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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쿨 포테이토

2021.08.03 17:1008.03

Prologue
늦은 밤, 서초동 어느 아파트 단지. 인기척 하나 없이 사방이 고요하고, 띄엄띄엄 가로등만 함께하고 있다. 나는 주위 아파트 건물을 둘러본다. 불이 켜져 있는 집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이처럼 모든 집에 불이 꺼져 있는 건 처음 본다. 맑은 밤, 어두운 하늘에 별이 촘촘히 박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광공해가 심한 서울에서 이렇게 많은 별이 보이다니 신기하다. 너무 아름답다. 별이 가득한 하늘을 넋 놓고 바라본다. 한 자리에 서서 한참을 본다. 무수히 많은 별 중 눈에 띄게 밝은 별 하나가 있다. 그 별에 유난히 눈이 가고 계속 보게 된다.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하다. 그 별이 점점 밝아진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별이 아닌가? 밝아지다 못해 별의 둘레가 점점 더 커진다. 계속 커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떠한 형태를 띠기 시작하더니 모양이 뚜렷해졌다. 그 별은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원형의 UFO로 변했다. 하늘을 날아다닌다. 신기한 광경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날아다니는 UFO를 영상으로 찍는다. 어두운 하늘을 이리저리 규칙성 없이 마구 날아다니는 UFO를 손으로 따라가며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 속도가 워낙 빨라 스마트폰 화면 프레임에서 자꾸 벗어난다. UFO는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한 아주 먼 곳으로 잠시 멀어졌다가 공간을 이동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지금 서있는 하늘 위로 다시 날아왔다. 우주에 저렇게 빠른 비행체가 있나 싶다. 가까이에서 보니 UFO는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생각했던 크기보다 훨씬 크다. 저 UFO 안에는 누가 타고 있을지 궁금하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공중에 떠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꽤 오랫동안 어두운 하늘에 떠있는 UFO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에 도착했다.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현관의 등이 켜진다. 늦은 밤이어서 부모님과 동생은 자고 있다. 가족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거실을 사뿐사뿐 걷는다. 현관에서 멀어지니 자동으로 등이 꺼지면서 집 전체가 어두워졌다. 그런데 누군가 내 방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동생이 내 방에 있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이 아닌 것 같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동생은 아니다. 누군지 유심히 본다. 내 방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자신이다. 눈이 어둠에 적응이 되면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내 앞에 서있다. 이목구비도 똑같고 어깨 밑에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헤어스타일도 같다. 키도 같고, 체형도 같고, 심지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내 앞에 서있는 사람도 다름아닌 나다. 지금 나는 또 다른 나를 마주하고 있다. 멍한 표정으로 한참을 내 앞에 서있는 나를 바라본다. 그런데 또 다른 나는 어딘가가 나와 달라지고 있다. 얼굴과 몸집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한다. 눈이 양끝으로 날카롭게 길어짐과 동시에 코 끝은 뭉툭해지고 귀 끝은 매우 뾰족하게 변한다. 몸집이 점점 커지다 보니 입고 있던 옷이 터지면서 다 찢어졌다. 몸은 짙은 회색으로 변했다. 어깨는 양 옆으로 넓어지면서 굽어지고 등에서는 돌기 같은 게 솟아 난다. 팔과 다리도 점점 길어진다. 키가 천장 높이 이상으로 커지면서 허리가 점점 굽어지기 시작했다. 하관은 앞으로 길게 튀어나왔고 입 양끝은 턱 관절 위치에 닿을 만큼 길게 찢어졌다. 엄청나게 커진 입 안의 모든 이는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으로 변했다. 나는 또 다른 내가 괴물로 변하는 걸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다. 거의 5미터 이상 크기로 커져서 허리를 많이 숙이고 있고 양팔은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과 팔다리는 파충류 같고 몸통은 갑옷 비슷한 금속성 물질이 돼있다. 눈은 피가 고인 것처럼 새빨갛게 변했고 목 깊은 곳에서부터 그르렁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완전하게 괴물로 변한 나와 마주하고 있다. 위압적인 거대한 몸집과 혐오스런 붉은 눈빛에 압도돼 온 몸이 얼어 붙었다. 괴물의 등뒤로 축축한 악의 기운이 흘러 내리고 바닥에서는 싸늘한 공포의 공기가 차오른다. 괴물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겨운 불쾌감과 극한의 두려움이 엄습한다. 도망가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현관으로 달려간다. 괴물은 혐오스러운 울음소리를 크게 내더니 도망가는 나를 향해 뛰어올랐다. 어마어마하게 큰 입을 쩍 벌린 채 현관 밖으로 도망치려던 나를 순식간에 따라잡아 덮쳤다. 나의 몸 전체를 그 큰 입안에 넣어버렸고 바로 고개를 쳐들어 입 속에서 발버둥치는 나를 한번에 꿀꺽하고 삼켰다. 이 모든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졌다. 괴물이 뛰어오르면서 부서진 천장의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괴물은 가늘고 긴 혀를 밖으로 내밀어 입술 주위를 핥으며 입맛을 다시더니, 성큼성큼 거실 발코니로 나가 유리창을 부쉈다. 매우 능수능란한 솜씨로 발코니 난간을 너머 아파트 건물 외벽을 타고 1층까지 빠르게 내려갔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다. 괴물은 아파트 단지 안을 한동안 어슬렁거린 후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혐오스럽게 울부짖었다. 잠시 후 UFO가 괴물 위로 날아 왔다. UFO 밑에서 파란색 빛이 내려온다. 괴물은 그 빛을 타고 UFO로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괴물은 빛이 나오는 바닥을 통해서 UFO 안으로 들어갔다. 괴물을 태운 UFO는 수직 방향 위로 올라간다. 계속해서 높이높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더니 어느새 사라졌다.

