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초코우유를 한 입에 들이킨다. 미적지근한 달달함에 몸속의 냉기가 어느 정도 가시는 듯하다. 힐끗 본 손목시계는 자정을 가리킨다. 적막으로 둘러싸인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은 그저 새, 까맣다. 남자는 맥반석 오징어를 파는 코너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있다. 나와 함께. 앞에는 맥주캔 여럿이 나뒹군다. 오징어는 식었고 몇 개의 호두과자도 얼린 찰떡을 먹는 듯한 식감에 내버려둔 지 오래다. 그리고 그것들은 늘 그랬듯 내가 샀다.

우리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매듭짓는다. 그는 장윤정을 좋아하고 나는 홍진영을 좋아한다는, 둘의 장점과 단점이 각각 무엇이고 무엇인지를 논하던 중이었다. 결국 서로가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세 곡 이상 한 번씩 듣고 얘기하기로 한다. 사실 나는 둘 다 좋지만 한 번쯤은 그와 다르고 싶었다. 겉보기에 우리는 언뜻 달랐지만 서로의 속을 열어보면 같은 색의 같은 농도의 같은 속도의 피가 흐르는 것만큼 닮았으므로. 그러니까 단순히 트로트를 좋아하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우유팩을 한 면씩, 조심스레 해체한다. 원래의 도면을 떠올리면서. 남자는 우유란 무슨 맛이냐고 묻는다.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맛.”

그는 알레르기 때문에 우유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먹어보지 ‘못했다고’.

“목숨 버리면서까지 느껴야 할 맛은 아니야.”

“트로트하고는 다르네. 이미 그거에 목숨 버리고 말았지만.”

“당연히 다르지. 트로트는 신나고 우유는 신나지 않잖아.”

나는 대꾸한다.

“그럼 호두과자는?”

“넘버 투, 목숨 버리면서까지 먹어야 할 건 아냐. 거기다 거기에도 우유 들어가거든.”

“그러면서 계속 만드는 이유가 뭐야. 더구나 그 일 한지도 10년이 넘었으면서.”

“사람들이 원하니까. 나는 반죽만 조금 짜고 비둘기 뇌 같은 호두 반 알만 넣으면 끝.”

그가 웃는다. 웃으면서 찬 호두과자를 한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그 모습이 꼭 다람쥐 같다. 그렇다고 그를 다람쥐나 람쥐 등으로 부를 수는 없다. 그에겐 엄연히 김홍선, 이라는 이름이 있으므로.

가까운 데 위치한 잡화 트럭에서 금잔디의 <오라버니>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는 금잔디는 어때, 묻고 남자는 좋지, 대답한다. 도대체 어떤 가수가 되고 싶은 거야, 따지듯 말을 잇는다. 글쎄, 남자는 머뭇거리고 일단 돈이 될 수 있는 거면, 하고 뒤에 말줄임표를 흘린다. 나는 이름 모를 가수 수백 명의 노래에 집중한다. 라이브 공연 때 흔히 하는 음정 이탈이나 실수가 녹음된 음원에서 곧잘 발견된다. 문득 ‘형세’가 떠오른다.

형세는 집에 아마추어 녹음 장치를 늘어뜨린 채 노래를 불렀다. 수많은 기획사와 소속사에 파일을 보냈지만 형식적으로 메일 끝에 붙이는 ‘긍정적인 결과 기다리겠습니다’는 말 그대로 형식만 지키고 실현되지 못했다. 그 이름은 가수 지망생들이 하릴 없이 노가리나 까는 인터넷 카페의 한 회원이 지어준 것이고, 그 뒤부터 나는 그렇게 불렸다.

