

  -배 엄청 고픈데요. 아저씨 이번에 아빠 연습 제대로 하시네요.

  용현은 소년에게 처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 다시 생각났다.

  -근데 동준아. 너 몇 살이야?

  -음, 비밀이에요.

  -비밀 같은 소리⋯⋯.

  용현이 대꾸하는 그 순간 그들이 탄 배달차가 크게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용현은 누르고 있던 브레이크 페달을 놓칠 뻔했다. 놀란 그는 곧바로 기어를 주차 모드로 바꿨다. 후, 뭐야 저 새끼, 진짜 부딪칠 뻔했어. 그는 생각했다. 용현과 소년이 향하는 방향 저 앞쪽으로 사라지는 차가 보였다. 제법 큰 승합차 같았다. 하지만 이 와중에 소년은 덤덤한 모습이었다. 졸린 것 같기도 했다. 소년이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려 애쓰면서 입을 열었다.

  -강원도 속초시 조심면 조심해안로 36번길 1. 우리 집 주소에요, 아저씨.

  -똘똘하다, 똘똘해. 그래. 한숨 자라. 진작에 내비 찍을걸. 아무리 집 가는 길이래도 날도 어둡고 키 땜에 앞도 잘 안 보이는 너한테 길을 물어보려 했었다니, 내 잘못이다. 가만. 30 몇 번 길 몇이라고?

  용현이 고개를 돌렸을 때 소년은 이미 입을 벌리고 졸고 있었다. 그 벌린 입에서 36번길 1이요, 아저씨. 라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용현은 들리는 대로 나머지 주소를 입력하면서 뭔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그에게는 종종 낯익은 길에서는 내비게이션이 아예 없다시피 하는 것처럼 무시하는 버릇이 있었다. 남들이 익숙한 길에서 그냥 주소를 찍지 않는 것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또 그는 ‘조심면 조심해안로 36번길 1’이라는 주소에 덤덤해하고 있었다.

  용현은 섬 가장자리에 나 있는 해안 도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내려갔다. 저 너머로 보이는 바다에는 이미 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가 보기에 달빛에 비친 바다 색깔은 검붉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내 내비게이션이 백 미터 전방에서 좌회전하라고 알려 주었다. 용현이 좌회전해서 진입한 길은 비포장도로였는데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그 길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잠든 소년과 함께 울퉁불퉁한 길 위를 오 분여간 달렸다. 길 양쪽으로는 나무가 빽빽이 우거져 있어 다른 곳보다 더욱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았다. 간간이 보이는 나무 사이사이마저 적막으로 채워지는 중인 듯했다. 곧 나무 중에서도 유난히 둘레가 큰 나무가 몇 그루 나타났고 그 사이와 뒤로 36번길에서 유일한 건물 ‘1’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년과 소년의 아빠가 사는 집이 있었다. 용현은 집을 둘러싼 낮은 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들의 집을 바라보았다. 불 꺼진 채였다. 그는 평범한 해안가 시골 주택에서 어떤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 갑자기 소년도 차에서 내리더니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담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나무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뭘 밟고 올라서서 손을 뻗어 무언가에 갖다 댔다.

  그러자 아빠와 아들의 공간 일대가 노란빛으로 환해졌다. 소년이 몸통 전체가 녹이 슬어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변한 가로등을 밝힌 것이었다. 소년은 밟고 올라선 우유 박스에서 내려와 용현에게 다가왔다.

  -제 말이 맞죠? 아빠가 먼저 왔으면 불을 켜놨을 텐데 꺼져 있었잖아요.

  -너 언제 깼냐.

  -차가 흔들흔들거리면 집에 다 왔다는 뜻이거든요.

  -알겠고. 빨리 들어가서 그 아저씨 연락처나 주소 같은 거 찾아봐야 하니까 아저씨 안내 좀 해 줘. 아 참, 너 그 안경 쓴 아저씨 성함이 뭔지 알아? 이름 말이야.

  -음⋯⋯. 아빠가 맨날 병호야, 병호야, 이랬는데.

  그리고 소년은 앞장섰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또 머리를 긁적였다.

  -왜 동준아. 뭐 잘못됐어?

  -그게 아니라요⋯⋯. 아빠 배는 계속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차도 없어졌어요.

  이 아저씨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자기 아들내미 놔두고 어딜 갔느냐 말이야, 배 타고 나가서는 들어오지도 않았으면서, 또 차는 어떻게 타고 나간 거냔 말이야, 결국 아들 버리고 도망간 건가, 혼자 키우기가 겁나 빡셌던 모양이지? 용현이 생각하면서 소년을 따라 집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소년이 돌아서면서 입을 열었다.

  -그냥 아빠는 일 나갔다가 아직 안 온 거고, 그 차는 못된 도둑놈이 가져간 거겠죠? 그렇죠, 아저씨?

  소년은 안심하는 투로 말했지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용현이 대답했다.

  -낮에도 말했듯이 아저씨 감이 굉장히 좋은 편이거든. 그러니까 동준이 말이 맞을 거야.