1
출근길. 새봄은 최근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비몽사몽이다.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차를 두고 전철을 타고 출근한다. 출근 시간대 전철 안은 옴짝달싹할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전철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그런지 직접 운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피곤하다. 전철역 밖으로 나와보니 옷 여기저기가 구깃구깃해졌다. 옷이 펴지도록 손으로 툭툭 치면서 빠른 걸음으로 회사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엄청나게 길다. 50층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여섯 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투덜거리는 표정을 지으며 긴 줄 맨 뒤에 가서 섰다. 새봄은 M전자 디스플레이 사업부 해외영업팀에 다닌다. 원래는 헝가리와 폴란드 법인 담당이지만, 오늘부터 현업에서 빠져 6개월 동안 신제품 해외시장조사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새로운 컨셉의 제품을 론칭하기 위해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리서치를 하는 매우 큰 프로젝트이다. 새봄은 유럽지역 시장조사 담당으로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오후 2시에 이번 프로젝트를 수주한 컨설팅 회사 사람들과 킥오프 미팅이 있다. 사실 새봄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현업에서 나와 6개월 정도의 단기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것이 자신의 커리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영진은 일하는 자세가 항상 성실하고 도전적이며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남다른 창의력을 발휘하여 해결하는 새봄이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적임자 중 한 명이라고 판단했다. 새봄은 이번 프로젝트 멤버 중 한 명으로 결정 됐을 때 사업부 조진성 상무를 찾아가 자신을 제외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자신은 참여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조진성 상무는 이번 프로젝트에 새봄이 반드시 참여해야만 한다고 했다. 그래도 새봄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자신을 빼줄 것을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러자 조진성 상무는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새봄이 평소 원했던 프랑스 법인 담당자로 발령을 내겠다고 하면서 프로젝트 참여를 설득했다. 뿐만 아니라 2년 정도 후에는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밀어주겠다고도 제안했다. 프랑스 법인 주재원이라는 말이 솔깃하다. 새봄은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파견 나가는 것을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2년 6개월 후면 현 프랑스 법인 주재원이 본사로 돌아온다. 새봄은 가능하면 그 다음 주재원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법인을 담당하고 있는 김민수 선임이 다음 주재원으로 가장 유력하다. 조상무는 직원들은 모르는 사실이라면서 이번 신제품이 기업의 향후 50년을 책임질 상품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투입 인원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보상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조상무는 이번 프로젝트 참여가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무는 김민수 선임은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서 다른 법인 주재원으로 보내면 된다고 했다. 새봄은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나가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김민수 선임을 제치고 자신이 갈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게 필요했다. 조상무 말대로 이번이 기다리던 기회일 수 있다. 그렇다면 놓쳐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프로젝트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청할 이유가 없다. 그 자리에서 마음을 바꿔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대회의실. 현업에서 빠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직원은 새봄 말고 네 명이 더 있다. 대회의실은 프로젝트가 끝나는 동안 임시 사무실로 사용된다. 새봄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컨설팅 회사 사람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컨설턴트들과 부딪쳐 가며 6개월동안 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채 이상적인 얘기만 할 게 뻔하다. 아마 그들은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임을 자부하며 자기들만의 방법론과 툴이라는 걸 내세워 화려하고 전문적으로 보이는 멋진 언어로 포장해 시장과 동떨어진 알맹이 없는 결과를 이끌어내려 할 거다.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시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을 가만히 놔두면 안 된다. 처음부터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반드시 잘 돼야 한다. 새봄은 그들과 맞서 프로젝트 결과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프로젝트에 투입된 인력의 임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함께 일할 컨설팅 회사 사람들이 도착했다. 여덟 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새봄은 그 중 한 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학 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던 주하이다. 주하를 보자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주하도 새봄을 보고 크게 놀란 눈치다. 회의하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하고 어지럽다. 입이 바짝 말라 입천장이 갈라질 것 같고 심장은 몸 밖으로 튀어 나올 것마냥 심하게 뛴다. 새봄은 회의 내용이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이 회의실에 주하와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새봄, 주하, 가을, 동미는 대학교 같은 과 가장 친한 친구였다. 쿨 포테이토. 네 사람 모임의 이름이다. 쿨 포테이토라는 이름을 어떻게 정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네 사람의 첫 여행인 강원도에서 감자를 먹으면서 정했던 것 같다. 감자를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 상황에서 쿨하고 멋진 친구로 평생 함께하자는 의미로 아무렇게나 갖다 붙였던 것 같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대학 내내 주하, 가을, 동미는 가장 친한 친구였고 새봄은 이런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늘 자랑스러웠다. 그러다 졸업하기 직전 이 세 친구 모두와 연락이 끊겼다. 이 셋은 새봄을 만나주지도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친구들과 완전히 관계가 단절됐다. 새봄은 자신이 따돌림 당한다는 생각에 너무너무 괴로웠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째서 자신을 따돌리는지 알 수 없었다. 따돌림 당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이유만 알아도 괴로움이 조금 덜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도 그 아픔은 여전히 먼 기억 속에 남아 새봄의 마음 한 켠을 짓누르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마음 속 어딘가에 눌려있던 고통과 상처가 주하를 보는 순간 격렬하게 밖으로 튀어나왔다. 회의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회의를 마치고 회사 근처 카페에 새봄과 주하가 마주 앉아있다. 새봄은 회의실에서 나와 지금 있는 카페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두 사람은 이 어색함이 오히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새봄은 어째서 자신과 연락을 끊었는지 가장 먼저 묻고 싶지만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주하가 억지로 웃으면서 먼저 입을 연다.