물론 장르는 다르다. 나는 조용하고 여린 발라드만 웅얼댔고, 그는 뽕짝 스타일의 트로트를 부르므로. 하지만 그런 얘기를 남자 앞에서 꺼낸 적은 없다. 한때 가수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치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므로. 들추어봤자 계속 더 수치스러운 과거만 나오기 때문에. 형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결코 형세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호두과자 코너로 돌아가고 남자는 휴게소 매점에서 훔친 생필품을 가지고 남자화장실로 사라진다. 그 사이 판매대를 기웃거리는 손님이 세 명이나 생겼다. 화장실을 다녀온 듯 그러나 씻지 않은 손을 괜스레 허벅지에 문지르며 반죽과 호두를 만진다. 삼천 원짜리, 만 원짜리 선물용 세트를 건넨다. 호두과자 수십 알들이 팔려나간 뒤의 정적은 다시금 들려오는 잡화 트럭의 트로트 노래에 허물어진다. 고막을 내리밟듯 짓누르는 저 리듬과 저 가사와 저 목소리가 온 몸의 땀샘으로 흘러내릴 것 같은 기분이다.

그때 막 화장실을 나서는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입술만 보인다. 으레 남자들이 남자의 몸매를 훑듯 보지 않는다. 그건 희롱에 지나지 않는다. 입술, 그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늘 스치는 곳. 단순한 울림이 발음되어 노래가 되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블랙홀 같은 구멍. 나는 거울 대신 그의 입술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오늘은 비교적 일찍 퇴근하는 그다. 노을이 검보랏빛 어둠에 스며들고 구름은 달 곁으로 몽글몽글 맺힌다. 남자는 언제나처럼 휴게소와 주유소 사이, 개들이 똥오줌을 싸지르고 헐떡대며 돌아다니는 작은 공원 가장자리에서 버스킹 공연을 준비한다. 나는 셔터를 내리고 화장실에 들른 뒤 낡은 원룸 근처 역으로 가는 휴게소 직원용 버스를 기다린다.

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처음 그를 만난 건 동성애자들의 만남 어플을 통한 소개팅에서였다. 물론 둘 다 원래 만나기로 했던 남자와 남자가 아니었다. 원래의 남자와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지 못할 이유로 대타를 뛴 것이었다. 소개팅 알바는 인터넷 카페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사기이거나 돈 떼일 확률도 높지만. 나는 이따금 호두과자 기계에 손을 데이며 한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조작하기 바빴다. 알바 건수를 잡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나와 닮지 않은 남자를 찾으려 했지만 다 거기서 거기였다. 똑같이 못생겼고 몸매도 물렁했다. 무엇보다 멍청하다 해야 할 지, 좋게 봐서 순박하거나 착하다고 해야 할 지, 그런 인상의 남자들이 너무 많았다. 누군가를 대신해 누군가라고 속이면서 누군가가 된다는 건 어려운 일이면서도 쉬웠다.

하루 24시간, 주 7일 근무, 월급은 들어오면 받고 안 들어오면 기다리고요.

남자가 나타나자마자, 아니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고 잠시 숨을 고르다 느닷없이 꺼낸 말이었다. 나는 처음에 벙, 찐 얼굴로 뭐가요, 뭐가 그렇다는 거죠, 물었다. 그는 돈이요, 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두 모금, 다섯 모금 물처럼 들이켰다. 맛이 어지간히 쓴지 인상을 구긴 채 나를 응시했다. 나와의 시간을 견디는 건지, 아메리카노의 쓴 맛을 견디는 건지 헷갈렸다. 둘 다일 수도 있었다. 남자는 잔을 비운 뒤 턱짓을 했다. 자신처럼 자기소개를 하라는 의미였다, 고 생각한다. 00휴게소 아시죠? 거기서 일해요. 내가 말했다.

뭘 하는데요?

뭘 팔지요.

뭘 파는데요?

호두과자요.

나는 은근히 자부했다.

호두과자에 호두가 들어가나?

남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마치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듯. 나는 그게 그의 농담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웃었는데, 그는 되레 웃는 내가 이상하다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요새는 호두가 안들어가는 호두과자도 많더라구요. 몇 군데가 그랬어요. 나는 말도 안된다고, 호두과자란 적어도 제 이름대로 충실한 것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남자는 손사래를 쳤다. 자기가 살아봐서 안다고 했다. 어디서 사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갑자기 전국의 지명을 하나하나 읊기 시작했다. 나는 들으면서 여행하는 걸 좋아하나, 생각하다가 내가 지금 사는 곳이에요, 라는 남자의 말에 사례가 들릴 뻔 했다. 나는 그게 어떤 비유라거나, 그쯤으로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그는 하루, 길면 이틀 간격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돌아다니며 버스킹 공연을 했고, 잠을 잤다. 가수냐고 물어봤더니 가수랬다. 이름과 곡 제목을 알려 달랬더니 비밀이랬다. 나는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난 알려줬잖아요.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그쪽이 뭘 하는데요?

