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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불의마녀 노라 이야기

2012.08.05 15:3108.05

저는 불의 마녀입니다. 불의 마녀답게 불을 쓸 수 있지만 글쎄요. 제 능력은 보기보다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예로 들자면 장작을 때우거나 요리를 할 때 필요한 불을 피울 때 집을 다 태우거나, 마을 전체를 불태우려고 하면 반딧불만한 불똥이 튄다거나 하는 식이죠.

분명 저는 마녀지만 다른 마녀들과 다릅니다. 저를 키워 주신 분은 마법전사였는데 어머니나 다름 없는 분이셨습니다. 어릴 적 부터 저를 거두어 키워주셨어요. 그녀는 저를 제외한 마녀들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제가 바퀴벌레를 바라 볼 때랑 비슷한 느낌일까요? 상냥한 분이였지만 마녀들을 상대할 때 만큼은 정말 무서운 분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큰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 왔어요. 그녀는 힘겹게 제 손을 잡고 입을 열었습니다.
"노라야, 꼭 복수해주렴."
마녀의 저주를 받아 온 몸이 썩어 문드러 가는 채, 눈을 감는 모습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저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습니다. 매정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불의 마녀입니다. 눈물이 흐르기도 전에 증발하거든요. 그저 슬픈 '감정'만이 들었습니다. 하나 뿐인 가족의 부탁을 저 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에게 저주를 입힌 마녀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그 당시, 저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를 죽게 만든 마녀를 찾기 위해, 가장 단순한 방법. 모든 마녀들을 찾아다니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여정은 옛날의 그녀가 했던 것 처럼 마녀를 사냥하는 일, 그것이 저의 일이 되었습니다. 마녀들은 까다로워서 대화로는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거든요. 간단한 소거법을 이용한 겁니다. 모든 마녀를 만날 때 마다 없애면, 그녀를 죽인 마녀를 실수로 지나치더라도  죽여버렸으니 상관 없었겠죠. 그녀와 저의 차이점이라면 그녀는 사냥을 했지만 제 경우에는 불 태우는 일, 화형을 시킨다는 점이였습니다. 그래서 마녀들이 저를 부를 때 '집행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녀가 마녀를 찾는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녀를 죽인 마녀를 찾는 데는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인간들의 거짓 소문을 믿고 이제 막 성장한 인간소녀를 태우기도 했고 마녀를 찾아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수 많은 서적들을 불 태운 일도 있었습니다.

긴 여행이였습니다. 그리고 슬픈 여행이였습니다. 많은 마녀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집행인'인 저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습니다. 떠나간 이들을 위해 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저야말로 동화에 나올 법한 '진짜' 마녀가 아닐까요.

어느 마을에 도착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 마녀라면 인간들의 눈초리나, 서로 사이가 안 좋아서 영역을 정하고 신분을 숨긴 채 살지만 이 마을에는 마녀가 무려 네 명이나 뭉쳐 살던 것이였습니다. 그녀들은 제가 마녀인걸 한 눈에 알아보고 반겨 주었습니다. 이런 곳은 없었는데.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녀가 웃고 지낼 수 있는 곳.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지낼 수 있는 곳. 저는 제 마음에 있는 불꽃이 조금 사그라 든 걸 느꼈습니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 처럼, 손가락만 까딱하면 마녀와 마을 전체를 불 태워버릴 수도 있는데도,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마을에서 몇 일 머무른 뒤, 이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 안의 불꽃이 복수를 마치기 전에 영원히 꺼져 버릴까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짐을 싸고 떠날 채비를 하자 마을의 마녀 모두가 마중을 나와 주었습니다. 유난히 한 마녀를 잘 따르는 녀석은 가기 전 까지 저를 계속 경계했고, 딱지 접는 것이 특기인 마녀는 딱지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또 다른 마녀는 쿠키를 선물 했습니다. 마녀들은 제가 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그 동안 태워버린 마녀들도 저런 웃는 모습이 있었을거라 생각하니… 이런, 눈물이 나지 않네요.