“정말 오랜만이네. M전자에 직원이 몇만명은 될 텐데 너랑 같이 일을 하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나? 너랑 일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러게.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지. 나는 네가 A&C 컨설팅에 다니는 줄도 몰랐어. 오래 전에 정현 선배한테 너 W전자에 입사했다는 소식은 들었거든.” 새봄이 말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다. 그러나 이 침묵이 여전히 불편하지 않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잔만 만지작거리던 주하가 말한다. “맞아. 첫 직장이 W전자였어. 대학 졸업하고 1년 넘게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어떻게 운이 좋아서 W전자에 취직했어.”
“그러다 어떻게 A&C 컨설팅으로 이직한 거야? 들어가기 엄청 어렵다고 하던데.” 새봄은 어떠한 감정도 섞여있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사실 새봄은 주하가 어떻게 A&C 컨설팅에 다니게 됐는지 전혀 궁금하지 않다. 자신과의 관계를 왜 단절했는지 묻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W전자 다니다가 신입 시절에 지금과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어. 물론 A&C 컨설팅이 참여한 프로젝트였지. 프로젝트가 끝나고 2년 정도 지나고 당시에 같이 일했던 컨설턴트가 A&C 컨설팅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나보고 컨설턴트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했어. 그래서 고민하다가 이직하게 된 거야. 조직 문화가 경직된 대기업보다는 외국계가 나한테 더 맞을 거 같아서 옮기기로 결정했어. 요즘은 대기업도 문화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
“아, 그렇게 옮기게 된 거구나. 프로젝트 하면서 그 분이 널 엄청 잘 봤었나 보다. 그리고 네 말대로 대기업도 분위기가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어. 나이나 직급에 상관없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도 충분히 주어져. 나는 열심해서 2년 정도 후에 프랑스 법인 주재원으로 나가고 그 다음에는 미국 법인으로 나갈 계획이야. 뜻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 정말? 내가 알기로 미국이나 프랑스 법인 주재원은 워낙 인기가 많아서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는데. 줄도 잘 서야 하고 말이지. 너, 회사에서 잘 나가나 보다? 안 봐도 너는 워낙 열심히 할 테니까, 분명 능력도 뛰어날 테고. 계획대로 잘 될 거야.”
“그래? 좋게 얘기해줘서 고마워.”
“고맙긴 뭘..”
두 사람은 한 동안 또 말이 없다. 이번에는 새봄이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건넨다.
“주하야, 나 물어볼 게 있는데..”
새봄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주하가 묻는다. “혹시 내가 너랑 왜 연락을 끊었는지가 묻고 싶은 거야?”
예상치 못하게 주하가 먼저 그 얘기를 꺼내 새봄은 당황했다. “으으응. 맞아. 항상 그게 너무 궁금했어.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그렇구나. 이유를 모르는구나. 이유를 모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모르고 있었네. 음.. 어쩌면 정말 별 거 아닌 일일 수도 있고, 내가 너무 옹졸해 그랬을 수도 있어. 하지만 당시에 나에게는 너무 큰 상처였어. 우리, 학교 졸업할 즈음에 너 M전자에 취직해서 축하해준다고 쿨 포테이토 멤버 네 명 다 같이 모였던 거 기억하지?”
“그럼, 당연히 기억하지.”
“그 때 네가 나한테 엄청 심한 말을 했었어.”
“내가? 그럴 리가..” 새봄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너 그랬어. 나 보고 취업 준비는 안 하고 그렇게 매일 술만 먹어서 어떻게 취직하겠냐고 그러고. 도대체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나를 보면 취직을 할 생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그랬어. 나같이 게을러터진 사람이 어떻게 취직을 하겠냐며 정신 차리고 살라고 나를 몰아붙였어. 취업할 생각이 있다면 생각 없이 술만 먹지 말고 영어, 중국어 공부도 하고 자격증도 따고, 면접 잘 보는 법도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둥 하면서 나를 매우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했어. 워딩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내가 말한 것보다도 훨씬 더 듣기 불편하게 나한테 말했어.”
“내가 그렇게 심하게 말 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한 기억이 없어. 내가 취업에 대해서 조언을 조금 해준 거 같기는 한데..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기억 못하는 구나. 너, 분명히 그랬어. 하필 그날이 면접 본 회사에서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은 날이어서 네 말이 더 큰 상처가 됐어. 지금 돌이켜 보면 며칠 지나고 서로 대화하면서 기분 풀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당시 내 기분은 다시는 너를 보고 싶지 않았어. 취업을 먼저 했다는 이유로 거만하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계속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그날 오늘부터 새봄이는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라고 마음 속으로 선언했어.”
“그래서 나를 안 보려 한 거였구나. 나는 기억이 없는 거 보면 당시에 내가 많이 취했었나 보다.” 새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너 취하지 않았어. 나는 분명히 기억해. 그 이후에 취했지. 나한테 그런 말할 때는 취하지 않았어.”
“그… 그래? 내가 취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새봄은 기억이 전혀 없다 보니 마땅한 변명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이다 싶다. “주하야, 미안해. 내가 사과할게.”
“그래 알았어. 뭐.. 다 지나간 일이잖아. 그 정도 일로 너랑 절교까지 했으니 나도 잘 한 건 없어.”
“아니야. 네가 상처를 많이 받았었네. 미안해.” 새봄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내가 너한테 한 말 때문에 가을이랑 동미도 나랑 연락을 끊은 거야? 내 행동에 실망해서?”
“너 그날 가을이랑도 다퉜어.”
“내가 가을이랑도?”
“응. 뭐 때문에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정말 유치한 걸로 다퉜어. 뭐 때문에 그랬더라.” 주하가 곰곰이 생각한다. “오래 돼서 기억이 전혀 안 나네. 어쨌든 정말 별 거 아닌 걸로 둘이 싸웠고 네가 가을이한테 엄청 뭐라고 했어. 그리고 동미가 너를 왜 안 만나려고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새봄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음.. 그날 내가 가을이랑 다퉜었나? 왜 기억에 없지. 그날 오히려 동미하고 조금 의견이 맞지 않은 게 있었던 거 같기는 한데.. 나도 기억이 잘 안나네. 그나저나 주하야, 가을이랑 동미는 잘 지내?”