뭘 팔지요.

뭘 파는데요?

호두과자요.

그건 그냥 호두과자잖아요.

순간 나는 자존심이 상해 호두과자의 좋은 기능과 가치를 대변인인 양 늘어놓았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호두과자와 내가 호두과자를 만드는 휴게소 직원이라는 사실은 당신의 이름과 직업과 휴게소를 전전하다 내가 일하는 휴게소에 잠시 머무르고 있는 노숙자, 라는 사실보다 더 중요하면 중요하지, 못하지는 않는다고. 그는 음, 눈썹을 실룩이며 창 너머로 시선을 두었다. 아무 것도 없이, 널따란 사거리와 오피스텔, 주상복합이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였다. 아무리 둘러봐도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었다. 나는 자리를 옮길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팬 사인회가 있어요. 거길 가야 돼요.

팬들도 있느냐고, 더군다나 사인까지 해줄 팬들이라니. 그때 나는 어쩌면 그를 복면가왕이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처럼 가면 뒤에서 활동하는 ‘얼굴 없는’ 가수가 아닐까,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팬 사인회였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자는 ‘가수’, 이전에 노숙자 쉼터의 단골손님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배식하는 밥을 한 번은 노숙자로서, 두 번째는 조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두 번, 또는 세 번까지 받아먹었다. 하루 세 끼를 한 번에 다 먹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의 하루를 가늠했다. 남자는 소화도 시킬 겸 쉼터 근처 작은 광장에 앰프를 늘어놓고 유선 마이크를 대충 휘감은 다음 노래를 불렀다. 대개 이미자나 장윤정 메들리였다. 어쩔 때 흥이 나면 홍진영의 곡들을 부르거나.

나는 그의 이름과 나이가 궁금했다. 뭔지 모를 공허함의 정체였다. 다 아는데 하나도 모르는 느낌. 그러니까 너무 투명해서 그 너머,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다는 미래만 괜히 추측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는 종업원에게 부탁해 종이와 펜을 빌린 뒤 사인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는 선뜻 휘황찬란한 사인을 한 뒤 내게 돌려주었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내가 무어라고 입을 열려는 동시에 남자는 이제 내 이름이 아닌 이름이죠, 선두를 빼앗았다. 버린 이름이에요, 예명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나? 그러고선 깔깔대며 웃는 게 꼭 짓궂은 장난을 치는 어린애 같았다.

소개팅이 파한 뒤 나는 그를 따라갔다. 가수지망생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잡화 트럭에서 들려오는 노래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버릇을 발견했다. 기술적인 면에서부터 감정 전달까지, 트로트가 쿵짝쿵짝 내줄 수 있는 모든 것에 엑스표를 치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중의 하나가 되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나는 가수도 아니고 ‘지망생’이었을 뿐이다. 그런 가혹한 비난을 받을만한 자격도, 의무도 없었다.

도착한 곳은 한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 앞이었다.

여기서 버스킹 해요? 공연?

아뇨, 화장실 앞은 저 트럭에서 나오는 거지같은 곡들로 충분해요.

내가 그런데 왜 여길 왔느냐고 묻자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오줌 마려워서요.

 

반을 쪼갠 라면을 끓인다. 원룸에서 곧 나가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돈은 메뚜기 떼가 지나간 논밭처럼 낱알 하나 남은 거 없이 메말랐다. 정말, 남자처럼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노숙자 쉼터를 고급식당쯤으로 여기며 살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가 엄습해온다. 물이 끓기 시작하고 스프 역시 반만 넣는다. 남자가 알려준 ‘다이어트’ 방법 중 하나다. 그는 수십 가지의 다이어트 방법을 안다. 나는 속으로 아직 데뷔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중얼거렸다. 남자는 그 지점을 꿰뚫은 듯 자기관리는 평생, 1분 1초도 쉬지 않고 해야 하니까요, 뇌까렸다.