  집 안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저 아까처럼 어떤 오묘한 감정만 들 뿐이었다. 소년은 착한 어린이처럼 화장실로 곧장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그러더니 용현에게 밖에서 들어오면 손을 꼭 씻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한 뒤, 자기는 자기 방에서 찾아볼 테니 아저씨는 아빠 방에서 찾아보라고 수사 지시를 내리고 본인 방으로 들어갔다. 용현은 소년이 뭘 찾아야 할지를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이리저리 따질 여유까지는 없었다.

  병호, 병호⋯⋯. 용현은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가구 배치에 살짝 안정감을 느끼면서 소년의 아빠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장과 책장과 책상 그리고 각각에 딸린 서랍까지 모두를 한참 동안 뒤척거렸다. 원하는 것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낚싯배에 올라탄 소년의 아빠 사진을 발견했다. 용현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끼다가 도로 집어넣고 소년의 방 쪽으로 향했다.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세상 피곤한 듯 코 고는 소리였다. 용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삐거덕했지만 다행히 소년의 단잠을 깨우지는 않았다.

  소년이 누운 침대 오른편에는 오크색 책상과 그것에 딸린 똑같은 색의 의자와 책장이 있었는데 모두 깨끗이 정돈된 상태였다. 특히 책상 위가 깔끔했다. 그러나 용현은 정돈된 전체 모습 속에서 한 가지 튀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책상 밑에 떨어져 있는 편지 봉투였다. 용현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찝찝한 느낌이 들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곧장 그 봉투를 집어 들어 살펴보았다. 병호! 보내는 사람이 ‘우병호’라고 적혀 있었다. 주소도 함께였다. 그는 일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방금 ‘병호’라는 이름을 확인했을 때 소년이 깨지 않을 정도로만 놀란 것이 그 시작이었다. 용현은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소년을 잠깐 쳐다봤다가 불을 끄고 일단 방에서 나왔다. 아무리 아빠를 찾아 준대도 어린 애를 야밤에 데리고 다닐 순 없는 노릇이었다.

  용현이 사진에서 소년의 아빠 얼굴을 보았고 이유 모르게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기도 했기에 혼자 가기로 마음먹고 뭐라고 메모를 남길까, 문단속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소년의 방문이 열렸다.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저도 같이 갈 건데요?

  놀라라, 지금은 좀 무섭기까지 했어. 용현은 생각했다.

  -동준이 너 있잖아. 독심술이라고 들어 봤어? 그게 뭔지 알아?

  -잘 모르겠는데요. 근데 그 안경 쓴 이상한 아저씨한테 빨리 가야 한다는 건 알 거 같아요.

  -그, 그래⋯⋯. 그럼 네 옷부터 챙기자. 밖에 춥잖아.

  -근데요, 아저씨. 주소는 어디서 찾았어요? 전화번호랑 다 있어요?

  이젠 괴물 경찰보다 네가 더 무서울 지경이다. 용현은 또 생각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건 가면서 말해줄 거고. 뭘 좀 먹어야 하니까, 먹을 것도 좀 챙겨야겠다. 아니지. 집에 있는 걸 건드릴 게 아니라 가면서 좀 사야⋯⋯.

  소년이 한심하다는 듯 용현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밤늦게 먹는 건 안 좋은 거라고 배웠는데요.

  용현은 소년과 함께 옷가지를 챙기고 집을 나서서 차에 올라타는 순간까지 소년의 뒤통수에 꿀밤을 더도 말고 딱 한 대만, 날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다행히도 참아 냈다. 그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할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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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차의 굉음에 힘이 빠질 때쯤이었다. 안경 쓴 어부 그러니까, 이상한 아저씨의 큰 집은 섬 북서쪽 한 마을 끝에 있었다. 아니, 사실상 끝 너머에 외톨이처럼 있었기 때문에 그 마을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정도였다. 덕분에 용현과 소년이 찾기에는 쉬웠다.

  용현은 각성한 듯 정신이 말똥말똥해 보이는 소년을 데리고 목재 담장 문 앞으로 가서 세차게 두들겼다. 그러면서 아무도 안 계시느냐고 외쳤다. 담 너머 똑같이 목재로 된 집 안은 켜진 불빛 하나 없어 보였다. 그는 다시금 소리쳤다. 그때, 집 중간쯤 되는 곳에서 희미한 불빛이 나타났고 마당 가로등에도 불이 켜졌다. 그 때문에 용현의 눈에 주택 외관 모습이 더 잘 들어왔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푸른 이끼가 온 집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오랜 세월 있다가 막 건져 올려진 듯한 모습이었다.

  용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눈도 몇 번이나 깜박거렸다. 그러자 푸른 넝쿨로 뒤덮인 집의 실제 모습이 드러났다. 그래도 먼저 본 이끼 덮인 집의 잔상만큼은 그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이내 현관문이 열리고 안경 쓴 어부가 나왔다. 키가 매우 컸다. 그는 큰 보폭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금세 목재 담장 앞으로 왔다. 그가 소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담장 문을 열면서 말했다.