“가을이는 자주 만나고 동미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 갔어. 거기서 프랑스 남자랑 결혼했다는 소식까지만 들었고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겼어. 가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
“동미는 프랑스로 유학 갔구나. 연락이 안 된다니 아쉽다. 가을이는 어떤 일 하는데?”
“영화 제작, 배급도 하고 멀티플렉스 극장도 갖고 있는 H엔터테인먼트에 다녀. 가을이는 거기서 마케팅팀에서 일해.”
“아, H엔터테이먼트 다니는 구나. 가을이 영화 엄청 좋아했었잖아. 잘 됐네.”
“회사만 다니는 게 아니라 영화평론가이기도 해.”
“정말? 가을이가 영화평론가야? 우아, 대단하다. 회사 다니는 것만 해도 많이 바쁠 텐데. 그런데 나도 영화 평을 가끔 읽는데 가을이 이름은 못 본 거 같은데.”
“본명 말고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필명이 지인랑이야.”
“아! 지인랑? 나 지인랑 평론가 아는데,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야. 지인랑 평론가가 가을이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가 가을이였다니. 진짜 너무 신기하다.” 새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간다. “주하야, 혹시 가을이 연락처 알려줄 수 있어? 가을이가 나를 만나려고 할까?”
“음.. 다 지난 일이니까 만나려고 하지 않을까? 그래도 가을이한테 물어는 봐야 하니까, 내가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연락처 바로 알려줄게.”
“그래, 고마워.”
“그리고 사실 나 가끔 네 생각 했었어. 대학 내내 좋은 친구로 잘 지냈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연락을 뚝 끊을 필요가 있었나 싶었어.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날 기억이 떠오르면서 다시 막 화가 나고 그랬어. 그때 충격이 크긴 컸었나 봐.”
“그랬었구나. 그래도 가끔 내 생각을 했다니.. 고마워. 그런데 주하야, 우리 넷 모임 이름이 쿨 포테이토였잖아. 그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기억나?”
“우리 강원도에 놀러 갔을 때 낮에 삶아 먹고 남은 감자를 밤에 술 마실 때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잖아. 가을인지, 동미인지가 감자가 차갑게 식어도 너무 맛있다고 하면서 ‘이거 완전 쿨 포테이토네’ 술에 취해서 그랬어. 그리고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 쿨 포테이토라는 어감이 예쁘다며 우리 모임 이름으로 정하자고 했던 거 같은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말이야.”
“그랬었나? 강원도에 가서 나도 감자 맛있게 먹은 거는 기억나는데, 우리가 차갑게 식은 감자도 먹었었나?”
“그랬던 거 같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
새봄이 시계를 본다. “얘기하다 보니까 벌써 이렇게 됐네. 주하야, 이제 사무실로 돌아가자. 아무리 생각해도 같이 일하게 된 거 너무 신기하다. 그리고 예전에 너한테 심하게 한 거 다시 한번 사과할게. 진짜 미안해.”
“그래 알았어. 그리고.. 아니다 얼른 들어가자. 너무 오래 나와 있었다.” 주하는 사실 그날 자신은 새봄이의 취업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없었다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우리 쿨 포테이토 멤버.. 가을이랑 동미도 보고 싶다.” 새봄은 주하가 들리지 않게 아주 작게 혼잣말을 했다.

2
1주일 후. 여의도에 있는 한 주점에서 새봄과 가을이 술을 마시고 있다. 새봄은 가을과의 만남이 불편하고 어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그렇지 않다. 주하랑 둘이 얘기할 때보다 편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대학 때처럼 허물없이 대화가 오고 가는 건 아니다.
“너랑 주하랑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이 됐다니, 어떻게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나? 그 덕분에 너랑 다시 만나게 됐네.” 가을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엄청 신기해. 그나저나 너는 H엔터테인먼트에 다닌다면서? 예전부터 영화 좋아했었는데 잘 됐네.”
“그럴 거 같지? 다들 그렇게 얘기하더라. 좋아하는 걸 일로 하니 좋겠다, 잘 됐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아. 어쨌든 일이다 보니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많지.”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일이니까 그렇기는 하겠지.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야. 아, 그리고 주하한테 들었는데 너 영화 평론도 쓴다면서? 지인랑 평론가가 너라는 말 듣고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나 네 글 좋아해. 내가 읽었던 영화평론이 네가 쓴 거였다니, 주하랑 같이 일하는 것만큼 놀라운 일이야.”
“좋아한다니 고마워.” 가을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왜 본명을 쓰지 않고 필명을 쓰는 거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럼 당연히 있지. 지금 H엔터테인먼트에 다니고 있는데 내가 본명으로 활동한다면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거나, 수입하거나, 배급하는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제대로 된 평을 쓰겠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지. 그래서 필명을 쓰는 거야.”
새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그렇겠네. 그런 생각은 전혀 못했어. 그럼 너희 회사 사람들은 네가 영화평론가라는 걸 모르는 거야?”
“응. 당연히 회사에서는 전혀 모르지. 내가 지인랑이라는 걸 아는 사람 별로 없어. 요즘에 영화 평론 잘 안 읽기 때문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도 없고. 그리고 본명을 쓰지 않으니까 더 과감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데도 불구하고 맘에 안 드는 영화를 눈치 안 보고 마음껏 깔 수 있어서 좋아. 하하.”
새봄도 가을을 따라 웃는다. “하하. 그런 게 있을 수 있겠네. 재밌다. 어쨌든 회사 다니면서 영화평론도 쓴다니 멋지다.”
“야야, 멋지기는 뭐가 멋져.”
“그런데 가을아!” 새봄이 말을 하려다 머뭇거린다.