더군다나 나는 연예인이니까.

덧붙인 그의 말에 나는 입꼬리가 흔들려 사례가 들릴 뻔 했다.

라면을 한 가닥씩 조심스레 들어올린다. 배는 늘 허기지다. 남자와 만날 때마다 커피나 음료, 간식 값을 내가 내온 탓이다.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다 내지 않겠노라고, 그가 내거나 최소한 더치페이를 할 거라고 다짐하지만 늘 그렇듯 실패할 것이다. 돈 얘기를 꺼내는 순간 그의 두 눈은 움푹 꺼지고 그림자가 숯검댕이처럼 짙게 묻어났다. 그리곤 내가 낼게요, 하면서 사시사철 걸치는 트렌치코트의 단추를 중간에서부터 여민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양, 천천히. 그러면 나는 괜히 미안해져 다음에 사세요, 의례적인 말을 덧대며 돈을 내밀었다. 이제 그럴 날도 얼마 남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으로 깨닫는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진동한다. 남자인가, 싶지만 그의 핸드폰은 통화 기능이 마비된 지 오래다. 그러니까 다른 건 다 되는데 말이죠. 문자하고 통화 기능만 딱 고장 났지 뭐예요. 무슨 부조리극도 아니고. 연락할 일이 있으면 빌려서 할게요. 하지만 그에게서 연락이 온 적은 딱 한 번, 혹시 휴게소에 일할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용건이었고 그때에도 숨기지 못한 수치심을 이후 한 번도 다시금 내비친 적이 없다. 답을 하기 위해 만났을 때 나는 아르바이트 자리 대신 막 구워 낸 호두과자 삼천 원어치를 내밀었고 남자는 징그러워, 하며 손도 대지 않았다. 일순 울컥 했다. 내 하루의 과반 이상을, 삶의 대부분을 바치는 일이 고작 ‘징그러워’, 따위의 것이라니. 나는 그런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래서 우유를 못 먹고 호두를 매우 끔찍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요샌 호두가 없는 호두과자도 팔더라고요.

나는 변명하듯 쑥스러워 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럼 호두과자가 아니잖아요. 그냥 팥빵이지.

그래도 호두과자예요. 그렇게 불렸고, 살아왔으니까.

내 말에 그는 내가 산 싸구려 수입맥주를 몇 모금 들이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전화를 건 사람은 휴게소 간식코너 담당 주임이다. 그는 특유의 호탕한 목소리로 이것저것 안 물어봐도 그만인 안부를 묻더니 갑자기 다른 얘기로 샌다. 휴게소가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미 일을 그만둔 사람도 여럿 된다고 했다. 나더러 사직을 권고하거나 앞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을 남자는 말하지 않았다. 호두과자 코너의 매출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들려줄 뿐이다.

“거기다 슈크림빵이니, 붕어빵이니, 위에서 이것저것 새로 시도하는 게 많기도 하고.”

“호두과자가 더 맛있어요. 더 맛있잖아요. 그런 건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고요.”

주임은 그렇지, 그게 맞는 말이지, 하면서도 쉽사리 대화를 마무리하지 못한다.

“그리고 단골손님도 있고, 호두과자를 그렇게 버리시면.......”

남자를 단골손님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생각에 잠기다 빠져나온다.

“그냥 안부 차 전화했어, 자네 모습 보기가 힘들어서, 바쁜 모양이던데, 아 혹시 아직도 노래 부르나?”

“아뇨. 이제 그런, 거 안 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나는 탁자로 돌아가 앉는다. 두 가닥 남은 라면을 마저 빨아들인다. 노래라니. 내가 언제 주임한테 가수 지망생이라고 말한 적이 있나, 기억을 되짚다 언제 한 번 직원 회식 때 술기운에 노래를 불렀던, 왜 이렇게 잘 부르느냐는 주변의 물음에 노래를 합니다, 라고 대답했던 적이 생각난다.