배를 타고 걷기를 수 차례 반복해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마녀가 살고 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허름한 빵 가게 앞에 멈춰 섰습니다. 창문 너머로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마을의 마녀였습니다. 저는 마녀를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유하자면 걷고 있던 땅이 사실은 땅이 아니라 얼어있는 강이였고 강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걸 깨달은 사람같은 심정이였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마녀는 그녀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키워 주신 어머니 같은 분.
"헬마."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되뇌이며 가게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문에 달린 종이 경쾌한 소리로 울리고 포근한 빛이 가게 안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어서 와요. 집행인이시죠? 영광이네요."
헬마, 아니 마녀는 웃으면서 저를 식탁에 앉혔습니다. 자연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저는 당황했습니다. 어디론가 가더니 따끈따끈한 빵을 들고 와 식탁에 내려 놓았습니다. 향이 좋은, 맛있어 보이는 애플 파이였습니다.
"방금 막 구운건데 맛 좀 봐요. 멀리서 오시느라 힘드셨을텐데."
다정한 태도에 잠시 혹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빵에 독 안 들었으니 그냥 드세요. 아가씨 이름이?"
"노라에요."
"노라. 마녀라고 항상 마법만 쓰고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니잖아요? 빨리 드셔 보세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걸 느꼈는지, 헬마를 닮은 마녀는 먼저 애플 파이를 잘라 먹었습니다. 마지 못해 파이를 먹는 제 모습을 보고 마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질병의 마녀, 크로그타쉬입니다."
마녀는 역시, 헬마와 닮았을 뿐 헬마가 아니였습니다.
"제가 집행인이라는건 어떻게 아신거에요?"
크로그타쉬는 우유를 꺼내 컵에 따랐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제게 가볍게 웃으면서 컵을 건네고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기다렸어요. 노라. 속죄의 날이 오기를 기다렸거든요. 당신이 찾는 마녀는 제가 맞아요. 쌍둥이 언니 헬마를 죽인건 저, 질병의 마녀입니다."
일찍이 느꼈던 분노가 다시 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컵 안의 우유는 뜨거운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여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절 찾고 있다는 소식에 기뻤어요. 헬마와 있었던 일은, 제가 설명 드리죠."
크로그타쉬는 느긋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헬마는 제 반쪽이었어요. 마녀의 피를 완전히 물려받은 한 쪽과 그렇지 못한 한 쪽. 하지만 쌍둥이였죠. 우리는 함께 지냈지만 집안에서는 피를 물려 받지 못한 언니를 가만히 냅두지 못했어요. 차별부터 심했거든요."
이야기를 하는 질병의 마녀는, 그토록 찾고 찾았던 가증스러운 마녀의 눈은 너무나 평온했습니다.
"언니는 마법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갔어요. 아마 마녀가 너무나 싫었던 거겠죠. 시간이 흘러 언니는 저를 죽이기 위해 이 마을에 다시 찾아 왔죠. 하지만 언니는."
헬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마음을 받으며 자란 것이 저 였거든요.
"저를 죽일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 저주에 걸렸어요. 노라. 언니는 살점이 굳어가는 채 떨어져 나가면서 저를 해치지 않았어요. 언니는 마음 속의 신념과 동생을 향한 사랑에서 갈등 했어요. 하지만 저는 저주를 걸어 버렸어요. 노라. 이게 제가 저지른 짓이에요."
가게 안은 사막 한 가운데 보다 더 뜨거워 지기 시작했습니다. 발화점의 중심이 가게 안에 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죽음을 눈 앞에 임하고서 크로그타쉬는 태연하게 물었습니다.
"땀을 안흘리는군요?"
크로그타쉬는 질문에 대답할까, 아니면 그릴 위에 놓인 닭고기처럼 통째로 구워버릴까 고민했습니다. 제 가슴은 그녀를 태우는 쪽을 택했지만, 머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태울까 말까를 고민하면서 태우지 않는다는 선택을 확고히 한 건 이번이 처음이였습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계기는 동생을 사랑한 헬마의 사랑 때문이였습니다.
"저는 땀을 못 흘려요. 그리고 눈물도…. 어라?"
제 눈가에 처음 느껴지는 감촉이 있었어요.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였습니다. 세상이 수증기에 찬 마냥 뿌옇게 흐려보이고 몸을 제대로 겨누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눈 밑으로는 물방울이 하염없이 떨어졌습니다. 손바닥을 올려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크로그타쉬. 당신을 너무나도 죽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가게 안의 폭염도 사라지고 용암처럼 끓어지고 있던 우유도 잔잔해졌습니다. 마법은, 말 그대로 마법처럼 사라졌습니다.
"진심으로 용서하고 싶어요. 헬마가 당신을 살려둔 것 처럼."
저는 이율배반적인 저의 판단에 당황스러웠습니다. 눈 앞에 있는 마녀를 죽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죄 없는 마녀들과 인간들에게 해를 입혔으면서 용서를 한다니? 질병의 마녀가 정말 용서를 받아도 되는건지 저는 확답을 내리지 못했지만 마음은 계속 용서하라고 외쳤습니다.
"헬마는 복수를 해 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그건 크로그타쉬, 당신을 죽이라는 의미가 아니였을거에요."
"로나 그게 더 잔인한 선택이에요. 늘 그랬듯이 그 손으로 화형을 집행시키세요."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마녀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마을을 보았어요. 거기서 느낀 점이 었었어요. 마녀들도 오로지 증오에 찬 존재가 아니라는걸."
저는 손에 든 우유를 비로소 마셨습니다. 조금 뜨거웠지만 마실 만 했어요.
"이 마을에 지내면서, 당신이 위험하면 바로 구해주러 올 거에요. 그 정도 직감은 있어요. 여기 살면서 당신을 영원히 지켜 볼 거에요. 당신을 위협하는건 모조리 태워버릴 거에요. 그러니 살아서 세상의 모든 걸 영원히 지켜 보세요."
앉아있는 크로그타쉬를 쳐다보지 않은 채 가게의 문을 열었습니다.
"기다려요. 로나, 기다리세요!"
저는 크로그타쉬가 따라오지 못하도록 불의 장벽을 쳤습니다.

헬마, 이게 당신이 바라던 결과였으면 좋겠어요.

저는 불의 마녀입니다. 불의 마녀답게 불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죠. 이제 마음의 불도 다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저는 눈물도 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태양보다 커다란 화염보다 이슬 같은 물방울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마녀들을 생각하며, 저는 가벼운 스탭으로 마을을 걸었습니다.
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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