“응? 왜 말을 하다 말아.”
“나 너한테 물어볼게 있어.” 새봄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뭔데?” 가을은 새봄이 무엇을 물어볼지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너는 나랑 왜 연락을 끊었어? 주하 말에 의하면 그날 나랑 너랑 사소한 걸로 다퉜다고 하던데, 나는 너랑 다툰 기억이 없거든.”
“주하가 너하고 나하고 싸웠대?” 가을이 새봄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응. 그렇다고 말했어. 그런데 주하는 우리가 왜 싸웠는지는 기억을 못하더라고. 우리가 그랬었나? 나는 기억이 안나.”
“혹시 나 말고 동미랑 싸운 기억은 없어?”
“동미랑? 동미랑은 의견이 좀 안 맞는 일이 있었던 거 같아. 다투었거나 싸웠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고.”
“나는 아니고 너랑 동미랑 싸웠어. 네가 주하에게 심한 말을 한 이후에.”
“동미랑 내가 싸웠다고? 그리고 내가 주하에게 그렇게 심하게 했었나? 내 기억에는 그냥 취업에 대해서 조언 정도 해준 거 같거든.”
“그날 너 엄청 심했어. 말도 거칠게 하고 평소 네 모습이 전혀 아니었어.”
“너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구나.” 새봄은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랑 동미도 취직이 안 되는 상태였는데 왜 그날 유난히 주하한테만 심한 말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됐어. 주하가 술 많이 좋아하잖아. 네가 주하한테 매일 술만 쳐먹고 취업 준비는 안 하냐고 너같이 게을러터진 애는 몇 년 놀아봐야 정신을 차린다고도 그러고. 영어 시험, 중국어 능력 시험 공부는 하고 있냐고 그런 것도 준비 안 하고 뭐하고 사냐면서 멸시하듯 네가 말했어. 나랑 동미는 그만하라고 말렸는데도 너는 막무가내였어. 우리는 불문과였잖아. 중국어 능력 시험은 네가 관심이 있어서 공부한 거였는데, 주하에게 왜 그런 얘기까지 하는지 보면서도 너무 황당했어. 무슨 자격증 얘기도 했었던 거 같은데. 주하에게 말할 때 ‘너무 게으르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똑바로 해라’, ‘뭘 알고는 있는 거냐’ 이러 비슷한 표현을 네가 계속 썼어. 어쨌든 그날 주하는 상처도 많이 받았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거야. 나도 너한테 묻고 싶어. 그날 취업 가지고 왜 주하한테만 그런 거야?”
새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진짜로 내가 했던 말이 기억이 안나. 내가 진짜 그랬다는 거지?”
“응, 그랬다니까. 지난 주에 주하랑도 얘기했다면서.”
“나는 왜 기억에 없을까? 너랑 주하랑 둘 다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으니 너희들 말이 맞겠지.”
“그때 너 많이 취했었어. 그래서 기억이 안 날 수는 있을 거 같아.”
“그렇지? 나 많이 취했지? 그래서 내가 좀 오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가을은 새봄의 말을 단호하게 끊는다. “아니, 취해서 그런 건 아닌 거 같아. 내가 보기에 네가 그날 주하에게 했던 말은 모두 진심이었어. 너는 술의 힘을 빌어서 평소 주하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을 마구 쏟아냈어. 몸은 술에 취한 듯 했지만, 네 눈빛은 그렇지 않았어. 술 취했다고 평소에 전혀 하지 않았던 생각이 튀어나오지는 않겠지. 어쨌든 그날 너는 한참을 기다렸다가 잡은 먹잇감을 물어뜯는 한 마리의 야수 같았어.”
가을의 단호함과 직설적인 표현에 새봄은 당황했다. “아.. 그런가?” 새봄은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화제를 돌린다. “그럼 그날 나랑 동미는 왜 다퉜어?”
“정말 별거 아닌 걸로 다퉜어. 네가 주하한테 그러고 나서 동미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는지 갑자기 자기가 UFO를 봤다고 하는 거야.”
새봄이 놀라며 말한다. “동미가 UFO를 봤다고? 아, 그러고 보니 동미가 그런 비슷한 말을 했던 게 기억나.”
“동미가 자기가 본 UFO 얘기를 한참 했고 자기는 이 우주 어디인가에 외계인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는 말을 했어. 그랬더니 네가 이번에는 동미한테 뭐라고 하기 시작했어. 세상에 UFO가 어디 있냐고 하면서 꿈에서 본 걸 착각한 거라고 네가 말했어. 네 말을 듣고 동미가 꿈 아니라고 확실히 봤다고 그러는 거야. 동미가 그러니까 네가 그게 사실이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었을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동미가 너무 갑자기 나타났고 경황이 없어서 찍을 생각을 못했다고 했어. 그때부터 네가 동미를 막 쏘아붙였어. ‘너 진짜 멍청하다’, ‘상식이 있는 거냐’, ‘UFO는 그야말로 확인되지 않은 비행물체일 뿐이다’, ‘UFO를 봤다는 게 말이 되냐’, ‘너는 쓸데없는 공상에 너무 빠져있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UFO를 봤다고 하는 건 망상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말을 네가 계속 했어. 네가 그러니까 동미도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고 너희 둘이 한참 다퉜어. 주하는 둘이 싸울 때 집에 가버렸고, 나 혼자 너랑 동미를 말렸어.”
“음.. 동미가 UFO 얘기를 했었던 건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내가 했다는 말은 이번에도 전혀 기억이 없어. 그날 나한테 무슨 일이었던 거지. 도대체 내가 왜 그런 거지? 나도 이해가 안 되네. 정말 내가 왜 그렇게까지 두 사람에게 심하게 했을까?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동미도 그날 마음이 많이 상했을 거야.”
“가을아, 너도 동미랑은 연락 안 되는 거지?”