노래를 했었습니다, 도 아니고 노래를 했습니다, 도 아니고 노래를 합니다, 라니.

마음속 어떤 자신감에 의해 과거의 방황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가수의 꿈을 고백하듯 고백해버린 걸까. 옆에 남자가 있었다면 보나마나 코웃음을 치거나 비웃거나, 하여튼 웃으며 조롱 아닌 조롱을 했을 것이다. 물론, 그건 당연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내 앞에서 노래 얘기를 꺼낼 때마다 심장이 따끔거린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순간처럼. 국물을 마시려다 개수대에 쏟아버린다.

 

휴게소로 향하는 버스는 여전히 북적거린다. 나는 그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맨 앞자리에 앉는다. 버스는 덜컹거리고 선글라스를 낀 운전기사는 연신 지금 한창 TV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의 커버곡들을 흥얼거린다. 노래가 고조될수록 내 속은 울렁거린다.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토해낼 것만 같다. 무심코 남자에게 던진 물음을 생각해낸다. 당신도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보지 그랬느냐고. 그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호두과자가 식었다며, 전자레인지가 없느냐고 딴소릴 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싶어 느릿느릿 호두과자를 다시 구워 돌아왔다.

“호두과자는 천안인데. 천안 호두과자. 여기는...... 여기가 어디더라.”

그는 괜스레 딴청을 피웠다.

“좋아하는 가수는 좋아하는 가수로 남겨두고 싶어서요.”

남자는 점점이 박힌 호두를 하나하나 골라내며 뒤늦게 대답을 덧붙인다.

“그럼 발전의 기회가 없죠. 떨어지고, 계속 떨어져봐야 발전도 하는 거고.”

“너처럼? 그러다 너처럼 포기하면 어떡해. 호두과자나 굽고 있으면 어떡하느냔 말이야.”

그의 언성이 높아졌고 이내 잠잠해졌다. 당황한 내 얼굴을 본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도 이건 좀, 그런 말임을 깨달아서일까. 나는 그가 골라낸 호두를 습관처럼 한 알씩 집어 씹어 삼켰다. 너무 작아 무슨 맛임을 채 깨닫기도 전에 식도로 툭, 하고 떨어지는 호두는 사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이었다. 딱히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예산이 줄었고, 나는 그에 따라 손님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변화를 반죽 짜듯 조금씩 첨가했을 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각자의 일터로 돌아간다. 나는 언제 청소했는지 모를 호두과자 기계를 옆에 두고 얼마 남지 않은 양의 봉투를 꺼내 담기 쉽도록 접기 시작한다. 부모가 늘 시키던 일이었다. 엄청난 양이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돌아와서도 주유소 야간 근무를 하기 위해 나갔고, 엄마는 각종 좌담회나 일일 아르바이트를 잡았다. 집은 늘 비어 있었다. 나는 빈 곳에 번져나가는, 침묵의 진동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노래를 부른다. 노래는 곁을 내주어도 배신하지 않았고, 내게 끊임없는 노동이나 일과 따위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타고난 그대로, 목소리를 내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대회와 오디션을 거치면서 나는 목소리를 뱉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나에 비출 때 남자는 정말이지 천재나 다름없다. 온통 남자에 관한 상념들로 머릿속이 부푸는 찰나, 그가 나타났다.

“선물용 하나. 식은 것도 상관없어요.”

고개를 든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곳곳에 밴드를 붙인 모습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봤자 여전히 남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올려다보는 나다. 그는 팔 떨어지겠다면서 돈부터 받으라고 성화다. 나는 허둥지둥 돈을 받은 뒤 두 손을 가만히 놔두질 못한다. 다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다.

“좀 고쳤어요. 이곳저곳, 못난 부분들만 골라서. 한도 끝도 없더라고요. 다 못생겼어.”

그는 말끝을 흐리며 몸을 쉽사리 가누지 못하는 양 뻣뻣이 고개를 살짝 흔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의문이 의문을 낳고 불어간다. 거기까지다, 내 자격은.