  -동준아! 이 시간에 무슨 일이니? 여긴 어떻게 왔어. 이 아저씨는 누구야?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어부의 말투에는 지역 억양이 짙게 배어 있었다. 용현은 자신은 그저 속초에 바람 쐬러 왔다가 조심도까지 오게 됐는데 섬 입구 쪽에서 동현이를 만났고 아빠가 며칠째 집에 안 들어오신다길래 친구분께 도움을 좀 받고자 이렇게 찾아뵈었다고, 밤늦게 죄송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일단 온종일 겪은 기묘한 일이나 현상들을 빼고 말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이야기에 빈틈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엘 안 들어왔다고? 진짜 가지가지 하네. 아들내미 혼자 집에 있는데. 안 그래요? 그건 그렇고, 아놔⋯⋯. 이거 내 돈 다 날리는 거 아냐?

  -네? 돈이요?

  -아. 그런 게 있어. 근데 말이에요, 서울 아저씨. 나한테 올 게 아니라 경찰서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겨우 잊고 있었던 괴물 경찰의 그 입이 용현의 눈앞에 다시 떠올랐다. 그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는데 안경 쓴 어부의 아내로 보이는 사람이 두툼한 겉옷을 걸친 채 열린 담장 문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용현은 소년의 눈치를 슬쩍 한 번 본 뒤에 안경 쓴 어부를 향해 입을 열고 얼버무렸다.

  -그, 그게⋯⋯. 뭐, 경찰서 가서 실종 접수는 했죠. 당연히. 근데 뭐 어쩌란 설명이 하나도 없고 해서⋯⋯.

  어부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려고 할 때 어느덧 그들 앞에 다다른 어부의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 아저씨한테 돈 받았어?

  -아직. 그래도 내용 증명은 보냈지.

  뭐야, 이 양아치 새끼들은, 그럼 이 봉투 안에 내용 증명서가 든 거야? 아니⋯⋯ 용현은 속이 불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애써 침착하기를 시도하면서 말했다.

  -아니⋯⋯ 무슨 사정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람이 없어졌다니까요? 빨리 찾아야 한다고요.

  어부와 그의 아내가 동시에 용현과 소년을 차례대로 쏘아보았다.

  -둘이 무슨 관계?

  짧디짧은 어부의 아내의 말에 용현이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그러자 어부도 똑같이 했고 아내를 자신의 뒤쪽으로 보내면서 그에게 말했다.

  -아무튼 그래서, 절친한 친구인 내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용현은 불현듯 어릴 적에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부의 표정과 말투 그리고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모습까지 그때 그 사람과 굉장히 닮아 있었다. 그러나 표정을 더욱 일그러트린다거나 흥분하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는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할 참이기 때문이었다. 일일이 모두를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터였다.

  -동준이 아빠는⋯⋯. 사, 살아 계세요.

  -왜 이러니, 이 아저씨가. 없어진 인간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 뭐 또 표정은 왜 이렇게 진지해?

  -그리고⋯⋯. 바다에 묶여 계세요. 아마도 표류 중이신 게 아닐까⋯⋯. 배가 필요해요.

  어부는 용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부터 세상 비웃듯이 껄껄거리다가 곧바로 정색한 채로 용현을 한 번 쳐다보고 난 다음에 소년에게 말했다. 그의 아내는 여전히 뒤에 멀찌감치 서 있었는데 굳은 표정은 매한가지였다.

  -동준아. 지금이라도 아저씨한테 와서 얼마나 다행이야. 이 아저씨는 완전 미친 아저씨네. 너한테 무슨 이상한 짓 안 했니?

  소년은 한쪽 팔로 용현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그러고는 안경 쓴 어부를 향해서 있는 힘껏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거부감을 최대로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돈 떼먹는 놈 자식새끼지. 어르고 달래 봐야 내 입만 아프지 뭐. 제기랄, 내일부터 떼인 돈 어떻게 받을지 알아보게 생겼네. 그리고 당신,

 

  아직도 내 도움이 필요하나?

 

  순간 용현은 시야가 뿌예지는 것을 느꼈다. 숨도 점차 막혀 왔다. 마치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듯했다. 물고기를 낚는다던 안경 쓴 어부는 형태 전체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머리통이 부풀어 올라 멈출 줄을 몰랐고 눈알은 시커멓게 변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양쪽의 두 팔은 각각 둘로 쪼개져 바닥을 향해 늘어져 갔고 양다리도 마찬가지였다. 머리통이 거의 몸통만큼 커졌을 때 몸뚱이 전체가 마구 흐물거리더니 셀 수도 없을 듯한 수의 빨간색 고리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로 굳은 채로 고통스러워하던 용현은 저 뒤에서 똑같이 변한 어부의 아내 아니, 암컷 괴물마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죽긴 죽되 어떻게 죽느냐의 문제로 변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소년이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용현은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았지만 자신도 소년의 손을 꼭 맞잡았다. 그러고는 미친 척하고 숨을 가능한 한 최대로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시야가 트여 왔다. 이상한 그 안경 쓴 어부와 그의 아내가 앞에 서 있었다.

  용현은 그대로 소년을 잡아끌다시피 하면서 뒤로 돌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소년이 힘겨워하자 그는 아예 소년을 들쳐 업고 이어 달렸다. 계속해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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