“응. 프랑스로 유학 가서 가끔 연락을 했는데 취업하고 일하느라 바빠서 연락을 자주 못하게 됐지. 그렇게 뜸하게 연락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아쉽게 연락이 완전히 끊겼어. 동미는 SNS도 안 하는 것 같더라고, 검색도 안 되고, 추천도 안 떠.”
“그렇구나. 동미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새봄의 말에 가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동미 어떻게 지내는지 많이 궁금하네.”
“그런데 가을아, 그날 너하고 나하고도 무슨 일 있었어? 우리는 싸우거나 그러지 않았잖아.”
“그날 너랑 나랑은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지? 아무 일도 없었는지? 그런데 너는 내 연락 왜 안 받았어? 너희 셋이서 나를 따돌리기로 한 거였어?”
“아무리 그래도 당시에 우리가 어린애도 아니었는데, 셋이 작당해서 너를 따돌렸겠어? 그건 절대 아니야.”
“셋이 일부러 따돌린 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그럼 너는 왜 나랑 관계를 단절 한 거야?”
“음.. 내가 너를 안 보려고 했던 이유를 말하면 네가 많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 같고, 또.. 너한테 내 말이 너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뭔데? 괜찮으니까 말해봐.” 새봄이 재촉하듯 말했다.
”사실 이런 얘기까지 해도 되나 싶은데 어차피 오래 전 일이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만난 이상 우리 관계도 풀어야 하니까 그냥 말할게.”
새봄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한다. “나는 괜찮으니까 어서 얘기해 줘. 나는 꼭 알고 싶어. 너희들이랑 연락이 끊겨서 얼마나 힘들었다고. 내가 너희한테 상처 준 줄은 모르고 나만 상처받았다고 생각했어. 이유라도 알고 싶었어.”
가을은 잔에 반정도 남아있던 소주를 한 번에 마셨다. 잔을 내려놓고 자신의 잔과 비어있는 새봄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 한 모금씩 마셨다.
가을은 반 정도 남은 소주 잔을 잠시 내려다보다 말한다. “그날 주하랑 동미에게 심한 말을 쏟아내는 네 모습이 마치 괴물 같았어. 그날 내 앞에 괴물이 있었어.”
“괴… 물? 내가 괴물로 보였다고?” 새봄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가을이 고개를 끄덕인다. “응.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어. 당시 취업이 매우 어려운 시기였잖아. 취업이 안 돼서 졸업하고도 1, 2년 동안 알바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던 때였는데도 불구하고 넌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됐잖아. 취업을 먼저 한 너는 그날 우리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어. 그냥 취업이 먼저 됐을 뿐인데. 특히 주하를 타겟으로 삼아 가르치고, 나무라고, 혼내려 했어. 마치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훨씬 우월한 존재인양, 세상 이치를 혼자 다 깨닫고 있는 현자인양 행동했어. 취업 빨리 된 거 갖고 어떻게 저렇게까지 세상 혼자 잘난 것처럼 행동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런 네 모습이 내 눈에는 괴물로 보였어.”
“…...” 새봄은 가을이 왜 당시 자신의 모습을 괴물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없다.
“너는 학교 다닐 때 매우 겸손한 편이었잖아. 평소와 전혀 다른 너의 괴물 같은 모습에 난 소름이 끼쳤어. 네 무의식에 잠재돼 있던 괴물이 어떤 트리거에 의해서 갑자기 확 튀어나온 것만 같았어. 너의 그런 모습을 보니까 네가 사회에 나가서 성공을 하게 되면 얼마나 더 무시무시한 괴물로 진화될지 막 상상이 되더라고.” 잠시 적막이 흐른다. “내가 너무 있는 그대로 말했나?”
“아니야.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이제야 이해가 좀 되네. 그런 내 모습에 실망해서 너도 나랑 관계를 끊은 거였구나.”
“아니. 내가 너를 보고 싶지 않았던 건 너의 그런 모습 때문이 아니야.”
새봄이 놀라면서 묻는다. “그게 아니라고?”
“응. 그건 아니야.”
“그럼 왜 그랬던 거야?”
가을이 잔에 남아 있는 소주를 마셨고, 새봄도 가을이를 따라 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새봄이 자신의 잔과 가을이의 잔을 채운다.
“그런 너의 모습을 보고 내가 더 끔찍하게 느껴졌던 게 뭔 줄 알아?” 가을이 물었다.
“아니 모르겠어. 뭔데?” 새봄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더 끔찍했던 건 그런 너의 모습에서 내 자신을 봤다는 거야. 내 안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외면하고 있었던 괴물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어.”
새봄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다. “내 모습에서 네 자신을 봤다니,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그날 네가 주하랑 동미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말들은 내가 평소 주하랑 동미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들이었어. 내가 걔네 둘에 대해서 생각했던 것들을 네가 그대로 말하고 있더라고.”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가을이의 말에 새봄은 놀랐다.
잠시 숨을 고른 가을이가 차분히 말을 이어간다. “너의 그런 모습이 괴물 같으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그대로 쏟아내는 네 모습을 보면서 내 마음 한편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희열 같은 게 느껴졌어. 하고는 싶지만 내가 못하는 것을 누군가 대신 해주었을 때 느껴지는 후련함, 짜릿함 같은 거 있잖아. 나 대신 네가 토해내 주는, 배설해 주는 그런 시원함을 느꼈어.”
“아! 나.. 를 보면서 그랬었구나.” 새봄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런데 그 희열의 순간은 오래가지 못했어. 바로 그런 감정이 드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고 혐오스러워 졌어. 너의 괴물 같은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내 안의 괴물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거 같았어. 그날 이후로 너를 보는 게 두려웠어. 너를 보면 또 다시 나의 내면 깊이 숨어있는 괴물이 다시 튀어나와 마주하게 될 까봐 무서웠어. 그래서 너를 볼 자신이 없었어. 너와 관계를 끊은 건 너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내 자신과의 문제였어. 진짜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게 두려워서 너를 피한 거였어. 역겨운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거지.”