“가수가 노래만 잘 부르면 됐죠, 뭐.”

“어머,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평생 저 트럭에서 나오는 노래만 듣고 살았나 보네.”

머뭇거리는 사이, 남자는 호두는 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오래 씹으면 씹을수록 더 맛없긴 한데, 생각에 빠져들긴 좋더라고요. 나는 왜 이 맛대가리 없는 걸 먹고 있나, 돈이 없어서 그렇지, 돈은 왜 없나, 노래를 못불러서, 노래는 왜 못 부르나, 타고나길 그렇게 태어나서, 왜 태어났는가, 고3이던 부모가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청소도구함에 날 버렸지, 하등 쓸데없는 생각들이지만.”

“누가 그런 얘길 했어요? 청소도구함에 버렸다느니, 노래를 못 부른다느니.”

“휴게소 사람들이요. 전부 다 그래요. 당신만 모르는 거죠."

“그 사람들이 뭘 안다고.”

나는 중얼거린다.

“그러는 당신은요, 당신은 뭘 안다구.”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걸 알죠. 특히 트로트.”

“그렇죠. 신나죠. 그래서 더 싫어, 나만 신나하는 것 같아서.”

그 말을 마치고 남자는 사라졌다. 나는 오래도록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시 보니 어깨가 넓고 키는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보았다. 군인 마냥 짧게 쳐올린 뒷머리는 아담하고 둥근 두상을 그대로 내보였다. 한 번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고양이처럼 갸르릉 거리며 품에 안겨올 것만 같았다. 그는 여자에 환장하는 놈이었지만, 휴게소 여성 직원들은 모두 그와 한 번 이상 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던, 그의 얘기를 기억한다. 내가 그의 첫 번째 남자가 되고 싶다, 는 건 지나친 공상일까.

나는 만 원짜리 호두과자 선물용 세트를 그에게 건넨다.

그 후로 남자는 휴게소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잡화 트럭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 내릴 줄 모르는 겨울이다. 바람만 요란하게 쉼 없이 사람들의 껍데기를 뒤흔드는. 입을 여는 순간 유입되는 냉기에 방광까지 얼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예전과 같이 호두과자를 만드는 중이었다. 주임이 말했던 슈크림빵이나 붕어빵도 잘 팔렸지만, 어쨌거나 휴게소에선 호두과자, 라는 공식은 여전히 공식으로 남아있다. 핸드폰을 하다 멍하니, 창구로 겨울 바다를 보러가는 사람들을 내다보는 중, 트럭에서 울려 퍼지는 익숙한 트로트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곡의 후반부로 접어들 때쯤에서야 나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 목소리는 한 곡으로 끝나지 않는다. 계속해서 다른 가사의 똑같은 내용을 엇비슷한 리듬에 실어 내보낸다. 나는 잡화 트럭으로 뛰다시피 다가갔다.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 가수가 누구냐고, 흰 머리의 배가 나온 여자에게 묻는다. 그녀는 무어라 이름을 알려준다.

이 이름이 그 이름인가.

나는 한참 동안 기억의 기억 속을 뒤진다. 호두과자를 사러 온 손님들에겐 영업이 끝났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네이버와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았다. 남자가 맞았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지갑을 뒤져 남자의 불법복제 CD를 구입한다. 나는 1년에 한 번도 쓰기 힘든 반차를 쓴다. 주임은 밝은 얼굴로 잘 갔다 오라고 말한다. 집으로 가기 전에 나는 옆 분식코너의 여자에게 주임에게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녀는 그가 곧 휴게소를 떠날 거라고 알려주었다. 천안 근처의 신식 휴게소 과장으로 발령이 났다면서, 이 낡고 오래된 휴게소를 떠난다는 사실에 그런 거라고.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도 신식 휴게로 가거나 이제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왜 나만 모르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다.

“종일 호두과자 만들거나 트로트 뽕짝 노래만 들으니까 모르지. 밖을 봐, 호두과자 코너 밖을. 세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그런데. 그냥 잠시 들렀다 지나가는 휴게소 말고. 휴게소에서 어디 괜찮은 사람이라도 구할 수 있을 줄 알아? 나가야지, 한창 젊을 때인데.”