“이제 좀 알 것 같다. 나는 취업이 먼저 됐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내 안에 숨겨 왔던 걸 그대로 토해낸 거였네. 반대로 너는 그걸 누르고 있었던 거고.”
“그날의 다툼은 그냥 친구들끼리 술 먹고 흔하게 일어나는 다툼 정도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일었는데 말이지. 어떻게 된 게 긴 시간이 흘러서까지 각자에게 각기 다른 아픔으로 남아 버렸네.”
“그러네. 나는 내가 따돌림 당한다고 생각했고 나만 상처받은 줄 알았어. 어쨌든 이 모든 게 내 말에서부터 비롯된 거네. 다 내 잘 못이야. 가을아, 미안하다.”
“아니야. 나한테 미안해 할 거 없어. 너를 외면한 나도 잘 한 거 하나도 없으니까.”
“그러면 이제는 나를 봐도 괜찮아?”
가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럼, 괜찮지. 그때는 내 안의 괴물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고 그냥 외면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달라졌어.”
“어떻게 달라져? 네 안의 괴물이 사라졌어?”
“아니. 사라지지 않았고 불편한 내 진짜 모습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인정하기로 했어. 그래야만 무의식 속에 있는 그 괴물을 통제할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 생활의 발견이라는 영화를 보면 그런 대사가 나와. ‘우리, 사람은 못 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그 대사처럼 내 안의 괴물이 튀어나오지 않게, 내 자신이 내면의 괴물에게 잡아 먹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살고 있어.”
“나도 그 영화 좋아해. 너는 영화평론가여서 그런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보통 사람들과 어딘가 많이 다르다. 네 말을 들으니까 나는 이미 내 안의 괴물에게 잡아 먹힌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내 자신을 좀 들여다봐야겠다. 그 괴물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말이야.
“나는 모든 사람 마음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 괴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그나저나 새봄아, 내가 한 말에 기분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니야. 전혀 기분 상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마. 오히려 솔직히 얘기해줘서 고마워. 이유를 알았다는 게 나한테 가장 중요해.”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런데 가을아, 당시 우리 네 명 모임 이름이 쿨 포테이토였잖아.”
“응. 그 이름 오랜만에 듣는다.” 가을이 반가운 듯 말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기억나?”
“내 기억으로는 날씨가 좋은 날, 우리 넷이 학교 잔디밭에 앉아서 맥주랑 감자칩 먹고 있었는데 동미가 뜬금없이 우리 모임 이름을 쿨 포테이토라고 하자고 했잖아. 다들 쿨 포테이토라는 말이 예쁘다면서 다 찬성했었고. 그렇게 정해진 거 아니었나?”
새봄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랬나? 강원도 놀러 가서 지은 게 아니고?”
“강원도면 우리 넷이 갔던 첫 여행 말하는 거지?”
“응. 나는 그때 지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거든.”
“그때 지었나? 내 기억으로는 학교에서 감자칩 먹으면서 지었던 거 같은데.”
“네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 봤어. 그런데 학교 잔디밭에서 먹은 건 맥주랑 프렌치프라이 아니었어?”
가을이 시간을 확인하면서 말한다. “감자칩이던 프렌치프라이던 뭐가 중요하냐? 맛있게 먹었으면 됐지. 새봄아, 많이 늦었다. 우리 이만 일어나자.”

밤이 깊었다. 술집에서 나온 새봄과 가을은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가을이가 부른 택시가 먼저 왔다.
“가을아, 조심해서 들어가. 오랜만에 반가웠어.”
“그래, 나도 반가웠어.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가을이 타자마자 택시는 주저 없이 출발했고, 새봄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본다. 새봄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기분이 들었다. 가을이의 말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가을이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에 위안도 받았다. 홀가분하다. 새봄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어두운 하늘에 달이 환하게 떠있다. 예쁜 달을 볼 수 있는 건 좋지만 별이 별로 없는 건 아쉽다.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여의도 빌딩숲 사이에서 하늘에 많은 별이 보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몇몇 희미한 별들이 어두운 하늘에 드문드문 박혀있다. 새봄은 그 중에서 그나마 밝은 별 하나를 본다.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하다. 그 별이 점점 밝아진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별이 아닌가? 그 별은 밝아지다 못해 둘레가 점점 더 커진다. 계속 커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어떠한 형태를 띠기 시작하더니 모양이 뚜렷해졌다. 그 별은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원형의 UFO로 변했다.
‘뭐지? 진짜 UFO 잖아!’
UFO는 어두운 여의도 상공을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새봄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한다. 이것은 환시임에 분명하다. 깨어나야 한다. 환각에서 깨어나기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눈을 조심스럽게 뜨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여전히 UFO는 여의도 상공을 빠르게 날고 있다. 다시 두 눈을 감고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어 본다. 살며시 눈을 떴다. UFO가 눈앞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던 UFO는 속도를 서서히 줄인다. UFO는 천천히 날아와 새봄이 정면으로 보고 있는 하늘에 멈추어 섰다.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 새봄은 공중에 떠있는 UFO를 바라보고 있다. 그 UFO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현실에서 UFO를 보고 있는 건가? 저건 비행기도, 드론도 아니다. 그렇다고 형태가 없이 단순히 빛이 반사가 된 것도 아닌데. 뚜렷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진짜 둥근 원형의 비행 물체가 맞잖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멀지 않은 하늘에 떠있다. 분명히 내 눈앞에 있는 게 맞는데. 너무 크고 형태도 뚜렷해서 헛것을 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내가 진짜 UFO를 보고 있다는 말인가? 동미가 봤다는 UFO가 진짜인가?”
새봄은 계속 하늘을 보다 주위를 둘러 본다.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아무도 없다. 다시 하늘을 본다. UFO는 여전히 그 자리에 떠있다.
“빵빵” 경적소리가 들린다.
“택시 부르셨죠?” 택시기사가 창문을 열고 새봄을 보면서 말했다.
“네. 맞아요.” 새봄이 서둘러서 뒷문을 열고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님, 서초동 OO아파트로 가주세요.”
택시는 원효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다. 새봄은 창 밖을 내다본다. 저 멀리 여의도가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높은 빌딩들 위로 분명 UFO가 보여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UFO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창문을 열어도, 마른 눈을 몇 번이나 감았다 떠봐도 비슷한 것조차 없다. 하늘에는 휘황찬란한 달만 떠있을 뿐 UFO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어! 아무것도 없네. 환시였나? 분명 UFO가 맞았는데, 잘못 본 게 아닌데. 그 사이에 다른 데로 날아갔나?’
새봄은 망설이다가 택시기사에게 물어본다. “기사님, 저한테 오시는 길에 하늘에서 이상한 거 못 보셨어요?”
“이상한 거라뇨?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우습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UFO 못 보셨어요?”
“UFO요? 지금 여의도로 오다가는 못 봤는데요. 제가 아주 오래 전에는 UFO를 본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그때는 분명 봤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게 진짜 본 건지, 꿈에서 본 건지, 무언가 잘못 본건지 확신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봤다고 믿고 있어요. 우주가 어마어마하게 큰데 어딘가에 외계인이 있지 않을까요? 외계인이 있으면 UFO도 있을 수 있죠.” 택시기사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아.. 네. 기사님도 UFO 보신적이 있구나.”
“주변에 한번 물어보세요. 의외로 본 사람들 꽤 많아요. 그런데 진짜로 신기한 게 다들 본건지 아닌지 가물가물해 한다는 거에요. 저는 가끔 사람 마음이 UFO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나저나 손님께서 방금 UFO 보셨나 봐요?”
“전 잘못 봤나 봐요. 제가 취해서 헛것을 본 거 같아요.”
‘어떻게 된 거지? 정말 잘 못 본 건가? 잘 못 봤을 거야. 세상에 UFO가 어디 있겠어. 말도 안되지. 기사님도 못 보셨다잖아.’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새봄은 마음이 편해졌다. 오랜 시간 동안 그토록 알고 싶었던 이유를 드디어 알았기 때문이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알았으니까 이제 됐어. 이제 됐다고.” 새봄은 창 밖의 한강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새봄은 스마트폰에서 단체 톡방을 만든다. 주하와 가을이를 초대했다. 활짝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톡을 보낸다.
단톡방 이름: Cool Potato Reunion
『주하야, 가을아, 안녕! 다음 주에 우리 셋이서 술 한잔 하는 거 어때?』

Epilogue
어두운 여의도 하늘에 UFO 한 대가 떠있다. UFO는 하늘 높이 떠서 새봄이 타고 있는 택시를 따라간다. 택시는 원효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달린다. 강변북로 옆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한강이 고요히 흐르고 있다. 어두운 한강의 물결은 환한 달빛과 도로의 가로등 불빛으로 치장하고 있다. 새봄이 탄 택시는 강변북로를 달리다 반포대교로 빠졌다. UFO는 계속 택시를 따라간다. 반포대교를 건넌 택시는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신호에 걸렸다. 택시가 멈추니 UFO도 택시 위 하늘에 멈추어 섰다. 파란 신호로 바뀌니 택시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UFO도 택시를 따라 다시 날아간다. 택시는 반포를 지나와 서초동의 도로를 달리고 있다. 그러다 서초동 어느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아파트 단지 안에 들어온 택시는 속도를 늦춘다. 새봄의 집 앞에서 멈추었다. UFO도 택시를 따라 천천히 날다 멈추었다. 택시에서 새봄이 내린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새봄은 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동안 아파트 단지 안을 서성인다. 그러다 집 앞에서 한참을 하늘을 두리번거리다 집으로 들어갔다. UFO는 새봄이 사는 아파트 위에 계속 떠있다. 오랜 시간 그 자리에 떠있다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높이 높이 올라간다. 아주 아주 높이 올라가니 다른 UFO 몇 대가 떠있는 것이 보인다. 계속해서 더 높이 올라간다. 높이 올라갈수록 UFO의 수가 많아진다. 새봄을 따라온 UFO는 더 높이 올라가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각각 크기가 다른 UFO가 무수히 많이 있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멈추었다. 지구와 멀지 않은 우주에 셀 수도 없이 많은 UFO로 가득하다. 얼마나 많을까? 적어도 수십억 개는 되는 것 같다.
저 많은 UFO는 안에는 무엇이 타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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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단편 제주 문어는 바다처럼 운다 빗물 2021.08.30 2
1953 단편 엘러시아와 발푸르기스 니그라토 2021.08.22 0
1952 단편 우주 폭력배론 : 증오 니그라토 2021.08.18 0
1951 단편 그라데이션 증후군 잉유신 2021.08.14 0
1950 단편 [심사제외]빅 리치 니그라토 2021.08.12 0
1949 단편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히로 2021.08.09 0
1948 단편 江巨村 (관찰사 이제팔) 키미기미 2021.08.07 0
1947 단편 창귀 (관찰사 이제팔) 키미기미 2021.08.07 0
단편 쿨 포테이토 킥더드림 2021.08.03 0
1945 단편 돌려주세요 유중근 2021.07.31 0
1944 단편 자유의지는 없다 잉유신 2021.07.30 0
1943 단편 숲의 방문자 Hilaris 2021.07.29 0
1942 단편 혼맞이1 빗물 2021.07.19 0
1941 단편 태풍의 눈 아래 슬픈열대 2021.07.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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