그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 근처에서 끊임없이 되풀이해 들린다. 버스 기사는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냐고 말을 건네지만 못 들은 척 핸드폰에 집중한다. 남자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캡처해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자투리까지 긁어모은 정보를 가지고 남자를 가늠하기 시작한다.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 사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러다 문득 나는 내가 그를 좋아하나, 의문에 빠지고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한다. 어떠한 감정의, 다시 말해 사랑의 기류도 없었는데. 좋아해봤자 남자가 게이일 확률은 극히 적지 않은가. 설사 동성애자라고 해도 나를 좋아한다는 법은 더더욱 없고. 그는 그냥 무명 트로트 가수였다....... 버스에서 내리고 정류장에서 한참을 서성인 뒤 나는 다시 다른 버스에 올라탄다. 남자가 공연을 했다던 서울 변두리의 작은 공연장으로 가기 위해서다.

남자는 당연히 그곳에 없었고, 공연 관계자들에게 알음알음 물어 그를 쫓다 실패한다. 핸드폰 번호가 있을 리 없다. 그의 핸드폰은 늘 고장난 상태였으므로. 텅 빈 공연장에 가만히 앉아 있다. 눈을 감고, 객석을 가득 채우는 남자의 목소리를, 노래를 온 감각으로 어루만지듯 살핀다. 그러나 노랫소리만 들릴 뿐,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허망한 느낌이 빈속에 들어찬다. 공연장을 나선다. 어느 누구도 그를 아는 이 없다.

문득 별 마시지도 않았는데 방광이 팽팽하게 당겨 화장실로 향한다. 소변기 앞에 선다. 눈에 들어온다. 비아그라 광고처럼 벽에 붙여져 있는, 명함 크기의 작은 전단지를. 거기에 남자가 있다. 어느 지하 클럽에서 공연을 하니, 할인도 많이 해드리니 많이 오시라고. 데뷔 이후 경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자잘한 이력들을 내세운 채. 그 이력엔 두세 줄만 추가되었다. 채널 번호도 알지 못할 어느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탑 20에 들었다, 앨범을 냈다, 신곡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거기에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고, “네, 삐까번쩍 내 사랑 트로트 가수 김호반입니다.”, 여리면서도 날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한동안 대답하지 못한다. 통화가 끊겼나, 계속 확인하는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마침내 들리지 않는다. 핸드폰에서, 스피커에서 지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나는 전화를 끊는다. 핸드폰을 꽉 움켜쥐다 힘을 푼다. 공연장 일대의 모든 공중화장실을 돌아다니며 남자의 광고 전단지를 떼고 찢어서 버린다. 변기는 막힘없이 넙죽넙죽 남자를 삼키는 데 전념한다. 오가다 마주친 경비 노인에게 이런 불법 전단지들 때문에 화장실이 더러워지는 거라며 목소리를 높이다 관둔다.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앉는다. 그게 내가 남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우정, 그래 우, 정, 의 증표라는 사실이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그가 선물용 호두과자 세트를 사가지고 자취를 감추었을 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주유소에 가서 물었다. 여기 근처에서 공연하던 남자 어디 갔는지 아냐고.

여기서 공연하던 사람? 아무도 없는데. 아, 웬 20대 남자가 있었지, 참.

20대? 나는 거기서 멈칫했다. 나는 트로트를 불렀는데요, 라고 설명을 추가했다.

조용한 발라드? 같은 것만 부르던데. 트로트는 신이 나야지, 그 사람은 너무 슬펐어.

그러더니 직원은 나를 빤히 바라다보았다. 이내 손뼉을 치며 혹시 그 사람이 당신 아니냐고 물어왔다. 나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남자의 외양과 특징을 설명해주지만 여전히 직원은 아무리 봐도 닮았는데,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닮을 수 없는데, 혼잣말을 했다. 결국 아무 것도 모른다. 나는. 주유기를 빼고 시동을 거는 아우디 차체의 옆면에 나를 비춰본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호두과자집 아르바이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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